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설교 모음

[스크랩] 십자가의 도

하나님아들 2014. 4. 11. 00:06
 
십자가의 도

 


   고린도 전서 1장 18절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기독교는 십자가의 종교입니다.  십자가가 없는 종교에는 구원이 없습니다.

  십자가는 우리에게 무거운 짐인 것임은 틀림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십자가를 지고 한 걸음씩 한 걸음씩 골고다를 향하여 발길을 옮길 때에 무겁고 힘들어서 11차례나 쓰러졌습니다.

  우리도 십자가를 지고 주님 가신 뒤를 좇지 않는 사람은 주님은 내게 합당 한자가 아니라고 말씀을 하시었습니다.

  마태복음 10장 38절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

  예수를 믿는 순간부터 우리는 십자가를 지는 삶이 시작됩니다. 

특히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는 삶 자체가 십자가를 지는 삶입니다. 

나의 자유가 없어지고, 주님의 원하시는 길을 걸어가야 하는 십자가의 길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내 주장과 고집을 버리고, 하나님의 계명과 주님의 소원을 따라 살아가는 길로 들어서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우리에게 무거운 존재이고, 속박을 주는 것이지만, 우리는 이 십자가의 길 안에서 기쁨을 찾아내며 즐거워하여야 합니다.

마치 새가 날개가 무겁고 귀찮은 존재이지만, 이 날개 때문에 새가 하늘 높이 날아다니는 것과 같이 우리도 십자가가 내게 무겁고, 희생을 강요하는 존재이지만, 이 십자가로 말미암아 영생과 구원을 얻는 것임으로, 우리는 이 십자가를 사랑하고, 기뻐하는 마음으로 나를 바꾸어야 합니다.

이 십자가 있으므로 우리가 주님께 합당하게 나아가는 것입니다.


  어느 어머니가 어린 아이를 데리고 교회에 갔습니다.

어린아이가 집에 와서 어머니에게 물었습니다. 교회에 가니까 커다란 더하기표가 있는데 왜 교회에 더하기표를 붙여 놓았나고 물었습니다.  이때 어머니는 네가 잘 보았다. 네 말이 맞다. 우리 예수님은 더하기를 하시는 예수님이란다. 주님과 내가 더하여지면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하게, 선을 이루게 하시고 주님과 내가 더 하여지면 구원을 이루게 된다고 설명하였습니다.  십자가는 바로 더하기표입니다.


  작년에 북한에서 어린이들이 남한에 와서 버스를 타고 다니면서, 밤에 수없이 많은 붉은 십자가를 보고 안내원에게 물었습니다.   저게 뭡니까?  십자가이란다.  십자가 뭡니까?  교회의 표시란다.

교회가 뭡니까?  교회가 무엇인지 모르는 북한 어린이들에게 더 설명할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1. 십자가 있는 곳에는 화평과 화해가 더하여 집니다.

  사람이 죄를 지어 하나님과 불화가 되어서 하나님과 멀어 졌지만 예수 십자가가 더하여 짐으로 사람과 하나님이 화해가 되어 평화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골로새서 1장 20절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을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케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예수 십자가가 나에게 더하여지면 하나님과 영원한 화해로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 있는 구원받는 능력이 임하게 됩니다.


2. 유한한 인생에 예수 십자가가 더하여지면 영원한 영생의 삶, 영생이 이루어집니다.

  우리 인생은 오래 살아야 90세, 100세를 살게 됩니다. 그러나 내 짧은 인생의 삶에 예수 십자가가 더하여 질 때에 영생으로, 부활의 생명으로 바뀌게 됩니다.

요한복음 11장 26절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우리는 예수를 믿음으로, 예수 십자가로 인하여 벌써 영원한 생명을 누리면서 살고 있습니다.


3. 십자가가 더하여지면 탄식과 절망이 희망과 찬양으로 바뀌어 집니다.

  십자가가 없는 사람들이 기쁨을 찾기 위하여 퇴폐와 향락과 방탕과 음란 등을 찾아 그 욕망을 채우고 있지만, 우리에게는 십자가가 더하여 짐으로 고난 중에서 기쁨을 찾게 되었고, 다른 사람을 도우면서 기쁨을 찾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예수 십자가는 더하는 것입니다. 내게 예수가 더하여 질 때에 새로운 형태의 창조가 나타나게 됩니다.

  수소에다 산소를 더하면 기체가 물이라는 액체로 변화, 창조되어 모든 생물을 살리는 물이 되는 것과 같이, 죄인인 나에게 예수 십자가가 더하여지면, 사죄와 영생과 구원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 것의 가장 기초적인 것은 예수 십자가입니다. 

  십자가가 나에게 더하여 질 때에 영생과 사죄와 구원이 임하지만 한편으로는 희생의 삶, 고난이 더하여 지는 표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지신 십자가를 생각하여 봅시다.

  십자가는 죄인을 죽이는 로마 시대의 사형 틀입니다.

십자가는 죄인을 고통스럽게 죽이려는 하나의 사형 도구이자 고문 도구입니다.

뙤약볕에 옷을 벗겨서, 높이 매달려서 피를 흘리고, 목이 타는 고생과 못 박힌 양손 발에 창상의 고통과 중량으로 쳐져 내려오는 찢어지는 고통을 당하는 잔인한 사형 도구입니다.

고생고생 하다가도 죽지 않으면 다리를 꺾어 죽여 버리는 십자가의 고통이요, 죽어야만 십자가에서 내려오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자기가 짊어지고 사형장까지 가야 합니다.

예수님은 사형장까지 가다가 너무 무겁고 힘겨워서 11차례나 쓰러지고 쓸어 질 때마다 말을 때리듯 채찍이 내려쳐지고 결국 무거움을 이기지 못한 예수님 대신에 시몬이란 사람을 대신 잡아다가 십자가를 지우고 골고다로 갔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우리가 생각 할 때에 다음과 같은 뜻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1. 십자가는 고난이란 뜻입니다.

  마태복음 23장 34절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선지자들과 지혜 있는 자들과 서기관들을 보내매 너희가 그 중에서 더러는 죽이고 십자가에 못 박고 그 중에 더러는 너희 회당에서 채찍질하고 이 동네에서 저 동네로 구박하리라”

  요사이 우리가 사용하는 십자가란 말은 주님의 일을 하는데 당하는 고통을 십자가라고 말을 합니다.

  어떤  잘못 이해하는 사람들은 자기의 이익을 위하고 욕심을 채우다가 당하는 고난도 십자가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돈을 많이 벌려고 사업을 하다가 고난당하는 것은 십자가가 아닙니다.

돈을 벌려다가 무리하여 병이 나고 피곤한 것은 십자가가 아닙니다. 

주님의 말씀을 순종하면서 살다가 말씀 때문에 당하는 고통이 십자가입니다. 

십자가에는 이러한 고난 등이 포함됩니다.


가. 배신 - 마음의 고통

  주님이 십자가를 질 때에 3년 동안 같이 따라다니며 사랑하였던 제자인 가롯 유다가 주님을 은 30에 팔아먹은 배신을 당하였습니다.

배신은 마음의 고통의 극치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내가 믿고 사랑하고 온 마음을 다 주었던 사람이 배신을 할 때에 배신당하는 고통은 당하여 본 사람은 다 알게 됩니다.

이 고통의 표현을 주님은 차라리 가롯 유다는 태어나지 않았던 것이 더 좋았을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

성경에는 배신자들을 여러 사람을 말하고 있습니다. 배신자의 죽음에 대하여서는 아무런 말이 없습니다.


  롯 -

롯은 아브라함의 족하이자 천사의 도움으로 소돔성의 멸망 때에 천사의 손으로 인도 받아 구원받은 사람이지만 하나님을 떠나고, 자기 딸과 잠자리를 같이한 사람으로, 아들도 아니고 손자도 아닌 암몬, 모압이란 두 아들을 낳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배신한 롯이므로 성경은 그 뒤의 일을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가롯 유다 -

  배신자의 대표자로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가롯 유다는 500,000 : 1 이란 경쟁을 물리치고 예수님의 택함을 받은 제자이고, 제자 중에서도 간부급 제자인 회계를 맡은 사람으로 예수님과 제자들의 모든 경비를 담당하는 제자이었고, 능력을 받아 병도 고치고 전도도 하던 사람이 결국 예수님을 배신하였습니다.

  12제자의 족보에서 사라지고 세상에 태어났던 것이 애석하다. 라는 주님의 탄식을 받은 배신자입니다.


  데마 -

  데마는 사도 바울의 문하생으로 소명에 불타서 바울을 따라 다니면서 전도에 열심을 내었습니다. 헌신을 각오하고 주를 위하여 나섰지만, 십자가의 고난이 따라 올 때에 처음에는 잘 이겼지만 두 번째는 버리고 떠나갔습니다.

빌레몬 1장 :24절, 골로새 4장 14절에는 처음 바울이 감옥에 갇혔을 때에는 헌신적으로 잘 봉사하면서 십자가의 고난을 이기어 성경에 이름이 올라갔지만, 두 번째에는 디모데 후서 4장 10절에 배신자로 이름이 올라간 것입니다.

  “나를 궁지에 내버려두고 떠나 버렸다” 라고 어느 사본에는 기록되었습니다.


  우리는 십자가의 고난이 왔을 때에 배반하지 말고 끝까지 고난에 동참하고 생명을 바치는 희생을 하여야 승리자가 되는 것입니다.

롯, 유다, 데마는 축복 받는 반열에 있었지만, 은혜를 배반하고 고난에 못 이겨 떠나가 버린 사람들입니다.

  십자가의 고난을 배신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나. 십자가는 멸시를 받는 고난을 가져옵니다.

  예수님도 십자가를 질 때에, 침 뱉음을 당하고 갈대로 이마를 맞으면서 욕도 먹고, 따귀도 맞고 눈을 가려 놓고 때면서 누가 때렸는가 알아 맞추라는 등등의 멸시 조롱을 당하였습니다.

우리도 십자가의 길을 갈 때에, 주님이 당한 멸시와 조롱의 고난을 당하게 됩니다.

금식 기도 많이 하고 은혜를 받은 목사의 교회가 왜 그 모양이냐? 

예수쟁이 라는 조롱과 멸시를 받는 고난을 당게 됩니다.

너의 하나님을 내게 보이라, 네 교회에는 하나님이 함께 안하신다는 등등의 고난을 받습니다.


  주님은 이런 멸시 조롱을 받을 때에 입을 다물고 아무런 말씀도 안하시었습니다.

우리도 누가 나를 십자가의 길을 걸을 때에, 멸시 조롱하여도 아무런 대답을 하지 말고, 묵묵히 나의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주님을 섬기며 십자가의 길을 걸을 때에 멸시 조롱이 없다면 우리는 주님 앞에서 상급과 칭찬이 없습니다.


다. 십자가는 육신의 고통을 가져옵니다.

  십자가를 질 때에 마음의 고통인 배신, 멸시, 조롱이 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아울러 육체의 고통까지 따라 옵니다.

예수님도 십자가를 질 때 매 맞음과 육체가 찢어지고 피를 흘리는 육체의 고통까지 당하였습니다.

예수 십자가의 길을 걸을 때에, 우리도 당연히 그와 같은 고통의 일이 나를 따라옵니다.

피곤함의 고통, 물질적인 고통, 연약한 육체의 고통 등 십자가의 길에는 여러 가지의 육체적인 고통이 오는 것입니다. 

어느 사람은 교회에 간다 하여 남편으로부터 매를 맞는 고통을 당하는 사람도 있고, 주의 일을 하다가 병을 얻고 사고를 당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십자가는 육신의 괴로움을 주는 사형 도구임을 알고, 이 육신의 고통도 각오하고, 이기고 승리하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苦盡甘來라는 말이 바로 이러한 십자가의 고난을 말함을 알고 참고이기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2. 십자가의 도는 희생의 도입니다.

  에베소서 2장 16절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이는 저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십자가의 도는 희생의 도입니다. 내가 남을 위하여 희생을 함으로 다른 사람이 복되게 하는 도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죽으심으로, 우리가 그 사실을 믿음으로, 우리는 구원을 받고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며 영원한 생명을 얻고 살게 되었듯이, 내가 십자가를 짐으로 다른 사람을 잘되게, 복되게 하는 것입니다.

  선교사는 자기가 어렵고 힘들지만 열악한 환경 속으로 들어가서 거기에 있는 사람을 잘되고, 잘 살게 하기 위하여 복음을 전하고 도움을 주고 희생하는 일을 합니다.

  십자가는 자기가 희생하고 남을 잘되게, 평안하게 하는 것이 바로 십자가의 도입니다.


3. 십자가는 참는 도입니다.

  히브리서 12장 2절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십자가는 참는 것입니다. 참지 못하고 인내하지 못하는 사람은 십자가를 지고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억울한 일을 당하고 누명을 쓰고 모함을 당하여도, 이를 해명하려 하지 말고, 끝까지 참고 나아 갈 때에 십자가의 도를 따라는 자가 됩니다.

많은 사람이 처음에는 십자가를 지고 있지만, 힘들고 어렵고 고생스럽고, 억을 함을 당할 때에 십자가에서 뛰어 내려오는 사람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27장 42절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지어다. 그러면 우리가 믿겠노라”

세상 사람은 십자가를 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십자가에서 뛰어 내려오라고 말합니다. 

미끼를 주면서 십자가에서 내려오면 우리가 믿겠다 하면서 인내를 포기하게 요구합니다.

나를 망하게 하고 주님의 버림을 받게 하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내려오라는 것임을 깨닫고, 우리는 생명이 십자가를 지고 마치는 그날까지 이 고난의 십자가를 참고 나아가야 합니다.


4. 십자가는 죽이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7장 50절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시었습니다. 

우리도 평생을 십자가를 지고 살다가 십자가를 등에 지고 죽을 때에 부활의 영광을 얻게 됩니다.

나는 이런 기도를 합니다.  병원에서 주사 바늘을 꽂고 약사발을 마시다가 죽지 말게 하시고, 주의 일을 하다가 순교를 하던지, 순직을 하든지, 아니면 주님 재림 하실 때에 들림 받아 세상을 떠나는 사람이 되게 하여 달라고 기도를 합니다.

성도의 십자가는 죽을 때에 벗겨지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2장 8절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우리도 십자가를 지고 십자가와 더불어 살다가 죽는 죽음을 맞는 행복을 누려야 하겠습니다.

사도 바울도 이 십자가를 지고 복음의 사역을 하다가 십자가와 함께 죽음을 마지 하였습니다. 

성도의 최고의 영광은 십자가와 함께 죽음을 맞이하는 것입니다.


5. 십자가는 부활입니다.

십자가에서 죽는 사람만이 부활에 참례합니다.  십자가를 벗어버리고 십자가를 배반하고 떠난 사람들의 죽음은 부활에서 멀어진 자들입니다.

  데살로니가 전서 4장 16절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는 부활은 주님 재림 때에 십자가를 지고 믿음을 따라 살다가 죽은 성도들의 부활입니다.

  가롯 유다같이 예수님을 배반한자, 오래 참지 못하고 믿음을 저버린 자, 죽음을 두려워하여 예수를 부인한 자들은 버림을 받습니다.

십자가를 벗어 버리고 사람의 눈치를 보면서 살던 자들은 부활 생명을 얻지 못합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잠시 입니다. 나도 70세를 바라보는 나이 입니다.  이 세상을 떠나는 날이, 나의 죽음의 날이 나의 생명의 끝날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십자가를 지고 살아가는 고생을 하였으니 이후로는 영광스런 복된 삶을 누려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는 지금 현재의 고난보다 부활을 바라보고 소망 가운데 살아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부활 생명은 십자가의 죽음을 맞은 자들만이 누리는 영광 인 것입니다.


  정리:

  기독교는 십자가의 도입니다.  이 십자가가 없는 종교는 생명의 종교가 아닙니다.

 

십자가는 고난의 길이 십자가입니다.

배신의 고통, 멸시와 육신의 고통이 함께 하는 것이 십자가의 고난입니다.


십자가는 희생의 길입니다.

남을 위하여 자기를 희생하며 사랑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이 십자가의 길입니다.


십자가는 참는 길입니다. 

인내가 없인 십자가로 승리하지 못합니다.


십자가는 죽는 길입니다. 

십자가는 죽을 때까지 지고함께 죽어야 하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부활입니다.

십자가와 함께 죽은 자만이 영원한 부활 생명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지신 십자가를 나도, 내 십자가로 지고 끝까지 참고 나아가서, 생명에 동참하고, 부활에 동참하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십자가 후에야 영광이 따라 옴을 잊지 말고 십자가의 도를 걸어가십시다.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쫓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


                         

할렐루야 !

 

출처 : 은혜(恩惠)
글쓴이 : 은혜 (恩惠)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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