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성 목사
사람은 죄악된 생활을 청산하고 살아계신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께로 옴으로 구원을 받는다. 이것이 회개와 믿음이다131). 회개와 믿음은 하나님의 정하신 구원의 방법이다. 중생(거듭남)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서 사람의 무의식 세계에서 시작되지만, 그것이 의식 세계로 나타나는 것이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다. 그러나 회개와 믿음은 결코 인간편의 어떤 공로적 행위가 아니다. 회개와 믿음은 하나님께서 주신 새 생명의 당연한 표현일 뿐이다. 죄를 회개하는 것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 이 둘 중에 어느 것이 먼저인가? 어떤 이들은 믿음을 먼저로 보고(칼빈, 핫지 등), 다른 이들은 회개를 먼저로 본다(죤 머리, 박형룡 등). 논리적으로는 죄를 회개하는 것이 먼저일 것이다.
회개는 사람이 죄악된 생활을 청산하고 죄로부터 떠나는 마음의 변화를 가리킨다. 회개의 세 가지 요소들 회개는 지정의(知情意)의 세 가지 요소를 가진다. 첫째로, 회개는 지식적 요소를 가진다. 그것은 죄에 대한 깨달음을 말한다. 사람이 죄를 떠나려면 먼저 죄에 대해 바르게 깨달아야 한다. 죄에 대한 바른 깨달음은 율법과 성령의 역사로 된다. 로마서 3:20,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둘째로, 회개는 감정적 요소를 가진다. 그것은 죄에 대한 슬픔과 미움을 가리킨다. 회개는 상한 마음을 동반한다. 사람이 죄를 미워하고 슬퍼하지 않고서는 죄로부터 돌이킬 수 없다. 시편 51:17,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고린도후서 7:10,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욥기 42:6, “내가 스스로 한하고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하나이다(나캄).”132) 셋째로, 회개는 의지적 요소를 가진다. 그것은 죄로부터 돌이키는 의지적 결단 곧 죄의 청산을 가리킨다. 이것이 회개의 핵심이다. 참된 회개는 마음의 변화에서 나온 행위의 변화이다. 누가복음 15:20, “(탕자가)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히브리어슈브 בוּשׁ는 ‘돌아온다’는 뜻이다. 예레미야 3:12, 14, 22, “배역한 자식들아, 돌아오라.” 시편 51:13, “그러하면 내가 범죄자에게 주의 도를 가르치리니 죄인들이 주께 돌아오리이다.” 마태복음 4:17, “회개하라(메타노에이테).” 누가복음 24:47, “회개와 죄사함이 . . .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 . .” 사도행전 11:18,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사도행전 3:19, “너희가 회개하고(메타노에사테 μετανοήσατε) 돌이켜(에피스트렙사테)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사도행전 15:3, “이방인들이 주께 돌아온 일을 말하여.” 데살로니가전서 1:9, “너희가 어떻게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133) 회개는 단지 죄에 관한(페리) 혹은 죄로 인한(에피) 슬픔의 감정 정도가 아니고 죄로부터(아포 혹은 에크) 돌아서는 의지적 결단과 행위이다. 그러므로 참된 회개는 반드시 회개의 열매를 동반한다. 마태복음 3:8,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맺으라].” 누가복음 19:8, (삭개오의 예)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속여 빼앗았으면 4배나 갚겠나이다.” 회개의 성격 회개는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께서 우리 속에 일으키신 선한 일, 곧 하나님의 재창조의 행위이다. 시편 85:4, “우리 구원의 하나님이여, 우리를 돌이키시고[돌이키소서].” 예레미야 31:18-19, “주는 나의 하나님 여호와시니, 나를 이끌어 돌이키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돌아오겠나이다. 내가 돌이킴을 받은 후에 뉘우쳤고.” 예레미야 애가 5:21, “여호와여, 우리를 주께로 돌이키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주께로 돌아가겠사오니, 우리의 날을 다시 새롭게 하사 옛적 같게 하옵소서.” 사도행전 11:18,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디모데후서 2:25, “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징계할지니 혹 하나님이 저희에게 회개함을 주사 진리를 알게 하실까 하며.” 중생은 사람의 무의식적 세계에서 시작되지만, 회개는 의식 세계에서의 변화이다. 회개에 대한 성경의 용어들은 주로 사람의 행위에 대해 사용되었다. 회개는 사람의 능동적, 의식적 행위이다. 이런 의미에서, 사람은 회개에 있어서 ‘협력자’이며 ‘피동적인 동시에 또한 능동적’이라고 표현되기도 한다(박형룡, 217-218쪽). 중생, 회개, 칭의(稱義)는 모두 단회적이며, 성화는 점진적이다. 성경에서 ‘반복적 회개’를 보이는 듯한 구절들은 구원의 순서 혹은 단계로서의 회개가 아니고, 이미 구원받은 자들이 일시적인 범죄와 방황으로부터 돌아오는 것을 가리킨다. 이러한 회개는 갑작스러울 수도 있고 점진적일 수도 있다. 누가복음 22:32,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요한계시록 2:5, 16,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 . . 그러므로 회개하라.” 요한계시록 3:3, 19, “회개하라. . . .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회개의 중요성 회개는 우리가 전하는 복음의 본질적 내용이다. 기독교 복음은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받는 은혜의 말씀일 뿐만 아니라, 죄로부터 떠나 주께로 돌아오게 하는 회개의 말씀을 포함한다. 마태복음 3:2,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마태복음 4:17, “이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가라사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하시니라.” 마가복음 1:15, “가라사대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누가복음 24:47, “또 그의 이름으로 회개와 죄사함이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사도행전 17:30,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허물치 아니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을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사도행전 20:21,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거한 것이라.” 회개는 또한 구원에 필수적이다. 회개는 죄의 깨달음과 돌이킴뿐이므로 죄책과 죄의 형벌에 대한 보상이 되거나 구원의 공로가 될 수는 없다. 그러나 회개는 죄 용서와 죄로부터의 구원을 위해 필수적 조건이다. 마태복음 18:3, “너희가 돌이켜[회개하여]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누가복음 13:3, 5,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5:3, “비록 회개가, 그리스도 안에서의 하나님의 값없는 은혜의 행위인, 죄를 위한 어떤 만족이나 죄 용서의 어떤 원인으로 의지되어서는 안되지만; 그것은 모든 죄인들에게 매우 필수적이어서, 아무도 그것 없이는 용서를 기대할 수 없다.”
천주교회의 고해성사(告解聖事, penance)는 덕과 성례를 포함한다. 덕(德)은 죄를 인한 근심과, 죄를 버리려는 결심과, 하나님께 만족을 드리려는 의도를 가리킨다. 성례(聖禮)는 통회와 고명과 보속을 가리키는데, 통회(痛悔, contrition)는 범죄에 대해 슬퍼하는 행위요, 고명(告明, confession)은 신부에게 죄를 고백하는 것이다. 16세기 천주교회의 트렌트 회의는 고명이 신자의 구원에 필수적이라고 선언하였다. 보속(補贖, satisfacion)은 죄를 갚기 위해 행하는 고행이나 선행을 말한다. 그러나 천주교회의 고해성사는 성경이 말하는 회개와 다르다. 성경은 성도가 자신의 죄를 목사에게 고백해야 한다고 가르치지 않는다. 특히, 자신의 죄를 갚기 위해 고행이나 선행을 한다는 것은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 완전한 속죄제사에 대한 불신이요 모독이다. 히브리서 10:10, 14, “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 . .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
믿음은 하나님의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것이다. 그것이 구원에 이르는 믿음이다. 잘못된 믿음들 사람들 가운데는 구원에 이르지 못하는 잘못된 믿음을 가진 자들이 있다. 그것은, 첫째로, 성경의 역사적 내용이나 정통적 신조들을 지식적으로만 믿는 것이다.이러한 믿음은 사람을 구원에 이르게 할 수 없다. 야고보서 2:19에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는 말씀은 이런 믿음을 가리킨다. 둘째는 하나님의 진리에 대한 확고한 지식이 없는 일시적 믿음이다. 이 믿음은 하나님의 진리에 대한 어느 정도의 관심과 열정이 있지만 새 생명의 뿌리가 없어 환난과 핍박을 견디지 못하고 실패하는 믿음이다. 이 믿음은 주로 감정에 근거하며, 하나님의 영광보다 자신의 영광을 더 추구한다. 마태복음 13:20-21에 “돌밭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을 인하여 환난이나 핍박이 일어나는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라는 말씀은 이런 믿음을 가리킨다. 셋째는 기적을 경험하거나 기적을 행하는 믿음이다. 이것은 구원을 동반할 수도 있고 동반하지 않을 수도 있다. 마태복음 7:22-23에는 이런 믿음에 대해 말하기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고 하였다. 누가복음 17:11-19에 기록된 대로, 열 명의 나병환자들은 다 병고침의 기적을 경험하였지만, 그들 중 오직 한 명 사마리아인만 예수께 나아와 감사하였다.
참 믿음의 원천 참 믿음은 하나님께서 심어주신 믿음이다. 알미니우스주의는 믿음을 단지 사람의 행위로만 본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믿게 된다고 증거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신다.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의 조성자이시며, 우리의 믿음은 그의 은혜의 선물이다. 성경은 여러 곳에서 이 사실을 분명히 계시한다. 마태복음 11:27,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마태복음 15:13,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심은 것마다 내 천부께서 심으시지 않은 것은 뽑힐 것이니.” 마태복음 16:16-17,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요한복음 6:44,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 고린도전서 12:3,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저주를 받은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고린도후서 4:4, 6, “그들 안에서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어둡게 하여 하나님의 형상인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하느니라,” “이는 어두운데서 빛이 비취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음이니라.” 에베소서 1:19,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에베소서 2:8-9, “이는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을 통해 구원을 얻었으며 이것[구원의 사실]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임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히브리서 12:2, “믿음의 주(originator, 창시자)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perfecter, 완성자)인 예수를 바라보자.” 소요리문답 86문답,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곧 구원 얻는 은혜인데,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구원을 얻기 위하여 복음 중에 우리에게 주신 대로 예수를 영접하고 그에게만 의지하는 것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4:1, “선택된 자들이 그들의 영혼의 구원에 이르도록 믿을 수 있게 되는 믿음의 은혜는 그들의 마음 속에서의 그리스도의 영의 활동이시며, 일반적으로 말씀의 사역에 의해 생겨나고; 또한 그것에 의해 또 성례들의 집행과 기도에 의해, 그것은 자라고 강해진다. 참 믿음의 대상 참 믿음의 대상은 첫째로 예수 그리스도이다. 요한복음 3:16,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사도행전 16:31, “가로되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고.” 참 믿음의 대상은 둘째로 복음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그의 사역에 관한 설명인 복음 진리 간에 어떤 대립이나 충돌이 있을 수 없다. 마가복음 1:15,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마가복음 16:15-16,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로마서 10:17,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참 믿음의 대상은 셋째로 성경 전체이다. 왜냐하면 성경은 하나님의 특별계시의 기록, 곧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이며, 더욱이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기 때문이다. 사도행전 24:14, “나는 저희가 이단이라 하는 도[말씀]를 좇아 조상의 하나님을 섬기고 율법과 및 선지자들의 글에 기록된 것을 다 믿으며.” 요한복음 5:39, “성경책들을 자세히 연구하라. 이는 그것들을 통해 너희가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함이니, 그것들은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니라”(원문 직역). 디모데후서 3:15,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참 믿음의 세 가지 요소들 구원에 이르는 참 믿음은 세 가지 요소를 가진다. 믿음의 첫 번째 요소는 지식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우리의 믿음을 위해 역사적 사실들을 자세히 기록하며 증거하고 있다. 누가복음 1:1-4,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 처음부터 말씀의 목격자 되고 일군된 자들의 전하여 준 그대로 내력을 저술하려고 붓을 든 사람이 많은지라. 그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살핀 나도 데오빌로 각하에게 차례대로 써 보내는 것이 좋은 줄 알았노니, 이는 각하로 그 배운 바의 확실함을 알게 하려 함이로다.” 요한복음 20:31,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칼빈은 말하기를, “믿음이란 우리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자비에 대한 견고하고 확실한 지식인데,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값없이 주시는 약속의 진리에 기초하며 성령에 의해 우리 마음에 계시되며 확인된다”고 하였다(기독교 강요 3. 2. 7). 메이천(J. G. Machen)은, 믿음에 대한 오늘날의 비(非)지성적 관념을 비평하면서, “모든 참된 믿음은 지적 요소를 가진다. . . . 어떤 인격에 대한 믿음을 가지는 것은 그 인격에 대한 지식을 가짐이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강조하였다(신앙이란 무엇인가?, 40쪽). 천주교회는 ‘명시적(明示的)적 믿음’(explicit faith)에 대해 말할 뿐만 아니라, 또한 ‘묵종적 믿음’(implicit faith)에 대해서도 가르쳤다. 묵종적 믿음이란, 신자가 종교의 몇 가지 기초적 진리들에 대해서는 알아야 하지만, 그 외의 것들에 대해서는 지식 없이, 교회가 가르치는 것을 믿으려는 태도만 가지고서 믿는 믿음이다. 그러나 성경은 참 믿음이 확실한 지식을 동반한다는 것을 분명히 가르치기 때문에, 묵종적 믿음이란 잘못된 개념이다. 지식 없는 믿음은 참 믿음이 아니다. 그러면 사람이 구원을 얻으려면 어느 정도의 믿음의 지식이 필요한가? 사람은 구원을 위해 적어도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이시며 그가 우리를 위해 무엇을 그리고 왜 하셨으며, 또 그가 장차 우리를 위해 무엇을 하실 것인지에 대해서 알아야 할 것이다(박형룡, 252쪽). 믿음의 두 번째 요소는 찬동이다. 찬동은 복음 진리에 대해 기쁘게 동의하는 것이다. 성경에서 ‘믿는다’는 말은 어떤 사실에 대해 동의함을 의미한다. 출애굽기 4:8,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그들이 너를 믿지 아니하며 그 처음 이적의 표징을 받지 아니하여도 둘째 이적의 표징은 믿으리라.” 히브리어 헤에민 레는 어떤 증거에 대해 승인함을 가리킨다. 죤 오웬은, “모든 믿음은 증언에 대한 찬동이요, 신적 믿음은 신적 증언에 대한 찬동이다”라고 말하였다. 믿음의 세 번째 요소는 신뢰이다. 신뢰란 믿는 내용을 자기 것으로 확신하고 그 내용을 주신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것이다. 창세기 15:6,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아브람은 하나님의 인격과 그 약속을 믿고 의지하였다. 히브리어 헤에민 베는 사람이 어떤 인물이나 사물을 의지함을 나타낸다. 시편 37:3, “여호와를 의뢰하여 선을 행하라.” 바타크 베도 신뢰의 요소를 강조하는 말이다. 그 외에, 카사는 ‘자신을 숨긴다, 감춘다’는 말로서 역시 신뢰의 요소를 강조한다(시 5:11; 7:1; 11:1; 16:1; 17:7 등). 신약성경에서 피스튜오 에이스는 가장 특징적 구문이다(49회 사용됨). 이 구문은 자신을 버리고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신뢰함을 표현한다. 요한복음 3:16, 18, 36, “저를 믿는 자마다,” “아들을 믿는 자는.” 죤 머리는, “지식은 찬동으로 옮겨가고 찬동은 신뢰로 옮겨간다. . . . 믿음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구주이신 그리스도의 인격을 신뢰함이다. 이것은 우리 자신을 그에게 맡기는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믿음의 의지적 요소와 관련하여, 신약성경은 믿음을 여러 가지로 표현한다. ①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요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 ② 예수님을 우러러 보는 것(요 3:14-15, 구리뱀을 우러러 보듯이 믿음). ③ 예수께로 나아오는 것(요 6:44, 65). ④ 예수 그리스도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는 것(요 6:50-58)(속죄 신앙). 믿음의 의지적 요소는 믿음과 행위의 관계를 잘 드러낸다. 참된 믿음은 순종과 사랑으로 행동하는 믿음이다. 갈라디아서 5:6,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가 효력이 없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 야고보서 2:17, 26,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사람은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받지만, 행위로 그 구원을 확증한다. 성도의 의롭고 선한 행위는 구원을 위한 조건은 아니지만, 구원받은 확실한 증거와 표가 된다. 마태복음 7: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http://cafe.daum.net/cuigen1964/CuZg/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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