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6:22-27, “축복하는 말을 합시다.”
6:2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6:23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이렇게 축복하여 이르되
6:24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6:25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6:26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6:27 그들은 이같이 내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할지니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
오늘은 성도가 해야 할 말을 살펴보는 두 번째 시간입니다. 이 시간에는 “축복하는 말을 합시다.”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내일 새벽기도회는 오늘 밤에 초하루예배를 드리기 때문에 없는 관계로 “말”을 주제로 다룬 말씀을 오늘로써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번 한 주 동안, 말씀을 준비하면서 제 자신의 언어습관을 점검해보면서 반성하는 유익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번 기회에 우리가 사용하는 말들에 거룩한 변화가 나타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사망과 저주를 불러오는 악한 말들이 우리의 입에서 사라지고 생명과 축복을 가져오는 선한 말들만이 우리의 혀를 다스리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은 본문을 중심으로 성도가 축복하는 말을 해야 하는 이유들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그 이유를 살펴보기에 앞서서 먼저 우리가 “축복”이라는 낱말의 쓰임새를 잘못 사용하고 있는 부분이 있어서 언급하고 넘어가려고 합니다.
저도 그렇지만 우리들은 대부분 기도할 때나 말할 때, 하나님을 향해 “축복해주시옵소서”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어법상 바른 표현이 아닙니다. 본래 “축복”이라는 말은 “복을 빈다.”는 뜻으로 사람에게만 사용하는 것이지 하나님께는 사용해서는 안 되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하나님께 복을 빌 수 있지만, 하나님은 복을 빌 수 있는 대상이 없기 때문입니다.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은 복을 주시고 복을 베푸시는 분이지, 자기 보다 더 높은 대상을 향해 복을 비시는 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엄밀히 말하자면, 하나님께는 축복이라는 말을 써서는 안 되고 한문으로 내릴 강자를 써서 “하나님 강복하소서 ”또는 그냥 “하나님 복을 주소서”, “하나님 복을 베푸소서”라고 해야 옳은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축복하소서.”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이 매우 일반화되어 있기 때문에 그냥 사용해도 무방하지만, 그런 내용을 알고 사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럼, 성도가 왜 축복하는 말을 해야하는지 그 이유를 살펴보겠습니다.
첫 번째 이유는, 하나님께서 축복을 명하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중요한 지시사항을 전달하셨습니다. 그것은 제사장인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이스라엘 자손을 위해 축복할 내용을 일러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을 가리켜 흔히 “제사장의 축복”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므로 구약시대에는 아론의 자손인 제사장들만이 이스라엘 자손을 향하여 이와 같은 축복을 할 특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신약시대에는 벧전2:5과 2:9말씀에 근거하여 모든 신자가 다 제사장이므로 서로를 위해 축복할 수 있는 권리가 있고, 하나님의 명령을 받들어 축복해야 하는 것입니다.
벧전 2:5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벧전 2: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왕 같은 제사장으로서 오늘 민수기의 말씀을 가지고 여러분이 사랑하고 축복하고 싶은 가족들이나 어떤 사람을 위해 그들의 이름을 부르며 날마다 축복하시기 바랍니다.
가령, 24절부터 26절 말씀에서 “네게”와 “너를”이라는 말에다 축복하고 싶은 사람의 이름을 넣어서 축복하는 것입니다. “여호와는 철수에게 복을 주시고, 철수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철수에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철수에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이렇게 하는 것입니다.
성도가 축복을 말하며 선포해야 할 두 번째 이유는,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면 복을 주시겠다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 27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중요한 약속을 해주셨습니다.
다시 한 번, 한 목소리로 읽어보겠습니다.
민6:27 그들은 이같이 내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할지니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
성도 여러분,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고 싶으십니까?
그러면 오늘부터 이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주님의 이름으로 여러 사람들을 축복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그들에게 복을 주실 것입니다.
저는 사람들이 복 받기를 기대하면서도 정작 복을 받지 못하는 이유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이유들 중에 하나가 바로 실제로 “축복을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야 직업이 목사다 보니까, 남을 위해 복을 비는 일에 많이 익숙해 있습니다만,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혹시 여러분들 중에는 축복은 목회자들만 하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서, 정작 하나님이 모든 신자들에게 주신 축복할 수 있는 권리를 사용하지 못하고 있는 분이 안 계십니까?
물론 공적인 예배 중에 축복할 수 있는 “축도권”은 목회자들에게만 있지만, 일상에서 서로를 위해 축복할 수 있는 권리는 모든 신자들에게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시고 마음껏 서로를 위해 축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주어진 특권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누가 손해입니까, 우리 자신이 손해를 보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하나님이 주신 축복권을 마음껏 사용하시어 다른 사람을 위해 축복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그들에게 하나님의 복이 임할 것입니다.
설령 여러분이 축복하는 그 사람들이 하나님의 복을 받기에 합당하지 않다면 여러분이 빈 복은 다 여러분에게로 돌아가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10:11-13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마10:11 어떤 성이나 마을에 들어가든지 그 중에 합당한 자를 찾아내어 너희가 떠나기까지 거기서 머물라
마10:12 또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하기를 빌라
마10:13 그 집이 이에 합당하면 너희 빈 평안이 거기 임할 것이요 만일 합당하지 아니하면 그 평안이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니라
성도가 축복을 말해야 하는 마지막 세 번째 이유는, 성도는 복을 유업으로 받기 위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께로부터 복을 유업으로 받기 위해 부르심을 받았다는 사실을 믿으십니까?
베드로 사도는 이 사실을 우리에게 상기시켜 주면서 성도들은 세상 사람들의 언어방식을 초월해서 자기를 욕하는 사람들에게도 복을 빌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벧전 3:9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이는 복을 이어받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님과 사도 바울도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눅 6:28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롬 12:14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성도 여러분, 세상 사람들의 언어습관은 나를 저주하면 나도 저주하고, 나에게 욕을 하면, 나도 욕을 하는 것이 일반적인 상식입니다. 이것은 서로를 망하게 하는 사탄마귀의 언어방식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으로부터 영원한 복을 유업으로 받는 성도들은 그래서는 안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 땅에 복을 받기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신자건 불신자건 축복받는 삶을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복을 빌수도, 복을 받지도 못하는 불행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복인줄 알고 좇고 있는 것은 사실 복이 아니라 그들을 불행하게 만드는 독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만이 이 땅에서 진정으로 축복할 수 있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성경에서 축복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있습니다. 그가 누구입니까? 바로 구약의 야곱입니다. 야곱은 축복을 받기 위해 형 에서로부터 장자의 권리를 샀습니다. 그리고 아버지 이삭을 속이고 끝내 형 에서가 받아야 할 축복을 가로채는데 성공했습니다. 이렇게 그의 인생의 초반과 중반은 자기 자신을 위해 축복을 받는 일에만 열중하는 이기적인 삶이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인생을 마무리 하면서 축복을 받기만 하던 삶에서 이제 축복하는 인생으로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창세기 48장에서 우리는 죽음을 앞에 두고 사랑하는 자기의 열 두 아들을 위해 마음껏 축복하는 성숙한 아버지로서의 야곱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동안 저와 여러분은 어떤 인생을 살아오셨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축복을 받는 일에는 열중하지만, 상대적으로 남을 축복하는 일에는 무관심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축복하는 것이 곧 축복받는 것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남을 축복하는 말은 마치 부메랑처럼 축복하는 사람에게 더 큰 복을 안겨줄 것입니다.
만년의 야곱처럼 축복받는 삶에서 축복하는 삶으로 변화되어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로 쓰임받는 복된 삶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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