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설교 모음

[스크랩] 믿음의 부활과 그 증거

하나님아들 2014. 4. 3. 18:46

2012. 4. 8. 보람장로교회 부활주일 낮예배   믿음의 부활과 그 증거

                                                         마가복음 16: 9-14

 

유백선 목사  ybs9191@hanmail.net  상담 : 02) 6221-6468, 010-8346-6468

 

 

 경기도 광주에 사는 강0화 씨가 쓴 “아빠의 유품”이란 에세이가 있습니다. 2009년 3월에 아버지의 배가 임산부처럼 부풀어 올랐습니다. ‘많이 먹는 것도 아닌데 왜 배가 점점 부풀어 오를까?’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았는데 B형 간염이 진행되어 간경화로 복수가 찼던 것입니다. 1년 정도 살 수 있다는 시한부 인생을 선고 받고서 우리 가족은 할 말을 잃고 눈물만 흘렸습니다. 아들은 당장 내 간을 이식하겠다고 나섰지요. 하지만 아버지의 몸은 이식 수술을 받을 상태가 아니었습니다.

 

 그때 나는 둘째를 임신한 몸으로 어머니와 함께 아버지의 병간호를 하느라 무척 힘들었습니다. 하루는 아버지가 손녀딸이 보고 싶다고 퇴원해서 집에 오셨습니다. 아버지는 서랍을 정리하고, 화분에 물을 주고, 거동하신 모습을 보면서 ‘괜찮아지셨나?’ 생각했지요. 그런데 그 일이 힘들었던지 아버지는 식사도 못하시고 계속 누워 계셨어요. 속상한 나머지 아버지에게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어요. “몸이 않 좋은데 뭐하러 손을 대고 힘들어 하세요. 아프면 얘기 하세요. 병원에 가셔야죠. 저도 친정에만 있을 수 없으니 오늘 저희 집으로 갈게요.”

 

 그 말을 들으신 아버지는 억지로 밥 두 숟가락을 드시고 다시 누우시더니 머나먼 길을 가셨습니다. 숨이 끊어지고 아버지의 체온이 점점 식어지는 것을 느끼면서 몇 시간 동안 통곡하며 울었습니다.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면서 휴대폰을 보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세상에!’ 아버지의 휴대 전화에 입력된 전화번호가 달랑 4개였어요. 집, 엄마, 아들, 딸 뿐이었지요. 낡은 지갑 안에 교통카드 한 장과 주민등록증, 내가 졸업할 때 찍었던 가족사진이 전부였습니다. 평생 가족을 위해서 사셨던 아버지에게 따뜻한 말 한 마디 건네지 못하고 짜증내고 투덜댔던 내가 너무 원망스러웠습니다. ‘아버지 지갑과 휴대폰을 조금 더 일찍 봤더라면... 아버지의 외로운 가족 사랑을 깨달았을 텐데...’ 후회가 밀려왔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아버지가 하늘나라에서는 아프지 않고 편안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여러분! 삶과 죽음의 거리가 얼마나 될까요? 한숨에서 삶과 죽음이 결정됩니다. 하지만 인간은 한숨을 내쉬고, 숨을 들이키는 이 짧은 시간에 인생의 성공을 생각합니다. 성공하기 위해서 공부하고, 인생의 업적을 쌓기 위해서 쉴 새 없이 노력합니다. 세상 명예를 추구하고, 박사 학위를 추구하고, 풍부한 재물을 추구하고 삽니다. 성취감을 얻고, 좋은 옷을 입고 매일 잔치하면서 인생을 즐기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 죽음 이후에 대해서 생각하고 준비하지 않습니다. 인생의 자리남겨놓은 유품들은 그 사람의 인생을 대변해 주고 있습니다. 이 사람의 궁극적인 관심이 무엇인가? 이 사람은 무엇을 위해서 살았는가? 누구를 위해서 살았는가? 나는 어떤 유품들을 남겨 놓을까 생각해 보셨습니까?

 

 

 지금 우리는 무엇에 궁극적인 관심을 가져야 할까요? 생명의 문제입니다. 왜 생명의 문제를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합니까? 왜 생명의 문제를 깊이 생각해야 합니까? 생명보다 더 중요한 것이 없으니까요. 생명보다 더 큰 욕망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잠언(8:35) 기자를 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대저 나를 얻는 자는 생명을 얻고 여호와께 은총을 얻을 것이다.” 그렇다면 생명을 어떻게 얻습니까? 하나님의 말씀 안에 생명이 있습니다. 이 생명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믿는 사람은 생명을 얻습니다. 나사로가 죽은 후에 예수님이 마르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자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이것을 믿느냐?”(요 11:25) “네 내가 믿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을생명의 기적을 체험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믿음이 부활할 때 죽음을 이깁니다. 믿음이 부활할 때 절망을 딛고 희망을 노래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3년의 공생애 기간의 막바지에 이르러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인자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소 저희에게 가르치시다.”(막 8:31) 예수님께서 예언하신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아리마대 요셉은 예수님의 시신을 무덤에 장사했습니다. 예수님은 안식일에 무덤에 계시다가 예언하신 대로 안식 후 첫날에 살아나셨습니다. 오늘 본문 9절을 보세요. “예수께서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에 살아나신 후 전에 일곱 귀신을 쫓아내어 주신 막달라 마리아에게 먼저 보이시니”

 

 

 여러분! 예수님의 부활을 가장 먼저 목격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막달라 마리아입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왜 예수님의 부활을 최초로 목격한 사람이 되었을까? 넌센스로 하는 말인데요. 막달라 마리아! 그 이름이 재미있습니다. 뭐든지 막달라 하니까... 학자들은 2000년 역사상 가장 불가사의 한 사람막달라 마리아라고 말합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을 끝까지 목격한 사람입니다. 반면에 예수님을 따랐던 사람들, 심지어 제자들도 예수님이 십자가에 처형될 때 다 도망쳤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가장 어려운 상황에, 위험을 무릅쓰고 왜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을 끝까지 지켜보게 되었을까요? 예수님께 받은 은혜가 너무 커서, 용서 받은 사랑이 너무 큰 것을 기억하고, 마음에 새겼기 때문입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일곱 귀신이 들려 사람 구실을 못하고 버림받았던 여인입니다. 그때 예수님을 통해 악한 영으로부터 구원을 받고, 예수님의 여제자가 되었습니다. 그 후에 막달라 마리아는 항상 예수님 곁에서 말없이 섬기고, 예수님의 마음을 가장 잘 읽고 행동한 여제자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그 현장을 가장 먼저 찾아갔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마가복음 16장 1절 이하에 보면,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 살로메가 안식일이 지난 첫날 매우 이른 새벽에 예수님의 무덤에 찾아갔습니다. 무덤에 들어가흰 옷을 입은 한 청년이 우편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청년이 말합니다.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않는다.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다. 갈릴리로 가셨으니 거기에 가면 뵐 수 있을 것이다.” 그 말에 여자들이 놀라 떨면서 무덤에서 도망가고 무서워서 아무 말도 못했습니다.

 

 여러분! 믿음과 지식 중에서 어떤 것을 신뢰하십니까? 믿음과 지식 중에서 어떤 것을 우선순위에 둡니까? 믿음과 지식 중에서 어떤 것을 더 의지합니까? 믿음을 더 의지합니까? 아니면 지식을 더 의지합니까? 믿음이 지식보다 앞서갑니다. 믿음이 가능성보다 더 큰 능력입니다. 믿음이 자기 지식을 뛰어넘어야 기적을 체험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할 수 있거든 그것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다.”(막 9:23) 예수님의 부활은 알고 있지만 믿음이 없으면 증거 할 수가 없습니다. 신학자요, 남가주대학 철학과 달라스 윌라드 교수가 말했습니다. “믿음지식과 진리, 지식과 관련된 증거와 적절한 관계를 맺어야 삶과 행동을 확실하게 지배하게 된다.” 그렇습니다. 믿음이 진리와 관계를 맺어야 삶을 확실하게 지배합니다. 믿음이 지식과 관련된 증거와 적절하게 관계를 맺어야 행동을 확실하게 지배하게 됩니다.

 

 

 지금 내 믿음과 지식은 적절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까? 지식이 있어도 믿음이 없으면 눈으로 보고 두려워서 도망칩니다. 탈봇신학교 교수를 역임하고 자유 그리스도 사역의 대표 닐 앤더슨이 말했습니다. “믿음의 크기는 그 믿음의 대상에 대한 지식의 정도와 비례한다. 믿음은 진리에 대한 성경적인 반응이며 진리를 믿는 것은 선택이다.” 하나님의 믿음이 큰 사람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커집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크면 하나님의 믿음도 더 커집니다. 아브라함은 믿을 수 없는 상황에서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셨습니다.(창 15:6) 반면에 하나님의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을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믿음이 없으면 진리를 우선으로 선택하지 않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삶과 행동을 확실하게 지배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왜 부활하신 모습을 막달라 마리아에게 최초로 보여주셨을까요?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의 사랑을 간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의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마리아는 가장 먼저 예수님의 무덤에 찾아갔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자기 집으로 돌아간 후에도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다가 무덤 안을 들여다보았습니다. 그때 부활하신 예수님이 마리아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주여, 당신이 옮겼거든 어디 두었는지 내게 말하소서. 내가 가져 가리이다.”(요 20:15) 막달라 마리아는 울면서 예수님을 찾았습니다.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사 55:6) 그렇습니다. 주님을 찾는 사람이 주님을 만납니다. 주님을 찾는 사람은 주님 때문에 기뻐하고, 즐거워합니다. 주의 구원을 사모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크심을 찬양합니다.(시 70:4) 막달라 마리아는 부활하신 주님을 찾았습니다.

 

 

믿음과 지(인)식(認識)은 어떤 관계가 있습니까? 인간의 지식은 영원히 상대적입니다. 인간의 지식은 유한하고, 부분적이고, 불완전합니다. 예를 들면, “남의 주머니 속에 돈이 얼마 들었는지 아느냐?” 물으면 이성은 모른다고 말해요. 사람은 눈으로 보기 전에는 알 수 없다고 인식한 것이죠. 어머니의 눈물을 과학적으로 인식할 수 있습니까? 없어요. 철학적으로 이해해서도 안 됩니다. 어머니의 눈물은 그 사랑을 믿어야 알 수 있는 사실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사랑도 믿어야 느끼고, 믿어야 알 수 있습니다. 객관적으로 사실인데, 믿지 않으면 주관적으로 사실이 아닌 경우가 있어요. 예를 들면, 기억 상실증에 걸린 아내가 그 남편의 보살핌을 받으면서도 남편으로 믿지 않으면 남편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으면 나에게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으면 나에게는 죽은 사실입니다. 그래서 믿음은 전선(電線)과 같습니다. 믿음이 지식보다 앞서야 부활의 능력을 얻습니다. 믿음이 부활해야 부활을 증거합니다.

 

 

 여러분!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후에 어디로 갔습니까? 예수님과 함께 하던 사람들에게 갔습니다. 본문 10절을 보세요. “마리아가 예수님과 함께 하던 사람들에게 갔습니다. 그곳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은 슬퍼하며 울고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예수님이 부활하신 사실을 내가 목격했다고 알렸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십니까? 죽음은 사람을 슬프게 한다는 사실입니다. 지식이 많고, 경험이 많아도 부활의 믿음이 없으면 절망에 빠집니다. 영생을 얻지 못한 사람은 슬픈 감정에서 헤어나지 못합니다. 믿음의 부활이 없으면 우울증에 빠집니다. 믿음의 부활이 없으면 슬럼프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지만 그 소식을 듣지 못한 사람들은 슬퍼하며 울고 있었습니다. 반면에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했던 마리아는 기쁨과 감동을 가지고 부활 소식을 전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하던 사람들은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어떻게 반응했습니까? 그들은 예수님의 부활소식을 듣고도 믿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예수께서 살아나셨다는 것과 마리아에게 보이셨다는 것을 듣고도 믿지 않았다.” 본문 13절을 보면, “역시 믿지 아니한지라.” 본문 14절 “살아난 것을 본 자들의 말을 믿지 아니함이라.” 여기서 “믿지 않았다(우크 에피스튜산/ουκ επιστευσαν/ouk episteusan)”라는 말은 "믿음을 갖지 않다. (영적인 모든 것을 그리스도에게) 맡기지 않다, 신뢰하지 않다, 참되다고 생각하지 않다, 설득되지 않다, 확신을 두지 않다.“라는 뜻입니다.

 

 

 여러분! 제자들이 왜 부활의 증거듣고도 믿지 않았을까요? 첫째, 예수님의 부활은 사람의 인식의 한계를 뛰어넘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유일한 사건이요, 단 일회적인 사건입니다. 더 중요한 이유는 제자들이 영적인 모든 것을 그리스도에게 맡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부활의 소식을 듣고 신뢰하지 않는 사람은 믿지 않습니다. 부활의 메시지를 듣고 참되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믿지 않습니다. 부활의 메시지를 확신하지 않는 사람은 믿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왜 믿어야 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믿을 때 지혜를 얻습니다. 하나님의 지혜가 바로 예수님입니다. 지혜를 얻은 사람은 마음을 올바른 길로 인도합니다.(잠 23:19) 예수님의 부활을 믿을 때 믿음이 부활하고, 부활신앙이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합니다.

 

 

둘째마음이 완악해져서 믿지 않습니다. 본문 14절 하반절에 보면, “마음이 완악해져서” 여기서 “마음이 완악하다(스클레로카르디아/sklhrokardiva/sklerokardia)”는 말은 “굳은 마음, (영적으로) 냉대함, 완악함, 완고한 마음”이란 뜻입니다. 마음이 굳은 사람은 믿지 않습니다. 영적으로 냉대한 사람은 믿지 않습니다. 마음이 완고한 사람도 믿지 않습니다. 지금 내 마음의 상태가 어떻습니까?

 

 

 예수님을 믿지 않는 어느 아버지가 아들이 예수 믿는다고 하자 엄청나게 핍박을 했습니다. 그 아버지가 임종을 맞게 되자 아들이 목사님에게 찾아갔습니다. “목사님, 저희 아버지가 예수님을 믿지 않는데 돌아가실 것 같습니다. 한 번 만나서 설득을 해주십시오.” 부탁을 받고 나서 ‘완고한 할아버지를 어떻게 설득할까?’ 고민하며 생각했습니다. 진실을 말해도 믿지 않는 사람은 농담조로 하는 말을 더 들으려고 하는 습성이 있거든요.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천당과 지옥이 있다는 것을 믿지 않을 것 같은데, 그렇습니까?” “그럼요. 난 안 믿어요.” “만약에 천당과 지옥이 있다면 할아버지가 죽은 다음에 어느 쪽으로 갈 것 같습니까?” 할아버지가 가만히 있더니 “만약에 있다면 그거야 지옥에 가겠지요.” “그렇다면 다 믿어지지 않더라도 준비는 하시는 것이 좋을 것 같네요. 만약에 천당과 지옥이 정말로 있다면 그때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지금 여러분은 천국과 지옥이 있다고 믿으십니까? 있다면 어디로 갈 것 같습니까? 믿음이 부활해야 천국을 믿고 천국을 증거합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에게 무엇을 증거하고 있습니까? 예수님의 부활신비한 사건입니다. 첫째는 예수님의 부활은 인간을 지배하는 죽음을 무력화시킨 사건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죽음에 대한 해답을 주었습니다. “아담 안에서 죽은 모든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을 얻게 하신 것이다.”(고전 15:22) 둘째는 이 세상을 지배하는 불의와 악의 세력을 무력화시킨 사건입니다. 사탄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것으로 승리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은 궁극적인 승리가 참과 진리에 있음을 증거한 것입니다. 셋째는 부활을 믿는 사람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신 사건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죽음 너머의 세계에까지하나님의 통치 영역임을 선포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고, 믿음이 부활해야 증거합니다.

 

 

이해인 시인이 부활의 아침에 감격하며 노래했습니다. “... 당신의 부활로 / 해맑게 트인 영광의 새벽 / 내 부끄러운 길을 / 빛 부신 사랑으로 씻어주신 주님 / 이제는 결코 놓치지 않으렵니다 / 내 목숨 길이 당신 보며 살으리니 / 유일한 나의 삶은 / 사랑하는 것/ 죽는 것 / 주여 / 오십시오 / 열어 주십시오.” 이제 우리 믿음의 부활로 삶의 의미를 발견하고, 내 믿음의 부활로 하늘의 기쁨과 감동을 증거하는 주의 제자들의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출처 : EXTREME-1
글쓴이 : Extreme-1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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