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막!! 성전!! 하나님의 집!!!

[스크랩] 행진하기 (민10:1-10)- 성막론 끝

하나님아들 2014. 1. 21. 20:16
행진하기 (민10:1-10)

이 시간에는 “행진하기”라는 제목입니다. 본문은 나팔의 사용의 규칙과 이스라엘의 행진에 관한 기록입니다. 이 행진하기가 성막론에 들어가는 이유는 이스라엘이 성막을 중심으로 행동하였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 행진하려면 먼저 성막 위의 구름이 이동을 합니다. 그 때 제사장이 백성을 모으는 긴 나팔 소리가 들리고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소리를 듣고 신속히 장막을 정리하여 짐을 꾸립니다. 그 때 성막도 레위지파에 의해서 이동할 준비를 갖춥니다. 그런 다음 또 다시 제사장이 뚜우 뚜우 뚜우 뚜우 끊어서 부는 행진 나팔 소리가 나면 그 소리에 맞추어 지파별로 대열을 갖추어 행진하게 됩니다.

이 행진하기에서 보여주는 진리는 넓게는 천국 가는 진리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 말씀 따라가다가 가나안에 이르렀듯이 우리가 예수 믿고 하나님 말씀 따라가면 점차 성화에 이르게 됩니다. 그런데 좁게는 행진하는 행동원리를 가르쳐 준다는 점에서 말씀대로 사는 비결을 교훈해 주고 있습니다.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 힘 든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 진리는 성막이 앞서 가 주심과 나팔소리에 담겨 있습니다.

그럼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수 있게 됩니까?

1. 성령이 앞서 가 주시는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민9:17-23에 “구름이 성막에서 떠오르는 때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곧 진행하였고 구름이 머무는 곳에 이스라엘 자손이 진을 쳤으니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명을 좇아 진행하였고 여호와의 명을 좇아 진을 쳤으며 구름이 성막 위에 머무는 동안에는 그들이 유진하였고 구름이 장막 위에 머무는 날이 오랠 때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명을 지켜 진행치 아니하였으며 -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 임재의 상징인 성막과 그 위의 불기둥 구름기둥을 따라서 움직였습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중요한 행진원리였습니다. 여호와의 성막이 항상 이스라엘 2,000규빗 앞에서 인도하였습니다. 2는 증거의 수요, 1,000은 충만의 수입니다. 즉 증거하시는 영 성령충만을 시사합니다. 여기서 보여주는 주요한 행동의 원리는 성령 충만이 임하면 우리가 요청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이끄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지는 능력입니다. 아주 중요한 성도의 행동원리예요. 이것이 없이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산다고 하는 것은 그냥 율법 준수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러나 율법 준수가 잘 됩니까? 율법이 선하고 아무리 숭고한 하나님의 뜻이어도 은혜 없이는 도리어 시험 들게 하고 넘어지게 할 뿐입니다.

이번에 노인과 부녀자 26명을 죽인 유영철씨도 성령이 인도했더라면 그런 일이 있을 수 없습니다. 충격적인 것은 그 사람도 과거에는 성가대 대원까지 한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말씀도 은혜도 모르니 그 아무 것도 아닌 돈 없음에 충격을 받아 부자들을 죽이고 이혼 당하고 만난 약혼자에게 배신당해 자기와 관계가 없는 여자들을 죽였습니다.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성령의 은혜를 받지 않으면 성가대원이 아니라 그 어떤 사람이라도 넘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을 받으면 신령한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집니다. 그 완전한 율법의 요구라도 들어주게 됩니다. 그래서 제가 늘 가르쳐 주고 가르쳐 주는 말씀 롬8:4-14에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은 의를 인하여 산 것이니라 -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성령께서 앞서 인도해 주시는 이 은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 방법이 성령충만입니다. 이스라엘은 성막이 머물면 그들도 머물고 성막이 앞서가면 그들도 따라갔습니다. 너무나 간단한 방법입니다. 이것이 신앙생활의 원리요 하나님 사역의 원리입니다. 그런데 “성령을 따라 살아라” 하면 “어떻게 따라 가는가” 성령을 따라 살고 싶어도 따라 산다는 의미를 몰라 수많은 세월을 고민하며 방황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것이 성령충만을 받아 살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은 이 말씀을 이렇게 간단히 이해할 수 있으니 얼마나 복된 사람들입니까? 이것이 신앙생활의 중요한 방법입니다.

2. 하나님의 말씀 따라 움직여야 합니다.

본문 민10:1-2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은나팔 둘을 만들되 쳐서 만들어서 그것으로 회중을 소집하며 진을 진행케 할 것이라” 하셨습니다.

여기 은나팔이 무엇입니까? 은으로 만든 나팔인데 은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이요, 나팔은 말씀의 상징입니다. 특히 두 나팔을 불라 하셨는데 2는 증거의 수입니다. 그런데 반드시 아론 계열의 제사장이 불어야 합니다. 그들은 특별한 기름부음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이 나팔은 망치로 쳐서 만들었습니다. 그러니까 연단 혹은 경험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은나팔은 복음의 나팔이요, 또 경험하고 깨닫고 능력 받아 전하는 살아있는 생명의 말씀입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변화시킨 성령으로 전해진 신령한 말씀이기도 합니다.

이스라엘은 이 은나팔에 의해서 움직였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 성경대로 살아야 합니다. 혹시 성령께서 이끄시는데 무슨 말씀이 필요하냐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성령만 필요하다고 주장하면 신비주의가 되고, 말씀만 필요하다고 주장하면 율법주의가 됩니다. 한 편만 주장하면 잘못입니다. 한 편만 주장하게 되면 큰 실수를 저지르도록 사단의 큰 시험이 옵니다.

우리 영혼에는 성령으로 충만해야 하고 우리의 지각에도 말씀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그래서 기도할 때도 영으로 기도하고 마음으로 기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마음에도 열매를 맺어 행해야 할 바를 구체적으로 알게 됩니다. 행6:3에 집사를 뽑을 때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야 한다 했고, 행6:5에도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자라 했는데 여기 지혜나 믿음은 말씀을 기본으로 하기 때문에 말씀충만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제사장의 나팔 신호도 여러 가지였습니다. 나팔이 둘인데 하나만 불면 지파의 족장들만 모이라는 신호입니다. 쌍나팔을 불면 백성들에게 신호하는 것인데 길게 불면 온 회중을 회막 앞으로 모으는 나팔이요 행진을 준비시키는 나팔입니다. 나팔을 끊어서 불면 행진하라는 신호요 혹은 전쟁을 알리는 신호였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말씀도 여러 가지임을 시사합니다.

먼저 객관적 구속사의 말씀이 있습니다.

10:4에 “하나만 불 때에는 이스라엘 천부장 된 족장들이 모여서 네게로 나아올 것이며”
이 나팔은 각 지파의 대표들인 천부장된 족장들이 모이는 신호입니다. 이것은 작전회의나 하나님 명령을 지시할 때 하는 것으로 백성과는 간접적이거나 대표적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도 예수님께서 이루신 객관적 구속사역의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가 나기도 전에 하나님께서 그 아들 예수님을 보내사 죄인을 구원하시는 사역을 이루시고 우리의 구주가 되셨습니다. 이 구속사적인 성경 연구도 필요합니다. 이 연구가 잘 될수록 예수님은 우리의 구주라는 확신에 서게 됩니다. 그러나 이 초보에 머물면 안 됩니다. 초보란 더욱 견고해야 할 필요가 있으나 더 발전해 나가야 하며 또 다른 나팔도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두 번째 전도의 말씀이 있습니다.

10:3에 “두 나팔을 불 때에는 온 회중이 회막문 앞에 모여서 네게로 나아올 것이요”10:7에도 “ 또 회중을 모을 때에도 나팔을 불 것이나 소리를 울려 불지 말 것이며” 그랬습니다.
백성들을 회막 앞으로 모이게 할 때 나팔 부는 법을 여기에 말씀합니다. 그 방법은 두 나팔을 불되 소리를 울려 불지 않고 길게 부는 것입니다. 울려 불지 말라는 것은 길게 불라는 뜻입니다. 원문에 “울려 불지 말라”는 “데카에템 테루아”라고 되어 있는데 ‘경보음을 내다, 폭발음을 내다.’라는 뜻으로 “뚜우 뚜우 뚜우 뚜우” 끊어서 행동을 유발시키도록 급박하게 내는 소리입니다. 그러나 회중을 모으는 나팔소리는 뱃고동 마냥 “뚜우우우우”하는 연속음이었습니다.

이 긴 쌍 나팔 소리는 오늘로 치면 전도하는 말씀입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이 말씀으로 죄인들을 예수님 앞에 모읍니다. 이 나팔은 쌍나팔이기 때문에 쌍이란 증거의 숫자요 신구약을 암시할 수도 있습니다. 신구약을 비교해 가면서 확실하게 증거해야 합니다.

다음은 주관적 구속사의 말씀이 있습니다.

10:5-6에 “너희가 그것을 울려 불 때에는 동편 진들이 진행할 것이고 제 이차로 울려 불 때에는 남편 진들이 진행할 것이라 무릇 진행하려 할 때에는 나팔 소리를 울려 불 것이며”
행진을 알리는 나팔은 끊어서 부는 소리입니다. 전쟁 시에 부는 나팔도 이렇게 끊어서 불러 행동을 유발시키는 급박한 나팔소리였습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성도들의 실재적인 삶에 적용함입니다. 이 때는 영적인 전쟁입니다. 살아도 말씀 붙들고 살고 죽어도 말씀에서 죽어야 합니다. 그래서 서신서도 보면 초반부가 복음의 교리라면 후반부는 생활편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성도들이 어떻게 믿고 행해야 할 것인가를 잘 가르쳐 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도들의 생활의 원리는 성령입니다. 성령충만하십시다. 그리고 성도이 생활원리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말씀을 잘 배우고 그 말씀대로 전도하고 살아가십시다. 그래서 모두 저 진리의 가나안에 도달하시는 영광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출처 : 한국강해설교연구원
글쓴이 : agaser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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