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주의 구원론(I)
(총신대-담당교수: 이 상 원 교수)
연구자 : 김대현 목사
(한국목회성장연구원 원장/한국설교음성연구소 소장)
● SUBJECT : 『구원론 강의』 요약
1. 강의과목 : 개혁주의 구원론(I)
2. 원 저 자 : 이 상 원 교수님
3. 내용정리 : (교수님의 열강하신 내용을 다시 정리해서, 연구차원에서 준비해 보았습니다.)
● 개혁주의(총신대-합동) 구원론과 그 중요성과 구원론의 다양한 개념들을 다시, 정리 해 보았습니다.
Ⅰ.구원론
구원론(Soteriology)은 곧 성령론(Pneumatology)이라 명명되기도 한다.
▶구원론의 정의-예수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성취하신 구속사역을 인간에게 주관적으로
적용함으로서써 실질적인 구속의 효과가 이루어지는 과정을 논술하는 교의신학의 한 분과이다.
구속사역의 적용은 성령에 의하여 이루어지므로 구원론은 곧 성령론(Pneumatology)과 같다.
II. 구원론은 구속사역에 적용
구속의 적용은 Ordo Salutis(구원의 서정) -> 시간적 순서가 있다.
(※시간적 순서=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논리적.사상적 차원에서 이해해야 한다.)
구원의 과정에 주어지는 칭의가 성화보다 앞서가는 것은 사실이다.
구원의 서정에 시간적인 요소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시간적으로 보다는 논리적인 의미로
이해되어야 하는데, 그 이유는 2 가지가 있다.
첫째, 죄인이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때, 그리스도를 전체로서 받으며, 구원의 행복을 받는다.
둘째, 이 행복들은 시간적 순서에 따라 구별되기가 불가능할 때가 있다.
예를들어 칭의가 앞서가는 것은 사실이나, 칭의 받은 죄인도 부분적으로 성화 되었다는
사실이다.
III. 구원의 서정의 성경적 기초
성경이 구원의 적용과 과정을 정확히 지시하지는 않는다.
a. 로마서 8장 30절, “미리 정하심-> 부르심(소명) -> 의롭다 하심(칭의) ->
영화롭게 하심(영화)”
b. 로마서 10:17, 엡 1:13, “믿음(신앙) 은 들음(소명)에서 난다.
c. 갈 2:16, 빌 3:9, “칭의는 믿음에서 난다.”
d. 엡 4:1~2, “부름에는 합당히 행함(성화)가 따른다.”
e. 빌 3:9~11, “칭의에는 부활(영화)이 뒤따른다.”
IV. 개혁주의의 구원의 서정론: 성경적인 틀에서 제시한 구절들이다.
1. 하나님의 부르심(소명) - 롬 8:30
2. 중생 - 요 3:3~5
3. 회심 - 요일 3:9
4. 신앙 - 막 1:15
5. 칭의 - 롬 3:30, 5:1, 갈 2:16
6. 수양 - 갈 3:26~27, 모 1:12
7. 성화 - 롬 8:14
8. 견인 - 빌 1:6
9. 영화 - 롬 8:31~39
V. 타 교단들의 입장
1. 루터파 - 신앙을 지나치게 강조한다.(인간적인 신앙을 너무 강조하고 있다.)
2. 로마 카톨릭 - 구원의 서정론을 가지고 있지 않다.(성례론적 구원을 강조하고 있다.)
▶구원의 3단계; 1) 충족한 은혜 2) 협력은혜 3) 칭의(인간이 쌓은 공로를 말함)
3. 알마니안파 - 하나님이 부르셔도 인간이 받지 못하면 구원으로 이르지 못한다고 한다.
아담 죄책이 인간에게 전달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웨슬레안파(알마니안 보다 건전함) - 아담 죄책에 후손으로 전가되는 것을 인정한다.
모든 그리스도 안에서 칭의되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VI. 구원서정 교리에 대한 일반적 비평
a. 구원의 서정 교리는 구원을 지나치게 조직적으로 그리고 합리적으로 서술할 뿐만 아니 라 구원의
측변과 객관적 측면, 신적 측면과 인간적 측면을 기계적으로 분리.대립시켜 놓았다는 비판이
제시될 수 있다.
물론, 조직신학은 엄격하게 성경에 기초해야 하고, 사변적이고 합리적인 이론에 끌려 다녀서는
안된다. 그러나 이성을 가진 인간을 향하여 진리를 조직적으로 질서 있게 제시하려는 노력을
필요한 것이다. 구원의 서정은 구원 자체를 기계적으로 나누는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고
구속의 사역에 뒤따르는 풍요한 혜택 또는 열매들을 제시하 는데 그 목적이 있는 것이다.
b. 구원의 서정 교리는 신자의 주관적 신앙에 너무 많은 주의를 기울인 나머지 구원의 일을 하나님의
은혜와는 분리된 인간의 활동으로 보았다. -> 구원의 서정 배후에 깔려 있는 동기는 하나님의
주관성을 주장하려는 것이다.
c. 구원의 서정의 근거본문으로 인용되는 성경본문들은 구원의 서정에서 채용한 의미보다 더 넓은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그 의미를 단순하게 축약시켜서는 안되며, 성경은 구원의 서정의
전 과정을 명확하게 제시한 일은 없다. -> 구원의 서정 교리가 본문이 지닌 가능한 다양한 의미들
가운데 일부에 주목한다고 해서 본문이 지니는 다른 의미 들을 버리는 것은 아니며, 성경은
구원의 작용의 순서를 분명히 제시하고 있을 뿐아니라 성경에 근거한 신중한 추론과 해석을
통하여진리의 조직적 서술을 돕는 것은 결코 비 성경적인 것이 아니다!
VII. 성령에 대하여
성령은 구원론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히 10:29, 은혜의 사역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 성령의 일반은혜- 욥 3:34, 시 134편 노래(성경 참여)
- 특별은혜와 긴밀한 관계이다.
(특성): -온 인류 사람은 인간 죄책을 제거하지 못한다.
-인간의 성품을 변화시킬 수가 없다.
-그리스도 창조사역으로부터 흘러 나오는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이 일시에 유지된다.
- 현세에서 작용된다.
- 교회를 풍성하게 하는 요소가 있다.
(열매): - 성경의 작용을 보여주며, 시민적 의를 가능하게 한다.
(한계): - 구원에 이르게 하지 못한다.
- 성령의 조명에도 이르지 못한다.
- 구원에 이르게 하는 실존은 아니다.
* 성령의 특별은혜- 양자가 항거한다. 초자연적이며 영적이다.
< 결 론 >
● 설교 내용은 2 가지이다!
▶첫째, 하나님을 잘 믿자!
▶둘째, 바르게 살자!
(목회자의 삶을 볼 때, 현재 실천하고 있는지를 나를 돌아봐야 한다!)
하나님을 잘 믿고 잘 모시고, 실천된 믿음으로 바르게 살고자 다짐하는 귀한 시간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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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혁주의 구원의 서정 ◆
다음 아래는 <개혁주의(총신대-합동) 구원의 서정론>이다. 각 부분별로 조사 해 보았다.
▶ 1. 하나님의 부르심(소명) - 롬 8:30
2. 중생 - 요 3:3~5
3. 회심 - 요일 3:9
4. 신앙 - 막 1:15
5. 칭의 - 롬 3:30, 5:1, 갈 2:16
6. 수양 - 갈 3:26~27, 모 1:12
7. 성화 - 롬 8:14
8. 견인 - 빌 1:6
9. 영화 - 롬 8:31~39
1. 하나님의 부르심=소 명 (롬 8:30)
소명은, 롬8:30에서 구원 서정의 첫 머리에 소명(부르심)을 두었다. 소명은 외적 소명과 내적 소명으로 구별되며, 내적 소명은 유효적 소명으로 불리워지며 내적 소명은 성령에 의하여 이루어지며,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안에서 택한 자를 영생으로 초대하시는 영원한 부르심이다.(딤전6:12) 내적소명이 없이 외적 소명이 효력을 발생하지 못한다.
일반적으로 부르심이란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그리스도를 통하여 제공된 구원을 받도록 초대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행위라고 정의한다. 이 소명은 내적인 것과 외적인 것이 있다. 외적인 부르심이란 죄의 용서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영접하도록 하는 일방적인 권고로서 죄인들을 향하여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을 제시하는 복음의 선포와 회개하고 예수를 믿으라는 초청과 용서와 구원의 약속이다. 이 외적인 부르심은 택한 자 뿐만 아니라 유기된 자까지 복음을 듣는 모든 이에게 미치는 우주적인 것이다. 반면 내적인 부르심이란 성령의 역사로 외적 부르심을 효과 있게 만드는 것이다. 따라서 이 부르심을 가리켜 유효적 부르심(Effectual Calling)이라고도 부른다. 이 내적 부르심은 항상 성령의 역사에 의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죄인들에게 이르며 구원을 유효 있게 만드는 능력 있는 부르심으로, 거기에는 후회나 변경이나 취소가 없다(요 6:40,44,45).
2. 중 생 (요 3:3~5)
중생은 순간적으로 이루어지는 성령의 비밀한 사역으로, 개인의 전 인격에 영향을 미친다. 중생한 자란 성령세계를 받은 자를 가리키며, 중생과 성령의 세례는 따로 떼에서 생각할 수 없다. 중생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첫째요건이다.(요3:3,5)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에서는 소명 뒤에 바로 칭의를 다룬다. 하지만 칼빈을 위시한 종교개혁자들은 이 사이에 소명과 관련된 구원의 서정을 언급한다. 내적 소명 곧 효과적 부르심은 중생과 믿음을 가져온다. 중생은 회심과 성화를 포함하는 인간 갱신의 전 과정을 묘사한다. 진정한 중생은 죄인된 우리에게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시초가 되며, 성령으로 심령이 새로워지는 재창조를 가리킨다. 즉 중생은 구원의 완성이 아니라 시작이다. 따라서 회개와 성화를 통해 하나님의 형상 회복이 완성을 향해 발전해 나가야 한다. 칼빈은 중생이후에 나타나는 구원의 서정에 관해 중생은 하나님의 직접적이고도 은밀하게 이루시는 사건으로 과거적인데 반해, 회개와 성화는 평생토록 지속되는 현재적 사건으로 보았다. 그러나 알미니안주의는 중생은 하나님과 인간의 협력적 관계를 통해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한편 로마교회는 중생은 칭의와 사죄를 포함하는 것으로 성례(특히 세례)시에 효력이 발생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중생을 일으키는 수단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이며, 중생을 효력있게 하시는 분은 오직 성령이시다.
3. 회 심 (요일 3:9)
회심은 믿음과 회개를 통하여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하나님의 행위이다. 회심은 두 요소가 있는데, 회개와 신앙이다. 회심은 성령 하나님의 활동으로, 회개는 율법을 방편으로 역사하고, 복음을 수단으로 신앙을 일으킨다.(롬10:17)
4. 신 앙 (막 1:15)
신앙은 하나님께서 자기의 아들의 구속으로 말미암아 죄인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신다고 하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 곧 믿는 것이다. 이는 인격적인 신뢰를 가리킨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의미는 영적인 활동과 육적인 활동을 포함한다, 믿음은 자아발생적이 아니요 성령의 활동에 의한 결과이다.
신앙(믿음)은 중생의 결과이다. 믿음이 있어야 중생하는 것이 아니라, 중생한 이는 믿음을 갖게 된다. 여기서 믿음이란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과 사랑을 알고 자신의 죄와 비참을 아는 놀라운 지식이며 그리스도를 알고 영접하는 구원론적 믿음을 가리킨다. 신앙은 그리스도에 대한 단순한 앎이 아니라 그리스도로 인한 구원이 확실하고 효력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그리스도에 대한 확신과 신뢰이다. 신앙의 근거 역시 하나님의 영원하신 선택으로 말미암은 성령의 역사에 의한 것이다. 성령의 조명을 통하여 택한 자의 눈을 열어 주신다. 즉 성령은 선택함을 받은 사람의마음 속에 믿음을 불러일으키실 뿐 아니라 점진적으로 믿음이 성장하도록 도우신다. 신앙은 우리의 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기꺼이 우리를 위해 무상으로 제공하시는 것이다. 이 신앙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도 없거니와 하나님이 계신 것과 그를 찾는 자들에게 상을 베푸신다는 사실조차 깨달을 수 없다(히 11:6). 신앙(믿음)은 성도를 구원에 이르게 하는 가장 중요한 근거이다.
5. 칭 의 (롬 3:30) 칭의는 롬3:30, 5:1, 갈2:16등에서 믿음에 그 칭의가 뒤따른다는 사실을 말씀한다. 칭의는 하나님이 의롭다고 일컫는 죄인에 대한 하나님의 법정적인 선언이다. 칭의로 말미암아 죄인은 그가 마땅히 져야 할 죄책이 제거된다. 칭의로 말미암아 양자되는 권세가 주어진다. 칭의는 성화와 구별되며, 칭의가 선포적인데 반하여 성화는 점진적이며, 죄의 오염을 제거하고 일생을 통하여 이루어진다.
칭의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의를 근거로 하여 죄인을 의롭다고 선언하시는 하나님의 법적 행위이다. 칭의라는 말 속에는 죄의 면제(remission of sins)와 그리스도의 의의 전가(imputation)이라는 개념이 동반되어진다. 피고인은 죄인이 하나님의 법정에서 하나님에 의해서 고소됨을 면하게 된 것은 인간이 실제로 의롭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으로 인해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게 여져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칭의는 회개를 통한 성화를 전제하지 않는다. 신앙으로 의롭게 되는 것은 인간이 성취한 그 어떤 의를 조건으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즉 칭의는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단번에 이루어진 일이다(롬 3:24). 율법의 행위나 인간의 노력로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다(롬 3:28; 갈 2:16). 우리는 이러한 칭의의 의미를 믿음으로서만 알게 된다. 따라서 믿음은 칭의를 효과적으로 알게 하는 도구이며, 칭의는 성령께서 믿음을 통하여 우리를 그리스도에게 효과적으로 연결시키는 띠인 동시에 고리가 된다.
6. 수양 (갈 3:26~27)
법적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가 주어지는 것이다. 수양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후사로 영생복락을 누릴 특권을 부여받는 것이다. 수양된 자는 성령의 권면과 지도를 합하여 성화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수양은 그 용어가 말하듯이 외부의 사람을 하나님 자신의 가족으로 옮기는 행위이다. 의롭다 칭함을 받은 모든 사람들은 이 양자의 은혜에 참여하게 되는데, 이로 인해 상상할 수 없이 놀라운 영적 특권을 누리게 된다. 먼저 죄악의 종된 상태로부터 해방되며,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의 대상이 되며,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게 된다. 그뿐 아니라 성령의 내주함으로서 긍휼히 여김과 보호를 받으며, 필요한 것을 공급받으며, 결코 버림 받지 않는다. 나아가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아 영원한 구원의 상속사로서 자격을 누린다(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2장). 수양됨은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에게 주어진 모든 특전이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것임을 증거한다. 하지만 양자는 칭의와 마찬가지로 법정적 행위이다. 신분과 지위의 수여이지, 우리 내부에서 일어나는 새로운 성향이나 특성이 아니다. 또한 중생하지 않은 자는 결코 하나님의 수양가 될 수 없다. 따라서 중생은 양자됨의 선행 요건이며, 수양됨은 중생의 결과이다.
7. 성 화 (롬 8:14)
성화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중생한 자의 점진적 성취이다.(살전5:23) A.A. Hodge는 성화는 "그리스도 안에 완전한 인성에 키가 자라는 데까지 이르는 것이다"라고 했다. 또한 루이스 벌콥프는 "성화는 성령이 이로써 칭의된 죄인을 죄의 오염에서 구출하시며 그로 하여금 선한 일을 행할 만하게 하시는 은혜로운 성령의 공작이다"라고 말하였다. 성화의 방편은 말씀과 성례와 기도이다. 성령은 성도를 성화케하시고, 성화의 목표는 온전하고 완전한 그리스도의 형상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충족한 거룩을 이루기 까지이다. 그리스도인은 죽을 때 완전히 성화된 몸으로 천국에 이른다.
효과적인 부르심을 받고 중생하여 양자로 택정함을 얻은 자들은 하나님의 거룩함에 동참하게 된다. 칭의와 양자됨이 단번에 일어난 법정적 행위라면 성화는 점진적으로 심령과 삶에서 그리스도를 점점 더 닮아가고 하나님께 헌신되어 가는 과정을 가리킨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의의 중재에 의하여 우리를 자신과 화해시키며, 죄를 거저 사해 주심으로써 우리를 의롭다고 인정하신다. 동시에 하나님의 이 은혜(칭의)는 큰 자비와 연결되는데, 이 자비란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하여 우리 안에 계시며 그 힘으로 우리의 정욕을 날로 더 죽이시는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로 하여금 성결한 삶을 살도록 하시는 것이다. 이러한 성화의 과정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과 그 안에서 역사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실현된다. 성화는 칭의와 여러 점에서 비교된다. 칭의는 우리의 모든 죄를 법적으로 사면한 것이라면 성화는 도덕적으로 죄적 요소를 없게 하는 것이다. 칭의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단번에 완성되었지만, 성화는 성령의 계속적 사역에 의하여 평생 동안 진행된다. 구속의 날까지 하나님의 형상을 온전히 회복하는 것이야말로 성화의 가장 중요한 목적이다.
8. 견 인 (빌 1:6)
신자가 하나님의 은혜상태에서 타락할 수 없고 떨어지지 아니하며 궁극적인 구원을 이루시는 성령의 계속적인 사역이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의 ‘성도의 궁극적 구원’에 해당되는 내용이다. “성도의 견인”은 하나님께서 중생시키며 은혜의 신분으로 효과적으로 부르신 자들이 그 신분에서 완전히 혹은 궁극적으로 타락하지 않고 은혜의 신분으로 끝까지 견디어 내어 영원히 구원받게 될 것이라는 교리이다. 견인 역시 심령 안에서 시작된 하나님의 은혜의 사역이 지속되고 완성에 이르게 하는 성도 안에서의 성령의 지속적인 사역의 열매이다. 견인 교리는 성도의 구원의 근거와 목적이 누구의 손에 의해 주도되는가를 잘 설명해 준다. 펠라기우스주의나 알미니안주의는 오직 성령에 의해 완성되는 견인을 부정하였다. 중생한 사람이라도 구원을 상실할 수 있기에 그들은 구원을 끝까지 유지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절대적인 노력이 요청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성경과 개혁주의 신학은 인간의 행위나 의지와는 상관없는 철저한 성도의 견인을 주장한다. 왜냐하면 견인에 대한 보증이 사람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에 기인한 성령 하나님의 의지와 능력에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9. 영 화 (롬 8:31~39)
영화는 구속의 최종국면이다. 영화는 부르심으로 시작된 과정을 종결시키는 것이다.
a. 육체적 죽음을 맞이할 때, 영혼의 성화가 완성된다.
그리스도인의 영혼은 사별의 순강에 죄의 흔적으로부터 구원되고, 하나님의 직접적인 임재 앞에 들어가 영원한 교제를 즐긴다.
b. 신체의 부활에서 구속이 최종적으로 완성된다. 우리의 신체와 영혼은 그리스도의 신체와 영혼과 유사할 것이다. 성경적 근거는 “우리늬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빌 3:20~21), “그가 나타나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은 줄을 아는 것은” (요일 3:2~3) 등이다.
구원 서정의 최후 단계로 영원한 영광, 무궁한 세계에 임하는 것이 곧 영화이다. 영화는 성화처럼 점진적인 과정을 거치지 아니하고 성령의 순간적인 역사로 영화한다. 성도의 몸의 부활에서 완전한 구속을 이루고 완전한 행복을 경험하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각 개인들이 육신의 장막을 벗을 때 임하며, 부활시에는 동시에 모든 성도가 경험하게 된다.
<맺음 말>
한마디로 개혁주의 구원론을 말한다면, 칼빈주의를 제외한 다른 사상에서는 그 공통성이 인간론을 중심으로 제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직 유일하게 칼빈주의만의 하나님의 절대적인 권위를 세우려고 하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여기에서 칼빈주의적 구원개념만이 가진 그 독특한 면이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또한 칼빈주의적 구원의 서정에 있어서 개혁자들의 공통된 소리는 구원의 서정이 단독적으로 분리되어서 언급되어서는 안되며 전체적으로 함께 언급되고 그 중요성이 인정되어야 그 가치를 상실하지 않게 될 것을 주장하고 있음과 칼빈 자신도 이 부분에 있어서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음을 알게 됐습니다. “우리가 십자가에 동참하는 것이 소명, 칭의, 그리고 마침내는 영화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까닭에 그것들을 결코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칼빈주의적 독특성의 중요성을 바르게 세워야만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허락해 주신 구원의 참다운 가치를 발견하게 될 것이며, 그렇게 될 때에만이 하나님께 대한 인간의 자세가 바르고 겸손하게 자리 잡게 될 것으로 사려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을 자세하게 가르쳐서 모든 성도들로 하여금 하나님만을 온전히 찬양받으시게 하도록 가르쳐야 할 책임이 오늘 우리모두에게 있다는 사실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모두는 구원의 풍요로움과 부요함을 우리는 얼마나 알고 그것을 누리고 있는지, 또한 많은 사람들에게 이 온전한 진리를 잘 증거하고 있는지 우리 자신을 돌아보아야 할 것 입니다. 특히, 이 상 원 교수님이 말씀하신 “설교 2가지 내용”에서 “▶첫째, 하나님을 잘 믿자! ▶둘째, 바르게 살자!” 라는 대목, 이처럼, 살아야 할 것을 다짐해 봤습니다. 심오하고도 지키기 어려운 깊은 말씀이었지만, 많은 생각과 도전받는 귀한 시간들을 보내게 되어 다시한번 감사의 말씀을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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