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4.14.대민(주일낮)
*믿음의 단계(시126:5-6)
세상에는 무엇을 하든지 단계가 있습니다.
한 마리의 나비가 꽃과 꽃 사이를 날아다니며 꿀을 빨기까지에는 반드시 거쳐야 할 네 단계가 있습니다. 첫 단계는 애벌레가 영양분을 얻을 수 있는 나무나 잎에 알을 낳은 단계입니다. 두 번째 단계는 애벌레가 알에서 깨어나 식물의 잎사귀를 먹으며 자라나는 단계인데, 어느 정도 자라나면 잎사귀를 녹여 소화시키는 내분비 액체가 더 이상 분비되지 않게 됩니다. 세 번째 단계는 애벌레가 가는 잎사귀나 나무에 달라붙어 비단실이 될 액체를 만들고 그 액체로 실을 뽑아 자기 몸을 감싸고 번데기가 되는 단계입니다. 네 번째 단계는 얼마 후 껍질을 부드럽게 하는 액체를 바르고 성숙한 나비로 자라나 단단한 번데기 껍질을 깨고 나비가 되어 나오자마자 30분만에 호흡을 시작하고 피가 온 몸에 순환되기 시작하면서 공중으로 훨훨 날아 아름다운 세계를 바라보게 됩니다.
이와 같이 한 마리의 나비가 되기까지 계속적으로 자기 자신을 변화하고 피나는 노력을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꾸준한 노력처럼 무서운 것은 없습니다.
한 심리학자는 인간을 세 단계로 보아 첫째는 받는 단계요, 두 번째는 소유하는 단계요, 세 번째는 주는 단계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믿음에도 단계가 있습니다.
첫 단계는 초보적 신앙으로 자기를 위하여 예수님을 믿습니다. 즉 자기 욕망, 자기 소원, 자기 출세, 자기 건강을 위해서 곧 모든 것이 자기중심적이고, 자기 욕망이 원인이 되고 자기 소원이 동기가 되어서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다음 단계는 남을 위하여 예수님을 믿는 수준의 신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도를 해도 남을 위해 합니다.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이웃을 위하여, 교회를 위하여, 나라와 민족과 세계를 위하여 기도합니다.
그리고 여기서 신앙이 한 단계 더 높아지면 하나님을 위하여 예수님을 믿습니다. 살든지 죽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습니다. 성도는 하나님을 알기만 하고, 믿기만 해서는 안 되고 그 다음 단계가 있어야 합니다. 손으로 발로 몸으로 삶으로 인격으로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 나타나야 합니다.
믿음의 단계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믿는 단계, 은혜 받는 단계, 은혜 받은 다음에는 주는 단계로 발전해야 합니다.
또한 믿음을 완성시켜 나가는 데에도 단계가 있습니다. 모든 사람의 믿음이 다 똑 같은 것이 아닙니다. 믿음의 단계에 따라서 밖으로 나타나는 현상이 다릅니다. 높은 믿음의 단계에 있는 사람일수록 자기는 사라지고 하나님의 속성인 성령의 열매가 나타납니다. 낮은 단계에 있는 사람일수록 분명히 자신 즉 자신의 옛사람이 나타납니다. 옛사람의 속성은 분노하고 불평하고 원망하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의심하고 다투고 파괴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에 있으면 결코 풍성한 삶을 살 수 없습니다. 따라서 믿음의 단계를 높여나가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을 업그레이드 시켜서 높은 차원의 영적인 삶을 살아가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교회도 개척하는 과정이 있고, 개척교회가 성장하는 과정이 있고, 성장한 다음에는 나누어주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 나라가 하나님 앞에 범죄 함으로 바벨론에 의해서 망하고 빼앗겼던 배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대부분의 위정자들과 상류층들, 그리고 장래 재목감들이 모두 포로가 되어 그 나라로 끌려가서 70년 동안 눈물을 흘리면서 고통을 받다가 드디어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시사 고국으로 돌아오면서 부른 노래입니다. 자존심이 강하기로 유명했던 유대인들이 이방 민족들에게 갖은 압박을 당하면서 눈물과 한으로 세월을 보내다가 자기 고국으로 돌아가게 되었으니, 그 때에 지도자들과 백성들의 마음은 실로 감격스러웠을 것입니다.
지금 우리에게도 이러한 감격이 필요할 때입니다.
오늘 우리의 현실은 갈수록 먹고 살기가 힘들어지면서 돈 앞에서 거짓도, 배신도 마다하지 않고, 신의를 헌신짝처럼 버리는 배은망덕한 세상입니다.
이러한 세상에서 많은 분들이 눈물의 골짜기를 지나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에 어떻게 살아야 눈물의 골짜기를 벗어나 기쁨의 초원으로 갈 수 있는지를 본문에서 몇 가지로 교훈 받고자 합니다.
1.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단계(5)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처음 신앙을 가질 때 각양각색의 은혜를 받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은혜 받은 자의 공통점은 구원의 감격을 경험하는 순간에 일어나는 현상이 있습니다. 그것은 눈물이 나오고 콧물까지 나오며 회개가 나오는 것입니다.
이로서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나아가게 됩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구원의 감격이 식어지고 눈물도 메말라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인생을 살아가면서 눈물이 없이 한 평생을 살아가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눈물은 보이지 않는 힘입니다. 인간에게 있는 가장 값진 세 가지 액체가 있다면, 그건 피와 땀과 눈물입니다.
오늘날 각박한 현실 속에서 너무 바쁘게 살다보니 현대인들은 이 귀한 눈물을 잊고 살아갑니다.
성도된 우리들은 언제 눈물을 펑펑 쏟으면서 하나님을 진지하게 찾습니까? 형통 할 때입니까? 곤고할 때입니까? 우리가 단 한 마디 말로 '아버지'하고 부를 때가 언제입니까? 그 한 마디 의 부르짖는 소리에 모든 무게를 다 실어서 하나님을 찾을 때가 언제인가 하느냐는 것입니다. 형통할 때입니까? 곤고할 때입니까? 우리가 언제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 사슴이 시냇물을 찾듯이 은혜를 갈급합니까? 형통할 때입니까? 고통 당할 때입니까?
과연 눈물을 흘려보셨습니까?
삶이 힘들고 고달플 때에 하나님 앞에 와서 눈물을 흘릴 수 있다는 것은 우리의 영혼과 감성이 살아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눈에서 눈물이 말라버리는 날 우리의 영혼도 눈물과 함께 말라 죽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눈물을 많이 흘리시기 바랍니다. 눈물은 내 영혼을 정화시키는 힘이 있을 뿐만 아니라, 상대방을 감동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예수님으로부터 죄를 용서받은 여인은 눈물로 예수님의 발을 씻어드림으로 예수님을 감동시켜드렸고, 예수님께 칭찬을 받았습니다.
특히 눈물의 기도는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는 능력입니다. 히스기야는 죽을 병이 들어 생명이 끝나게 되었을 때 하나님 앞에 눈물로 기도함으로 생명을 15년이나 연장 받았습니다. 시편56편8절에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 이것이 주의 책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나이까”라고 하였습니다.
눈물로 간구한 것이 주의 병에 담겨져 하늘나라에 상달되고, 그것이 생명책에 기록되어 우리에게 응답의 역사를 만들어 줍니다.
탈무드에는 “비가 와야 무지개가 생기듯이 눈물을 흘려야 그 영혼이 더욱 아름답고 풍성해진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눈물은 우리의 영혼을 풍성하게 할 뿐만 아니라, 삶에 지친 영혼들을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능력입니다.
자식을 위해 눈물을 흘리며 드리진 기도는 자식을 죄악으로부터 건져냅니다. 남편과 아내를 위해서 흘리는 눈물의 기도는 행복의 초석이 됩니다. 이웃을 위해서 흘리는 눈물의 기도는 그들의 삶에 드리워진 먹구름을 걷어내는 밝은 태양빛과도 같습니다.
오늘날은 눈물이 메마른 시대인 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식어진 구원의 감격을 회복하기 위해서 눈물을 흘리시기를 바랍니다. 가족과 이웃과 일가 친척들의 구원을 위해서 눈물을 흘리시기를 바랍니다.
【미국 북부의 한 마을에서 있었던 일이라 합니다. 장성한 아들 넷을 둔 어머니가 죽음 직전에 다큰 아들들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며 말했습니다. "이제 내가 너희들과 헤어질 시간이 된 듯 싶구나." 그 어머니는 아들들을 이름을 부르며 엄마에게 키스로 작별인사를 하라고 하였습니다. "첫째 짐, 엄마에게 굳나잇 키스를 해다오."
짐은 곧 눈물을 흘리며 엄마에게 다가가 키스를 하였습니다. 어머니는 둘째, 셋째 아들과도 굳나잇 키스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막내인 네째 아들 앤디에 이르자 "앤디야, 우리 막내 엄마에게 굳바이 키스를 해다오."라고 하였습니다. 막내 아들인 앤디는 이상해서 어머니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어머니, 왜 형들에게는 굳 나잇 키스를 하게 하시고 저에게는 굳 바이 키스를 하라고 하시나요?"
어머니는 조금은 어둡고 안타까운 모습으로 막내 아들의 두 손을 꼭잡고 말했습니다. "앤디야, 너희 형들은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언젠가는 꼭 저 영광스러운 천국에서 엄마와 다시 만나게 된단다. 하지만 너와는 이게 마지막 이란다. 이 엄마가 너를 주님의 길로 인도했으나 너는 끝내 네 고집대로 어두운 길로 가버리고 말았잖니. 그러니 너와 이 엄마와 만남은 이것으로 끝이란다. 다시는 만날 수가 없단다. 그래서 형들과는 굳 나잇 키스를 하였지만, 너와는 굳바이 키스를 한거란다."
이 말을 듣고 막내 아들은 어머니 앞에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어머니, 저도 굳나잇 키스를 다시 하겠습니다." 어머니도 감사의 눈물을 흘렸고, 마지막 순간까지 막내 아들의 두 손을 꼭잡고 있었습니다. 】
지금은 눈물을 흘릴 때입니다.
오늘 우리의 모습은 아름다운 사랑의 노래나 사랑의 이야기를 들으면 감격하고 눈물을 흘립니다. 그렇지만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향한 사랑의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우리는 감동할 줄 모르고 눈물을 흘릴지 모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 세대의 모습을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마태복음11장16-17절에 “이 세대를 무엇으로 비유할까 비유하건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제 동무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슬피 울어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 라고 하였습니다.
이제 다시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대신 죽어주신 예수님의 은혜를 생각하며 감사의 눈물을 흘리시기를 바라며 우리 자신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이웃을 위해서 눈물의 기도를 많이 흘리심으로 우리의 눈물이 주의 병이 담겨 하늘에 상달되는 은혜를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대표기도시 권사님들의 눈물기도를 교훈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사람들은 감성이 다르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믿음의 단계로 나아가시기를 바랍니다.
2,기쁨으로 거두는 단계(5)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웃는 것은 즐거운 감정일 때 만입니다. 그러나 눈물은 슬퍼도 눈물, 기뻐도 눈물, 억울해도 눈물, 아파도 눈물, 좋아도 눈물, 안 좋아도 눈물 모든 경우에 눈물입니다. 눈물은 아름답습니다. 눈물 뒤에는 반드시 좋은 결과가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일하는 눈물은 아름답습니다.
하나님은 일하며 수고하며 흘리는 눈물을 아름답게 보십니다.
지금은 눈물을 흘릴 정도로 아프고 고달프고 쓰라리지만 멀지 않아 보상을 받을 눈물이 있 습니다.
그래서 오늘 시편에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씨를 뿌릴 때 농부는 눈물이 흐를 정도로 피곤하고 바쁩니다. 그리고 아프고 어렵습니다.
그러나 추수할 때에는 그렇게 기쁠 수가 없습니다. 힘들어도 힘든 줄 모릅니다.
어부들도 그렇다는 것입니다. 고기 안 잡히며 두 시간 밤에 고생한 밤은 정말로 피곤한 밤입니다. 그러나 고기가 너무 많아 배 가득 채우며 밤을 새운 밤은 조금도 피곤하지 않은 밤입니다. 보상받을 수 있는 눈물은 좋은 눈물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내 힘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되면 답답하고 괴로운 나머지 한숨과 함께 눈물을 흘리게 됩니다. 눈물을 흘리되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는 눈물은 의미가 없습니다. 사람 앞에서 하소연하는 눈물도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힘들고 어려운 날 우리들이 눈물을 흘려야할 때와 장소가 있습니다. 그곳은 살아 계신 하나님 앞입니다. 그래서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라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 앞에서 눈물을 간구의 눈물을 흘리며 기도의 씨를 뿌리면 하나님이 주시는 응답의 열매로 기뻐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는 종종 복음 전도자를 씨 뿌리는 자로 비유하였습니다. 땅에 떨어진 씨가 저절로 열매를 맺지는 못합니다. 아무리 좋은 토양이라도 농부의 많은 수고와 눈물이 있어야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복음 전파를 명하실 때 그 가는 길에는 고난과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고 하였습니다(마 10:17-23). 거부하고 박해하는 세력에 의해서 고생의 떡을 먹고 고생의 물을 마시기도 합니다(왕상 22:26-27). 예레미야는 유대왕국의 멸망을 내다보면서 왕과 백성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주었지만 거부하는 백성들 때문에 눈에서 눈물이 시내처럼 흘렀습니다(렘 13:17).
그렇습니다, 누구보다도 말씀의 파종 자들에게는 더 더욱 눈물 흘릴 각오가 필요합니다. 예수님도 씨 뿌리는 자의 비유에서 그 씨를 사단이 빼앗고 훔칠 것을 경고하셨습니다.
또한 환난과 박해로 말씀을 받는 자들을 넘어지게 할 것을 경고하셨습니다.
또한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으로 말씀의 결실을 방해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사단은 누구보다 말씀의 능력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더 더욱 말씀은 눈물을 흘려서라도 뿌려져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말씀의 파종 노력에도 불구하고 한동안 그 결실이 없는 답답함으로 울어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렇더라도 눈물을 흘리면서도 계속해서 말씀의 씨는 뿌려져야 합니다.
오늘 이 시편은 포로생활을 끝내고 돌아오면서 해방의 기쁨을 노래한 시편입니다.
이 말씀처럼 우리 성도들에게도 포로생활과 같은 고난이 닥쳐옵니다. 실패와 좌절이 갑자기 찾아옵니다. 하지만 그 어떤 고난과 실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시기 때문입니다. 그 살아계신 하나님이 우리를 여전히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절대 포기하지 않고 눈물로 씨를 뿌리고 눈물의 기도를 뿌리게 되면 기쁨이 반드시 찾아옵니다.
하나님은 성도의 눈물에 약하십니다. 비온 뒤에 찬란한 무지개가 펼쳐지듯이 눈물을 쏟고 기도하고 나면 마음에는 신비로운 평화가 찾아올 것입니다. 고요한 소망이 솟아날 것입니다. 사실 이 시대는 눈물이 말라가는 시대입니다.
“흐르는 눈물은 괴로우나 그보다 더욱 괴로운 것은 흐르지 않는 눈물이다”라는 아일랜드 속담이 있습니다. 눈물이 흐르는 것도 괴롭지만 흐르지 않는 것은 더욱 괴로운 것입니다.
이 시대는 비극입니다. 항상 햇빛만 나면 사막이 됩니다. 비가오지 않으면 사막이 됩니다. 당신의 마음속에 눈물이 메말랐다면 당신의 마음은 광야입니다. 당신의 영혼을 위한 흘리는 눈물이 없다면 당신의 영혼은 메마른 광야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바벨론에서 70년의 세월은 한마디로 눈물로 씨를 뿌린 세월이었습니다. 그 눈물은 고통의 눈물입니다. 가난에 찌든 눈물입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무능력의 눈물입니다. 그리고 지은 죄를 토해놓는 회개의 눈물입니다. 얼마나 울었는지 눈까지 다 진물러 버린 세월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에 이런 눈물의 세월이 있었듯이 우리 성도들 개인의 역사에도 이런 시간들이 있습니다. 고난의 시간, 연단의 세월, 물질로 어려운 시간, 이모저모로 한숨과 눈물만 흐르는 시간들입니다. 바로 눈물로 씨를 뿌리는 시기입니다. 이는 기쁨으로 단을 거두는 날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날 들입니다. 이 과정을 거치지 않고 열매를 거둔 역사가 없습니다.
모든 열매는 반드시 씨를 뿌린 결과입니다. 씨를 뿌리지 않고 열매를 거둘 려고 하는 것은 사기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뿌린대로 거두는 법칙만이 통용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는 울어야 합니다. 울어야 웃을 날이 옵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는 믿음의 단계를 이르러 기쁨이 충만한 삶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3.곡식단을 가지고 돌아오는 단계(6)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오늘 시편126편은 아직도 포로 귀환이 진행되고 있던 기간, 즉 제1차 포로 귀환과 제2차 포로 귀환 어간에 지어졌습니다.
그래서 먼저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유다 백성들은 자기네들만 무사히 도착했다고 만족하지 않고 아직도 바벨론에서 고국 귀환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을 동포들을 잊지 않고서 그들을 위하여 기도를 올렸던 것이었습니다. "남방 시내"는 팔레스틴의 남쪽에 있던 '네게브' 지역을 가리킵니다.
이곳은 여름철 건기에는 바짝 말라 있다가 겨울의 우기가 되면 많은 물이 넘쳐나면서 곳곳에서 급류의 시냇물이 흐르게 되는 특수한 지형이었는데, 그 시냇물은 주변의 동식물의 생존을 비롯하여 지역 주민의 식수 공급에 필수적인 것이었습니다.
바로 그처럼 메말랐던 '남방' 지역에 생명의 기운을 가져다주는 '시내'가 다시 흐르게 되듯이 모든 포로 된 유다 백성들이 다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해 달라는 뜻인 것입니다.
실제로 제2차 포로 귀환은 1차 포로 귀환이 있은 후 무려 79년이 지난 다음에 이루어졌으며 전체적인 포로 귀환은 거의 100년 가까운 세월이 걸렸습니다.
그래서 먼저 귀환한 유다 백성들은 여러 가지 이유와 사정으로 인하여 아직 돌아오지 못하고 바벨론 땅에 남아 있는 자기 동포들을 위하여 이처럼 간절한 기도를 계속 올렸던 것이었습니다.
오늘 본문 5절과 6절에서 반복되는 '울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단을 거두리로다'라는 말은 찬송가에도 나오는 유명한 구절입니다.
봄에 씨를 뿌리는 자만이 가을에 수확을 거두게 되는 것은 농사의 철칙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열심히 일하면 일한만큼 큰 물질적 축복을 얻게 된다.'는 일반적인 뜻으로 흔히 인용되고 있지만, 이 본문의 문맥에서 나타나는 원래의 구체적인 의미는 '민족 해방과 조국 재건을 위한 노력과 그 결과'를 비유하는 것입니다.
즉 이스라엘 민족은 아직도 해방을 받지 못하고 남아 있는 "우리의 포로"를 위해서 계속 "눈물을 흘리며" 기도를 드려야 마땅하였습니다.
그뿐 아니라 먼저 귀환한 백성들은 여전히 폐허로만 남아 있는 예루살렘 성에서 그야말로 땀을 흘리며 노력해야만 완전한 조국 재건 즉 지금의 해방 그 자체보다 더 큰 '기쁨의 단'을 거둘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자기만 고국으로 돌아왔다고 안주하지 않고 여전히 '포로 된' 동포들의 해방을 위하여 '울며' 기도하고, 과거에 자기 민족에게 해방을 베풀어 주신 하나님을 의지하는 가운데 더욱 '열심히 씨를 뿌림'으로써 조국이 받게 될 더 큰 미래의 축복을 확신하고 나아가는 자세 역시 오늘날 우리 모두가 본받아야 할 모습입니다.
그렇습니다. 포로 생활을 끝내고 해방의 기쁨을 안게 된 데에는 누군가 그때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린 사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해방이라고 하는 기쁨의 단을 들고 돌아올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우리 한국교회는 아직 포로 시대와 같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고 캄캄합니다. 사람들은 거두려고만 할 뿐 씨를 뿌리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럴 때 누군가는 한국 교회를 위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려야만 합니다.
오늘 본문 6절을 다시 보면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을 심은 대로 거둔다는 말로 기계적인 보상으로 오해해서 안 됩니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권선징악으로 이해해도 안 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인격에 근거해서 갚아주신다는 의미입니다. 기계적 보상보다 은혜의 원리에 입각해서 풍성하게 갚아주십니다.
사람을 의지하면 사막의 떨기나무 밖에 되지 않지만, 하나님을 의지하면 물가에 심은 나무와 같이 됩니다. 심은 것 이상으로 풍성하게 거두게 하십니다.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시느니라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심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물질을 심는 자는 물질의 축복을 얻게 하십니다. 몸으로 봉사하는 자는 건강의 축복을 누리게 하십니다. 찬송을 심으면 기쁨이 나오고 기도를 심으면 능력이 나오게 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도된 우리들이 하나님의 시간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씨를 뿌릴 때 기도하고 기대한 단을 반드시 가져올 수 있습니다.
인본주의는 '하나님없는 최선'을 말하지만, 신본주의는 '하나님을 모신 최선'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모신 신본주의가 될 때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십니다.
우리의 역사는 우리가 우리의 손으로 좌우 하는 것이 아닙니다.
역사의 수레바퀴를 운전하시는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되 소망 중에 씨를 뿌려야 합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역사에 구체적으로 개입하셔서 바벨론의 포로가운데 자유를 주신 하나님의 능력의 손길이 우리 대한민국의 역사에도 함께 하실 것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며 소망을 가지고 씨를 뿌릴 때 우리 민족의 역사를 예수님이 책임져 주 실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은 포로에서 돌아오기를 꺼려하고 주저하는 이들을 향하여 격려의 신앙간증을 적고 있습니다.
“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바벨론을 떠나 예루살렘까지 4-5개월이 걸리지만, 일단 시작하기만 하면 하나님은 기쁨으로 단을 가지고 돌아오게 하신다고 격려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이 이스라엘 사람들만을 위한 말씀이 아닙니다. 이제부터 우리도 눈물로 씨를 뿌리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 중심으로 살기만 하면 하나님은 분명히 우리에게도 복을 주신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이 세상은 눈물의 골짜기와 같습니다. 그러나 성령으로 씨를 뿌리는 사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영원한 생명을 거두게 될 것을 약속하시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눈물을 흘리지 아니하고 씨도 뿌리지 않는 이들은 거둘만한 것이 없을 것입니다. 지금 눈물을 흘리고 씨를 뿌리는 것은 힘들지만, 우리 자손 대대로 복을 받고 아름다운 사회 속에서 살아가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눈물로 씨를 뿌려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또 다시금 구제금융을 받아야 한다고 하는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러 나가야 합니다. 그래야 다음 세대는 우리 보다 더 잘 살고 보람 있는 인생을 살 것이기 때문입니다.
“눈물로 씨를 뿌려 곡식단” 을 가지고 돌아오는 믿음의 단계에 이르러 눈물의 골짜기를 지나 초원의 골짜기로 나아가 우리 모두가 행복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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