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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레위기 26장의 축복과 저주에 관한 설교 자료

하나님아들 2014. 3. 12. 19:12

‘레’ 제 26 장 축복과 저주, 약속과 경고

 

예수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축복 가운데 살아야 하고 하나님의 보장된 약속 가운데 살아야 하는데 이것은 기도를 많이 하거나 축복을 달라고 해서 되어 지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미 축복과 저주의 길, 약속과 경고의 길을 우리 앞에 놓아 두셨다고 말씀하십니다. 특별히 레위기 26장은 우리가 많이 읽는 신명기 28장과 그 내용이 아주 흡사합니다. 레위기 26장의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생활을 시작 하게 될 때에 주신 말씀이고, 신명기 28장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 생활이 거의 끝났을 때에 같은 모세를 통해서 주신 말씀이지만 레위기 26장을 받았던 사람들은 출애굽 했던 사람이고, 신명기 28장의 말씀을 받았던 사람들은 광야에서 새로 태어났던 신세대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참으로 아이러니 합니다. 같은 말씀인데 처음에 들었던 사람들은 거의 저주로 인해서 땅에서 사라지게 되고 다시 그 말씀을 들은 사람들은 새로 출발한 신세대들을 생각할 때에 모세가 이 말씀을 신명기 28장에서 모세에게 주셨을 때에는 그 감회가 새로웠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축복의 길과 저주의 길이 정해 져 있습니다.

아무리 복 받기를 원해도 하나님이 저주하겠다고 하는 그 길을 자초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축복 받으려고 몸부림을 쳐도 저주를 받게 되어있습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것보다도 먼저 말씀을 알아야 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정해 놓은 길을 알고 그 길을 가는데 필요한 힘을 얻기 위해서 기도를 하는 것이지~ 하나님의 길을 무시하고 저주의 길을 가면서 축복을 달라고 요청하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알고 주님의 약속해 놓으신 축복의 길이 어느 것인가? 잘 발견해서 그 길을 걷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레위기 26장의 구조를 보면

1. 1절 - 2절에서 율법의 대 강령 - 큰 율법의 줄기를 가르쳐 주는 말씀입니다.

1절 금지된 우상들 - 목상, 주상, 석상

2절 안식일 성수

“성소 공경”-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서 세워놓은 예루살렘에 있는 성소를 공 경하는 이 세 가지가 전체 율법의 중요한 핵심을 이루고 있습니다.

2. 3절- 13절 순종과 축복 - 순종과 축복의 길을 가르쳐 줍니다.

3절 하나님의 요구(축복의 조건) - 하나님의 규례와 계명을 준행하는 것

a.4절-5절 첫번째 축복 - 비와 풍성한 소산물과 안전

우리나라 같은 경우야 비가 내리는 것이 큰 문제는 아닙니다만 오히려 가뭄 때문에 어 려운 일을 많이 당합니다. 하늘에서 비를 내려주시지 않은 모든 농작물이 다 고갈 되어 버릴 위기 앞에 설 때마다 이 비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게 됩니다. 특히 이 팔레스타인 지역은 1년에 기후가 ‘건기와 우기’가 있는데 쉽게 말해서 두 차례 밖에 비가 오지 않습니다.

봄에 한 번 가을에 한 번 정도 비가 옮으로 1년을 삽니다.

소위 슬라브 집처럼 물을 받을 수 있도록 이스라엘의 집들은 지붕이 평평하게 되어 있습니다. 한 방울의 물이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나무 밑에도 물을 받을 수 있도록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하늘에서 내린 빗물을 한 방울도 놓치지 않으려고 애를 씁니다. 만약 그 우기 때 비가 오지 않으면 1년 농사는 망치게 됩니다. 그런데 거기에 비를 풍성히 주겠다고 하는 것은 굉장한 축복입니다. 우리가 창세기를 읽을 때 아브람 때부터 우물 때문에 전쟁이 나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수십군데 우물을 파도 물이 나오지 않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래서 우물은 큰 재산입니다. 이런 문화에 비를 풍성히 주고 소산물을 많이 나게 해주고 안전하게 해 주겠다고 하는 것은 굉장한 축복입니다.

b.6-9 두번째 축복 - 대적들에 대한 승리(평화) 살롬 평화를 주겠다는 것. 이스라엘 주변 나라들을 보아서 알지만 주변 나라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사방에서 이스라엘을 치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데 하나님께서 이러한 위기 가운데서 대적들로부터 그들을 지키겠다 약속하십니다.

c.10-12 세번째 축복 - 곡식이 남을 정도의 풍성한 축복과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확신

13절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목적(회상) - 종된 것을 면케 하고 멍에 빗장목을 깨뜨리고 바로 서서 걷게 하기 위함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목적은 축복하기 위해서~ ‘나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어 그 종 된 것을 면케 한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내가 너희 멍에 빗장목을 깨뜨리고 너희로 바로 서서 걷게 하였느니라’‘종된’상태에서 너희를 건져내었다. 중요합니다. 오늘 우리가 구원받은 것은 죽은 다음에 천당가기만을 위한 목적이 아닙니다. 우리가 다 사망의 노예가 되었고, 죄의 종이 되어있습니다. 습관적인 범죄로 말미암아 도전히 그 상태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기의 성질이 나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 기질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종된 상태입니다. 가난의 종, 저주의 종, 질병의 종, 노예처럼 쇠사슬에 끌려가지고 망할 줄 알면서도 헤어나오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그 종된 상태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서 우리를 구원하셨다는 것입니다. 예수 믿고도 여전히 종된 상태에서 머물러 있다는 것은 정말 비참한 것입니다. ‘너희 빗장목을 깨뜨리며~’ 멍에를 벗겨주고, 똑바로 걷게 하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를 구원하셨다는 것입니다. 구원의 목적을 우리가 잘 이해를 해야 합니다.

3. 14 - 46 불순종과 저주

14-15 명령을 준행치 아니하고 나의 언약을 배반하면

a.16-17 첫번째 저주 - 질병, 기근, 패망 우리가 질병에 걸리게 되고 약한 인생을 약한 건강을 가지고 사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이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주의 말씀을 순종치 않은 연유 때문이다.

b.18-20 두번째 저주 - 가뭄과 흉작 이것은 사업의 문제입니다. 경제적인 손실, 가난의 문제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c.21-22 세번째 저주 - 들짐승들의 공격 우리의 수고 뒤에 원치 않는 것들이 우리의 재산을 해할 때가 있습니다. 전혀 생각지 않았던 사고로 인해서 손실을 입는 경우.

d.23-26 네번째 저주 - 염병, 전쟁, 기근 세 번째 저주를 통해서도 말을 듣지 않으면 염병이나 전쟁이나 기근을 통해서 통째로 들어 내어 버립니다.

e.27-39 다섯번쩨 저주 - 전쟁과 황폐 본문에 보면 일곱 배로 저주할 것이다. 일곱 배로 징치 할 것이다. 하나님의 택하신 자녀들이 주의 길을 버리고 제 멋대로 살면 몇 번 정도 경고를 줍니다. 회개하라고! 그러나 그래도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그 경고가 일곱 배로 불어나게 됩니다. 해도 해도 너무했다! 할 정도로 엄청난 어려움을 당하게 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불순종한 댓가! 하나님의 구원하신 목적 자체가 축복하고 복된 길을 살도록 하게 하기 위해서 인데 모든 멍에의 빗장목을 깨뜨리고 똑바로 서서 살 수 있도록 축복의 길로 우리를 인도하셨지만 자기 길을 버리지 못하고 하나님을 대적하게되면 우리가 깨달을 때 까지 엄청난 재앙으로 우리를 깨우친다는 것입니다.

40-45 회개와 회복

46 이상(성결 법전 전체 18: - 26: )은 이스라엘 자손과 세우신 여호와의 규례와 법도와 율법

하나님의 의도는 율법을 통하여 나타난다.

먼저 우리는 우상 숭배를 금해야 한다.

사람은 하나님만을 섬기며 하나님만을 기대하며 살아야 할 것을 말씀하신다.

우리가 우상숭배에 빠지는 것은 하나님을 잃는 것이요 약속된 신령한 기업을 상실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하나님이 끔찍이 우상 숭배하는 것을 싫어하십니다.

안식일을 구별하여 지켜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이 이루신 창조 사건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신 구속 사건을 받아들여 안식하는 것이 복음의 합당한 시작임을 알아야 한다.

우리의 구원은 전적으로 은혜에 의한 것이지 우리의 행위에 근거한 것이 아님을 안식일을 지날 때마다 알게 하신다. 은혜가 무엇임을 알고 나의 수고를 포기하고 하나님의 행하심을 바라보는 것이 구원의 출발이다. 안식은 생명의 시작이다. 우리가 수고함으로 축복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순종은 행위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하라!고 하실 때 따라가는 것이 순종입니다. 내가 무엇을 하고, 내가 어떻게 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안식은 창세기 1장과 2장에 나오는대로 하나님이 여셋동안 수고하신 모든 것을 내가 이레 째 되는 날 받아들이는 것이 안식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행할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해봐야 하나님의 율법 앞에 초라한 것입니다. 누가 평안 한 사람이냐? 다 맡기고 하나님 앞에 순종하는 사람이 안식을 얻습니다. 염려하고 근심한다는 것은 내가 나를 책임진다는 것입니다. 기도하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맡기는 것. 이것이 구원의 시작입니다. 그래서 복음은 안식일부터 출발한다고 했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예수를 믿으면서도 여전히 자기의 짐을 자기가 책임지려고 하는 사람은 아직도 복음이 시작되지 않은 것입니다.

성소를 공경하는 일은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영광을 모시는 성전(요1:14, 골2:9)이심을 인정하고 그리스도안에 거함으로 우리가 다시 성전이 되어 머리 되신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의도에 순종하는 일이다. 구약에서는 예표로 건물로 하나님의 성전을 만드셨지만 신약에서는 예수님 자신이 성전이 되셨습니다.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만에 일으키겠다’. 예수님 승천하신 이후에는 성령을 보내셔서 우리 속에 성령이 거하게 하시고, 우리와 영원히 함께 거하시겠다고 요한복음 14:16절에서 26절에 약속하셨습니다. 이 우리 몸이 성전입니다. 생활이 성전이요, 우리의 가정이 성전이요, 우리의 만남이 성전입니다. 그러니까 성소를 공경한다는 말은 그리스도인들이 거룩한 생활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생각이 건전해야 하고 말이 구별되어야 하고 행동이 구별되는 이것이 성소를 공경하는 것입니다. 지금도 여전히 장소를 이야기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기에 오면 뭔가 행동이 조심해 지고, 그러나 여기서 나가면 마음대로 살아도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신약시대의 성소에 대한 바른 생각이 아닙니다. 우리가 성전일 때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게 됩니다.

여호와의 규례와 계명을 준행하면(3) 축복을 받고

여호와께 청종치 아니하여 모든 명령을 준행치 아니하면(14) 저주를 받는다는 것이 언약 백성과의 약속이다.

축복과 저주의 길은 우리 앞에 놓여 있다.

만약 우리가 범죄함으로 포로 생활 중에서 회개하고 주께로 돌아 오면

하나님은 언약을 기억하시고 우리를 사하시고 우리를 다시 기업 가운데로 초청하신다.

레 26:은 이스라엘이 왜 고난의 역사를 살아야 했고 다시금 팔레스타인 땅에 돌아와 잃어버린 민족의 역사를 다시 시작할수 있었는가를 설명해 주는 약속 백성의 길을 말해준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주후 70년이 되면서 이스라엘이 황폐화되고 이스라엘 민족의 비극이 시작되어서 1948년까지 약 2천년 가까운 세월동안 어마 어마한 저주를 받아야 했습니다. 나라를 잃어버리고 세계 사방에 흩어져서 민족적으로 고난을 당했습니다. 히틀러가 그들을 6백만씩이나 학살하고 지금도 유대인들은 세계 각국에 흩어져서 그렇게 총명한 머리와 역사 속에서 경제, 사회, 문화, 과학 모든 분야에서 탁월한 위치에 있지만 나라 없는 설음 때문에 얼마나 억울한 일을 당해야 하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1948년 시오니즘을 주장했던 헷셀이라는 사람이 중심이 되어서 고토로 돌아오는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관계를 무너뜨리고 약속을 거스렸을 때는 레위기 26장의 말씀처럼 어느정도 비참했느냐 하면 전쟁을 통해서 비극을 경험하게 되고 심지어 양식이 떨어지게 되니까 오늘은 내 아이를 내일은 네 아이를 삶아 먹자! 이런 비극과 같은 엄청난 역사가 이스라엘의 역사 가운데 나타납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스라엘 역사를 보는 것은 하나님과 사람의 약속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잘 살아보기 위해서 기도하고 하나님의 뜻을 구합니다. 그러나 기도가 먼저가 아니고 하나님이 싫어하는 것을 따라가면 분명히 버림을 받습니다.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것을 따라가면 분명히 축복 받습니다. 복 받기 원하신다면 치성을 드리고 기도를 하는 것보다 먼저 하나님이 끔찍이 싫어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 다음에 내가 여전히 믿음 안에서 살아 왔고 옛습관의 종이 되어있고, 저주와 질병과 가난과 억압 가운데 살고 있다고 한다면 회개하고 돌이키면 하나님께서 축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의 사업이 흥왕할 수 있고, 우리가 건강하게 살 수 있고, 우리의 자녀들이 말을 듣지 않과 방황하고 있고, 이런 것들이 전부가 다 하나님과의 약속관계, 언약관계입니다. 옛언약을 구약이라고 하고 새 언약을 신약이라고 합니다. 이스라엘처럼 영적으로 약속으로 맺어진 관계입니다. 복 받으려면 주의 말씀을 순종하면 됩니다. 저주 받기를 원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저주의 길이 내게서 떠나지 않는 방법이 있습니다. ‘불순종’하면! 틀림 없습니다. 불순종하면 저주가 떠나지 않습니다. 몇 번 경고를 줍니다. 깨닫도록 가려켜 주십니다. 그래도 말을 듣지 않으면 하나님이 우리를 쳐서 결국 돌아오게 합니다. 그래도 끝까지 말을 듣지 않으면 데려갑니다. 이스라엘 광야 생활이 그런 것입니다. 어마 어마한 약속인 가나안 땅을 주겠다고 했는데 그들이 회개하지 않고 끝까지 탐욕의 길을 걷고 하나님을 대적하고 불순종의 길을 걸으니까! 그 많은 약속 가나안 땅의 부요함이 약속되어있다 할지라도 그들이 중간에 끊쳐짐을 받았습니다. 오늘 이렇게 죽은 그리스도인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는 이런 기도를 드려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 나는 66권의 약속하신 말씀들이 다 진리라고 하는 것을 내 삶 가운데 경험하기 전에는 나는 절대로 죽을 수가 없습니다!’라고 맹랑하지만 기도를 드려 보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결심하십시오! 나는 이 축복을 받고야 말겠다!

출처 : 아일라뷰
글쓴이 : Oasis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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