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의 신학
기도란 무엇입니까? 이것은 모든 크리스챤들이 평생에 걸쳐 해결해야할 어떤 의미에서 보면 크리스챤 들에게 주어진 무겁고 커다란 짐입니다.
장신대 조직신학 교수인 현요한 교수님의 말씀처럼
“우리는 교회 생활 중에 기도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듣지만, 기도에 대하여 체계적으로 배우거나 훈련을 받는 일은 그다지 흔하지 않은 것 같다. 기도에 대하여는 다 아는 것 같아도, 실제로 올바른 기도에 대하여는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사실은 이 기도에 대한 갈증이 해결되지 않는 이상 진정한 의미에 있어서의
신앙의 회복은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기도는 생수의 근원이요
또한 잘 아는 것 같지만 우리가 체계적으로 배우거나 훈련받지 못해 여전히 미해결의 난제로 남아 있는 영적 블루 오션과도 같은 영역이라고 말할수 있을 것입니다
기도에 관한 가르침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습니다
신길성결교회 이신웅 목사님의 말씀처럼 응답받는 기도에도 요령이 필요합니다. 즉 효과적인 기도에는 요령이 있습니다. 단순히 기도에 열심만 내라고 하는 말은 정말 무책임한 말이요 기도에 관한 문외한적인 말이 아닐수 없습니다
기도의 선구자들의 기도에 관한 고백과 간증을 들어보면 기도에는 하나의 공통적인 방법론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수 있습니다
모든 것은 기도에서 시작됩니다. 믿음은 무릎끓음에서 시작됩니다
무릎끓지 않는 사람은 아무것도 할수 없는 무력한 사람입니다
기도안에 모든 것이 있고 기도안에 해결책(a solution)이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기도란 우리 영성생활의 한 부분이 아니라 영성생활의 전부이다
사도바울도 전승에 따르면 순교할때도 기도를 하면서 순교하였다고 한다.
그의 모든 목회는 기도에 근간을 두고있으며 기도에 의해 발전하는 모습을 볼수 있다. 바울에게 기독교인의 경험은
본질적으로 기도의 계속적인 행위였다. 구원받은 사람들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에 의해 지배를 받는다. 기도는 구원자에게 부어지는 영원한 감사로서 행해진 의식적 행위이고 성령에 의해 능력을 받고 동기부여가 제공된다. 또한 기도는 하나님의 “편
재성과 전능성“에 의존한다. 그리스도의 구속을 받은 사람은 기도와 별도로 절대로 상상할 수 없고 불가능하다
그리스도가 다메섹도상에서 바울에게 자신을 계시하신 후에 바울에 대해 ‘저가 기도하는 중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은(행 9:11) 의미심장하다. 아마 바울은 처음으로 기도가 진실로 무엇인지를 발견하였던 것 같다. 그의 회심을 가져온 심령의 변화는 이처럼 심오했던 것이다. 그 순간부터 그는 기도의 사람이 되었다(행 22:17 이하)
이처럼 기도란 우리 영성생활의 한 부분이 아니라 영성생활의 전부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전 삶이 기도인 것입니다.
성화와 영화란 바로 기도로부터 가능한 것입니다. 아니 어떤 의미에서는 기도로만 가능하다는 차원에서 기도의 중요성은 이루 말할수 없을 것입니다
기도를 통하여 우리의 존재가 완전히 하나님의 성령으로 성화되게 되면 우리는 영적 성숙 의 정점에 설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 단계에서 우리는 더 이상 말이나 행동에 매여 하나님을 향해 돌아서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 오히려 우리의 전체 삶이 점점 더 하나님께 향할 수 있게 되고, 또 우리의 삶 자체가 기도가 된다.
‘오직 믿음’을 강조했던 루터의 이해에 따르면 인간이 기반으로 삼아햐 할것은 신앙이다 그러나 그 신앙 생활은 기도위에 이루어져야 한다. 올바른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의 신앙은 기도밖에 없으며 우리의 신앙은 모름지기 기도이다. 신앙은 인간의 내적 사고가 아니라 끊임없는 하나님과의 사귐속에서 그의 역사하심을 받고 그를 향하여 고백하고 주어지는 그리스도의 의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와 같이 루터에게 있어서 신앙은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이며 기도는 그 구체적인 표현임으로 신앙과 기도를 떼어 생각할수 없다
그러므로 루터야말로 크리스챤됨의 증거로 받아들였다. 하나님의 은혜를 종교개혁의 원리로 내세웠던 루터에게 있어서 기도는 은혜의 결과였기 때문이다.
칼빈에 의하면 기도는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은택을 받는 매일 받는 믿음의 으뜸가는 행사이다. 그는 기도의 두 요소를 부각시킨다. 기도는 신앙의 주된 사역이며 기도로써 우리는 하나님의 은덕들을 매일 받는다 기도는 신앙의 사역이며 이 점에서 기도는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이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은덕들을 기도를 통하여 받기 때문에 기도가 동시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로 나아오는 길이라는 가능성이 열리게 된다
칼빈은 기도를 “믿음의 영속적 행사”라고 부른다. 즉 우리의 심령속에 참되고 살아있는 믿음이 있으면 기도가 저절로 터져나온다
인간은 본질상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고는 “살 수 있는 길”을 찾을 수 없는 “유전적 부패성(불결성)”을 가진 존재 즉 근본적으로 “결핍된 존재”가 바로 인간이라고 그는 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우리의 삶이 이와 같이 “기도”할 수밖에 없도록 “방향 지어져 있다”는 것을 바르게 이해해야 한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모든 선한 것과는 너무 동떨어져 있고 구원의 수단들을 결여하고 있기 때문에 그는 자신을 떠나서 자기 바깥에서 구원을 찾아야한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그리스도안에서 당신을 기꺼이 그리고 넘치게 계시하신다” 그리스도안에서 하나님은 모든 비참대신에 구원을 제시하신다. 그리스도안에서 하나님은 천국의 보물을 볼수 있는 눈을 열어주시며 오직 그리스도만을 붙잡게 하신다. 우리가 이것을 깨닫게 되면, 하나님의 이름을 불러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보물을 받게 된다.
신앙이 복음에서 나오듯이, 우리의 마음도 복음의 훈련을 받아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게 된다. 기도를 통하여 우리는 천국의 보물을 발굴한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름으로써 우리는 섭리와 능력의 하나님께서 임재하실 것을 간구하며, 그럴 때 하나님은 우리를 보호하며 지키시고 도와주신다. 또 죄로 인하여 가련하여진 우리를 하나님은 당신의 인자하심을 통하여 은혜를 향하여 나아가게 하신다. "즉, 기도로써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 곁에 계시며 당신을 계시하여 주실 것을 간구한다."(III,xx,2)
칼빈의 말처럼 기도는 진정한 의미에 있어서의 계시입니다. 기도할때만이 우리는 하나님의 참 계시의 빛을 빛을 발견할수 있습니다. 칼빈의 고백처럼 우리는 기도를 통하여만 천국의 보물을 발견할수 있습니다. 기도없이는 천국의 보물을 발견할수 있는 방법이 만무합니다
클레멘스는 신앙은 기도의 한 형태라는 특이한 발언을 한다. 다시 한번 더 그는 기도를 하님님과의 대화라고 선언한다.
클레멘스는 신지식에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를 연관시킨다. 그리고 이 지식은 인간의 신격화를 향한 길이다. 교회사에서 최초로 나타나는 인간의 신격화에 관한 언급이다. 인간의 신격화는 성자를 통하여 참되게 입양되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을 아는 자를 하나님은 아들과 신이라 부르신다. 이처럼 기도와 신지식, 그리고 신격화는 상호 밀접한 관계를 지닌다
오리겐은 "내 눈을 열어서 주의 법의 기이한 것을 보게 하소서"(시편 119:8)라는 말씀을 인용하면서, 기도와 성경 이해의 관계를 아주 멋지게 표현한다. 율법의 의미가 명확하지 않으면, 선지자들이 기도하였듯이 우리도 깨닫기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한다. 그가 성경을 깨닫는 데에 기도를 관련시킨 것은 언급할 만한 가치가 있다.
어거스틴, 클레멘스 그리고 오리겐 등 고대교회의 세 명의 신학자에게 나타난 기도의 매우 중요한 차원은 그들이 모두 기도를 통한 성화, 기도를 통한 참 계시의 비쳐짐, 기도를 통한 말씀 계시의 비쳐짐을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에게 더 이상 기도는 신앙의 한 부분이 아니었다. 클레멘스는 신앙은 기도의 한 형태라는 특이한 발언을 할 정도로 기도는 신앙의 본질이며 회복이었다는 것을 알수 있다
요한 아른트(Johann Arndt, 1555-1621, 독일 경건주의의 창시자인 필립 야콥 슈페너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인물) 역시 우리의 주님이시오 구세주이신 그리스도께서 기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선한 것을 주는 것을 이루셨기에 우리가 기도없이 어떤 것을 이룰수 있겠는가고 질문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 빛, 지식, 그리고 믿음없이 아무도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것을 란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 빛, 지식, 그리고 믿음을 갖기를 원한다면 기도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기도없이 우리는 이런 것들을 빋을수 없기 때문이다
웨스트민스터 표준서들은 기도를 설교 및 성례와 함께 은혜의 방편으로 본다.
이 입장은 여하한 다른 신조에서는 나타나지 않으며 최근 연구문헌에서도 나타나지 않는다
웨스트민스터 신조는 은혜의 방편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은혜의 방편은 그리스도께서 구속의 은덕들을 우리에게 전달하시는 외적이고 정상적인 방편들이며 이것들은 당신이 제정하신 것들인데 특히 말씀, 성례와 기도이다”
현대신학의 아버지 슐라이에르마허는 “경건함과 기도는 사실상 같으며 하나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그의 영향으로 독일어권에서는 기도는 ‘경건성을 재확인하는 가장 신뢰할만한 표지’라는 입장이 정착되었다
예배(송영)으로서의 기도
구약에서의 기도는 제사와 깊은 관련이 있다. 창세기 12장 8절의 “거기서 벧엘 동편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니 서는 벧엘이요 동은 아이라 그가 그곳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에서 볼수 있듯이 제사와 기도는 연결이 되어 있다
제사가 외적 형태의 나아감이라면 기도는 내적인 형태의 나아감이다. Wayne R. spear은 “구약성서의 기도와 제사는 대립적이 아니고 보조적(보완적)이라고 말할수 있다” 고 말하고 있다
오리겐은 기도의 단계를 서술한다. 먼저는 비록 영적이지만 제한적인 것을 간구함이요(dehsij), 그 다음은 하나님과의 순수한 교제 중에서 우리 자신을 바침이요(proseuch), 마지막은 기도에서 하나님의 영광만을 들어내는 송영이다(docologia). 이 송영의 단계에서는 하나님과의 합일 (enwsij)이 강조된다. 물론 여기서도 신비주의적인 색채가 나타난다. 그럼에도 이 구별에는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다. 기도의 가장 최고봉으로서 송영이 언급되어 있다. 이 것은 사심 없는 기도라 할 수 있다.
개혁자들은 기도에서 간구보다는 경배의 측면을 더 부각시켰다. 이 것은 바로 삼위 하나님을 향한 찬양, 곧 송영이다. 송영을 우리는 기도의 최고봉이라 부르려고 한다.
말씀과 기도
하나님은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인격적으로 은혜롭게 접근해주시고 우리로 하여금 말씀의 약속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두려움없이 담담하게 하나님의 존전으로 나아갈수 있게 하신다((시 71:22)
웨스터 민스터 대요리 문답에서 기도를 위한 지침으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전체 말씀을 주셨다고
언급되어 있다.
“뮬러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가운데 기도의 동기가 나왔고 거기서 기도의 제목이 나왔다고 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바로 볼수 있게 되었고 또한 하나님의 뜻을 잘 깨달을수 잇었다”라고 적고 있다
“영성과 목회”에서 오성춘 교수는 “말씀을 따라 구하고 말씀 자체가 기도가 되고 말씀을 뜻을
실천하기 위하여 기도하는 기도인 ‘말씀의 기도’는 하나님께서 무엇을 구하든지 응답하는 만사형통의 기도이다“리고 말한다
칼빈은 말씀을 기초로 한 믿음을 가리켜서 ‘기도의 어머니’라고 하고, 말씀에서 멀어지는 기도는 즉시 부패하게 된다고 강조하였다.
기도가 하나님의 말씀위에 기초하여 시작되고 그 말씀에 의하여 성령께서 기도의 틀을 만들어 주시는 까닭에 말씀에 의하여 제한된다고 하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교제와 기도
하나님은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그의 자녀들과 함께 대화하시기를 원하셨습니다. 이세상은 하나님의 학교요, 인간들은 그의 자녀이면서 동시에 제자로서의 맡겨진 사명을 다하도록 분부를 받았습니다. 우리가 이세상을 살면서 살아계신 아버지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기쁨을 누리려면 함께 대화함으로(기도) 가능합니다(총신대 한상진교수)
유스틴, 클레멘스 그리고 오리겐에게서 기도는 기록된 말씀을 이해하는 역할을 한다. 성경을 읽고 기도함으로써 신앙에 이른다. 기도로써 말씀을 이해하여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이른다. 기도의 또 다른 기능은 신비적 경향인데, 하나님과의 합일을 지향한다. 이 측면이 제 아무리 위험하다 하더라도 기도가 지닌 이러한 교제적 성격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이처럼 기도는 인간의 자세, 즉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인간의 본연의 모습을 보여준다. 기도의 내용은 부차적이다. 왜냐하면 기도는 일차적으로 하나님과의 교제를 지향하기 때문이다
아른트는 기도에 관하여 타울러의 ‘하나님과의 참돤 합일’에 관한 경해를 받아들인다. 초자연적인 기도는 믿음을 통한 하나님과의 참된 합일에서 일어난다.
성령와 기도
성령의 사역들중에서 하나님의 은혜의 질서속에서 그의 위치에 대한 이해와 성삼위일체의 신비가운데로 우리를 가장 깊이 인도하는 것은 성령이 기도의 영으로서 행하시는 사역이다 성령의 부으심을 떠나서는 기독교인의 기도다운 기도는 있을수없다. 성령이 인간생활에 개입하는 곳에는 어디에서나 우리는 기독교 기도의 기원을 볼수 있다. 그 이유는 우리를 기도하게 하고 기도생활에서 우리를 가르치는 분이 성령이기 때문이다. 모든 참된 기도는 신자의 영안에서 내주하시는 성령님으로부터 비롯된다. 우리안에 거하시는 성령은 하나님의 뜻을 알고계신다. 그리고 성령님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지상에 분명하게 표현해주는 어떤 소리를 우리 영속에 조성하신다. 우리가 살아 계신 그리스도와 하나되게 하고 그와 활발한 교제를 하게 하는 분은 성령이시다
우리를 위해서 우리와 더불어 기도하시는 분은 성령이시다(롬8:15,16) 그가 우리를 마땅히 기도해야 하는 법을 모르기 때문에 우리에게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 것을 가르쳐 주신다(롬 8:16) 내면으로부터 우리를 비추고 우리의 죄를 깨닫게하고 그리고 회개하여 은혜의 보좌로 우리를 인도하는 분은 성령이시다. 참된 기도는 성령에 의해서 생기가 불어넣어지거나 인도되지 않고는 시작되지 않는다.
기도는 나는 죽고 성령이 말하시고 탄식하시는 나-능동적인 기도에서 나-수동적/성령-주동적인 기도만이 참된 기도이다. 그런 의미에서 참된 기도는 수동적이다. 그러나 얼밀히 말하면 기도자가 수동적으로 되어야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기도자가 능동적으로 성령을 쫓을때 성령-주도적인 기도가 될 수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즉 기도의 본질은 수동성에 있다
응답과 기도
은혜의 하나님은 오직 기도를 통하여서만 자기를 사탄의 세력으로부터 지킬 수 있도록 율법과 복음으로 집약되는 하나님의 말씀에 인간이 복종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원하신다. 왜냐하면, 인간은 하나님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님은 인간에게 기도를 명하시고 계시며 인간이 하나님 자신의 일(구원섭리)에 참여하도록 임하시기 때문에 그러므로 인간은 기도를 하나님으로부터 명령받고 있다고 하겠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일종, “응답된 기도를 드리는 것”이라 하겠다
기도란 “이미 응답된 기도를 신앙고백하고 있는 것”이라는 칼 바르트의 기도 이해는 종교개혁자들의 기도이해를 아주 정확하고 바르게 이해한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듣는 기도
구약의 에언자들에게 있어서 기도는 이들 사역의 핵심적인 요소였다. 그들은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그들은 기도를 통해 살아계신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것이다. 그들은 때때로 그 말씀을 받기 위해 많은 시간을 기다리고 기도했다
할레스비는 “많은 사람들이 한번도 침묵을 경험하지 못했으며 심지어는 그것을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도 모른다. 우리의 주의를 외적 사물에 기울이게 하는 것들로부터 떠나기 전에는 우리의 심령이 내적 활동에 자유로이 참여할수 없다”고 침묵의 부재를 경고한다
기도의 시간과 장소
기도의 스승들이 일관되게 가르치는 핵심은 기도의 강결함이나 길이보다는 기도를 올리는 ‘일정함’에 있었다. 중세 수도원의 성무일과는 하루 8번의 기도를 올리는 것이었다. 마가릿 하몬 브로(Margueritte Harmon Bro)는 매일의 기도로 아마도 6개월후 쯤에는 전혀 다른 종류의 사람이 되어 있을거라 확신하였다.캡벨은 예수께서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구하라고 가르친 것은 “매일의 기도습관”을 요구하신 것이라 해석한다. 그리고 이렇게 훈련된 기도의 슴관이 중요한 진정한 이유는 “메일 기도하는 습관이 되지 않은 사람은 그가 꼭 필요로 할때 기도의 영감을 다 잃어버리게 되고 그것이 더 나쁜 것”이라는데에 있다
기도의 장소에 대하여 언급하는 대부분의 학자들은 ‘침묵이 마련된 곳’을 최적의 조건으로 제시한다. 토마스 머튼이 사막의 교부들이 ‘과야’를 떠올린 것은 광야야말로 하나님의 사랑을 배우는 곳, 오직 하나님 하고만 보내는 삶의 장소였기 때문이다. 이삭이 들을 산책한것도 명상의 한 방법이었다(창24:63) 또 ‘정해진 장소’의 주요성을 제시하기도 하는데 매일 같은 장소는 삶에 있어서 매우 중대한 사건이 일어나는 곳으로서 마가릿 브로는 이 장소를 “사건의 영이 다시금 불러 일으켜지는 곳”이라고 말했다.
엔드류 머레이는 “일정한 기도시간이 없는 사람은 기도하지 않는 사람이다”라고 단정했습니다.
혁명으로서의 기도
유진피터슨도 역시 기도를 전복의 행위로 설명합니다
"기도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위대하신 주권을 인식하고, 점점 더 순종하려는 마음을 갖게 된다. 문화도, 가정도, 정부도, 직업도, 강한 자아도 조용하지만 강력하게 일하시며 창조적인 영향력을 끼치는 하나님의 주권을 저항하지 못한다. 가족과 민족이라는 자연적으로 맺어진 관계나 다른 사람이나 국가에게 의지적으로 헌신하려는 마음도 모두 결국은 하나님의 통치 아래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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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도는 맡김입니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하여 얼마나 자주 하나님께 의뢰하는가 하는 문제를 기도라고 합니다. 어느 만큼까지 하나님께 맡기느냐의 싸움을 기도라고 합니다.
기도하면 기도자의 일은 이제 자신의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이 됩니다.
기도자의 기도는 이제 하나님께 던져집니다.
이것이 벧전 5장 7절의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놀만 빈센 필은 말했습니다. “문제를 붙잡은 당신의 손을 하나님의 손안에 넣으시오. 그리하면 당신의 문제가 하나님의 문제가 될 것이요”
기도하면 나의 염려, 문제, 기도제목이 모두 하나님의 일이 됩니다.
미국의 유명한 저술가인 카네기에게 한 독자가 “당신은 마음의 평화를 어떻게 찾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 질문에 카네기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는 매일 기도합니다. 그리고 나의 삶을 온전히 하나님께 맡깁니다. 이로 인해 정신적 갈등이나 번민은 내게서 사라지고 평안과 능력만이 늘 나를 사로잡습니다. 우리의 기업을 하나님께 맡길 때 하나님은 책임져 주십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명확한 상호교통이다.
발생하는 모든 문제를 하나님께 의탁하는 것이다.
한 번 의탁한 것이나 기도한 것은 그 분의 뜻대로 처리되기 위해
하나님께로 옮겨진 것이다.
옮겨진 바로 그 순간부터 진실로 의탁한 성도라면
더 이상 관여하지 않는다.
진정 살아있는 믿음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의지하며
외부 환경에 의해 걱정하거나 방해받지 않는다.
주님 안에 닻을 내린 믿음은 확고하여,
닻에 연결된 밧줄이 출렁이는 배를 안전하게 당기듯이,
보이는 것으로 하여금 영원한 것에게
자리를 양보하도록 압도한다“(이반 로버츠)
“기도는 일하기 위한 준비가 아니라 일이다
기도는 전쟁을 위한 준비가 아니라 전쟁 자체이다“(오스왈도 챔버스)
2. 기도는 축복입니다
<기도로 세계를 움직이라>는 책에서 웨슬리 듀웰은 이렇게 말합니다.
“기도에는 감히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거룩한 실재의 세계가 있다. 기도는 하늘에도 닿을 수 있으며 그 어느 때라도, 이 세상 그 어느 곳까지도 나아갈 수가 있다. 정말로 놀라운 의미에서, 기도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축복의 매개자가 되게 한다. 기도는 축복에 이르는 정도(正道)이며, 기도는 남에게 축복을 베풀 수 있는 최대의 수단이다. 기도는 남을 축복할 수 있는 능력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다.
하루를 살아가면서 하나님께서 기억나게 하시는 사람이나 일에 대해, 즉시 기도하도록 하라. 사람에게 무릎을 꿇지 않으려면 하나님께 무릎을 꿇어라. 하나님께 무릎을 꿇으면 사람에게 무릎 꿇을 일이 없다.”
“기도는 모든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주어지는 통로이다“(아빌라의 테레사)
“우리로 기도하게 만드는 모든 것이 축복이다”(스펄전)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일은
기도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은
기도하는 사람입니다“(워치만 니)
“당신이 기도하기위해서 손을 모으면 하나님께서는 복을 주기기 위해서 손을 펴신다.” (독일격언)
“기도하는 것이 어렵지만 기도로 얻는 축복은 말할 수 없이 크며 이것이 생활화되었을 때 가장 강력한 능력을 붙들고 사는 것이다.” (김서택목사, 대구동부교회)
“결국 하나님께서 명하신 것이 무엇이든 간에 기도한다는 것은 위대한 일입니다. 오, 주여! 나로 하여금 기도의 사람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헨리 마틴)
3. 기도는 영적 파산의 선언입니다
성결대 선교학과 교수님이신 노윤식 교수님은 기도에 대하여 이렇게 정의하십니다.
“기도는 하나님 앞에 자신을 굴복시키는 것이요 항복하는 것이며 겸손한 복종의 표시이다. 기도는 자신의 지력과 자존심 그리고 허영을 십자가에 못 박으며 자신의 영적 파산을 인정하는 것이다. 우리가 기도할 때에 두 손을 모으는 것은 내 손에 당신을 해할 무기가 없다는 표시이며, 입을 벌리는 것은 자신의 내부를 공개하는 가장 유약한 표현이며,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리는 것은 항복을 의미한다.”
칼바르트라는 신학자는 “기도보다 앞서는 것은 은혜이다”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기도할 수 있는 오직 한가지는 단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위클리프 USA의 명예 총재이신 조지 코완은 이렇게 말합니다.
“기도란 우리가 하나님께 의지한다는 성명서와 같습니다. 우리의 힘으로 일하지 않을 것을 고백하며 우리의 힘만으로는 아무런 일도 할 수 없음을 겸손히 인정하는 것입니다. 기도하지 않는 것은 우리 자신의 힘으로 일을 하며 주님의 도우심이 필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우리가 우리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다만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기도는 우리가 하나님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고백하는 행위인 것입니다.
“유창하게 기도할수록
나는 기도 생활에서 얻는 것이 거의 없다.
그러나 달변을 멈추고
신학적으로 하나님을 대하지 않고,
입을 닫고 그저 위를 향하여
주님이 내 마음에 말씀하시기를 기다릴 때면
연필과 노트를 붙잡고
내 마음에 말씀하시는 것을
적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주님은 강렬하게 말씀하신다“(A.W.토저)
4. 기도가 비전을 엽니다
5. 기도는 보물창고입니다
6. 기도는 회복입니다
7. 기도는 하나님과의 동역입니다
윗치만 리는 다음과 같이 기도에 대하여 말합니다
“기도는 부르심을 받은 자들의 가장 큰 사역이다. 기도는 바로 하나님과의 동역인 것이다.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목적이 이루어지고, 사탄의 의도는 깨져 버린다. 또한 기도하는 자의 받는 은혜는 대단히 큰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께서 ‘일어나 기도하라’(눅 22:46)고 하신 경고를 따라야 할 것이다.” (웟치만 리)
기도는 하나님과의 동역입니다.
내 인생 내 뜻대 결코 되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만 내 인생되어집니다.
“여호와여 내가 알거니와 인생의 길이 자기에게 있지 아니하니 걸음을 지도함이 걷는 자에게 있지 아니하니이다”(렘 10:23)
내 발걸음 한걸음도 하나님의 뜻대로 되어짐을 알아야 합니다
내 인생 내 뜻대로 되지 않지만 기도인생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인생이기에 특급인생입니다. 기도인생은 특급인생입니다. 기도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요 내 인생 내뜻대도 되지 않지만 기도하면 내 인생에 하나님의 뜻을 오늘 이 시간 이루어 가기에 기도인생은 특급인생이요
기도인생은 하나님과 동역하는 인생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동역자가 되기 위한
최상의 길이다“(웨슬리 듀웰)
“기도는 하나님의 계획을 붙잡고, 이 땅에서 그 분의 뜻을
성취하는 매개이다. 놀라운 일들이 일어날 때마다,
우리는 성령님의 기도의 통로가 되는 특권을 갖게 된다“(Elisabeth Elliot)
“이 세상의 운명은 우리들의 기도에 따라서 작정될 것이다.” (프랑크 라우바크)
“지상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지니고 하나님의 대표인 구속받은 사람은 기도로 이 지구의 역사를 결정해야 한다.” (앤드류 머레이)
8. 기도는 진정한 행복입니다
정원 목사님의
<기도는 진정한 행복입니다>라는 글을 소개합니다.
“기도만이 참된 행복을 줍니다. 기도 없는 행복은 행복이 아닙니다. 기도 없는 복권 당첨, 기도 없는 증권수익, 기도 없는 멋진 결혼, 기도 없는 황홀한 데이트, 그것은 모두 모래성에 불과합니다. 그것은 모두 멸망의 문턱으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모두 기도 없이 이루어지는 행복을 사모하지만 기도 없는 행복만큼, 기도 없는 성공만큼 무서운 것은 없습니다. 모든 참된 행복과 성공은 자신의 기도이든, 그를 위한 타인의 중보이든 기도의 대가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당신이 기도하지 않았는데 행복하다면, 당신은 조심해야 합니다. 당신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당신의 모든 환경이 잘 풀리는 듯이 보인다면, 당신은 경계심을 늦추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기도 없는 행복은 마귀의 작품이며, 마귀는 공짜가 없기 때문입니다.”
“시작이 반이다. 그러나 기도 없이 시작된 일은 결코 좋은 시작일 수 없다.” (팬스하우)
“하나님은 베푸시는 그의 방식으로서,
그리고 약속된 모든 좋은 것을
얻는 우리의 방식으로 기도를 약속하셨다“
(J.B. 존스톤)
9. 기도는 방향성입니다
10. 기도는 해독제입니다
11. 기도는 패스워드입니다.
12. 기도는 생사를 건 영적 전쟁입니다
13. 기도는 마지막, 최후의 보루입니다
14. 기도는 곧 교육입니다
15. 기도는 부흥을 가져옵니다
16. 기도는 실존하는 위대한 힘입니다
17. 기도는 접촉입니다
18. 기도는 존재의 이유입니다
19. 성삼위가 여러분의 기도를 도우십니다
20. 기도는 선전포고입니다
21. 기도는 무기입니다
22. 기도는 실행입니다
23.응답 없는 기도란 있을 수 없습니다.
24. 순경 속에서 기도하십시오
25. 시험은 위대한 기도를 만듭니다
26. 구체적으로 기도하십시오
27. 기도응답의 지연은 축복입니다
28. 기도는 신뢰입니다
29. 기도는 충전입니다
30. 기도의 영으로 사십시오
31. 기도는 치유입니다
32. 기도는 생명입니다
33. 기도는 누적입니다
34. 기도 중에 기도는 주기도문입니다
35. 바쁠수록 더 기도해야 합니다
36. 기도는 교제입니다
37. 기도는 하나님의 얼굴을 보는 것입니다
38. 기도응답의 중요한 원리, 이타적인 기도
39. 기도는 예배입니다
40. 기도의 응답은 하나님의 의무입니다
41. 금식기도는 모든 결박을 풉니다
42. 기도는 전복입니다
43. 기도는 간절한 호흡입니다
44. 기도는 동행입니다
45. 기도는 사랑입니다
46. 깊은 기도를 위해서는 양적으로 기도시간을 늘여야 합니다
47. 기도하는 않는 곳은 마귀의 놀이터입니다
48. 기도는 인과관계입니다
49. 세상에서 가장 큰 손해는 기도하지 않는 손해입니다
50. 기도는 듣는 것입니다
51. 기도와 결혼
52. 인내로 기도해야 합니다
53. 눈물의 기도
54. 기도와 찬양
55. 기도는 해결입니다
56.기도하고 싶지 않을 때에도 기도해야만 합니다
57. 우리는 기도해 보겠습니다 라는 말들을 좋아해야 합니다
58. 기도는 명분보다 강청이 중요합니다
59. 썪지 않고 죽지 않는 것이 기도입니다
60. 기도하면 자신만만한 인생을 삽니다
61.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을 쓰십니다
62. 새벽기도의 위력
63. 일정시간을 정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64. 예언기도
65. 중보기도
66. 기도는 심판입니다
67. 비전과 기도
68. 기도와 성공자
69. 기도와 헌신
70. 기도와 거룩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기도의 필요성을 절감하면서도 차일피일 미루면서 제대로 기도하지 않는다.
기도에 대한 책들은 기도에 대한 이론에 불과하다. 성도가 기도를 잘하려면 매일 매일 꾸준히
엎드려서 기도하는 수밖에 없다. 위글에서 언급한 것처럼 기도는 충전이며 누적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될 것이다. -Ez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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