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에서 바라 본 종교와
신神존재 증명
I. 들어가는 말
신학의 주된 관심은 인간이‘무엇’을 믿는가에 있다. 그러므로 그 믿음의 대상을‘어떻게’믿게 되며, 믿음의 과정에서 믿는 사람의 마음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를 가볍게 넘겨 버릴 수 있다. 그러나 심리학은 인간의 경험을 특수화시키고 구체화시키는 경향이 있으므로 그 경험이 내포하고 있는 함축적인 의미들을 과정적인 관점에서 관찰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준다.1) 특히 목회의 장, 그 중에서도 목회상담이나 교회교육의 경우 종교심리학의 지식이 매우 가치 있는 기초 이론으로 사용되고 있음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무엇보다 종교와 현대 심리학은 모두 인간의 내면의 삶에 질서를 유지시켜 주는 개념과 방법을 제공해 준다는 의미에서 아주 특별한 관계에 있다고 하겠다.
이러한 관계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종교철학’이라는 이름의 여러 책들에서 윤리학, 언어학, 과학 등의 다양한 분과들과의 비교 연구 중에 심리학을 제외시키고 있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물론 심리학의 역사가 다른 학문들의 역사와는 비교가 될 수 없을 정도로 턱없이 짧기는 하다. 그러나 이러한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그 역할은 여타의 학문들과 비교했을 때 그리 뒤지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본 보고서의 주제는 자유 선택권에 힘입어, 한 학기 동안 다루지 못했지만 중요한 주제인‘심리학에서 바라 본 종교와 신神존재 증명’으로 결정하게 됐다.
첫 번째로‘종교심리학의 철학적 의미’에 대해 간략하게나마 알아 볼 것이다. 그 후에‘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의 저서인‘종교 체험의 여러 모습들Varieties of Religious Experiences’의 제3장인‘보이지 않는 존재의 실재성’을 중심으로, 신존재에 대한 심리학적인 고찰을 공부해 볼 것이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주제의 특성상 실제 사례들을 소개하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겠지만, 지면 관계상 모두 생략하고 설명하는 방법을 선택하기로 하겠다.-
II. 몸 말
I)종교심리학의 철학적 의미
1879년‘분트Wilhelm Max Wundt, 1832~1920’가 라이프치히 대학에 실험심리학 연구실을 창설하여 구조주의 심리학의 기틀을 마련하면서부터 심리학의 과학적 태동은 시작된다. 그 이전까지의 심리학은 철학의 한 분과로써 취급됐으며, 따라서 형이상학적인 방법으로 인간의 내면을 연구하는 역할을 감당해 왔다고 말할 수 있겠다. 이렇게 시작된 심리학이 1984년 미국 심리학회에 소속된 분과만 42개임을 보면서, 심리학의 짧은 역사에 비해 그 활용 범위가 매우 다양해졌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세분화된 심리학 분야들이 가지고 있는 공동 관심사는 궁극적으로 인간의 행동을 기술하고, 설명하고, 예측, 통제하는데 있다. 그 중에서 종교심리학은 구체적인 응용분야에 속하는데, 이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많은 학자들이 사회 심리학 분야에 속해 있고 실제로 종교심리학이 사회심리학 분과에 속해 있음을 생각할 때 현재 이 분야는 신학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일련의 학자들과 사회심리학의 영역에 속한 학자들의 활동으로 양분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2)
종교심리학을 정의하는 것은 그리 간단한 일은 아니지만 매우 단순하게 정리하자면“종교를 심리학적으로 고찰하고 종교의 심리적 측면을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것”,혹은“심리학의 이론을 사용하여 종교 현상을 관찰하고 설명하는 학문으로 정의할 수 있다.”3) 예컨대, 종교가 인간 삶에 어떤 역할을 해주는가라는 질문은, 종교가 신앙의 대상으로 하고 있는 진리 그 자체나 그 진리의 내용을 규명한다기 보다는 신앙의 대상과의 관계에 있는 개인의 삶에 그것이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가에 관한 물임이다.4) 그러므로 종교심리학이 갖고 있는 의미 중에는 종교에 대한 과학적인 관찰과 그 결과 외에 충분한 철학적 논의가 포함되어야 함을 알 수 있다. 이때 한 가지 따져보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종교’라는 어휘의 쓰임이다. 종교는 여러 가지 측면과 차원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종교’라는 단어는 단 하나이나, 종교적이 되는 것은 백 가지도 넘을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신학적인 체계를 갖춘 종교를 포함한 모든 형태의 종교를 의미한다.
여기에 덧붙여 우리가 기억해야 할 사실은 종교심리학의 발달 과정에 있어서 정통 종교들이 이 분야를 향하여 보여준 회의와 의혹이었다. 그러한 회의의 원천을 분석해 보면, 우선 종교 현상을 심리학적으로 기술할 때 초래 될지도 모르는 종교적 삶의 가치의 상대화에 대한 방어의 표현으로 볼 수 있다. 또 하나의 원인으로는 종교의 관심은 절대자에게 지향되는 것이므로 인간의 정신생활에 관한 고찰은 종교의 본래적인 목적과는 관계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으로 짐작할 수 있겠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종교는 인간의 삶 전체에 영향을 주며, 그런 의미에서 그것은 심리학의 연구 대상이 될 수 있다고 하겠다. 미국의 심리학자로서 종교심리학 분야에 탁월한 족적을 남겨 놓은‘올포트Cordon Allport ’는“편협하게 이해된 과학은 편협하게 이해된 종교와는 대화할 수 없다. 이 두 분야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관점을 확대할 때에라야 비로소 이해하고 협력할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이다.”라고 하였다.5)
따라서 종교심리학의 시작과 범위, 그 의미는 여느 종교 관련 학문들과 마찬가지로 넓은 시야와 열린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야 받아들일 수 있는 비전통적인 부분이라 볼 수 있겠다. 또한 심리학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철학적 사고에 대한 열린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야, 인간 본연의 깊은 곳에서부터 시작되는 종교심, 종교 행위, 종교 현상들을 심리학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일련의 수고와 노력들이 절대자에 대한 인간들의 궁극적인 염원을 발견하고, 그들 내면의 깊숙한 곳에서부터 신앙의 여러 현상들의 원인을 밝혀낼 수 있다면, 이 또한 여느 종교 관련 학문들과 마찬가지로 훌륭한 학문 중에 하나라는 것을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II)종교적인 삶과 심리학 도전
종교적인 삶이란 어떤 것이냐는 문제를 광범위하고 일반적인 의미에서 설명해 보라고 지적받게 되면, 이 세상에는 보이지 않는 어떤 질서가 있으며, 지고의 선이란 보이지 않는 그 질서에 조화되도록 사는 것인데, 종교적인 삶이란 그 질서에 맞추어 나가는 것이라고 답변하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은 믿음, 그리고 이와 같은 적응은 우리 영혼이 가지고 있는 종교적인 태도이다. 이와 같은 태도가 지닌 어떤 심리학적인 특성과 우리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어떤 대상이 지닌 심리학적인 특성에 관해서 특별한 관심을 갖는 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6)
그러나 심리학은 어느 시점에서는 종교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들을 피력하는 수단으로 이용되기 시작한다. 그 노선의 선봉이라고 할 수 있는‘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는 자신의 저서들을 통해 문화, 종교, 사회, 과학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들을 밝히는데, 특별히 종교에 대한 정신분석학적인 저서인‘토템과 타부Totem and Taboo, 1919’에서 종교에 관한 본격적인 논의를 하고 있다. 여기서 그는 주로 종교에 동기와 기원 및 기능과 역할에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그 뒤에 나온‘환상의 미래 The Future of a Illusion, 1927’나‘문명과 불만Civilization and Its Discontent, 1930’,그리고‘모세와 유일신론Moses and Monotheism, 1939’에서도 유사한 태도로 종교에 접근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7)
특별히 프로이트는‘강박적 행위와 종교적 관행Obsessive action and religious practice’이라는 자신의 저서에서 강박적 노이로제 환자가 자신의 불안을 제거하기 위하여 지속적으로 수행하는 충동적 행동을‘의식적 행위Ceremonial behavior’라고 불렀다. 이러한 의식적 행위가 바로 종교 행위와 같다고 주장한 것이다. 강박적 행위는 지나치게 치밀하고 소심하여, 세부적인 규칙이나 규정에 거의 노예가 된 듯한 행위를 의미한다. 그런데 강박적 노이로제 환자는 자신이 경험하는 심각한 불안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하여 마치 의식화된 듯한 강박 행동을 반복하게 되는데, 이러한 강박적 해위는 환자가 불안으로부터 해방되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은 불안을 가중시키는 악순환으로 몰아간다고 말하고 있다.8)
또한‘토템과 타부’에서는 원시 종족의 토테미즘과 타부를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에 의하여 종교의 기원을 설명하면서, 종교는 오이디푸스적 상황에 대한 문화적 표현이라고 주장하였다. 고대 희랍 신화에 등장하는 오이디푸스왕의 비극에 등장하는 이야기와 같이, 부친을 살해하고 자신의 어머니를 아내로 받아들인 사건이 인류 최초의 부족 집단에서 일어났었다는 주장이다. 이들은 부친을 살해한 데 대한 죄책감과 일시적으로 의식하지 못했던 부친에 대한 사랑과 존경의 감정이 되살아나면서, 자신들이 소유했던 어머니를 포기하고 잘못을 다시 반복하지 않기 위하여 근친상간을 터부로 정하고 토템 동물을 살해한 후 정기적으로 모여 부친의 죽음을 기리며 자신들의 죄책감을 보상받곤 하였다. 종교는 이렇게 인간의 내면에 무겁게 깔려 있는 공격성을 막고 죄책감의 완화를 가져다주면서 고통으로부터 일시적인 해방감을 맛볼 수 있게 해 준다는 것이다.9)
이러한 정신분석학적인 종교발생 이론이나 종교 형태론이 가져다 준 파장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었다. 프로이트 이전에 많은 성과를 올리고 있던 종교 심리학계에 대지각 변동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또한 종교를 갖고 있는 사람들과 그와 관련된 사람들의 삶을 가차 없이 흔들어 버렸다. 한 마디로 신앙이 설 자리를 빼앗아 버렸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견해는 몇 가지 발론을 통해서 제자리를 되찾았는데, 의외로 선물 꾸러미를 안고 제자리를 찾게 됐다. 이 선물이라고 하는 것은 영적인 성장에 대한 심리학적인 분석이 가능해지고, 활발해졌다는 것과 이러한 분석을 통해서 목회 상담에 큰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여러 가지 종교현상에 대한 심층적인 연구가 가능해졌다는 것이다. 이러한 연구의 가능성은 오늘날의 종교적인 삶의 지평을 넓혀주는 긍정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며, 특히 종교적인 삶 가운데에 말 그대로의‘일상’으로 나타나는 종교 현상들에 대한 심리학적 연구는, 종교에 대한 특별한 이해와 관련된 학문-종교 형태론, 종교 현상학, 종교 사회학 등-들 간의 연계를 원활히 돕는 역할도 수행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 받고 있다.
III)실재實在에 대한 다양한 견해
먼저 알아 본 바대로, 심리학은 많은 부분 종교학에 기여하고 있다는 것이 사실이다. 조직 신학 뿐만 아니라, 성서 신학과 역사 신학 할 것 없이 많은 부분 종교 심리학의 도움을 받아 연구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면 종교들이 고백하는 궁극적인 실재에 대한 이해도 종교 심리학적인 접근이 가능할 것이다. 그 뿐만이 아니라 다른 학문들의 신神존재 증명에 중요한 역할을 감당할 것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실재에 대한 다음과 같은 W. James의 실재에 대한 이해는 매우 중요한 정보가 될 것이다.
먼저, 우리들 자신의 종교적인 태도는 물론 도덕적이며, 정서적이고, 실제적인 태도 역시 우리의 의식에서 비롯되는 어떤‘대상’이 존재하고 있음으로써 가능하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실재實在한다고 믿는 그 대상은 그것이 실재하고 있든지 아니면 이상理想으로 그려내고 있든지를 불문하고 우리가 존재한다고 믿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그런 대상들은 우리 감각 기관에 의해서 포착될 수 있든지, 아니면 단지 우리 머리속에만 존재하고 있든지 둘 중의 하나이다. 어떤 경우에도 그것들은 우리에게 어떤 반응을 일으키도록 촉구한다. 그런데 우리 사고 속에 존재하고 있던 대상에 의해서 촉발된 반응은 많은 경우, 감각기관에 의해 포착되었던 그 대상이 촉발한 반응과 똑같은 강도를 지닌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어떤 경우, 전자는 후자보다 더욱 강할 수도 있다. 언젠가 어떤 사람으로부터 받았던 모욕을 상기하는 순간, 실제로 모욕을 당하는 것보다 더 분개하는 경우를 왕왕 겪곤 한다.10)
그러나 보이지 않는 신에 대한 이미지는 과거의 경험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William James의“...종교로서의 기독교가 가진 모든 힘은 순수한 관념이라는 도구를 통해서 행사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관념이란 각 신도들이 그들의 과거의 삶 속에서 직접적으로 전혀 체험한 바 없는 것이다.11)”라는 말은 구체적인 예들을 바탕으로 주장되고 있다. 따라서 프로이트나 프로이트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반박하며 자신의 책‘폭력과 신성’에서 문화인류학적이며 문학평론적인 자세로 신의 존재를 분석했던‘지라르Rene Grard’의 견해도 위의 심리학적 이론 앞에서는 미숙한 단계로 평가 받게 된다.‘지라르’는 프로이트의 종교 발생 원인에 대한 견해가 오이디푸스 신화를 왜곡한 때문이라고 비판한다. 오이디푸스왕은 자신이 사랑하여 아내로 삼은 여인이 자신의 어머니인줄 모르고 결혼했으며, 아버지를 죽일 의도를 갖고서 죽인 것이 아니므로, 프로이트가 주장한‘자연발생적’인 아버지에 대한 아들의 질투심에 대해 반박한다. 그러나 지라르 또한‘모방 본능’이라는 다소 포괄적이지 못한 이론을 통해 자신이 갖고 있는 인간 본성에 대한 견해를 피력했다. 이 또한 신의 이미지를 아버지에 투사하는 방법인데, 사실상 조사된 사례들-James의 책을 비롯한-과는 전혀 다른 견해라 할 수 있겠다.
James의 책에서 더욱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신을 관념, 즉 지적知的으로만 믿는 것이 아니라, 직접 지각할 수 있는 감각적인 대상으로도 믿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재미있는 사실 한 가지는, 모든 사람들이 신의 존재를 감각적으로 체험했어도, 그것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과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으로 나뉜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례는 절대자의 실존을 감각하고 그것이 주는 긍정적인 효과를 이야기하고 있지만,‘아께르만 부인’이라고 하는 사람의 사례는 부정적인 견해를 이야기하고 있다. 특이하게도-보고자의 개인적인 견해이지만-신을 체험하면서 그 현실에 대해 신기해하거나 놀라워하기 보다는 짜증스러운 견해를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비실재감은 병적인 우울의 상태에 있는 사람들이 체험하는 경우가 많은데, 만약 정신에 병이 있는 사람들만이 이러한 부정적인 견해를 토로한다면, 신의 존재는 완전히 부정적일 수 있다는 견해로 기울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신은 인간의 정신 상태와는 전혀 상관없이 어떤 경험자이건 신神자신의 동일한 성품을 체험할 수 있도록 실재해야 하며, 어느 누구나 신을 만났을 때에는 긍정적인 사고를 갖는다든지 삶의 변화를 체험해야 하는 결과가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학으로서의 심리학에서는 이러한 견해를 배려하고 있지 않다. 심리학은 단지 사례만을 추수려 통계를 내고 결과를 보고하기 때문에 부정적 견해에 대해서는 단순히-사실 단순한 문제는 아니지만-병적인 심리상태에 대한 원인만을 제공하고 있다.
이와 반대로 종교학에서는 신의 속성에 대한‘공통적인 견해’를 피력하고 있다. 그것은‘루돌프 오또Rudolf otto’가 명명한‘누미노제Numinose12)’등으로 표현되고 있는데, 그의 저서‘성스러움의 의미’에서는 이 누미노제를 어느 누구나 인정하는 보편적인 신성의 대명사로 사용하고 있다. 따라서 신성에 대한 동일한 감각은 확실한 연구의 결과를 통해서 보고되어야 인간의 심리상태를 압도하는 신성과 그렇지 못한 신성을 정확히 구별해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또 이와는 다르게 James는“부정적인 견해를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서도 우리가 그 속에서 비록 어떤 희생이라든지, 자기 굴복과 같은 정조를 찾아볼 수 없으며, 어떤 굴절되어 있는 성향이라든지, 머리를 조아리는 듯한 태도를 찾아볼 수 없을지라도, 그들의 태도 역시 종교적인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13)”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 인간의 성향에 따라 인지하는 각기 다른 신의 속성은 우리가 느끼는 사람들의 다양한 성품과 다르지 않게 받아 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 겪는 신에 대한 어두운 체험도 종교적인 체험의 하나라는 것이다.
철학으로서의 종교학에서는 아예 이러한 실재의 속성을 체험하는 사례들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는 분파가 있는데, 우리들이 강의 시간에 배운‘합리주의合理主義’가 바로 그런 분파에 속한다. 합리주의에서는 우리의 신념이란 모름지기 스스로 자신이 설 수 있는 뚜렷한 기반을 궁극적으로 발견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합리주의에서 말하는 그 기반들이란 다음의 네 가지 사항이다. 첫째, 절대로 움직일 수 없는 원칙, 둘째, 감각적으로 느낄 수 있는 특정한 사리, 셋째, 그와 같은 사실에 기반을 두고 있는 명확한 가설, 넷째, 이론적으로 도출된 명확한 추론이다. 그 무엇이라고 뚜렷하게 정의내릴 수 없는 막연한 인상은 합리주의 체계에서는 설 자리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앎의 영역이라든지 과학의 영역을 벗어나서 인간의 정신 속에 깃들어 있는 삶 자체와 그 정신이 내면적이며 개인적으로 추구하고 있는 것들을 살펴보자면, 우리는 그 전체적인 정신성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합리주의가 상대적이며, 피상적인 사실들만을 설명해 주고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의 심중心中에 잠겨 있는 직관력이 합리주의가 도출해 낸 결과에 승복하기를 거부한다면, 합리주의가 우리들을 납득시키거나, 우리들이 먼저 가지고 있던 생각들을 바꾸어 놓을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들에게 어떤 직관력이 있다면, 그것은 합리주의의 보금자리인 수사학의 차원보다는 한층 더 깊은 차원에서 나올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들의 모든 잠재의식적인 생활, 여러 가지 충동들, 욕구들 및 예견들은 그와 같은 차원에서 나오는 것이라는 전제前提를 가능하게 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14)
III. 나가는 말
종교적인 태도가 갖고 있는 가장 뚜렷한 특징이란, 가장 극단적인 경우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서,‘자기 굴복Self surrender’에서 연유하고 있는 일종의 기쁨이라는 사실에 도달하는 것이다. 우리가 굴복하고 있는 대상에 대한 실재감은 우리가 앞에서 말한 그 기쁨의 어떤 특별한 양상과 상당히 깊은 관련성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그것의 전체적인 현상은 그 다음에 잇따르고 있는 단순한 공식들보다 더 복잡하다. 그런 체험을 한 사람들의 주관적인 고백을 보게 되면, 우리는 그런 사람들 속에서 비탄과 희열이 교대로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다. 여러 신들을 만든 최초의 창제자創製者는‘두려움’이라고 하는 고대의 격언을 통해 모든 종교사에서 상당히 많은 지지를 얻고 있다. 그렇지만 종교사는 또한 종교 속에서 기쁨이 더욱 그 힘을 발휘하고 있다는 사실도 보여주고 있다.15)
신은 한 분일 수 있지만, 신을 만나는 사람들의 감정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의 종교적인 삶의 정당성과 신에 대한 증명 문제는, 어찌 보면 신의 존재를 인정하는 순간 모든 의문이 해결되는 다원적인 문제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어느 누가 신에 대해 경험했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무작정 받아들이거나 신비주의적이라며 몰아세우기보다는 그 사람의 심리상태나 종교성, 과거의 경험 등을 고려해보는 것이 많은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열린 자세라 할 수 있겠다.
종교는 매우 다양한 사건과 결과들을 낳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 다양한 사건과 결과들 중에서도 신의 동일한 속성을 얻을 수 있다는 희망(?)은 나로 하여금 매우 중요한 삶의 방향타가 되어줄 것이다.
‘융Karl Gustaf Jung’은 자신의 신神존재 증명-사위 일체설 등-에 대한 신학자들과 심리학자들의 부정적인 견해에 대해 침묵했었다. 그런 그의 퀴스나하트 집 현관문에는“하나님을 부르든지, 그렇지 않든지 간에 하나님은 거기 계시다.”라는 말이 적혀 있다. 그러므로 누군가 신을 명확하게 증명하고 그 신을 찾는다고 해서 그만의 신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신을 증명하지 않고 부르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신은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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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미자 저[종교 심리학], 장로회신학대학교출판부 2001 ; p4
2) 사미자 저[종교 심리학], 장로회신학대학교출판부 2001 ; p4
3) 사미자 저[종교 심리학], 장로회신학대학교출판부 2001 ; p15
4) 사미자 저[종교 심리학의 어제와 오늘], 교회와 신학 1989 ; p310
5) 사미자 저[종교 심리학의 어제와 오늘], 교회와 신학 1989 ; pp310~311
6) W. James 저, 김성민 역[종교체험의 여러 모습들], 대한 기독교 서회 2003 ; p79
7) 사미자 저[종교 심리학], 장로회신학대학교출판부 2001 ; p37
8) 사미자 저[종교 심리학], 장로회신학대학교출판부 2001 ; p54
9) 사미자 저[종교 심리학], 장로회신학대학교출판부 2001 ; p57
10) W. James 저, 김성민 역[종교체험의 여러 모습들], 대한 기독교 서회 2003 ; p80
11) W. James 저, 김성민 역[종교체험의 여러 모습들], 대한 기독교 서회 2003 ; p80
12) 오또는 독일어의 heilig(神聖)라는 말이 합리적이고도 도덕적이어서 ‘표현하기 어려운’ 본질을 나타낼 수 없다고 하여, 라틴어의 누멘(numen: 아직 명확한 표상을 갖추지 않은 초자연적 존재)에서 이 말을 새로 만들었다. 이 말은 사람에게 피조물(被造物)이라는 느낌을 불러일으키는 ‘무서운 신비’로서, 이를 다시 분석하면 외경심(畏敬心)을 불러일으키는 전율적(戰慄的)인 무서움, 압도적인 권위, 세력 있는 것, ‘절대타자(絶對他者)’로서의 신비이다. 그것은 또한 사람의 영혼을 홀리는 것으로 가치로서는 존엄(尊嚴)이다.
13) W. James 저, 김성민 역[종교체험의 여러 모습들], 대한 기독교 서회 2003 ; p109
14) W. James 저, 김성민 역[종교체험의 여러 모습들], 대한 기독교 서회 2003 ; pp104~105
15) W. James 저, 김성민 역[종교체험의 여러 모습들], 대한 기독교 서회 2003 ; p107
출처 :킴스심리연구소 / 한국상담교육원 원문보기▶ 글쓴이 : 김상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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