우리에게 보혜사가 계시매 요14:25-32, 16:7-13
미국의 한 잡지에 '어 브라더스 기프트(A brother's gift)', '형제의 선물'이라고 하는 글이 실린 적이 있습니다. 아이의 엄마가 경험한 것을 그대로 적은 글이었습니다. 그녀에게는 전남편에게서 낳은 21살 된 아들 제임스가 있었습니다. 지금 재혼해서 사는 남편 사이에서 낳은 12살 된 럭키라고 하는 딸이 있고, 또 그 뒤에 지금 4살 된 아이가 있었습니다. 이 4살 된 꼬마가 심각한 병에 걸려서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이 4살 된 아이가 간에 악성 바이러스가 침투하여서 제 기능을 못하게 막아서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12시간 내에 간을 이식 받지 못하면 죽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절박한 시간에 의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시간이 없습니다. 유일한 소망은 살아있는 간 기증자를 얻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간은 하나 밖에 없습니다. 하나뿐인 간을 그 절반을 잘라서 준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살아있는 사람의 간을 이식 받아야만 산다고 하는 말은 정말 힘든 말이요, 그렇게 하기도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짧은 시간에 이러한 기증자를 구할 수도 없었습니다. 어머니는 초조하고 답답하고 괴로웠습니다. 그런데 전남편의 아들인 제임스가 이복형제에게 간을 나누어주겠다고 나셨습니다. 아버지는 다르고 어머니가 같았지만, 가능한지 검사를 받아야 했습니다. 어느 정도 된다는 결과를 얻고 간이식 수술을 하는 순간 수술실 밖에서 어머니는 딸의 손목을 잡고 무릎을 꿇고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 4살 난 꼬마를 살려주십시오!” 잘못되면 아들 둘을 다 잃어버리는 절체절명의 순간이었습니다. “하나님이여, 저 두 자녀를 살려주세요!” 자기 생명 같은 간을 동생에게 나누어주겠다고 나선 제임스가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습니다. 이렇게 전부 이기적이고 이 세상이 사악한데, 어떻게 자기의 친동생도 아닌 이복동생에게 간을 나누어주겠다는 결심을 하고 수술대에 누워있는 아들을 보면서 고맙기 그지없었습니다.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나고 두 명은 빨리 회복 될 수 있었습니다.
형제가 형제에게 나누어주는 선물이 얼마나 아름다운 선물입니까? 우리는 그 고귀한 사랑보다 더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사랑의 아버지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생명을 희생해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고,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시어 우리를 끊임없이 돕고 계십니다.
오늘 삼위일체 주일을 맞아 본문을 중심으로 “우리에게 보혜사가 계시매”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삼위일체 하나님은 인간의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신비입니다.
흔히 삼위일체를 설명할 때 태양으로 비유하여 설명 합니다. 태양은 그 본체가 있고, 그 본체에서 빛과 열이 나옵니다. 태양의 본체를 성부 하나님이라고 한다면 거기서 나오는 빛을 성자 예수님으로, 또 거기서 나오는 열을 성령 하나님으로 표현 할 수 있습니다. 형태와 역할에 따라 세 모습으로 나타나지만 이 셋은 본질상 하나입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의 사역이 성 삼위의 사역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창세기 1장에 창조의 사역에서 성부 하나님, 말씀이신 성자 예수님, 수면에 운행하시는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 하나님이 같이 하십니다. 창1:26에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했습니다. 여기에 “우리”라는 복수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중세 러시아 출신 성화 작가 안드레이 루블료프(Andrey Rublyov, 1360년경~1430년경)는 하나님께서 세 천사의 모습으로 마므레 상수리나무 곁에 있는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신 장면(창세기 18장)을 『구약성경 삼위일체』라는 작품을 남겼습니다. 해설가는 그림에 등장하는 세 천사를 왼편에서부터 성부와 성자와 성령을 나타낸다고 말합니다. 성자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양편에 성부 하나님과 성령님이 마주 앉아 있습니다. 이는 마치 커다란 잔의 형상으로 희생의 잔을 중심으로 삼위가 둘러 앉아 있음을 보여줍니다. 또 삼위가 둘러 앉아 있는 형태는 하나님의 신성이 내재한 단일성을 표현합니다. 또 삼위는 똑같은 권위를 지녔음을 나타내는 권위의 지팡이를 모두 들고 있으며, 모두 '신성'을 상징하는 푸른빛 옷을 입고 있습니다.
그림에는 삼위 하나님의 역할이 상징적으로 보입니다. 성자 예수 그리스도는 희생의 잔 한 가운데에 앉아 있습니다. 성자는 오른 손 두 손가락으로 강생을 통해 신성과 인성을 겸비한 희생양임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왼편의 성부 하나님은 축복하는 손 모양으로 성자를 격려하고 있습니다. 성령은 오른 손으로 식탁 아래에 있는 열린 사각형을 가리키고 있는데 이는 그리스도의 희생이 세상을 구원할 것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가리키는 작은 사각형은 동서남북 모든 세상을 상징하며, 하나님의 나라로 가는 길은 좁은 길임을 나타냅니다.
신약에서는 마3:13 이하에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실 때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는 성부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고, 성령 하나님이 비둘기 형상으로 그 위에 임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마 28:19)라고 하신 말씀 가운데 나타나 있습니다. 그 외에도 직접, 간접적인 표현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우리가 삼위일체 하나님을 인간의 말로 완벽하게 표현 할 수 없지만 성 삼위 하나님이 우리의 구원과 영생과 축복을 위해 신비한 모습으로 역사하고 계심을 믿고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돌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아버지 하나님께서 보내신 예수님이 우리의 보혜사입니다.
보혜사란 우리 사람을 보호해 주고, 은혜를 주시며,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는 스승을 보혜사라고 합니다. 보혜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입니다. 그런데, 그 보혜사는 먼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요14:16에서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라고 하셨습니다. 성령님을 ‘또 다른 보혜사’라 하신 것은 성령님이 오시기 전에 그들을 도우시던 보혜사가 있었다는 말인데 그 분이 바로 보혜사 예수님이셨습니다.
예수님은 3년 동안 제자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그들의 보호자가 되어주셨습니다. 예수님이 함께 계시니 갈릴리 바다에 험한 파도가 일어도 바람과 바다를 꾸짖어 잔잔케 하시는 예수님이 계시니 걱정이 없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 같이 똑똑한 사람들이 찾아와 시비를 걸고 트집을 잡아도 슬기로운 말씀으로 그들의 말문을 막아버리신 예수님이 계시니 염려할 것이 없었습니다. 보혜사 예수님은 제자들에게만 보혜사가 되신 것이 아니라 주님께 찾아온 각색 병든 자들과 문둥병자들, 귀신들린 자들, 소외된 자들, 절망 중에 있던 자들, 죄인들, 가난한 자들에게도 보혜사가 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이 이 세상에서 마귀의 종노릇하면서 사는 모습을 차마 보지 못하여서 2,000여 년 전에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들을 구원시켰습니다. 예수님은 세상 죄를 지고 십자가를 지심으로 죄의 권세, 사단 마귀의 권세에서 우리를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친히 화목 제물이 되시어 우리가 하나님 앞으로 나갈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으신 보혜사입니다.
미국이 한참 남북 전쟁에 휘말려서 많은 사람이 죽 어가고 있을 때의 일입니다. 어느 조그마한 농촌에 있는 청년이 징집을 받아서 전선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너무 고통을 견디기가 힘들고 두려워서 그는 탈영을 해 버렸습니다. 그러나 오래 가지 못해 체포되어 사형선고를 받게 되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그의 아버지는 아들을 잃는다고 생각하니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야말로 삶의 의욕이 다 사라 져 버렸습니다. '어떻게 하면 내 아들을 살릴 수 있을까?'하고 고민 고민하던 그에게 한 가지 묘안이 떠올랐습니다. 대통령을 만나서 마지막으로 한번 탄원 해 보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링컨 대통령을 만나러 백악관을 찾아갔습니다. 그러나 경비들이 이 시골 남자를 들여보내 줄 리 만무했습니다. 한 발짝도 들여놓지 못하게 하는 바람에 그는 길가에 있는 벤치에 앉아 서 한없이 울고 있었습니다.
그때 가까운 곳에서 비탄에 빠져 있는 그를 측은한 눈길로 지켜보고 있던 소년 하나가 다가와서 그에게 물었습니다. "아저씨, 왜 그러세요?" 그는 자초지종을 이야기했습니다. 이야기를 모두 들은 소년은 느닷없이 자기를 따라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처음에는 무슨 소리인지 못 알아듣다가 자꾸 재촉하는 바람에 그 소년을 따라나섰습니다. 그런데 그 소년은 그를 수위실로 데리고 가더니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사람은 제가 데리고 들어가는 사람이에요." 그랬더니 모든 수위들이 아무 소리 않고 그를 통과시켜 주었습니다. 그 소년은 그를 대통령이 집무하는 집무실로 데리고 가더니 링컨 대통령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빠, 내가 데리고 온 사람이에요. 이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너무 가슴 아파요." 그 소년이 대통령 앞에 당당히 설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대통령의 아들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가 사형 선고 받아 마땅히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라도 예수의 이름 부르면 보혜사이신 예수님의 도우심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서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있게 됩니다. 그러기에 보혜사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내주신 최고의 선물입니다. 지금도 우리의 보혜사가 되시어 세상 끝 날까지 함께 해 주시는 예수님을 더욱 사랑하면서 항상 임마누엘 신앙으로 승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3.아버지 하나님이 보내신 성령님이 우리의 또 다른 보혜사입니다.
본문26절에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했습니다. 또 요16:7에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는 것이 너 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예수님 자신보다 더 유익한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보혜사 성령님이라 하십니다.
기독교는 은혜의 종교입니다. 나의 노력과 행위로, 의지로, 공로로, 의로 이루어지는 구원과 은총이 아니라, 하나님이 거저 주신 것을 우리가 받아서 반응하는 종교입니다. 그런고로 우선적으로 내가 무엇을 하느냐? 보다 내가 먼저 하나님이 주신 무엇을 받는가? 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성도들의 헌신과 충성과 성결한 삶은 받은 은혜의 결과요, 산물입니다.
보혜사 성령을 통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와 선물이 많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보혜사 성령님이 주시는 유익이 무엇일까요? 첫째로 먼저 성령이 오시면 나에게 구원의 확신을 주시는 것입니다. 요16:8절에서 예수님은 성령께서 오면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을 한다고 했는데, 여기 ‘책망을 한다.’는 원어의 말씀은 바로 소극적으로 잘못된 것을 책망을 하여 적극적으로 깨닫게 하여 확신을 갖게 해 준다는 말입니다. 여기 나타난 세 가지는 구원의 확신을 가지는데 꼭 확인되어야 할 중요한 요소입니다.
요16:9절에 우선 ‘죄에 대하여서는 말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라’고 했는데 즉 성령이 오시면 우리의 죄를 책망하고 깨우쳐 주시는데, 특히 죄 중에서 가장 큰 죄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보통 우리는 죄라고 하면 도덕적인 죄를 말하는데 여기서는 가장 중요한 죄, 회개하지 아니하면 구원받을 수 없는 큰 죄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것이 주님이 바로 나를 믿지 않는 죄라고 했습니다. 즉 우리 예수님이 우리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나의 구세주와 주님이 되었는데 이 주님을 나의 구세주로 믿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나의 주님으로 믿지 않는 것이 가장 큰 죄입니다. 왜야하면 이것을 믿지 아니하면 구원을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죄를 죄로 생각지도 않고 대수롭게 여기지도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주님을 바로 믿지 않는 것이 가장 큰 죄입니다. 이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보혜사 성령님은 이 죄를 깨닫고 회개 하게 하시고,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어 구원의 확신을 가지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보혜사 성령은 진리가운데로 우리를 인도하시는 은혜를 주십니다. 13절에 보면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했습니다. 성령을 진리의 성령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분이 우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해 주신다고 했습니다. 진리란 무엇입니까? 진리란 하나님의 말씀으로 영원히 바른 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우리 예수님이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예수님 자신이 진리이십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 우리는 진리의 길로 인도받습니다. 결국 진리이신 예수님에게로 인도받게 됩니다. 셋째로 보혜사 성령은 우리의 속사람을 강건케 하십니다. 사도 바울은 엡3:15-16절에서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 그 영광의 풍성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했습니다. 강하고 담대한 능력이 임하여 능히 마귀의 궤계를 이길 수 있게, 믿음의 승리자가 되게 합니다. 네 번째로 보혜사 성령은 우리에게 하나님과 동행하는 축복을 누리게 합니다. 여러분, 성령 충만 이란 무슨 말입니까? 바로 우리와 함께 하는 성령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겠다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이 보혜사 성령님을 내가 보내 주리니 하시면서 너희와 함께 할 것이요. 너희 속에 영원토록 거하리라고 했습니다. 즉 성령이 충만하시면 그 때부터 성령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어 우리가 그 분을 중심으로 살면 그 분은 우리와 함께 동행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만큼 더 좋은 축복이 어디에 있습니까? 보혜사 성령님을 통한 임마누엘의 은총을 누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이제 말씀을 정리합니다.
성 삼위 하나님은 보혜사를 통해 지금도 우리를 위해 일하십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인간의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신비입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보내신 예수님이 우리의 보혜사입니다.
♡.아버지 하나님이 보내신 성령님이 우리의 또 다른 보혜사입니다.
우리 모두 사랑의 아버지께서 보내신 보혜사의 도우심으로 풍성한 복을 받고, 믿음의 승리자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아멘.
'은혜 설교 모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스크랩] 주님 은혜의 손길 왕상19:1-8, 고후1:3-11 (0) | 2014.08.26 |
|---|---|
| [스크랩] 성령께서 주시는 은혜 욜2:28-32, 행1:4-8 (0) | 2014.08.26 |
| [스크랩] 말씀을 따라 사는 자의 복 잠13:12-20, 마7:22-27 (0) | 2014.08.26 |
| [스크랩] 이제 우리도 이렇게 삽시다. 창26:12-25, 마5:33-42 (0) | 2014.08.26 |
| [스크랩] 풍성한 감사가 주는 유익 잠3:9-10, 고후9:10-15 (0) | 2014.08.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