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단계
본 문 / 로마서 10:9-10; 마 7:24-25
주 제 / 믿음의 단계는 ‘입술의 믿음’, ‘마음의 믿음’, ‘행함의 믿음’이며, 이는 성화(聖化)의 길이다.
작성일 / 2008년 7월 13일 (№ 08-28)
9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 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롬 10:9-10)
24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 25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 (마 7:24-25)
Ⅰ 부지런함과 조급함 (잠 21:5)
‘부지런하다’란 말과, ‘서두르다’라는 말은 외형적으로는 비슷한 말이다. 어떤 목표를 향해 분주하고 바쁘게 움직인다는 면에서 일단 외형적으로는 비슷한 말이다. 그러나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전혀 다른 말이다. ‘서두르다’라는 말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규모가 없고, 계획이 없는 상태에서의 분주함이다. 그래서 바삐 움직이지만 어딘지 모르게 서툴고 아슬아슬하게 움직이다. 실수가 많고, 부작용이 많다. 물론 좋은 열매를 기대하기도 힘들다. 그러나 ‘부지런 하다’라는 말은 목표가 있을 뿐 아니라, 그 목표를 위한 계획이 세워졌고, 그리고 규모도 있다. 그래서 안정된 상태에서 꾸준히 움직인다. 차분하고 이성적으로 움직이다. 그러므로 그 열매는 매우 긍정적이다.
부지런한 자의 경영은 풍부함에 이를 것이나, 조급한 자는 궁핍함에 이를 따름이니라 (잠 21:5)
우리는 어떤 목표가 세워지면 조급하게 서두르지 말아야 한다. 부지런하게 움직여야 한다. 규모 있게, 계획성 있게, 차분하고 안정적으로 그 목표를 향해 전진해야 한다. 그래야 좋은 열매를 기대할 수 있다.
믿음 생활을 하는 우리에게 있어서 최고의 목표는 ‘성화’(聖化)이다. 우리는 ‘성도’(αγιο?, 하기오스, 聖徒)로 불리어지는 사람들이다(마 27:52; 행 9:13). 즉 ‘신성한 사람들’, ‘거룩한 사람들’이란 뜻이다.
거룩한 이는 하나님뿐이다(출 15:11; 삼상 2;2; 사 57:15). ‘모세’는 “주와 같이 거룩한 자가 누구니이까?”라고 했고(출 15:11), ‘한나’ “여호와 같이 거룩한 이가 없으니…”라고 했으며(삼상 2:2), ‘이사야’와 ‘사도 요한’은 거룩한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라고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사 6:3; 계4:8).
그런데 우리가 왜 ‘거룩한 사람들’이라고 불리어 지는가? ‘사도 바울’은 그에 대한 대답으로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다”라고 한다(고전 3:9). 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으니, 거룩한 백성이요, 하나님의 밭이 되었으니 하나님이 농사를 짓는 거룩한 밭이며, 하나님이 거하시는 집, 거룩한 성전이 되었으니 우리가 성도로 불리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그 부르심에 합당하게 성화를 이루는 것이 신앙의 목표여야 한다. 만약 우리가 신앙의 목표를 다른 곳에서 찾고 있었다면, 이제 그 목표를 바르게 설정해야 한다.
성화란 무엇인가? 바로 예수님을 닮는 것이다. 예수님도 우리가 예수님을 닮아 거룩한 사람들, 즉 성도가 되길 원하신다. 주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후 하신 말씀이 무엇인가?
14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 15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요 13:14-15)
“나를 닮으라.”는 말씀이다. 세상을 본받아 평범한 사람이 되지 말고, 나를 본받아 거룩한 사람이 되라고 하신다. 이것이 바로 ‘성화’이다. 이 성화는 믿음으로만 이루게 되다. 믿는 사람이 성도요, 성도만이 성화의 길로 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화라는 목표점에 이르러야 한다. 그러나 서둘러서는 안 된다. 규모 있게, 그리고 계획성 있게, 차분하게 한 걸음 한 걸음 부지런히 전지하여 주님을 닮은 성도로 성장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오늘은 그 믿음의 단계에 대하여 함께 생각해 보기로 하자.
Ⅱ 입술의 믿음 (롬 10:9a, 10b)
믿음의 첫 번째 단계는 ‘입’이다. 입으로 주를 시인하는 것으로부터 믿음이 시작된다. 본문 로마서 10:9-10에 보면,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면 …구원을 얻을 것”이라고 한다. 이것이 믿음의 첫 번째 단계이다. 입으로 주를 시인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시인해야 한다는 것일까? 사도들은 우리가 입으로 시인해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 아주 자세히 정리해 놓았다. ‘사도신경’을 보라,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한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첫째는 성부 하나님에 대한 고백이다. 창조주시며, 성도의 아버지이심을 고백한다.
둘째는 성자 하나님에 대한 고백이다. 구원자이시며, 심판자이심을 고백한다.
셋째는 성령 하나님에 대한 고백이다. 성령이 존재함에 대한 고백이다.
넷째는 교회에 대한 고백이다. 교회는 거룩하며 보편적이며, 성도를 양육함을 고백한다.
마지막으로 성도 자신에 대한 고백이다. 죄 용서받고 영생을 누릴 것임을 고백한다.
오늘의 본문 로마서 10:9-10은 바로 이 사실을 입으로 고백하는 자는 구원을 받는다고 말한다. 구원을 위한 믿음 그것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우리의 입이 그리스도를 주로 시인하고, 창조주 하나님을 시인하며, 우리 안에 성령이 역사함을 고백하고, 교회는 성도를 생산하고 기르는 하나님의 전임을 고백하고, 나는 이 고백을 통해 모든 죄를 사함 받고 영생을 얻은 구원의 백성임을 고백하는 것이 바로 구원을 보장받는 믿음이다. 그래서 교회는 예배 때마다, 사도신경으로 우리의 믿음을 고백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구원이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오늘 예배 시작하면서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했는가? 그렇다면 우리 모두는 구원을 얻은 거룩한 성도들이 분명하다. 서로 축하하라. “입의 고백으로 얻은 구원을 축하…”
Ⅲ 마음의 믿음 (롬 10:9b, 10a)
그러나 우리의 믿음은 그 자리에 머물 수 없다. 왜 우리의 목표는 구원이 아니라, 그 이상이기 때문이다. 성화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님을 닮은 사람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믿음도 발전이 있어야 한다. 믿음의 발전을 위한 두 번째 단계는 바로 ‘마음’(καρδια, 칼디아)이다. 즉 ‘입의 믿음’에서 ‘마음의 믿음’으로 한 단계 더 올라가야 한다는 말이다.
‘마음’(καρδια, 칼디아)이란 지정의(知情意) 즉 ‘지성’(知性)과 ‘감성’(感性)과, ‘뜻’을 움직이는 근원을 말한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나의 ‘지성’(知性)이 예수를 믿고, 나의 ‘감성’(感性)이 예수를 믿으며, 나의 ‘뜻’도 역시 예수를 믿는 것을 말한다. 헬라어에서 ‘마음’(καρδια, 칼디아)은 ‘심장’이란 말이기도 하다. 즉 마음은 생명의 원인이다. 그러므로 ‘마음’으로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생명’으로 예수를 믿는 것을 말하기도 한다. 전 인격이 예수를 믿는 것이 바로 두 번째 단계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믿음이 이 두 번째 단계에 이르면, 하나님의 더 구체적이고, 더 원대하고, 더욱 심오한 응답을 받는다.
1. 양심이 살아남 (히 10:22)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 (히 10:22a)
“마음의 믿음은 양심을 살리게 된다.”는 말씀이다. ‘양심’(συνειδησι?, 쉬네이데시스)이란 “선악을 구분하는 마음”이다.
우리는 가끔 “양심이 없는 사람”이란 말을 듣기도 하고, 그런 말을 하기도 한다. 그것은 “도대체 올바름이 없고 거짓만 있는 사람”이란 핀잔이다. 사람들은 정도의 차이가 있으나 대부분 양심이 없는 존재들이다. 평소에는 양심이 있는 것 같으나 자기와 직접 관련된 일을 만나면 양심은 사라지고 만다. 선악을 떠나서 무조건 자기를 두둔한다. 심지어 하나님까지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려한다. 남이 하면 스캔들이지만, 내가 하면 로맨스가 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양심을 회복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필수적인 것이 바로 마음의 믿음이다. 마음의 믿음은 우리의 잃었던 양심을 다시 살려서 거짓 안에서 쾌락을 좋던 우리로 하여금 양심 안에서 즐거움을 누리게 한다.
시편 51편은 다윗의 기도문인데, 이 기도문에는 “다윗이 밧세바와 동침한 후 선지자 나단이 저에게 온 때에”라는 표제가 붙어있다. 즉 자신의 명령을 받은 충성된 부하가 전쟁터에서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을 때 그의 아내와 동침한 파렴치한 행동을 저지른 때에 하나님이 선지자 나단을 보내어 책망하시자 비로소 회개의 기도를 드린 내용이라는 말이다. 이 기도문의 11절에서 다윗은 이런 고백을 한다.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시 51:10). 양심을 회복시켜달라는 기도이다. 마음의 믿음을 잃음으로서 양심이 무너졌으니, 다시 마음의 믿음을 통해 양심을 회복할 수 있게 해달라는 기도이다. 왜냐하면 양심이 무너짐으로 인한 쾌락이 양심 안에서 누리는 참된 즐거움과 평화만 못함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마음으로 예수를 믿을 때, 쾌락이 아닌 영적 즐거움을 주는 양심이 다시 살아난다.
2. 능력을 받음 (막 11;23)
‘마음의 믿음’이 받는 또 하나의 응답은 ‘능력’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룰 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막 11:23)
“마음에 의심치 않으면”, 즉 ‘마음으로 믿으면“ 산을 명하여 바다에 던질 수 있는 능력을 얻는다고 한다. 마음으로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의 마음을 공유하는 것이며, 예수님이 능력을 공유하는 것이다. ’입의 믿음‘은 ’구원‘으로 응답을 받지만, ’마음의 믿음‘은 ’양심‘과 ’능력‘으로 응답을 받는다.
벙어리 귀신들린 아이의 아버지가 예수님을 만나자 “주여 할 수 있거든 도와주십시오.”라고 말했다(막 9:22). 이때 주님은 그 아버지를 꾸짖으신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다”고 하신다(막 9:23). 그 때 아이의 아버지가 한 말은 “내가 믿습니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십시오.”였다(막 9:24). “내가 믿습니다.” 그리고 “나의 믿음 없는 것”이 동시에 고백된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믿음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는 말이다. 입의 믿음이 있다. 그러나 마음의 믿음은 없다. 그래서 마음의 믿음을 도와 달라는 것이다. 이 아버지는 주님의 도움을 받아 마음의 믿음으로 아들이 병을 고친 것이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롬 10:17)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을 때, 아이의 아버지처럼 마음의 믿음을 받는다.
Ⅳ 행하는 믿음 (마 7:24-25)
믿음의 세 번째 단계는 ‘행함의 믿음’이다. 입으로 믿고, 마음으로 믿으며, 삶의 생활 속에서 믿는 믿음을 통해 우리는 주님을 닮는 성화의 길로 가게 된다. 주의 말씀을 듣고 마음의 믿음이 생겼으면(롬 10:17)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현상이 바로 ‘행함의 믿음’이다. 마음에 자리 잡은 믿음이 내 생황을 가만히 두지 않는다. 주의 말씀이 내 삶을 주관하게 한다. 마음에 담고 있는 것이 나를 주관하게 하는 것이다.
선한 사람은 마음의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 (눅 6:45a)
우리가 '행함의 믿음'으로 주님께 나아갈 때, 주님은 무엇으로 우리에게 응답하실까?
24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 25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 (마 7:24-25)
무너지지 않는 집을 짓게 하신다. 아무리 험한 길을 만나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 어떤 유혹이 있어도 결코 무너지지 않는 믿음으로 응답하신다.
‘가룟 유다’의 반역은 행함의 믿음이 없었기 때문이다. 입술의 믿음은 있었으나, 마음의 믿음도, 행하는 믿음도 없었기 때문에 돈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반역자가 되고 만 것이다. 주님께서 나사로의 고향 ‘베다니’에 가셨을 때, ‘마리아’라는 처녀가 주님의 발에 값비싼 향유를 붓자 가룟 유다가 나서서 “이 향유를 300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을 구제하는 것이 옳지 않으냐?”고 책망했다(요 12:5). 아주 건전한 믿음을 가진 사람처럼 보인다. 그런데 요한복음의 저자는 그런 가룟 유다의 행위에 대하여 그 믿음이 의심스럽다고 말한다.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저는 도적이라 돈 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 (요 12:6)
그는 늘 헌금을 훔치는 사람이었으므로 마리아가 향유를 가지고 오자 벌써 그것이 300데나리온의 값어치가 있는 귀중품임을 알아차렸고, 그것을 꿀꺽 먹어버릴 계산을 하고 있었는데, 그것을 주님의 발에 붓자 너무 아까워서 화를 내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는 행실이 불신자였다. 그러므로 후에 은 30세겔에 주님을 팔아 버리고(마 26:15), 후에 배가 터지고 창자가 다 흘러나오는 비참한 죽음을 맞이한다(헹 1:18). 행함의 믿음이 없을 때, 유혹을 이기지 못하며, 행함의 믿음이 없는 사람들에게 유혹의 손길은 거세지는 것이다. 행함의 믿음이 어떤 역경과 유혹 속에서도 믿음을 굳게 지켜 최후의 승리자가 되게 한다.
Ⅴ 믿음의 단계
우리 성도들의 공동된 목표는 ‘성화’(聖化)이다. 주님을 닮는 것이 곧 우리의 목표이다. 그러나 서두르지 말자. 서두를 경우 ‘열심’은 있으나 ‘열매’가 없는 사람이 된다. 부지런히 한 계단, 한 계단 꾸준히 천천히 올라가지 주님은 서두르지 않으신다. 우리가 좀 늦어도 기다리신다. 그리고 너무 지루하지도 않게 단계마다 좋은 선물을 준비하신다. ‘입의 믿음’에 이르면 ‘구원’의 확신을 주어 즐거움을 주시고, ‘마음의 믿음’에 이르면 ‘양심’과 ‘능력’을 주어 보람을 얻게 하시며, ‘행함의 믿음’에 이를 때에는 흔들림 없는 ‘반석’ 위의 집을 주어 동료 성도들까지도 돌보게 행복을 주시어 우리의 믿음이 길을 지루하지 않는 즐거운 길이 되게 하신다. 서두르지 말고 다만 부지런하게 신앙의 단계를 밟으며 주님 닮은 성도로 성장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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