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우리도 이렇게 삽시다. 창26:12-25, 마5:33-42
어느 스승이 한 젊은이를 제자로 두었습니다. 그런데 그 제자는 무슨 불만이 그리 많은지 늘 불평을 늘어놓았습니다. 하루는 스승이 제자를 불러서 소금 한 사발과 마실 물을 한 컵 가져오라고 시켰습니다. 제자가 소금 한 사발과 물 한 컵을 준비하여 오자 스승은 소금을 컵 속에 넣은 다음에 그 물을 마시게 하였더니 제자는 얼굴을 찡그리며 마셨습니다. 스승이 묻었습니다. “맛이 어떠냐?” 제자는 화가 잔뜩 난 목소리로 “짭니다.”하고 내뱉었습니다.
스승은 제자를 가까운 호수로 데려가서 아까와 같은 양의 소금을 호수에 집어넣고 휘휘 저어 그 물을 마시게 한 다음에 다시 물었습니다. “맛이 어떠냐?” “시원합니다.” “짜지 않느냐? “안 짭니다.” 스승이 말했습니다. “인생의 고통은 소금과 같다. 짠맛의 정도는 담는 그릇에 따라 달라지지. 네 속에 고통이 있다면, 네가 컵이 되지 말고 호수가 되어라.”
우리 중에 자신 안에 짜디짠 소금을 갖지 않고 사는 사람이 있을까요? 자기 삶 속에 아무런 고통도 없이 사는 사람은 세상에 하나도 없을 겁니다. 그래서 인생은 고해, 곧 고통의 바다라고 말 하는가 봅니다. 그런데 앞에서 스승과 제자의 이야기는 고통스런 바다를 헤쳐 나가는 우리에게 중요한 지혜를 제공해 주고 있습니다. 그 방법은 우리의 존재의 변형, 존재의 확장에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자신이 호수와 같은 존재의 수준으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짜고, 쓴맛을 빼내지 않아도, 짜고, 쓴맛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습니다. 짜고, 쓴맛 대신 시원한 맛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물 컵과 같은 존재에서 호수와 같은 존재로 자라나는 것입니다. 물론 그러한 존재의 변형은 어렵다면 어렵고, 쉽다면 쉽습니다. 결코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 믿음 안에서 얼마든지 가능한 일입니다.
오늘 두 본문의 말씀 가운데서 그 비결을 “이제 우리도 이렇게 삽시다.”라는 제목으로 찾아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하나님의 은총을 받고 살면 호수처럼 됩니다.
구약의 짤막한 본문 속에 이삭이 얼마나 많은 박해와 도전을 받았는가가 잘 드러나 있습니다. 이삭이 당면한 도전은 다음과 같습니다. 14절에 블레셋 사람들의 시기입니다. 시기한 이유는 간단합니다. 이삭이 100배를 거두고 부자가 되고 살림이 불어났다는 것 때문입니다.
'시기'라는 헬라어 낱말 가운데 '젤로스'(zelos)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그 의미는 '분개, 질시'라는 뜻입니다. '시기는 남이 잘되는 것이 보기 싫어 남의 일에 괜히 성내고 분개하는 것'입니다. 또 '프흐데이로'(Phtheiro)라는 단어도 있습니다. 그 의미는 '시들다, 상하게 되다, 타락하다, 멸망하다' 라는 것입니다. 시기와 질투가 넘치면 자신의 영혼이 시들시들해 집니다. 그리고 심령이 상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타락하고 결국 멸망하게 됩니다. 시기는 마귀가 주는 것입니다. 사무엘서를 보면 사울 왕이 다윗을 시기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전쟁의 위기에서 자기를 돕고, 나라를 위기에서 건져낸 다윗은 자기의 사위이기도 했습니다. 아들처럼 사랑하고 아꼈으면 그에게 얼마나 힘이 되고, 위로가 되고, 영광이 되고, 기쁨이 되었겠습니까?
그런데 그는 다윗을 시기하여 정적으로 알고 미워하고 여러 번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러한 그의 마음에 악신이 역사하여 괴로워 견딜 수 없게 되었고,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망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본문에 블레셋 인들은 이삭을 시기해서 힘들게 파 놓은 우물을 가지고 시비를 걸었습니다. 15절을 보면 우물을 막고 흙으로 메웠다고 했고, 20절을 보면 다투었다고 했고, 21절을 보면 또 다투었다고 했습니다. 당시 고대 사회에서 그러한 일은 선전포고였습니다.
이삭은 이럴 때에도 정면 대응을 피했습니다. 상종할 가치가 없는 사람들과 맞서 싸우다 보면 득 보다 실이 더 많습니다. 그는 양보하고 또 양보했습니다. 다른 곳으로 옮겨 다시 우물을 파고 또 시비를 걸자 다시 옮겨 팠습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그에게 백배로 거두는 복을 주셨습니다.
신약 본문 38절- 39절 말씀에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가르침에서 제자들이 ‘모든 악에 대한 어떠한 저항도 거부할 것’을 요구하십니다. 심지어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라”고 하십니다.
톨스토이의 단편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한 소년이 숲속에 넓게 펼쳐진 들판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한 가운데에 큰 나무가 하나 서 있는데, 굵은 가지에 밧줄이 걸려있고, 그 밧줄에 단단한 통나무 조각 하나가 매달려 있습니다. 가만 보니 그 통나무 조각 밑에 꿀통이 놓여 있습니다. 숲속에서 어미 곰과 새끼 곰 몇 마리가 나옵니다. 곰들은 꿀 냄새를 맡고 꿀통에 머리를 쳐 박고 꿀을 먹기 시작합니다. 꿀 통 바로 위에 통나무가 달려 있습니다. 그것이 자꾸 성가시게 머리를 건드립니다. 귀찮다고 밀어냅니다. 밧줄에 매여 있던 통나무는 조금 밀려갔다가 다시 돌아옵니다. 머리를 건드리자 새끼 곰이 신경질이 났습니다. 좀 더 세게 밀어냅니다. 멀리 사라지는 것 같았지만, 곧 통나무는 더 빠른 속도로 날아와 곰 한 마리를 밀쳐냅니다. 엄마 곰이 열을 받아 있는 힘을 다해 통나무를 멀리 던져 버립니다. 그리고는 다시 꿀 통 속에 머리를 쳐 박습니다. 멀리 날아갔던 통나무, 이제는 더욱 빠른 속도로 힘이 붙어서 날아옵니다. 결국 어미 곰의 머리를 강타하고 어미 곰은 거기서 즉사합니다. 톨스토이의 단편은 우리에게 복수가 무엇인지를 가르쳐 줍니다. 복수는 더 큰 복수를 불러오고, 결국은 비극으로 끝난다는 것을 알려 줍니다. 예수님은 선으로 악을 이기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임하므로 우리도 이삭처럼, 주님의 말씀처럼 살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2.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으면 복의 근원으로 삽니다.
이삭이 100배의 복을 받은 것은 외면적으로는 개척정신이나 양보심 탓이겠지만 그러나 결정적 원인은 하나님이 복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본문 12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그해에 백배나 얻었고,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22절 끝을 보면 "이제는 여호와께서 우리의 장소를 넓게 하셨다"고 했고, 24절 끝을 보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으로 번성케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랄 땅은 박토입니다. 그래서 보통 농사를 짓게 되면 풍작일 경우 25-50배의 수확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삭은 100배를 거뒀습니다. 주경가 로빈슨(Robinson)은 "그 당시 블레셋 땅의 조건과 다른 사람들의 수확량에 비교해 볼 때 이삭의 100배는 파격적인 것이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이삭에게 파격적인 복을 주셨습니다. 그의 살 땅의 장소를 넓혀 주셨습니다. 그 땅에서 번성하게 되었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블레셋 사람들이 과연 하나님이 복 주시는 사람이구나! 그러한 이삭과 대항하여 싸우면 결국 우리에게 손해가 되겠구나! 생각이 되어 먼저 찾아와 다시는 서로 다투지 말자고 화친 조약을 맺게 된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임한 복이 아들인 이삭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이런 은혜와 축복을 믿는 우리 성도들이 되시고, 아브라함처럼, 이삭처럼 복을 받아 복의 근원으로 사시기를 기원합니다.
신약 본문에 예수님은 이웃에게 나누어주고, 꾸고자 하는 사람에게 거절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어느 정도 돈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런 일이 가능할 것입니다. 그러나 돈을 가졌다 할지라도 인색한 사람은 이것이 안 됩니다. 돈이 없다 해도 은혜를 소유하고 누리는 넉넉한 마음이 있다면, 작은 것이라도 나눔이 가능합니다. 상대의 요구보다 더 많이 주고 또 주는 은혜 베풂이 가능합니다. 샘은 자꾸만 물을 퍼내도 마르지 않습니다. 계속해서 다시 솟아나기 때문입니다. 만복의 근원 되시는 하나님께서 샘처럼 솟아나는 복을 주시어 사람들에게 은혜를 주고, 복음을 주고, 믿음을 주고, 사랑과 도움을 주고, 용기를 주고, 기쁨을 주는 복의 근원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3.하나님의 사랑이 내 안에 흐르면 원수까지 사랑합니다.
이삭에게는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귀한 신앙의 유산이 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모리아 산에서 아들을 번제로 드리라는 말씀에 순종하므로 독자 이삭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이삭 자신도 아버지가 자신을 결박할 때 저항하지 않고 순순히 아버지의 뜻을 따르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는 신앙을 배웠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부어지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친구가 되어 주셨고, 상급이 되어 주셨고, 보호자가 되어 주셨고, 복의 근원이 되어 주셨고, 믿음의 조상이라는 명예와 존귀를 주셨습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사랑이 이삭에게도 부어졌기에 공연히 시비하고 싸움을 걸어오는 블레셋 사람들과 맞서 싸우지 아니하고 양보하고 용서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신약 본문 40절과 42절에 “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문화권에서는 ‘겉옷’이라는 것은 단순한 의복이 아니고 한 밤중에 몸을 보호하는 이불의 역할을 합니다. 그렇기에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겉옷이 유일한 제산목록입니다. 따라서 히브리 사람들은 가난한 자의 겉옷을 전당잡았다 해도 저녁에는 돌려주는 것이 법으로 규정되어 있습니다(출 22:26). 이러한 문화적 배경으로 주님은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그토록 소중한 겉옷까지 가지게 하는 양보의 배려를 하라는 말씀입니다. 주님의 이 교훈은 무엇인가를 필요로 하는 이웃에게 완전히 주고. 받을 생각을 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 것을 가져가는 자에게 다시 달라 하지 말며”(눅 6:30)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한량없는 사랑을 받았습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이 내 안에 흐르게 되면 용서하게 되고, 긍휼히 여기게 되고, 주고 베푸는 사람이 됩니다. 어떤 사람에게 조우라는 충성된 노예가 있었습니다. 주인은 모든 일을 그와 의논하고 그에게 많은 일을 맡기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주인은 조우와 함께 또 다른 노예를 사기 위해 노예 시장에 갔습니다. 많은 노예들이 상품처럼 진열되어 있는데 유달리 늙고 힘없는 한 노예가 끼어 있었습니다. 주인은 힘이 좋고 젊은 노예를 사려는데 조우가 병든 노예를 사자고 주장해서 주인은 조우의 말대로 그 노예를 사 왔습니다. 병든 노예는 집에 와서도 별로 일을 하지 못했지만 조우는 그를 열심히 간호하고 잘 돌보아 주었습니다. 주인은 조우에게 일도 못하는 그 노예를 무엇 때문에 그토록 극진히 돌보느냐고 물었습니다. 조우는 눈물을 흘리며 말하기를 "저 노예는 나의 원수입니다. 내가 어렸을 때에 나를 유괴해서 노예 상인에게 팔아 지금의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 저 사람도 노예가 되어 병들어 있습니다. 내가 그의 얼굴을 보는 순간, 하나님이 내게 말씀하시기를 원수를 사랑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제 저분이 세상 떠날 때까지 사랑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무조건적입니다. 사랑 받을 자격도 가치도 없는 자, 자기를 해친 원수까지라도 용서하고 사랑하게 하는 사랑입니다. 이 사랑이 우리에게도 흘러넘치기를 소망합니다.
4.하나님 은혜로 주님의 마음을 품으면 신임을 받는 사람으로 삽니다.
이삭에게 시비하던 블레셋 사람들도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고 스스로 찾아와 화친 조약을 맞게 됩니다. 그의 사람됨을 알게 된 것입니다. 결국 이삭이 승리한 것입니다.
신약 본문에 맹세하지 말라 하시고 37절에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부터 나느니라.”했습니다. 언제나 자기가 한 말에 책임을 지는 신실한 사람은 그냥 “그래 알았어.” 한 마디로 끝납니다. 늘 자기가 한 말을 지킬 줄 압니다. 한 아이가 ‘들의 콩깍지 깐 콩깍지 인가, 안 깐 콩깍지 인가’하는 어려운 말을 잘 할 수 있어서 아빠에게 자랑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아빠는 “그것보다 더 어려운 말이 있단다” 하시면서 그것은 “예, 아니오 란다” 하셨습니다. 아들은 “예 아니오, 예 아니오, 그게 뭐 그리 어려운가요?”하고 반문을 했습니다. 아버지는 그냥 빙그레 웃고 마셨습니다. 며칠 후 주말이 되었습니다. 토요일 학교가 끝나면서 아이들은 오후에 친구 집에 놀러 가기로 약속했습니다. “야 너 말로만 꼭 온다고 하지 말고 약속을 분명히 해.” 그러자 “내 걱정은 하지 말고 너나 잘 지켜, 내가 안 나오면 사람이 아니다” 하고 장담을 하였습니다.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자 아빠는 “철수야 오늘 외할머니 댁에 다녀오자꾸나” 하십니다. 아들은 신났습니다. 외할머니 댁에 가면 할머니가 귀여워 해 주시고 맛있는 것도 많이 만들어 주시기 때문이었습니다. “예, 아빠”하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오후에 친구 집에 가기로 약속을 한 것입니다. 더구나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사람이 아니라고 까지 했습니다. 아빠에게 이야기를 했더니 빨리 친구에게 달려가 사정 이야기를 하면서 미안하다고 양해를 구하고 오라고 합니다. 지금처럼 전화가 있던 시절이 아니니 이 아이는 먼 길을 달려가면서 아빠 말이 생각났습니다. ‘들의 콩깍지’보다 ‘예, 아니오’가 더 말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렇습니다.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우리는 약속을 지킨다고 장담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큰소리 칠 것도 아니고 섣불리 맹세할 것도 아닙니다. 그저 오늘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고 오늘에 충실하게 임하고, 약속한 일은 꼭 지킬 줄 아는 사람으로 살 때 사람들로부터 신임을 받는 사람이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내 마음을 컵과 같은 좁은 마음이 아니라 호수처럼 넓은 마음을 지니고 사는 비결은 ♡.하나님의 은총을 받고 사는 것이요,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고 복의 근원으로 사는 것이요, ♡.하나님의 사랑이 내 안에 흐르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 은혜로 주님의 마음을 품고 사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이삭처럼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받고, 또한 주님께서 주신 말씀대로 살 수 있는 은혜와 사랑이 충만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은혜 설교 모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스크랩] 우리에게 보혜사가 계시매 요14:25-32, 16:7-13 (0) | 2014.08.26 |
|---|---|
| [스크랩] 말씀을 따라 사는 자의 복 잠13:12-20, 마7:22-27 (0) | 2014.08.26 |
| [스크랩] 풍성한 감사가 주는 유익 잠3:9-10, 고후9:10-15 (0) | 2014.08.26 |
| [스크랩] 구원의 복을 누릴 자 행4:1-12, 계14:1-13 (0) | 2014.08.26 |
| [스크랩] 참으로 좋으신 치유 자 출15:22-26, 막1:29-34 (0) | 2014.08.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