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여자에게 저주 선언
본문:(창3:16)
주요내용:심령변화론
작성자:한성진(합동총신졸)
자료출처:http://cafe.daum.net/agaser
요 약
여자에게 선언된 저주는 심령변화의 상징이다. 여자에게 잉태하는 고통과 해산의 수고가 선언되었듯 지상에서 성도는 영성을 입기 위하여 연단의 고통과 나아가 말씀 정립과 기도하는 해산의 수고가 필요하다. 또 남편을 사모하라 선언하심처럼 자기연민에 빠져 있으면 안 된다. 반면 주님을 온전히 사랑해야 한다. 그리고 남편의 다스림을 받으라 선언하심처럼 남편 되신 예수님께 철저히 순복하고 자기의 뚯은 옳더라도 내려놓아야 한다. 그 때 나는 사라지고 내 안에 예수의 형상이 나타나게 된다.
설 명
◎ 영혼이 변화되려면
☞ 영혼 변화란?
영혼이 영성을 입어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회복됨
1. 고난 속에서 영접 분쇄 훈련
잉태하는 고통(16절)
2. 말씀 정립과 갈망 기도
해산의 수고(16절)
3. 자기연민을 내려 놓음
남편을 사모하고(16절)
4. 자아주권을 내려 놓음
남편의 지배를 받음(16절)
(본문)
16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창3:16)
(강해)
지난 시간에는 뱀에게 하신 저주라는 제목으로 우리 속의 뱀의 속성 우리 옛사람 즉 죄를 다스리고 처리하는 법에 대하여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이어서 '여자에게 하신 저주'라는 제목의 말씀입니다. 창3:16에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셨습니다.
이 저주하신 대로 지금도 여자는 많은 고통 속에서 잉태하고 해산하는 수고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선언은 신구약의 교회에 있어서 가정에 대한 중요한 기초적 교훈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점은 이 가정의 원리가 엡 5장에서 신랑되신 예수 그리스도와 신부된 교회와의 관계를 교훈하는 데까지 발전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정에 속한 이 말씀 속에서 하나님께서 신부된 우리 성도들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는가에 대한 진리를 발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럼 구체적으로 여자에게 주신 이 말씀은 오늘날 우리들에게 어떤 교훈을 주고 있을까요?
1. 잉태하는 고통이 주는 의미입니다.
16절 상 반절에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하셨습니다.
16절에 잉태라는 말과 해산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잉태란 임신을 가리키고 해산이란 아이를 출산함을 가리킵니다. 그러니까 여기 잉태의 고통이란 아이를 갖는 수고를 가리킵니다. 그러니까 잉태의 고통이란 임신하여 해산하기까지의 온갖 조심과 수고가 따르는 열 달간의 과정을 뜻합니다.
이와 같이 죄인이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는 첫 과정은 먼저는 우리 이미 믿는 성도들과 하나님의 교회가 많은 수고를 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마치 산모와 온 가족이 태아에게 정성을 쏟듯이 한 생명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많은 기도와 온갖 사랑과 전도가 주어진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이런 수고가 필요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은 천국에서는 사11:9과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으로 충만한 곳이기 때문입니다. 렘31:34에도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리켜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앎이니라" 하셨습니다. 그런데 왜 지상에서는 이런 수고가 있어야 할까요? 그것은 아직 지상에 속한 교회는 믿음과 성령 안에서의 하나님 나라이지 본격적인 천국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이 에덴 동산에서 쫓겨날 여자에게 하신 말씀이란 점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수고가 있듯 우리 성도들 역시 열심히 전도 대상자를 위해 성령의 부르심이 있도록 기도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아이 하나 낳기가 쉬운 일이 아니듯이 한 사람을 전도하는 일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착안하여 지금 태신자 운동이 일어나고 있는데 태신자 운동이란 전도하기 전에 기도와 사랑 속에서 전도대상자를 날마다 키우는 것입니다. 이 한 생명을 위한 수고를 당사자 개인에게 적용한다면 예수를 구주로 받아들이고 교회에 나오기까지 많은 연단과 고통을 통해서 준비되어지는 과정이 있다는 것입니다. 고난이 없이 어떻게 예수 앞에 나오겠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도 애굽에서 고난이 있었기에 여호와께 부르짖고 가나안에 가려고 나서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므로 고난 속에 있는 사람들을 찾아서 전도할 때 전도가 질 이루어집니다. 이처럼 한 사람이 마음의 문을 열고 회개하여 예수 믿기까지 그 사람은 물론 교회와 성도들의 많은 수고와 고난이 투자됩니다.
2. 여자는 수고하고 자식을 낳으라고 하셨습니다.
이 해산의 수고란 신령한 차원에서 적용한다면 중생을 가리킵니다. 성도들이 전도와 기도가 결실을 보아 한 생명이 예수를 믿어 하나님 자녀로 거듭나는 과정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필요한 교회의 수고가 있습니다. 먼저는 말씀 정립의 수고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갈4:19에서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했습니다. 당시 갈라디아 교회는 잘못된 비진리에 빠져 있었기에 바울의 해산의 수고란 바로 그들에게 다시 바른 복음을 가르치는 것을 뜻했습니다. 복음을 알지 못하면 구원을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다음에 해산의 수고란 기도하는 일입니다. 계12:2에 "이 여자가 아이를 배어 해산하게 되매 아파서 애써 부르짖더라" 고 했습니다. 이렇게 교회나 성도는 기도해야 하는데 그래야 하나님 앞에 새롭게 변화됩니다. 즉 말씀과 기도의 원리입니다. 이 원리는 딤전4:5의 "이는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 짐이니라" 하신 것과 동일합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되 예수의 복음을 잘 알고 열심히 기도해야 중생과 성화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수고 없이 영적으로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천국에서는 가자마자 변화도지만 우리가 처한 것은 기도의 수고를 통해 성령으로 임하는 지상의 하나님 나라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요16:21에 예수님께서 "여자가 해산하게 되면 그 때가 이르렀으므로 근심하나 아이를 낳으면 세상에 사람 난 기쁨을 인하여 그 고통을 다시 기억지 아니하느니라" 하신 말씀대로 이 지상에서 영적으로 거듭나고 성숙해 가는 그 해산함의 기쁨이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본문은 바로 이 수고에 대한 예표인 것입니다.
3. 여자는 남편을 사모하라고 하셨습니다.
여기 우리 영혼이 영성을 덧입는 또 하나의 중요한 원리가 나타납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는 세상을 사랑하지 않고 오직 신랑되신 예수만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이것도 아주 기본적인 의무사항입니다. 그러나 이 선언도 결코 쉬운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주님만을 사랑해야 한다는 이 같은 명령이 성경에 나타나는 이유를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역시 우리가 처한 곳은 에덴이 아니라 지상이 때문입니다. 이 지상에는 온갖 마귀의 시험과 세상의 유혹이 존재하는 곳으로 성도가 우리 주님만 사랑하며 산다는 것은 늘 힘쓰고 애쓰는 참된 믿음이 아니고는 불가능하기 대문입니다. 성도는 예수 남편 한 분만 사랑하게 되기까지 많은 영적인 수고를 해야 합니다. 그만큼 우리 인생은 하나님 앞에서 비뚤어져 있다는 결론입니다. 호세아의 아내 고멜처럼 진실로 주님만 사랑하기까지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여기 하와가 아담만을 사랑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처럼 우리 성도들도 오직 예수님만을 사랑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마지막. 여자는 남편이 다스리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기억해야 할 것은 이 질서는 가정의 질서일 뿐 아니라 나아가서는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의 영적 질서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입니다. 즉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맘에 맞는 온전한 신부가 되려면 이제는 자기 주권을 내려놓고 예수님 주권에 순복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부부가 한 몸이 된다는 것은 몸만이 아니라 마음까지도 하나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시 한번 묻는 질문이지만 하나님께서 구태여 이 말씀을 여기 선언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나를 내려놓고 주님의 뜻에 순복하기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라는 것을 암시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또한 우리의 주관이 그만큼 하나님 앞에서 강하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생각해 보세요. 천국에서 오신 하나님 아들이신 예수님과 세상의 죄인된 우리 인간과의 결합이 결코 순탄한 결합이겠습니까? 마치 개성이 강하고 고집이 센 남녀의 결혼이란 이미 갈등이 예고된 것이라고 할 수 있듯이 완악한 사람을 신부로 맞는 이 결합이 어찌 순탄할 수가 있겠습니까?
무슨 뜻입니까? 우리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뜻에 맞는 성도가 되기 위해 일생 동안 자기를 내려놓는 훈련을 계속해야 한다는 교훈입니다. 그렇지 않고사 어떻게 주님의 마음에 드는 신부가 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주시는 본문의 교훈은 한결같이 우리 성도들이 지상에서 애쓰고 힘써야 할 신앙적인 의무를 예표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그리스도의 마음에 맞는 참된 신앙을 수립할 수 없기 대문입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여자에게 내리신 말슴을 통해서 우리 그리스도의 신부된 성도로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배웠습니다. 즉 그리스도의 신부는 어떻게 부름 받고 어떻게 탄생되며 어떻게 성숙되고 어떻게 합당한 모습이 되는가하는 말슴이었습니다. 한 마디로 우리 지상의 성도들은 신앙적인 많은 수고가 분발이 있어야 한다는 결론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께서 성도에게 주신 이 의무를 깊이 깨닫고 실천하여 그리스도의 마음에 맞는 아름다운 신부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본문:(창3:16)
주요내용:심령변화론
작성자:한성진(합동총신졸)
자료출처:http://cafe.daum.net/agaser
요 약
여자에게 선언된 저주는 심령변화의 상징이다. 여자에게 잉태하는 고통과 해산의 수고가 선언되었듯 지상에서 성도는 영성을 입기 위하여 연단의 고통과 나아가 말씀 정립과 기도하는 해산의 수고가 필요하다. 또 남편을 사모하라 선언하심처럼 자기연민에 빠져 있으면 안 된다. 반면 주님을 온전히 사랑해야 한다. 그리고 남편의 다스림을 받으라 선언하심처럼 남편 되신 예수님께 철저히 순복하고 자기의 뚯은 옳더라도 내려놓아야 한다. 그 때 나는 사라지고 내 안에 예수의 형상이 나타나게 된다.
설 명
◎ 영혼이 변화되려면
☞ 영혼 변화란?
영혼이 영성을 입어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회복됨
1. 고난 속에서 영접 분쇄 훈련
잉태하는 고통(16절)
2. 말씀 정립과 갈망 기도
해산의 수고(16절)
3. 자기연민을 내려 놓음
남편을 사모하고(16절)
4. 자아주권을 내려 놓음
남편의 지배를 받음(16절)
(본문)
16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창3:16)
(강해)
지난 시간에는 뱀에게 하신 저주라는 제목으로 우리 속의 뱀의 속성 우리 옛사람 즉 죄를 다스리고 처리하는 법에 대하여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이어서 '여자에게 하신 저주'라는 제목의 말씀입니다. 창3:16에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셨습니다.
이 저주하신 대로 지금도 여자는 많은 고통 속에서 잉태하고 해산하는 수고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선언은 신구약의 교회에 있어서 가정에 대한 중요한 기초적 교훈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점은 이 가정의 원리가 엡 5장에서 신랑되신 예수 그리스도와 신부된 교회와의 관계를 교훈하는 데까지 발전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정에 속한 이 말씀 속에서 하나님께서 신부된 우리 성도들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는가에 대한 진리를 발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럼 구체적으로 여자에게 주신 이 말씀은 오늘날 우리들에게 어떤 교훈을 주고 있을까요?
1. 잉태하는 고통이 주는 의미입니다.
16절 상 반절에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하셨습니다.
16절에 잉태라는 말과 해산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잉태란 임신을 가리키고 해산이란 아이를 출산함을 가리킵니다. 그러니까 여기 잉태의 고통이란 아이를 갖는 수고를 가리킵니다. 그러니까 잉태의 고통이란 임신하여 해산하기까지의 온갖 조심과 수고가 따르는 열 달간의 과정을 뜻합니다.
이와 같이 죄인이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는 첫 과정은 먼저는 우리 이미 믿는 성도들과 하나님의 교회가 많은 수고를 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마치 산모와 온 가족이 태아에게 정성을 쏟듯이 한 생명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많은 기도와 온갖 사랑과 전도가 주어진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이런 수고가 필요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은 천국에서는 사11:9과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으로 충만한 곳이기 때문입니다. 렘31:34에도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리켜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앎이니라" 하셨습니다. 그런데 왜 지상에서는 이런 수고가 있어야 할까요? 그것은 아직 지상에 속한 교회는 믿음과 성령 안에서의 하나님 나라이지 본격적인 천국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이 에덴 동산에서 쫓겨날 여자에게 하신 말씀이란 점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수고가 있듯 우리 성도들 역시 열심히 전도 대상자를 위해 성령의 부르심이 있도록 기도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아이 하나 낳기가 쉬운 일이 아니듯이 한 사람을 전도하는 일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착안하여 지금 태신자 운동이 일어나고 있는데 태신자 운동이란 전도하기 전에 기도와 사랑 속에서 전도대상자를 날마다 키우는 것입니다. 이 한 생명을 위한 수고를 당사자 개인에게 적용한다면 예수를 구주로 받아들이고 교회에 나오기까지 많은 연단과 고통을 통해서 준비되어지는 과정이 있다는 것입니다. 고난이 없이 어떻게 예수 앞에 나오겠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도 애굽에서 고난이 있었기에 여호와께 부르짖고 가나안에 가려고 나서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므로 고난 속에 있는 사람들을 찾아서 전도할 때 전도가 질 이루어집니다. 이처럼 한 사람이 마음의 문을 열고 회개하여 예수 믿기까지 그 사람은 물론 교회와 성도들의 많은 수고와 고난이 투자됩니다.
2. 여자는 수고하고 자식을 낳으라고 하셨습니다.
이 해산의 수고란 신령한 차원에서 적용한다면 중생을 가리킵니다. 성도들이 전도와 기도가 결실을 보아 한 생명이 예수를 믿어 하나님 자녀로 거듭나는 과정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필요한 교회의 수고가 있습니다. 먼저는 말씀 정립의 수고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갈4:19에서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했습니다. 당시 갈라디아 교회는 잘못된 비진리에 빠져 있었기에 바울의 해산의 수고란 바로 그들에게 다시 바른 복음을 가르치는 것을 뜻했습니다. 복음을 알지 못하면 구원을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다음에 해산의 수고란 기도하는 일입니다. 계12:2에 "이 여자가 아이를 배어 해산하게 되매 아파서 애써 부르짖더라" 고 했습니다. 이렇게 교회나 성도는 기도해야 하는데 그래야 하나님 앞에 새롭게 변화됩니다. 즉 말씀과 기도의 원리입니다. 이 원리는 딤전4:5의 "이는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 짐이니라" 하신 것과 동일합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되 예수의 복음을 잘 알고 열심히 기도해야 중생과 성화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수고 없이 영적으로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천국에서는 가자마자 변화도지만 우리가 처한 것은 기도의 수고를 통해 성령으로 임하는 지상의 하나님 나라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요16:21에 예수님께서 "여자가 해산하게 되면 그 때가 이르렀으므로 근심하나 아이를 낳으면 세상에 사람 난 기쁨을 인하여 그 고통을 다시 기억지 아니하느니라" 하신 말씀대로 이 지상에서 영적으로 거듭나고 성숙해 가는 그 해산함의 기쁨이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본문은 바로 이 수고에 대한 예표인 것입니다.
3. 여자는 남편을 사모하라고 하셨습니다.
여기 우리 영혼이 영성을 덧입는 또 하나의 중요한 원리가 나타납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는 세상을 사랑하지 않고 오직 신랑되신 예수만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이것도 아주 기본적인 의무사항입니다. 그러나 이 선언도 결코 쉬운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주님만을 사랑해야 한다는 이 같은 명령이 성경에 나타나는 이유를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역시 우리가 처한 곳은 에덴이 아니라 지상이 때문입니다. 이 지상에는 온갖 마귀의 시험과 세상의 유혹이 존재하는 곳으로 성도가 우리 주님만 사랑하며 산다는 것은 늘 힘쓰고 애쓰는 참된 믿음이 아니고는 불가능하기 대문입니다. 성도는 예수 남편 한 분만 사랑하게 되기까지 많은 영적인 수고를 해야 합니다. 그만큼 우리 인생은 하나님 앞에서 비뚤어져 있다는 결론입니다. 호세아의 아내 고멜처럼 진실로 주님만 사랑하기까지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여기 하와가 아담만을 사랑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처럼 우리 성도들도 오직 예수님만을 사랑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마지막. 여자는 남편이 다스리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기억해야 할 것은 이 질서는 가정의 질서일 뿐 아니라 나아가서는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의 영적 질서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입니다. 즉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맘에 맞는 온전한 신부가 되려면 이제는 자기 주권을 내려놓고 예수님 주권에 순복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부부가 한 몸이 된다는 것은 몸만이 아니라 마음까지도 하나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시 한번 묻는 질문이지만 하나님께서 구태여 이 말씀을 여기 선언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나를 내려놓고 주님의 뜻에 순복하기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라는 것을 암시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또한 우리의 주관이 그만큼 하나님 앞에서 강하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생각해 보세요. 천국에서 오신 하나님 아들이신 예수님과 세상의 죄인된 우리 인간과의 결합이 결코 순탄한 결합이겠습니까? 마치 개성이 강하고 고집이 센 남녀의 결혼이란 이미 갈등이 예고된 것이라고 할 수 있듯이 완악한 사람을 신부로 맞는 이 결합이 어찌 순탄할 수가 있겠습니까?
무슨 뜻입니까? 우리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뜻에 맞는 성도가 되기 위해 일생 동안 자기를 내려놓는 훈련을 계속해야 한다는 교훈입니다. 그렇지 않고사 어떻게 주님의 마음에 드는 신부가 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주시는 본문의 교훈은 한결같이 우리 성도들이 지상에서 애쓰고 힘써야 할 신앙적인 의무를 예표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그리스도의 마음에 맞는 참된 신앙을 수립할 수 없기 대문입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여자에게 내리신 말슴을 통해서 우리 그리스도의 신부된 성도로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배웠습니다. 즉 그리스도의 신부는 어떻게 부름 받고 어떻게 탄생되며 어떻게 성숙되고 어떻게 합당한 모습이 되는가하는 말슴이었습니다. 한 마디로 우리 지상의 성도들은 신앙적인 많은 수고가 분발이 있어야 한다는 결론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께서 성도에게 주신 이 의무를 깊이 깨닫고 실천하여 그리스도의 마음에 맞는 아름다운 신부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 : 한국강해설교연구원
글쓴이 : 운영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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