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神學小稿]
성전이란 무엇인가?
(박 용 기)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유를 지으신 신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행17:24)
Ⅰ. 이끄는 말
일반적으로 종교는 신이나 절대자를 인정하여 일정한 양식 아래 그것을 믿고 숭배하고 받듦으로써 마음의 평안과 행복을 얻고자 하는 정신문화의 한 체계라고 알고 있다. 그러므로 종교는 인간의 내면세계를 추구하는 것을 본연의 임무로 삼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종교들이 주된 본연의 임무 수행에 관심을 갖기보다는 종교적인 의식을 화려하게 꾸미는 일에 더 큰 관심과 열을 올리는 경향을 보게 된다.
그것은 각 종파마다 종교 의식의 특성에 맞는 웅장하고 화려한 시설을 갖추려는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래서 엄청나게 많은 건축 예산이 필요하기 때문에 그 예산을 확보하기 위하여 신의 이름을 빙자한 거액의 헌금을 선량한 신도들에게 강요하게 된다. 그 결과로 돈이 없이는 순수한 종교적 신앙을 갖기가 힘들어지는 여건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현실은 기독교의 경우 역시 예외는 아니다.
기독교는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존재와 속성을 알아서 믿고 경외하며 섬기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스스로를 계시하신 성경을 가르치는 것을 본연의 임무로 삼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순수한 기독교는 성경을 신자들에게 가르쳐서 진리를 후대에 전수하며 지워야 하는 것을 본연의 임무로 삼아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기독교 역시 여타의 종교들처럼 기독교 본연의 임무에는 소홀이 하고 잘못된 예배 의식에 필요한 시설을 성전(聖殿)이라는 이름으로 웅장하고 화려하게 세우는 일에 온갖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교회마다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 이 엄청난 많은 예산을 투입하여 성전 건축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종교개혁 이전 중세교회가 의식 중심의 미사(missa)를 드리기 위하여 시도했던 잘못된 관행(慣行)에서 비롯된 것이다. 종교개혁자들은 말씀 중심의 예배를 내세우면서 기독교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런데 그 후예들인 개혁파 교회들이 다시 중세 로마교회의 잘못된 관행을 따라 의식 중심의 제사를 재현하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제사를 드리기 위한 웅장하고 화려한 성전을 세우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모두가 성전에 대한 잘못된 인식의 결과로 나타난 것이다.
종교가 성행하는 나라마다 그 종교의 특성에 맞는 신전들이 도시마다 군데군데 세워져 있기 마련이다. 우리나라도 수려한 산속에는 웅장하고 화려한 불교의 전각들이 즐비하게 세워져 있고, 도시는 물론 시골 마을에는 교회의 건물들이 특유의 양식을 갖추어 우뚝우뚝 세워져 있는 것을 매우 흔하게 볼 수 있다. 이러한 교회의 건물들이 과연 우주와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성전이란 말인가? 아마도 성경을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자라면 이러한 의문을 당연히 가지게 될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신자들은 그 모든 건물들이 하나님을 모시는 거룩한 집 또는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성전이라고 알고 있다. 그리고 그 건물을 신성시하기까지 한다. 이것은 기독교가 그 본연의 자세에서 벗어나 얼마나 무속화 되어졌는가를 잘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전에 대한 잘못된 인식은 기독교를 무속화하는데 기여도가 매우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한국 교회가 무속적인 의식 중심의 예배에서 벗어나 본연의 임무를 성실히 수행하는 건전한 교회로 궤도를 수정해 가려면 성전에 대한 성경적인 바른 이해가 필요한 것이다.
Ⅱ. 성전이란 말의 뜻
'성전'이라는 말은 신구약 성경에서 자주 사용하고 있다. 특히 구약성경에서 많이 사용되고 있으며 신약 성경에서도 더러 사용되고 있다. 구약 성경에서 '성전'이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바이트'와 '헤칼'을 주로 사용한다. 그 가운데 '바이트'라는 말은 본래 '집'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어서 일반적으로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다. 그리고 '헤칼'은 '궁전'이나 '성전'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어서 특별히 큰 공공건물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와 같은 말들은 이방 종교의 신전이나 사원을 가리켜 언급할 때에도 사용하는 말이다. 그래서 구약 성경에서는 대부분 '성전'이라는 말을 일반적인 집이나 공공건물 그리고 이방 종교의 신전이나 사원과 구별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집' 또는 '거룩한 집'이라고 표현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신약 성경에서 '성전'이라는 말은 헬라어로 '히에론( )'과 '나오스'를 주로 사용한다. 그 가운데 '히에론'이라는 말은 성전에 속한 건물들이나 현관 및 뜰을 포함한 시설 전체를 총칭하여 일컫는다. 그리고 '나오스'라는 말은 성소와 지성소를 이루고 있는 거룩한 건물만을 가리켜 일컫는 말이다. 이와 같은 말들은 주로 예루살렘에 세워진 성전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니까 '히에론'이 예루살렘 성전 전체를 가리키는 말이라면, '나오스'는 예루살렘 성전의 부분적인 한 건물만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신구약 성경에서 사용하고 있는 '성전'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집' 또는 '거룩한집'이라는 뜻으로 사용되는 말이다. '하나님의 집'이라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임재하여 계시는 처소라는 뜻이며, '거룩한 집'이라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제사장을 통하여 여호와 하나님께 거룩한 제사를 드리는 처소라는 뜻에서 일컫는 말이다. 실제로 예루살렘에 세워진 성전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임재하셔서 스스로의 영광을 나타내시는 곳이다. 그리고 특별히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서 거룩하게 구별된 제사장들이 여호와 하나님께 백성을 대신하여 제사를 드리는 곳이다. 그러니까 예루살렘 성전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서 종교적인 중심지가 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날마다 제사장들이 제사의식을 행하는 거룩한 처소이다.
Ⅲ. 성전의 역사
예루살렘 성전에 대한 역사는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와 밀접한 관계를 이루고 있다.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는 크게 족장시대와 왕정시대로 구분이 된다. 족장시대가 국가 형성의 준비기라면, 왕정시대는 국가 형성의 완성기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예루살렘 성전의 역사 역시 족장시대는 예루살렘 성전이 구체적인 건물로 세워지기 이전 시대이고, 왕정시대는 예루살렘 성전이 구체적인 건물로 세워진 시대이다.
성전이 건물로 세워지기 이전의 이스라엘 족장시대는 성전 건축의 준비기로서, 이스라엘 열조와 그 자손이 여호와 하나님께 단을 쌓고 제사를 드리다가 그 후에 제사장을 세워 성막을 짓고 제사를 드리는 시대였다. 그러므로 예루살렘에 성전이 구체적인 건물로 세워지기 이전의 성전에 대한 역사는, 족장들이 단을 쌓고 제사를 드리는 시대와 제사장들이 성막을 짓고 제사를 드리는 시대로 구분이 된다.
이스라엘 열조가 여호와 하나님께 단을 쌓고 정결한 짐승을 잡아 제사를 드리는 종교 의식은 인류 초기로부터 전수 되어져 온 것이다. 인류의 시조인 아담의 아들 아벨이 자기가 기른 양의 첫 새끼를 잡아 제사를 드린 바 있다(창4:4). 그리고 그 후손 가운데 노아가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정결한 짐승과 새를 취하여 번제로 드리기도 했다(창8:20).
그 후에 이스라엘의 조상 아브라함이 여호와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들은 다음, 가나안 땅에서 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창12:7∼8, 13:18). 뿐만 아니라, 그는 여호와의 명을 따라 정결한 짐승을 제물로 삼아 제사를 드렸다(창15:9∼10). 그리고 하나님의 지시를 따라 모리아 땅에 있는 한 산에 이르러 단을 쌓고 아들 이삭 대신에 수양을 잡아 번제로 드리기도 하였다.(창22:9∼13)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도 브엘세바에서 여호와의 언약의 말씀을 듣고 그 곳에 단을 쌓아 여호와의 이름을 부른 사실이 있다(창26:23∼25). 그리고 이삭의 아들 야곱은 하란으로 가다가 도중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듣고 베개 하였던 돌을 가져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부은 사실도 있다(창28:10∼19). 그 후, 그는 하란에서 가나안 땅으로 돌아오다가 길르앗 산에서 외삼촌 라반의 맹세를 듣고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하고 제사를 드린 것이다(창31:51∼54). 그리고 그는 세겜 성에 이르렀을 때, 은으로 밭을 사서 거기 단을 쌓고 그 이름을 하나님,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는 뜻으로 엘엘로헤 이스라엘이라 하였다(창33:18∼20).
뿐만 아니라, 그가 하나님의 명을 따라 벧엘로 올라가서 그곳에 단을 쌓고 벧엘의 하나님이라는 뜻으로 엘벧엘이라고 이름하기도 하였다(창 35:1∼7). 그리고 그는 하나님께서 그의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부르라는 말씀을 듣고서 돌기둥을 세우고 전제물을 붓고 또 그 위에 기름을 붓기도 한 것이다(창35:9∼15).
이스라엘 자손이 성막을 짓고 제사장을 세워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는 종교 의식은,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서 나와 시내 광야에 머물 때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성막 규례를 명하셔서 그로 하여금 성막을 짓게 하심으로부터 출발이 된 것이다(출25:8∼9,35:10∼19). 성막은 여호와께서 언약궤를 보관하게 하시고 거기에 임재하셔서 이스라엘 자손과 함께 거하시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제사장이 이스라엘 자손을 대신하여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게 하시려는 것이다.
처음으로 성막이 세워지게 된 것은,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서 나와 시내 광야에 머무르고 있을 때, 모세가 여호와의 명하신 말씀을 따라 시내산에 세우게 된 것이다(출40:17∼33). 그리고 그 후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40년 동안 광야 길을 진행하면서 불기둥과 구름기둥이 머무는 곳으로 이동하여 세운 것이다(출40:36∼38). 이스라엘 자손은 광야에서 진행하다가 어디라도 머무르게 되면 먼저 성막을 세우고 그 성막을 중심하여 열 두 지파가 진기별로 진을 치고 다른 곳으로 옮겨 갈 때까지 그 곳에서 생활을 하였다.(민9:15∼23)
이스라엘 자손이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간 후, 솔로몬이 성전을 짓기 전까지 몇 차례 성막이 옮겨져 세워졌다. 그때 이스라엘 자손이 처음으로 길갈에 성막을 세운 것이다(수5:10). 그리고 다음으로는, 이스라엘 자손이 가나안 땅을 일부 정복하여 각 지파별로 분배한 후에 성막을 실로로 옮겨 세웠다(수18:1). 그런데 사무엘 시대에 블레셋과 전쟁을 할 때에 언약궤를 실로에서 진중으로 옮겼다가 블레셋에게 빼앗겼으며(삼상5:1) 그 후에 다시 찾아서 기럇여아림의 산에 사는 아미나답의 집으로 옮겨 20년 동안 있게 하였다(삼상7:1). 사울왕 시대에는 언약궤가 없는 성막만이 놉에 세워져 있었다(삼상21:1∼6). 그리고 다윗왕 시대에 성막이 다윗 성으로 옮겨져 세워지고 언약궤를 아미나답의 집에서 옮겨 오게 되었다.(삼하6:16∼19) 그 후, 솔로몬이 왕위에 오르게 되자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게 된 것이다.
예루살렘 성전이 건축된 이스라엘 왕정시대는 성전의 수난기로서, 이 시대에는 성전이 한 차례 완전히 불타버리기도 하고 중건되기도 하며 건축되기도 하였다. 그래서 예루살렘 성전은 처음으로 솔로몬왕이 건축한 것이 있고, 유다 백성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왔을 때, 스룹바벨이 중건한 것이 있으며, 예수께서 오시기 앞서 헤롯왕이 스룹바벨이 중건 한 성전을 헐고 건축한 것이 있다.
솔로몬왕이 건축한 성전은, 다윗왕의 아들 솔로몬이 부친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의 왕위에 올라 예루살렘에 지은 것이다. 그의 부친 다윗왕이 성전을 지으려고 노력을 하였으나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에게 허락하지 아니하셔서 짓지 못하고(삼하7:1∼7), 다만 성전을 건축할 재료와 장소를 구입하는 일만을 하였다(대상22:2∼5).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께서 솔로몬왕에게 성전을 건축하게 하신 것이다. 솔로몬왕은 즉위한 지 4년에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기 시작하여 7년에 걸쳐 완공을 하였다(왕상6:37∼38). 그런데 그 성전이 BC721년 경에 바벨론에 의하여 불타버리게 되었던 것이다.
스룹바벨이 중건한 성전은 솔로몬왕이 건축한 예루살렘 성전이 바벨론에 의하여 불타버린 후에 다시 중건한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에 포로가 된 지 70여 년이 지난, BC539년 경에 에스라가 바벨론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영솔하여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 그 때, 그들은 고래스왕의 도움으로 과거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탈취해 간 성전의 모든 기물들을 가지고 올 수 있었다(스1:7∼11). 그 후에 스룹바벨이 2차로 바벨론에서 돌아와서 불타버린 예루살렘 성전을 중건한 것이다(스3:8∼13).
이 성전은 약 500여 년 가량 세워져 있었다. 그것은 과거 솔로몬왕이 지은 것이나 그 후에 헤롯왕이 건축한 것보다도 가장 오랫 동안 세워져 있었던 것이다. 헤롯왕이 건축한 성전은, 스룹바벨이 중건한 성전의 높이가 솔로몬왕이 건축한 성전의 높이보다 낮다는 것을 표면상의 이유로 하여 헤롯왕이 건축한 것이다. 그러나 그 내면상의 실제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 아니고, 그가 성전 건축을 통하여 유대인들로 하여금 자기 이름을 영원히 기억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리고 유대인과 그들의 이 두메이아인 왕 사이를 화목케 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와 같은 정치적인 목적으로 건축한 이 성전은 BC19년에 공사가 시작되어 주요 공사는 10년 안에 끝을 냈으나 나머지 부대 공사가 AD64년까지 계속 진행이 되었던 것이다.
Ⅳ. 성전의 특징
예루살렘 성전은 몇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신적(神的) 기원(起源)을 가지고 있다는 것과, 오직 유일하게 한 곳에만 세울수 있다는 것과, 실제로 구별된 처소라는 것이다. 이와 같은 예루살렘 성전의 특징들은 모두가 이방 종교들의 신전(神殿)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것들이다.
먼저, 예루살렘 성전은 신적인 기원을 가지고 있다.
예루살렘 성전은 어느 인간이 고안하여 세운 것이 아니다. 이방 종교의 신전들은 모두가 인위적인 방법으로 조작하여 세운 것이다. 그러나 예루살렘 성전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직접 명하신 규례에 근거하여 세운 것이다. 그 크기나 모양을 비롯하여 용도 등에 이르기까지 모두 여호와 하나님께서 명하신 규례에 따른 것이다. 그러므로 성전의 어느 것 하나라도 사람의 마음대로 고안하거나 결정하여 만들어 세운 것이 아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시내산에서 성소와 각종 성구들의 재료와 식양을 명하셨다(출25:∼27:).
모세는 여호와께서 명하신 성막 규례에 의한 재료와 식양을 따라 성소와 각종 성구들을 백성으로 하여금 제조하게 한 것이다(출35:∼38:). 이와 같이 예루살렘 성전은 모세가 세운 성막의 식양을 따라 건축한 것이기 때문에 신적인 기원을 가지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다음, 예루살렘 성전은 오직 한 곳에만 세울 수 있다.
예루살렘 성전은 아무 곳에나 여러 개를 세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방 종교의 신전들은 아무 곳에나 편리에 따라 여러 개를 세울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예루살렘 성전은 오직 여호와께서 예비해 놓으신 예루살렘성 안에 오직 하나만 세울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전은 사람의 마음대로 편리에 따라 아무 곳에나 몇 개든지 세워도 되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까 온 세상 어디에나 세우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한 곳에 하나만 세우는 것이다. 그래서 성전은 여러 개가 아니라 오직 하나밖에 없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여로보암 시대에 사마리아로 가서 나라를 세우고 여기 저기에 산당을 세워 여호와께 제사를 드린 사실이 있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제사를 열납하지 아니하시고 책망 하신 것이다(왕상12:25∼13:10). 그것은 그 제사가 예루살렘에 세워진 성전에서 드려진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 스스로의 마음대로 아무 곳에나 지어 놓은 산당에서 드린 것이기 때문이다.
그 다음, 예루살렘 성전은 실제로 구별된 처소이다.
예루살렘 성전은 일반 건축물과는 아주 다르게 거룩한 처소로 구별된 것이다. 이방 종교의 신전은 억지로 거룩히 구별하려고 하지만 실제로 구별된 증표를 볼 수는 없다. 그러나 예루살렘 성전은 실제로 하늘에서 불이 임하고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이 임재하는 처소였다(대하7:1∼3). 다른 처소와는 완전히 구별된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거룩히 구별되지 않은 자가 성전에 접근하면 죽임을 당하는 처소였다(출28:35). 그래서 성전 안에는 아무나 출입이 불가능하며 들어가는 경우에도 신분에 따라 들어갈 수 있는 지역이 각각 다르다. 지성소에는 거룩히 구별된 대제사장만이 거룩한 옷을 입고 거룩한 제물의 피를 가지고 들어가서 여호와를 섬길 수 있고, 성소에는 제사장만이 거룩한 옷을 입고 들어가 여호와를 섬길 수 있으며, 성전 뜰에는 이방인은 들어갈 수 없고 이스라엘 자손이 들어가 제물을 드려 여호와를 섬길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예루살렘 성전은 실제로 거룩히 구별된 처소였다.
이상과 같이 예루살렘 성전은 이방 신전과는 아주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성경에서 말하는 성전은 반드시 그와 같은 특징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러한 특징 가운데 하나라도 결여된다면 성전으로서의 결함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전은 그 규모나 형태에 있어서 신적인 기원을 가지고 있어야 하고, 오직 유일하게 예루살렘 한 곳에만 있어야 하며, 실제로 거룩히 구별된 처소여야 하는 것이다.
Ⅴ. 성전의 용도
예루살렘 성전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 하나님을 잊어버리지 아니하고 기억하게 하셔서 그를 경외하며 섬기게 하시려고 거룩히 구별하여 세우게 하신 처소이다. 그래서 여호와께서는 그곳에 스스로의 이름을 두시고, 이스라엘 백성을 대신한 제사장으로 하여금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는 처소로 사용하게 하셔서 제사를 드릴 때마다 여호와 하나님을 기억하게 하신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은 신이심으로 눈으로 볼 수도 없고 손으로 만질 수도 없다.
그래서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어 그것을 섬기지 못하게 하신 것이다. 그리고 택한 이스라엘 자손에게 여호와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방법을 명하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성전을 짓게 하셔서 그곳에 여호와의 형상이 아닌 이름만을 두시고 그 자손으로 하여금 그곳에 각종 예물을 드리게 하심으로 여호와의 이름을 잊어버리지 아니하고 기억하게 하셔서 그를 경외하며 섬기게 하신 것이다.
먼저, 예루살렘 성전은 여호와께서 스스로의 거룩한 이름을 두시는 처소로 사용되는 곳이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명하실 때, 토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라고 하시면서 "내 이름을 기념케 하는 곳"에서 복을 주신다고 하셨다(출20:24). 다시 말하면,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는 곳이 여호와의 이름을 기억하여 생각하는 곳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모세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여호와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인 그 거하실 곳으로 찾아 나아가서 각종 예물들을 드리라고 하였다(신12:5∼7). 그러니까 여호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처소, 곧 성전이 여호와의 이름을 두시는 곳이다. 여호와께서 처소를 구별하여 스스로의 이름을 두시는 이유는, 이스라엘 자손이 제사장을 통하여 예물을 드릴 때마다 열조와의 언약을 이루어 주시려고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 하나님을 잊어버리지 아니하고 기억하여 경외하며 섬기게 하시려는 것이다(신26:1∼11).
그래서 여호와께서는 다윗왕에게 나단 선지를 통하여 다윗의 몸에서 날 자식이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을 예언하여 주신 것이다(삼하7:10∼13). 그래서 다윗의 아들 솔로몬왕이 나단 선지의 예언대로 성전을 건축하고 여호와께 기도할 때에 그 성전을 가리켜 여호와께서 "내 이름이 거기 있으리라 하신 곳"이라고 표현한 것이다.(왕상8:27∼29)
다음 예루살렘 성전은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 하나님께 각종 예물을 드리는 처소로 사용되는 곳이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나와 언약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 살게 하신 것이다.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 열조에게 언약하신 말씀을 이루어 주시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은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며 섬기기 위하여 그 땅에서 거둔 곡식이나 열매, 그리고 그곳에서 기른 가축 등을 성전으로 가지고 가서 예물로 드리는 것이다. 그리고 그 자손이 범죄했을 경우에나 절기에는 각종 가축이나 곡식을 예물을 드려 제사장을 통하여 여호와께 제사를 드려야 한다(레위기).
그래서 모세는 여호와께서 명하신 대로 처음으로 성막을 세우고 이스라엘 족장들로 하여금 여호와께 예물을 드리게 한 것이다(민7:1∼89). 다윗왕은 여호와의 언약궤를 옮겨다가 자기가 친 장막 가운데 그 예비한 자리에 두고 번제와 화목제를 여호와께 드렸다(삼하6:16∼19). 뿐만 아니라, 다윗왕의 아들 솔로몬왕은 성전을 건축하고 여호와의 언약궤를 다윗성에서 옮겨다가 지성소에 두고 여호와를 찬송하며 성전을 향하여 간구하고 여호와께 화목제 희생을 드리며 절기를 지키고 즐거워하였다(왕상6:∼8:참조). 그리고 에스라 시대에 스룹바벨은 바벨론에서 돌아와 무너진 성전을 재건하여 봉헌식을 거행하고 양을 잡아 유월절을 지켰다.(스6:13∼22)
이상과 같이 예루살렘 성전은 여호와의 이름을 두신 거룩한 처소로서 이스라엘 자손이 각종 예물을 드려 여호와를 섬기는 거룩한 처소로 사용이 된 것이다.
하나님의 이름 '여호와'는 '언약대로 이루시는 자'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여호와'의 이름을 성전에 두시고, 이스라엘 자손이 각종 예물을 성전으로 가지고 가서 드릴 때마다 그 열조에게 언약하신 대로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내신 하나님께서 언약대로 이루시는 여호와이심을 기억하고 그를 경외하며 섬기게 하신 것이다. 이와 같은 목적으로 성전을 세우게 하셔서 그곳에 여호와의 이름을 두시고 이스라엘 자손으로 하여금 각종 예물을 여호와께 드리는 처소로 사용하게 하신 것이다.
Ⅵ. 성전의 복음적 의미
여호와 하나님께서 구약시대에 유용하게 사용하신 성전은 신약시대에 있어서 커다란 복음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구약시대의 성전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으로 하여금 언약대로 이루시는 여호와이심을 잊어 버리지 않고 기억하게 하여 그를 경외하며 섬기게 하시는 방편이라면, 신약시대에는 구약의 언약대로 오신 메시아, 곧 그리스도와 그의 몸 된 교회가 하나님께서 택한 성도로 하여금 언약대로 이루시는 여호와이심을 알게 하여 그를 경외하며 섬기게 하시는 방편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구약시대의 성전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몸 된 교회에 대한 예표 (豫表,type)인 것이다.
먼저, 구약시대의 예루살렘 성전은 구약의 언약대로 오신 메시아, 곧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이다.
예수께서는 예루살렘 성전을 자기 몸으로 말씀하신 비유하여 사실이 있다. 예수께서 유월절에 성전에 올라가셔서 거기서 장사하는 자들을 책망하고 계실 때, 유대인들이 예수께 표적 보이기를 요청한 사실이 있다. 그 때, 예수께서 그들에게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라고 말씀하셨다. 그들은 사십육년 동안 지은 성전을 사흘 동안에 일으킨다는 말씀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은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었다(요2:18∼21).
다시 말하면,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셨다가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실 자기의 몸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다. 그리고 예수께서 스스로를 성전보다 더 큰 이라고 하셨다. 예수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밀밭 사이로 지나다가 시장하여 이삭을 잘라 먹었다. 바리새인들이 그것을 보고 안식일을 범 한다고 비방하였다. 그 때 예수께서 안식일에 성전 안에서 안식을 범하여도 죄가 없는 율법으로 바리새인들을 반박하시며 스스로를 가리켜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마12:1∼6)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다시 말하면, 구약시대에 성전 안에서 안식을 범했어도 죄가 없는 것 같이, 성전보다 더 큰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제자들이 안식일에 이삭을 잘라 먹었어도 죄가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도 요한은 새 하늘과 새 땅에 하늘에서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 성 안에는 하나님과 어린양이 그 성전이라고 하였다(계21:22).
그러므로 구약시대의 성전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예표라 할 수 있다. 구약시대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예루살렘 성전을 통하여 하나님이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이심을 알고 경외하며 섬기게 되듯이, 신약시대에는 택함을 받은 성도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이 죄의 권세에서 건져 주신 여호와이심을 알고 경외하며 섬기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루살렘 성전은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임이 분명하다.
다음 구약시대의 예루살렘 성전은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신령한 신약교회의 예표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지체인 택함을 입은 성도가 서로 연합하여 세워진 교회가 바로 신령한 참 성전이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신령한 참 성전이 되시기 때문에 그의 지체인 택함을 입은 성도도 신령한 참 성전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머리가 되시고 택함을 입은 성도로 하여금 지체가 되게 하여 한 몸을 이루어 참 성전이 되게 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의 손으로 지은 교회당 건물은 성전이 아니다. 사도 바울은 신약교회를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고 하였다. 그리고 모퉁이 돌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합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성도가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간다고 하였다(엡2:20∼22). 뿐만 아니라,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를 가리켜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하였다(고전3:16∼17,6:19∼20,고후6:16).
그러므로 구약시대의 성전은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에 대한 예표라고 할 수 있다. 구약시대는 이스라엘 백성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정결한 짐승을 제물로 잡아 여호와를 섬겼으나, 신약시대에는 택함을 받은 성도가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어 각자 받은 은사에 따라 산 제사, 곧 영적 예배를 드려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다(롬12:1∼8). 그러므로 예루살렘 성전은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신약교회의 예표임이 분명하다.
이상과 같이 예루살렘 성전은 신령한 참 성전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몸 된 교회의 예표로서의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구약시대의 예루살렘 성전은 신약시대에 예수 그리스도가 오실 것과 그의 몸 된 교회가 세워질 것에 대한 예언적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Ⅶ. 맺는 말
지금까지 성전에 대한 언어의 뜻과 그 역사 그리고 성전의 특징 및 그 용도를 비롯하여 복음적 의미를 알아보았다. 그 결과로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사항을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첫째는, 구약시대 예루살렘 성전은 예수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지상에서 없어지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예루살렘 성전이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라는 사실이 분명히 말해 준다. 예표는 실체가 나타나면 무의미해 지는 것이며, 무의미한 것은 없어져야 하는 것이다. 성전의 지성소에 두는 언약궤는 이미 바벨론 포로시대에 없어져서 그 후에 스룹바벨이 재건한 성전 안에는 언약궤를 두지 못했다. 예루살렘 성전이 멸망하기 이전에 선지자 예레미야는 장차 언약궤를 다시 말하거나 생각하거나 기억하거나 찾거나 또는 만들거나 하지 아니할 것을 예언하였다(렘3:16).
이는 언약궤가 새 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무의미해 질 것을 예언한 것이다. 따라서 언약궤를 보존하는 성전 역시 무의미해 진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사람의 손으로 지은 예루살렘 성전은 없어진 것이다.
둘째는, 신약시대 여러 나라와 지방에 세워진 교회당 건축물은 성전이 될 수가 없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신약시대의 교회당 건축물이 예루살렘 성전이 가지고 있었던 특징을 하나도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이 분명히 말해 준다. 신약시대에 여기 저기 세워진 웅장하고 화려한 교회당 건축물은 예루살렘 성전이 가지고 있었던 특징을 하나도 가지고 있지 못하다.
예루살렘 성전은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신적인 기원을 가지고 있었고, 예루살렘성의 지정된 장소에 오직 하나만 세워져 있었으며, 실제로 거룩히 구별된 처소로 원래대로 아무나 출입이 불가능한 곳이었다.
그러나 신약시대의 교회당 건축물, 곧 소위 성전이라고 하는 것들은 모두가 예루살렘 성전이 가지고 있었던 특징이 한 가지도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의 손으로 지은 교회 건물은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가르치며 성도가 서로 교제하기 위해 모이는 교육관이나 회당은 될지언정 성전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셋째는, 기독교는 성전에서 제사의 의미를 담은 예배 의식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것은 신약시대는 성전이 없어졌다는 사실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스스로가 영원한 제사장과 제물과 성전이 되셔서 영원한 제사를 드리셨다는 사실이 분명히 말해 준다(히9:11∼14). 그런데도 신약교회가 매 주일 아침이면 대예배라는 이름으로 신자들이 소위 성전이라고 칭하는 웅장하고 화려한 건물에 모여 미리 준비된 온갖 다양한 프로그램에 따라 예배, 곧 제사를 드린다. 목사가 제사장이 되어 교회당건물을 성전으로 삼고 성도가 드리는 연보를 제물로 삼아 그럴듯한 제사를 드리는 시늉을 한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제사를 무색케 한다.
이는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천주교에서 드리는 미사에 대한 잘못된 관행을 본받는 행위인 것이다. 이러한 무속적인 종교 행위는 성경에 대한 무지에서 오는 결과라 하겠다. 그러므로 현대 교회는 무속적 종교 의식을 탈피하고 성경을 자세히 가르쳐 진리를 전수하고 수호하는 순수한 기독교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는 교회로 탈바꿈 하기 위한 궤도 수정이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우리가 그의 말을 들으니 손으로 지은 이 성전을 내가 헐고 손으로 짓지 아니한 다른 성전을 사흘에 지으리라 하더라” (막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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