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락하지 말라
지옥 은혜 (恩惠) 히브리서 6장 4절 - 8절 “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 땅이 그 위에 자주 내리는 비를 흡수하여 밭 가는 자들의 쓰기에 합당한 채소를 내면 하나님께 복을 받고 만일 가시와 엉겅퀴를 내면 버림을 당하고 저주함에 가까워 그 마지막은 불사름이 되리라” 타락이란 말은 죄를 범하여 不信의 생활을 하는 것, 잘못된 구렁에 빠지는 것을 타락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전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예수를 이미 믿는 사람이 타락하지 않도록 타락을 방지하는 일을 하게 하는 것은 더 중요한 일입니다. 예수를 믿지 않는 자나, 예수를 믿다가 타락 한자나 결과는 똑 같은 결과로 지옥에 갑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가 한때는 예수 믿는 사람이 늘어나더니 지금은 줄어들고 있습니다. 한때는 한국의 기독교인 수가 1,200 만 명이라고 말하더니 실제로는 금년 통계는 8,766,000 명으로 10년 동안 144,000 명이 감소하였다고 합니다. (2006년 7월 통계)
미국에서 전도를 하는 것만큼 힘드는 일도 없습니다. 그 이유는 잘 사니까 타락하여 예수를 등지는 사람이 많고 유년 주일 학교 때에는 예배당에 잘 다니던 사람들이 상급학교에 진학하고 상급생이 될수록 예수를 안 믿습니다. 대학 입시에 떨어지면 교회도 떨어지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취직하자 예수를 저버리는 사람, 사업에 성공하자 예수를 저버리는 사람, 심지어 교회 직분 경선에서 낙선하니 예수를 저버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평생 동안 교회에 다니다가 사업이 망하니까 함께 신앙도 망하는 사람이 있고, 부인이 죽으니까 예수도 죽어 버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왜 이들이 예수를 저버립니까? 살아 계신 예수 그리스도와 생명의 연합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가 인간관계가 무너지면 타락하거나 예수를 배반하거나 하는 것입니다. 이들의 요구는 자기의 탐욕을 이루려고 교회에 다녔기 때문입니다. 이들이 참으로 불쌍한 것은 타락한 자의 불행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4절 말씀같이 깊은 신앙을 체험한 자가 타락하면 다시 새롭게 하는 회개의 역사가 이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가롯 유다같이 자기의 잘못을 깨달아서 고민은 하여도 회개의 은혜를 입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것 중에 가장 큰 은혜는 회개를 할 수 있는 은혜를 받게 된 것입니다. 고범죄를 짓지 아니하는 한 우리는 아직도 베드로 같이 용서받고 새롭게 쓰임을 받는 은혜 아래서 살고 있습니다. 1. 타락하면 양심이 더러워집니다. 디도서 1장 15절 “오직 저희 마음과 양심이 더러운지라” 양심을 깨끗하게 갖고 살아야 합니다. 양심이 더러워지면 타락을 타락으로 느끼지 못하고 자기의 지금 가는 길이 옳고 바른 길로 여기고 똑똑한 자로 스스로 느끼고 살고 있는 사람이 됩니다. 요엘 3장 19절 “자기 행위가 악함으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라” 이 말씀은 심판을 받을 타락한 자의 형편을 말한 것입니다.
타락한 자는 디모데후서 2장 26절 “마귀의 올무에” 묶여 있는 자들입니다. 우리가 양심이 더러워지지 않고 깨끗한 양심, 선한 양심을 갖고 의롭게 살아가야 마귀의 종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양심을 깨끗케 하고 더럽게 아니하려면, 늘 성경 말씀으로 양심을 닦고, 그 말씀에 그릇되게 느껴지는 것이 있을 때에 즉시로 회개하고, 다시 그 일을 반복하지 않는 삶을 살도록 노력하여야 합니다. 기도하면서 영을 깨끗케 할 때에 양심도 아울러 깨끗하여집니다. 우리가 죄를 지으면 기도가 막히고 기도가 안 나옵니다. 양심을 깨끗케 하고 그 양심에 따라 살면 타락의 낭패를 면하게 됩니다. 2. 허물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시 19편 7 - 14절 “나를 숨은 허물에서 벗어나게 하옵소서” 숨은 허물은 남이 모르는 허물이 아니요, 자기가 모르는, 의식하지 못하는 허물을 의미합니다. 자기가 모르는 숨은 허물이 각 사람마다 많이 있습니다. 레위기 5장 4절에는 무심중에 말을 잘못하고 깨닫지 못하고 있다가 그것을 깨달을 때에는 허물이라고 말하였습니다. 허물이나 죄나 같은 것이지만 고의성이 없는 것이 허물입니다. 눈이 어두워지고 심령이 둔하여지면, 자기가 스스로 죄를 깨닫지 못하는 허물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만 결과는 역시 사망입니다.
심령이 밝으면 남을 비방한 일, 탐욕을 부린 일, 임시 모면을 위하여 거짓말을 한 일, 남을 멸시한 일, 외식한 일 등 잘못을 깨닫고 회개를 합니다. 사도 바울도 형제의 약한 마음을 상하게 한 것도, 상처를 입힌 것도 죄라 하였고, 사무엘은 기도하지 않는 것도 죄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죄의식이 둔화되면 자기의 잘못을 하나님께 전가시킵니다. 내가 모르고 지은 잘못을 깨달으려면 성경을 읽고, 들으며 말씀에 찔려야 합니다. 그리고 성령의 밝은 빛으로 자기를 비쳐 보고 회개 기도를 하여야 합니다.
不信者와 접촉하는 시간이 예수를 믿는 사람보다 많은 사람들은 더욱 악한 세상에 물들지 않도록 조심을 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오늘날은 죄를 짓고서도 잘했다고 히쭉 히죽 웃는 세대입니다. 양심이 죽고, 화인 맞아 무디어진 이 세대를 우리는 이겨야 하는 어려운 삶을 살고 있습니다. 예리한 양심을 갖고서 숨은 허물을 찾아내어 회개하고, 날마다 성화를 힘쓰며 살아 가여야만 타락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3. 고범죄를 짓지 말아야 합니다. 시편 19편 13절 “또 주의 종으로 고범죄를 짖지 말게 하사 그 죄가 나를 주장치 못하게 하소서” 알면서도 고의로 죄를 짓는 것이 고법죄입니다. 계획적인 죄가 고범죄이고, 이 죄를 지으면 죄의 종, 마귀의 종이 됩니다. 일시적인 이익 때문에,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과 하와도 고범죄를 지은 것입니다. 한잔 술이 나쁜 것인 줄 알면서도, 주일에 교회에 빠지는 것이 나쁜 것인 줄 알면서도 범한다면, 이 사람은 고범죄를 짓고 있는 사람입니다. 개미구멍이 제방을 무너뜨려서 큰 홍수의 피해를 입게 하는 것과 같이 사소한 일을 고의로 용납하면은 이것이 큰 타락을 가져오게 됩니다. 고범죄를 짓는 자들의 특징은 성경을 역이용합니다. 어떤 목사는 중국에 애인이 둘이 있고, 한국에도 둘이 있는 목사도 있습니다. 그들의 변명은 야곱이도 부인이 넷이었다 말하고, 다윗도, 솔로몬도 부인이 많았다 하면서 성경을 역이용하여 스스로를 정당화시키는 것입니다. 자기 양심을 스스로 위로하는 것은 고범죄를 짓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죄의 종으로 타락한 사람들이고 멸망에 빠질 자들입니다. 정리: 인생의 실패 중에 가장 큰 실패는 타락의 실패입니다. 타락은 영원한 자멸이요 예수그리스도를 안 후에 고범죄를 지으며 타락한 사람들은 구원이 멀어진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이제 예수를 알고 하나님의 은혜에 참례하였으니 끝까지 말씀대로 하나님이 주신 선한 양심대로 살아가면서 실수로 지은 죄와 허물을 날마다 회개하며 고쳐 가면서 살아가서 의로운 삶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이 성도로, 구원의 복을 누리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할렐루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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