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설교 모음

[스크랩] 가짜 복에 속지 마라.

하나님아들 2012. 8. 31. 18:04

예수가좋다오

고난을 통해오는 복.

글 / 扈一麥  牧師

 

 어느 교회의 표어가 '초대교회로 돌아가자'라고 쓰여 있기에 목사님께 질문을 하였습니다. 초대교회로 돌아 가자는데 무슨 특별한 의미라도 있습니까? 그런데 목사님 대답에 제 마음을 무척 무겁게 하였습니다. 이유는 사도행전의 교회처럼 교인들끼리만 서로 돕고 내것 네것이 없는 교회 공동체를 만들어 보겠다는 포부였습니다. 모든 성도들을 목사의 추종자를 만드는 일명 쉘 목회를 하겠다는 것이였습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고난은 빼고 물질적인 것을 통용하여서 공산당 같은 세계를 꿈구고 있었습니다. 마음에 무엇인가 억누루고 있어서 오늘의 자료를 통하여 고난이 없는 복이 무엇인지? 주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아보려고 합니다. 이 자료는 이미 로마서 강해를 통하여 미리 써놓은 글이기도 합니다. 

 

시편23:4절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내가 사망의 골짜기를 다닐지라도...초대 교회의 믿음의 성도들은 사자 밥이 되고 화형을 당하는 등 육체적으로는 사망의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안위하심을 받았기 때문에 순교를 할 수 있었습니다. 성경을 기록한 목적은 성도는 이 세상에서 나그네입니다.

 

 나그네는 주인에게 핍박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성도가 평안하고 모든 일이 범사에 잘 된다는 것 물론 좋은 일이기는 하지만 성경에 나오는 믿음의 선진들이나 초대 교회에 순교자들은 결코 지금과 같은 풍요를 누리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물론 다 그렇다는 말씀은 아닙니다.

 

 성도의 삶은 그리 순탄하지 않습니다. 그런 삶을 살면서 이 세상에서 어떻게 견딜 수 있느냐면 성경을 보면서 믿음의 선진들이 나와 같은 형편에 처해 있을 때 하나님께서 어떻게 섭리 하셨는가를 보면서 마음에 위로를 받았다는 말씀입니다. 그 위로는 바로 내 육체는 사망의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내 영혼은 반드시 구원해 주실 것이라는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교회는 기복주의에 만연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성경을 통해서 안위를 받을 수 없습니다. 성도는 이 세상에서의 복을 누리고자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 천국의 복을 소망하면서 살아가고 있는데 지금 교회는 천국의 복 보다는 당장 눈앞에 있는 이 세상에서의 복을 추구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조금 잘 못되면 실망을 하고 스스로 정죄에 빠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제 주변에서는 교회도 못 나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버지가 목사였고 그 형제가 몇이나 목사인데도 그 형편이 아주 나빠지니까 신앙생활을 포기해 버렸습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그 형제를 붙들어 주는 형제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바로 기복신앙에 깊이 빠져 있기 때문에 그 형제를 가슴으로 담아 줄 수 있는 그리스도의 심장을 가지지 못한 것입니다.

 

 성경을 통해서 육적인 것을 보지 마시기 바랍니다.물론 제가 전부 무시하라고 드리는 말씀이 아닙니다. 성경은 영적인 말씀이지 육적인 말씀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성경이 얼마나 오묘하냐면 그것을 육적으로 보면 전부 육적으로 보이고 영적으로 보면 전부 영적으로 보인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분별하면 내 영혼에 대한 확실한 보장이 되어 있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어떤 고난이 다가오더라도 내가 성경을 통해 안위를 받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소망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다니엘을 사자 밥에서 구해 주신 것은 우리가 똑 같이 사자 밥이 되었을 때 구해 주신다는 것이 아닙니다. 실제 초대 교회에 수많은 순교자들은 사자 밥이 되고 말았습니다. 구약의 사자는 사단의 의미하는 것이며 그것에서 다니엘을 구해 주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신약의 사자는 사단입니다. 그 사단에게서 내 영혼을 다니엘과 같이 구원해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을 보면서 우리는 천국에 대한 확실한 소망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다니엘을 사자 밥에서 구해 주신 하나님이 다니엘과 같은 믿음을 가진 나를 사단의 입에서 나를 구해 주시지 않겠습니까? 그것이 믿음입니다. 그 믿음이 있는 성도는 이 세상에서 고난이 다가오더라도 천국을 소망하면서 담대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기복주의에 물든 교회는 아주 작은 고난에도 교인이 더 이상 신앙생활을 할 수 없게 만들어 버립니다.

 

 로마서는 구원론입니다. 천국에 대한 확실한 소망을 가지고 믿으라는 말씀입니다. 성경을 통해서 안위를 받고 이 세상에서는 인내 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정말 영광이 넘치는 천국을 소망하고 살아가는 것이 바른 성도의 모습입니다.

 

로마서15:5절을 보면 “이제 인내와 안위의 하나님이 너희로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 서로 뜻이 같게 하여 주사”

 

성경을 통해서 안위를 주십니다. 또한 믿음의 선진들이 정말 극한 상황에서 어떻게 인내 하였는가를 성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인내의 사전적인 뜻은 괴로움이나 어려움을 참고 견딘다는 말입니다. 지금 한국 교회는 너무도 풍요롭습니다. 물론 개척 교회나 아직도 자립을 하지 못한 교회는 어려운 가운데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만 그러나 대형교회들을 보면 너무 풍요로움이 넘치고 있습니다. 어려움과 괴로움이 없는 신앙생활은 어쩌면 율법주의 사상에 미혹되어 있는 것일 수 있습니다.

 

 어느 정도 어려움이 있는가를 우리는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물론 성경에 보면 왕도 있고 아브라함 이삭 야곱과 같이 풍요로운 생활을 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 다수의 믿음의 선진들은 정말 많은 괴로움을 당했고 어려운 가운데서도 믿음을 지키며 살아왔습니다. 그런 환경에서 인내 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성도를 절대로 정죄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를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저렇게 사니까 어려움을 당한다고 함부로 정죄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누가 그렇게 살기를 원하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어느 사람이 교회 안에서 폼 나게 신앙생활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요셉을 감옥에 집어넣으신 것도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전후 사정이야 어떻든 사람들의 눈에는 죄를 져서 감옥에 가 있는 것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누가 비난할 수 있습니까? 사람들의 눈에는 그가 자기 남편이 있는데도 왕의 권력에 굴복을 해서 간통을 하고 또한 그 자녀를 임신하게 되어서 결국 자기 남편을 죽게 만든 사람입니다. 사람들의 눈으로 볼 때는 정말 한심하기 짝이 없는 여자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가 믿음으로 왕의 족보에 들어가고자하는 마음을 하나님만 아셨습니다. 그일이 성취되기 위해서는 고난이 뒤를 따랐습니다.

 

그러나 그를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을 낳게 하시고 그 솔로몬이 성전을 짓고 또 잠언 전도서 아가서등 성경을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밧세바는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기록된 여자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지금 눈앞에 보이는 것만을 가지고 판단을 하고 정죄를 하지만 실제 하나님의 섭리는 우리의 생각을 뛰어 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사람은 그렇게 생각합니다. 저 사람은 뭔가 잘못한 것이 있으니까 어려움을 당하고 또 잘못한 것이 있으니까 벌을 받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그런 것으로 벌을 받고 그대로 보응을 받는다면 이 세상은 벌써 멸망을 당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때로는 그대로 보응을 하십니다. 그러나 보응을 하시는 것도 그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고난을 주시는 것입니다. 욥을 사랑하시니까 욥에게 고난을 주셨지 만약 욥을 사랑하지 않았다면 욥은 이 세상에서 순전하고 정직한 사람으로 살다가 멸망 가운데 떨어지고 말았을 것입니다. 사람의 눈으로 볼 때 욥에게서 죄를 찾지 못할 정도로 깨끗하게 산 욥도 하나님께서 고난을 주셨습니다. 사람이 볼 때는 완전하게 보여도 하나님의 기준으로 볼 때는 욥도 역시 죄인이었다는 말씀입니다.

 

 욥과 같은 사람도 그런 고난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과연 욥과 같이 살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이 세상 사람이 살아 온 이후로부터 욥과 같은 사람은 없었습니다. 아니 앞으로도 그런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 욥도 고난을 당했는데 다른 사람의 고난을 보면서 정죄를 한다면 그는 율법주의에 빠져 있는 사람입니다.

 

 욥은 하나님의 사랑을 몰랐습니다. 그것을 가르쳐 주시기 위해서 순전하고 정직한 욥이지만 고난을 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이 시대도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자들에게는 고난을 주십니다. 우리말에 예쁜 자식 매 한 대 더 때리고 미운 자식 떡 하나 더 준다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자기가 사랑하시는 성도들에게는 더 모질게 어려움과 괴로움을 주시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베드로전서4:1절을 보면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이는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가 죄를 그쳤음이니”

 

 예수님께서도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육체의 고난을 당하지 않아도 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본이 되게 하시려고 육체의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육체의 고난을 당하지 않으려 하고 있습니다. 아주 작은 고난도 인내 하지 못하고 기도원을 찾아다니고 목사를 찾아다니면서 기도를 부탁하는 참으로 한심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조그만 고난에도 참지못하고 주여! 삼창하고 왜 나만 괴롭게 하느냐고 대항을 합니다.

 

 그러면서 순교한다고 합니다. 자기 아주 작은 육체의 고난도 못 이겨내는 사람은 어떻게 순교를 합니까? 초대 교회의 성도들은 얼마나 어려운 생활을 했는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물론 지금 이 시대 똑 같이 그렇게 하라는 말씀은 아닙니다. 그러나 최소한 카타콤을 보고 그곳에서 어떠한 삶을 살았는가를 안다면 지금 이 시대 자기들에게 다가오는 어려움을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인내하시기 바랍니다. 히브리서10:36절을 보면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함이라”

 

 인내가 왜 필요합니까?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그 아들을 보고 믿는 자 마다 영생을 얻는 것입니다. 믿음을 가지고 있는 성도는 이 세상에서 어려움과 괴로움이 다가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 이유는 믿음과 행위는 서로를 대적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인내가 필요합니다. 성경을 기록한 목적은 예수그리스도를 잘 믿어서 이 세상에 고난과 어려움이 없이 행복하고 풍요롭게 살다가 천국에 가라고 기록한 것이 아니라 예수그리스도를 믿게 되면 진리는 이 세상의 사상과 대적을 하기 때문에 진리를 가진 자는 세상에 의해 어려움과 괴로움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말씀입니다.

 

 진리는 비 진리와 대적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당연히 어려움을 당하게 되어 있고 때로는 극한 고난에 처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나를 안위하신다는 것을 성경을 통해 우리가 깨닫고 천국을 바라보며 소망을 가질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고난을 당하셨다면 나 또한 역시 이 세상에서 고난을 당해야 내 안에 진리가 바로 서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내할 수 있게 해 주시고 또한 우리 마음에 안위를 주시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시는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한 마음을 품게 하시기 위함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육체의 고난을 당 하시면서도 그 인내를 이기신 것 같이 또한 하늘의 영광을 바라보신 것 같이 너희도 역시 그리스도를 본받아 인내를 이루고 안위를 받아 하늘의 영광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여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우리에게 인내를 주시고 안위하심을 주시는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게 하시고 그리스도와 함께 한 마음을 갖게 하시기 위함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하시는 이유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로마서15:6절을 보면 “한 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노라”

 

 우리가 세상에서 인내 하고 성경의 안위로 하늘의 소망을 갖게 하는 것은 바로 한 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씀이냐면 구원을 받아야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신다는 말씀입니다.

 

 내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내 입술로 아무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할지라도 내가 구원을 받지 못한다면 그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면 반드시 내가 구원을 받아 천국에 가야 합니다. 물론 성도는 자기 육체로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것은 그 영광을 통해서 다른 영혼이 구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미 앞서서 말씀을 드렸지만 이렇게 영광을 돌리게 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라는 말씀입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어려움과 괴로움을 참고 인내를 하면서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보면서 믿음의 선진들의 교훈을 보면서 안위를 받게 하고 하늘을 향해 소망을 갖게 하시는 것도 하나님의 섭리요 그런 내 자신이 바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사람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 우리도 역시 이 세상을 살면서 나로 인하여 내 이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도록 그를 구원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로마서15:7절을 보면 “이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과 같이 너희도 서로 받으라”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으셔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셨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체가 바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이 세상 모든 죄가 없어지고 내가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 이방인은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지 않았다면 우리 이방인은 모두가 사망을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심으로 우리 이방에 복음의 빛을 비추어 주셨고 그 복음을 믿게 하심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가끔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열심이 자기가 유대인줄 착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그리스도가 아니면 구원에서 제외된 이방인 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누구에게서 받으셨습니까? 요한복음6:44절을 보면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

 

 내가 지혜가 있어 예수님 앞에 나아간 것이 아닙니다. 정말 성도들이 바로 깨달아야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나를 예수님께 보내 주시지 않았다면 나는 복음의 비밀을 깨달을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청세 전부터 나를 예정 하시고 나를 예수님께로 보내 주셨기 때문에 내가 지금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어느 누구도 예수님께 갈 수 없습니다. 내가 무엇을 해서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가장 미련하고 지혜가 없는 나를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끌어 내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심으로 내가 구원을 받고 그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내가 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일에 내가 한 일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 사람만이 믿음이 있는 성도요 예수님께서 받으셔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사람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라도 예수 그리스도께 올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로마서를 통해 우리가 구원론에 대해 확신을 갖게 하는 것 자체가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로 그리스도 예수를 믿게 하시기 때문에 하늘에 대한 소망을 갖고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도 이 시대 많은 사람들은 자기가 무엇을 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다 나쁘다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하나님께서 어떻게 영광을 받으시는 가를 알고 난 이후에 또 우리 육체를 통해 영광을 돌리는 일이 순서에 맞는 것입니다.

 

고난이 오면 고난을 즐거워 하세요. 그래야 참다운 성도입니다. 하나님의 복은 물질만 풍성해 지는 것이 아니라 고난도 이기는 성도가 되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를 그렇게 훈련하십니다. 고난을 통과한 훈련병은 또 다른이를 훈련 시킬 수 있는 자격이 있습니다. 모두 그리스도의 날까지 승리 하시길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 : ╋예수가좋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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