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그분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 구원의 복음을 듣고서 그분을 신뢰하였으니 또 너희가 그분을 믿고서 약속의 그 성령으로 인침을 받은 것이니라.14 이는 값 주고 사신 그 소유를 구속하기까지 우리의 유업의 보증이 되사 그의 영광을 찬양하게 하려 하심이니라.](에베소서 1:13,14)
성경에서 그리스도의 영이 없는 사람은 죽은 사람이라고 말씀하신다. 로마서 8:9을 보면 [그러나 하나님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 안에 있지 아니하고 성령 안에 있나니 이제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의 사람이 아니니라.]고 말씀하고 있다. 아담이 타락하면서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린 이후 인간은 모두 영이 죽어서 태어나기 때문이다(창세기 5:3). 모든 자연인들은 육신은 살아 있고, 인격의 주체인 혼도 살아 있지만, 영은 죽었기 때문에 결코 하나님과 교제할 수 없다.
그들은 죄 가운데 태어나고, 죄 가운데 살며, 죄 가운데 죽어야만 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정확한 형상](히브리서 1:2上)이시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고, 우리가 그분을 믿고 영접한 순간 우리도 [하나님의 아들들](요한복음 1:12)이 되어,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것이다.
즉 죽었던 영이 살아나는 것이며, 이것이 바로 영이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이때 우리의 혼은 구원받는다. 혼은 "자아"이고, 인격의 주체이며, 나 자신인데, 이 혼이 구원받아(베드로전서 1:9)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날 때 하늘나라로 가는 것이다. 육신은 단순히 땅에 묻히겠지만, 구원받은 사람의 육신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공중으로 오실 때 부활할 것이다(고린도전서 15장).
영이 거듭난 사람만이 한 영으로 존재하시는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다.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야만,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로써 모든 것을 간구함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다. 혼이 구원받은 그는 하늘에서의 영생이 보장되어 있다. 육신이 부활하게 될 그는 또한 주께서 재림하실 때 펼쳐질 왕국에서 유업을 받게 된다. 그러나 몸의 구속을 받기 전까지는 하나님께 몸을 드려 헌신해야 하고, 아직 죄의 세력과 싸워야 하는 과제가 남아 있는 것이다.
"구원의 영원한 보장에 대한 확신"을 갖는 것은 신약성경의 가장 중요한 교리들 중 하나이다. 개인의 구원에 관하여 신약성경에서 다루고 있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 바로 이 "구원의 확신"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아 새롭게 태어난 다음 가장 중요한 사실은, 거듭난 사람이 그가 영원히 구원받았다는 사실과 영원한 생명을 현재 소유하고 있고, 그 영생은 결코 사라져 버리거나 죽거나 그로부터 떠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구원의 확신이 있는 신실한 그리스도인만이 [하나님께서 그 사랑하시는 이 안에서 우리를 받아들이시어](에베소서 1:6), 우리를 [자기 아들의 형상과 일치하게 하시려고 또한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를 많은 형제 가운데서 첫태생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롬 8:29)는 사실을 알고 있다.
거듭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영적으로 도와주려고 할 경우 구원의 확신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구원의 확신이 없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 장사, 부활, 피의 속죄를 증거하기보다는 그들의 경험을 나누는 것을 더 소중하게 여기기 때문에 큰 문제가 되고 있다. 교회에 다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스스로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하고, 또 그렇게 되기를 바라고 있지만 그들이 구원받았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거듭난 사람은 이 사실을 알 수 있다.
요한복음 1:13上을 보면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런 것들을 씀은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며]라고 말씀하신다. 구원받는 것은 기적적인 변화이다.
행위를 의지한다면 아무리 옳은 행위를 많이 해도 구원을 확신할 수 없다. 왜냐하면 행위를 계속해야만 하고 그 수준을 맞추도록 노력해야만 할 뿐만 아니라 그 행위의 수준은 계속 변하기 때문이다. 즉, 어떤 사람이 자신을 구원하기 위해 자신의 행위에 의존하고 있는 상태라면 구원받은 사실을 모르는 것이 당연하다. 그 사람은 결코 알지 못할 것이다. 구원받은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구원받기 위해 그들 자신의 행위를 믿은 사람들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갈보리 십자가에서 이루어 놓으신 구원계획을 받아들이고, 그분의 보혈을 개인적으로 자신에게 적용시킬 줄 아는 사람들이다.
구원의 확신을 갖는다는 것은 구원받았다는 사실과 언제 어디에서 갑자기 죽게 될 경우라도 즉시 하늘로 간다는 사실을 절대적으로 확신하는 것이다. 이것이 종교인과 신실한 그리스도인과의 차이점이다. 하나님의 생명은 영원하시기 때문에 구원을 받았다는 것은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게 되었다는 말이다. 다시 말하면 주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적으로 아는 것이다(요한복음 17:3).
의롭게 되기 위해 ‘자기 의’를 의존하는 사람은 결코 구원의 확신을 가질 수 없다. 그 자신의 양심이 진리를 말하지 않는 자신에 대해 증거하기 때문이다. 자기 의를 주장하는 사람은 자신을 의롭게 하기 위해 자신이 행한 행위를 의존하는 구원받지 못한 죄인이기 때문이다. 그는 양심으로 인해 구원의 확신을 고백하지 못한다. 자신의 양심이 아직도 하나님께서 요구하신 것을 바치지 못했다고 자신에게 말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요구하신 것은 죄 없는 사람에 의해 갈보리 십자가에서 완성된 완전하고 유효한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대속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그들의 개인의 구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구원의 확신을 갖는다. 구원의 확신의 근거는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는데 있다. 구원의 확신이 없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지 않는데 있다. 그리고 자신들의 감정에 근거를 두기 때문이다. 사탄은 우리의 감정을 조정하고, 감정에 영향을 미치도록 만든다.
예를 들면 사탄은 성령을 모방하거나, 성령 침례를 모방하거나, 아니면 사도 시대의 은사들을 모방한다. 만일 구원의 확신을 얻기 위해서 자신의 감정만을 바라본다면 시간만 낭비하는 것이다. 감정은 날씨와 같이 변덕이 심하기 때문이다. 건강, 날씨, 주위 환경, 조건 등이 우리의 감정에 영향을 끼친다. 어느 날 잠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구원받지 못한 것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누구든지 확실하게 구원받았다면 그런 느낌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또한 구원받은 것처럼 느끼면서 일어날 수도 있다. 그러나 구원받지 못했다면 그 느낌조차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일 때 실제적으로 감정적인 전율을 느낀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와 관련된 아무런 느낌도 없다. 사람들의 감정과 느낌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 구원의 영원한 보장의 성경적 근거는?
Ⅰ. 성령님의 증거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함께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거하시거니와](롬 8:16)
사람이 회개하기 이전에 성령님께서는 그에게 죄와 의와 다가올 심판을 깨닫게 하시지만, 거듭난 사람 안에서는 영적인 평안과 현재 그가 확실하게 주 예수 그리스도께 속했음을 확신케 하는 내적 평안을 주신다. 갈라디아서 4:6에서는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의 영을 너희 마음속에 보내시어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게 하셨느니라.]고 확증하고 있다.
성령님께서는 믿는 사람이 하나님 안에 있으며, 하나님께서 그의 안에 계심을 증거하신다. 에베소서 1:13의 [그분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 구원의 복음을 듣고서 그분을 신뢰하였으니, 또 너희가 그분을 믿고서 약속의 그 성령으로 인침을 받은 것이니라.]는 말씀대로이다.
죄인이 말씀을 듣고(요한복음 5:24), 그가 복음의 진리를 믿으면(갈라디아서 1:8,9), 이것으로 인해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세주로 신뢰하게 된다(로마서 10:3). 그가 이러한 일들을 행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 죄인에게 영적인 할례를 행하시고(골로새서 2:11,12), 그를 인 치신다. 그는 [값 주고 사신 그 소유를 구속하기까지](에베소서 1:14) 보호되며, [구속의 날까지](에베소서 4:30) 인 치심을 받았다. 성도의 몸은 값 주고 산 바 되었으며(고전 6:20), 그의 육체적인 몸은 하나님의 소유가 된 것이다(고린도전서 6:19).
비록 그리스도인의 혼은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구속되었지만(에베소서 1:7), [값 주고 사신 그 소유](에베소서 1:14)는 휴거 때 구속될 것이다(고전 15:50-56). 또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유업의 보증이 되사](에베소서 1:14), 성령님을 보내 주실 것을 약속하셨고(갈 3:14), 성령님께서 우리의 몸 안에 내주하셔서 우리의 양자됨을 증거하신다(로마서 8:16).
우리는 이러한 사실로 인해서 하나님의 양자로서 입양이 되었기 때문에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요한일서 3:1-3) 진정한 아들로서 우리에게 주어지는(갈라디아서 4:1-6) 복된 유업을 받을 것을 확신할 수 있다. 이 유업의 일부는 죄 없는, 33세 반의, 썩지 않을 남자의 몸이다. 그렇기 때문에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은 몸의 구속을 기다리는 "값 주고 사신 그분의 소유"인 것이다.
Ⅱ. 하나님의 말씀의 증거
그리스도인은 구원의 확신의 근거를 하나님의 말씀에만 두어야만 한다. 이것은 절대무오하고, 변할 수 없는 근거이다.
구원을 의심하는 모든 사람들은 한 가지 이상의 성경을 붙들기 때문에 구원을 의심한다. 구원의 근거를 말씀에 두지 않고 경험에 두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은 절대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한 가지 성경만을 신뢰하지 않는다. 그들은 서로 모순 있는 여러 개의 성경을 참조한다. 이 때문에 그리스도의 지체들은 올바른 교리를 고수하지 못하고 듣기 좋은 말만 하는 교사들에게 의존하여 진리로부터 돌아서게 된다.
구원의 확신이 없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한 말은 신뢰하면서도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런 것들을 씀은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며](요한일서 5:13上),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자기 안에 그 증거가 있고](요한일서 5:10上)라고 말씀하신 하나님은 믿으려 하지 않는다.
거듭난 사람은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적으로 믿고 영접한 사실과 영적으로 출생한 사실을 확신할 수 있다. 이 시대에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세주로 영접하여 거듭난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말씀이 적용되어야 한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요한복음 10:28,29에서 [28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그들은 영원히 멸망하지 않을 것이며, 또 아무도 나의 손에서 그들을 빼앗지 못할 것이니라. 29 그들을 나에게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더 위대하시니, 아무도 내 아버지 손에서 그들을 빼앗아 갈 수 없느니라.]고 확증하신다.
요한복음 10:28에서는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의 손에서]라고 말씀하셨는데, 요한복음 10:29에서는 [내 아버지 손에서] 아무도 양들을 빼앗아 갈 수 없다고 말씀하신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손이 곧 아버지 하나님의 손이다. 이 두 분의 손은 실은 같은 한 분의 손인 것이다. 당신이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그 어떤 사람도, 심지어 마귀도 그 사람을 하나님의 손에서 빼앗아 갈 수가 없다.
그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손 안에서 절대 안전하다는 말이다. 그 사람은 결코 주님의 손에서 빼앗길 수가 없는 존재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손에 의해서 보호받고 있는 정도가 아니라 그분의 손이 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구원받는 순간 그리스도의 몸의 일부가 되었기 때문이다.
고린도전서 12:13의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한 성령에 의하여 우리 모두가 한 몸 안으로 침례를 받았으며 또 모두가 한 성령 안으로 마시게 되었느니라.]는 말씀대로이다.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손의 일부이기 때문에 그분의 손에서 빠져나가려도 해도 이미 불가능하다.
교리적으로는 이미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 있고, 그분께서 그 사람 안에 들어와 계시기 때문에 영생을 소유하였고, 또 그렇기 때문에 영원히 멸망하지 않게 된 것이다. 요한복음 10:28의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그들은 영원히 멸망하지 않을 것이며, 또 아무도 나의 손에서 그들을 빼앗지 못할 것이니라.]는 말씀은 참으로 소중한 말씀이다. 구원받은 사람의 영원불멸을 이보다 더 강력하게 보장할 수 없다.
Ⅲ. 사랑의 증거
그리스도인들은 거듭나서 구원받고 피로 씻겨진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을 사랑해야 한다. 요한일서 3:14의 [우리가 사망으로부터 생명으로 옮겨간 것을 아노니, 이는 우리가 형제들을 사랑하기 때문이라.]는 말씀은 거듭난 성도들에게 매우 소중한 말씀이다. 이는 거듭난 체하는 모든 사람과 관련을 맺고 사랑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사랑의 대상은 그리스도인인 체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진정한 형제들이다. 많은 사람이 신앙고백을 거짓으로 하는 경우가 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기가 예수의 이름으로 행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마태복음 7:22,23에서 [22 그 날에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예언하지 아니하였으며, 주의 이름으로 마귀들을 쫓아내지 아니하였으며, 또 주의 이름으로 많은 경이로운 일들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라고 말하리니, 23 그때 내가 그들에게 분명히 말하되 ‘나는 너희를 전혀 알지 못하니, 너희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고 하리라.]고 명령하셨다.
하나님의 영으로 거듭난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창조되었다(에베소서 4:21-24). 그리하여 새로운 애착, 새롭게 좋아지는 것, 새롭게 싫어지는 것, 새롭게 사랑하는 것, 그리고 새롭게 증오하는 것들이 나타난다.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님은 애매모호하지 않고, 분명하기 때문에 우리에게 구원의 확신을 갖게 한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왜 그리스도인임을 고백하는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죽을 때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가? 이는 그들이 마귀의 고소에 귀를 기울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거나, 교리적으로 잘못 적용하기 때문이다.
Ⅳ. 하나님의 징계의 증거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자녀들을 연단시키시기 위해서 사랑의 채찍으로써 징계하시는 분이시다.
히브리서 12:11을 보면 [징계가 당시에는 즐겁지 않고 슬픈 것 같으나, 후에 그로 인하여 훈련된 자들에게는 화평한 의의 열매를 맺느니라.]고 말씀하고 있다. 징계라는 것은 그 당시에는 항상 슬프고 고통스럽고 피하고 싶은 것이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미래에" 더 좋은 것으로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요한복음 13:7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시몬 베드로에게 [내가 하고 있는 일을 네가 지금은 몰라도 이후에는 알게 되리라.]고 말씀하셨다. [이후에는]이라는 것이 바로 주님의 방법이다.
욥도 고난 받기 전이 아니라 [후에] 그것에 대한 보상을 받았다. 인내로 견디는 자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충분하게 보상해 주신다. [후에] 그들이 맺게 되는 것은 "화평한 의의 열매"이다. 이것과 관련해서 야고보서 3:17上에서는 [그러나 위로부터 오는 지혜는 첫째, 순수하고 그 다음은 화평하며, 친절하고, 양순하며, 자비와 선한 열매들로 가득하고]라고 우리에게 알려주신다. 첫째가 순수함이고, 둘째가 화평이다. 이 둘이 적절히 조화가 되어서 본문에는 "화평한 의의 열매"라고 묘사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있어 징계라는 것은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해 주어지는 것이다.
갈라디아서 5:22,23에 있는 "성령의 열매"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그분의 자녀에게 때로는 육체의 가시를 주셔서 겸손케 하시며(고린도후서 12:7), 어떤 때는 열매를 맺으시고자 칼로 가지를 치는 아픔을 주시기도 하신다(요한복음 15:2). 그리고 그분의 말씀으로 더러워진 심령을 깨끗케 하시며(요한복음 15:3) 필요하면 채찍을 드셔서 그분의 사랑하시는 성도들이 셋째 하늘에 소망을 두고 주 예수 그리스도만을 바라보도록 하신다(골로새서 3:1-3).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징계는 그분의 자녀로 입양된 그리스도인을 훈련시키는 매우 소중한 도구이다. 고난 받는 그리스도인들이 모두 열매를 맺는 것은 아니며, 하나님의 징계를 받는 모든 사람들이 그 대가로 보상을 얻는 것이 아니다. 오직 "그로 인하여 훈련된 자들", 즉 이 모든 고난과 징계를 "인내"로 견딘 사람들만이 보상을 받도록 열매를 얻는 것이다.
이것은 모든 세대의 모든 성도들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영적인 원리이다.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징계를 잘 견디어 낸다면 그는 정금같이 단련되어 나올 것이다. 야고보서 1:3,4에서는 [3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을 너희가 앎이라. 4 그러나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가 온전하고 잘 갖추어져 아무것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특별히 시험을 견뎌내는 자에게는 "생명의 면류관"이 준비되어 있다(야고보서 1:12). 또한 그리스도인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을 받는다면,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다스리게 된다는 약속도 주어져 있다(디모데후서 2:12).
Ⅴ. 구원을 의심하는 이유?
1.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요한복음 5:39을 보면 [성경을 상고하라. 이는 너희가 성경에 영생이 있다고 생각함이니, 그 성경은 나에 관하여 증거하고 있음이라.]고 말씀하고 있고, 요한복음 12:50에서는 [나는 그분의 계명이 영생임을 아노라. 그러므로 내가 말하는 것은 무엇이나 아버지께서 나에게 말씀하신 것을 그대로 이르는 것이라."고 하시더라.]고 말씀하고 있다. 또한 요한복음 17:3에서는 [영생은 이것이니, 곧 사람들이 유일하시고 참 하나님이신 아버지와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옵니다.]라고 확증하고 있다.
만일 나 자신이 성경적 근거에 의해서 주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세주로 영접하여 확실하게 구원받았다면, 하나님께서 자신의 믿음을 성장시켜 주시고 바른 성경 말씀을 믿을 수 있게 도와주시도록 기도해야만 한다.
사탄은 믿음과 실행에 있어서 최종권위인 절대 무오한 성경에 상충되는 다른 권위들(변개된 성서들)을 등장시켜 구원의 확신을 갖지 못하도록 혼란케 하고 있다. 하나님의 권위에 대한 믿음을 파괴시키는 주범은 그 주체가 기독교 교육이건 아니건 간에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게 만드는 교육이다.
2. 세상의 영향 때문이다.
교리적으로 견고하게 서지 못한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영향 때문에 구원의 확신을 갖지 못한다. 이는 이 세상의 신인 사탄이 믿지 않는 자들의 마음을 어둡게 하여 복음의 광채가 비추지 못하도록 끊임없이 방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적인 영향력 하에 있을 때 하나님과 말씀, 기도에 대한 열심이 사라지고 또다시 하나님께서 하신 약속들을 의심하게 된다. 영적으로 깨어 있지 못할 때 의심하게 된다. 교리적으로 견고하게 서 있지 못하면 교리의 풍조에 밀려 언젠가는 실족하게 된다(에베소서 4:14). 영적으로 게으른 그리스도인들은 둔감해져서 구원의 확신과 기쁨을 잃어버리기 쉽다. 구원을 잃어버릴 수 없지만 구원의 기쁨과 구원에 대한 확신은 잃어버릴 수 있다.
구원의 확신을 갖는 확실한 방법은 두 주인을 섬기지 않는 것이다. 세상과 하나님을 같이 섬기지 않는 것이다. 두 가지 권위를 두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기록하신 한 가지 성경을 갖고 그 성경만을 믿는 것이다. 누구든지 구원의 확신을 갖는다면 보다 더 능력 있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다. 구원의 확신을 갖는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구원의 확신에 대해 말씀하신 그 말씀을 단순히 믿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구원받았다는 사실을 알 때 겸손하게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로만 구원이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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