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상식 이야기!!

[스크랩] 배경을 알면 성경이 보인다.

하나님아들 2012. 8. 31. 13:10

예수가좋다오

“배경과 문화 알면 성경이 보입니다”
히브리 관점 성경읽기 권하는 장재일 목사
배경을 모르면 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2012년 02월 20일 (월) 양봉식 sunyang@amennews.com
성경의 1차 독자는 이스라엘이다. 성경은 히브리 문화와 지리적 배경을 둔 가운데 쓰였다. 이것은 히브리적 관점을 정확하게 이해하면서 성경을 읽으면 하나님의 뜻을 오해하거나 왜곡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유대배경과 히브리적 관점으로 성경읽기를 권하는 ‘이스라엘 밥아카데미’(www.israelacademy.com) 원장 장재일 목사를 만났다. 유대적 배경의 성경읽기의 유익과 최근 출간된 <히브리적 관점으로 다시 보는 마태복음>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본다. -편집자 주-

 

   

△ 성경의 배경이 중요한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그 동안 배경을 잘 알지 못하면서도 많은 이들이 설교를 해 왔고, 또 그 설교를 듣고 구원을 받고 은혜를 받았습니다.

“배경을 몰라도 성경은 성령님의 의해 그 의미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지혜와 이해력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성경의 근본적 의미를 더 깊고 확실하게 파악할 수 있는 것은 배경을 알 때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말하는 성경의 문자적 텍스트를 가지고 성경의 의미를 다 파악할 수는 없습니다. 텍스트가 성경의 의미 전달 매개체라는 건 맞습니다. 그러나 텍스트에는 반드시 배경이 있습니다. 배경의 문화가 다른 상태에서 제대로 이해하지 못합니다. 사람들의 문화배경을 바탕으로 성경은 기록됐습니다. 그래서 성경의 온전한 내용을 아는 성경 배경의 이해가 필요합니다.”

△ 특별히 이스라엘밥아카데미 연구소를 설립한 동기가 있었습니까?

“목회일선에서 물러난 한국의 어느 목사님이 은퇴 기념으로 이스라엘 성지순례를 왔을 때 겪은 일입니다. 목사님 부부를 모시고 여행안내를 하고 호텔에 돌아왔는데 저녁식사를 해야 하는 목사님이 식사는 하지 않으시고 의자 한 쪽에 앉아 어깨를 들썩이며 우셨습니다.

 

무슨 문제가 있는가 해서 여쭈어보았지만 대답은 하지 않으시고 계속 우세요. 다음 날 아침에 뵈었는데 아침 식사도 하지 않으신 거예요. 사모님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어제 이스라엘 땅을 돌아보고 오셔서, 자신이 그 동안 성경을 가르치고 설교 한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고 슬퍼서 그러신다고 하셨습니다. 목회할 동안에는 이스라엘을 한 번도 가지 않았다가 막상 은퇴하고 이스라엘에 와서 보니 30년 넘게 성경을 해석하고 설교했던 것이 이스라엘의 삶과 너무 다르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 말을 듣고 내가 할 일이 무엇인지를 깨달았습니다. 한국 목회자들에게 히브리적 관점을 획득하고 성경의 백그라운드를 이해하는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것이 이스라엘밥아카데미를 세운 계기가 됐습니다.”

△ 배경을 모르는 상태에서 성경을 읽었을 때 일어나는 문제가 무엇입니까?

“배경의 이해가 없거나 부족하면 하나님의 뜻에 왜곡이 일어납니다. 히브리적 관점은 그들이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들입니다. 또 그 지리와 환경, 날씨를 아는 것은 더 풍성한 성경 이해를 갖게 됩니다. 절기에 대한 이해를 예를 들어보면 한국교회에서 놓치는 것은 절기의 측면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절기들이 히브리적 사고방식의해서 하나님 경외와 구원을 드러냅니다. 부활절은 예수 그리스도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 유월절에서 출발되었습니다. 부활절의 개념은 유대인들의 유월절 근거로 나왔음에도 기독교는 부활절 자체만을 지킵니다. 그래서 유대적인 의미나 세레머니를 제쳐 놓습니다. 유대적인 뿌리를 단절시킨 기독교적인 절기로 변형시켰습니다. 부활절의 축제의 외형적인 것만 신경을 쓰면 그 본질적인 의미를 잃어버립니다.”

△ 기독교적인 것이 부족하다는 의미인가요? 기독교는 예수로부터 출발하고 있고 그분은 이미 구약의 예언의 성취로서 오신분이기 때문에 그림자인 절기를 애써 지키거나 큰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던데….

“초기 유대 그리스도인들은 절기를 지켰습니다. 지금의 메시아닉주들도 절기를 지킵니다. 그것은 성경이 말하고 있기 때문이고, 또 구원의 의미에서보다 하나님의 역사적 사건에 대한 경외함 가운데 지키는 것입니다. 유대교라서 배척하기보다는 좀 더 다른 차원에서 절기를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구약적인 것에 머물러서 지키는 절기는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모든 절기는 그리스도로 모아지고 있다는 점에서 하나님이 구원의 은혜와 풍성함을 통해 절기를 이해하면 됩니다. 신약으로 구약을 보는 습관이 있는 성경읽기를 히브리식 관점에서 보면 또 다르게 보입니다. 이것을 옳고 그름보다 풍성함이 더 비중을 두는 것을 말합니다. 초기 절기의 사고방식을 벗어나 우리가 원하는 대로 의미를 부여한 해석은 위험할 수 있습니다.”

△ 배경이 텍스트를 이해는 데 있어 전부는 아니지만 유익한 것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좀 더 구체적인 유익을 말씀하주시기 바랍니다.

“배경이라고 말하지만 영어의 백그라운드(background)라는 말이 더 깊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봅니다. 배경이 본질은 아닙니다. 밥(background of bible)아카데미가 하고 있는 일은 성경의 텍스트를 빛나고 풍성하게 하는 히브리 사람들의 사고방식 관점이나 의식에 담긴 의미를 이해하도록 돕습니다. 그 의미를 이해하고 본문을 보면 명확해지고 복음의 의미가 풍성해집니다.”

△ 유대인들이 말하는 하나님의 의미와 기독교인들이 말하는 하나님의 의미는 같습니다. 하지만 마음에 와 닿는 정도의 차이가 있다고 보는데, 어느 정도 차이가 있다고 봅니까?

“이스라엘 사람들의 하나님 경외감을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지만 우리가 보는 관점과 전혀 다릅니다. 가령 성전의 제사 중에 번제단의 불은 언제나 타야하고 그 번제단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는 직선으로 하늘로 올라가게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예루살렘은 비가 많이 오고 바람이 심하게 붑니다. 그렇다면 번제단의 불이 꺼지거나 연기가 곧바로 올라가지 않겠지요? 이방인들은 그럴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들은 비가와도 불은 꺼지지 않고 바람이 불어도 연기는 직선으로 올라간다고 말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말씀하셨기 때문이라고 대답합니다. 유대인들의 하나님은 경험되어진 역사적인 하나님이라면 이방인들의 하나님은 학습된 하나님이라는 점이 가장 큰 차이입니다.”

△ 원래 배경이나 지리에 대한 관심이 깊었습니까? 이스라엘의 배경이나 히브리 문화와 관련된 성경해석을 시도하는 분들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제가 시도하는 성경해석을 많은 분들이 해온 것은 사실입니다. 이스라엘에서 공부한 세대로 보면 3세대입니다. 1세대는 유태영 박사를 중심으로 한 분들이고 그 뒤를 이은 2세대, 그리고 지금의 3세대라고 봅니다. 접근하는 방식이 차이가 있고, 지금 3세대가 더 적극적이라고 봅니다. 밥아카데미는 단순히 지리적이거나 문화적인 배경만을 공부하지 않습니다. 아카데미에 오신 분들은 반드시 이스라엘에 현장학습을 합니다. 성지순례와는 차원이 다릅니다.

 

예루살렘 대학에서 성경역사 지리를 전공하고, 또 그곳에서 이스라엘로 오신 분들을 안대하면서 이스라엘을 2백 바퀴 돌았습니다. 이스라엘 안에 있는 땅, 공기, 바람, 흙, 나무 짐승, 일 년 돌아가는 사이클, 사람들의 행동방식을 경험했습니다. 2천년 전 사람들을 이해할 수는 없지만 그쪽 지역의 사람들의 성격들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현장감 있게 성경을 이해할 수 있고 그것은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서는 한국에서만 머물러 공부하지 않고 직접 이스라엘을 방문해서 성지순례의 길을 가지 않고 이스라엘의 정서를 경험하는 학습을 합니다. 이것은 매우 충격적이지만 성경을 이해하는데 아주 큰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 매우 효과적인 배경공부를 하고 있네요. 유대인과 이방인들의 하나님에 대한 인식의 차이를 줄일 수 있는 방법 중에 하나이기도 합니다. 유대적인 관점이 이방인들에게 전달되지 않은 이유가 단순하지는 않은 것 같은데….

“이런 문제는 복음이 이스라엘을 벗어나기 시작한 사도시대부터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복음은 유대적인 조건에서 나온 것이고 이방인인 그리스, 터키, 소아시아 사람들에게 히브리식 방식으로 설명하기가 어려웠습니다. 바울은 이점을 알고 있었고 변론도 했던 장면이 신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때도 어려움과 문제가 있었는데 2천년이라는 시간적 개념과 지역과 민족적 뿌리가 다른 환경에서 유대적 관점을 획득하는 것은 어려울 수 있습니다. 완전한 회복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가장 가까운 방향으로 가도록 노력은 해야 한다고 봅니다. 백그라운드를 다루는 목회자들이 거의 없고 단편적인 지식입니다. 이스라엘을 알 수 있는 방법은 이스라엘에서 오래 살아야 합니다. 그 분야에 대한 공부도 해야 합니다. 한국을 이해하기 이해서는 한국을 방문해야 할 뿐만 아니라 한국의 거리, 뒷골목, 시장, 가정집 유숙, 논, 정서 이해를 위한 평범한 사람들과의 만남이 있을 때 깊어집니다. 이스라엘에 가서 밀밭, 포도밭, 올리브 밭을 방문하고 그들의 바람, 햇빛, 이슬 같은 기후를 경험하고 나면 성경을 훨씬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또 하나님에 대한 히브리 사람들의 태도도 목격할 수 있습니다.”

△ 유대인들이 성경을 깊이 알면서도 왜 구약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지 못하는지 궁금합니다. 신약에서 표기하고 있는 성경은 모두 구약성경을 의미하고 있고, 그 구약만으로도 구원을 받았는데, 오늘날 이스라엘 사람들은 예수가 그들의 메시아인 것을 부인하고 있습니다. 구약을 잘 이하하면서 예수는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 때문이라고 생각합니까?

“예수님을 거부하는 데는 역사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사실 초기 유대인들은 예수 공동체를 유대적인 공동체로 인식하여 자기들과 같은 신앙으로 이해했습니다. 그런데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알게 된 계기가 로마를 향한 1차 반란 때였습니다. 예수 재림에 대한 이야기와 공동체 존속해야 하는 사명감이 예수 공동체에는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부활하고 승천하시면서 “살아 있어라 내가 곧 온다”라는 말씀을 남겼습니다. 예수 공동체는 그 말씀을 그대로 믿었고, 1차 반란 때 전쟁 상황에서 유대 민족적 관점에서 로마 항거 반란이지만 예수 공동체 같이 동참해야함에도 당시 펠라라는 곳으로 도망가 버렸습니다. 가장 초기적인 배신감을 느꼈습니다.

 

그 이후로 유대민족적인 측면에서 우리와 같은 신앙을 가지고 있다는 징후를 여러 발견합니다. 민족적 위험이 있을 때 같은 유대인이면서 유대인들 핍박한 이들이 유대기독교인들이었습니다. 로마가 기독교화 되면서 유대인들 핍박한 이들이 유대기독교인들을 포함한 기독교인들이었고, 가장 극열했던 때가 십자군 때입니다. 기독교인들을 통한 유대인들의 수난은 그들 가운데 기독교인들의 메시아에 대한 2천년의 역사적 감정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지 않습니다.”

△ 예수님을 거부하는 것은 역사적인 감정만이 아닌 듯합니다. 또 다른 이유가 있다고 보는데요?

“물론입니다. 역사적 감정은 물론, 실제로 이스라엘 사람들은 예수님에 대해 근본적으로 모릅니다. 선입관으로만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실제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면 그분을 메시아로 모셔 들입니다. 이스라엘에 가서 ‘예수님 믿으세요’ 하면 쳐다보지도 않고 절대 믿지 않습니다. 아버지도 형도 랍비인 유대인이 있었는데, 그는 모세오경은 탄나흐를 읽으면서 수많은 의문을 가졌지만 아버지나 형 랍비가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길가에서 히브리어로 번역된 신약성경을 전도용으로 책상위에 놓아 둔 것을(이방인들이 직접 주면 받지 않음) 가져가서 나중에 궁금해서 펼쳐보고 읽고 했답니다. 계속 읽다가 개인 스스로 읽고 메시아로 인정하고 믿었습니다. 구약 성경에서 해결 안 된 것이 예수에게서 해결 되고 그래서 믿게 된 것입니다. 대부분 그렇게 메시아닉주가 됩니다. 유대인들의 예수 거부는 예수를 잘 알지 못해서이기 때문에 예수님을 알 수 있도록 여러 방면에 도움을 주어야 합니다.”

△ 유대인들의 독특함을 무엇을 설명할 수 있을까요?

“한 마디로 정의하기가 어렵습니다, 아프리카 사람들의 독특함과 전혀 다릅니다. 그들은 책을 좋아하기 때문에 예수님을 전하는 방법을 히브리어로 된 예수님과 관련된 책을 공급할 수 있도록 하면 전도에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의 특징은 이것이 옳다 싶으면 주저 없이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어느 한 날, 한 순간에 유대인들이 전체적인 회심을 할 가능성도 있다는 것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 유대인들이 말하는 성령님과 기독교인들의 성령님에 대한 개념이 어떻게 다르다고 봅니까?

“한국교회는 습관적으로 ‘성령’이라고 할 때 영적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성령님을 이해할 때 신기한 일을 행하시는 것으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도와주는 분, 위로부터의 능력, 생각나게 하시는 분, 말할 수 있게 하시는 분으로 규정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한 가지가 빠졌습니다. 무엇을 위해서, 왜 도와주시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까? 히브리 사람들은 성령님을 ‘코데쉬 류하흐’라고 말합니다. 코데쉬는 거룩을 뜻하고 류하흐는 바람을 의미합니다. 즉 성령은 여호와의 바람입니다. 바람의 속성은, 보이지 않지만 나뭇가지의 움직임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우리 눈에 하나님이 보이는 않는데, 하나님이 계시는 증거는 성령님의 하시는 일을 통해서 나타납니다. 성령님의 속성 자체가 여호와의 바람입니다. 성령님이 하시는 궁극적인 것은 생각나거나 도와주시거나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위해 생각하게 하고 능력, 하나님의 존재하시는 것을 나타내시는 것이 성령님의 역할입니다. 영적인 사람은 하나님 나라를 드러내는 사람입니다. 히브리적 사고방식에서 영적 능력을 나타내는 것은 영적인 사람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결국 성령님께 붙들린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를 나타내는 사람이라고 이해하면 될 것 같습니다.”

△ 최근 펴 낸 <히브리적 관점에서 다시 보는 마태복음>이나 다른 책에 대해 소개 좀 해주시죠.

“성경의 역사와 문화적 배경을 토대로 성경을 해석해야 오류를 범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신약의 마태복음은 히브리인이 히브리적 관점에서 쓴 책입니다. 히브리적 세계관, 역사와 문화의 프리즘을 통해 투영된 마태복음을 조명하고 있습니다. <목사님 밥하고 설교하세요 - 유대인의 상징주의>, <밥하면서 보는 복음서이 유대적 배경> 모두 성경을 성경시대의 삶과 행동, 사고방식의 안목으로 풀어낸 책입니다. 예수님 시대의 문화로 줌인해서 보면 그동안 잘못 이해한 부분을 바로 잡을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참고]예수가좋다오의 자료는 배경사로 만들기를 힘쓰고 있습니다. 성경공부 모임도 [배경사적인 성경보기]를 합니다.ⓗ

출처 : ╋예수가좋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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