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도신경 (使徒信經 , Symbolum Apostolicum)
사도신경은 그리스도교도가 믿어야 할 기본적인 교의(敎義)를 간결하게 요약한 성도들의 표준 신앙고백입니다.
사도신조(使徒信條)라고도 하는데, 이 명칭은 예수의 12제자(사도)가 각기 1구절씩 만들었다는 전승에서 유래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AD 4세기의 루피너스(Rufinus)가 "사도신조 주석"을 쓰면서 사도신조를 열 두 사도가 한 줄씩
썼다고 주장한데서 기인한 것으로 완전히 신뢰할 수는 없습니다.
복음서에 기록된 신앙고백(마16:16; 28:19)을 기초로 한 단편적인 신조가 2세기 부터 존재한 것은
사실입니다.
지금의 사도 신경의 모체가 된 것은 서기400년경의 라틴어로된 [로마 교회 구 신조](the Old Roman Creed)이고,
그 이후 300여년 동안 서방의 여러 교회들이 사용하면서 자신들의 신조에 맞게 내용을 수정하였습니다.
현재의 사도신경과 유사한 후기 사도신경은 AD 6세기나 7세기에 가서야 나타나는데, 초기의 사도신경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몇 구절이 추가되었습니다.
즉, "지옥에 내려가셨다가"(He descended into hades)라는 구절이 추가되었고, 교회라는 단어 앞에 "우주적 혹은
카톨릭"(catholic)이라는 단어가 추가되었으며, "성도들의 교통(the communion of saints)을 믿사오며"라는 구절,
그리고 "영원한 생명(the life everlasting)을 믿사옵나이다."라는 구절이 추가되었습니다.
이러한 추가 구절들은 프랑스 지방이나 북아프리카 지방의 역본들로부터 수집되어 추가된 것들이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도신경은 8세기에 현재와 같은 언어로 확정되었고, 12세기에 카톨릭 교회에 의해서 공적으로
인준되었습니다.
루터와 칼뱅은 사도신경을 미사 전례에서 떼어내어 《교리문답서》에 넣었습니다.
그리스도교에서는 전통적으로 이것을 존중하게 되었는데, 현재 사용되고 있는 내용은 2세기 후반 성립된 '로마신조'를
바탕으로 하여, 5~6세기경에 갈리아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 무렵, 이단적(異端的)인 주장들이 많이 대두하여, 이 신조를 기준으로 이단·정통 여부를 가렸으므로 상징(symbolum)
이라는 호칭이 붙게 되었습니다.
그 내용은 삼위(三位) 즉 하나님·그리스도·성령에 대한 구체적 신앙고백으로 되어 있는데, 그리스도의 신성(神性)·수난·
부활·심판 등을 중심으로 하는 신앙고백입니다.
사도신경은 제자들이 고백한 신앙을 기초로하여 초대 교회에서 신앙의 기본적 내용을 정한 고백문으로서, 민족이나
교파나 교단의 구별 없이 모든 기독교인들이 공통으로 고백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표준적인 신앙고백문입니다.
* 목차
1. 사도신경의 의의
2. 사도신경의 역사
3. 사도신경의 내용
4. 사도신경의 원문
5. 결론
1. 사도신경의 의의
사도신경을 다함께 암송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1. 기독교의 복음의 본질적인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사도신경은 성경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성경 6000년 역사를 모두 합쳐서 가장 중요한 진리를 말하라고 한다면 그것은 바로 사도신경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사도신경은 기독교의 기본 진리를 간단하고도 명확하게 나타낸 신앙의 요약문입니다.
2. 교회는 사도신경의 신앙 고백 위에 세워졌기 때문입니다.
올바른 신앙 고백이 없다면 그 교회도 올바른 교회가 될 수 없습니다.
지상의 모든 교회는 이 사도신경의 신앙 고백 위에 세워졌습니다.
그러므로 사도신경은 교회를 교묘하게 파괴시키려는 이단의 침투에도 성도들을 지켜줍니다.
사도신경은 기독교의 표준적인 신앙이기 때문입니다.
3. 사도신경은 공적인 신앙 고백이기 때문입니다.
사도신경은 어떤 사람의 개인적인 신앙 고백문이 아닙니다.
그것은 결코 개인의 종교적 신념이나 자기 중심적 신앙 표현이나 주장이 아닙니다.
사도신경은 신앙 공동체인 교회의 공식적이고 성경적인 신앙 고백입니다.
2. 사도신경의 역사
사도신경은 언제부터 암송하게 되었나요?
최초의 신앙 고백은 마태복음 제16장 16절에 나오는데, 베드로가 예수님을 향하여 "주는 그리스도시여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라고 고백하는 장면이었습니다.
예수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 그 제자들은 교회를 세우고 전도를 하며 신앙 생활의 본을 보이면서 복음을 전파해 갔습니다.
그러다가 기독교인들에 대한 박해를 피해 예루살렘 교회가 세계를 향하여 흩어져 나가기 시작할 때, 신앙으로 하나가
되고 신앙적 전통을 지켜 나가기 위해 조항을 만든 것이 그 시작입니다.
신앙 고백을 위해 만든 조항들은 이단들로부터 순수한 신앙을 방어할 필요가 있을 때마다 내용이 첨가되기도 하면서
그 모양을 다듬어 나가다가, 서기 404년에 루피누스가 주석을 펴내면서 오늘날과 같은 형태의 신앙 고백문이
채택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신경은 무려 400여년이라는 세월 동안의 기독교의 역사가 압축된 신앙 고백의 결정판입니다.
3. 사도신경의 내용
사도신경의 내용은 어떤 것인지 간략하게 살펴봅니다.
1.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이 말은 사람과는 다른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며, 그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로 고백하는 것이며,
온 천지와 모든 생물과 사람을 창조하신 창조주로서 하나님을 시인하는 것으로서, 이 모든 내용을 그대로 믿는다는
신앙 고백입니다.
2.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하나님의 아들이심과, 구세주요 메시야임을 굳게 믿는다는 고백입니다.
또한 하나님으로서 사람인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성령으로 잉태되어 탄생하신 것을 믿으며, 본디오 빌라도라는 총독에
의해 가장 극악한 죄수들을 사형시킬 때만 쓰는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것을 믿는 신앙을 고백하는 내용입니다.
3. 사흘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자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 자와 죽으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이는 예수님의 죽으신 후에 일어난 일들과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대한 내용입니다.
예수께서 죽으셔서 무덤속에 계시다가 사흘만에 부활하셨음과, 하늘나라로 승천하셔서 하나님과 함께 계시다가 때가
되면 이 땅에 다시 오시는데, 그 때는 육신으로 초라하게 오실 때와 달리 온 인류를 심판하는 심판주로 오신다는 사실을
믿는 고백입니다.
4. 성령을 믿사오며
이는 성령님을 성부 하나님이나 성자 예수님과 동일한 존재이시라는 사실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하심과 감동하심으로 우리가 신앙을 가질 수 있는 것이며, 성령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주시는 여러 은혜와
영적인 은사를 받을 수 있음을 인정하는 내용입니다.
5.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거룩한 공회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이는 교회를 믿는다는 뜻이며, 성도가 영적으로나 육적으로나 모이기를
힘쓰고 믿음을 끝까지 지키는 힘이 성도의 교통에서 나온다는 것을 믿는 내용입니다.
또한 기독교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인 죄를 사면해 주심을 믿는다는 것인데,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피흘리시고 죽으신 것을 믿을 때 우리의 죄는 흔적조차도 남지 않고 사라지게 된다는 고백입니다.
6.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니다. 아멘.
이는 우리의 죽음 이후의 영혼의 영원함을 믿는 것으로서, 우리들도 언제가는 죽게 될 것이고, 또 예수님이 신령체로
부활하신 것처럼 언젠가는 우리도 그렇게 부활하여 주님과 함께 영원한 나라에서 왕이나 제사장처럼 영원토록
살아간다는 사실을 믿는 고백입니다.
4. 사도신경의 원문
개신교회에서 사용되는 한글로 번역된 사도신경은 영문으로된 사도신경 원문과 몇 군데에서 차이가 납니다.
|
사도신경원문 |
카톨릭의 사도신경 |
한국 개신교회 사도신경 |
1 |
I believe in God the Father |
전능하사 천주 성부, 천지의 |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
2 |
and in Jesus Christ, His |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
3 |
who was conceived by the |
성령으로 인하여 동정 |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
4 |
suffered under Pontius |
'본시오 빌라도'통치아래서 |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
5 |
He descended into hell, |
저승에 가시어 사흗날에 죽은 |
장사한지 사흘 만에 죽은 자 |
6 |
He ascended into heaven, |
하늘에 올라 전능하신 천주 성부 오른편에 앉으시며, |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
7 |
from thence He shall come to |
그리로 부터 산 이와 죽은 이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믿나이다. |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
8 |
I believe in the Holy Ghost; |
성령을 믿으며, |
성령을 믿사오며, |
9 |
The Holy catholic Church; |
거룩하고 보편된 교회와 모든 성인의 통공을 믿으며, |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
The Communion of Saints; |
|||
10 |
The forgiveness of sins; |
죄의 용서와 |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
11 |
The resurrection of the body; |
육신의 부활을 믿으며 |
몸이 다시 사는 것과, |
12 |
And the life everlasting. |
영원한 삶을 믿나이다. |
영원히 사는 것을 |
* 사도신경의 문제 구절에 대해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a) 지옥에 내려가셨다가
영문에는 "지옥에 내려가셨다가"(He descended into hell)라는 구절이 있으나, 한글번역에서는 생략되었습니다.
오늘날 영어로 된 사도 신경에는 거의 모두가 "지옥에 내려가셨다가"를 그대로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 표현대로라면 예수님은 무덤에 장사되어 계셨던 삼일 동안 지옥에 다녀오셨다는 뜻이 됩니다.
이러한 혼란 때문에 미국의 감독 교회는 1789년에 제정한 기도에서 "지옥에 내려가셨다"는 표현을 아예 삭제하거나
다른 표현을 쓰게 했다가 1892년에는 이를 철회하는 등 갈팡질팡 하고 있습니다.
이는 성경을 잘 모르기 때문에 오는 혼돈입니다.
사도신경에 삽입될 만한 구절이라면 성경에 조예가 깊은 신학자가 만들었을 것입니다.
마태 12/40 요나가 밤낮 사흘을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것 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을 땅속에 있으리라
계시록 1/18 곧 산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찌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베드로전서 3/19 저가 또한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시니라
사도행전 2/31 그가 미리 앞을 내다 봄으로 그리스도의 부활에 관하여 말한 것은, 주의 혼이 지옥에 버려지지
아니하였으며, 또 주의 육신도 썩어짐을 보지 아니하였다는 것이라.
요나는 고래 배속에 들어가 살지 못하고 땅 속 지옥에 내려 갔고, 거기서 회개해 다시 나왔습니다.
예수님은 유대인에게 요나와 같이 사흘동안 땅 속 지옥에 내려갔다가 부활하는 표적을 보여주겠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계시록에서 자신이 죽었다가 살아난 자로 3일동안 흑암과 싸워 이겨 뺏은 사망과 지옥의 열쇠를 가지고
계시다고 말씀하셨씁니다.
사도 베드로 또한 예수님이 무덤기간 동안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 복음을 전파했다고 했습니다.
이는 구약시대에 구원 받은 지하 낙원에 있는 영과 예수님을 믿을 기회가 없었던 지옥에 있던 영들에게 였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후 지옥에 갔다오신 것은 성경적으로 모순이 되지 않는 일이나, 이는 구원에
필연적인 복음이 아니기 때문에 생략해도 큰 지장은 없다고 사료됩니다.
요한1서 4/1 하나님의 영은 이것으로 알찌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요한2서 1/7 미혹하는 자가 많이 세상에 나왔나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임하심을 부인하는 자라
이것이 미혹하는 자요 적그리스도니
딤전 2/5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히브리서 4/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 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예수님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말씀이 육체가 되어서 우리 가운데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신성과 인성 모두를 갖고 있는데 우리와 똑 같은 인간이었다는 것을 부인하면 이단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중보자 역할을 할 수 있는 것도 예수님이 사람이셨기 때문입니다.
그는 우리와 똑 같이 죄를 지을 수 있는 인간이었으나 죄를 짓지 아니하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심으로써
인류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사도행전 2/24 하나님께서 사망의 고통을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게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
빌립보서 2/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고전 15/54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이 이김의 삼킨바 되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응하리라
이사야 25/8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 주 여호와께서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 그 백성의 수치를 온
천하에서 제하시리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고전 15/55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예수님은 십자가 사건으로 육신의 죽음 뿐만 아니라 영혼이 지옥에 가는 영혼의 죽음까지 동일하게 체휼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의 뜻을 버리고 하나님께 죽기까지 복종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이 사망에 버려두지 않고
살리신 것입니다.
그래서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하고,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할 때 사망이 이김의 삼킨 바 됩니다.
그래서 구원의 마지막 승리는 사망을 이기는 것이며, 불순종으로 사망이 왔지만 순종으로 사망을 굴복시킬 때 영생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b) 거룩한 공회(공교회)를 믿사오며
영문에는"거룩한 카톨릭 교회" 혹은 "거룩한 우주적/보편적 교회"로 되어 있으나, 한글번역에는 "거룩하고 보편된 교회"나
"거룩한 공회"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공회(公會)는 "공적인 일을 위한 모임"(assembly)이나 종교 회의의 의미이지, 엄밀한 의미에서 교회"church" 의 의미는
아니기 때문에 이는 해석에 조금 문제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한영 찬송가]에 함께 쓰여진 영문 사도신경에는 "the holy catholic church"라고 써서 그것이 8세기의 개정
신조임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5세기의 [로마 교회 구 신조]에는 일반적인 표현으로 "거룩한 교회(the Holy Church)를 믿사오며"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8세기 개정 신조에는 거기에 "카톨릭을 첨가하여 거룩한 카톨릭 교회를 믿사오며"로 표현했습니다.
"카톨릭"(catholic) 의 뜻은 본래 "보편적" 혹은 "세계적"(universal) 이란 뜻이어서 일반적으로 쓸 경우에는 구태여 로마
카톨릭(Catholic) 교회를 가리키지 않습니다.
그러나 중세 카톨릭 교회의 권위를 높히기 위해 인위적으로 삽입한 흔적이 보입니다.
따라서 "거룩한 공회"를 예수님의 지체되는 "거룩한 교회"로 고치거나 "거룩한 공회"로 발음하면서 '거룩한 교회'를
생각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입니다.
c) 성도가 서로 교통(성인의 통공)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은 성도들이 서로 영적으로 함께 교제하는 것입니다.
성경적인 의미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받아들인 모든 교인들을 성도(聖徒.saints)라고 합니다. (고전1:2)
그러나 카톨릭에서는 죽은 카톨릭의 신앙적 영웅을 성인(saint)으로 봉해 일반적인 의미의 성도(saint)를 신성시
하였습니다.
그래서 로마카톨릭 교회에서는 성도들의 "교제"를 이 세상에 살아 있는 성도들뿐만 아니라, 죽은 성도들에게까지
확대하여 성인숭배와 죽은 사람에게 기도하는 교리적 근거로 오용하고 있습니다.
로마 카톨릭의 성인은 죽은 지 오랜 세월이 경과한 후에야 특별 심의를 거처 서품(敍品)되는 비성서적인 개념이고,
죽은 자와 교통하는 일은 사단의 속임수로 (삼상28:8-19), 성경에는 엄격히 금지되어 있습니다.(사8:20; 신18:11.12)
사도행전 3/42 그들이 사도들이 가르친 교리와 교제, 빵을 떼는 것과 기도하는데 전념하더라.
(And they continued stedfastly in the apostles' doctrine and fellowship, and in breaking of bread, and in
prayers.) KJV
교제는 영어로는 fellwship으로 서로 정감 있게 친분을 맺는 것을 말합니다.
따라서 기독교에서는 본래의 문자적인 의미대로 거듭난 성도들이 서로 믿음과 사랑으로 교제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되겠습니다.
물론 "성도가 서로 교제하는 것과"로 바꾸어서 암송하셔도 무방합니다.
d) 본디오 빌라도
유대 총독인 빌라도는 역사 속에서 예수님을 죽음에 내어준 인물이지만 그는 오히려 할 수만 있으면 예수님을 놓아주려고
애를 쓴 흔적을 여러 곳의 성경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참고 : 마27:24 ; 눅23:4, 14-22]
예수님을 십자가에 처형시켰던 사람들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인 유대인들이었습니다.
대제사장, 율법학자, 바리새인들은 틈만 나면 기회를 노려 예수님을 없애고자 노력하였고 결국 빌라도를 윽박질러
그들의 목적을 달성하였던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여전히 주님의 교회를 핍박하는 유대 종교 지도자들을 향하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곧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그 종 예수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너희가 저를 넘겨주고 빌라도가 놓아주기로 결안한 것을
너희가 그 앞에서 부인하였으니"(행3:13)라고 책망했습니다.
요한 19/11 예수께서 대답하시기를 “위에서 네게 주신 것이 아니라면 너는 나를 대적할 아무런 권세도 갖지 못하였을
것이니라. 그러므로 나를 너에게 넘겨준 자는 더 큰 죄를 진 것이라.”고 하니
예수님이 무죄함으로 놓아주려는 빌라도 총독에게 예수님은 하나님이 자신을 해할 권세를 세상에 주셨기 때문에
빌라도가 예수님을 대적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빌라도보다 빌라도에게 예수님을 넘겨준 유대인들이 더 큰 죄를 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사야 53/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예수님은 또한 우리들의 죄, 좀더 구체적으로는 나를 용서하시기 위하여 고난을 받으신 것이므로 올바른 신앙 고백이
되려면 "나의 죄로 인하여 고난을 받으시고"라고 고백하는 것도 바람직해 보입니다.
e) 저리로서
참고로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에서 오늘날 '저리로서'라는 표현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저리로서'라는 말은 "그곳"이라는 옛 말에다가 조사 "-으로부터"에 해당되는 옛 표현입니다.
이 말은 예수님이 하늘에 오르신 그 곳으로부터 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저리로서"를 "그 곳으로부터" 또는 "하늘로부터"로 바꾸어 암송하거나 이해하면 됩니다.
5. 결론
사도신경은 기독교의 기본교리를 잘 표현한 훌륭한 신앙고백서이나 부분적으로 오류가 있고, 카톨릭의 사상이
가미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도신경을 이단 판별의 기준으로 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사도신경을 무시하는 것보다 바르게 이해하거나 바르게 고쳐서 암송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입니다.
신앙이 흔들릴 때 사도신경을 외우면 힘이 나고, 바른 생각이 정립됩니다.
교인들에게 마지막 혼란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른 교리를 확립하는 것입니다.
원래 사도신경과 최근 기독교에서 수정된 안과 제가 성경적 내용에 부합하게 수정한 안을 소개합니다.
밑줄 친 부분은 수정된 사도신경에서 변경된 부분이며, 참고적으로 사용하시면 좋겠습니다.
사도신경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장사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원래 기도문)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 부터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 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최근 기독교 수정안)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우리 죄를 대신해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 부터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주님의 몸된 교회와
성도가 서로 교제하는 것과
죄를 용서 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기독교 수정안에 대한 제 수정안)
한국어 사전에서 기도의 정의를 찾아보면 가지 각색이다. 그러나 기독교 개신교의 기도는 하나님에게 하는 말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 고유의 무당 종교의 기도는 천지신명에게 복을 비는 것이다. 이런 역사적, 문화적 배경 때문에 한국 기독교의 기도가 간구나 기복에 치중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유명한 기도의 내용을 보면 간구 못지 않게 자복(회개)과 칭송이 필수적으로 들어 있음을 본다.
또 기도의 형식으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하나님을 찾는 말이다. 기도 시작하는 첫 마디로 꼭 필요한 '찾는말'로는 "오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 "영원하신 하나님" "오 아버지" "오 주님" "주 예수여" "우리 아버지" 등이 있다.
우리가 육신 생활을 하면서 자기 아버지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우선 "아버지"하고 불러야 되는 것과 같은 원리다.
내가 하는 말을 들어줄 사람을 찾지 않고 말한다는 것은 실례일 뿐 아니라 있을 수도 없다.
공중 예배에 잘쓰이는 영어판 기도문들을 보면 모두 O God, Almighty God, O father, O Lord 와 같은 '찾는말'(호출어)로 시작된다.
또 기도의 다른 하나의 징표는 "예수 이름 의지하여"나 이와 비슷한, 이를테면 "조건어"가 맨끝에 붙는 것이다. 주님 가르친 기도에도 이 말을 우리가 알아서 붙였으면 더 좋았을 것이지만 너무나 당연하기 때문에 성경 본문대로 그냥 기도를 끝맺고 있다.
사람이 하나님과 통하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야 된다는 뜻이다. 위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인이 하는 말(개인적으로나 단체적으로)이 기도냐 아니냐를 알기 위해서 그 말이나 글의 맨 앞과 뒤를 확인하고 그 내용으로 죄의 고백, 칭송, 회개, 간구가 들어 있는가 보면 된다는 것을 알았다.
또 기도를 확인하는 방법중의 하나는 말(기도)들을 상대, 즉 예배의 대상을 2 인칭으로 부르고 있는가 살피는 것이다. 영어로는 you, thou, thy, thee 등이고, 한국어로는 "너" "당신" "그대" 등이 여기에 해당되나 잘 쓰이지 않기 때문에 영문이나 그 밖의 서양 말로 된 문서를 상고 할 필요가 있다.
"사도신경은 기도가 아니다!!"
한국 교회에서 흔히 기도로 인식되고 있는 사도 신경은 위의 열거한 기도의 특징을 하나도 못 갖추고 있기 때문에 기도가 아니다.
그 발생과 발전의 역사를 보아서도 물론 기도가 아니다. 사도 신경은 본래 세례 받을 사람이 세례 줄 사제의 물음을 따라 신앙을 고백한데서 유래되고 약 7 백년 동안 내려오면서 체계화 하여 오늘의 신조 선언문이 되었다.
즉 세례받을 사람은 이 기본 신앙을 고백함으로 비로서 세례 받아 입교하고, 성찬에 동참할 수 있었던 것이다.
오늘 날 이 문서는 "나는 …을 믿는다"(credo)는 선언적 골격을 갖추고 있어 사제(목사)와 회중(신도)이 함께 예배 시간에 신앙고백용으로 사용되고 있다.
세례식을 거행 할 때는 이 고백의 대상(말 들어 줄 사람)이 집례 사제이었지만 사제와 함께 고백하는 오늘의 예배 상황 하에서 현장에는 고백이 대상이 없다.
예배 현장에 이 신앙 고백을 들어 줄 만한 사람은 입교하지 못한 학습 교인들 뿐이다.
물론 이들은 고백의 대상으로 의도되지 않고 있다. 차라리 고백의 대상은 예배당 밖에 있는 불신자, 범신론자, 이단, 삼위 일체 신앙을 거부하는 자들이다.
비 기독교인, 반 기독교인이 없다면 이런 신앙 고백은 불 필요한 것이다.
로마의 콘스탄틴 황제가 주후 313 년에 신교의 자유를 허락하기 이 전 신도들의 공적인 신앙 고백은 목숨을 내건 고백이었다.
1919 년에 일제 치하에서의 독립 선언은 일제와 세계 만방을 겨냥한 것으로 3. 1 독립 선언문을 낭독하거나 외치는 한국인은 일본 경찰의 체포의 대상이 되었다.
3. 1 독립 선언문 첫 문장은 "吾等"(우리)로 시작하여 "선언하노라"로 끝난다.
작사자와 작곡자가 누구인지 모르는 211 장 찬송 "그 참혹한 십자가에"의 후렴은 간단한 신앙 고백을 시로 읊은 것이다.
"나 믿노라, 나 믿노라 보혈의 공로를 흠 없어도 피 흘리사 날 구원하셨네"
여기서「노라」는 현대 구어체가 아니고 좀 낡은 문어체인 선언적 문장 어미로서 말하는 사람의 강력한 의지를 표명한다.
위의 찬송가 가사를 부연 설명하자면 "너는 안 믿어도 나는 믿는다"의 뜻이다.
사도 신경의 고백의 맥락은 바로 이 찬송가 가사와 같은 것이다.
그런데 한국 천주교가 먼저 이 고백을 기도로 오해하여 「믿는다」는 동사를 「믿나이다」로 옮기기 시작하고 그 후 개신교에서도 계속(1894, 1897, 1905, 1908) 「믿나이다」「믿사옵나이다」「믿삽나이다」처럼 최고 존대 형으로 번역하여 오늘 날에 이르렀다.
이 문제는 아주 심각한 신학적 문제인 것이다. 사도신경을 하나님을 향한, 이를테면 고백의 기도로 착각하고 고백한다면 그런 고백을 들을 예배의 대상은 여호와 하나님이 아닌 다른 신이 되기 때문에 10 계명의 제 1 계명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셈이다.
하루 속히「믿노라」나「믿는다」로 고쳐서 본래 사도신경의 내용을 되살려야 한다.
※ <사도신경, 바로 알고 맞게 쓰자>(예찬사) - 배양서 박사 지음 - 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저자의 주장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먼저, 우리가 '사도 신경'이라 일컫는 문서는 기도문(신경)이 아니라 신앙 고백(신조)이다.
(2) 그런데 신앙 고백이란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성도가 자신의 신앙을 드러내는 것이다.
(3) 따라서 하나님에게 하는 것이 아니다.
(4) 그러므로 예배 시간에 눈을 감고 '사도 신경'을 외우는 것은 옳지 않다.
(5) '사도 신경'으로 잘못 명명 된 문서를 재 번역하여 바로 잡아야 한다.
<기독교 연합신문 1990년 2월 25일 일요일 (제 100호) 中 독자 특별기고>
- 배양서 교수(한양대 언어학) -
*그래서 우리 교회에서는 본인이 예배를 인도할 때 사도신경 순서에는 다른 교회들 처럼 눈감고 머리 숙이고 기도하는식으로 하지 않고
"다같이 신앙고백 사도신경을 펴고 낭독하겠습니다" 하고 사도신경을 낭독한다.
'주기도! 사도신경!! 십계명!신앙고백'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주기도문 해설 / 변종길 교수(고려신학대학원. 신약신학) (0) | 2014.09.17 |
---|---|
[스크랩] 칼뱅의 주기도문 이해 / 박건택 교수 (0) | 2014.09.17 |
[스크랩] 사도신경 강해 (0) | 2014.05.05 |
[스크랩] 예수님의 기도론 (0) | 2014.04.07 |
[스크랩] 사도신경 (0) | 2014.04.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