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설교 모음

[스크랩] 아담에게 저주 선언

하나님아들 2014. 6. 24. 17:11
제목:아담에게 저주 선언
본문:(창3:17-19)
주요내용:육체순종론
작성자:한성진(합동총신졸)
자료출처:http://cafe.daum.net/agaser

요 약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선언하신 저주에서 육체에 영성을 입어야 할 의무를 발견한다. 육체가 영성을 입어야 할 이유는 먼저 육체는 주님보다 세상을 더 가까이 하려는 속성 때문이다. 다음은 육체는 타락 이후 그 역할을 감당치 못하기 때문이다. 다음은 육체로서 헌신하지 않으면 은혜를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다음은 육체의 죄악된 속성 때문이다. 다음은 영혼의 영성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연약하고 죽는 육체에 도움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약속하신 대로 육체에 충만히 은사를 덧입어야 한다.

설 명

◎ 육체가 은사를 입어야 할 이유

육체가 은사인 영성을 입어 하나님을 바로 섬김


1. 주님보다 세상을 더 가까이 하려함
네 아내의 말을 듣고(17절)

2. 영적으로 변질되어 그 역할을 못함
실과를 먹었은즉(17절)

3. 육체로 힘써야 효력이 생김
수고하여야 소산을 먹음(17절)

4. 죄악의 속성
가시덤불과 엉겅퀴(18절)

5. 영혼에도 도움이 됨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18-19절)

6. 육체의 연약과 죽음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19절)

(본문)
17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18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너의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19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창3:17-19)


(강해)
이 시간에는 '아담에게 하신 저주'라는 제목입니다. 본문은 지난 시간에 이어 인류의 시조 아담이 하나님의 율법인 금단의 열매를 따먹고 저주를 받고 있는 장면입니다. 아담이 범죄만 하지 않았더라면 가족 부양에 있어서 수고도 없고 죽음도 없었을 텐데 사람들이 오늘도 이 벌어먹고 사는 문제와 죽음 때문에 얼마나 고생이 많습니까?
그런데 본문의 말씀 역시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지상의 성도들이 천상과는 달리 신앙생활에 있어서 애쓰지 않으면 안 되는 또 하나의 영적인 원인을 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타락으로 지상의 땅도 황폐해졌지만 인간의 심령 밭 역시 황폐할 대로 황폐해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우리가 지상을 사는 동안 육신의 생활을 위해 얼굴에 땀을 흘려야 할뿐 아니라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힘써야 영적생활이 유지됨을 보여줍니다.
그럼 우리가 아담처럼 항상 노력하여 신앙생활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우리는 아담처럼 주님보다 세상을 더욱 가깝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17절에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라 했습니다.
여기에 아담의 불명예가 나타납니다. 아담은 먼저 지음을 받은 자로서 또 하나님께로부터 선악과 금단 명령을 직접 들은 자로서 아내로 하여금 마땅히 유혹 당하지 않도록 교육해야 했을 뿐 아니라 먹은 후에도 마땅히 회개하도록 선도해야 옳았었습니다. 그러나 아담은 그 영예로운 역할을 감당하지 못했습니다. 도리어 하와의 장 중에 빠져들어 같이 선악과를 먹었고 나중에는 그녀에게 죄까지도 전가했습니다. 여기서 안타까운 것은 아담이 인간적인 애정 때문에 아내의 말을 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담의 마음은 하나님보다 아내에게 더 가까웠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바로 우리 인간의 마음이란 사실입니다. 이처럼 인간의 마음은 주님을 사랑하다가도 자칫하면 주님보다 세상을 더 가깝게 여깁니다. 이것이 큰 문제입니다. 우리가 몸과 마음을 다 바쳐 하나님을 바로 섬기려면 상당한 오랜 과정이 필요합니다. 일생을 걸쳐서 비로소 완성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마음이 세상을 향해 나가는데는 그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일생이 아니라 양심이나 체면 등의 약간의 제재를 거치면 하루 아니 한 시간 아니 1분도 안 걸립니다. 이것이 인간의 마음의 상태라는 점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죄인의 마음도 되지만 성도의 마음이기도 하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창조물이 틀림없고 하나님의 자녀요 성령의 전이며 그리스도의 신부이고 하나님께 쓰일 도구임에 틀림없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세상이 더 가깝고 세상과 마귀의 말을 더 잘 들으니 대단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육체의 이런 속성을 가리켜 성경은 마귀적이요 세상적이요 정욕적이라고 표현했습니다(약3:15).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육체에 각종 은혜를 부어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보혜사 성령님을 우리에게 허락하여 주셨습니다. 사30:20-21에 "주께서 너희에게 환난의 떡과 고생의 물을 주시나 네 스승은 다시 숨기지 아니하시리니 네 눈이 네 스승을 볼 것이며 너희가 우편으로 치우치든지 좌편으로 치우치든지 네 뒤에서 말소리가 네 귀에 들려 이르기를 이것이 정로니 너희는 이리로 행하라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분이 누구시겠습니까? 우리 곁에 와 계신 보혜사 성령이십니다. 그래서 그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가 감동을 받고 깨우침을 받고 도우심을 받아 마음을 하나님께 온전히 바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 말을 더 듣는 아담의 속성이 있기 때문에 항상 신앙생활에 노력해야 합니다.

2. 우리가 아담처럼 계속하여 수고할 이유는 신앙적으로 변질되었기 때문입니다.

17절에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하셨습니다.
이처럼 아담은 금단의 과일을 먹고 하나님처럼 선악을 아는 일에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안 떠야 할 눈이 떠진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하나님처럼 하나님이 알아서 해주실 일까지도 내가 하나님 자리에서 모든 일을 하려고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내가 모든 것을 염려하고 계획하고 판단하고 심판하고 주관하고 하나님이 앉으실 마음의 왕좌에 내가 앉아 있습니다. 이것이 선악과를 먹은 독의 결과입니다. 하나님께 맡길 일을 다 내가 알아서 하니 얼마나 고달픕니까? 이 눈은 하나님의 은혜로 감겨져야 옳습니다.
부부간에도 남의 하는 일에 눈을 뜨면 고달픕니다. 아내가 음식을 어떻게 해주든지 그것이 최고로 맛있는 줄 알고 먹으면 가정이 화목합니다. 아내도 마찬가지입니다. 잘하든 못하든 남편을 신뢰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같이 신학 나온 부부가 목회하기 가장 어렵답니다. 교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신학교 졸업한 사람은 목회를 해야지 목회에 대하여 너무 잘 알아도 은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눈도 뜰 것은 뜨고 감길 것은 감겨야 행복합니다. 그런데 아담이 선악과를 먹고 안 뜨일 눈까지 뜨였으니 어떻게 합니까? 하나님께 맡기면 하나님께서 오죽이나 다 알아서 해주실 텐데 눈이 잘못 뜨여 하나님께서 하실 일까지 다 걱정하고 있으니 큰 불행을 자초하고 만 것입니다. 이것을 가리켜 불신앙이라 부릅니다. 그러므로 이 선악과의 독의 끈질긴 유혹을 이기기 위해서 말씀과 성령으로 늘 충만함을 입어야 합니다.

3. 수고하지 않으면 영적 수확이 나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17절 하 반절에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하셨습니다.
아담의 타락은 필연적으로 땅을 비롯해 모든 피조물에게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래서 범죄 이후 피조물들은 하나님의 자녀들과 함께 탄식하며 만물의 회복의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롬8:19-22). 그런데 타락 이전에는 지력이 좋아서 수고하지 않아도 풍성한 수확물들을 생산해 내었습니다. 그 효력은 대단해서 아마도 지구상에 수백 억은 물론이고 수천 억 이상의 인류도 먹여 살릴 수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제 수고하지 않으면 땅이 식물을 내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 '수고하여야'란 '슬픔 중에, 고통 중에'라는 뜻입니다. 이 말은 원치 않지만 얼굴에 땀이 흐르도록 고되게 수고의 떡을 먹어야만(시127:2) 먹을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 영혼도 날마다 신앙생활에 힘쓰고 애통하면서 애쓰지 않으면 심령은 침체되어 성령의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만약 육체의 취향대로 산다면 영성은 완전 침체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 수고가 의미하는 대로 애통하며 수고하며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부르짖는 신앙생활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선언하셨듯 이 일은 종신토록 계속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어제도 그랬다면 오늘도 그래야 하고 내일도 그래야 하고 천국에 갈 때까지 이일은 계속되어야 하고 서로 서로 격려하며 열심 내어 신앙생활할 수 있도록 격려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비로소 신령한 열매가 우리 심령에 맺히게 됩니다.

4. 우리가 영적 생활에 수고해야 할 이유는 가만있으면 더 큰 문제가 열매 맺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죄악의 속성이 심령에 나기 때문입니다.

18절에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하셨습니다.
아담이 타락한 후의 땅에 형편은 지력이 떨어졌을 뿐 아니라 잡초가 무성한 것입니다. 잡초만이 아니라 가시덤불과 엉겅퀴까지 내었으니 그 밭에 어떻게 열매가 있을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여기 가시덤불과 엉겅퀴가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는 이것을 세상의 죄악과 염려와 재리의 유혹이라고 해석해 주셨습니다(마13:22). 히12:15에도 "너희는 돌아보아 하나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있는가 두려워하고 또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고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러움을 입을까 두려워하라" 고 했습니다. 이 쓴 뿌리는 바로 마음의 죄악을 가리킵니다.
이렇듯 우리 심령은 조금만 관리하지 않으면 죄악의 가시덤불 쓴 뿌리 잡초로 가득해진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육체의 소욕이 드러나서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대적합니다. 아무리 어제 깨끗한 심령일지라도 오늘 방심하고 등한하면 그 심령에서 인간이 튀어나오고 죄가 튀어나옵니다. 지금은 제초제가 나와서 한결 농사짓기 쉬워졌지만 농사란 잡초와의 전쟁이라고 할 만큼 잡초 뽑기가 힘들었습니다. 특히 여자분들 밭에 김매다가 허리 다 굽지 않습니까? 뽑고 나면 또 나오고 뽑고 나면 또 나오고 그 번식력이란 놀라운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들도 심령밭의 죄악의 잡초와 싸워야 하는데 언제까지입니까? 아담에게 말씀하신 대로 종신토록입니다. 우리가 천국 가면 그 때는 그렇게 고생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지상에 거하는 한 계속해야 할 일입니다. 하루라도 하지 않으면 우리 심령 밭에 죄악의 가시가 나오고 맙니다.

5. 육체의 수고를 통해 심령에 은혜를 공급받기 때문입니다.

18-19절 후반절에 "너의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그랬습니다.
여기 땀을 흘려야 겨우 얻어지는 밭의 채소는 거저 주시는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도 좋고 또 영생하는 낙원의 실과와는 잘 대조되고 있습니다. 이제는 육체의 수고 없이는 그나마도 공급받지 못합니다. 이처럼 우리가 신앙생활에 열심해야 심령이 부요해집니다. 이것이 육신으로 심지만 신령한 것을 거둔다는 말씀입니다(고전15:44).

마지막. 인간의 심신의 연약성과 종국성 때문에 우리는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19절에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하셨습니다.
이는 인생의 마지막 여정이 죽음의 길임을 보여줍니다. 시90:3에 "주께서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시고 말씀하시기를 너희 인생들은 돌아가라 하셨사오니 주의 목전에는 천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경점 같을 뿐임이니이다" 했습니다. 히9:27에도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 하나님의 명령을 거부할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인생 길은 심신에 있어서 미련하고 약하고 둔하며 질고와 위험에 노출되어 있으며 날로 쇠하여 갑니다. 그러한 우리가 하나님의 귀한 사명까지 맡았으니 어떻게 합니까? 우리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혜와 은사를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지혜도 지식도 영분별도 예언도 방언도 통역도 능력도 신유도 믿음도 교회도 가정도 학교도 병원도 나라도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항상 자신의 부족을 고백하면서 능력을 덧입혀 주시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결론>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아직 지상의 성도입니다. 그러기에 아담처럼 끊임없이 노력하지 않으면 영적 생활이 불가능합니다. 우리가 누리는 하나님 나라는 강한 믿음생활을 통해서 성령으로 임하는 하나님 나라입니다. 이 땀 흘려 수고하므로 승리하는 삶의 원리를 깨달아 영육 간의 생활에 승리하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출처 : 한국강해설교연구원
글쓴이 : 운영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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