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족함과 온전함을 위해
고린도후서 12: 1-10
교회 주소/ 서울 노원구 상계5동 136-55 유백선 목사 ybs9191@hanmail.net
상담 : 02) 6221-6468, 010-8346-6468,
아주대학교 심리학과 김경일 교수님이 쓴 “행복, 살 수 있을까?”라는 에세이가 있습니다. 심리학자로서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행복할 수 있는가?” 이렇게 질문하는 사람들에게 물어봤습니다. “어떨 때 가장 행복하십니까?” 그런데 이 질문에 쉽게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누구나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을 행복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자신이 언제, 어떤 상황에서 가장 행복한지를 잘 모릅니다. 그래서 행복과의 연결고리를 돈에서 찾습니다. 행복의 방법을 모르면서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그래서 ‘돈, 돈’ 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렇다면 돈으로 행복을 만들 수 있을까요? 행복을 돈으로 살 수 있을까요?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던 심리학자 다니엘 카너먼과 연구자들이 말했습니다. “행복의 양은 연 소득 7만 5천 불(약 8천만 원)이 정점이다. 연 소득이 2천만 원일 때보다 4천만 원일 때 좀 더 행복하다. 하지만 8천만 원을 넘어서면 행복과 소득은 거의 상관없다. 8천만 원까지는 돈이 만들어 내는 행복이 아니라 돈이 부족해서 발생하는 불행과 불안 감소로 보아야 한다. 돈은 행복 촉진제가 아니라 불행 예방제이거나 불안 완화제의 역할이 더 크다. 돈과 행복은 그저 눈에 잘 띄는 결과일 가능성이 크다.”
여러분! 어떨 때 가장 행복합니까? 나의 행복이 어디서 올까요? 돈을 많이 벌면 행복할까요? 세상 지위가 높아지면 행복할까요? 세상 권세를 얻으면 행복할까요? 내가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행복은 삶의 태도에 달려 있습니다. 세계적인 정신분석학자 칼 메닝거 박사가 말했습니다. “태도(attitude)는 사실보다 중요하다.” 다시 말하면 삶의 태도(자세)가 사실보다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볼까요? 사람들은 세상이 확 변하기 원합니다. 자신의 삶의 환경이 좋아지기를 바라고, 대우가 달라졌으면 해요. 그러나 세상이 달라져도 내가 달라지지 않으면 행복하지 않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세상이 날마다 변하고, 달라지고 있습니다. 세상이 너무 많이 변하고, 너무 빨리 달라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마음이 너무 급하고, 너무 혼란스럽습니다. 삶이 너무 분주해졌습니다. 그러다보니 자신을 돌아볼 시간이 없습니다. 자신의 감정을 제어하고, 다스릴 장치를 잃었습니다. 사람들은 늘 자신감으로 교만해져 있습니다. ‘나는 언제든지 잘 할 수 있어. 뭐든지 할 수 있어.’ 교만한 마음은 정직해야 할 시점에 정직하지 못합니다. 겸손할 줄 모릅니다. 겸손하지 않으면 용기가 없고, 지혜도 부족합니다. 교만한 사람은 잘못을 고백하고, 회개할 시간이 없습니다. 함께 하는 사람들과 화목하지 못했습니다. 유리우스 함마가 말했습니다. “밖으로부터 찾아오는 행복은 바짝 마른 벼처럼 가볍다.” 밖에서 찾는 행복은 가장 사랑해야 할 사람을 사랑하지 못합니다. 인생의 마무리 시점에 가장 후회하는 일이 무엇인지 아세요? 일을 많이 못해서 후회하지 않습니다. 사랑해야 할 사람을 사랑하지 못한 것, 은혜를 나누지 못하고 인생을 보낸 사실에 대해서 후회와 회한을 갖게 됩니다. 그 후회와 회한이 마음을 괴롭히고, 고통스럽게 합니다.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가 벗어버려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교만한 마음을 벗어야 합니다. 왜? 마음이 교만하면 스스로 자긍하고, 자신을 신(神)으로 여기기 때문입니다.(겔 28:2) 마음이 교만한 사람은 하나님을 잊어버리기 때문입니다.(신 8:14) 마음이 교만하면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교만한 사람은 하나님을 믿지 않습니다. 교만을 벗어야 겸손한 태도(자세)가 나옵니다. 겸손할 때 믿음을 갖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 겸손한 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겸손한 사람의 영을 소생시키고, 통회하는 사람의 마음을 소생시키십니다.(사 57:15) 겸손한 사람은 지금 무엇을 찾아야 하는지 압니다. 겸손한 사람은 갈급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찾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던 사도 바울이 고백했습니다.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딤전 1:14)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를 왜 찾고, 왜 하나님의 은혜를 회복해야 합니까? 첫째는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는 줄을 믿기 때문입니다.(행 15:11)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입니다.(요 1:17) 둘째는 믿음과 사랑이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기 때문입니다.(딤전 1:14) 셋째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야 합니다. 주의 은혜와 주를 아는 지식이 자라나야 주의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저에게 있게 됩니다.(벧후 3:18) 지금 여러분은 이 세 가지를 내 심령 안에서 확신하고 이루어지고 있습니까? 당대에 최고 율법학자였던 사울이 성경을 많이 연구하고, 세상 지식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사울은 하나님의 은혜가 예수님을 통해서 왔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사울은 자신의 율법적인 지식을 최대한으로 활용하여 초대교회를 핍박하고, 성도들을 폭행하고, 예수님을 비방하고, 박해하는 데 앞장섰습니다. 초대교회 스데반 집사를 돌로 쳐 죽이는 일에 앞장섰습니다.(딤전 1:13) 예수님께서는 그런 사울을 보시고, 아셨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일체 오래 참으시고, 주의 긍휼로 받아주셨습니다. 주의 사랑이 믿음을 갖게 했습니다. 주의 사랑이 영생 얻는 자의 본이 되게 하셨습니다.(딤전 1:16)
오늘 본문 고린도후서 12장은 사도 바울이 신령한 은혜를 받았던 체험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삼층천에 이끌려 올라가는 신비한 체험을 했습니다. 본문 2절을 보세요.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그는 14년 전에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여기서 “셋째 하늘(트리투 우라누/τριτου ουρανου/tritoy oyranoy)”은 하나님께서 계신 거처를 말합니다.(시 2:4, 사 40:22) 셋째 하늘은 하나님께서 계시는 낙원을 말합니다. 셋째 하늘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기 전에 한 강도에게 허락하셨던 낙원입니다. “네가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 23:43) 낙원은 하나님께서 계시는 천국이요, 천상의 존재들이 사는 행복의 처소입니다. 셋째 하늘은 하나님의 권능이 있고, 영원한 질서가 있는 영적인 처소입니다. 사도 바울은 셋째 하늘을 체험할 때 자신이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몰랐다고 고백했습니다. 셋째 하늘에 올라가서 엄청난 하늘나라의 행복을 경험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볼 수 있는 하늘은 어디까지입니까? 우리가 눈으로 보는 첫째 하늘은 지구상의 대기와 구름이 머무는 곳입니다. 둘째 하늘은 지구의 대기권 위에 존재하는 천체와 우주, 별... 모든 것들입니다. 소련의 우주비행사가 우주선을 타고 하늘에 올라가서 ‘나는 저 위에서 하나님을 보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둘째 하늘에서는 하나님을 볼 수 없습니다. 셋째 하늘에 가야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셋째 하늘은 낙원이요, 구원 받은 사람들이 거주하는 초지상적인 처소입니다. 이 셋째 하늘을 체험했던 사도 바울은 그것을 말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본문 4절을 보세요.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여기서 “낙원(파라데이소스/παραδεισος)”은 “미래의 행복한 장소, 천국, 기쁨의 땅, 부활 때까지 경건한 영혼들이 거하는 처소”입니다.
사도 바울이 왜 셋째 하늘에 대해서 말할 수 없다고 했을까요? 하나는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다른 하나는 말을 해도 사람들이 믿지 않고, 이해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 이유는 사람들이 듣고 지나치게 생각할까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본문 6절 하반절에 보면, “누가 나를 보는 바와 내게 듣는 바에 지나치게 생각할까 두려워 그만두노라.” 이 말은 사도 바울이 체험한 특별한 영적 체험에 대해 과대평가할 것을 두려워하여 이야기 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셋째 하늘을 체험했지만 자신을 3인칭으로 표현했습니다. “이런 사람을 아노니”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사도 바울의 믿음과 고백 속에서 성령의 아홉 번째 열매(절제)를 볼 수 있습니다. 절제는 사랑과 행복의 비결입니다. 절제는 철저히 자기관리를 하는 힘입니다. 절제는 마음을 다스리고, 생각을 다스리고, 욕망을 다스리고, 말을 다스리고, 분노를 다스리고, 교만을 다스리는 힘입니다. 절제의 열매 속에 생명과 축복이 있습니다. 절제는 주신 복을 소중히 지키는 성령의 열매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보았던 낙원에 대해서 말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들었던 천상의 소리를 말하지 않았습니다. 왜? 말하면서 교만해질까 봐 말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교만해지면 받았던 은혜를 다 쏟아버리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로부터 많은 은혜를 받기 원합니까? 더 큰 은혜를 받고 싶습니까? 그렇다면 내 안에 있는 육체의 가시를 은혜로 여기십시오.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 받은 은혜가 너무 많았습니다. 주님께 받은 은혜가 너무 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많은 은혜를 주셨던 바울에게 육체의 가시도 주셨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사도 바울에게 주셨던 은혜를 잘 감당하게 하려구요. 본문 7절을 보세요.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은 더 큰 은혜를 받은 사람에게 무엇을 요구하십니까? 은혜를 받고, 그 은혜를 지키고, 그 은혜를 전하기 원하십니다. 그래서 때로 육체의 가시를 주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육체의 가시가 무엇인가? 자세히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많은 사람이 바울에게 주신 가시가 무엇인가를 추측해 보았습니다. ‘말라리아의 질병을 앓았을 것이다. 간질병이었을 것이다. 심한 눈병으로 시력이 좋지 않았을 것이다. 볼품없는 외모와 어눌한 말솜씨 일 것이다. 늘 사탄의 괴롭힘을 당했을 것이다. 바울의 적대자들로부터 수많은 박해를 받았을 것이다.’
더 큰 은혜와 더불어 왜 육체의 가시를 주셨을까요? 육체의 가시를 통해서 겸손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육체의 가시로 인해 스스로 부끄럽게 여기고, 자만하지 못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놀라운 환상을 보고, 하나님의 계시를 보고, 들었던 것은 분명히 자랑할 만한 것입니다. 그러나 받은 은혜의 자랑은 바울이 아니라 하나님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자랑하고, 하나님의 자랑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나는 어떤 은혜를 받았습니까? 이 은혜를 얼마나 자랑하십니까? 이 은혜를 주신 하나님을 자랑하고 삽니까? 내 안에 있는 육체의 가시를 은혜로 받고 사랑하십니까?
미국의 대표적인 복음주의 작가요, 목회자 맥스 루케이도 목사님이 일상생활 속에서 묵상하며 써놓은 <맥스 루케이도의 일상의 은혜(내 작은 아픔에도 공감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라는 책에서 말했습니다. “일상의 은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특별한 선물이다. 하나님을 만나는 가슴 뛰는 일상을 경험하자. 진부한 일상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면 하나님으로 가득한 일상이 된다. 나의 작은 찬양이 하나님에게 큰 기쁨이 된다. 작은 찬양이 우리의 일상을 살아나게 하고, 춤추며 일어나게 된다. 하나님이 넘치게 부어 주신 은혜를 삶의 자리에서 누리자. 해변의 모래알을 셀 수 없듯이, 우리를 향한 그분의 사랑은 헤아릴 수 없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와 함께 누릴 영원한 삶을 꿈꾸신다. 우리와 함께 살 수 없다면, 그분은 우리를 위해 목숨을 버리실 것이다. 더 큰 은혜를 받으려면 만물의 중심이신 하나님을 인생의 중심으로 삼고, 날마다 스스로의 십자가를 기쁘게 짊어져야 한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 곁에 있다. 가장 큰 은혜가 구원받은 것이다. 인생의 길이는 잠시다. 그러니 영원을 준비하라. 내가 받은 은혜를 나누면, 더 큰 은혜가 임한다. 예수님은 항상 우리 인생의 인도자이시다. 우리의 아픔에 공감하시고, 함께 울어 주시고, 함께 웃어 주신다. 날마다 새롭게 되는 나의 삶이 가장 멋진 인생이다. 우리의 인생에 난관이 닥칠 때 믿음의 물매를 던져라. 하나님의 눈으로 나 자신을 보고, 세상을 보라. 그러면 하나님의 비범함을 경험하고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게 된다. 하나님과 상관없이 살기 원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닫고, 하나님의 말씀을 잔소리로 여긴다. 십자가를 비웃고, 자신의 허리둘레나 지갑의 두께를 중요하게 여긴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 마음의 중심을 들여다보신다. 우리 속에서 하나님을 향한 마음을 발견하시면, 그를 불러 자신의 일꾼으로 삼으신다.”
여러분! 사도 바울은 이방인의 사도로 부름을 받았다고 고백했습니다. 사도의 사명을 감당하는데, 육체의 가시가 너무 힘들고, 늘 고통스러웠습니다. 육체의 가시가 불편해서 육체의 가시를 제거해달라고 세 번이나 간구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렇게 응답하셨습니다. 본문 9절 상반절을 보세요.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여기서 “족하다(알케오/αρκεω/arkeo)”는 말은 “본래의 의미는 격퇴하다, 유용하다, 만족스럽다, 충분하다, 넉넉하다, 무한한 힘을 소유하다, 강하다, 지키다”는 뜻입니다. 무슨 뜻입니까? ‘내가 너에게 준 큰 은혜로 가시를 격퇴시킬 수 있다. 너에게 있는 가시가 도리어 유용하다, 내 은혜로 너에게 충분하다, 너에게 준 은혜는 무한한 힘을 갖고 있다, 내 은혜로 강하고, 지킬 수 있다.’
사도 바울은 주님을 위해서 모든 것을 버렸습니다. 자신의 유익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사도 바울의 간구를 들어주지 않았습니까? 왜? 육체의 가시가 은혜를 온전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육체의 약함이 믿음을 온전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육체의 아픔과 고난이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시는 기회라는 것입니다. 본문 9절을 보면,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 짐이라.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가 족하다는 것은 더 이상 그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시겠다는 뜻입니다. 왜? 자신의 약점을 알고, 자신의 부족한 부분이 있어야 하나님께 온전히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지하고 맡길 때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을 자신의 기도를 어떻게 바꿨습니까? 본문 10절을 보세요.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때에 강함이라.”
세계적인 명지휘자 토스카니니는 원래 바이올린 연주자였습니다. 그런데 시력이 나빠져서 악보를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악보를 외우고, 다른 사람들의 악보까지도 외웠습니다. 어느 날 지휘자가 갑작스럽게 자리를 비우자, 오케스트라 대원들의 악보를 외우고 알고 있었던 토스카니니를 지휘자로 세웠습니다. 그는 자신의 약점이 세계적인 명지휘자가 되게 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가 언제 유용합니까? 어느 순간에 은혜를 충분하게 주실까요? 어느 때에 하나님의 은혜가 무한한 힘을 가질까요? 자신의 약점을 인정할 때 겸손해집니다. 자신이 여러 약함을 가졌다고 받아들일 때 겸손해집니다. ‘이것이 내 일이 아니라 주께서 친히 역사하셔야 한다.’ 라고 간절한 마음의 표명을 해야 합니다. 그때 그리스도의 능력이 나에게 머물고, 그리스도의 능력이 강하게 역사합니다. 우리는 사도 바울의 위대함을 여기서 찾을 수 있습니다. ’내가 강해지고, 내가 드러나는 것을 원치 않는다. 내 사역 속에 주님께서 함께 하시고, 주의 능력이 항상 머물기를 원한다. 내가 강해지고, 내가 능력이 있으면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다. 내가 약할 때 주님의 능력이 온전히 나타나고, 내가 강해질 수 있다. 그래서 어떤 형편에서도 기뻐하고, 감사한다.‘
지금 나를 돌아보십시오. 과거의 은혜를 믿을 때 감사하고, 현재의 은혜를 믿을 때 능력에 살고, 미래의 은혜를 믿을 때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이제 나의 약함, 약점을 하나님께서 권능의 기회로 사용하실 것을 믿으십시오. 나의 약함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나타나고, 나의 비움이 하나님께서 온전히 채우십니다. 나의 약한 손을 주님의 손에 둘 때에 능력의 손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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