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pensational Truth
XXIII
The Tribulation
성경은 이 땅위에 "대환란"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기 전인 화요일에 올리브산 위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이는 그 때에 대환란이 있으리니, 그와 같은 것은 세상이 시작된 이후로 지금까지 없었으며, 또 결코 없을 것이기 때문이라. 만일 그 날들이 단축되지 아니하면 어떤 육체도 구원받지 못하리라. 그러나 택함 받은 사람들(이스라엘)을 위하여 그 날들이 단축될 것이라}(마24:21,22).
이 환란은 A.D 70년에 예루살렘이 멸망 할 때의 유대 민족에게 닥쳤던 끔찍한 고난이 아님은 분명하다. 왜냐하면 예루살렘이 멸망이 대환란이라면, 대환란 이전과 이후에 일어나야 할 많은 일들이 전혀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I. 환란의 "사실성"
대환란은 주님께서만 예언한 것은 아니다. 구약과 신약의 다른 성경 기자들도 이 부분에 관해 많이 예언해 놓았다. 구약의 예레미야30:4-7에서는 "야곱의 고난의 때"라고 하여 여자가 "산고"로 고통당하는 것으로 비유했다. 에스겔20:34-38절에서는 "막대기 아래로 지나가게 할 것이요"라고 하였으며, 하나님께서는 에스겔22:19-22절에서 이스라엘을 그분의 "용광로" 안으로 던지실 것이며, 그들은 "금을 정련 시키는 것"같이 정련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말3:1-3, 꽺13:9). 다니엘도 그의 백성 유대인들의 "고난의 때"라고 말하고 있다(단12:1). 관련 구절들을 통하여 "대환란"은 유대 민족과 관계 있는 어떤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으며, 그들은 다시 하나님의 선민이 되기 위하여 그들에게 알맞은 "정련 과정"을 통과하는 심판이다.
이것은 간접적으로 이방인에게 영향을 줄 것이지만. 교회는 "주의 날인 대환란"이 시작되기 전에 "들림을 받을 것이기 때문에 아무 관련이 없다. 신약에서 이것에 관하여 두 번 언급하였다.
첫 번째는 예수님께서 올리브산 설교에서(마24:9-22) 말씀하셨고, 두 번째는 요한이 계시록6:1-19:21절까지 환란기간 동안에 일어나게 될 "봉인"이 떼어지고 "나팔"이 울리며 "호리병"이 쏟아지는 환상에서 상세하게 묘사해 놓았다.
II. 환란의 "때"
구약의 선지자들은 이 때를 "이 날", "마지막 날들"로, 요엘은 "주의 날"(엘1:15;2:1;3:14)이라고 불렀다. 성경은 "네 가지 날"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1. "인간의 날" 이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 시대의 경륜이다.
2. "그리스도의 날" 이 날은 주 예수님께서 오셔 세상으로부터 그의 교회를 데려가신, "휴거"와 "환란" 사이의 기간을 말한다. 지상 위에서는 "적그리스도의 날"이다.
3. "주의 날" 이 날은 우리 주님의 "복수의 날"이며, "대환란"과 이후의 천년 왕국기간까지를 말한다.
4. "하나님의 날" 이 기간은 "이 땅이 불로 녹아짐"으로 시작하여, 영원까지 확장된다. "성경의 날들"이라는 장을 참조하라.
환란의 때는 교회가 "들림"을 받은 "이후"이며, 적그리스도가 이 땅을 통치하는 기간이다.
선지자 다니엘의 "70주"에 관한 환상(단9:20-27)에서 "예루살렘을 복원하고 건축하라는 명령이 나오는 때부터 메시야 통치자"까지 69주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예언적 연대기에서 한 주는 7년을 가리킨다. 이것들은 역사에서 모두 문자적으로 이미 성취되었다. 69주는 360일 체계로 483년이다. 이것은 B.C. 445년에 있었던 4번째 칙령으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으로 승리의 입성을 하신 A.D. 30년까지이다. 그리고, 약속된 다윗의 아들로써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 "예언적 연대기"란 도표를 참조하시오.
유대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았을 때, 하나님의 시계는 멈추었다. 여기까지가 69주이고 이제 남은 것은 한 주밖에 없다. 이 한 주는 아직 성취되지 않는 미래의 사건이요, 예언이다. 69주와 70주 사이에는 커다란 시간적 간격이 있다. 이 기간 동안 성령께서는 교회를 세우셨다. 때가 되어 이 교회가 들림 받으면 하나님의 시계는 다시 작동하여 70주가 시작될 것이다. 왜냐하면 70주는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인 유대인을 다루셔야 하기 때문이다.
다니엘이 예언한 70주에서 70주는 마지막 주인 동시에 "대환란"이 일어날 시기이다. 이미 일어난 69주는 역사적으로 매 주가 7년이었으므로, 남은 한 주도 7년이란 사실에는 틀림없다. 그렇다면 "환란의 기간" 또한 7년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24:22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택함 받은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이 단축될 것이다." 여기서 택함 받은 자란 교회가 아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이미 들림 받아 올라갔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택함 받은 자"란 계시록 7:1-8에 나오는 144,000명의 "인장으로 표시를 받은 자"들을 말한다.
III. 환란의 성격
환란기간이 7년간 지속된다면, 이 시기는 3년 반씩 두 때로 나누어진다. 아마 뒤에 있을 3년 반은 앞에 있을 3년 반의 시기보다 훨씬 더 심한 환란이 있을 것이다. 이 시기를
" 대 환 란 "
이라고 부른다. 다니엘의 70주에 관한 내용은 정작 다니엘 자신에게는 계시되지 않았다. 다니엘은 자신도 이해하지 못하는 사실을 하나님의 계시를 통해 받았을 뿐이다. 그래서 다니엘은 "마지막 때가 올 때까지 그 책을 봉인하라"는 명을 받게 된다(단12:4.8.9). 다니엘이 알고 있었던 내용은 단지 마지막 날에 살 사람들이 큰 환란을 당한다는 정도였을 것이다. 마지막 날이란 "마지막 때(time of End)"이지 "시간의 끝(end of Time)"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다니엘에 의해 봉인된 책은 이제는 더 이상 봉인된 책이 아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는 요한에게 봉인하지 말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계시록에 나오는 봉인된 일곱 권의 책은 다니엘에게 봉인하라고 했던 바로 그 책이다.
우리가 환란 기간동안 일어날 일이 무엇인지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우리는 부지런히 성경을 읽기만 하면 된다. 그리고 계시록 6:1-19:21절까지 공부해 보라.
계시록 12장에서 용이 하늘에서 쫓겨나 땅으로 내려온다. 이 때가 3년 반이 지난 환란의 중간 시점이다. 계시록 6-11장은 전 3년 반이고 12장에서 19장까지는 후3년 반을 다루고 있다. "계시록"과 "다니엘의 70주"란 도표를 참조하시오.
우리는 지금부터 3년 반씩을 각각 나누어서 공부하기로 하자(단9:27).
1. 전 3년 반
봉인이 열리면서 환란은 시작된다.
첫 번째 봉인 (계6:1,2).
"흰말 한 마리"가 나타나고, 그위에 탄자는 활을 가지고 있다. 그는 본래 면류관이 없었는데 곧 면류관을 받는다. 그리고 나가서 정복하고 정복하기를 계속한다. 말탄자는 그리스도가 아니다. 그리스도는 지금 양으로써 그 책의 봉인을 떼고 계시기 때문이다. 주님은 계시록 19장에서 흰말 탄 자로 등장하실 때까지 등장하지 않는다.
말탄자는 적그리스도이다. 말탄 자는 부활한 로마 제국의 열왕국 연합체를 지배하는 통치자가 될 것이다. 그는 다가올 세계 단일 정부의 우두머리가 되어서 유대인과 한 주간간의 언약을 체결할 것이다(단9:26,27). 이 말씀은 어떤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적그리스도가 70주의 중간부터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등장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두 번재 봉인 (계6:3,4)
"붉은 말"을 탄자가 땅으로부터 평화를 제거할 권세를 얻는다. 이것이 상징하는 의미는 분명하다. 말의 색깔이 붉은 것은 "피"를 상징하는 것이며, 큰 칼은 전쟁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 시기에 대해서 주님은 더욱 분명하게 예언해 놓으셨다. (마24:6,7을 읽으시오). 이 전쟁의 결과로 적그리스도는 유럽연합체의 확고한 통치자로 자리잡게 될 것이다.
세 번째 봉인 (계6:5,6)
"검은 말"이 나오고, 그 위에 탄자가 손에 저울을 가지고 있는데 한 음성이 말하기를 "밀한되가 한 데나리온이요, 보리 석되가 한 데나리온이라" "너는 기름과 포도주는 손상시키지 말라."는 명령을 받는다. 이 말씀의 뜻을 아는 것도 어렵지 않다. 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 모든 사람들은 전쟁에 동원되기 때문에 들판은 아무도 경작하지 못할 것이다. 필연적으로 기근이 따라올 것이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예언하셨던 그대로이다. 마태복음24:7을 보라. 올리브와 포도나무는 경작하지 않아도 열매를 맺는다. 무자비하게 파괴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
네 번째 봉인 (계6:7,8)
"창백한 말"이 나오고, 그위에 탄자는 "사망"이라 불린다. 앞에서 나온 말탄자들은 이름이 등장하지 않는다. 그들이 나타날 때 사람들은 다 알 것이다. 지옥이 지금까지 전쟁과 기근과 사망으로 죽어버린 모든 사람들을 삼켜버리기 위해 그 뒤를 따르고 있다.
다섯 번째 봉인 (계6:9-11)
다섯 번째 봉인이 열릴 때 요한은 제단 아래에서 "순교자들의 혼"을 보았다. 요한이 여기서 본 순교자들의 혼은 이미 지나간 옛날에 교회시대에 죽었던 순교자들의 혼이 아니다. 이들은 환란 기간동안 "하나님의 말씀과 그들이 가진 증거" 때문에 죽은 자들이다. 교회가 들림받고 나면 "왕국 복음"은 다시 증거될 것이다(마24:14). 그리스도께서 이 지상에 "왕국"을 건설하겠다는 선포는 마귀와 그의 추종자들에게 너무나 싫은 말이기 때문에, "왕국 복음"을 전파하는 사람들을 심하게 박해한다(마24:9-13). 요한이 제단 아래서 본 "순교자들의 혼"은 이 기간 동안 박해로 죽은 혼들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죽음에 대한 피의 보복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그의 동료 종과 형제도 그들처럼 죽임을 당하여 수가 찰 때까지" 잠시 쉬라는 명을 받는다. 이 예언은 계시록 20:4에서 성취될 것이다.
여섯 번째 봉인 (계6:12-17)
여섯 번째 봉인이 열릴 때는 이 지구상에 엄청난 물리적인 변화가 발생한다. 요엘2:30,31, 마태복음24:29, 이사야13:9-11을 보라. 이때 일어나는 천재지변은 너무나 끔찍해서 사람들은 어린양의 진노로부터 피하기 위해 산들과 바위에게 자신들 위로 숨겨 달라고 외칠 것이다. 마태복음 24장과 계시록 6:1-7을 잘 비교해 보라.
여섯 번볁 봉인과 일곱 번째 봉인이 열리는 사이에 약간의 시간적 간격이 있다. 이 사이에 이스라엘의 12지파로부터 각 지파별로 12,000명씩, 총 144,000명이 인침을 받을 것이다. 이것은 아합때 바알에게 절하지 않은 700명을 남겨 두었듯이 적그리스도에게 절하지 않은 144,000명이 남아 있음을 말해 준다. 그들은 천사로부터 이마에 하나님의 이름이 기록된 인장을 받는다(계14:1; 22:4). 이 때 요한은 한 "피로 씻긴 큰 무리"(계7:9-17)을 본다. 이것은 우리에게 "마지막때" 구원받는 다른 무리들이 있음을 알려준다. 그들은 대환란에서 나왔기 때문에 교회가 아니며 그들은 교회가 올라간 후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한 이방인일 것이다. 그들은 구원받고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에서 섬길 것이며 다시는 굶주리거나 목마르지도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교회의 성도가 아니기 때문에 땅이 축복받는 천년동안은 참여하지 못할 것이다.
일곱번째 봉인 (계8:1)
일곱번째 봉인이 열리자 잠시동안 "하늘에는 정적"이 있다. 이것은 더욱 큰 재앙이 오는 동안을 예비하는 시기이다. 정적 후에 일곱 천사가 일곱 나팔을 불려고 준비한다.
첫째 나팔 (계8:7)
"첫째 나팔"의 소리는 "피가 냣인 불과 우박"을 땅에다 쏟아 "나무의 삼분의 일"이 타버리고 "모든 푸른 풀"도 타버린다. 이것으로 요엘2:30,31이 성취될 것이다. 이것은 "이집트에서 행해진 7번째 재앙"의 반복이다(출9:22-26).
이것은 결코 비유나 상징이 아닌 "문자적인 재앙"이다. 문자적이지 않을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둘째 나팔"(계8:8,9)을 불자 산이 불에 타는데 아마도 유성이 바다에 떨어져 바다에 생명을 가진 피조물의 삼분의 일과 "배들의 삼분의 일"이 파괴되는 것일 것이다. 추측컨데 상당수의 해군 함대가 모일것이며, 죽은 자들의 "피"는 바다를 변색시킬 것이다.
세째 나팔 (계8:10,11)
"세째 나팔"의 소리는 나자, 쑥이라 불리는 "커다란 타는 별"이 하늘에서 강들의 삼분의 일과 물들의 원천에 떨어져 독이 된다. 이것은 아마도 다른 폭발한 독까스 성분을 함유한 유성이 물의 원천과 강들에 떨어져 오염되어 물을 먹는 모든 사람들은 죽음의 저주를 받게 되는 것일 것이다. 쑥은 "독한 술"을 만드는 원료로, 프랑스에서는 마취제로서, 독약으로서 많이 사용되었다. 선지자 예레미야도 이 때를 예언했다(렘9:13-15).
네째 나팔 (계8:12)
"네째 나팔"의 소리가 난 후, 해와 달과 별의 삼분의 일이 강타 당하여 그것들의 빛이 삼분의 일로 어두워진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예언하신 것 중에 하나이다(눅21:25,26). 한 천사가 하늘 한 가운데로 날며 외치기며 "남은 세가지 화"를 알리고 이어서 세 나팔을 불것이다(계8:13).
다섯째 나팔 (계9:1-12)
"첫째화"
"메뚜기의 고통"
"다섯째 나팔"이 불리자 한 별이 하늘에서 땅에 떨어져 "끝없는 구렁"의 "열쇠"를 받는다.
이것은 실제 별이 아니라 별 같이 보이는 천사이다. 왜냐하면 "그에게" 열쇠가 주어졌기 때문이다. 그는 하나님께서 사탄에게 끝없이 깊은 구렁의 열쇠를 주실리가 없기 때문에 타락한 천사나 사탄이 아니라, 1000년 동안 사탄을 묶어 끝없는 구렁에 던질 계시록20:1-3의 천사일 것이다. 끝없이 깊은 구렁이 열려 연기와 메뚜기들이 온 땅을 덮을 것이다. 그들은 말과 사람과 여자와 사자와 전갈의 합성으로 그들의 날개 소리는 전쟁에 나가는 많은 말들이 끄는 병거 소리 같다.
그들의 크기는 정확하게 주어지지 않았지만 보통 메뚜기보다는 클 것이라는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왜냐하면 보통의 메뚜기는 풀을 먹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메뚜기들은 풀이나 어떤 푸른 것이나 어떤 나무도 해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인장"으로 그들의 이마에 표시를 받지 않은 "사람들"에게 "죽이지" 말고 오직 "고통"만 주도록 허락되었기 때문이다.
"전갈메뚜기" 재앙의 의미는 많은 마귀 군사들이 끝없는 구렁에서부터 해방되어 인간의 몸을 소유하거나 들어가서 고통만 주어 사람들은 죽기를 원하여도 마귀들이 그들을 죽을 수 없도록 방해 할 것이다.
이들 "전갈 메뚜기"는 왕이 있지만 보통 메뚜기는 왕이 없다(잠30:27). 이 왕의 이름은 히브리어로는 "아바돈"이며 헬라어로는 "아폴루온"이며, 이 단어의 뜻은 "파괴자"이다. 이 왕은 사탄이 아니다. 사탄은 자유롭지만 "끝없는 구렁의 왕"은 가두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여섯째 나팔 (계9:13-21)
"두 번째 화"
"말탄자의 재앙"
"세 번째 나팔"을 불 때 금제단 아래에서 유프라테스 강에 결박해 놓은 네 천사를 풀어 주라는 음성을 듣는다. 그들은 묶여져 있었다 사실로써 타락한 천사임을 알 수 있다. 이들은 지옥의 2억의 "기마병" 군대의 지휘자들이다.
이 기마병은 보통사람들이나 보통 말들이 아니다. 이 말은 말의 몸을 가지고 있지만 머리는 사자이고 꼬리는 뱀과 같고 머리가 달렸으며 그들의 입에서는 불과 연기와 유황이 나오고 사람들의 삼분의 일을 죽이고 그들의 꼬리에 달린 머리로 사람들에게 큰 고통을 준다. 말탄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된 흉배를 입고 있다.
이 초자연적인 군대들은 성경에 자세히 나와 있지는 않다(왕하6:13-17). 예수님께서 오실 때 하늘의 천사들이 뒤따를 것이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이들은 사람들을 회개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공격하려는 것이다.
15절에 보면 이 천사들은 연, 월, 일, 시를 위해 예비해 놓은 자들이며 이것으로 네 천사는 지금 유프라테스에 묶여 있으며 언젠가는 정확한 연,월,일,시에 풀려서 사람들을 미혹할 것이다. 이 두 군대, 즉 "전갈 메뚜기"와 "지옥의 기마병"들의 침략은 우리에게 교회가 들림 받고 난 후의 날들이 얼마나 무서운 가에 대한 엄중한 경고를 주고 있다. 사탄과 그의 마귀의 군대들은 더욱 기승을 부리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인류를 파괴시키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라는 사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간 격
여섯째와 일곱째 나팔이 불리는 사이에 여섯째, 일곱째 봉인이 열어지는 사이에 간격이 있었던 것처럼 "간격"이 생긴다. 이 간격동안 힘센 천사가 그의 손에 작은 책을 가지고 내려온다. 이 힘센 천사는 그리스도 자신일 것이다. 왜냐하면 그의 모습은 계시록1:12-15절과 일치하며 그리고 그의 "음성"은 사자와 같다고 한다. 계시록5:5절에 따르면 그리스도는 "유다 지파의 사자"이다.
그리고 계시록11:3절에 보면 그분은 "나의 증인"으로서 "두 증인"에게 말한다. 그의 오른손에는 작은 책이 있고 오른쪽 발은 바다를, 왼쪽 발은 땅을 밟고 더 이상 지체하지 않을 것임을 맹세한다. 환란의 끝무렵에 주님께서 올리브산 위에 다시 서시면, 이 땅은 합법적으로 주님의 실제적인 소유가 되어 아무도 자기 땅이라고 주장할 수 없게 된다.
두 증인
계시록11:1-14절에서 우리는 "두 증인"이라고 기록된 두 사람이 후 삼년 반 동안 예언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들은 누구인지는 쉽게 알 수 있다. 한 사람은 "하늘을 닫고 예언하는 동안 비를 오지 못하게 하는 권세"를 지니고 있다. 이것은 "주의 크고 무서운 날"에 오기로 된 엘리야 외에 없다(말4:5-6). 그리고 그는 42개월, 즉 3년 반 동안 하늘을 닫는 권세를 가질 것이다. 이것은 아합 때 그가 했던 사역과 정확히 일치한다. 또 한 증인은 "물을 피로 변하게 하는 권세가 있어 원하는 때면 언제든지 온갖 재앙으로 땅을 칠 권세를 지니고 있다. 이것으로 그는 모세임을 알 수 있는데, 왜냐하면 성경에서 이러한 권세를 가진 사람은 모세 한 사람 뿐이기 때문이다. 또한 모세가 죽음에서 일어난 이유가 설명되기 때문이다(유9).
모세와 엘리야는 변화산에서 천사처럼 흰옷을 입고 그리스도와 함께 나타났다.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실 때 곁에 있었던 두 사람도 모세와 엘리야였을 것이다(행1:10,11). 그렇다면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이 땅에 먼저 와서 그분의 오심을 전파하는 증인이 누구인가에 대해서는 논쟁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그들이 자신들이 "증거하는" 기간 동안에 그들의 적들을 입에서 나오는 "불"로 멸망시킬 수 있다. 하지만 1260일이 끝나는 날 그들은 죽임일 당하여 삼일 반동안 예루살렘의 도시의 거리에 그들의 시체가 나뒹굴게 될 것이다. 3일반이 지난 후에 다시 살아나서 하늘로 올라간다. 그들을 바라보던 자들은 모두 크게 놀랄 것이다. 그들이 올라간 후 땅에는 큰 지진이 일어면서 둘째 화가 끝난다.
일곱 번째 나팔 (계11:15-19)
"셋째 화"
이 "일곱번째 나팔"은 다음 19장의 끝에 이루어질 내용에 포함된다. 우리는 계시록을 공부하면서 잊지 말 것이 있는데 "일곱 봉인"은 "일곱 나팔"과 "일곱 호리병"을 포함하고, "일곱 나팔"은 "일곱 호리병"을 포함하는데, 그 이유는 모두 끝에 "음성"과 "천둥"과 "지진"이 있기 때문이다(계8:5;11:19;16:18).
2. 주(week)의 중간(계12:17)
"주의 중간"에서 하늘에서는 두 가지 놀랄만한 이적이 나타난다. 이적은 어떤 것의 상징이란 의미이다.
"해로 옷입은 여인"
이 "여인"은 동정녀 마리아나 교회가 아니라, 이스라엘이다. 우리는 요셉의 꿈에서 11개의 별과 달과 해를 볼 수 있다(창37:9). "해로 옷입은 여인"은 달은 발밑에 있으며 그녀의 머리에는 "12개의 별"로 된 면류관을 쓰고 있는데 이것은 유대인을 상징한다. 요셉은 12번째 별이였다. 이스라엘은 여러 번 구약에서 결혼한 여인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교회는 오직 "한 순결한 처녀"이다(고후11:2). 이 "여인"은 아이를 배고 있으며 산고로 울부짖는다. 교회가 이런한 상태에 있었던 적이 있는가? 바울은 이스라엘이 말하기를 "육신으로는 그리스도께서 그들에게 나셨으며"(롬9:4,5), "우리에게 한 아이가 태어났고 우리에게 한 아들이 주어졌으니"(사9:6,7) 라는 예언이 있다. 그러나 이런 일은 이스라엘에게 심한 고통과 심판을 거친 뒤에 일어날 것이다. 이것들이 그녀의 "산고의 때"이다. 그녀의 산고의 결과로써 "사내 아이"를 낳는데 그는 철장으로 나라들을 다스릴 것이다. 시편 2편에 있는 대로 그는 그리스도이다. 그는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들려 올라갈 것이다. 그녀의 아이를 낳은 후에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장소인 "광야로 도망"하여 부양 받는다. 그곳에서 1260일 동안 피한다. 여기서 많은 주석가들이 실수를 하는데 그들은 다섯때와 여섯때 사이에 교회 시대가 있다고 잘못보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의 간격은 다니엘의 69주와 70주 사이로 요한은 지금 그리스도가 들려 올라간 이후 사탄이 던져지기까지의 간격을 보고 있다. 왜냐하면 그는 환란에서 이스라엘을 다룰 뿐이지 결코 교회를 다루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서 이 여인이 마리아가 아니라는 증거는 더욱 많다. 왜냐하면 이 여인이 도망간 곳은 이집트가 아니라 광야이며, 그녀의 아이와 함께 도망간 것이 아니라 혼자 도망갔다. 아이는 이미 하나님과 그의 보좌 앞으로 들려 올라갔기 때문이다. 이 여인은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도망한 것이다.
"용"
두 번째 나타날 이적은 하늘에 "커다란 붉은 용" 한 마리가 나타나는 것이다. 9절에 따르면 이 용은 "옛뱀", "마귀", "사탄"이라고 불리는 존재이다. 그의 색깔은 붉은 색인데 이는 피의 색깔과 같다. 왜냐하면 그는 처음부터 살인자였기 때문이다(요8:44). 그는 자신의 꼬리로 하늘의 별 삼분의 일을 끌어다가 땅에 던진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그가 천사들을 이끌던 위치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구약성경에서 "별"은 주로 "천사"를 나타냈다(욥38:7). 천사들은 그와 함께 땅으로 쫓겨난다. 용이 쫓겨나는 경위는 12:7-12에 잘 나와 있다. 그는 하늘에서 미카엘과 전쟁을 하지만 패하고 땅으로 쫓겨나는 것이다.
지금은 그 용이 하늘에서 쫓겨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분명하다. 그리스도께서 태어나시기 2000년 전 욥의 때에 그는 하나님께 가까이 갔었다(욥1:1-2:8). 그는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났을 때 헤롯의 손으로 그를 죽이려고 애썼다(마2:16-18). 그는 광야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시험했으며, 베드로를 밀까불 듯이 까불었다. 그는 오늘날 "공중 권세 잡은 자"이며(엡2:2), "이 세상의 신"(고후4:4)이다. "용"이 하늘에서 쫓겨날 때 하늘에는 큰 기쁨이 있을 것이다. 왜냐햐면 밤낮 없이 그리스도의 형제(유대인)들을 고소하던 자가 쫓겨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땅에는 큰 재앙이 있을 것이다. 용은 자기 때가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알고 분노하고 있기 때문이다. 용은 사슬에 묶여서 끝없이 깊은 구렁으로 던져지기 전에 땅에 사는 거민들에게 모든 분노를 쏟아 부을 것이다.
용이 땅으로 쫓겨왔다는 것은 땅의 사람들이 그 만큼 더 힘을 얻는다는 뜻이다. 그들은 모두 힘을 합하여 사내 아이를 낳은 여인(이스라엘)을 향해 모든 악의와 저주를 퍼부으며 공격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여인에게 "큰 독수리 날개"를 주셔서 광야로 피하게 하신다. 여인은 거기에서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삼년 반)"를 피해 있다가 다시 이스라엘로 돌아온다. "너희는 내가 이집트인들에게 어떻게 하였으며,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를 실어 내게로 데려왔는지를 보았느니라."(출19:4). "여자"와 "용"이 상징인 것처럼 "독수리 날개", 또한 상징이다. 이스라엘은 광야로 급히 도망가서 거기에서 삼년 반 동안 안전하게 거하다가 용이 묶여 갇히게 되면 다시 돌아올 것이다.
" 피 난 처 "
구약시대의 도피처는 환란 때 이스라엘 자손들이 피할 "광야의 처소"를 예표한다. 살인자가 피의 보복을 피해 안전하게 거할 수 있도록 요단강 양 옆에 각 각 3개씩 도피 성읍이 만들어져 있었다. 재판 후에 이 사람이 고의적으로 살인을 한 것으로 증명되면 그는 다시 피의 보복자의 손에 넘겨지고, 과실로 인한 살인이었다면 대제사장이 죽을 때까지 그곳에 머물러야 했다. 만약 "살인자"가 없다면 "피의 보복자"도 없을 것이고, 그렇다면 도피성읍 또한 필요치 않을 것이다.
우리는 신약 성경에서 그들의 생명을 보호받기 위해서 도망가는 어떤 특수한 사람들을 보게 된다면, 그것은 틀림없이 피의 보복자가 그들을 뒤따르기 때문일 것이라고 믿을 수밖에 없다. 그들은 "살인"한 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도망하는 것이다.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그런 부류의 사람들은 유대민족일 것이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죽게 하였는데, 비록 그들이 직접 못박아 죽이지는 않았더라도 그리스도께 유죄를 선고케하여 로마인의 손에 넘겨 주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은 "그의 피를 우리와 우리의 자손에게 돌리라"(마27:25)하고 외쳤다. 사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고의적으로 죽인 것처럼 보이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기도를 자세히 살펴볼 때 과실이었음이 알 수 있다. "아버지시여, 저들을 용서해 주옵소서. 그들은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하나이다."는 이 말씀을 통해 볼 때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고의적으로 죽이려고 하였던 것이 아니라 종교적인 격분으로 인한 무지로 죽였음이 알 수 있다. 바울도 말하기를 "만일 그들이 알았더라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처형하지는 아니하였으리라."(고전2:8)고 말하였다.
살인죄를 지닌 유일한 민족은 유대 민족이다. 그들은 예수님을 죽인 죄로 인해 그때부터 지금까지 1800년간 도피처를 찾아 다녔지만 여전히 그곳에 도달하지 못했다. 피의 보복자가 지금도 그들의 뒤를 맹렬하게 따라 다니고 있는 것이다. 지금도 여전히 유대민족은 적들에게 민족의 생존권이 달린 위협 속에서 살고 있다. 수세기 동안 유대인들을 일컫는 말은 "유랑하는 유대인"이었다. 이는 모세의 "네 발바닥이 쉼을 얻지 못할 것이요"(신28:64-67)라는 예언이 정확하게 성취되었던 것이다.
유대인들이 살인자라면 피의 보복자는 누구일까? 우리는 피의 보복자는 살해당한 사람의 가장 가까운 친족이어야 함을 알고 있다. 이 말은 곧 살해당한 사람과 보복자는 같은 종족임은 물론이요, 같은 식구이거나 친족일 수밖에 없다는 증거이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는 동정녀 마리아의 아들이었을 뿐 아니라 육신의 형제들과 자매들이 많이 있었다. 마리아와 요셉은 야고보, 요셉, 유다, 시몬이란 네 형제를 두었다. 그리고 딸들도 있었다. 이들 중 둘은 초대교회의 높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야고보는 예루살렘 교회의 대표였고 유다는 유다서를 쓴 사람이다. 예수님의 친족들은 최소한 서기 324년까지는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오늘날 이 세상 어딘가에 주 예수 그리스도의 친척들이 살고 있다는 사실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들이 누구인지는 예수 그리스도까지 거슬러 올라가서 추적한다해도 정확하게 알아내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들이 어디에 있는지 누구인지 아실 것이다. 피의 보복자는 유대인이며, 예수님의 육신적 텻통의 후손일 것이다. 적그리스도가 나타날 때면 이 사실을 감히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용이 육화된 적그리스도는 "피의 보복자"로써 이스라엘을 추적할 것이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마련해 놓으신 도피처로 숨어야 한다. 우리는 이사야 26:20에서 이 말씀을 볼 수 있다.
{내 백성아, 오라, 네 방들에 들어가서 네 문을 닫고 그 "분노가 지나갈 때"까지 "잠깐 동안" 숨으라}.
이 말씀은 피의 보복자인 적그리스도가 유대 민족을 멸망시키려고 부단히 애쓰고 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마태복음 24:15-22에서 말씀하신 바로 그 때에 일어날 것이다.
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이집트로부터 데려 오실 때 그들은 홍해를 건넜으며,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았고 성막을 지었다. 그들이 이집트를 떠난 후 1년이 채 못되어 카데스바네아에 도착했다. 거기서 그들은 카나안 땅을 정탐하였는데, 먼저 겁을 먹고 그 땅에 올라가서 땅을 소유하는 것을 포기했다. 그래서, 그들은 광야에서 40년간을 방황하게 되었다. 하나님은 이들은 40년간 돌보시고 먹이셨다. 앞으로 다가올 환란 시대에서도 적그리스도의 보복을 피해 유대인들이 이 광야로 도망하게 될 때, 하나님은 이들을 동일한 방법으로 보호하시고 먹이실 것이다.
선지자 다니엘은 적그리스도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또한 영광스러운 땅에 들어갈 것이요 많은 나라들이 전복될 것이라. 그러나 이들 곧 에돔과 모압, 그리고 암몬 자손의 우두머리는 그의 손에서 피하리라}(단11:41).
지금 에돔은 이스라엘이 40년간 방황하던 그 광야에 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해 마련해 놓으신 도피처가 있는 곳이요, 오늘날 반석(Petra)이라고 알려져 있는 곳으로써 에돔 땅이다. 에돔은 솔로몬 왕때에 무역의 중심지였다. 서기 105년경 로마는 이곳을 정복해서 아라비아 페트라(Arabia Petra)라고 불렀다. 로마의 힘이 약해지자 페트라는 아랍의 손으로 넘어가서 1812년 버크하드(Burckhardt)에 의해 재발견될 때까지 문명세계에서 완전히 사라져 버린채로 남아 있었다.
페트라는 화산의 분화구처럼 산지들 가운데 자리잡고 있다. 12내지 14피트의 너비의 좁은 협곡으로 길이 나있기 때문에 한 번 들어가면 다시 빠져 나오는 것이 불가능할 만큼 완전히 막혀있는 천혜의 요새이다. 좁은 길 양옆으로는 낮게는 200피트 높게는 1000피트가 넘는 기암 절벽이 2마일이나 뻗어 있다. 이 세상 어떤 도시도 이런 입구를 가진 곳은 없을 것이다. 협곡의 양 벽면에는 신전과 많은 대리석 무늬가 즐비하게 조각되어 있다. 일단 바위로 둘러싸인 그 도시에 들어가 보기만 한다면 우리는 웅장한 건물들과 비석, 신전들의 유물이 파편 조각처럼 많이 남아 있음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 도시를 둘러싸고 있는 절벽들과 수많은 기암괴석들은 매우 아름다우며, 특히 고도 300피트 정도에 있는 벌집 모양의 바위 조각에는 갖가지 색깔로 새겨진 조각들을 본다면 너무나 아름다워서 아무도 그 모습을 묘사할 수 없을 것이다.
일단 "피의 보복자"(적그리스도)가 나타나면 살인자(이스라엘)는 페트라로 알려져 있는 바위로 둘러싸인 이곳이 그들의 도피처가 될 것이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여인(이스라엘)을 쫓던 용이 그의 입으로부터 홍수를 보내어 여인을 삼키려 하지만, 땅이 그 물을 마신다는 기사를 읽을 수 있다. 적그리스도는 유대인들을 쫓기 위해 그의 군사들을 보내겠지만 그들은 사막의 모래바람에 모두 삼켜지고 말 것이다. 이스라엘은 "대제사장이 죽을 때까지"가 아니라 "대제사장이 하늘로부터 돌아오실 때까지" 도피처에서 안전하게 거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왕과 제사장으로써" 하늘의 군대를 보내어 그녀(이스라엘)를 도피성읍으로 부터 데려올 것이다.
3. 마지막 3년 반
"해로 옷입은 여인"이 광야로 도망가고 나면, 분노로 가득찬 용은 적그리스도를 통해 자신의 계획을 수행할 것이다. 용은 "그녀의 남은 자"들을 죽일 것이다. 용은 짐승(적그리스도)에게 자기의 능력과 자리와 큰 권세를 준다(계13:2). 적그리스도는 처음부터 악한자로 존재한다. 그는 처음에 "화평의 언약"을 맺은 후 환란 중간에 그 언약을 파기할 것이다. 사탄이 육화되어 그 짐승 안에 거하기 때문에 그의 통치방법은 매우 잔악해지고 끔찍할 것이다. 계시록 13장에 적그리스도가 다스릴 통치 모습이 잘 묘사되어 있다.
요한은 두 짐승을 보았다고 말한다. 첫 번째 짐승은 바다에서 나왔다. 이 짐승은 용이 육화된 적그리스도를 예표한다. 두 번째 짐승은 땅에서 나오는데 "거짓 선지자"로 불린다.
이 부분에 대해서 더 자세히 알고자 하시는 분은 "적그리스도와 사탄의 삼위일체"란 장을 읽어 보라. 환란의 중반기를 넘어서면 "지옥의 표"나 "짐승의 표"를 오른 손이나 이마에 받지 않고는 물건을 사거나 팔 수도 없다.
이 때 "세 천사"가 보내질 것이다. 첫 번째 천사는 "복음"을 전파하는 천사이다. 천사가 복음을 전하도록 위임받는 것은 여기에서 처음 나온다. 그러나 이 복음은 "하나님의 복음"(행20:24)이 아니며, "왕국 복음"(마24:14)도 아니다. 천사가 전하는 복음은 "영원한 복음"이라고 부르는 "새로운 복음"이다. 이 복음은 구원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심판을 전하는 것이다. 하지만, 불같은 환란의 시험을 겪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임에 틀림없다. 악을 행한 모든 사람들에게 임할 "심판의 때"를 선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 천사는 "바빌론의 멸망"을 전파한다. 이것은 곧 성취될 일을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바빌론은 하나님의 분노가 완전히 쏟아 부어진 후에야 멸망당할 것이다.
세 번째 천사는 짐승과 그의 형상에게 경배한 자들이 받게될 무서운 형벌에 대해 선포한다. 그들이 짐승에게 경배했다면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게 될 것이며, 불과 유황으로 영원무궁토록 고통을 받게 될 것이다.
이 때 하늘에서는 추수할 준비를 할 것이다. 그들은 땅에서 포도송이를 거둘 것이다. 이것은 교회를 수확하는 것이 아니다. 교회는 이미 70주가 시작되기 전에 들림 받았다. 여기서 수확은 이방 민족들을 거둬들이는 것이다. 수확은 진노를 쏟아 붓는 것으로 시작해서 아마겟돈의 전쟁으로 끝날 것이다.
첫 번째 호리병(계16:1,2)
첫째 호리병은 짐승의 표를 받은 자들과 그의 형상에 경배한 자들 위에 "악취가 나는 심한 헌데"가 생기도록 하는 것이다. 이것은 모세가 이집트 땅에서 여섯 번볁 행한 "역병"의 재앙과 비슷하다(출9:8-12). 그때 역사적으로 발생한 문자 그대로의 사건이었다면 미래에도 마찬가지가 아니겠는가? 호리병의 문자적인 해석 방법은 모든 계시록을 문자적으로 푸는 열쇠이다.
두 번째 호리병(16:3)
둘째 호리병을 바다(지중해)에 쏟으니 바닷가 죽은 자의 피같이 되어 모든 살아 있는 혼들이 바다에서 죽더라. 이와 유사한 사건은 계시록 8:8,9절에 있지만 이 사건이 훨씬 더 광범위하다.
세 번째 호리병(계16:4-7)
셋째 호리병이 강들과 물의 원천들에 쏟아 졌을때 물은 "피"로 변했다. 이 사건은 출애굽기에 나오는 첫 번째 이적의 재현이다(출7:19-24). "피"를 제외하고는 어떤 다른 것도 순교자들의 욕구를 충족시켜 줄 수 없는 것이다.
네 번째 호리병(16:10,11)
넷째 호리병은 해에게 떨어지는데, 해가 강한 열기로 사람들을 태운다. 이 재앙만이 유일하게 이집트에서 행해지지 않았던 재앙이다. 이 재앙도 다른 재앙들과 마찬가지로 문자적인 것이다. 선지자 말라키는 이미 여기에 대해서 언급했다(말4:1). 이 재앙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회개하지 않고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한다.
다섯 번째 호리병(계16:10,11)
다섯번째 호리병은 짐승의 자리에 쏟는다. 이로 인해 짐승의 왕국은 흑암에 싸이며 그들이 고통으로 인하여 자기 혀를 깨물고 자신들의 고통과 헌데로 인하여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모독하기 시작한다. 이 재앙도 이집트에서 행해진 아홉번볁 재앙의 재현이다(출10:21-23). 이 역병은 해의 열기로 그들이 감당할 수없을 만큼 고통을 받고 난 뒤에 일어난 재앙이라는 점에 유의하라. 하나님은 태양을 숨겨 버리신 것이다. 이 역병 또한 다른 역병들과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회개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재앙들은 이제 약간씩 중첩되기 시작한다.
여섯 번째 호리병(계16:12)
여섯 번째 호리병이 큰 강 유프라테스에 떨어지니 강물이 말라버려서 동방의 왕들(인도, 중국, 일본)의 길이 예비되었다. 이들은 군대를 이끌고 이 강을 건너서 아마겟돈으로 모여들 것이다. 이것 역시 홍해와 요단 강이 열린 이적의 재현이다. 선지자 이사야는 이렇게 예언했다.
{주께서 이집트 바다(홍해)의 방언을 완전히 멸하실 것이요, 그의 손을 (유프라테스)강 위에 흔드시어 그의 막강한 바람을 일으키시고 그것을 쳐 일곱 갈래로 나뉘게 하시리니, 사람들이 신을 적시지 않고 건너가리라. 남게 될 그의 백성의 남은 자들을 위해 시리아로부터 대로가 있게 하시리니, 이스라엘이 이집트 땅에서 나왔던 그 날에 이스라엘에 있었던 것과 같게 하시리라}(이사야 11:15,16).
물론 이 나라들은 개구리 같은 불결한 세 영의 영향을 받아서이다. 이 영들은 용과 짐승과 거짓 선지자의 입으로부터 나온다(계16:3-6). 그들은 "마귀들의 영"이요, "미혹하는 영들"이다(딤전4:1). 아합 왕을 속여서 그를 죽게 만들었던 바로 그런 "거짓 영"이다(왕상22:20-38).
일곱 번째 호리병(계16:17-21)
일곱 번볁 호리병이 쏟아졌을 때, 하늘의 성전에서 큰 음성이 보좌로부터 나와 말하기를 "다 이루었다"고 했다.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하고 말씀하신 그분이 이제 다시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이 때 땅에는 큰 지진이 일어나서 큰 도성이 세부분으로 갈라졌다. 큰 도성을 이루는 여러 도시들도 다 갈라진다. "큰 바빌론"이 무너질 것이라는 예언은 계시록 18장에 있다. 땅에 큰 지진이 있을 것이라는 예언은 스카랴에 의해 예언되어 있다(꽺14:4,5).
"하늘에서 무게가 무려 100파운드(45kg)나 되는 거대한 우박이 떨어진다." 이 우박 재앙도 이집트에서 행해진 일곱번볁 재앙의 재현이다(출9:13-35). 우박은 하나님의 전쟁에서 쓰이는 도구중의 하나이다. 주님은 여호수아 때에 벧호른에서 이스라엘의 원수들을 무찌를 때 우박을 사용하셨다(수10:11). 율법에 따르면 하나님을 모독하는 자는 돌로 쳐서 죽이도록 되어 있다. 마지막 때에 하나님을 모독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하늘로부터의 돌을 보내셔서 그들을 죽이신다.
계시록에서 호리병의 재앙과 환란이 끝나는 아마겟돈 전쟁 사이에
"신비라 큰 바빌론이라"
불리는 바빌론 도성의 파멸이 나온다.
성경에서 큰 바빌론이 여기서 언급되고 있는 것은 바빌론이 지금까지 없었다가 나타났기 때문이 아니라 옛부터 존재해 왔던 바빌론이 여기서 완전히 파멸하기 때문이다.
아마겟돈 전쟁(계19:11-21)
"환란 기간"은 아마겟돈 전쟁으로 막을 내리게 될 것이다. 사탄의 삼위일체에서 나온 "마귀의 영들"에 의해 온 땅의 왕들이 거룩한 땅을 치기 위해 모이는 것을 볼 수 있다(계17:13). 전쟁터는 팔레스타인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는 "므깃도의 꼴짜기"이며, 구약에서도 큰 전쟁을 많이 치룬 곳이다. 이 전쟁은 적그리스도의 "연합군"과 그리스도의 "천상의 군대"의 대결이다. 이 "시기" 는 "땅의 곡식이 무르익을 때"로써(계14:15), 적그리스도의 "연합군"이 예루살렘 도성을 빼앗을 수 있는 "가장 좋은 순간"이다.
스카랴는 말하기를
{보라, "주의 날"이 오나니(주의 날은 천년의 날이다). . . "내가 모든 민족들을 모아 예루살렘을 대적하여 싸우게 하리라. . . 그 때에 주께서 나가 그 민족들을 대적하여 싸우시리니, 전쟁의 날에 싸우셨을 때처럼 하시리라}"(꽺14:1-3)
이 전쟁에 출전하는 광경은 계시록19:11-21절에서 상세히 묘사하고 있다. 그 분께서 처음 왕으로써 예루살렘에 오셨을 때 그분은 어린 수나귀 새끼를 타고 오셨다(마21:1-11). 하지만 이 때는 "흰 말"을 타고 오신다. 그분의 눈은 "불꽃" 같고 그의 머리 위에는 "많은 왕관들"이 있으며 "피에 젖은" 옷을 입을 입고 오실 것이다. 이 피는 예수님 자신의 피가 아니라 자신을 대적하는 자들의 피이다,
이사야는 이 날에 관하여 예언하기를
{보스라에서 물들인 옷을 입고 에돔에서 오는 이가 누구인가? 그의 의복이 화려하고 그의 능력의 위엄으로 거니는 이가 누구인가? 의로 말하는 나니, 구원하기에 능력이 있도다. 어찌하여 네 의복이 붉으며 네 옷이 포도즙틀을 밟는 자 같은가?. 나는 홀로 포도즙틀을 밟았고 백성 중에 나와 함께한 자가 아무도 없었도다. 나의 분함으로 그들을 밟고 나의 진노함 속에서 그들을 짓밟으리니, 그러면 그들의 피가 내 옷에 튀어서 내가 내 의복을 모두 얼룩지게 할 것이라. 이는 복수의 날이 내 마음 속에 있고, 내 구속의 해가 오기 때문이라. 내가 보았으나 도와주는 자가 아무도 없었으니, 붙들어 주는 자가 없음을 이상히 여겼도다. 그리하여 나 자신의 팔이 내게 구원을 가져왔고 내 분노가 나를 붙들었도다. 내가 나의 분함으로 백성들을 밟을 것이요, 나의 분노로 그들에게 마시게 하리라. 또 내가 그들의 기력을 땅으로 끌어내리겠노라}(사63:1-6).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죄인들의 죄를 대속하신 십자가를 언급한 것이 아님을 다음 구절을 통해 더욱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이는 "복수의 날"이 내 마음 속에 있고, 내 구속의 해가 오기 때문이라}(4).
십자가 위에서 그리스도의 마음은 "복수"로 가득차 있지 않았다. 오히려 "아버지시여, 저들을 용서해 주옵소서, 그들은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하나이다." 라고 중보하셨다. 이사야 선지자가 "복수의 날"이라고 예언한 것은 "주님께서 자신의 택하신 백성 유대인"을 적그리스도로부터 구원하러 오실 때를 말하고 있다. 이 때가 바로 주님께서
"분노와 진노함으로
포도즙틀을 밟으실 때이다."
사도 요한은 "포도즙 틀"에 관한 환상을 이미 계시록14:14-20에서 보았다. 호리병의 재앙이 내리기 전에 이미 예언적인 견지로 19장에서 있을 사건들을 보았던 것이다. 사도 요한은 14장과 20장에서 이 "포도즙틀"을 보았다. 계시록14:18절-20절에서 "예리한 낫"을 가진 천사가 말하기를
{너의 예리한 낫을 대어 "땅의 포도송이"를 거두라. 이는 그 포도들이 '다 익었음'이라."고 하더라. 그러므로 그 천사가 낫을 땅에 대어 땅의 포도송이를 거두어서 하나님의 진노의 큰 포도즙틀에 던져 넣으니라. 그 포도즙틀이 도성 밖에서 짓밟히니 그 틀에서 피(포도즙이 아님)가 흘러나와 말고삐까지 닿고 일천육백 스타디온까지 퍼지더라.}(18-20)
여기서부터 우리는 적그리스도의 "연합군"들이 팔레스타인 전역을 덮고 있음을 볼 수 있으며, 그때에 팔레스타인 전역의 골짜기와 분지안에 대살육이 있을 것이다. 이 전쟁으로 인하여 팔레스타인 남쪽의 보스라는 1600펄롱(3200km)이 기병대들의 피로 가득 찰 것이다.
이 때를 가리켜 이사야는 "산들은 그들의 피로 녹아질 것이라"고 예언했다(사34:1-8).
살육이 너무나 엄청나서 주님께서는 미리 이렇게 말씀하셨다.
{또 내가 보니, 한 천사가 해에 서 있는데 그가 큰 음성으로 외쳐 하늘 한가운데로 날아가는 모든 새들(말동가리, 수리, 독수리등등)에게 말하기를 "와서 위대하신
하나님의 잔치
에 모여 왕들의 살과 장군들의 살과 용사들의 살과 말들과 그 위에 탄 자들(일반 군인들)의 살과 자유인이나 종이나 작은 자나 큰 자나 할 것 없이 모든 자의 살을 먹으라."고 하니라}(계19:17,18).
이 "잔치"는 구약에도 에언되어 있다.
{너 인자야, 주 하나님이 이같이 말하노라. 너는 모든 깃달린 새와 들의 모든 짐승들에게 이르라. 모여 오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베푸는 나의 제물, 즉 이스라엘의 산들 위에서 베푸는 큰 제물 사면에 모여서 너희는 살을 먹고 피를 마실지어다. 너희가 용사의 고기를 먹고 땅의 왕들과 숫양과 어린 양의 피와 바산의 모든 살진 짐승인 숫양과 수송아지의 피를 마실지니라. 너희는 내가 너희를 위하여 베푼 내 제물에서 배가 부를 때까지 기름을 먹고, 취할 때까지 피를 마실지니라. 그리하여 너희는 "나의 식탁"에서 말들과 병거들과 함께 용사들과 모든 병사들로 배부를지니라. 주 하나님이 말하노라}(겔39:1-22).
우리는 에스겔 39장에서 이스라엘이 "그 날에" 팔레스타인 땅을 점령한다는 주님의 말씀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죽은 자들의 뼈들을 묻는데 몇 달이 걸릴 것이며, 하늘의 새들과 들의 짐승들이 죽은 자들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며, 숲에서 나무를 하지 않아도 몇 년간 뗄 수 있는 나무들과 병기들이 충분히 있다는 말씀을 읽을 수 있다.
계시록 19:21에는 "모든 새들이 그들의 살로 배를 채우더라" 라고 말씀한다. "초대받은 새들"은 죽은 시체들로 포식할 것이다.
이 때 비로소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디든지 시체가 있는 곳에는 독수리들이 함께 모이리라."(마24:28)하신 말씀이 성취될 것이다. 독수리는 육식을 하는 대표적인 새이다. 히브리인들은 독수리를 약탈자와 같은 무자비한 새로 인식하고 있다.
최후의 전쟁에 모인 엄청나게 많은 군사들은 하늘의 군대를 이끌고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입에서 나오는 예리한 칼에 의해 일거에 멸망당하고 말 것이다. "흰말을 타신 분"의 입에서 나오는 칼은 "구원"을 낳는 "성령의 칼"이 아니라 "파멸"을 낳는 칼이다. 여기서 "칼"이란 주님께서 적들을 파멸시키는데 사용하실 "초자연적인 전쟁 도구"를 나타낸다. 아마 그것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큰 우박"일 가능성이 크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구약에서 "벧호른의 전투"에서 이스라엘의 적들을 무찌를 때 우박을 사용하셨기 때문이다(수10:1-11).
"아마겟돈의 전쟁"의 결과는 너무나 자명하다. 이미 앞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새들과 독수리들이 배부르게 먹는다는 사실이 결과가 어떠한지 증명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적그리스도의 군대가 완전히 파멸되기 전에 "거짓 선지자"는 산채로 불못에 던져 질 것이다. 이 말씀을 통해 볼 때, 거짓 선지자는 어떤 제도가 아니라 한 사람임을 알 수 있다. 에녹과 엘리야가 죽지 않고 하늘에 올라 갔듯이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는 죽지 않고 "불못"에 던져진다. 이들은 사탄이 1000년 후에 그곳에 다시 던져질 때까지 거기서 살게 된다.
사탄은 적그리스도가 사로잡혀 불못에 던져지기 직전에 육화된 사람의 모습을 그만둘 것이다. 전쟁이 끝나고 나면 사탄은 결박되어 "끝없이 깊은 구렁"에 1000년동안 갇힌다. 이것들이 환란 기간 동안에 있을 사건들의 개요이다.
NOTE - "다니엘의 70주와 환란"에 대해서 더 자세한 내용은 저자가 쓴 "요한 계시록"을 읽어 볼 것을 권한다.
'신약!! 요한 계시록!!'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워런 워스비의 계시록 주석 (0) | 2015.01.05 |
---|---|
[스크랩] 요한 계시록(13장-21장) (0) | 2014.07.17 |
[스크랩] 요한 계시록 - 라킨의 일곱 교회 (0) | 2014.07.17 |
[스크랩] 요한 계시록 (1장-12장) (0) | 2014.07.17 |
[스크랩] 계시록 6-12 장 (0) | 2014.07.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