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막 목회와 교회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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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막 목회와 교회론 강문호 목사(갈릴리선교교회) 서론 하나님께서 육일 동안 천지를 창조하시면서, "보시기에 좋았더라"라는 말씀을 성경은 일곱 번이나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도 여섯 시간 동안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면서 일곱 마디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성부의 숫자와 성자의 숫자가 아주 흡사한데 그 관계성을 깊이 묵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아름답게 창조하시고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신 다음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고 하셨는데 사람은 선악과를 따먹게 됩니다. 그래서 마귀와 인간이 한 식구가 되어 영원히 지옥에 갈 수밖에 없는 운명이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을 너무너무 사랑하셔서 구원하시고자 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셔서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죽게 하신 것입니다. 자동차에는 네 바퀴가 있지만 복음에는 두 바퀴가 있습니다. 누군가가 죽어야 누군가가 살며, 피흘림이 없으면 죄사함도 없습니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계속 복음의 두 바퀴는 누군가 죽어야 한다는 것, 누군가 피를 흘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 하면 선악과를 따먹는 날에는 백만 원 벌금이나 3년 징역형에 처해지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선악과를 따먹으면 정녕 죽으리라' 즉 사형입니다. 그래서 죄의 값은 죽음이므로 누군가 죽어야 되고 누군가가 피를 흘려야 하므로 구약에서는 짐승이 죽고 신약에서는 예수께서 죽으신 것입니다. 노르웨이의 어떤 교회에는 종탑 위에 양과 십자가가 놓여 있답니다. 그 이유는 교회를 지어 나가는 과정에서 건축비가 모자라 교인들이 자기들 손으로 짓기로 결정하였답니다. 그래서 교인들끼리 짓는데 한 사람이 어느 날 높은 종탑에서 떨어졌습니다. 죽었는 줄 알았는데 살았습니다. 왜 살았는가 하고 알아 봤더니 마침 그 밑으로 양 떼가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다행히 양 위에 떨어져 그 사람은 살았는데 양이 그 사람 밑에 깔려 죽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 짓던 사람들이 '아하, 양이 죽어야 사람이 사는구나.'하고 생각했답니다. 이것이 바로 구약입니다. 구약은 짐승이 죽고 신약은 예수님이 죽는 것입니다. 종탑 위에 양과 심자가를 조각해 놓은 것은 구약과 신약의 일치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후 모든 인간은 지옥에 갈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 이후 인간의 최고, 최대의 관심사는 하나님을 만나는 문제가 되었습니다. 우리 인간에게 있어서 하나님을 만나는 것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없습니다. 본론 목회의 초점은 성도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만나게 하는 것입니다. 축복이나 건강이 목회 초점은 아닙니다. 우리는 가난하게 살아도 괜찮습니다. 병들어도 괜찮습니다. 하나님만 만나고 살면 됩니다. 우리 목사들이 얼마나 가난합니까? 저도 그렇습니다. 지난번에 성막 연구를 하다가 창자가 붙어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었습니다. 혼수상태에서 잠깐 눈을 떴는데 옆에 아내와 아들의 이야기 소리가 들렸습니다. 아내가 아들더러 하는 말이, "얘야, 아빠를 위해서 기도 많이 해라. 아빠가 죽으면 우리는 거지란다." 그러는 것입니다. 저는 그때 처음으로 제가 죽으면 우리 식구는 거지가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괜찮습니다. 하나님만 만나고 산다면 아무려면 어떻습니까? 6월호 <월간목회>에 실린 글인데 제가 낮예배 때 그 이야길 했더니 교인들이 많이 울었습니다만, 어느 교회 목사님이 돌아가셨는데 교회 장로님이 사찰 집사님에게 목사님 식구들과 짐을 싣고 하염없이 달리다가 날이 어두워지면 거기다 내려놓고 오라고 했답니다. 그래서 그대로 했답니다. 날은 어두운데 아무도 아는 사람 없는 낯선 곳에서 울던 사모님의 하소연이 그 글의 주 내용입니다. 하지만 가난하게 살아도 괜찮습니다. 하나님만 만나고 살면 됩니다. 어느 책에서 본 내용인데, 한 총각이 어떤 처녀를 너무너무 사랑해서 매일 편지를 보냈습니다. 일 년 365일을 우체부가 처녀에게 편지를 전달했습니다. 나중에 보니까 우체부와 처녀가 결혼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사람도 만나야 합니다. 1. 성막 목회의 역사 성경은 하나님을 만나는 자리의 변화에 대한 역사입니다. 에덴동산에서 맨처음 만났을 때는 가죽옷을 입고 만났습니다. 에덴동산에서 내쫓긴 후 돌단을 쌓고 피를 뿌리면서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아담, 가인, 아벨, 아브라함, 이삭, 야곱까지 그렇게 했습니다. 그러다 야곱의 식구가 70명 되었을 때 애굽으로 들어가게 되는데 애굽에서 430년 살다가 200만 명이 나옵니다. 애굽으로 들어갈 때 70명이었던 사람들이 나올 때는 200만 명으로 불어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들어갈 때는 가정이었는데 나올 때는 민족이 된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성막을 만들도록 명하십니다. 그래서 성막을 만든 연대가 B.C. 1445년입니다. 성막이란 하나님을 만나러 가는 장소입니다. 돌단에서 아주 간단하게 피를 뿌리던 것이 성막에서는 복잡한 과정을 거쳐 피를 뿌립니다. 소, 양, 염소, 비둘기 네 종류의 짐승의 피를 뿌릴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모형입니다. 흡니와 비느하스가 성막에서 법궤를 빼내 가지고 나가 싸우다가 법궤를 빼앗깁니다. 그래서 성막과 법궤가 분리됩니다. 자동차와 엔진이 분리되었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빠를 것입니다. 법궤 없는 성막이, 성막 없는 법궤가 이리저리 유랑하게 되는데 성막과 법궤가 분리된 기간이 110년입니다. 이 기간을 '장막'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성막과 장막은 전혀 다른 것입니다. 솔로몬이 성막과 법궤를 넣은 성전을 만듭니다. 성막은 금값만 500억 원이 들었는데 성전은 금값만 900조 원이 들었습니다. 성경에 금이 얼마나 들어갔는지 나오지는 않았지만 성경대로 계산하면 900조 원의 금이 들어갔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제자들이 예수께 "예수님, 얼마나 아름다운 성전입니까?"라고 했을 때 예수께서는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리우리라"(마24:1∼2)라고 하셨습니다. 사실 A.D 70년 로마 장군 타이투스가 쳐들어와 그 성전을 무너뜨립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성전을 중심으로 뭉치자 이스라엘 백성을 흩으려고 무너뜨렸고 또 하나는 금이 많으니까 금을 캐려고 성전을 무너뜨렸습니다. 그 금을 로마 황제에게 바친 타이투스는 결국 개선문을 얻게 됩니다. 장군의 최고의 영예는 개선문입니다. 지금도 로마에는 타이투스의 개선문이 남아 있습니다. 돌 하나도 돌 위에 놓여지지 않은 채 성전이 무너진 다음 교회가 생겼습니다. 지금은 이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을 만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실 때까지 교회에서 하나님을 만나다가 주님이 재림하실 때 우리는 세마포 옷을 입고 주님을 영접하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세마포는 피 묻은 옷이라고 합니다.(계 19:8) 성경은 피 묻은 가죽옷에서부터 시작해서 피 묻은 세마포로 끝납니다. 다시 말하면 성경은 피에서 시작해서 피로 끝나는데, 구약은 짐승의 피가 흐르고 있고 신약은 예수의 피가 흐르고 있습니다. 짐승 피의 유효기간은 1년이지만 예수님 보혈의 유효기간은 영원입니다. 짐승의 피는 덮는 피고 예수의 피는 닦는 피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우리의 죄를 짊어지고 죽으시기 전에 이미 흠 없는 양이었습니다. 왜냐 하면 주님은 흠이 없는 분이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죽음을 우리는 구약성경에서 얼마든지 볼 수 있습니다. 스펄전 목사님이 82년 동안 예수 이야기를 하고도, "나는 예수 이야기를 다 못했다."라고 한 것은 구약 말씀을 갖고 예수 이야기를 하였기 때문에 82년 간 이야기하고도 다 못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제가 한국에서 처음으로 성막을 1/5로 축소하여 만든 후 세계의 성막을 살펴보니 성막을 실물 크기로 만들어 놓고 가르치는 곳이 두 군데나 있었습니다. 다른 나라는 벌써 그렇게 앞서 가고 있는데 우리 나라는 그것이 없이 1/5로 축소해서 만들었더니 모 신문에서는 왜 복음시대에 율법을 들춰 내느냐며 마구 공격한 적이 있었습니다. 모두 모르기 때문에 비난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3장 13절 이하를 보면 고린도 교회 교인들이 구약을 읽을 때 구약으로만 보고 신약으로 보지 못하자 사도 바울이 답답해하며, "오늘까지라도 구약을 읽을 때에 그 수건이 오히려 벗어지지 아니하고 있으니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이라"라고 했습니다. 즉, 주께로 돌아가서 구약을 읽어야 수건이 벗겨지며, 수건을 벗고 보면 구약은 곧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것이라는 고백입니다. 우리는 구약 속에 있는 그리스도를 볼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성막은 교회의 할아버지이고 성전은 교회의 아버지입니다. 성막에서 활동했던 제사장들은 목사님들의 원형입니다. 하나님과 인간이 헤어졌을 때 하나님은 인간을 만나고 싶어하셨습니다. 하나님과 인간이 만나는 방법은 인간을 하나님께 데려가는 것과, 하나님을 인간에게 모셔 오는 방법이 있습니다. 인간을 하나님께 데려가는 사람을 제사장이라 하였고 하나님을 인간에게 모셔 오는 사람을 선지자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의 목사는 제사장과 선지자를 합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사장론을 공부하고 또 선지자론을 공부하게 되면 목회론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는 맨처음에 이스라엘의 장자들을 전부 모아 나라 제사장으로 쓰셨습니다. 그러나 여러분께서 익히 아시는 대로 모세가 산에 올라간 후 아론을 중심으로 금송아지를 만듭니다. 화가 난 모세가 십계명을 깨뜨려 버리고 금송아지를 만드는 데 참여치 않은 사람만 나오라고 했을 때 레위 지파만 나왔습니다. 오직 레위 지파만이 우상을 만들지 않았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가정에서 장남을 데려다 제사장으로 쓰던 나라 제사장을 포기하시고 두 번째로 지파 제사장을 쓰시게 된 것입니다. 성막이나 성전에는 24,000명의 제사장이 필요한데 전쟁터에서 남자들이 죽게 되어 제사장이 부족하게 되었습니다. 부족하다 보니 30세에 제사장 안수를 받게 됩니다. 예수께서 나이 서른에 일하게 되신 것은 바로 성막을 이루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은 성막을 이루신 분입니다. 민수기에 보면 제사장은 서른부터 쓰는 것이 원칙인데(4:23), 남자들이 워낙 많이 죽으니까 25세로 낮추었습니다. 그래도 부족할 때는 20세로 낮춘 적도 있습니다. 제사장의 나이가 30세, 25세, 20세로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은 24,000명의 제사장을 만들기 위한 방편이었습니다. 전쟁이 잦아지고 제사장은 점점 부족하다 보니 그때 하나님이 쓰신 것이 나실인 제사장입니다. 지파, 남녀 가리지 않고 나실인이면 제사장으로 쓰셨습니다. 여러분과 저는 나실인 제사장입니다. 나실인 제사장은 바로 우리 목회의 원형이며, 성막 교회는 교회 목회의 원초적인 모형입니다. 저는 이 시간 성막에서 제사장이 목회했던 것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성막에관한 원서만 600권 정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아마 세계적인 성막책은 좋은 책이건 나쁜 책이건, 비싸건 싸건 거의 대부분 구한 것 같습니다. 세계 각국을 돌면서 성막에 관한 자료를 구했습니다. 이 자료를 갖고 연구하다가 이왕이면 내가 책을 써보겠다고 생각하고 썼는데 지난 주에 책이 나왔습니다. 「성막따라 전설따라」라는 책으로, 성막에서 목회자들과 관련된 전설만 다루었습니다. 전설이라고 말하는 것은 절대 믿지 마시고 성경만 믿으시기 바랍니다. 어떤 목사님은 전설은 재미있으니까 믿고 성경은 참고로만 사용하시는 분이 계십니다. 제가 전설에 대한 책을 쓰면서 고귀하신 하나님의 진리가 전설 때문에 왜곡될까 두려운 마음으로 인해 책 서문에서 "이 책은 전설이니까 믿지 마십시오."라고 썼습니다. 그러나 굉장한 근거가 있습니다. 「Regent of the Bible」은 성경에 있는 전설만 다 뽑아 놓은 책입니다. 아브라함에 관한 전설, 이삭에 관한 전설 등등 얼마나 재미있는지 모릅니다. 지금부터 전설과 성막과 목회를 연결시키면서 성막시대의 원초적인 제사장의 목회에 대하여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2. 번제단 번제단은 흠 없는 수컷을 데려다가 안수함으로써 죄를 전가시키고, 죄인이 직접 짐승을 죽여 죄인의 죄사함을 선포하는 자리입니다. 레위기에 보면 제물을 끌고 오면 무조건 그 제물 위에 안수를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안수하지 않은 제물은 제물이 아닙니다. 북쪽에서 하라, 두 뿔 사이에서 하라, 두손으로 하라, 법궤 있는 서쪽에 하라, 자기의 죄를 고백하면서 하라 등등 안수의 방법이 나옵니다. 이것이 성경에 나타난 안수의 법칙이빈다. 그래서 성막에서의 안수는 죄의 전가입니다. 짐승에게 자신의 죄를 고백함으로써 그 짐승이 죄를 전부 다 가져간다는 것입니다. 북쪽에서 짐승의 목을 찔러 피를 빼 북쪽부터 피를 뿌립니다. 죄가 있는 곳에는 반드시 피가 필요합니다. 우주 역사상 최초의 죄가 루시퍼의 반란인데 루시퍼는 북쪽에서 반란을 일으켰다고 성경은 말합니다.(사 14:12∼15)그래서 조가 북쪽에서 생겼기 때문에 북쪽에서 피를 뿌리라고 했습니다. 저는 작년에 이스라엘에 가서 제사법을 공부하고 왔는데 모든 제사의 시작은 북쪽부터 합니다. 죄가 있는 곳에는 피가 필요하고 피흘림이 없다면 죄사함도 없습니다. 우리 기독교는 피의 종교입니다. 그래서 "나의 죄를 씻기는 예수의 피밖에 없네"라는 찬송이 나온 것입니다. 피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여러분이 꼭 아셔야 할 것은 성막에서의 안수는 '죄의 전가'라는 사실입니다. 그 짐승을 반드시 죄인이 잡아야 됩니다. 양은 열두 토막을 내고, 소는 스물네 토막을 냅니다. 내 죄를 짊어지고 이 짐승이 내 대신에 죽는 것이라는 것을 깊이 깨닫게 해줍니다. 내 죄를 짊어진 그 짐승을 번제단 위에 올려 놓고 불로 태워 죽임으로써 내 죄가 일시적을 사함을 받는 것입니다. 정말 귀중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아부라함, 이삭, 엘리야 등이 돌단을 쌓고 짐승을 잡아 놓고 하나님께 기도하면 불이 떨어졌습니다. 모세가 성막을 만들어 놓고 첫 번째 제물을 올려 놓았을 때 불이 떨어졌습니다. 솔로몬이 성전을 세우고 첫 제물을 올려 놓았을 때도 불이 떨어졌습니다. 120문도가 마가의 다락방에서 기도할 때 불 같은 성령을 받고 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 돌단의 시작은 불이었습니다. 성막의 시작은 불이었습니다.(fp 9:23∼24) 성전의 시작은 불이었습니다.(대상 7:1) 교회의 시작은 불이었습니다.(행 2:1∼4) 기독교의 시작은 불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본질은 뜨거움입니다. 한국 교회가 병들어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뜨거운 교회는 살아남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목회자의 가슴에는 언제나 불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B.C. 1445년에 성막의 "불 꺼뜨리지 말아라. 불 꺼뜨리지 말아라. 불 꺼뜨리지 말아라."라고 세 번 말씀하셨습니다. 그 불을 간직하다가 B.C. 586년 바벨론이 침범하여 성전이 무너질 때 그 불을 꺼뜨렸습니다. 즉, B.C. 1445년에 받은 불은 B.C. 586년에 꺼뜨립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한 번 받은 불을 1,000년 동안 간직했습니다. 목회자에게는 신학교에 갈 때의 뜨거움, 성령받을 때의 뜨거움, 사명 받을 때의 뜨거움이 식으면 안 됩니다. 오늘날 목사의 원초인 제사장들이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언제나 불을 꺼뜨리지 아니하고 번제단 위에 불을 활활 타오르게 하는 것입니다. 불이 없는 번제단은 번제단이 아니고 불이 없는 성막은 성막이 아니었습니다. 언제나 성도들의 심령을 뜨겁게 만드는 것이 우리 목회자의 역할입니다. 목회자는 뜨거워야 합니다. 가슴에 불이 있어야 합니다. 저는 세계적으로 만 명 이상 모인다는 교회들을 가보았습니다. 그 교회에서 먹고 자면서 자료를 모으면 공부했습니다. 아무리 멀어도 모두 가보았습니다. 지난 2월에는 브라질 상파울루에 있는 테오르 디 아모르 교회에 갔더니 주일에 백만 명이 모였습니다. 교회 안에 들어가 봤더니 왼쪽으로 길이가 200m인데 한쪽 벽에 목발들이 나란히 걸려 있었습니다. 웬 목발이냐고 물었더니 목발을 짚고 왔다가 선유의 은사를 받고 병 고치고 나면 버리고들 가서 그것들을 한쪽에 걸어 놓은 것이랍니다.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우리 교회는 목발이 하나도 없습니다. 제 아내와 함께 구경을 했는데 제 아내가 주일 낮에 버스를 세어 보았습니다. 대형버스 3,000대가 넘어 세다가 포기했습니다. 제 아내가 저보고 하는 말이, "여보, 미린다 목사님은 이렇게 목회하는데 당신은 뭐요?"였습니다. 얼마나 김이 새는지 다음부터 유명한 교회에 갈 때는 아내를 안 데리고 가기로 작정했습니다. 목사님 사무실에 들어갔더니 내 심장을 찌르는 하나의 표어가 있었습니다. "목사가 불이 있어야 성도가 불구경 온다." 불이 있어야 합니다. 인천에서 열린 목회자 세미나에 갔었는데 일본에서 오신 목사님의 열린 설교에 얼마나 은혜를 받았는지 모릅니다. 그분이 아침에 기도하려고 5시에 교회에 갔더니 기도하는 사람이 많더랍니다. 그래서 다음 날은 새벽 4시에 교회에 갔답니다. 그랬더니 또 있었다는 것입니다. 다음날은 새벽 2시에 갔더니 아무도 없더래요. 그래서 언제나 교인들보다 제일 먼저 나갔고 제일 늦게까지 기도한답니다. 그렇게 기도하면서 일본의 교회에 부흥의 불을 붙인다는데 교회가 너무너무 부흥한다고 합니다. 일본의 목사님들 기도시간이 평균 15분인데 자기는 하루에 3시간을 기도드린답니다. "내 속엔 불이 있다. 이 불을 나는 1억 일본인에게 붙여야 한다."라고 말씀하시는데 제 가슴까지 뜨거운 불이 붙는 듯했습니다. 목사에게 불이 었어야 불구경 옵니다. 성막에서 제사장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번제단의 불을 꺼뜨리지 않는 일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다 가슴에 불을 간직하는 종들이 되시기를 합니다. 전설을 보면 번제단의 불은 아무리 폭우가 쏟아져도 꺼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어느 곳에서는 아무리 바람이 세차게 불어 와도 흔들리지 않고 위로만 탔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이 영적으로 강할 때는 불이 사자처럼 강하여 번제물을 넣기만 하면 불이 후루룩 타버려서 제일 많이 피울 때는 하루에 재만 300마차가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이 영적으로 약할 때는 그 불도 약해져서 번제물을 넣어도 흔들리며 잘 태우지를 못했답니다. 제사장의 첫 번째 임무가 불을 잘 간직하는 일이었습니다. 불은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간직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였습니다. 은혜를 받는 것도 힘들지만 간직하는 것이 더 힘들었습니다. "목사에게 불이 있어야 성도가 불구경 온다." 3.뜰 뜰에서 제사장이 하는 일은 죄로 말미암아 찾아오는 사람들이 그 가져온 짐승에게 그들의 죄를 전가시켜서 짐승을 죽임으로 죄인으로 하여금 죄사함의 확신을 갖게 하는 일입니다. 다시 말하면 죄와 이혼하게 하는 일입니다. 이것이 제사장이 하는 일 중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강대상에서 날마다 죄를 공격하여 교회에 온 성도들이 죄와 이혼하고 성결하게 살도록 하는 것이 우리 목회자들의 임무입니다. 목사가 죄와 같이 살고 있으면 죄에 대한 공격이 약해져서 그 교회에 회개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성막 뜰에서는 짐승에게 죄를 씌워 그 짐승을 죽이며, 나팔을 불며 죄사함의 확신을 갖고 돌아가는 일이 아침부터 저녁가지 계속되었습니다. 우리 한국이 점점 음란해지고 죄악의 도가니에 빠져들고 있다며 외국에서 많이 걱정들을 합니다. 요즘 한국이 얼마나 음란한지 빗대어 하는 말이 많은데 그중 하나를 소개할까 합니다. 강남에 있는 한 고층아파트에 아버지, 어머니, 아들의 세 가족이 사는데 아들이 비행소년이라 부모가 야단을 쳤더니 죽어 버리겠다며 뛰어내렸답니다. 아들이 죽는 모습을 본 어머니가 "아들 없는 세상 무슨 재미로 사냐, 나도 죽겠다." 하고 뛰어내렸답니다. 그랬더니 아버지가 "가족을 다 잃었는데 나만 살면 뭐 하나." 하고 자기도 뛰어내렸답니다. 그런데 아무도 안 죽고 다 살았답니다. 왜냐 하면 아들은 비행소년이라 떨어지면서 비행했으며, 어머니는 날라리라서 날았고, 아버지는 제비족이라 날아서 다 살았다는 것입니다. 요즘 한국의 가정이 정말 이렇습니까? 학교는 있는데 교육은 없고, 목사는 많은데 목자는 없고, 교인은 많은데 성도가 없고, 선생은 많은데 스승은 없고, 학생은 많은데 제자가 없고, 집은 그렇게 많은데 가정은 없어졌습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67기에 걸쳐서 12,000명의 목사들이 성막 공부를 하고 갔습니다. 그런데 세미나를 하려면 사모님들한테서 전화가 많이 옵니다. "목사님, 우리 목사님한테 이러이러한 문제가 있는데 목사님이 세미나하면서 이런 이야기 좀 건드려 주세요." 이런 문제란 물론 여자 문제입니다. 목사가 죄 속에 있으면 죄에 대한 공격력이 약해져서 그 교회에서 회개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에덴동산이 죄와의 결혼식장이라면 성막은 죄와 이혼식장입니다. 에덴동산이 하나님과 이혼식장이라면 성막은 하나님과의 결혼식장입니다. 에덴동산에 입장한 죄인을 성막에서 축출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목회자들은 설교 좀 못하고, 기도가 좀 부족할지라도 반드시 성결해야 합니다. 조금 부끄러운 말이지만 우리 한국에 얻어먹기 좋아하는 직업이 세 종류가 있다고 합니다. 그것은 경찰서장, 세무서장, 목사랍니다. 목사가 왜 들어가는지 모르겠지만, 어느 날 경찰서장, 세무서장, 목사 셋이서 음식점에 들어가 밥을 먹었답니다. 그런데 음식값을 누가 낸지 아십니까? 아무도 돈을 내려고 하지 않아 할 수 없이 음식점 주인이 돈을 냈답니다. 성막은 언제나 죄와 이혼하게 만들어 주는 곳입니다. 그것이 제사장의 임무였습니다. 제사장은 그 일 때문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깨끗하게 살게 하는 것이 제사장의 목적입니다. 바닷물은 염분이 3%밖에 없어도 썩지 않는데 우리 사회는 30%의 기독교인이 있는데도 썩고 있다는 말을 하지 않습니까? 심각한 일입니다. 성경을 보면 남편이 자기 아내가 부정하다고 생각될 때, 즉 심증은 있는데 증거가 없을 때 아내를 데리고 성막에 갑니다. 가서 제사장에게 아내를 인계합니다. 그러면 제사장이 아내에게, "너 부정한 죄를 졌느냐, 안 졌느냐?" 하고 묻습니다. 죄를 졌으면 고백해야 됩니다. 아내가 아무 죄를 지은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남편이 이상하다며 믿지 못할 때는 종이에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만일 내가 죄를 졌으면 넙적다리가 떨어지고 창자가 썩고 배가 부어서 죽으리라." 그 다음에는 물을 떠서 성막은 거룩한 땅이니까 거룩한 땅의 흙을 뿌리고 종이에 쓴 것을 닦으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 물을 마심으로써 판결을 받았습니다. 그 물을 마셨는데도 아무 일이 없으면 남편이 오히려 회개해야 합니다. 왜냐 하면 남편이 아내를 의심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모세의 율법입니다.(민 5:11∼31) 그런데 전설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쌍둥이 자매가 있었는데 둘이 다 결혼했습니다. 동생은 깨끗하였으나 언니는 부저하였습니다. 언니 남편이 아내를 보니까 아무래도 이상한 것입니다. 그래서 아내더러, "나 당신을 믿을 수 없으니까 의심의 소제를 드리러 성막에 갑시다."라고 하며 아내를 데리고 성막으로 갑니다. 이제 큰일입니다. 고백하지 않거나 탄로가 나면 죽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는길에 동생에게 부탁하기로 하고는 남편한테 "동생 집에 잠깐만 들렀다 갈게요."라고 합니다. 동생 집에 들어가서 동생에게 "얘, 나 큰일났어. 지금 성막에 가는 길인데 오늘 죽지 않으려면 고백해야 돼. 가정이 파탄날 텐데 네가 대신 가 줄래? 우린 쌍둥이니까 남편이 모를거야." "그래, 언니 내가 대신 갈게. 난 정말 깨끗해." 언니는 집에서 기다리고 동생이 대신 나가서 언니의 남편과 함께 성막에 같이 갔습니다. 그곳에서 제사장이 부저한 죄가 없느냐고 묻자 정말 없다고 했습니다. 종이에 글을 쓰고 제사장이 말하는 대로 그 물을 마셨지만 아무 일도 없습니다. 그랬더니 제사장이 남편에게 "당신이 쓸데없이 아내를 의심한 거니까 당신이 회개하시오."라고 했습니다. 남편은 오히려 제사장으로부터 야단을 맞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오는 길에 동생이, "여보, 나 동생집에 갔다 올게요." 또 그럽니다. 동생이 집에 가서 "언니, 성공이야 아무 일 없었어. 이젠 부정한 짓 하지 말고 형부와 잘 살아." "그래 고맙다." 너무 좋아서 언니가 동생을 껴안고 입을 딱 맞추었는데 입술에 그 물이 조금 남아 있었답니다. 입술에 묻은 물을 마시고 언니는 거기서 그냥 죽었답니다. 하여튼 철저하게 죄사함을 받게 하는 일이 성막에서의 제사장의 임무였습니다. 그래서 제물이 없으면 성막에 오지 못하게 했습니다. 왜냐 하면 제물에다 죄를 전가시켜야 했기 때문입니다. 철저하게 죄를 공격했던 것이 성막의 모습입니다. 작년 일 년 동안 저에게 가장 큰 영향을 주었던 분이 성철 스님입니다. 무척 쇼크도 많이 받고 은혜도 많이 받았습니다. 작년에 성철 스님이 타계했을 때 얼마나 난리가 났습니까? 저는 책방에 가서 성철 스님이 쓴 책은 다 달라고 해서 읽어 봤습니다. 정말 존경할 만한 사람이었습니다. 자기의 죄를 이겨 보려고 10년 동안 앉아서 자고, 또 30년 동안 생식을 했다는 것입니다. 옷 한 벌 갖고 50년을 살았답니다. 그렇게 죄를 이겨 보려고 고통 속에서 고행했던 성철 스님, 저는 인간의 초인적인 모습이 존경스러워 그의 책에 심취했습니다. 그런데 성철 스님이 죽으면서 뭐라고 했는지 아십니까? 불교에는 높이가 112만km나 되는 전설적인 수미산이 있다고 합니다. 성철 스님이 죽으면서 "내가 죄를 이겨 보려고 그렇게 고행을 했는데 아직까지 해결하지 못한 내 죄가 수미산보다 높아. 내가 죽으면 아비규환의 지옥에 가서 천갈래 만갈래로 찢어져 죽을거다."라고 하면서 죽었습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이 땅에서 기껏 이겨 보려고 그렇게 고생했지만 결국 지옥으로 갔습니다. 불교에는 구원이 없습니다. 고양이가 아무리 도를 닦는다고 호랑이가 됩니까? 아무리 인간이 도 닦는다고 하나님이 됩니까? 인간은 아무리 도를 닦아도 인간일 뿐입니다. 인간에게는 한계가 있습니다. 종류가 다른 것입니다. 어떻게 인간이 하나님이 됩니까? 불가능한 것입니다. 불교에는 왜 구원이 없습니까? 대속이 없기 때문입니다. 구약은 죄인 대신에 짐승이 죽고 신약은 죄인 대신에 예수님이 죽으셨는데 이것보다 더 중요한 복음이 어디 있습니까? 성막의 뜰은 짐승을 끌고 와서 죄로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짐승에게 죄를 전가시켜 그 짐승을 죽임으로써 이제 죄와 관계 없다는 것을 선포해 주는 곳이었습니다. 죄사함의 확신 속에서 뜨겁게 새로운 마음으로 살아가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 성막의 뜰이었습니다. 또한 그것이 제사장의 본분이었습니다. 우리가 강대상에서 축복, 긍정적 사고, 성공, 믿음 등등 이런 것들을 추구하기 전에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죄와 이혼하도록 하는 일입니다. 4. 널판 성막의 성소와 지성소는 5m나 되는 큰 널판 48개로 만들어졌습니다. 제미 있는 것은 아담의 갈비뼈로 하와를 만들었는데 갈비뼈를 가리키는 히브리어는 '질라흐'로 널판과 같이 쓰인다는 사실입니다. 전설에 보니까 아담과 하와가 부부싸움을 했습니다. 아담이 화가 나서 "나 너하고 안 살아." 그러니까 하와가 "여자는 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야 돼."라고 응수했습니다. 그때 아담이 뭐라고 했는지 아십니까? "아냐, 나는 갈빗대가 23개나 더 있어."라고 했답니다. 성막은 48개나 되는 널판, 질라흐로 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집은 48개의 갈비뼈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즉 남자와 여자가 아름답게 연합되어 있는 가운데에 하나님이 거하십니다. 그런데 어떻게 큰 널판을 광야에서 구할 수 있었겠습니까? 야곱의 식구 70명이 애굽으로 들어갈 때 시내 산에서 하룻밤을 자는 데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야곱아, 430년 후에 너의 후손들이 여기를 지나게 될 텐데 나는 그들에게 내 집을 지으라고 명할 것이다. 그러니 너는 내 집을 지을 나무를 여기다 심고 들어가라." 그래서 야곱의 식구들이 나무를 심고 들어갔답니다. 그때 야곱이 심고 들어간 나무를 베어서 하나님의 집, 성막을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대답입니다. 우리가 믿어야 될지 말아야 될지 잘 모르겠지만 우리가 성경을 보아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제사장들이 밤낮 그 널판을 닦고 보존하고 들고 다니면서 하나님의 집을 아름답게 간직하는 역할을 했다는 사실입니다. 제사장 자신이 만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일을 하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도록 모든 것을 다 예비해 놓으셨습니다. 널판은 이 진리를 우리에게 주고 있는 것입니다. 목회나 교회에는 심고 기다리는 인내가 요구됩니다. 너무 서두르지 마십시오. 조금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과 저는 우리의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 교인들이 일하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널판을 바라보면서 이 같은 믿음을 확실하게 가져야 합니다. 성막시대의 제사장들은 하나님의 일을 하려고 할 때 하나님께서 필요한 모든 것을 채워주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일했습니다. 널판자 속에서 나오는 진리입니다. 저희 교회에서 세미나로 자꾸 모이다 보니 비좁아서 자동발생적으로 나온 말이 기도원을 짓자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저희 r회가 기도원을 짓고 있는데 12번 중에 7번 대금을 치렀습니다. 지금까지는 부족하지 않았는데 너무너무 어렵습니다. 지난번에는 3억 원을 치러야 했는데 돈이 부족했습니다. 밤낮 돈 이야기만 하니까 교인들이 얼마나 피곤하겠습니까? 목회가 잘 될 때도 있고 안 될 때도 있지 않습니까? 지금은 제가 너무너무 안 될 때입니다. 기도원 짓는다니까 교인들이 도망가기도 하니 아주 안 좋은 시기였습니다. 기도 많이 해야 될 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3억을 어떻게 해요?" 하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저는 금식기도는 못 합니다. 대신 철야기도를 하자고 해서 엎드려 철야기도 드리는데 하나님께서 마음속에 감동을 주시는 겁니다. "강문호야, 이번에 3억 원을 광고하지 말고 천만 원씩 부탁해라." 그래서 "하나님 누가 돈을 있는지 가르쳐 주십시오."라고 기도하는데 얼굴이 막 떠오릅니다. 그래서 쭈욱 적었습니다. 다음 날부터 제 아내와 둘이서 심방을 떠났습니다. 다른 사람은 안데리고 갔습니다. "김 집사, 이번에 3억 원이 필요한데 하나님께 기도하는데 30명 뽑아서 천만 원씩 부탁하랜다. 근데 김 집사도 당첨되었어." "하나님이 나보고 하래요?" "그래." 우리 교인 중에 강남 고속버스 터미널 지하에서 사업 잘 하는 여자 집사님이 계십니다. 헌금도 잘 하고 만만합니다. 제가 딱 갔더니 절 보자마자 하는 말이 "목사님, 천만 원 때문에 오셨죠?"라고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아시느냐고 했더니 돈 걷으러 다니신다는 소문이 났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가만히 있었습니다. 그랬더니 이분 하는 말씀이, "목사님, 큰일났어요. 우리 옆가게에 자리가 났는데 어떤 사람이 그것을 사서 우리하고 똑같은 품목을 차린대요. 우리가 너무 잘 되니까요. 그래서 이번 기회에 아예 그 곳을 사버리려고 해요. 그래서 지난 주 은행에 3억5천만 원 대부 신청했어요." "한마디로 말씀하십시오. 3억5천만 원 빚 때문에 못 한단 말씀이죠?" "아녜요, 목사님. 내가 은행에 갓 3억5천 대부 신청을 쓸려고 하는데 갑자기 제 마음속에 '지금 목사님이 천만 원씩 부탁하러 다니는데 너한테도 올거다. 널 위해 3억5천을 구면서 주님을 위해서 천만 원 못 꾸냐, 3억6천이라고 써라.'라고 그러잖아요. 그래서 3억6천만 원 대부받아서 천만원 갖고 왔지요."하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별 부족함 없이 왔지만 앞으로는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목회하면서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은 내가 하는 일이 아니다. 하나님의 일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다 책임져 주신다.' 하는 생각이 들어야 합니다. 널판을 보면서 이러한 것을 깨달아야 할 줄로 압니다. 우리 너무 다른 사람 흉내내려고 하지 맙시다. 내 목회에 내가 충실하면 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본받으려 하지 맙시다. 제가 1979년에 척 스미스 목사님을 만났으니 벌써 20년이 가까워 옵니다. 제가 공부하러 갔을 그 당시에 교회가 9만 평이었으니 얼마나 큽니까? 제가 목사님께 "교회가 성장한 원인 한 가지만 말씀해 주십시오."라고 했더니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 교회가 800명에서 그렇게 부흥이 안 되더랍니다. 목회하면서 한 군데 머물면 답답하잖아요. 저도 지금 그런 상태입니다만 교회가 성장이 안 되니까 나중에는 지쳐서 하나님께 "하나님, 난 모르겠어요. 나는 내일부터 목회 그만 두고 낚시나 다닐테니 이 교회는 하나님 교회니 하나님 마음대로 하세요."하고 낚시를 다녔더니 그 날부터 교회가 부흥되더랍니다. 낚시다니십시오. 낚싯대 들고 붕어나 잡으러 다니라는 말이 아닙니다. "네가 하는 목회가 네 목회 아니다. 내 목회다. 너는 심부름꾼이니 다 나한테 맡기라."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라는 말입니다. 다 하나님의 일이니까 다 에비하시고 우리는 심부름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목회입니다. 너무 목회 잘 하는 분한테 기죽을 필요 없습니다. 조용기 목사님이 목회하시는 교회의 부흥회를 80번이나 다녔습니다. 8번이 아니라 80번을 했는데 여의도순복음교회에 갈 때마다 속이 상하는 것입니다. 몇 년 전 우리 교회는 장년부가 400명인데 그 교회는 목회자만 700명이 넘었습니다. 강단에 서자마자 속으로 '하나님 이렇게 인간 차별하시니 너무하시는군요." 이것이 첫마디였습니다. 그러나 '나는 강문호다. 너무 남의 흉내낼 필요 없이 나에게 맡겨 준 목회현장에 충성을 다하는 것이 목회다.'하는 감동이 왔습니다. 여러분, 너무 높은 데 쳐답지 마십시오. 그거 자신의 일에 충실하면 됩니다. 척 스미스 목사님의 설교 스타일은 가만히 서서 사근사근 강해설교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 번은 자기도 빌리 그레이엄 목사님처럼 마이크 붙들고 왔다갔다 하면서 설교하고 싶더랍니다. 그래서 자기도 한 번 해보고 싶어 마이크 붙들고 강대상으로 돌아와서 "나느 빌리그레이엄이 아니다."라고 소리쳤다는 것입니다. 무디가 기도합니다. "오, 하나님이여, 엘리야와 같은 능력을 주셔서 미국의 엘리야가 되게 해주옵소서." "엘리야는 450명 데리고 가서 이방 선지자 목 잘랐지. 너 이방사람 목 자를 수 있어?" "하나님 나는 살인 못해요." "그럼 너는 엘리야가 될 수 없어." "하나님, 나 아브라함 같은 믿음 주셔서 미국의 아브라함 되게 해주옷소서." "아브라함은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내게 바쳤지, 너도 그럴 수 있냐." "나는 아들 못 바쳐요." "그럼 아브라함도 될 수 없어." "나 모세와 같은 영도력 주셔서 미국의 모세 되게 해주소서." "모세는 이집트 사람 파묻었지." "나는 못 해요." 하나님께서 무디에게 이사람 저사람 다 안 된다고 하시자 나중엔 화가 나서 "하나님 도대체 누구처럼 되란 말입니까?" 하고 항의했더니 그때 하나님께서 "무디야, 너는 너처럼 되거라."라고 하시더랍니다. 심각한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따로 맡겨 주신 현장이 있습니다. 이곳 저곳 기웃거릴 필요 없습니다. 5m나 되는 큰 널판 48개가 필요할 때, 하나님께서 미리 야곱을 통해 나무를 심어 놓게 하셔서 그것을 성막을 만들게 하셨다고 믿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처럼 여호와 이레로 언제나 필요한 것을 준비하시는 하나님인 줄 믿습니다. 5. 덮개 성막 건축에는 평당 20억 원이 들었습니다. 그 성막을 4번 덮었습니다. 맨처음에 청색, 자색, 홍색의 가늘게 꼰 베실로 덮습니다. 두 번째는 염소털로 덮고, 세 번째는 숫양의 가죽으로 덮고, 네 번째는 물개가죽으로 덮습니다. 물개가죽으로 덮으니까 비가 와도 빗물이 새지 않습니다. 성막은 평당 20억짜리 건물인데 20억짜리 건물에 물이 스며들지 않게 무개가죽으로 덮게 하신 하나님의 지혜는 놀라운 것입니다. 전세계에 성막이 11개 있는데, 구중 네덜란드의 성막은 1851년 암스테르담에서 제일 먼저 만들어졌습니다. 우리 교회 성막은 세계에서 1번째로 만들어져쓴데 성막 가운데 제일 시시합니다. 제일 돈 안 들이고 그냥 모양만 본따 만든 것뿐입니다. 나중에 진자로 한 번 만들어 보려고 물래 가죽을 계산해 보니까 300마리가 필요하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물개가죽 300마리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주실 줄 알았더니 캐나다에서 부흥회 좀 해 달라고 전화가 왔습니다. 저는 날짜를 좀 늦추자고 했더니 그 당시 교회가 둘로 나뉠 형편이라고 빨리 오라는 것입니다. 비행기표가 왔습니다. 저는 비행기표를 놓고 하나님께 기도했더니, "너 물개가죽 달라고 기도했지. 물개가죽 제일 많은 데가 캐나다란다."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얼마나 기쁜지 이번 부흥회는 은혜 끼치는 부흥회가 아니라 물개가죽 구하는 부흥회라는 확신을 갖고 시간시간마다 물개가죽 이야기를 빼놓지 않았습니다. 그랬더니 집사님 한 분이 복음 전하러 와서 물개가죽 이야기만 하냐고 묻길래 부흥회 목적이 물개가죽 구하는 거라고 했습니다. 그 곳은 북극이 가까워서 오전 11시에 해가 뜨고 오후 3시에 해가 집니다. 밤예배 마치고 해변가를 거니는데 수천 마리의 물개들이 왔다갔다 하는 것입니다. 순간적으로 발이 굳어졌습니다. 뒤에 잇던 한 집사님이 제 아내에게 "목사님이 왜 그렇게 물개에 미쳐 있습니까?"라고 물었답니다. "성막이 그리스도 모습이기 때문에 한국에 378평의 성막을 재현하려고 물개들을 모으고 있어요."라는 아내의 말을 듣고 그분이 저한테 오더니, "목사님 어쩌면 그리 시기를 잘 맞춰서 오셨어요. 이 지역에 갑자기 물개가 많이 나타나서 그냥 내버려 두면 다른 물고기들을 다 잡아 먹기 때문에 캐나다 정부에서 생전 처음으로 8월 1일부터 9월 30일까지 두 달 동안 물개사냥 시즌을 발표했는데요."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그랬습니다. 이 시기 놓치면 돈이 문제가 아니라 물개가죽 300마리를 못 구하는 겁니다. 물개 300마리 잡으려면 두 달 동안 물개 사냥꾼 몇 명을 동원시켜야 되느냐고 물었더니 800명을 동원시키면 된다는 대답이었습니다. 다음 날 신문광고를 크게 냈습니다. "물개 사냥꾼 800명 모집. 인건비는 보통 인건비의 30% 추가함." 그 날로 800명을 모집했습니다. 나는 우리 교회의 돈으로 그들에게 주고 두 달 후 물개가죽 300마리를 받기로 하고 귀국했습니다. 얼마 있다가 물개가죽이 도착했습니다. 세어보니 303마리입니다. 지금도 303마리는 성막 원형을 기다리면서 우리 교회 창고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지금 짓고 있는 기도원이 10월에 완성되면 그 다음에는 성막 복원사업에 들어가려고 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이 무엇 때문에 물개가죽을 갖고 광야에 나왔습니까? 하나님께서 물개가죽으로 하나님의 집을 지으신 것은 다 이유가 있습니다. 구두 만들기에 가장 좋은 가죽은 소가죽입니다. 그러나 소가죽으로 구두 만들지 않은 민족이 있습니다. 인도의 힌두교 민족, 애굽 민족입니다. 애굽에서 430년 간 산 이스라엘 백성도 그들 문화에 젖어서 소가죽으로 구두를 만들지 않았습니다. 왜냐 하면 소를 숭상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소를 숭상했다는 근거가 있습니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40일 동안 기도할 때 아론을 중심으로 해서 금을 모아 금송아지를 만들었습니다. 금으로 만들었다는 것이 중요하지만 그 형상은 송아지였습니다. 수천 가지 동물 중 하필이면 왜 금송아지입니까? 그만큼 소를 숭배했다는 것입니다. 우리 한국 사람들이 제일 좋아하는 동물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금은방에 가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바로 돼지입니다. 어쨌든 이스라엘 백성이 물개가죽으로 구두를 만들어 신었다는 이야기가 성경에도 나옵니다. 물개가죽은 구두 만들기에 소가죽 다음으로 좋은 가죽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물개가죽을 갖고 나온 이유는 신발 만들어 신으려고 갖고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내 집을 만들테니 바쳐라."라고 하셨을 때 이스라엘 백성은 순종하며 바쳤습니다. 내가 쓰려던 물개가죽을 하나님께서 필요하다고 해서 바쳤더니 40년 광야생활 동안 옷이 해지지 않고 신발이 닳지 않았다는 겁니다. 물개가죽을 바쳤다는 것과 신발이 닳지 않았다는 거이 연결되는 것입니다. 저는 세계의 성막마다 가서 공부하는데, 재작년에는 네덜란드의 성막에 가서 공부했습니다. 그 나라 말 하나도 못 알아 들으면서도 앉아서 공부하고 올 때 자료를 가지고 왔는데 거기에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신었던 닳지 않은 물개가죽 신발이 보관되어 있는 것입니다. 제가 금년도에 '성막 박물관'을 개관하려고 하는데 물개가죽으로 만든 신발을 보았으니 얼마나 탐이 나겠습니까? 어떻게 그것을 가져갈 수 있을까를 생각하며 고민도 해보았지만 할 수 없이 사진만 찍어 왔습니다. 한국의 성막 박물관에는 사진이 놓여지고 네덜란드의 성막 박물관에는 진품이 놓여있는 것입니다. 무한한 질적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내가 쓰려고 하던 것을 하나님께서 필요하다고 하실 때 하나님께 바치고 나면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물개가죽이 주는 교훈입니다. 사실 성경에는 물개가죽이라고 나오지 않고 해달의 가죽으로 나옵니다만 이것저것 주석을 찾아보니 일곱 가지가 나옵니다. 족제비라는 등 온갖 해석이 있지만 그중 가장 근사치가 물개가죽입니다. 이렇게 결론을 내리고 물개가죽을 엄청난 돈을 들여 수입한 것입니다. 이밖에도 성막에 얽힌 전설이 많습니다만 이제 결론적인 얘기로 들어가겠습니다. 구약성경에서 제일 중요한 단어는 '못의 성막' '다윗의 장막' '솔로몬의 성전'입니다. 모세의 성막은 초림 예수의 모습이고, 솔로몬의 성전은 재림 예수의 모습이며, 다윗의 장막은 고난당한 그리스도의 모습입니다. '예수님이 초림하셨고 고난당하셨고 재림하셨다' 이 세 가지면 예수에 대한 중요한 것을 다 공부하는 것처럼, 수건을 벗고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모습에서 구약 속에 들어 있는 그리스도를 풀어 내기 시작할 때 깊은 감동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오늘도 예수, 내일도 예수, 온 종일 예수 이야기만 해도 모자라 언제나 예수 이야기로 꽃피울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설교에는 예수의 피 이야기가 떨어지지 않고, 십자가 고난이 떨어지지 않고 계속해서 예수에 관한 이야기로 복음적인 설교를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성막의 목회는 바로 현대 교회의 목회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성막의 번제단의 불, 물개가죽의 헌신, 널판의 인내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 외 철저한 하나님 중심은 교회의 본질이요, 목회의 표상입니다. 이렇게 오셔서 목장을 살찌우고 뜨겁게 하나님을 섬기겠다는 그 열정으로 첫날부터 마지막날까지 기도하시는 목회자 여러분! 이 집회가 성막 번제단에 붙었던 불길과 같이, 강력한 불을 붙이는 불덩어리 목사가 되어, 한국에 나타나는 한국 교회 성장의 하향곡선을 다시 올려 상향곡선으로 만드는 불덩어리의 집회가 될 줄로 믿습니다. 한국 교회의 강단이 여러분과 저의 어깨 위에 놓여 있음을 아시고, 줄고 있는 교회를 느는 교회로, 떠나는 교인을 붙잡는 교회로, 없어지는 교회를 소생시키는 교회로 바꾼다는 사명감을 갖고 일하면 주께서 우리를 통하여 크게 영광받으실 줄로 믿습니다. "목사에게 불이 있어야 성도가 불구경 온다." |
출처 : Heavenly Nomad
글쓴이 : 진실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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