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권능으로 사는 증인
사도행전 1: 6- 8
유백선 목사 ybs9191@hanmail.net 상담 : 02) 6221-6468, 010-8346-6468
봄비가 온 대지 위에 내릴 때마다 생명의 기운이 활발해집니다. 학창시절에 봄비 내리는 날의 추억을 잊지 못한 시인 이수경 씨가 “봄비 내리는 날이면”이란 에세이를 썼습니다. "갑자기 봄비가 내리자 교실이 술렁거렸습니다. ‘어머, 나 우산 안 가져왔는데, 어쩌지? 나도... 나도...’ 대부분 우산을 가져오지 않았던 아이들은 힐긋힐긋 창밖을 보며 우산 가져올 엄마를 기다렸지요. 아니나 다를까 교문에 금세 하나둘, 우산 꽃이 피어났습니다. 우산을 들고 교문에 서 있는 엄마를 찾은 아이들은 얼굴이 밝아졌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아이들은 시무룩한 표정으로 ‘얼른 비가 멎어야 할 텐데...’ 비가 멎기를 기다렸습니다.
나 역시 비가 멎기를 바랐습니다. 아빠가 돌아가신 후에 엄마가 해장국집을 열었는데, 숨 쉴 틈조차 없이 바쁜 엄마가 내 우산을 가져올 수 없다는 걸 알았으니까요. 더구나 엄마는 며칠 전에 해장국을 배달하다가 발목을 삐어 퉁퉁 부어서 파스를 붙였거든요. 수업을 마친 나는 그날 청소 당번이라서 구석구석 청소하면서 비가 그치기를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비가 멈추지 않고 더 세차게 내리자 슬슬 하늘이 원망스러웠습니다. 그때 단짝 형주가 외쳤습니다. “야, 저기 너희 엄마 아니야?” '설마' 하면서 창가로 뛰어 가보니 우리 엄마가 우산을 들고 오셨습니다. 신 난 가슴이 콩닥거리는데, 엄마 팔에 뭔가 한 아름 안긴 것이 보였습니다. 그걸 본 순간에 바위처럼 굳어졌습니다.
‘작년에 수퍼가 안 돼서 넘길 때 남겨둔 비닐우산을 가져오셨구나.’ 당황한 나는 형주에게 “너 먼저 가!” 형주의 등을 떼밀며 책상에 엎드리며 생각했어요. ‘비가 온 김에 저걸 파실려고? 너무해. 정말...‘ 속상하고 서러워서 눈물을 흘리고 있는데, 다시 형주의 목소리가 들렸어요. “야! 너희 엄마가 나한테 우산 주셨어. 우산 안 가져온 애들도 데리고 나오래! 봐. 우산!” 형주가 비닐우산을 번쩍 들면서 "얼른 가자! 가게 문 닫고 오셨대!“ 그날 우리 엄마는 내게 처음 우산을 들고 마중 오셨지요. 비가 올 때마다 내가 친구들에게 신세졌던 것을 아시고, 친구들 우산까지 챙겨서 절뚝거리면서 오셨던 것입니다. 봄비 내리는 날이면 엄마의 모습이 늘 내 가슴을 파고든답니다.”
여러분! 봄이 되면 어떤 추억이 있습니까? 봄비 내리는 날이면 무슨 생각을 하세요? 딸은 왜 우산을 가져온 엄마를 원망했나요? 엄마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자식은 많아도 엄마의 마음을 다 헤아릴 수 없습니다. 자식은 지식이 많아도 부모의 마음을 헤아리는데, 평생도 모자란다는 말이 있습니다. 부모는 자식에게 삶의 소중한 지혜를 일깨워주는 위대한 멘토입니다. 또한 부모는 자식에게 사랑의 멘토요, 인생의 길을 인도하는 멘토입니다. 위대한 멘토는 사람에게 그때그때 필요한 것을 주는 것보다 스스로 깨닫고 실천하도록 이끌어줍니다. 왜 스스로 깨닫고 실천하도록 이끌어줘야 할까요? 사람은 다른 사람을 변화시키는데 필요한 힘을 항상 갖고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자신을 변화시키는 데 필요한 힘은 항상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자신을 변화시키는 데 필요한 힘이 어디에 있습니까? 참사랑이 자신을 변화시키는 힘입니다. 왜냐? 참사랑을 알아야 자기정체성을 발견합니다. 참사랑을 알아야 살아 있는 자신을 만납니다. 참사랑을 알고 나서 삶의 가치를 압니다. 삶의 가치를 아는 순간부터 살아 있는 사실이 즐겁습니다. 참사랑을 알면 마음가짐이 변화됩니다. 참사랑을 알면 삶의 태도가 달라집니다. 참사랑은 언제나 예수 안에서 “예” 하고 응답합니다. 예수 안에서 “예” 하고 응답할 때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합니다. 참사랑은 내적인 변화의 에너지입니다. 참사랑을 알아야 사려 깊은 행동이 나옵니다. 참사랑을 알아야 참 믿음을 갖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 디베랴 호수에 가서 시몬 베드로에게 세 번 물었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여기서 예수님이 물으신 사랑은 절대적인 사랑이요, 아무 조건 없이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베드로는 첫 번째, 두 번째에 고백했습니다. “주님 그렇습니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십니다.” 주님이 세 번째 물으실 때 베드로가 근심하며 말했습니다. “주님, 모든 것을 아시잖습니까?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십니다.” 왜 베드로가 근심하며 대답했을까요? 베드로는 주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부활하신 주님께서 나에게 이렇게 물으신다면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00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네가 너의 자녀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네가 너의 일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여러분!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 왜 사도들에게 살아 계심을 보여주셨을까요?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하늘과 땅의 권세를 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예수님께서 하신 일들을 사도들이 본대로, 들은 대로 행하게 하려고 40일 동안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셨습니다. 본문 6절은 부활하신 예수님이 승천하시기 직전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여쭈었던 말입니다.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때입니까?” 이 말은 2가지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주님은 정말로 현재 이스라엘의 통치자들로 나라는 회복하게 하시렵니까? 그들은 주님과 우리를 미워하고 핍박한 자들인데, 그들에게 권세를 주시렵니까? 다른 하나는 그들이 주님께 복종한다면 주님은 유대인의 나라를 회복시켜 주시겠습니까?
사도들이 궁금하고 기대했던 것이 무엇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메시야가 와서 이스라엘을 회복시켜 주시길 원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무기력하게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그것을 보고 크게 실망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 기대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시켜 주실 것인가?' 왜 이런 기대를 했을까요? 당시에 이스라엘은 로마의 통치 하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정치적으로 주권이 없는 국민으로 살았습니다. 억울한 일을 당해도 호소할 길이 없었어요. 억눌려서 자유를 얻기 원했습니다. 경제적으로 가난해서 좀 잘살기를 원했거든요. 사회, 문화... 모든 분야에서 다윗 왕국의 영광이, 솔로몬의 영광이 회복되기를 원했습니다. 어쩌면 너무나 자연스런 소망이지 않습니까? 여러분도 예수님을 믿고 경제적으로 잘 살고 싶은 마음이 있잖아요? 하나님의 영광을 얻기 원하시죠? 부활하신 예수님이 사도들에게 뭐라고 대답하셨습니까? 본문 7절을 보세요.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신 것이니 너희가 알 바가 아니다.” 무슨 뜻입니까? 이스라엘의 회복은 너희가 알 바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지금 너희가 그런 것을 생각할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까지 2천년 역사를 통해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실수한 것이 뭡니까? 시한부 종말론자들이 예수님의 재림시한을 정해놓고 사람들을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종말에 대한 거짓 증인들이 사람들을 혼란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10여 년 전부터 이만희 씨가 신천지 장막성전을 만들어서 무료성경공부를 시키더니 “교주 이만희가 보혜사요, 신천지 장막성전에서 교리를 배워야 한다.” 라고 가르칩니다. 신천지 이단에 물든 사람들이 교회에 들어와서 교회를 망가뜨리고 있습니다. 왜 성도들이 이단에 빠집니까? 알아야 할 복음의 진리를 바르게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알지 않아도 될 것을 알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호기심을 부추겨서 혼란에 빠지게 만듭니다. 마귀는 불필요한 것을 알아야 한다고 부추깁니다. 그러면서 다른 복음을 말하고, 진리를 의심하게 하고, 진리를 거부하게 만듭니다. 마귀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자기 지식에 의존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자기 방식으로 듣고, 이해하고, 생각하고 행동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진리의 영,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냐? 믿지 않는 자들을 구별하려고 그럽니다.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면 하나님의 권한을 인정합니다. 하나님의 권한은 하나님께 있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위탁합니다. 성령 세례를 받으면 하나님의 믿음을 가지고 믿고 기다립니다. ‘예수님이 언제 오실까? 어느 시점에 오실까?’ 고민하지 않습니다.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면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에 집중합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맡겨주신 일에 충성합니다. 하나님은 사도 바울을 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고전 4:1-2) 여기서 “충성”은 하나님의 믿음으로 살고, 하나님의 믿음으로 행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부활하신 예수님이 사도들에게 원했던 것이 무엇입니까?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사도들에게 성령이 임하고, 둘째는 사도들이 능력을 받는 것입니다. 셋째는 사도들이 예수님의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본문 8절을 보세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이 말씀은 사도행전 전체에 걸쳐 가장 핵심 말씀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사도들에게 주셨던 사명이고, 지상명령이었습니다. 이 말씀은 곧 우리에게 주신 사명이요, 지상명령입니다.
예수님은 왜 사도들에게 성령이 임하기를 원하셨습니까? 성령이 임하면 오직 한 가지, 예수 그리스도에게 집중하기 때문입니다. “보혜사,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면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게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 그가 나를 증언할 것이다.”(요 14:26, 15:26) 성령이 임하면 어떻게 됩니까? 첫째는 성령님께서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십니다. 성령님께서 임하시면 생각하는 것을 지도하십니다. 성령님께서 생각을 지도하시면 염려할 것이 없습니다. 왜냐? 성령님께서 하나님의 지혜로 말씀하게 하십니다.
사도 베드로가 오순절에 성령 강림을 받고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 사는 사람들에게 큰 소리로 말씀을 증거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선지가 요엘을 통하여 말씀하셨다.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그 때에 내가 내 영을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그들이 예언할 것이요....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행 2:16-21) 성령님께서 말씀하시면 그 말씀대로 하나님의 계획이 이루어집니다. 성령님께서 내 생각을 지도하시면 모든 지각이 뛰어납니다. 하나님의 평강이 내 마음을 지키십니다. 하나님의 평강이 내 생각을 지키십니다.
하나님은 사도 바울을 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 4:6-7) 성령이 임하면 하나님과 기도로 소통합니다.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고, 하나님의 뜻을 생각한 사람이 주저하지 않고 실천합니다. 성령님께서 내 생각을 지도하시면 모든 삶이 감사로 물듭니다.
둘째는 성령님께서 임하시면 권능을 받습니다. 여기서 “권능(뒤나미스/dunami)”은 “이적적인 능력, 전능한 일, 이적적인 일꾼, 풍부한 삶, 강한 힘을 얻는 능력”을 말합니다. 성령님이 임하시면 단순히 깨닫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님은 지식만을 얻는 것도 아닙니다. 성령님은 감동을 받고 기쁨만 얻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님은 우리가 오늘 말씀을 받았으면 당장 나가서 원수를 사랑하고, 핍박한 사람을 위해서 기도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성령님이 나에게 임하시는데, 왜 화가 납니까? 왜 섭섭한 마음이 있나요? 왜 원망하고 불평이 나옵니까? 이것은 성령의 권능이 아닙니다.
여러분! 성령의 권능은 제자들 자신 안에서 일어난 변화의 능력입니다. 성령의 권능은 하나님의 사람이 되게 하는 능력입니다. 참된 제자가 되는 능력이요, 사도로서 증거하는 능력입니다. 성령님이 임하시면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사람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집니다. 성령님이 임하시면 사람을 의식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을 의식합니다. 하나님의 권능을 받으면 내 자신을 이깁니다. 왜? 자신을 이겨야 세상을 이기니까요. 자신을 이겨야 다른 사람을 이깁니다. 성령의 권능을 받으면 핍박을 이기고, 원수를 용서합니다. 성령의 권능을 받으면 악한 세대에 살면서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않습니다. 성령의 권능을 받으면 악한 세대들 중에서 살고 있는 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 간절히 기도합니다. 허드슨 테일러(Hudson Taylor)가 말했어요.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가능하다.” 왜? 악한 세대들이 예수님의 사랑을 느껴야 변화되니까요. 성령의 권능을 받으면 미워하는 감정이 없어집니다.
택시 기사로 일하면서 복음을 전하고 있는 한재섭 집사님이 <CEO가 된 택시기사>라는 책을 냈는데요. 그가 이런 간증을 했어요. 2007년 2월에 분당 미금역 사거리에서 노방전도를 했습니다. 거기서 선천적으로 말을 못하는 초등학생을 만났습니다. 그때 성령님께서 감동을 주셔서 '이 아이를 위해서 기도하고 증거해라.' 그가 간절히 기도하고, “주여!” 두세 번 외치면서 아이의 머리에 손을 얹고 간절히 기도했지요. 갑자기 아이가 배를 움켜잡고 토하기 시작했어요. 계속해서 방언기도로 악한 영과 귀신을 물리쳤지요. 그러자 아이가 벌떡 일어나더니 “아저씨 됐어요. 아저씨 됐어요.” 하고 말을 하는 거예요. 할렐루야! 이제 우리도 성령의 권능을 받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셋째는 성령님이 임하면 ‘증인이 될 것’입니다. 성령님이 임하시면 하나님께서 너희로 증인이 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성령을 받지 않으면 증인이 될 수 없어요. 성령의 권능을 받아야 증인이 됩니다. 성령을 받으면 증거 하다가 순교자가 되기도 합니다. 교부 클레멘트가 말했어요. “피 흘리기까지 증거하는 사람이 순교자다. 순교자만이 증인이다.” 그렇습니다. 증인은 보고, 듣고, 경험한 것을 그대로 증거하는 것입니다. 증거자는 오직 진리를 말하고, 진실을 말할 뿐입니다. 성령이 임하는 믿음의 체험이 있어야 증거합니다. 증인은 때로 불이익을 당하고, 손해를 봐도, 핍박을 당해도 증거합니다. 증인은 말로 증거하고, 몸으로 증거 합니다. 증인은 죽음으로 증거 합니다. 사도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고 순교했습니다. 증거하면 구원을 얻습니다. 부활을 믿는다고 하면서 죽음을 두려워해서 안 됩니다.
어떤 분이 임종할 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주님 품으로 갑니다. 먼저 가서 기다릴 테니 주어진 사명 잘 감당하시다가 부르시면 기쁜 마음으로 오세요.” 내가 임종하는 순간에 이런 말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성령이 임하고, 복음을 증거했던 스데반 집사는 돌에 맞아 죽어가면서 그 얼굴이 천사와 같았다고 했습니다. “주여, 저들의 죄를 용서해 주소서. 저들이 하는 일을 몰라서 그럽니다.” 사도 베드로가 말했습니다.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다.”(행 2:32,3:15, 5:32, 10:39)
이처럼 복음을 증거 할 때 말씀이 능력으로 나타납니다. 부활을 증거 할 때 그 영혼이 살아납니다. 십자가의 복음을 증거 할 때 죄 사함의 역사가 나타나고, 생명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이제 우리에게 성령님이 임하면 반드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가서 전하라.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내 증인이 될 것이라.' 성령님께서 임하시고, 권능을 얻어 증인의 삶을 살기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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