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신학! 신약개론!!

[스크랩] 바울의 생애와 사상

하나님아들 2014. 3. 25. 18:46

 

 

 

 

바울의 생애와 사상  

 

 

 

과목: 신약신학    교수:정창교수님    학년:신대원3    학번:20082037    이름:오선균    날짜:11.16

「신약성서신학」. 한스콘첼만, 안드레이스 린데만/박두환 역

바울 신학Ⅰ. 바울의 생애와 사상 _ 16장 학술적인 제 문제

Ⅰ.자료

  바울신학의 객관적 이해와 서술을 위해 자료로 사용될 수 있는 것은 바울서신들뿐이다. 사도행전이 자료로서 사용될 수 없는 것은 거기에 나타나는 바울의 선포의 상이 진정한 것으로 간주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방법론적으로 볼 때, 조금도 이의의 여지가 없이 진정성을 평가받을 수 있는 서신들만이 사용되어야 한다. 즉 로마서, 고린도전서, 고린도후서, 갈라디아서, 빌립보서, 데살로니가전서, 빌레몬서가 이용될 수 있다. (가끔 골로새서와 데살로니가후서도 진정성이 있는 것으로 간주된다. 골로새서에 문헌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에베소서의 진정성 문제는 훨씬 더 심한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대게 목회서신들은 그 진정성이 인정되지 않고 있다. 목회서신들은 순수한 바울서신들에 나타난 사상들을 그들 나름대로 변형시킨 것이다. 따라서 특수한 위치를 차지한다. 그러므로 정확성을 기하기 위해서 우선 이 서신들을 자료에서 제외한다)

 

Ⅱ.문제

  바울의 신학을 그의 인격을 토대로 하여 심리학적으로 설명하려는 것은 큰 잘못일 것이다. 왜냐하면 바울의 개성은 그의 글을 통해서만 나타내기 때문이다. 과거 바울신학 연구의 어떤 단계에서는, 그의 신학 배후에 있는 “종교”를 찾으려 하였다. 그러나 바울의 견해에 의하면 신학은 어떤 사물의 표면이 아니라, 그 사물 자체를 서술한 것이다.

 

Ⅲ.바울 연구사

  바울에 대한 해석은 근세 신학사의 여러 국면을 반영해 준다. 역사적으로 여러 신학적 문제가 대두될 때마다 그 문제와 관련한 바울의 사상도 논의되었던 것을 알 수 있다.

루터(M. Luther)

의로움에 대한 바울의 개념이 법정적인 의미를 가졌다는 사실을 인정하였으며, 의인은 인간의 전존재에 대한 심판을 의미한다고 보았다.

프로테스탄트 정통주의

바울의 법정적인 의미의 개념을 축소시켰다. 법정적인 의미를 고수하기는 하지만, 이해하는 방식이 다르다. 즉 나는 죄인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구속적 업적을 보시어 마치 내가 의로운 것처럼 간주하신다는 것이다.

바우르(F.C. Baur)

헤겔의 기본 개념들을 가지고 바울을 해석하였다. 역사와 사상은 정(These)과 반(Antithese)의 대립과 갈등 그리고 이 대립은 합(Synthese)으로 발전된다. 이런 변증법적인 발전 도식을 통해 바우르는 전체로서의 원시 그리스도교의 발전과정을 해석한다. 그는 이것을 통해 바울신학의 중심 내용을 이해한다.

  종교개혁 이래, 학자들은 믿음으로만 의롭게 된다는 교리가 신약성서 교리의 중심이며, 따라서 또한 바울신학의 중심이라는 것을 확신하였다. 루터는 칭의론을 다음과 같이 피력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죄인들을 의롭다고 선언하신다. 그러므로 사람은 의로워지며 그는 의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겉모양이야 어떻든 간에, 하나님 앞에서 의로우며 또 의롭게 된다는 것이다. 그 메시지를 듣는 자가 주의를 기울이는 것은 자기 자신의 상태가 아니라, 그에게 영향을 미치도록 하나님께서 전달해 주시는 말씀, 즉 “너는 의롭다”고 전해 주시는 하나님의 전달 내용 자체이다. 그러므로 실제에 있어서 그는 전과 같이 그냥 죄인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의 의는 그를 인정하는 낳선 의미다. 그럼으로 의롭다 함을 얻은 사람들이라도 자기 자신의 공로를 내세울 수 없으며, 속속들이 의롭다고 말할 수도 없다. 그는 다만 믿을 뿐이다.("그는 의인인 동시에 죄인인 것이다"[simul iustus, simul peccator])

  바우르 이후에 사람들은 이러한 바울적인 개념들을 좀더 정확하게 정의하려고 시도했으나, 그것이 동질적인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즉 법률적 개념들(율법, 의, 죄 등)과 함께 영과 육, 생명과 죽음 같은 아주 다른 종류의 술어들이 나타난다. 여기서 얻은 결론은, 두 개의 다른 구속의 교리들이 바울의 글 속에 병존한다는 것이다. 하나는 법률적인 구속론(die juridische Erlosungslehre)이다. 즉 인간은 율법을 성취하지 못한 죄인들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구원 행위를 통해 그들을 속죄해 주셨다. 즉 그리스도의 구원 행위를 통하여 그들은 구속을 받았다. 구속에 대한 둘째 교리의 성격에 대해서는 더 많은 논란이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거의 육체적인 술어들로 묘사한다. 즉 사람은 육체를 입고 산다. 그러다가 영을 그 육체에서 쏟아냄으로써 구속을 받는다고 한다. 또는 갈라디아서 5장 25절과 로마서 8장 9절 이하에 따라 육체적이며 윤리적인(physisch-mystisch)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다. 바울은 영 안에서 걸어간다고 지적한다. 또 어떤 사람들도 구속을 신비적인 것(그리스도 안에 있는 존재) 혹은 신비적이며 윤리적인 것이라고 묘사한다. 이러한 사상 그룹에 있어서는 구속받은 자들의 새 생활이 묘사된다.

H. Gunkel,

H. Weinel

헬레니즘과 무엇보다도 그 영적 성격에 관하여 연구, 또 한편으로는 유대 사상, 그중에서도 특히 묵시 사상이 연구되었다.

R. Reitzenstein,

W. Bousset

바울 해석의 형태 1)헬라적인 것 - 바울은 영적이며(고후 3:17), 신비적이며, 영지주의적이다.

A. Schweitzer

바울 해석의 형태 2)유대적인 것 - 헬라적 해석과 정면으로 대립하여 바울의 사상을 전적으로 유대교의 묵시 사상에서 나온 것이라고 주장했다. 역사의 묵시론적 윤관과 구조 속에서 예수가 출현했고 또 장차 출현해야 한다고 묘사함으로서 문제들을 해결하였다.

W. Wrede

바울이 본질적으로 신학자였다고 주장했다.

바울의 종교가 그의 신학과 분리될 수는 없었다.

  연구의 다음 단계는 바울의 개념들의 기원에 대한 문제이다. 이것은 종교사학파에 의해서 조직적으로 수행되었다. 예컨대 사람들은 바울의 이원론이 플라톤과 관련된 것으로 여겼다. 그러나 이제는 헬레니즘 시대에 철학과 종교의 스타일이 변화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그 결과로, 필요한 중간 단계들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졌다.

 

  종교사학파는 바울의 상황을 종교사적인 맥락에서 밝히고, 개념과 사상들의 의미를 밝히는 동시에 종말론의 중요성을 인정했다는 점에서 공헌하였다고 하겠다. 그러나 역사적인 유래를 규명한다고 해서 참된 이해에 도달한다고 할 수는 없다. 즉 다음과 같은 문제가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다. 바울이 말하는 바가 무엇인가? 바울이 말하는 여러 사상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는가? 그가 목표하는 바는 무엇인가? 예컨대, 바울이 주님과 영을 동일시하는 그 의미는 무엇인가? 바르트(K. Barth)가 문제 제기 하였다.1)

바르트(k. Barth)

그는 종교사적인 연구 결과들에 대해서 이를 제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역사적 통찰을 넘어서서 바울의 메시지를 묻는다. 바울 해석의 주체는 고정된 신학 주제들에 대한 바울의 견해를 넘어서서 본문에서 다루어지는 대상과 독자들과의 만남이다.

불트만

(R. Bultmann)

믿음의 개념을 기초로 하여 바울의 사상을 발전시킨다. 그는 의인의 교리를 다른 여러 교리 중의 하나라고 보지 않을뿐더러 또한 바울의 중심적 교리라고도 말하지 않는다. 다만 인간에 대한 한 가지 설명이라고 말한다.(바르트에 가까움)

셰프스

(H. J. Schoeps)

불트만의 제안을 원칙적으로 그대로 따르고 있다. 셰프스는 다른 신학자들과는 달리 독립적인 종교 역사가의 입장에서 바울의 신비를 이해하고자 했다. 유대인 바울은 그의 율법 개념에 있어서 유대주의의 본질을 오해하였다. 헬라적 유대주의는 율법에 대한 참된 이해를 상실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헬라적 유대주의에서는 그러한 사상이 어떤 율법주의적인 양상으로 바뀌고 거기에 파묻혀 버렀다.

 

  가장 최근의 바울 연구에서 근본적인 새로운 견해들은 찾아 볼 수 없다. 특히 때에 따라 사도의 신학적 발전 단계의 “마지막” 가르침으로 묘사되는 정의에 대한 가르침은 예전처럼 지금까지 논쟁이 되고 있다. 부분적으로 브레데(W. Wrede)와의 관련 하에 바울을 조직적으로 이해하기보다는 오히려 그의 “발전”의 개별 단계들로부터 그를 이해하려고 시도된다.2) 이로써 무엇보다도 바울서신의 연대기에 관련된 매우 복잡한 개별적인 문제들이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 밖에 바울에게서 개념 사용의 변화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데살로니가전서로부터 로마서까지 눈에 보이는 본질적인 연속성이 존재하고 있는지 질문되어 질 수 있다.

  여전히 논쟁적인 것은 유대교, 특히 그의 율법 이해의 신학적인 정당성에 대한 바울의 입장에 관련된 질문이다.3) 여기서 바울이 토라의 존재를 “잘못 이해했다”는 비난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그에 관련된 토론에서 바울이 성서적인(포로기 이전) 율법 이해에 대해 토론하거나 현재의 현대적인 문제점들(그는 바리새인들의 율법에 대한 연구와 이해에 대해 아마도 매우 잘 알고 있었던 동시대의 유대교와 대립하고 있다)에 대해 토론하지 않도록 고려해야만 한다.

  바울의 신학에서 묵시의 기능은 논쟁의 대상이 된다. 몇몇 학자들은 묵시에 대한 사고의 출발점에서 바울신학의 선교사로서 바울의 자기 이해를 위한 해결의 열쇠를 얻는다. 또 다른 학자들은 묵시적인 요소를 특별한 본질적인 중요성을 지나지 않는 단순한 언어 흔적으로 본다.

  바울신학의 문제들은 이미 전제된 입장에서부터 해결되지 않고 단지 세밀한 본문 분석을 근거로 해서만 해결될 수 있다.

 

Ⅳ. 표현의 문제

  바울신학을 묘사하는 데 있어서 생기는 어려움은 우선 자료들의 상태에서 발생한다. 바울신학은 기회 서간으로 간주되는 그의 글에서 찾을 수 밖에 없는데 거기에서 구체적 문제들은 대게 간접적으로 표시된다.

  비록 제한적일지라도 바울의 중심 신학에 관한 상당히 광범위한 주제들을 소개하는 개관이 로마서에서 파악될 수 있다. 여기서 믿음을 통한 의에 대한 유대교와의 간접적인 토론이 문제시된다. 그러나 우리는 바울의 전체 신학을 다루고자 할 때 단순히 로마서를 중심 토대로 삼을 수 없으며 그의 진술들은 필요에 따라사 다른 서신에서 보충될 수 있다. 왜냐하면 로마서가 바울신학을 관점에 따라 기술하고 있지 “교리적인 윤곽”을 제공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결론은 단순히 역사적인 우연성으로부터 해방될 수 없다. 그것은 심리학적인 술어로 설명될 수 있는 그 어떤 것이 아니고 바울의 상황에 의해서 결정된 문제이다. 그의 신학은 어떤 이론적인 개요가 아니고 개별적인 주제를 다룰 때에 항상 구원 사건의 총체적 이해가 관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이런 특징들을 두 단계로 이루어진 하나의 도식으로 이해될 수 있다. 1)“구원사건”(Heilsgeschehen)과 2)“그것이 우리와 가지는 관계?” 또는 기본 개념에 대한 집중을 통해서도 마찬가지다. “우리와 관련된 구원 사건.” 우리는 믿어야 할 교리를 만들어 신앙을 객관화하려는 괴기한 유혹과 주관적인 인식과 자기 성찰을 통한 신앙의 주관화의 위험을 어떻게 피할 것인가? 만약 사람들이 신앙의 내용, 즉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선사되는 낯선 의로부터 출발한다면 문제는 아주 명료해진다. 이 전달은 경험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다만 듣고 믿게 될 수 있다.

 

17장 바울의 역사적 위치

Ⅰ.바울의 신학적 위치

  바울은 이미 그리스도교의 전통 속에 있으며, 거기에서 그의 신학을 위한 많은 자료들을 수용하였다. 문제는 그가 무엇을 발견했으며 그것들을 어떻게 발전시켰느냐 하는 것이다. 이런 질문들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20세기로 접어들 무렵 그리스도교의 진리성에 대한 토론의 쟁점을 이루었던 제목인 “예수와 바울”에서 살펴볼 수 있다. 과거의 바리새인이었던 바울이 예수의 단순한 교훈을 유대교적 문체를 띤 복잡한 신학으로 만들었다고 보는 견해가 오랫동안 지배했다. 게바와 바울은 예수의 역사적 인성을 무시하고 신화적 인물로 대치하였다.(“Christus" als Kyrios) 이러한 변형이 일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바울에 의해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그것은 이미 바울이 개종하기 전에 발생했다. 바울은 그리스도교를 이미 고양되신 주 예수에 대한 신앙으로 배웠다. 그러므로 그의 공헌은 이런 신앙을 신학적으로 생각했다는 데 있다. 그는 그리스도론이나 성례전 교리를 창안한 것이 아니라 이미 주어진 것들을 새롭게 재해석한다. 원시 교단과 헬레니즘 교단이 있었다는 것, 그중에서도 특히 헬레니즘 교단이 존재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바울에게서 발견되는 유대 사상은 주로 헬라적 디아스포라 유대교 사상들이다. 신관(롬 1장), 윤리의 기초(롬 2장), 성서 해석법(고전 10장), 70인역 사용 등. 바울이 왜 예수와 그의 역사적 활동에 대해 언급하지 않으며 공관복음 자료에서 단지 예수의 몇 마디의 말씀을 끌어오는지는 헬레니즘 교단과의 관계성을 통해 이해될 수 있다. 바울에서 중요한 것은 다만 예수의 구속적 과업, 즉 십자가와 부활뿐이었다. 그는 예수의 설교를 목격한 바 없으며 단지 오늘의 예수의 위치와 교회의 설립을 본 것이다. 이렇게 해서 고양되신 분에 대한 신앙은 구원의 유일한 방법으로 강조되었으며 동시에 구원의 길로서의 율법은 단호히 거부되었다.

 

Ⅱ.바울의 소명이 갖는 의미

  바울의 신학을 그의 개종 경험, 즉 개인적 경험에서부터 시작하려는 시도가 계속되어 왔다. 바울 자신도 자신의 복음은 그에게 계시된 것이라고 언명하고 있다.(갈 1:11 이하). 그러나 그것을 어떤 뜻으로 이해해야 할 것인가? 우리가 그 질문을 심리학적인 입장에서가 아니라 종교사학적인 입장에서 다룰 때에 비로소 설명될 수 있다. 자료가 없기 때문에 회심 경험을 역사적으로 재구성하려는 시도는 불가능하다. 바울이 환상을 보았지만 그것들을 개인적으로 이용하지는 않았던 것처럼 자신의 개종의 내적 사건에 대해서도 신학적 내용을 말하는 것일 뿐, 그 사건 자체를 서술하는 일은 결코 하지 않는다. 그것은 곧 구원이 이방인들에게 선포되는 임무에 관한 것이다.

  바울 자신의 진술들은 간단하다. 1.빌립소서 3장 4~9절: 바울은 자기의 개종을 통해서 어떤 내적인 비참함을 버린 것이 아니라 그의 자랑을 버렸다고 말한다. 율법성에 따라 나는 비난받을 것이 없다. 그러나 “내게 어떤 이익이 있었든지, 나는 그것을 다 해로 여겼다.” 어떻게 이런 일이 그에게 일어날 수 있었을까? 2.갈라디아서 1장 11~12절에서 그 대답이 주어진다. 바울은 여기서 증명을 통해 사도로서의 자기 권위를 위해 싸우며 자신의 복음은 사람에 의한 것이 아니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내가 모태에 있을 때부터 나를 따로 세우시고 은혜로 불러주신 이가 기쁜 마음으로 이방 사람들 가운데서 그 아드님의 복음을 전파하게 하시려고 내게 아드님을 계시해 주셨습니다. 그때 나는 사람들과 의논하지 않았습니다.” 이 말은 바울이 순전히 사변을 통해 그의 교훈을 고안해 냈음을 의미하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물론 바울은 개종 이전부터 그리스도교의 교훈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박해자가 되었던 것이 아닌가. 바울이 십자가를 못마땅하게 여겼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그것은 사실이다. 그가 이런 율법에서 자유롭게(또는 적어도 율법 비판적으로) 그리스도교를 박해하는 동안 이제 예수는 부활하신 주님으로서 예수는 그에게 나타난다. 다시 말하면 주님은 스스로 그의 현현을 통해서 율법의 마지막을 구원의 길로 설명한다. 그것은 오직 믿음을 통해서 가능하다.

  사실 바울은 “자기 조상의 전승들”과 “율법”에 대한 열성 때문에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했다. 바울은 이미 율법으로부터 자유를 신앙에서 이끌어낸 유대계 그리스도를 경험했어야만 했다. 이것이 곧 입아인들에 대한 선교를 가능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구체적으로 실현시키도록 했다. 주님의 우주적 통치는 전세계에 알려야만 하는 것이다. 율법은 하나님의 뜻하신 구원이 방도가 아니라는 것을 통찰하고서도 왜 바울이 율법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주장했는지 심리학적 해석으로는 설명될 수 없다. 바울의 개종으로부터 그의 신학에 이르는 과정은 그리스도 안에서 산다는 신비주의 우리를 이끌어 가는 것이 아니라, “오직 은혜로 인한”, “오직 믿음으로 인한”선택을 심사숙고하게 한다. 더 나아가 그것은 자신의 의의 종말을 의미하는 믿음으로 얻는 의에 이르게 한다.

 

Ⅲ.연대기적인 문제

갈라디아서 1장 이하에 나오는 연대기에 따르면 바울은 “아라비아”에서 그의 선교 활동을 시작하여 그 후에 다메섹으로 갔으며 “3년 후”엔 짧은 기간 동안(14일) 예루살렘에 체류한다. 그의 이방 선교와 그의 사도직이 승인되었던 사도 회의에 참석하기 전에(갈 2:1-10; 비교. 행 15장) 그는 시리아와 길리기아에서(이것은 일반적으로 사도행전 14장 이하에 나오는 1차 전도 여행과 일치한다) 10년이 넘도록 선교 활동을 해왔다. 바울서신에서 확인할 수 있는 스페인과 유럽 선교는 그 다음에 비로소 이루어졌다. 이런 연대기를 토대로 우리는 바울서신이 예루살렘 회의와 유럽 선교의 시작 이후, 즉 약 50/50년(데살로니가 전서는 기원후 51년에 고린도에서 기록됨) 이후에 기록되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바울의 친서들은 상대적으로 이른 시기에 기록되었을 것이다.(로마서는 고린도에서 56년경에 기록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신학과 선교 작업의 후기 단계가 전적으로 반영되어 있을 것이다. 갈라디아서 1장에 나오는 빈약한 진술을 제외하면 우리는 ‘사도회의“ 이전의 신빙성 있는 상황을 경험할 수 없다. 만약 뤼데만(G. Ludemann)의 주장에 따른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바울은 사도 회의 이전에 이미 유럽에서 선교 활동을 하였으며 41년경에 그가 고린도에서 첫 번째로 체류할 때 데살로니가전서를 기록하였다. 바울은 이것을 갈라디아서 1장 이하에서 유럽 초기 선교로 언급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그가 단지 바울의 활동을 예루살렘과 직접적으로 관련시키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이 이 주장이 타당할 경우 바울신학을 서술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1)데살로니가전서는 바울의 다른 편지들과 현저한 시간적 차이를 갖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 책은 전적으로 바울의 초기 신학 사상을 위한 증거로 구별되어야 한다. 2)바울이 마게도니아와 아가야에서 세웠던 교회들은 역사적으로 보다 초기의 것으로 간주될 수 있다. 빌립보서와 고린도전후서에서 인용된 많은 형식문들(빌립보서 찬가를 포함하여)은 결코 바울 ”이전“ 이나 ”동시대“에 형성된 것이 아니라 직간접적으로 바울의 영향으로 소급된다. 그러나 바울이 단지 형식적인 이유 때문에 갈라디아서에 유럽에서의 선교 활동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는 견해는 거의 설득력이 없다. 왜냐하면 예루살렘과 전적으로 독립된 유럽 선교에 대한 암시가 갈라디아서에 나오는 갈등에 관한 맥락에서 바울에게 매우 유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바울서선이 5년에서 6년 내의 기간 동안 기록되었다는 사실이 승인될 수 있다.

 

제18장 바울과 바울 이전 전승

Ⅰ.신앙고백 형식문

  바울서신, 특히 로마서에는 신앙고백을 위한 형식문들이 내포되어 있다(7장을 보라) 이런 형식문의 대부분은 그리스도론적인 항목이 포함되어 있다. 신앙고백의 내용은 전체적인 종교적 설득이 아닌 새로운 것이다: 메시아이신 예수, 구원 사건으로서의 그의 죽음, 하나님에 의한 그의 부활, 이런 신앙의 전제가 되는 하나님에 대한 신앙은 유대인들에게는 너무나 자명하기 때문에 신앙고백에 포함되지 않는다. 원시 교회의 이해에 의하면 그리스도교는 독자적인 새로운 하나님 사상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분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시며 예수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리셨다. 이방 선교에서는 물론 하나님에 관해 명확히 교육되어야만 한다. 하나님은 유대교의 이방 선교 설교와 유사한 방법으로 묘사된다.4) 그래서 유일하신 하나님에 대한 신앙고백은 신조로 수용된다. 그것은 2행으로 구성된 형식문을 이룬다: 한 분이신 아버지 하나님..... 한 분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고전 8:6; 비교. 딤전 6:13). 여기서 창조주로서의 하나님의 본질이 강조되는데, 이것은 특히 영지주의적인 사상과의 투쟁에서 기원하는 한 가지 관점이다.

  형식화된 케리그마의 지속적인 확대는 두가지 방향으로 이루어진다. 한편으로 3행으로 된 신앙고백문의 발전이고(마 28:19; 비교. 고후 13:13), 다른 한편으로는 형식들과 내용에 포함된 부록에서 그리스도론적인 조항의 분류된다. 확장된 틀로 이루어진 한 가지 유형은 에베소서 4장 4절 이하(고전 8:6과 함께)에서 나타난다.

 

“몸도 하나요, 성령도 하나요, 주님도 하나요,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요

 하나님도 한 분이시며 만유의 아버지이십니다“

 

  고정된 형식에 담긴 그리스도론적인 부록으로 구성된 다른 유형은 데살로니가전서 1장 9절 이하에서 파악될 수 있다. 여기서 신앙고백문의 틀은 “살아 계시고 참된 하나님”에 관한 내용과 “하늘로부터 오는 그의 아들”에 대한 기대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기대들이 뒤섞여 있음을 볼 수 있다.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리셨다. 예수는 장차 닥쳐올 진노로부터 우리를 건져주실 것이다.”

 

로마 시대(기원후 150년)와서 한 가지 확실한 결론이 주어지게 되었다.5)

 

"나는 믿는다.

      전능하신 한 분 아버지 하나님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A) 그의 독생하신 아들과

B) 우리 주님을

 (a) 성령과 동정녀 마리아를 통해 출생하신 분을

 (b)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달리신 분을

 

사흘만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시어

하늘들로 승천하시어

아버지 보좌에 앉아계신 분을

그분은 창차 산자와 죽은자들을 심판하시기 위해 오실 것이다.

 

그리고

    거룩한 성령과

        거룩한 교회와

        죄의 용서와

        육체의 부활을“

 

  Ⅱ.바울의 전승 작업

  바울 이전의 신앙형식문을 재구성해 보면 바울의 해석 부분이 명확히 드러난다. 그것들은 바울이 어떤 방식으로 그 전승을 다루었는지를 보여주기 때문에 좀더 면밀하게 조사해 볼 필요가 있다.

 

1) 데살로니가전서 4장 13절 이하. 여기서 바울은 공동체로부터 이미 죽은 사람도 생명에도 들어갈 수 있느냐 하는 질문을 받는다. 바울은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부활하셨다(14a절)는 신조를 인용함으로써 그에 대답한다. 여기서 바울은 예수가 부활하신 사건에 대해서는 입증할 필요가 없다. 그는 다만 그 사실을 신앙의 조항으로 전제하고 있다. 그리고 나서 바울은 주님의 말씀(16절)을 인용하고 종말 사건들에 관한 교리문답적인 본문을 덧붙인다(5:1 이하). 그는 여기서 예수 재림의 시기에 대한 문제를 세상에서 우리는 어떤 자격을 가진 자들이냐 하는 신자의 규정 문제로 전환시킨다: 빛과 낮의 아들들. 끝으로 그는 5장 9-10절에서 신조로 되돌아 간다. 이러한 묘사를 통해서 바울이 밝혀주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신자가 그 구원 사건과의 관련에서 자기의 신분이 무엇인지 파악했을 때 비로소 그 신조가 이해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묵시적인 염려가 사라지게 되며(4:18) 그 시기에 관한 질문도 극복된다(5:11). 우리들의 육체적인 상태는 그 구원 사건에 있어서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우리의 존재는 그리스도에 의해서 결정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깨든지 자든지 그리스도와 함께 살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여기에 “.....이든지 .....이든지”는 우리의 세계관의 문제가 대수롭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비교. 고후 5:9; 빌 1:20)

2) 고린도전서 15장. 여기서도 같은 종류의 논법이 전개도어 있다. 먼저 신조가 인용되고 있으며(3-5절), 그 다음에 그 결과들이 언급된다.(12-19절). 그리스도가 부활하셨으니, 따라서 우리의 미래도 결정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그 희망은 어떤 사변적이고 우주론적이거나 혹은 심리학적 이해가 아닌 그리스도론에 기초하고 있다.

3) 고린도전서 8장 1-6절. 여기서는 바울은 “우리는 다 지식이 있다”(1절)는 고린도 교인들의 주장과 연결되어 있음을 시사한다. 고린도 교회 교인들은 이런 주장에서 하나의 특정된 세계관을 이끌어내고 있다(8:7 이하). 여기서 바울은 신조를 사용하면서 그들을 비평한다(6절). 그는 지식과 사랑을 대조시키고 하나님에 대한 객관적인 지식이 결코 참된 지식이 아니라는 것을 밝힌다.(1b-3절). 하나님에 관한 질문은 세계관의 문제와는 별개의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한 하나님”(6절) 이시다. 역으로 이방 신들에 대한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문제는(고린도교인들의 질문) 신들이 존재하느냐 하지 않느냐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권세와 신을 어떻게 규정하느나에 있다(5절). 신들의 존재에 관해서 합리적인 논의를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바울의 관심은 다만 이방 신들이 어떻게 해서 신앙을 통하여 무력하게 되었는가를 말하고 있다.

4) 바울이 어떻게 전승을 자기 것으로 만들었는가 하는 것은 로마서에서 가장 잘 나타난다. 로마서 1장 3-4절에서 바울은 자기의 성직에 신조를 연관시킨다. 로마서 3장 24-26절에서 그는 하나님의 의(25, 26a절)에 관한 신조 형식문을 디카이오쉬네 테우의 특별한 의미를 통해 해석한다(26b, 28절). 바울은 5-8장에 나타나는 포괄적인 실존 분석을 위한 출발점으로서 로마서 4장 25절에서 신앙고백문을 인용한다. 그것은 로마서 10장 9절 이하에서 신앙, 설교, 의와 관련되어 해석되고 14장 9절에서는 실존 해석을 위한 토대로 사용된다.

 

 

 

 

  

 


1) K. Barth. The Epistle to the Romans, 1919; 2. Aufl. 1922 제3판의 중요한 서두는 서평(특별히 R. Bultmann의 서평)과 함께 몰트만이 편집한 책(J. Moltmann, Hg. Anfange der dialektischen Theologie I, ThB 17, 1962, 105-152에 포함)

2) Vgl. G. Strecker. Befreiung und Rechtfertihung. Zur Stellung der Rechtfertigungs - lehre in der Theologie des Paulus, in : Eschaton und Historie, 229-259

3) Vgl. zur Problematik 민 ganzer G. Klein, Art. Gesetz Ⅲ. TRE 13, 58-75 (bes. 64-72).

4) Bultmann NT 68ff.

5) K. Holl, GAufs Ⅱ, 115ff,; E. v. Dobschuz, Das Apostolicum, 1932.

 

 

 

 

 

 

 

출처 : 개혁하는 교회
글쓴이 : 청지기(K.M.Y)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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