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을 따라서 행하라* 설교/양의섭 목사
[갈라디아서 5:13-26 13]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 14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서 이루어졌나니 15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 16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17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18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리라 19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20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21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23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25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26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노엽게 하거나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
1. 예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어느 교인이 차가 많이 다니는 교차로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통행량이 많은 길이어서 다음 신호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드디어 신호가 커졌습니다. 그런데 앞차가 출발할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경적을 울리고, 전조등을 번쩍였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좌우 차선의 차들은 다 출발했지만 다른 차들이 빠르게 달리는 바람에 끼어들지도 못했고, 결국 신호가 바뀌고 말았습니다.
몹시 화가 난 운전자는 창문을 내린 후 고개를 내밀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래도 화가 풀리지 않아 핸들을 여러 차례 내리치며 앞차를 향해 삿대질을 했습니다. 멀리서 이 광경을 보던 경찰관이 다가오더니 흥분한 이 차를 길가로 빼도록 했습니다. 항의했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운전면허증을 제시해야 했고, 한참 시간이 걸려서야 경찰이 교인에게 가도 좋다고 했습니다.
교인이 따져 물었습니다. “아니, 앞차가 신호에 움직이지 않아 소리쳤다고 이렇게 대해도 되는 거요?” 그러자 경찰관이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아까 선생님이 소리 지르고 핸들을 두드리는 것을 처음 봤을 때는 별 생각 없었습니다.
그런데 뒷좌석에 놓인 성경 찬송가, 그리고 뒤쪽에 붙어 있는 물고기 표식 스티커를 보고는 생각했습니다. ‘아, 도난 차량이구나!’ 그래서 선생님을 조사했던 것입니다. 미안합니다.” 무슨 소리인지 아직 감이 안 잡히는 분들에게 성령의 감동이 있기를 바랍니다.
2. 구원받았다는 것이 뭡니까? 이것저것 나열할 것이 많을 것입니다. 그런데 무엇을 말하더라도 구원 받았다는 것은 자유함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전에는 뭔가에 눌려 살았습니다. 어떨 때는 죄의식에 눌려 살았습니다. 때로는 불안함에 눌려 살았습니다. 두려움에 눌려 살았습니다. 어떡하나 어떡하나 하며 살았습니다. 이렇게 열심히 살아봐야 내 앞에 있는 거라곤 뻔한 것이라고 절망하며 살았습니다. 나 같은 게 노력해 봐야 뭐하냐 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내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 구원을 받은 후로는 그 모든 것에서 건짐을 받았습니다. 자유함을 얻었습니다. 오래 된 복음성가 가사처럼 ‘나 자유 얻었네 너 자유 얻었네 우리 자유 얻었네!’ 할렐루야! 갈5:1절도 이렇게 선포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은 모든 구속에서 벗어났다는 것을 말합니다.
한 마디로 내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것을 말합니다. 내 아버지가 하나님이신데, 그 하나님의 세계 안에서 내가 못할 게 뭐가 있습니까? 내 아버지 하나님은 진정 내가 이 세상에서 자유하기를 원하십니다. 종의 자식처럼 눈치 보며 살기 원치 않으시고, 당당하게 세상에서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주인 의식을 갖고 당당하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우리 주 예수님께서 여러분에게 자유를 주시던가요? 아직 그 자유함을 얻지 못했다면 여러분은 아직 진정한 구원함을 얻지 못한 것입니다. 자유함부터 얻으십시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눅4:18-19)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요8:36)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고후3:17
예수님은 우리를 자유케 하신다! 그러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고, 우리의 영원한 죄 값, 죄의 부채(負債)를 십자가에서 당신의 죽음으로 갚아주셨고, 그 결과로 우리를 자유하게 하셨습니다. 이 사실을 믿는 이가 하나님의 자녀요, 그에게 참 자유의 축복이 주어진 것입니다. 여러분의 영혼이 그 모든 죄악에서 자유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의식이 억눌린 세계에서 자유하기를 바랍니다. 할렐루야!
3. 이런 놀라운 자유가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내 마음대로 멋들어지게 살아볼까요? 가고 싶은 곳에 가고, 하고 싶은 것을 하고, 보고 싶은 것을 보고, ... 오늘 성경 본문이 이렇게 권합니다.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 무슨 뜻입니까? 내 자유, 내 권리라고 자기 욕심과 욕망을 채우는 데 그 자유를 쓰지 말고, 오직 자발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랍니다. 아무리 자기에게 권리가 있다 하더라도, 진정 하나님의 자녀라면 권리 주장, 목소리 높이는데 열을 내지 말고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랍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자기 권리 주장하려고 자기 목소리를 높이고 열을 내다간 피차 멸망할 수도 있으니 조심하랍니다. 이건 가정에서도 그러하고, 믿음의 공동체에서도 그러하고, 심지어 한 나라 안에서도 그러합니다. 권리 주장만 하는 가정은 결국 깨지고 맙니다. 서로 종노릇하라는 데도 ‘왜 못합니까?’하며 싸우는 믿음의 공동체, 역시 혼란에 빠집니다. 자기 권리, 자기 자유만, 자기 목소리만 높이는 나라, 역시 피차 멸망할 것입니다. 세계 경제가 또 다시 유럽의 부실한 나라들로 인해 휘청대고 있습니다. 그리스, 스페인, 포르투갈, 이태리 등 국가 부도 위기를 당한 나라를 보면, 그게 실감납니다. 위기임에도 국민들은 자기 권리를 주장합니다.
지난 IMF 때 우리는 자기 권리를 주장하기보다 서로 허리띠를 동여매고, 하나가 되어 장롱 깊숙이 숨겨두었던 금붙이들을 들고 나와 서로를 섬겨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IMF 위기를 극복한 자랑스러운 나라가 되었는데, 지금 유럽의 부도 직전의 백성들은 국민 권리 주장만 하고 있습니다. 위험한 일입니다. 무릇 건강한 공동체, 그것도 하나님의 공동체는 서로 종노릇하지 않고 자기 권리 주장만 하다가는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는 말씀을 유념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자유를 주신 우리 하나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서로 종노릇하라고 하십니다. 가정에서도 서로 종노릇하십시오. 교회에서도, 믿음의 공동체 안에서도 서로 종노릇하십시오. 그러면 자신에게 주어진 자유로 종노릇하며 살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맘만 먹으면 되는 것입니까?
4.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솔직히 말하면 내게 더 익숙한 것은 ‘육체의 소욕’입니다. 내게 더 쾌감을 주는 것은 ‘육체의 소욕’입니다.
전에 섬기던 교회에서 ‘서로 비방하지 말고 쑤군대지 말라’는 주제의 말씀 공부를 하는데, 어느 권사님이 그럽니다. “그런데 목사님, 솔직히 남을 씹어대는 것이 얼마나 고소한지 몰라요. 오징어 씹는 거 같아요.” 맞습니다. 나는 육체의 소욕을 따라갈 수 있다 없다? 있습니다. 왜? 나는 자유인이기에!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자유는 완벽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내 마음대로, 내 쾌감대로, 내 욕심대로, 내 육체의 소욕대로 더 재미있는 것을, 고소한 것을 따라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고민이 뭔가요? 이상하게도 나에게 또 다른 충동, 거룩한 충동, 성령의 감동이 주어집니다. 그냥 내버려두면 하고 싶은 대로 멋들어지게 살다 갈 것 같은데, 내 안에 거하시는 성령께서는 자꾸 내게 그게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안 된다고 하십니다. 우리 성도들이 가야할 길은 따로 있다고 합니다. 성령의 감동을 따르십시오. 설령 따르다가 실수하고 넘어지더라도 그에겐 은혜가 있습니다.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리라.” 무슨 소리입니까? 성령의 감동을 따르지 않고, 육체의 소욕을 따라간다면, 육체의 지배를 받고 산다면 우리는 어디에 있다는 겁니까? 율법 아래에 있습니다. 즉, 은혜의 세계가 아니라 법의 세계, 형벌의 세계에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감동을 따른다면 우리는 법의 세계가 아닌 은혜의 세계 안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은혜는, 비록 부족하고 모자라도 덮어주고 일으켜주는 은총의 역사입니다. 법, 법 하며 따지고 드는 세계가 아닙니다. 성령의 감동을 따르며 하나님의 은혜 안에 머물기를 축원합니다.
5. 그러면 육체의 일은 뭔가요? 19절 이하,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육체의 일, 즉 육체의 소욕을 따라가는 일들이 나열됩니다.
신학자 라이트훝(Lightfoot)은 이것들을 4 종류로 분류합니다. 첫째 그룹, 음행, 더러운 것, 호색, 뭔지 아시죠? 둘째 그룹, 우상 숭배, 주술, 설명이 더 필요한가요? 필요할 겁니다. 우상 숭배는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의지하고 숭배하는 것입니다. 반드시 절간에 가서 절하고 시주해야만 우상 숭배하는 게 아닙니다. 살면서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는 것, 더 사랑하는 것, 그게 우리 신앙의 세계에선 우상 숭배입니다.
자녀를 사랑하십시오. 그러나 그 자녀를 하나님 보다 더 앞세우지 마십시오. 꿈과 비전을 위해 열심히 사십시오. 그러나 그 꿈과 비전도 하나님 보다 더 중시하지 마십시오. 재물을 얻기 위해 열심히 사십시오. 그러나 그 재물을 하나님보다 더 좋아하지 마십시오. 왜 그런지 아십니까? 하나님보다 더 앞서갈 때, 더 의지하고, 더 열심 내고, 더 사랑할 때 그것들은 우상으로 변질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 우상을 치실 것입니다. 여러분이 정말 하나님의 사랑 받는 하나님의 자녀라면 말입니다.
여전히 멸망의 자식이요, 패역의 자녀라면 하나님께서 그렇게까지 하실 일이 없지만, 예수를 영접하여 온전한 하나님의 자녀, 성령께서 내주 하시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렇게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우상은 설자리가 없습니다. 주술(呪術), 점 보러 다니고, 무당 집에 기웃거리고, 비정상적인 것을 더 좋아하는 그런 생활, 역시 하나님께 죄짓는 것입니다.
언젠가 어느 점쟁이가 TV 에 나와 인터뷰하는데 손님이 많다는 것을 자랑하며 붙이는 말이 ‘교회 다니는 사람들도 많이 옵니다’합니다. 이 점쟁이가 왜 굳이 이 말을 했을까요? 사탄이 조롱하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것입니까! 심심풀이로? 믿지 않고 그저 즐기는 것뿐이라고? 친구가 가는데 동행한 것뿐이라고? 그게 다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행위입니다. 미래는 정해진 바가 없습니다.
나의 삶의 태도와 하나님의 은혜 속에 얼마든지 미래는 달라집니다. 이런 것은 모두 하나님께 범죄 하는 행위들로 육체의 소욕을 따라가는 생활입니다. 이런 것에 익숙해 있는 생활은 성령을 따르기 힘듭니다. 셋째 그룹, 원수 맺는 것, 분쟁, 시기, 분냄, 당 짓는 것, 분열함, 이단, 투기. 좀 더 구체적인 설명이 필요하죠? 다른 것들보다 이게 더 수가 많지 않습니까? 이것들은 모두 서로 연관되어 있는 것으로 마음속에 원수 맺음으로 서서히 그렇게 발전되어 가는 것들입니다.
마음속에 서운함이나 원한을 가지니 사사건건 분쟁이 생기고, 이 분쟁은 더욱 더 시기심으로 나아가고, 마침내 참지 못하고 상대방에 대하여 분을 내게 되고, 이것으로도 성이 차지 않아 자기편을 끌어 모으며 당을 짓고, 결국은 공동체 안에서 분열을 가져오며 하나님의 말씀에 위배되는 이단으로 발전하고, 서로 투기하는 지경으로 나아갑니다. 이런 죄를 짓지 않으려면 맨 처음, 시작 단계인 마음속의 서운함, 원수 맺는 일, 원한을 갖지 말아야 합니다. 있으면 빨리 풀어야 합니다.
그리곤 웬만하면 사랑으로 덮어주어야 합니다. 우리네 삶의 모든 근본 치료책은 사랑이 아닙니까!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벧전4:8) 요즘 왜 이리 사람의 허물이, 죄가 눈에 많이 띠는가요? 새삼스러운 게 아닙니다. 그 허물, 그 죄는 그 전부터 있던 것들입니다. 그런데 왜 요즘에? 예전에는 사랑으로 덮어주던 것들인데 요즘엔 안 덮어준다는 거겠죠. 성령의 사람에게 사랑 외에는 다른 아무런 해결책은 없습니다. 네째 그룹, 술취함, 방탕함, 뭔지 아시죠? 이 역시 더 자세한 설명이 필요한가요?
6. 이에 반하여 성령을 따를 때 생기는 열매가 있습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유명한 코미디언이었던 배삼용씨가 후배 코미디언 양종철의 결혼식에서 주례사를 이렇게 했답니다. “종철아, 내가 뭘 말하려는지 알지?” 그러자 신랑이 “네”라고 대답했습니다. 이에 그랬답니다. “그럼 그렇게 잘 살아. 주례 끝!”
사랑, 다 알지요? 희락, 그 사랑으로 기쁨이 넘치는 생활. 화평, 화목 하는 것. 오래 참음, 이를 위해 꾸욱 참는 것. 자비, 상대방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 양선(goodness), 앞의 자비(kindness)보다 좀 더 적극적인 자세. 충성, 일편단심. 온유, 친절한 것. 절제, 할 수 있지만 안 합니다. 이 모두 뭘 말하는 건지 아시죠? 그럼 그렇게 살면 됩니다. 성령님께 순종하여 살기만 한다면 이런 열매는 자연스레 맺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의 열매라고 말합니다. 그 사람이 성령의 사람인지 아닌지 어떻게 아십니까?
방언? 신유? 아닙니다. 이런 열매를 맺고 사는가를 보면 압니다. 방언을 유창하게 해도 이런 생활이 없다면 그는 성령 충만한 것이 아닙니다. 성령이 펄펄 끓는다 해도 당 짓기를 잘하고, 신경질 잘 내고 하는 이는 여전히 육체의 욕심을 따라 사는 이지, 성령을 따라 사는 이가 아닙니다. 성경이 분명히 말하지 않습니까?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다고!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노엽게 하거나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 성령을 따르십시오.
성령의 감동에 순종하십시오. 기도 많이 하고, 성령을 따라 행하지 않는다면 그 많은 기도가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성경 많이 읽고, 많은 깨달음을 가졌으나 성령을 따라 구체적으로 행하지 않으면 그건 모두 길가에 떨어진 씨앗들입니다. 성령을 따라 행하십시오. 늘 내 안에서 감동을 주시는 성령을 따라 가십시오!
7. 우리 하나님, 우리에게 자유를 주셨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로 우리에게 참 자유를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 모든 것에 대해 자유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라고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살아야 한단 말입니까? 이 유혹 많은 세상에서, 이 할 일 많은 세상에서, 댕기는 게 하나 둘이 아닌 이 세상에서 무엇을 따라가며 어떻게 살아야 한단 말입니까? 이를 위해 하나님께선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셨습니다. 이 보혜사 성령님은 결코 우리를 떠나지 않으십니다.
우리 안에 거하시며 우리에게 끊임없이 싸인을 보내십니다. 감동에 감동을 보내십니다. 이 성령의 감동만 제대로 따라간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 실패하지 않고 성공적인 성도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사랑, 희락, 화평, 오래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 성령의 9가지 열매가 아주 자연스럽게 맺힐 것이며, 내 주위 사람들이 행복할 것입니다.
성령을 따라서 삽시다. 자기 감정을 따라, 자기 욕망을 따라, 자기 자존심을 따라 살지 말고, 주의 영 성령을 따라 삽시다.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배려, 계획은 완벽합니다. 십자가로 구원하시고, 자유함을 주시고, 그 자유함으로 서로 섬기며 살아가는 길, 성령의 감동의 역사를 끊임없이 우리에게 베푸십니다. 그러니 이제부터 더욱 성령의 감동을 따라갑시다. 여러분에게 성령 충만함으로 권세와 은혜가 넘치기를 바랍니다. 도무지 이 세상에선 금지할 법이 없는 성령의 9가지 열매가 풍성히 맺히기는 성령의 사람으로 살다 가기를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은혜 설교 모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성령이 임하신 결과* (0) | 2012.08.29 |
---|---|
[스크랩] 셋이면서 하나인 하나님 (0) | 2012.08.29 |
[스크랩] 성령이 하시는 객관적 사역 (0) | 2012.08.26 |
[스크랩] 말의 중요성 (0) | 2012.08.18 |
[스크랩] 혀를 아름답게 가꾸기(목,금강의중 말에 대한 말씀) (0) | 2012.08.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