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자의 인생관리 능력
에베소서 5:15-21
교회 주소/ 서울 노원구 상계5동 136-55 유백선 목사 ybs919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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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이론의 창시자요, 유명한 경영학자인 클레이튼 크리스텐슨(Clayton M. Christensen) 하바드경영대학원 석좌 교수님이 <당신의 인생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하버드 마지막 강의 마지막 질문)>라는 책을 썼습니다. 이 책은 일반 대중을 위해서 쓴 자기개발서입니다. 나는 학창시절에 하버드대학과 옥스퍼드대학에서 공부하면서 세계에서 가장 똑똑하다는 젊은 인재들이 다양한 인생문제를 겪는 것을 보았습니다. 또한 젊은 인재들이 불행해지는 모습도 수없이 보았습니다. 인생 선배로서 제자들에게 진심어린 충고를 해주고 싶었습니다.
새가 깃털이 있다고 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무엇을 생각할 것인가?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여기에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사람의 생각과 사상을 정리해 놓은 이론은 인간사의 근본적인 인과관계 메커니즘입니다. 이론의 가치는 어떤 일이 일어날지 정확하게 예측해 주는 것입니다. 좋은 이론은 변덕을 부리지 않습니다. 사회생활 속에서 행복을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올바른 동기를 가져야 합니다. ‘나의 자원을 어디에 할당하는가? 필요하기 전에 관계에 투자하는가? 그늘이 필요할 때 나무를 심을 것인가?’ 시간은 되돌릴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인생투자의 순서를 정해야 합니다.
나는 1971년부터 2년간 한국에서 선교사로 봉사했습니다. 2009년 가을에 암이 발병하여 머리숱이 다 빠졌습니다. 암의 합병증으로 뇌졸중이 찾아와 표현 실조증으로 고생했습니다. 하지만 죽음 앞에서 지나온 나날들을 반추하며 제자들에게 인생관리 능력을 전해주고 싶어서 강단에 섰습니다. “인생이란 나처럼 생명이 위태로운 병에 걸렸을 때가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매일 중요한 것입니다. 인생의 중간 점검은 위기에 봉착했을 때가 아니라 살아가면서 때때로 해야 합니다. 왜? 사람들은 어떤 선택 앞에서 자연스럽게 이익을 즉각 얻을 수 있는 방향으로 결정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부부관계나 아이의 교육은 오랜 시간 지속적으로 투자해야 성과를 볼 수 있습니다.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조차 지나치게 남의 손을 빌리면 결과적으로 미래의 경쟁력이 약화됩니다. 아이가 도전을 겪을 때 함께 하고 있습니까? 아이들은 새로운 기술을 배우는 것 이상의 일을 해야 합니다. 도전을 겪어야 하고, 어려운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가치도 개발해야 합니다. 일상 너머에 있는 인생의 본질을 탐구해야 합니다. ‘이번 한 번만’이라고 자신을 정당화하다가 양심을 저버립니다. 한계적인 사고가 정도를 벗어나는 예외를 허용하는 함정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은 각 사람마다 다릅니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시간이 곧 나의 생명입니다. 그래서 시간은 생명이요, 시간은 돈보다 귀한 것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잘 활용합니다. 자신의 에너지를 잘 관리해서 모두에게 도움을 주는 삶을 삽니다. 왜? 모두에게 도움을 주는 삶이 인생의 최종목표이기 때문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언제나 가능한 일과 불가능한 일을 구별할 줄 압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 내게 가능한 일은 온 힘을 다해 극대화시킵니다. 온 정성을 다해 큰일을 이룹니다. 반면에 내가 할 수 없는 일은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불가능한 일은 사실을 그대로 수용하고 하나님께 맡깁니다. 이제 올해도 약 40여일가량 남았습니다. 만약에 내가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이쯤해서 내 인생의 중간 점검을 해야 하지 않을까요? ‘내 인생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여기서 무엇을 생각하고,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오늘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을 통해서 “지혜자의 인생관리 능력”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본문 15절을 보세요. “너희가 어떻게 행할지 자세히 주의하라.” 여기서 “어떻게 행하다(포스 페리파테이테/πως περιπατειτε/pos peripateite)”라는 말은 “어떻게 행동하다, 따르는 방법, 사는 법, 삶을 보내는 방법, 종사하는 법, 주위를 걷는 법, 두루 다니는 법”을 말합니다. “주의하다(블레페테/βλεπετε/blepete)”라는 말은 “보다, 알다, 눕다, 깨닫다, 말하다, 관망하다, 공간지각 능력이 있다. 인지하다, 경험으로 알다, 이해하다, 생각하다”는 뜻입니다. 인생은 곧 행동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행동하는가? 그 행동을 보면 그 사람됨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선한 사람은 마음의 쌓은 선에서 선을 낸다.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낸다. 그 이유는 마음의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하기 때문이다.”(눅 6:45) 또한 어떻게 사는가? 그 사람이 사는 방법을 보면, 그 사람의 삶의 목적이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세상 사람들은 무엇을 위해서 사는 것일까요? 그리스도인은 무엇을 위해서 삽니까? 삶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을 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 무엇을 따르는가? 이것을 보면, 삶의 가치관이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복을 받습니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칠 것이다.”(신 28:2)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사람은 마음에 간사함이 없습니다. 마음에 간사함이 없어야 정죄를 당하지 않습니다.(시 32:2)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받습니다.(롬 1:18) 예수님의 제자였던 가롯 유다는 예수님으로부터 제자로 선택을 받고, 제자훈련도 받았습니다. 직분도 받았지만 주(主)로 믿지 않았습니다. 가롯 유다의 마음에 마귀가 들어가자 예수님을 팔려는 생각으로 기회를 찾고 있었습니다.(요 13:2)
하나님의 진리를 거부하면 생각이 허망해집니다. 하나님의 진리를 거부하면 미련하여 마음이 어두워집니다. 하나님의 진리가 없는 사람은 스스로 지혜 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진리가 없는 사람은 어리석게 되어 우상숭배에 빠집니다.(롬 1:23) 하나님의 진리가 없는 사람은 마음의 소욕을 자랑합니다. 진리가 없는 사람은 탐욕과 이익을 따라 살면서 하나님을 배반하고 멸시합니다.(시10:3) 사람이 어떻게 인생을 보내는가? 이것을 통해 그 사람의 평판과 평가가 나옵니다. 밀림의 성자로 추앙받은 알버트 슈바이처 박사에게 기자들이 찾아와서 물었습니다. “당신이 가장 행복한 순간이 어느 때입니까?” 슈바이처 박사가 대답했습니다.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 가서 일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가장 행복한 순간이 어느 때입니까? 사람의 행동은 사고방식에서 나옵니다. 사람의 행동근간은 가치관에서 비롯됩니다. 사람은 아는 만큼 행동하고, 아는 만큼 사는 것입니다. 사람은 믿는 만큼 행동하고, 믿는 만큼 사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인에게 어떻게 행동하고, 어떻게 살라고 말씀하십니까? 지혜 있는 자같이 행동하라. 지혜 있는 자처럼 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지혜 있는 자(소포스/σοφος/sophos)”라는 말은 “현명한, 지혜로운, 숙련된, 노련한, 교양 있는, 학식 있는”이란 뜻입니다. “지혜 없는 자(아소포스/ασοφος/asophos)”이란 “어리석은, 바보 같은”이란 뜻입니다. 지혜 있는 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지혜가 내 마음에 들어와야 합니다. “지혜가 네 마음에 들어가며 지식이 네 영혼에 즐겁게 될 것이다.”(잠 2:10)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을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고전 1:24) 부활하신 예수님이 내 안에 들어와 계셔야 마음이 즐겁습니다. 마음이 즐거워야 얼굴에 빛이 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내 마음에 들어오셔야 지혜롭고, 강한 사람이 됩니다. 지금 내 안에 부활하신 예수님이 들어와 계십니까?
여러분! 지혜자는 어떻게 인생관리 능력을 얻을까요? 첫째는 세월을 아끼라는 말씀을 실천합니다. 본문 16절을 보세요.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여기서 “세월(카이로스/καιρος/kairos)”은 “기회, 정해진 때, 적당한 때, 제한된 시간, 확정된 시간, 평안한 시기”를 말합니다. “아끼다(엑사고라조/εξαγοραζω/eksagorazo)”는 말은 “매점하다, 속량하다, (상실로부터) 구출하다, (기회를) 이용하다, 구속하다”라는 뜻입니다. 여러분! 시간은 일회적입니다. 한 번 지나가면 끝납니다. 그래서 시간이 소중하고, 시간은 종말론적입니다. 또한 시간은 공평합니다. 어느 누구에게나 하루 24시간의 시간이 주어집니다. 신약성경에 두 종류의 시간이 나옵니다. 하나는 크로노스(χρονος)입니다. 크로노스 시간은 객관적인 시간을 말합니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시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시간이요, 나와 상관없이 흘러가는 시간을 말합니다. 흘러가는 시간을 더 쓸 수가 없고, 늘릴 수가 없고, 줄일 수도 없습니다.
다른 하나는 카이로스인데, 본문 16절에서 “세월”이라고 번역했습니다. 이 카이로스는 주관적인 시간이요, 상대적인 시간입니다. 이 시간은 내 경험 속에 있고, 내가 관리할 수 있는 시간입니다. 이 시간을 더 크게 활용할 수가 있고, 더 작게 할 수도 있습니다. 내가 소중하게 여길 수가 있고, 가볍게 여기고, 지나칠 수도 있습니다. 이 시간을 창조적인 시간으로 바꿀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시간 속에서 기회를 주셨습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이 시간을 어떻게 드리느냐? 지금 나는 구원의 기회, 은혜 받는 기회를 주실 때 그 기회를 잘 이용하고 있습니까? 나에게 주어진 시간에 하나님의 구원을 이루기 위해 얼마나 시간을 사용하고 있습니까? 성 어거스틴이 말했습니다. “원래 시간에 대해서 과거, 현재, 미래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타당치 못한 인식이다. 정확히 말한다면 과거에 예속된 현재가 있고, 현재에 속한 현재가 있고, 미래를 지향하는 현재가 있을 뿐이다.” 생각해 보세요. 기다리는 시간은 무척 느리게 지나가는 것같이 느껴집니다. 두려워하는 시간은 조급하고, 빠르게 지나갑니다. 고통과 아픔의 시간은 지루하고 길게 느껴집니다. 반면에 기쁨의 시간은 짧게 느껴집니다. 건강한 시간은 정말로 빠르게 지나갑니다. 사랑의 시간은 영원한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나를 선택하시고, 부르실 때 “예.” 하고 응답하는 그 시간이 카이로스(시간)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믿음을 주셔서 구원을 받은 시점을 말합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이 시간을 어떻게 이용하느냐? 어떻게 활용하느냐? 여기에 따라 자기 인생의 승패가 결정됩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면서 하나님을 음성을 듣는 사람은 마음에 감동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면 행동이 변화됩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면 삶이 변화됩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면 이 시대를 분별하는 능력을 얻습니다.
둘째는 지혜자는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합니다. 본문 17절을 보세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여기서 “어리석은 자(압흐론/αφρων/aphron)”는 “정신없는, 무지한, 자기중심적인, 무분별한, 불신하는, 지혜롭지 못한, 무모하게 행동하는, 생각이나 이해력이 없는”이란 뜻입니다. “이해하다(쉬니에미/συνιημι/syniemi)”라는 말은 “모으다, (정신적으로) 이해하다, 경건하게 행동하다, 고려하다, 마음으로 동참하다”라는 뜻입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하나님의 구원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기중심적인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불신하는 사람은 경건하게 행동하지 않습니다. 무모하게 행동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에 동참하지 않습니다. 반면에 지혜로운 사람은 구원의 사람을 모읍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경건하게 행동합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예수님의 마음으로 동참합니다.
여러분! 주의 뜻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는 것입니다. 왜? 성령으로 충만하지 않으면 방탕하게 살기 때문입니다. 본문 18절을 보세요.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은 신령한 노래로 화답합니다.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은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합니다.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은 그리스도를 경외하는 믿음이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경외하는 사람은 서로 복종합니다.(21절)
미국 코넬대학교 칼 필레머 교수가 쓴 <내가 알고 있는 걸 당신도 알게 된다면>이란 책에서 말했습니다. “현대인들은 삶의 답을 찾아 이리저리 헤매고 있다. 인간관계, 재정문제는 물론이고, 심지어 부부관계까지 삶의 온갖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얻을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품고 TV나 라디오 등 각종 대중매체의 전문가 상담코너나 강연에 귀를 기울인다. 도움이 될 만한 칼럼을 읽기도 하고, 세미나에 참석하기도 하고, 자기계발 웹사이트에서 상담도 한다. 책 또한 빼놓을 수 없는데 그 덕분에 오늘날 서점마다 자기계발서가 넘쳐나며 사람들이 이런 책을 사들이느라 쓰는 돈도 만만치 않다. 결국 삶의 길을 찾는 사람들만큼이나 그 길을 제시하는 전문가도, 해답들도 넘쳐나는 셈이다. 그런데도 뭔가 허전한 느낌을 떨칠 수 없는 것은 왜 그럴까? 어떻게 충만한 인생을 살 수 있을까? 무엇으로 우리의 마음을 채워야 넘치는 활력과 기쁨이 충만한 인생을 살 수 있을까?”
여러분! 마음이 허전하고, 공허함의 해답이 무엇입니까?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충만할 때 마음에 활력이 넘치고, 감동이 옵니다. 뇌성마비 장애인 송명희 시인은 말씀을 읽고, 묵상하면서 성령으로 충만하여 시(詩)를 쓰고, 찬송하였습니다. ‘나 가진 재물 없으나, 나 남이 가진 지식 없으나 나 남이 가진 건강 없으나, 나 남이 갖지 못한 것을 가졌다... 공평하신 하나님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이 공평하시다고 감사하십니까?
셋째는 지혜로운 사람은 범사에 예수님의 이름을 사용합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항상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본문 20절을 보세요.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여러분! 지혜로운 사람은 왜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사용합니까? 예수님이 구원자요, 예수님은 그리스도로 오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로 죄인을 하나님과 화해시키셨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은 권세와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라. 사탄아 물러가라. 마귀야 물러가라. 귀신들아 떠나라.” 베드로와 요한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앉은뱅이를 일으켰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할 때 응답해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대임명령을 하셨습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가르쳐 지키게 하라. 그러면 주님께서 세상 끝날까지 함께 할 것이다.”
레마바이블신학교 케네스 해긴 목사님이 쓴 <케네스 해긴의 예수의 놀라운 이름>이란 책에서 말했습니다. “나는 17살 때 심장기형과 불치의 혈액병을 앓았습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예수의 이름 안에 치유가 있습니다. 예수의 이름 안에 권세가 있습니다. 우리는 매일의 삶에서 예수의 이름을 사용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 예수의 이름을 사용할 때 어떤 권세를 갖습니까?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예수의 이름으로 마귀를 물리쳐야 합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사탄이 물러갑니다. 그리스도인이 기도할 때 왜 예수님의 이름을 사용해야 합니까?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해야 하나님께서 응답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의 이름을 더 깊이 묵상하세요. 예수의 이름을 사용하여 네 생각을 지키세요. 예수의 이름을 믿고, 우리의 권리를 알고, 우리의 위치를 지켜야 합니다...”
여러분! 지혜로운 사람은 주님의 뜻을 이해합니다. 내게 향하신 주님의 경륜을 깨닫고 감사합니다. 사소한 일에 감사할 줄 알고 그 마음을 표현할 때 그 순간부터 인생은 천국이 됩니다. 매순간이 하나님의 구원을 이루는 소중한 기회입니다. 이제 내 인생관리 능력을 가진 지혜자로서 하나님의 거룩한 뜻이 내 삶을 통해서 채워지기를 소망하며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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