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설교 모음

[스크랩] 구원의 복을 누릴 자 행4:1-12, 계14:1-13

하나님아들 2014. 8. 26. 21:57

구원의 복을 누릴 자 행4:1-12, 계14:1-13

런던에서 어떤 소경 한 사람이 언제나처럼 점자책으로 된 성경을 한 부분씩 읽으면서 구걸을 하고 다녔습니다. 어느 날 그 소경이 사도행전을 읽고 있다가 그만 읽던 곳을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점자책을 아래위로 샅샅이 더듬으면서 읽던 곳을 찾아내려고 애썼습니다. 그런데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기 때문에 그는 그만 세 낱말, '다른 이름이 없느니라."라는 구절만 소리 내어 계속 외우고 있었습니다.

곁에서 그의 낭독을 듣고 있던 사람들이 모두 소경을 비웃었습니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웃지 않는 청년이 한 사람 있었습니다. 이 청년은 그때까지 늘 구원을 찾아 헤매던 사람이고 동시에 세상의 많은 만족을 구하고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소경은 이 낱말을 계속 반복하는 중에 젊은 청년은 그가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이름이 "이 세상 사람들 가운데는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 길로 곧장 집으로 달려가서 그의 침대 겉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 하나님께 그의 속마음을 털어 놓았고 그리스도가 그의 구주라는 것을 알게 되어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구원의 기회는 어느 한 순간 성령의 감화, 감동으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여러분은 전철이나 노방에서 전도하는 사람들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듭니까? “저런다고 복음이 전해지나?” 할 분도 있을 것입니다. 어떤 이는 “요즈음 시대에 저것은 전도가 아니고 방해야 방해” 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한 번 더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들도 그런 생각을 해 보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왜 편하게 있지 않고 그렇게 전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그들 속에 있는 성령이 이렇게라도 복음을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게 하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도저히 믿지 않고 사는 사람들이 불쌍하여 견딜 수 없어서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택한 자들을 불러내시고 구원에 이르게 하시기 때문에 앞으로는 그냥 지나지 마시고 수고한다고 격려 해주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두 본문을 중심으로 “구원의 복을 누릴 자”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고 영접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사도행전 4장의 내용은 3장에 있었던 사건과 연관되어 나오는 내용입니다. 3장에서 베드로와 요한이 제 9시 기도시간에 기도하기 위하여 성전에 올라가는데 성전 미문에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된 사람이 베드로와 요한을 향하여 구걸을 합니다. 그때 베드로와 요한은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걸으라!'고 명하자 순간 그 앉은뱅이가 벌떡 일어나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었습니다.

이 기적 앞에 유대 군중들은 엄청난 충격을 받았습니다. '아! 예수의 이름의 능력이 놀랍구나! 예수가 분명히 하나님의 아들이었구나!' 이런 분위기가 온 예루살렘 성에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많은 사람들이 믿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4절에 “말씀을 들은 사람 중에 믿는 자가 많으니 남자의 수가 약 오천이나 되었더라.”했습니다.

이 모습을 본 당시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위기감을 느끼고 사도를 잡아다가 심문을 합니다. 7절에 '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였느냐?'는 것입니다. 즉 공회의 허락도 없이 이런 종교집회를 열고 하느냐?'는 그들의 질문 앞에 베드로의 대답이 무엇입니까? 10절에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예수를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 베드로의 대답은 분명합니다. 그 대답 속에는 그들의 죄를 지적했습니다. 그리고 앉은뱅이가 걷고 뛸 수 있었던 것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권세 때문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은 영원한 교회의 머릿돌이라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리고 당시 종교지도자들에게 죄를 해결 받고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을 가르쳐 주었는데 그 주제가 바로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하신 '오직 예수의 이름'입니다. '구원을 받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이름!' 그 이름이 예수의 이름입니다. 예수의 이름만이 천국을 향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십니다. 이 보다 더 큰 위력을 가진 이름은 없습니다. 베드로는 본문 12절에서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라고 분명히 증거를 했습니다. 이것이 복음의 핵심입니다. 계시록 본문 6절에 나오는 “영원한 복음”입니다. 세상에 어떤 누구도 다른 사람의 죄를 대속하는 일을 한 자가 없습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가리켜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라고 했습니다. 오직 죄 없으신 예수님의 피만이 속죄의 효능이 있습니다. 요일 1:7절에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케 하실 것이요" 예수님 외에 어떤 누구도 죽음을 이기고 영원히 사는 자로 부활한 사람은 없습니다. 예수님 외에 세상 어느 누구도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라고,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고 말할 수 있는 자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죄로 말미암아 영원히 멸망에 처할 수밖에 없는 우리를 위해 유일한 속죄의 길, 구원의 길을 독생자 예수님을 통해 열어 놓으셨음을 믿고, 오직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여 구원 받은 자로 사시기를 소망합니다.

2.하나님께 속한 자로 어린양 예수님의 인도를 따르는 자들입니다.

계시록 본문 4절에 “이 사람들은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에서 속량함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니”했습니다. 여기 어린 양은 우리 위해 십자가에서 화목제물이 되고, 희생양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자들은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애급을 떠나 가나안을 행해 가면서 늘 불평을 했습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회중을 이 광야로 인도하여 우리와 우리 짐승이 다 여기서 죽게 하느냐? 너희가 어찌하여 우리를 애급에서 나오게 하여 이 나쁜 곳으로 인도하였느냐? 이곳에는 파종할 곳이 없고 무화과도 없고 포도도 없고 석류도 없고 마실 물도 없도다.”(민 20:4-5) 하고 그들을 인도하는 모세에게 대들었습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이 모세를 따라갔던 사람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그들 중에는 사람들을 선동하여 다시 돌이켜 애급으로 돌아가려 하다가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받고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인도를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따라가도 불평하고 원망하며 따라갔더니 한두 달이면 갈 수 있는 거리를 40년이나 헤매고 다녀야 했습니다. 그러나 훗날 바벨론에서 돌아올 때는 비슷한 거리를 불과 몇 달 만에 돌아왔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들은 감사하며 찬양하며 돌아왔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이해가 되건 안 되건 믿고 따라가는 사람을 하나님은 인치시고 하나님께 속한 자가 되게 하십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막 8:34). 그들은 어린양이 기뻐하는바 의무와 고난을 감수하도록 그들 자신을 어린양의 지시에 내어 맡기면서 기꺼이 그의 말씀과 성령과 하나님 아버지의 명령을 즐거움으로 따른 사람들입니다.

소속이 중요합니다. 세상에는 마귀와 세상에 소속되어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고, 하나님과 어린 양 예수님께 소속되어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 서기관들에게 너희 아비는 마귀니라 하셨고, 제자들을 위해 기도하실 때 저들은 다 아버지께 속한 자들이라고 요17장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도 바울도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고 했으며, 베드로도 성도들을 가리켜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2:9)했습니다. 계시록 본문 4절하에 “사람 가운데에서 속량함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에 명백한 구속의 증거가 있습니다. 즉 그들은 “사람 가운데에서 속량함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가 된 사람들입니다.

원래 첫 열매는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네 토지에서 처음 거둔 열매의 가장 좋은 것을 가져다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에 드릴지니라.”(출 23:19) 하셨습니다. 이렇게 ‘처음 익은 열매’는 구약성경에서 일반적으로 ‘성물’을 의미하였으며, 신약성경에서는 주로 하나님께 바쳐지는 ‘첫 수확물’을 뜻하였습니다. 성도들은 하나님께 바쳐진 첫 열매와 같은 구별된 백성들입니다.

본문에 십사만 사천이란 구원받은 사람들의 숫자가 나오는데, 이들이 하나님과 어린양에 속한 구원 받은 자들의 총수를 일컫는 말입니다. 이단들은 엉뚱하게 이 숫자를 자기들의 무리에 들어온 사람의 숫자로 갖다 붙입니다. 그러나 이 숫자는 완전한 숫자의 합성입니다. 구약에 12지파가 있고, 신약에 12 제자가 있습니다. 완전수인 12라는 숫자가 두 번 곱하여져 144에 1000을 곱하면 144,000인데, 구약 시대 구원 받은 사람들과 신약시대 구원 받을 숫자가 완전히 채워지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과 예수님께 속한 하늘 백성다운 모습을 가지고 어린양 예수님의 인도를 따르다가 주님과 함께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복 있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3.미혹된 길로 가지 않고 믿음의 정절을 지키는 자들입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정결한 신앙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핍박에 굴하지 않은 사람이고, 유혹에 넘어가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신앙의 인내심과, 영적 분별력을 갖고 있으며 자기를 지키며 신앙적 결단을 하고 그 결단을 끝까지 실천하는 사람들입니다. 미혹된 길로 가지 않고 끝까지 진리의 믿음을 간직하고 지키는 자들입니다.

우리 주변에 진품 명품이 있는 곳에는 어디나 짝퉁이 있기 마련입니다. 모조품 흔히 이미테이션(imitation)이라고 합니다. 모조품도 여러 가지가 있고 등급이 있습니다. 소위 A급 이미테이션은 전문가가 아니면 구별하기 어려울 만큼 정교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정품이 아닌 줄 알면서도 구매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슈퍼노트라는 것이 있습니다. 슈퍼 노트(Super Note)는 진폐를 찍을 때와 마찬가지로 ‘요판인쇄기’란 기계로 만들어 육안은 물론 웬만한 위폐감식기로도 감별해내기 어려운 초정밀 100달러 위조지폐를 말하는 것입니다. 심지어 지폐 안에 숨겨진 미세한 문자와 보는 각도에 따라 색깔이 달리 보이는 기술까지 구현하고 있으며, 일련번호까지 각각 다를 정도의 초정밀 수준에 이르러 적외선 감별기나 특수 확대경을 사용해야만 감식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정교하게 만들어졌다 해도 역시 짝퉁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위조 화폐는 대부분 100달러짜리이지 10달러나 1달러짜리는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명품에 짝퉁이 있지 싸게 살 수 있는 시장 물건에 모조품이 있을 리 없습니다. 이것은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새 성경을 교묘하게 짜 맞추고 해석하여 미혹하는 구원파나 신천지와 같은 짝퉁 기독교인 이단과 사이비가 판을 치면서 교회를 어지럽히고 있습니다. 다른 종교보다 기독교에 유달리 이단 사이비가 많은 것은 상대적으로 기독교 신앙이야말로 진짜 구원에 이르게 하는 명품임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속한 성도들은 진리와 거짓을 구분하여 미혹의 길을 가지 않는 자들이요, 한 때 미혹되었다가도 깨닫고 돌이키는 자들입니다.

계시록 본문 4절에 이들은 여자와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순결한 자라 했습니다. 구약의 배경을 보면 우상숭배를 여자와 더불어 몸을 더럽히는 영적 간음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떠난 배교 행위입니다. 또한 성도가 하나님 보다 세상을 더 사랑하여 세속 문화에 오염되어 돈을 사랑하고, 쾌락을 사랑하여 세상 풍조를 따라 사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이단의 배후를 보면 온갖 감언이설로 따르는 자들을 미혹하여 물질을 바치게 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치부와 세상 향락을 위해 사용합니다. 그 일을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도는 돈이 없어도 있는 것을 족하게 여길 줄 알고, 또 돈이 아무리 많아도 세상 풍조를 따르지 않고, 바르게 사용할 줄 아는 사람들입니다.

성도와 사이비의 또 다른 구별은 계시록 본문 1절에 어린양과 함께 있는 십사만 사천명의 이마에 어린양의 이름과 아버지의 이름이 쓰여 있다 했고, 9절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9절 이하에 보면 또 다른 천사 곧 셋째가 그 뒤에 따라서 큰 음성을 이르되 만일 누구든지 그 짐승과 그 우상에게 경배하고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으면 그도 하나님의 진노와 포도주를 마시리라고 했고, 거룩한 천사들 앞과 어린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는다 했고, 누구든지 밤낮 쉽을 얻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인내를 가지고 믿음을 지킨 자들은 13절에 보니 그들이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그들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구원을 복을 누릴 자가 누구입니까?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고 영접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속한 자로 어린양 예수님의 인도를 따르는 자들입니다. ♡.미혹된 길로 가지 않고 믿음의 정절을 지키는 자들입니다. 할렐루야!

<2014. 7. 13. 성산교회. http://cafe.daum.net/sungsansarang>

출처 : 양로원 갑천뉴스타트
글쓴이 : 엘리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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