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종한 아브라함의 믿음은 어디서 왔는가?
아브라함의 고향인 갈대아의 우르는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꽃을 피웠던 곳으로 우상과 이방 문화의 중심지라고 할만큼 우상문화가 지배적인 지역이었습니다 특히 지구라트(창11 : 28)는 그들이 섬기는 신전마당에 있는 계단식 피라미드로 제사의식이 거행될 때 제일 상층부인 신전에 신이 강림한다고 믿었던 우상숭배의 대표적인 상징물인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메소포타미아지역의 유적지에는 30여개의 지구라트가 있었슴이 고고학자들에 의해 입증이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은 갈대아 우르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으나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가나안에 정착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창세기 11장 27절에는 본토인 갈대아 우르를 떠나 가나안으로 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이 기록되어 있으며 아브라함이 향후 큰 민족과 큰 축복과 동시에 복의 근원이 될 것이라는 메세지를 함께 담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제 2의 고향이라고 할 수 있는 하란에서 오래도록 머물렀으며 그 후 세겜과 아이, 벧엘과 헤브론, 브엘세바와 애굽을 거쳐 가나안에 이르게 되는데 그 여정은 10년 이상이 소요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애굽은 기원전 2700~2200년경 고왕국대에 문화의 절정기를 이루었으며 당시엔 왕을 태양신의 화체라 하여 함부로 존함을 부르지 못하였고 왕궁의 이름을 따라 바로(Paraoh : 큰집)라는 명칭을 사용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왕의 시신을 영구보존하기 위하여 부득불 피라미드를 건설하게 되었고 그 가운데 가장 큰 피라미드로 제 4왕조 쿠후가 건축한 것으로 20000평 대지에 2.5톤의 돌 230만개를 밑변 230미터 높이 147미터로 건설하였던 것입니다 그의 계승자인 카후레는 자기 얼굴을 스핑크스에 조각하고 사자의 몸에 붙여 피라미드를 영구적으로 지키려 한 바로인 것입니다
브엘세바에서 기근이 심해 애굽으로 턴하게 된 아브라함은 전혀 다른 왕조의 위압에 짓눌려 미리부터 두려움에 떨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름다운 미인이었던 아내인 사래를 누이라고 속이게 되었고 이를 전혀 몰랐던 바로가 아브라함에게 양과 소와 노비와 암수 나귀와 약대를 주며 사래를 후궁으로 맞이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자기 아내가 바로에 의해 왕궁의 후궁으로 가게 되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을 맞이하게 되었는데도 아브라함은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했습니다 참으로 안타깝고 부끄러운 남편의 행동에 사래가 얼마나 실망하였을까요? 이렇게 나약한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큰민족과 큰축복과 동시에 복의 근원이 될 것이라고 하신 말씀은 이미 그 유효기간이 종료된 일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 수 밖에 없는 사건이었습니다
이렇게 나약하기 그지없는 아브라함이 무슨 생각으로 하나님의 말씀만 듣고 본토 고향 땅을 떠났을까요? 아브라함의 지능이 장애등급이었을까요? 오로지 하나님의 생각과 지시에 순종하였던 순수한 마음이었을까요? 그러나 중요한 것은 남편인 아브라함이 그렇게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못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바로와 그 집에 큰 재앙을 내림으로서 위기의 상황을 해결하게 하였던 것입니다(창12 : 10~20) 이러한 이해할 수 없는 장면들이 창세기에 기록되어 있음은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조차도 하나님께 의지하지 아니하였을때 얼마나 어리석고 나약한 존재인가 하는 것을 말해주는 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에 의해서 서서히 만들어져 가는 과정에 있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를 떠날때 그의 조카 롯도 함께 동행하였습니다 아브라함과 롯이 헤브론에 이르렀을때에 그들의 소유는 각자의 값을 계산할 수 없을 정도로 방대해 져 있었습니다 때문에 아브라함의 종과 롯의 종의 다툼이 잦아들기 시작했고 두사람은 여기에서 서로 헤어지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헤브론은 예루살렘 남쪽 27키로 지점의 계곡 동쪽 비탈에 자리잡고 있는 성읍으로 기원전 14기 중엽에 세워진 가나안 족속의 왕도였습니다 아브라함 당시에는 이 지역에 아모리 족속과 헷족속의 무리가 이 지역을 양분하는 사회적으로 불안한 상황이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은 오랜 여행의 힘든 여정속에서 피로에 지쳐 있었습니다 아무런 대책없이 행로를 떠나는 아브라함을 바라보며 때로는 답답한 마음도 있었을 것입니다 도시성향을 가지고 있는 롯이 지금까지 동행한 것 만으로도 나름대로 인내심이 있었을 것이라는 짐작입니다 그러한 그에게 나타난 소돔과 고모라성은 그야말로 자기가 원하던 최상의 휴식처요 불행을 끝내는 행복의 요람이었을 것입니다 요단에서 소알까지 온땅에 물이 넉넉하여 여호와의 동산같고 애굽땅과 같은 최적지 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아무런 기도와 준비없이 그곳을 선택하였습니다
똑같은 여정을 하고 있는 아브라함에게 있어서도 소돔과 고모라는 아름답고 좋은 정착지라는 생각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는 롯에게 우선권을 부여하고 전혀 낯설은 황무지와 같은 땅을 선택하여 여정에 오르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러한 장면들을 바라보던 사래와 그의 집사와 종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이러한 여러 잡음들을 통치하며 새로운 여정에 오르는 아브라함의 리더십은 바로 하나님의 섭리와 연결되어져 있는 것입니다
시날왕 아므라벨과 엘라살왕 아리옥, 엘람왕 그돌라오멜과 고임왕 디달이 다른 한 편에 서 있는 소돔왕 베라와 고모라왕 비르사와 아드마왕 시납과 스보임왕 세메빌과 전쟁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12년동안 엘람왕 그돌라오멜을 섬기다가 배반함으로서 이 전쟁은 발발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에 격분한 그돌라오멜은 다른 동맹국들과 힘을 모아 아스드롯 가르나임에서 르바 족속을 치고 함에서 수스족속과 사웨 가랴다임에서 엠족속을 복속시키며 엘바란과 아모리족속에 까지 이르렀던 것입니다 이에 역청구덩이가 많은 싯딤에서 이들 다섯왕이 그돌라오멜과 교전하다가 도망하는 과정에서 아브라함의 조카 롯은 그돌라오멜의 포로가 되었고 그의 재물은 모두 노략되고 말았던 것입니다(창14 :1~12)
그중에 롯의 종이 도망을 하여 아모리 족속 마므레의 상수리 수풀근처에 기거하고 있던 아브라함에게 소식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마므레와 에스골과 아넬이 서로 형제로서 아브라함과 동맹관계에 있었으므로 아브라함은 318인의 훈련된 사병을 이끌고 다메섹 좌편 호바까지 쫓아가서 그들을 멸하고 롯과 그 재물과 부녀와 인민을 데려왔던 것입니다(창14 : 13~16)
목숨이 두려워서 아내를 누이라고 속였던 아브라함의 전혀다른 용기있는 모습에서 우리는 또다른 아이러니를 발견합니다 자기 아내보다 조카 롯이 더 소중한 것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일생은 마치 아무 생각이 없는 그야말로 시키면 시키는대로 하는 하나님의 종처럼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아브라함이 후궁의 위기에서 건져낸 하나님을 기억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조카 롯을 구하는 과정에서 하나님은 반드시 그가 승리하도록 할 것이라는 확실한 믿음이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우상을 따르는 주위의 유혹을 물리치고 순수한 믿음을 지킨 살렘왕이며 제사장인 멜기세덱과 아브라함의 만남은 이렇게 조카 롯을 구하며 돌아오는 과정에서 일어납니다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에게 축복을 하고 아브라함은 멜기세덱을 위하여 그 취한 것의 십분일을 바쳤던 것입니다 창세기 14장 18절에서 제사장인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와 아브라함에게 축복함으로서 그때까지 아브람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었던 아브라함이 영적으로는 세례를 받는 중요한 계기가 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여정은 하나님으로 부터 시작된 것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지시에 대하여 아무런 질문이나 저항을 하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철저하면서도 신속한 순종으로 일관하였으며 이러한 그의 인생관은 죽음에 이르기까지 불변의 법칙으로 이어져 갔습니다 창세기 15장은 이러한 아브라함에 대한 하나님의 축복메세지가 약속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앞에 펼쳐진 끝없는 땅과 후손들을 주시려고 갈대아 우르에서 이끌어 내셨다고 그 이유를 밝히고 있습니다(창15 :7)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꿈에 현몽하여 미래에 대한 예언을 주셨으며 아브라함이 지배할 땅의 영역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애굽강에서 부터 시작하여 유브라데에 이르기까지 모든 지역을 포함하고 있으며 겐, 그니스, 갓몬, 헷, 브리스, 르바, 아모리, 가나안,기르가스, 여부스족속에 이르기 까지 방대한 지역의 지배권을 주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거대한 축복에 대한 감사의 이면에 아브라함에게 한가지 고민이 있었으니 팔십세가 넘도록 자녀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아내인 사라의 여종인 하갈과 동침하여 아들을 낳게 되었는데 그의 이름이 바로 이스마엘이었습니다 이렇게 아브라함의 장자인 이스마엘이 태어남으로서 집안에는 경사가 겹친 듯 하였으나 이로 인하여 그토록 관계가 좋았던 사라와 하갈의 관계가 악화되기에 이르렀고 급기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장자로 이스마엘을 인정하지 않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에게서 기독교의 후손과 아랍의 후손이 함께 태어남으로서 향후 팔레스타인과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끊임없이 일어나는 전쟁의 역사가 결국 한 형제에 의한 것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늘의 별과 같이 후손들이 많으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비하여 현실은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의 나이는 100세를 향해가고 사라는 불임에 생리까지 멈추어 더 이상 후손의 희망이 없어져 버린터에 마지막 불씨라고 할 수 있는 이스마엘마져 장자의 상속권을 인정받지 못함으로서 창세기 15장의 약속은 이것으로서 파기되는 듯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은 결코 파기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세상의 질서와 순리를 넘어서는 초자연적인 힘이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 바로 천지를 창조하신 그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늙어 100살에 가까워버린 아브라함과 경수가 끊어져버린 사라에 의해서만이 장자가 태어날 것을 선언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왜 스스로 만든 질서와 상식을 깨고 이러한 선택을 하였던 것일까요? 그것은 아브라함의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상식과 논리를 따르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조금 모자라고 뭔가 잘못된 사고를 가지고 있는 사람처럼 보이지만 그에게는 하나님에 관한 분명한 믿음과 신앙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100세가 아니라 1000세가 되어도 수태가 가능하다고 굳게 믿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한 아브라함의 믿음, 과연 아브라함의 자생적인 믿음때문일까요? 아닌 것입니다 두려움에 떨려 아내까지 누이라고 말하였던 아브라함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이러한 믿음을 소유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원인은 이러한 믿음이 바로 하나님에게서 기인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즉 아브라함의 믿음은 아브라함 자신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성령의 선물이라는 것입니다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은 하나님의 세게적인 경고로 나타난 것입니다 범죄의 상속으로 인하여 사람의 부패와 타락은 물질,섹스,그리고 불신앙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바로 그러한 타락한 범죄자의 표준이었던 것입니다 근친상간, 동성연애,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해져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 완전히 라져 버린 도시였습니다 노아의 홍수사건,과 바벨탑 사건이후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는 이러한 범죄적 상황은 이제 일상이 되어버렸고 누구하나 말릴 사람이 없어져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성을 멸할 것을 결정하였던 것입니다(창 19장)
바로 그 소돔성에 아브라함의 조카 롯과 그의 가족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롯은 아브라함과 함께 수많은 여정을 함께동행하였으며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이었습니다 그러한 그가 소돔성에 거하며 죄악을 보았을때 처음에는 두려운 마음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점차 지나면서 마음이 강퍅해지고 악으로 부터 무뎌지는 현상을 반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죄악은 이렇게 전이가 빠르고 한번 전이되면 다시는 회복불능 상태가 되어 버리는 무서운 영적 질병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멸망계획을 알리가 없는 롯은 그의 가족들의 타락을 보며 내심 두려워 했을 것이나 자신의 신앙상태로 보았을때 역부족이었던 것입니다 그는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예배를 드리지도 않았습니다 그이 주변에 신앙의 동역자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모든 상황이 그 자신마져도 병들게 하는 요인들이 되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이러한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협상아닌 협상을 하였던 것입니다 50인에서 시작된 협상은 10인에 까지 이르렀고(창18 : 20~33)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인 10명이 없었던 소돔과 고모라는 결국 불의 심판이라는 운명을 맞이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조카인 롯과 아내와 두딸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겨우 생명을 건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롯의 아내는 그가 살아온 인생에 미련이 남아있어서 뒤돌아보는 오류를 범함으로서 소금기둥이 되고마는 아픈 역사의 교훈으로 남게 되었던 것입니다(창19 :23~26)
생명을 건진 롯과 두딸들의 남은 삶의 선택은 무엇이었을까요? 하나님앞에서 회개하고 자복하며 용서를 구하는 삶을 살았을까요? 그렇지 않았습니다 소돔과 고모라성에서 몸은 탈출하였지만 그 정신과 타락한 정서로 부터는 결코 자유롭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 결과 그들은 아브라함과 동행하며 본류의 삶으로 회복한 것이 아니라 부녀지간에 근친상간을 하며 후손을 이어갈 더럽고 추한 선택을 함으로서 그들의 종말을 예고하고 있었던 것입니다(창19 : 36~38)
창세기 21장은 이삭의 탄생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100세때 낳은 이삭이었습니다 아들이라기 보다는 친손자같은 느낌이었을 것입니다 모든 것을 다 주어도 후회가 없는 천금과 같이 귀한 자녀인 것입니다 이삭은 이스마엘과 마찬가지로 할례를 받았으며 한 형제처럼 지내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문제가 있었습니다 아브라함 아버지의 입장에서는 이스마엘과 이삭이라는 두아들이 존재하여 있고 사라와 여종인 하갈의 입장에서는 이삭과 이스마엘이 각각 장자의 직분을 놓고 다툼이 생길 수 밖에없는 상황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여종인 하갈의 질투가 화근이 되었고 결국 그들은 브엘세바로 향하고 거기에서 영원한 앙숙이되는 아랍 회교도의 정신적 숭배자로 남게 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육체적이고 세상적인 장자 이스마엘이 떠나고 얼마후 이삭이 아직 어렸을때의 일입니다 창세기 22장은 아브라함에게 제사를 명하고 이를 실천하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일은 당시에 흔히 있는 일로 은혜롭고 경건하며 감사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제사는 지금까지 아브라함이 수없이 드렸던 제사와은 다른 점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제사의 제물에 관한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사의 제물로 양이나 짐승을 선택하지 않고 사람을 선택한 것이었습니다 그것도 사람을 지명하여 지정해 주었는데 그것이 바로 100세때 낳은 이삭이었습니다
하나님에게 여쭈어 볼 수도 있는 문제였고 따지고 들어갈 만한 상황도 충분한 것이었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아도 납득이 되지 않는 그러한 요구를 하나님께서 하신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차라리 이스마엘이라도 보내지 말았어야 했다고 생각해 볼 수도 있는 문제였습니다 창세기 21장 12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칭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이스마엘을 다시는 볼수없는 곳으로 떠나보내고 말았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말씀과 전혀 배치되는 제물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더욱 답답한 것은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아브라함의 태도입니다 창세기 22장 3절에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바로 실천에 옮긴 것입니다 한마디 댓구에 관한 기록도 없습니다 밤새 고민한 흔적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한마디로 사이코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 정도 입니다 이렇게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아브라함의 선택은 본토인 갈대아 우르를 떠날때 부터 시작되어 지금까지 거의 모든 행로가 그런것이었습니다 적어도 자기가 낳은 이삭도 아니고 사라가 큰 고통을 견디며 낳았다면 한마디 상의라도 해야 함에도 아브라함은 그 어떤 절차도 지키지 않았습니다 그저 하나님의 지시에 곧 바로 순종하는 단순함이었습니다
믿음은 단순한 것입니다 믿음은 생각하고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실천입니다 믿음은 하나님과 교류하며 협상하는 것이 아니라 순종이며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상황에 따라 상식에 따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종류와 내용과 조건과 전혀 관계없이 절대적으로 순종하는 것이라는 것을 아브라함을 통해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3일간의 여행길에서 아브라함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병주고 약준다는 생각으로 하나님을 원망하고 있었을까요? 차라리 이스마엘이라도 붙들어 놓을걸 괜히 보냈다고 후회하고 있을까요? 아니면 이삭이 힘으로 저항하여 도망이라도 가길 원했을까요? 그에게 있어서 3일이란 여정은 얼마나 짦고 가슴 찢어지는 행로였을까요?
그러나 아브라함은 3일 여정에서 오직 하나님을 신뢰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순종함으로서 하나님의 뜻을 알고 자 하였습니다 모리아산 아래에서 동행하였던 사환에게 멀리서 기다릴 것을 명하였습니다 그리고 번제나무를 이삭에게 짐을 지웠습니다 자기 자신을 태울 장작을 스스로가 지고가는 어처구니없는 모양이 되었습니다 뭔가 이상한 생각에 빠진 이삭이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질문을 합니다 "아버지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양은 어디에 있는 것입니까?"(창22 : 7)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지혜로서 대답하였습니다 "번제할 어린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실 것이다"(창22 : 8)
두 부자의 마지막 대화에서 우리는 무엇을 생각할 수 있을까요? 예수그리스도가 생각나신다면 당신은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습니다 십자가로 대의되는 번제나무를 지고 가는 이삭은 예수그리스도의 흔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번제물이 어디에 있는가 하는 것은 할수만 있다면 이잔을 내게서 물려달라는 인간적인 마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답변처럼 이삭은 표상일뿐 예수그리스도는 아닙니다 가인에게 죽임을 당한 아벨도... 이삭도..... 그 이면에는 장차 오실 에수 그리스도의 흔적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도 예수 그리스도의 흔적이 있어야 합니다 어딘가 닮은꼴이 존재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제사를 거부하지 않고 시행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이삭은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이 갑자기 이삭을 결박하고 칼을 내리치려 했을때 갑자기 위로부터 하나님의 긴급한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창22 : 11)
아브라함의 믿음은 이렇게 하나님앞에서 철저하게 증명되었고 믿음의 조상으로서의 그 지위와 명성이 오늘에 까지 이르게 되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박학다식한 학자가 아닙니다 뛰어난 문필가도 아니고 지혜가 충만한 리더십의 대가도 아니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어딘가 겁이많고 모자라는 사람이며 사이코와 같은 기질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그가 하나님을 만났을때 아주 특별하고 존귀하며 역사에 기록될 믿음의 조상으로 새롭게 태어난다는 것입니다
세월이 흐르고 사랑하는 아내 사라는 127세의 나이로 하나님 곁으로 떠났습니다 창세기 23장 2절은 사랑하는 아들 이삭의 결혼을 보지 못하고 떠나는 사라를 위해 슬퍼하며 애통해 하는 아브라함의 흔적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브라함을 따라 우르를 떠나온지 62년후, 이삭을 낳은지 37년만에, 아브라함보다 38년 먼저 영원한 하늘 가나안 땅으로 들어갔습니다(히브리서11:16) 약속된 씨의 어머니(창세기17:19) 로서 모든 믿는자의 어머니(이사야51:2)가 된 사라의 일생은 남편과 함께 순례의 삶을 산 나그네 생활이었습니다 (히브리서11:13) 성경은 사라의 거룩한 덕성(베드로전서3:6)과 함께 여자로서는 유일하게 그 나이를 기록함으로서 사라를 영원히 기념하고 있습니다
사라가 죽고 아브라함은 그의 종 엘리에셀과 환도뼈 언약을 취함으로서 엘리에셀에게 이삭의 베필을 찾기 위하여 머나먼 여정을 떠나게 하는 것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엘리에셀의 언약은 이삭의 신부를 본토 인척중에서 구해 와야 한다는 것과, 그 일을 위하여 이삭을 본토로 데리고 가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언약의 약속은 주권과 권위를 상징하는 언약위에 충성하고 복종함을 의미하고 있으며, 장차 후손들을 위하여 이 언약은 반드시 지키겠다는 맹세의 상징으로 환도뼈를 만지게 한 것이었습니다
아들 이삭이 40세 되던 해에 외종 사촌형인 브두엘의 딸 '리브가'를 아내로 맞이하게 됨으로서 아브라함의 인생여정은 끝나가고 있었습니다 창세기 25장, 아브라함은 이삭을 결혼시킨후 '드두라'라는 후처를 취하였으며 여섯명의 자녀를 낳았습니다 아브라함의 향년 175세, 아들 이삭에게 자기의 모든 소유를 상속하였고 (창세기25:5) 그의 삶도 여기서 막을 내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갈대아 우르를 떠나 머나먼 여정을 통하여 하나님과의 끝없는 교통을 이어갔던 아브라함, 한 때 자기 아내를 누이라고 속이며 목숨을 구걸해야 했던 가슴아픈 상처가 남아있고, 소돔과 고모라성의 멸망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을 목격해야 했습니다 결코 순탄치 않은 삶은 100세에 하나님으로 부터 얻은 아들을 하나님께 다시 바쳐야 하는 극도의 고통을 이겨내야 하는 것으로 끝나는 듯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아내 사라의 죽음앞에서 애통해 하며 인생의 덧없음을 확인하였고, 이삭의 결혼과 정상적인 가정이 영위되는 것을 바라보며 그가 이 땅에서 해야 할 모든 과제들이 정리 되었음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더 많은 생애를 위하여 재혼을 하여 여섯자녀를 두었지만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175세라는 길지 않은 나이에 가나안으로 들어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죽음이후 그의 믿음은 사라지지 않고 수천년을 이어오며 더욱더 화제가 되고 있으며 많은 설교들 가운데 중요한 내용으로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믿음을 본받기 위하여 아브라함과 관련된 수많은 연구서적들이 발표가 되었고 지금도 이러한 믿음에 관한 연구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는 죽었고 그의 얼굴을 기억하거나 알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그의 삶과 신앙은 오늘도 여전히 살아서 우리에게 끝없는 도전과 용기를 주고 있습니다 /출처 http://blog.daum.net/ihrskm/801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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