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 백년 계속된 신앙 고백…선언적 의미 커

한국어 사전에서 기도의 정의를 찾아보면 가지 각색이다. 그러나 기독교 개신교의 기도는 하나님에게 하는 말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 고유의 무당 종교의 기도는 천지신명에게 복을 비는 것이다. 이런 역사적, 문화적 배경 때문에 한국 기독교의 기도가 간구나 기복에 치중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유명한 기도의 내용을 보면 간구 못지 않게 자복(회개)과 칭송이 필수적으로 들어 있음을 본다.
또 기도의 형식으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하나님을 찾는 말이다. 기도 시작하는 첫 마디로 꼭 필요한 '찾는말'로는 "오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 "영원하신 하나님" "오 아버지" "오 주님" "주 예수여" "우리 아버지" 등이 있다.
우리가 육신 생활을 하면서 자기 아버지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우선 "아버지"하고 불러야 되는 것과 같은 원리다.

내가 하는 말을 들어줄 사람을 찾지 않고 말한다는 것은 실례일 뿐 아니라 있을 수도 없다.
공중 예배에 잘쓰이는 영어판 기도문들을 보면 모두 O God, Almighty God, O father, O Lord 와 같은 '찾는말'(호출어)로 시작된다.

또 기도의 다른 하나의 징표는 "예수 이름 의지하여"나 이와 비슷한, 이를테면 "조건어"가 맨끝에 붙는 것이다. 주님 가르친 기도에도 이 말을 우리가 알아서 붙였으면 더 좋았을 것이지만 너무나 당연하기 때문에 성경 본문대로 그냥 기도를 끝맺고 있다.
사람이 하나님과 통하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야 된다는 뜻이다. 위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인이 하는 말(개인적으로나 단체적으로)이 기도냐 아니냐를 알기 위해서 그 말이나 글의 맨 앞과 뒤를 확인하고 그 내용으로 죄의 고백, 칭송, 회개, 간구가 들어 있는가 보면 된다는 것을 알았다.

또 기도를 확인하는 방법중의 하나는 말(기도)들을 상대, 즉 예배의 대상을 2 인칭으로 부르고 있는가 살피는 것이다. 영어로는 you, thou, thy, thee 등이고, 한국어로는 "너" "당신" "그대" 등이 여기에 해당되나 잘 쓰이지 않기 때문에 영문이나 그 밖의 서양 말로 된 문서를 상고 할 필요가 있다.

"사도신경은 기도가 아니다!!"

한국 교회에서 흔히 기도로 인식되고 있는 사도 신경은 위의 열거한 기도의 특징을 하나도 못 갖추고 있기 때문에 기도가 아니다.
그 발생과 발전의 역사를 보아서도 물론 기도가 아니다. 사도 신경은 본래 세례 받을 사람이 세례 줄 사제의 물음을 따라 신앙을 고백한데서 유래되고 약 7 백년 동안 내려오면서 체계화 하여 오늘의 신조 선언문이 되었다.

즉 세례받을 사람은 이 기본 신앙을 고백함으로 비로서 세례 받아 입교하고, 성찬에 동참할 수 있었던 것이다.
오늘 날 이 문서는 "나는 …을 믿는다"(credo)는 선언적 골격을 갖추고 있어 사제(목사)와 회중(신도)이 함께 예배 시간에 신앙고백용으로 사용되고 있다.
세례식을 거행 할 때는 이 고백의 대상(말 들어 줄 사람)이 집례 사제이었지만 사제와 함께 고백하는 오늘의 예배 상황 하에서 현장에는 고백이 대상이 없다.
예배 현장에 이 신앙 고백을 들어 줄 만한 사람은 입교하지 못한 학습 교인들 뿐이다.
물론 이들은 고백의 대상으로 의도되지 않고 있다. 차라리 고백의 대상은 예배당 밖에 있는 불신자, 범신론자, 이단, 삼위 일체 신앙을 거부하는 자들이다.
비 기독교인, 반 기독교인이 없다면 이런 신앙 고백은 불 필요한 것이다.

로마의 콘스탄틴 황제가 주후 313 년에 신교의 자유를 허락하기 이 전 신도들의 공적인 신앙 고백은 목숨을 내건 고백이었다.
1919 년에 일제 치하에서의 독립 선언은 일제와 세계 만방을 겨냥한 것으로 3. 1 독립 선언문을 낭독하거나 외치는 한국인은 일본 경찰의 체포의 대상이 되었다.
3. 1 독립 선언문 첫 문장은 "吾等"(우리)로 시작하여 "선언하노라"로 끝난다.
작사자와 작곡자가 누구인지 모르는 211 장 찬송 "그 참혹한 십자가에"의 후렴은 간단한 신앙 고백을 시로 읊은 것이다.

"나 믿노라, 나 믿노라 보혈의 공로를 흠 없어도 피 흘리사 날 구원하셨네"

여기서「노라」는 현대 구어체가 아니고 좀 낡은 문어체인 선언적 문장 어미로서 말하는 사람의 강력한 의지를 표명한다.
위의 찬송가 가사를 부연 설명하자면 "너는 안 믿어도 나는 믿는다"의 뜻이다.
사도 신경의 고백의 맥락은 바로 이 찬송가 가사와 같은 것이다.

그런데 한국 천주교가 먼저 이 고백을 기도로 오해하여 「믿는다」는 동사를 「믿나이다」로 옮기기 시작하고 그 후 개신교에서도 계속(1894, 1897, 1905, 1908) 「믿나이다」「믿사옵나이다」「믿삽나이다」처럼 최고 존대 형으로 번역하여 오늘 날에 이르렀다.

이 문제는 아주 심각한 신학적 문제인 것이다. 사도신경을 하나님을 향한, 이를테면 고백의 기도로 착각하고 고백한다면 그런 고백을 들을 예배의 대상은 여호와 하나님이 아닌 다른 신이 되기 때문에 10 계명의 제 1 계명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셈이다.
하루 속히「믿노라」나「믿는다」로 고쳐서 본래 사도신경의 내용을 되살려야 한다.

※ <사도신경, 바로 알고 맞게 쓰자>(예찬사) - 배양서 박사 지음 - 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저자의 주장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먼저, 우리가 '사도 신경'이라 일컫는 문서는 기도문(신경)이 아니라 신앙 고백(신조)이다.
(2) 그런데 신앙 고백이란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성도가 자신의 신앙을 드러내는 것이다.
(3) 따라서 하나님에게 하는 것이 아니다.
(4) 그러므로 예배 시간에 눈을 감고 '사도 신경'을 외우는 것은 옳지 않다.
  (5) '사도 신경'으로 잘못 명명 된 문서를 재 번역하여 바로 잡아야 한다.

<기독교 연합신문 1990년 2월 25일 일요일 (제 100호) 中 독자 특별기고>
- 배양서 교수(한양대 언어학) -

 

 

 

*그래서 우리 교회에서는 본인이 예배를 인도할 때 사도신경 순서에는 다른 교회들 처럼 눈감고 머리 숙이고 기도하는식으로 하지 않고

"다같이 신앙고백 사도신경을 펴고 낭독하겠습니다" 하고 사도신경을 낭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