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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여호와란 무슨 뜻인가?

하나님아들 2014. 5. 28. 17:34
엘로힘`과 `여호와`(야훼)

원문 이해의 중요성

성경의 원어는, 누구나 알다시피, 구약은 히브리어, 신약은 헬라어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글이나, 그것에 담긴 생각이 원어 그대로 다른 나라 말로 전달되는 것은, 일정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현재 지구상의 6천여 가지 언어들 중, 그 어떤 언어 사이에서도 이러한 제약이 완벽하게 극복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옮긴말은 원래말의 대강 뜻만 전달해줄 뿐인 것입니다. GBT(지구촌성경번역회)라는 국제적인 선교단체의 통계에 의하면, 21세기(2001 2100년)로 넘어오기 전에, 성경은 이미 2천여 가지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었지만, 지구촌에는 아직 복음서의 일부조차도 접하지 못한 종족이 2천 종족도 넘는다고 하니, 과연 언어란 참 신비롭고도 오묘한 것입니다. 언어, 특히 성경의 원어는 연구하면 할수록 그 뜻이 깊고 감동적이어서, 잠시라도 거기서 관심을 뗄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지구촌의 모든 언어에서, 낱말들은 두서넛, 대여섯 또는 그 이상이 서로 짝 또는 어휘장(語彙場)을 형성하면서 그 뜻을 미묘하게 분담하는, 일종의 의미 관계망(sense relation network)을 이룬다고 할 수 있습니다. 더구나, 구약성경 39권의 히브리어 원문들에 사용된 약 8,800여 개의 단어들과, 신약성경 27권의 헬라어 원문들에 사용된 약 5,800여 개의 단어들은, 서로 번역대응관계 이상의 의미관계로 얽혀 있는데, 이들을 다시 영어나 한국어 등 다른 말로 옮길 때는 그 원어(原語, source language)의 뜻그물(意味網) 구조와 번역목표언어(target language)의 뜻그물 구조를 양쪽 다 잘 알아서 최선의 대응어를 찾아야 합니다. 이것은 좋은 번역을 위해 필수적인 기초가 될 뿐 아니라, 성경의 원저자 및 편집자이신 하나님의 말씀에 포함된 오묘한 의미소(意味素, sememe)의 금맥(金脈)을 찾는 방법이라 할 수 있어, 연구자들에게 엄청난 은혜와 감동의 샘이 됩니다. 우리는 이 과업을 먼저 하나님의 두 가지 이름으로부터 시작하고자 합니다.

창조주 하나님

창조주 하나님에 해당하는 한자어 또는 중국어는 `神`, `天神`, `天主`, `上帝` 등이지만, 구약성경이나 유대인들의 히브리어로는 `엘`(El) 또는 `엘로아`(Eloah) 및 그 복수형 `엘로힘 (Elohim)`과 `여호와(Jehovah) 또는 야훼(정확한 히브리음은 Yehwah)`의 두 가지가 따로 구분되어 쓰인다. 전자(前者)는 창세기 1장 1절 이래 구약성경에 2550회 사용된, 창조주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강조하는 이름인데 비해, 후자(後者)는 창세기 2장 4절 이래 구약성경에 6823회 사용된, 창조주 하나님의 `피조물과의 관계`(특히 사람과의 언약관계) 또는 그분의 `자존성(自存性, 출 3:14)` 즉 `스스로 계심`을 강조하는 고유명사이다. 그리고, 전자는 이른바 `장엄복수형 어미(語尾)` {-im}이 결부되어 `삼위일체 하나님`(Triune God)을 가리키는 용어로 볼 수 있으며, 그 약어(略語) El과 함께 꼭 `(전능하신) 하나님`만을 가리키지는 않고, 이방신(異邦神) 또는 세속적인 신들을 가리키기도 한다(출 18:11, 34:15, 레 25:2, 신 4:28, 6:14, 7:4, 11:16, 12:2, 30, 31, 13:2, 28:36, 31:16, 32:37 등 모세오경에만도 15회). 하나님의 진짜 고유명사인 후자에 대하여는 유대인들 자신이 함부로 발음하기를 꺼리는 기휘어(忌諱語)로 간주하므로, `주`(主, Lord, Master)를 뜻하는 `Adonai`라는 보통 명사로 대치하여 읽는 경우가 많아, 구약성경에 561회나 사용된 보통 명사 `Adonai` 중에도 `야훼(여호와) 하나님`의 고유명사 대신에 쓰인 명사가 아닌지를 낱낱이 확인해 보아야 할 지경이다. 특히, 후자는 그대로 또는 그 접미약어(略語) -yah나 접두약어 Yeho-로써 다른 말과 결부되어 하나님의 성품이나 활동을 나타내는 복합명칭 또는 하나님에 대하여 어떤 태도나 행위를 수행한다는 뜻의 고유명사로 많이 쓰였으니, 예컨대 다음과 같은 이름들이 그러하다.

①여호와 엘로힘(창세기 2:4, `창조주이신 여호와`) ②엘 엘로힘 여호와(수 22:22, `전능하신 하나님 여호와`) ③여호와 이레(창 22:14, `스스로 준비하시는 여호와`) ④여호와 닛시(창 22:14, `승리의 깃발이신 여호와`) ⑤여호와 라파(출 15:26, `우리를 치료하시는 여호와`) ⑥여호와 메캇디쉬켐(출 31:13, `우리를 거룩케하시는 여호와`) ⑦여호와 샬롬(삿 6:24, `평강이신 여호와`) ⑧여호와 체바오트(삼상 1:3, `萬軍의 여호와`) ⑨여호와 로이(시 23:1, `나의 목자이신 여호와`) ⑩여호와 살레이(시 18:2, `나의 반석이신 여호와`) ⑪여호와 치드케누(렘 23:6, 33:16, `우리의 義이신 여호와`) ⑫여호와 샴마(겔 48:35, `거기에 임재하고 계시는 여호와`); 그리고, ⑬아비야(삼상 8:2, 왕상 14:1, `야훼는 아버지`) ⑭엘리야(왕상 17:1, `야훼는 나의 하나님`) ⑮예레미야(렘 1:1, `야훼께서 멀리하셨다/높이셨다`) 여호나단(대하 17:8, 느 12:18, 삿 18:30)=요나단(삼상 13:2, 3, 16, 31, `여호와께서 주심`) 여호람(왕하 8:16, 20, 21, 29, 대하 21:16)=요람(왕하 8:16, 9:24, `여호와는 높고 존귀하심`) 여호사밧(왕상 15:24, 대하 18:1, 20:1, `여호와께서 심판하심`) 여호수아(출 17:9, 3:11, `여호와께서 구원하심`) 여호야다(삼하 8:18, `여호와께서 아심`) 여호하난(대상 26:1, 대하 17:13, `여호와는 은혜로우심`) 등의 인명 속에서, 그리고 할렐루야(시 146:1, 10, `여호와를 찬양하라`)라는 관용어에서 하나님의 진짜 고유명사 또는 두 번째 이름을 찾아볼 수 있다.

한편 이들에 비해, 하나님의 첫 번째 이름 `엘로힘`(Elohim)이나 그 약어(略語) `엘(El)은 아랍어로는 `알라`(Allah)로 번역되며, ①엘 엘르욘(창 14:20,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②엘 셔터이(창 17:1, 28:3, 35:11, 출 6:3 등, `전능하신 하나님`) ③ 엘 벧엘(창 35:7, `벧엘에 계신 하나님`) ④엘 깁보르(사 9:6 등, `능하신 하나님`)⑤엘 칸나(출 20:5, 34:14, 4:24, 5:9, 6:15 등, `질투하시는 하나님`) ⑥엘 미스타테르(사 45:15, `스스로 숨어계시는 하나님`)등의 수식어 붙은 복합명칭에서, 그리고, ⑦벧엘(창 12:8등, `하나님의 집`) ⑧이스라엘(창 32:29등, `하나님과 겨룸`) ⑨브니엘(창 32:31, `하나님의 얼굴`) ⑩미카엘(민 13:13등, `하나님과 같음`) ⑪사무엘(삼상 1:20등, `하나님께서 들으심`) ⑫다니엘(겔 14:14, 20, 단 2:13 등, `하나님께서 심판하심` ⑬임마누엘(사 7:14,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심`) 등의 합성 명사들에도 나타난다.

인간적 호기심이 초래한 혼돈

그런데, 창조주 하나님의 이 두 가지 이름이 같은 책 <창세기>에서 (1:1 2:3, 2:4 49:18) 서로 번갈아 쓰이거나 뒤섞여 쓰인 것을 처음 발견하고, 이 사실에 근거하여 창세기가 적어도 두 가지의 근원자료로부터 합성된 문헌이라고 생각한 것은 1780년대의 프랑스 의사 쟝 아스트뤽(Jean Astruc)이었다. 곧 이어서 독일 신학자 아이히호른(J. G. Eichhorn)은 그 생각을 자기 저서 <구약성서 입문> (1783)에서 창세기 제1장에서 출애굽기 제2장까지에 적용하여 이른바 `모세 이전(以前)의 두 자료 J문서, E문서`라는 개념을 만들었고, 다시 얼마후 데베테(De Wette)라는 신학자는 자기 논문(1805-6)에서 <신명기>가 요시아왕 때(BC 621년) 대제사장 힐기야가 예루살렘 성전에서 발견하고 종교개혁(구약성경 왕하 22장 참조)에 사용한 문서였다며, 이른바 `D문서`라는 용어까지 만들었다. 또 얼마 후, 프리드리히 블레크(F. Bleek)라는 학자의 <창세기 고찰(1836)> 등과 헤르만 후프펠트(H. Hupfeld)라는 학자의 <창세기의 자료(1853)> 등을 통하여 `제사법전`을 가리키는 `P문서` 개념까지 생겨 이른바 `PEJD 문서설`로 정립되었다가, 마침내 율리우스 벨하우젠(J. Wellhausen)의 <육경(六經, hexateuch)의 구성(1876)>, <이스라엘 역사 개론(1878)> 등에서 헤겔의 변증법 철학과 다윈의 진화론 과학에 기초한 문서설 신학이 확립되고, 그것이 영미 신학계에서 주로 가르쳐짐으로써, 처음에 창세기의 하나님의 두 가지 이름에서 비롯된 인간적 호기심이 거대한 신학적 물결로 바뀐 셈이다. 영미 신학계에서는 그밖에도 하나님의 고유명(`Jehovah`) 번역 문제나 `God`의 남성편향적 대명사화 비판(즉, He, His, Him으로 대명사화하기를 거부하는 여성신학적 흐름)이 있었고, 또, 한국 신학계에서는 한국 나름대로 `하나님/하느님`의 신명(神名) 논쟁을 30년 가까이 펼쳐 왔거니와, 이제는 한국어대사전에서 표준국어(`하느님`) 외에 한국교회들의 관습(`하나님`)을 인정하는 차원에서 타협되었다(전택부 1985, 박찬욱 1985, 서정욱 1987 등 참조).
출처
결정성경 사이트
출처 : Original Stone 無飾 原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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