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설교 모음

[스크랩] 동산을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아들 2014. 6. 24. 17:13
제목:동산을 거니시는 여호와
본문:(창3:7-13)
주요내용:회개기회론
작성자:한성진(합동총신졸)
자료출처:http://cafe.daum.net/agaser

요 약
범죄하는 인간에게 하나님께서는 회개의 기회를 주신다. 그런데 회개의 기회가 단계적인 징계로 나타남은 죄란 속히 회개할수록 좋음을 교훈한다. 먼저 이 기회는 은혜의 상실감으로 나타나며, 다음은 심령의 냉각과 양심의 두려움으로 나타나고, 다음은 심령의 강한 고통을 체험하고, 다음은 더욱 심각해진 고통을 통해 원인을 숙고토록 함으로 나타나며, 그래도 회개치 않으면 육신적 징계가 주어진다. 그러나 끝까지 순종치 않으면 사망 혹은 무감각의 화인 맞은 양심으로 화하게 된다.

설 명

◎ 회개의 기회

1. 입혀진 거룩성 상실 - 벗은 줄 앎(7절)

2. 심령의 냉각과 양심의 두려움 - 서늘함 - 나무 사이에 숨음(8절)

3. 심령의 고통을 느낌 - 네가 어디 있느냐(9-10절)
장소적 - 상태적 의미

4. 원인을 깊이 생각토록 하심 - 누가 고하였느냐 - 먹었느냐(11-13절)

5. 회개치 않으면 - 질고 사망 채찍(계2:22-23) - 회개 기회

6. 끝까지 회개치 않으면 - 화인 맞은 양심(딤전4:2)
멸망할 짐승과 같음(시49:20)

(본문)
7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하였더라 8 그들이 날이 서늘할 때에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아담과 그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9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10 가로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11 가라사대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고하였느냐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실과를 네가 먹었느냐 12 아담이 가로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하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실과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13 여호와 하나님이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여자가 가로되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창3:7-13)


(강해)
이 시간에는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라는 제목으로 회개의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지난 시간에 사단의 시험의 과정을 받아들인 최초의 인간이 순서적으로 타락함을 배웠습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생각을 잘 지켜야 합니다. 이처럼 생각에서 죄악을 허용하면 죄는 급속도로 발전하여 남은 지성을 정복하고 감정을 정복하고 의지까지 정복할 뿐 아니라 범죄하고도 회개하지 않는 완악한 외식의 심령상태에서 결국은 하나님을 모든 범죄의 원인으로 몰고 결국은 범죄의 결과를 당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그런데 이 시간에는 본문을 통하여 양심을 통하여 나타난 회개의 기회에 순종치 않는 완악한 심령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크심은 언제나 죄인에게 회개의 기회를 주신다는 점입니다. 물론 아담이 회개했다면 어떻게 하셨을까? 이런 점에 대해서는 성경이 침묵하므로 말할 수 없고 다만 이 본문을 우리 심령에 적용하는 방향에서 접근토록 하겠습니다. 그럼 범죄한 심령에 나타나는 회개의 기회는 어떻게 나타날까요?

1. 심령에 입혀주신 거룩하신 의가 상실됨으로 나타납니다.

7절에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하였더라" 했습니다.
이 부분을 앞에서 죄의 부끄러움을 가리려는 외식으로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왜 이런 일이 있게 되었는가? 그것은 영적 순결한 눈의 상실과 아울러 하나님께서 입혀주신 거룩한 형상이 상실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 영적 육체적으로 벌거벗은 존재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결과 두 사람이 범죄한 후 먼저 다가 온 현상은 심히 부끄러움이었습니다.
이처럼 범죄하면 심령에 임해 있던 하나님 형상의 의는 사라지고 맙니다. 성령의 열매로 임해 있던 의 기쁨 거룩 사랑 순종 겸손 평안 복락은 사라지고 심히 황폐한 심령으로 바꾸어집니다. 그렇지 않고 성령의 열매로 심령이 풍성할 때 우리는 그 복되고 거룩한 심령을 조금도 가리움이 없이 드러냅니다. 그것은 아무 부끄러움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은혜 받은 심령의 특징은 강한 개방성이 그 특징입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이 거룩한 심령을 접하고 은혜를 받습니다.
그러나 범죄하고 황폐해진 심령 상태의 인간은 어떻게 살아갑니까? 인간은 곧 말라버릴 빛 바랜 윤리와 도덕과 체면과 위선의 무화과 잎으로 그것을 덮고 그렇지 않은 체 살아갑니다. 남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면서도 사랑하는 체 해야 하고 심령이 죄악으로 범벅되어 있으면서도 그렇지 않은 체 살아갑니다. 심령 속은 죽고 썩어 있지만 그것을 보이기 부끄럽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불꽃 같은 눈을 가지신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도 그것을 숨길 수 없습니다. 혹시 이 시간에 이런 심령상태에 있다면 그 부끄러움을 가리지 말고 하나님 앞에 그대로 드러내놓으시고 회개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시고 다시 회복의 즐거움으로 채워주실 것입니다.
그런데 범죄하면 그 아름다운 은혜의 즐거움을 취해 가신 이유를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회개토록 하시기 위함이십니다. 그래서 다윗은 범죄를 회개하면서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시51:12에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키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

2. 회개의 기회는 다가오기 시작하는 두려움의 양심의 소리입니다.

창3:8에 "그들이 날이 서늘할 때에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아담과 그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했습니다.
여기 날이 서늘할 때란 따뜻한 낮이 가고 차가운 산들바람이 부는 저녁을 말합니다. 이것은 회개하지 않음으로 인한 심령의 냉각 상태를 교훈합니다. 신령한 그리스도인들도 범죄할 수 있지만 속히 회개하면 심령에 임한 은혜를 거두어 가시지 않습니다. 이 은혜란 성령을 소멸하는 의미로 이해하시기 바랍니다(살전5:19). 그래서 엡4:26에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라고 교훈합니다. 하루를 넘기지 말라는 의미도 있지만 은혜의 해가 지기 전을 상징합니다.
하루의 히브리적 개념은 해가 지면서부터 다음 날로 바뀝니다. 그러므로 해가 진다란 신령한 의미에서 은혜 풍성의 수준이 한 단계 이상 낮아짐을 의미합니다. 더 오래 지체하면 더 많이 상실될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상실해도 택한 백성은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인해 생명의 그루터기는 남아 있어 회개하면 다시 싹이 나옵니다(사1:8). 어떤 분은 이 은혜를 회복하려고 십 년을 고생하기도 했다는 간증이 있습니다. 그러나 진실로 회개하면 멀지 않는 시간에 회복되게 하십니다.
그리고 여기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의 음성에 대해 하나님의 목소리, 하나님이 임하실 때 동반한 우레 소리, 혹은 하나님의 발자국 소리 등의 견해가 있지만 이 모든 것을 포함한 것으로 보아도 무리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심령 동산에서 이 소리는 양심의 소리입니다. 양심은 곧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이 음성은 때로는 우레 소리와도 같고 때로는 사자의 표호 소리와도 같습니다.
이 양심의 소리가 드릴 때 죄인은 두려움에 떨게 됩니다. 이 소리가 아직 발하지 않을 때는 단지 무화과 잎만 가렸지만 이 소리가 들린 후부터는 잎 정도로는 안되고 달려가 나무 사이에 숨었습니다. 대개 나무 사이에 숨는 것은 사자나 호랑이가 잡아먹기 위해 달려 올 때 사람이 취하는 행동입니다. 이것은 범죄한 양심의 두려움을 묘사함입니다. 이 소리가 발하는 이유는 회개토록 하시는 하나님의 자비이십니다.
이 양심으로 인한 고통과 두려움이 얼마나 큰지 그 심령은 작은 지옥처럼 됩니다. 어둡고 불안하고 괴롭고 고독하고 슬프고 가슴속에서 불길한 뜨거운 기운이 솟구쳐 올라오고 밤에도 악몽으로 시달리고 살아도 사는 것 같지 않고 심령이 압박 당해 눌리는 그 고통과 두려움이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시32:3-6에 "내가 토설치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화하여 여름 가물에 마름같이 되었나이다 (셀라)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의 악을 사하셨나이다 (셀라) 이로 인하여 무릇 경건한 자는 주를 만날 기회를 타서 주께 기도할지라 진실로 홍수가 범람할지라도 저에게 미치지 못하리이다" 했습니다.
여기 나타나고 있는 셀라의 의미는 '소리를 높여라' 등을 의미하는 음악부호로 알려져 있습니다. 여기에 이 부호가 죄악으로 인한 심령의 고통을 호소하는 부분과 죄악을 사죄하시는 부분에 두 번 나타나고 있음을 주시하시기 바랍니다. 그 만큼 죄악의 고통이 크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바로 다윗이 그 경험자였습니다. 저도 아주 깊이 경험하고 이 말씀을 드립니다. 여러분도 그것을 경험하였으리라 믿습니다. 그런데 이 심령의 황폐와 고통은 회개의 기회입니다. 하나님께서 범죄한 이스라엘에게 회개하라고 기근과 질고와 전쟁으로 그 땅을 황폐케 하신 것과 같습니다. 이 기회를 놓치면 나중에는 양심이 무디어져서 죄를 짓고도 느낌을 찾을 수 없습니다.

3. 회개의 기회는 좀 더 구체적인 양심의 소리로 나타납니다.

9-10절에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가로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했습니다.
여기 네가 어디 있느냐는 물으심은 그들의 장소적인 질문임과 아울러 어떤 처지에 있는가를 묻는 상태적인 질문입니다. 이것은 심령 동산으로 볼 때 극도의 심령 고통으로 인해 나도 모르게 나오는 두렵고 괴로움의 탄식입니다. 마치 우주의 불행이 나에게만 머물러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혹은 바꾸어 내가 우주의 불행 중심에 와 있는 것을 느낍니다. 이것이 장소적인 영적 교훈입니다.
그런데 우리 심령은 범죄 후 '네가 어디 있느냐' 하는 소리는 대개 듣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저 여기 있어요 너무 두렵고 고통스러워요' 깊이 탄식합니다. 그 이유는 이미 마음속에서 우리는 의식치 못했지만 네가 어디 있느냐 하신 하나님의 물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상태적인 질문의 의미입니다. 이와 같은 심령 속의 고통의 소재가 확실한 상태의 목적은 역시 회개의 기회를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이 상황까지 오기 전에 속히 회개해야 합니다.

4. 회개의 기회는 죄악을 구체적으로 깨닫게 하시는 방향으로 나타납니다.

11-13절에 "가라사대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고하였느냐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실과를 네가 먹었느냐 아담이 가로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하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실과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여자가 가로되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했습니다.
여기 취조적인 하나님의 말씀은 아담의 핑계를 미연에 방지하지 위함입니다. 또 네가 하나님의 권위와 명령을 무시했기 때문에 그 허물과 죄책을 필시 당하게 될 것이라는 엄중한 경고적 의미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심령 동산에서 이와 같은 현상은 고통의 원인이 죄악임을 깨닫게 하심을 가리킵니다. 심령의 고통 속에서 인간은 그 원인을 깊이 깨닫는 시간을 갖게 됩니다. 이 때 성도들은 '아 내가 죄를 지어서 이렇지 하나님 용서해 주세요' 이렇게 나옵니다. 그러나 이 상태에서도 회개치 않는 완악한 심령들은 양심은 있지만 회개하지 않습니다. 회개한다 해도 입의 말일 뿐입니다. 그것은 그가 현재 추종하고 있는 죄악의 가치가 더 중하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깨닫지 못할 때 하나님께서는 여러 가지 상징적인 방법으로 죄악을 깨닫게 하십니다. 어떤 분이 자기가 최고가 되려고 했더니 엄지손가락이 다치는 일을 당하고 그 때 깨달았다고 합니다. 계속하여 회개치 않으면 질고로 치시거나 심지어는 자녀들을 치실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계2:22-23에 "볼지어다 내가 그를 침상에 던질 터이요 또 그로 더불어 간음하는 자들도 만일 그의 행위를 회개치 아니하면 큰 환난 가운데 던지고 또 내가 사망으로 그의 자녀를 죽이리니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지라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 주리라"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징계가 있는 사랑은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 안에 있는 사람입니다. 낙심하지 말고 속히 회개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회개란 '제가 잘못했습니다' 자기에게 잘못을 돌려야 회개입니다. 그런데 아담은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하게 하신 여자라는 말로 책임을 전가합니다. 즉 자기는 잘못이 없고 범죄의 최종적인 원인이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여자 역시 뱀에게 그 책임을 전가했습니다.
그러나 사단이 유혹을 하고 환경이 죄 지을 원인을 제공했다 해도 의지를 가진 내가 수용했기 때문에 범죄한 것입니다. 예수님도 한결같이 시험을 받으셨으나 죄는 없으신 것은(히4:15) 그것을 말씀에 서서 수용치 않았기 때문입니다(마4:1-11). 그런데 두 사람은 핑계만을 댑니다. 이것은 회개가 아닙니다. 우리 마음속에 조금이라도 타인이나 환경 탓을 하고 있다면 아직 회개의 자세가 안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구체적으로 물으심은 회개란 모든 것을 나의 탓임을 깨닫고 구체적으로 회개할 기회를 주시기 위해서 입니다. 회개는 구체적으로 해야 합니다. 자신의 지은 죄를 소상히 드러내면서 고백해야 합니다. 그러나 안악한 심령은 오랜 세월을 남 탓만 하며 보냅니다. 시49:20에 "존귀에 처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 했듯이 깨닫지 못한다면 짐승보다 못합니다.
안타까운 것은 아담과 하와가 회개했다는 말이나 그 흔적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이미 선악과로 인해 죄의 덫에 걸려버린 아담은 변명의 수렁으로 더 깊이 빠질 뿐이었습니다. 우리는 그가 회개했다면 어떻게 하셨을까에 대해서는 성경이 침묵하므로 말할 수 없지만 그가 회개치 않은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사람이 심령의 고통을 당하고도 회개치 않으면 나중에는 차츰 그 고통이 무디어집니다. 이것이 바로 화인 맞은 양심입니다. 노예의 몸에는 불도장이 찍히는데 이 도장이 찍힌 부분은 감각이 없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화인 맞은 노예는 영구히 자유가 주어지지 않습니다. 이처럼 이 양심에 불도장이 찍히면 회개하지 않으며 혹은 회개가 잘 안 되기 때문에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가 주어지지 않는 한 영원한 죄의 노예가 됩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의 심령 동산을 거닐고 계십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롬 6:23). 더 이상 죄악을 전가하지 말고 은혜 떨어지기 전에 속히 회개하십시다. 그래서 우리 모두 하나님께서 주신 심령 동산에 하나님의 나라로 충만한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출처 : 한국강해설교연구원
글쓴이 : 운영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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