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의 엔진을 켜라
성경본문: 갈3:1-9절
우리 주변에 무기력한 인생, 미지근한 신앙생활, 삼류신앙생활을 하는 근본적인 원인은 복음의 엔진이 꺼져 있거나 복음의 변질에 달려 있습니다. 복음의 엔진이 꺼지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점점 멀어지며, 예배가 싫증나며, 기도생활이 멈추어지게 됩니다. 그 뿐만 아니라 복음이 무너지면 인생의 근본이 흔들리며, 세속주의에 빠져들어 삶의 중심이 무너지게 됩니다. 그때에 멈추어진 복음의 엔진을 점검하고. 복음의 엔진을 다시 켜야 합니다. 신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복음의 엔진이 살아 있는 것입니다. 좋은 자동차일수록 엔진이 좋은 것처럼 좋은 성도는 복음의 엔진이 좋아야 합니다. 복음의 엔진을 옛날 것 그대로 사용하기보다는 강력한 예수의 복음으로 엎그레드시켜야 합니다. 복음의 엔진이 파괴되면 삼류신앙생활을 하게 되든지 아니면 인본주의 사상에 빠져 하나님없이 살아갑니다. 내 영혼이 침체되고 있습니까? 신앙생활이 진부합니까? 그렇다면 다시 한번 복음의 엔진을 켜세요. 강력한 복음의 능력으로 무장하세요. 예수의 복음이 내 이성과 경험과 의지를 이끌어갈 수 있도록 우선순위를 두세요. 신앙의 열정과 헌신은 복음의 엔진에서 나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장 먼저 복음의 엔진을 점검하며, 복음속에 성령의 기름이 떨어지지 않도록 가득 채워야합니다. 살아있는 복음과 성령의 충만함은 최고의 신앙수준을 만들어냅니다. 마른뼈를 살리는 능력이 있습니다. 세상을 바꾸는 강력한 힘이 있습니다. 확실한 복음, 성령의 기름부으심을 받을 때 파워 있는 삶, 능력있는 그리스도인이 되게 합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는 자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주신 복음을 내려놓고, 복음의 엔진을 꺼놓고 인본주의 신앙으로, 자기 노력으로,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예수를 믿으려고 몸부림친다면 참으로 어리석은 자입니다.
지금은 ‘소련’이라 부르지 않지만, 당시 공산주의 연합국가가 바로 소련입니다. 소련은 미국과 대립각을 세우며 냉전시대를 이끌었습니다. 소련은 미국과의 군비경쟁에서 뒤지지 않았고, 과학경쟁에서도 뒤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곳에 3대 기적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나무가 많은데 종이가 없었고, 원유가 많은데 휘발유가 없었고, 땅은 넓은데 식량이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해서, 소련은 충분히 잘 살 수 있는 나라였는데, 미국과 쓸데없는 경쟁하느라고 경제적으로 뒤처져 결국 무너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이면에 나타난 것이고 내면에 보이지 않는 숨겨진 진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잘못된 무신론적 공산혁명입니다. 그들은 교회를 파괴하고, 주의 종들을 시베리아로 유배시키고 하나님을 멀리했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 소련 땅에는 하나님의 저주가 임했으며, 그 땅에는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축복의 문도 닫히게 되었습니다. 멀리 볼 필요도 없이 북한을 보면 더욱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같은 한반도인데 남쪽인 우리나라는 해마다 풍년이 들고 세계 10대 경제 대국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북한 땅은 황무하여 해마다 흉년들어 세계 최고의 빈민국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나라는 복을 받고, 하나님을 멀리하는 나라는 저주를 받습니다. 그것은 국가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가 사는 모든 삶에 적용이 되는 것입니다.
뉴욕 허드슨강 하류에 가면 솔트라인(소금경계)이 있다고 합니다. 솔트라인이란? 바다에서 올라오는 소금물과 상류에서 내려오는 민물이 만나는 선을 말합니다. 날이 가물어서 강물이 약해지면, 바닷물이 역류해서 허드슨 강으로 올라옵니다. 그러면 식수를 공급하는 수원지가 위험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비가 내려서 물이 흐르면 민물이 바닷물의 세력을 계속 밀어내어 수원지가 안전해집니다. 이렇게 허드슨 강의 솔트라인은 끊임없이 밀고 당기는 일을 반복한다고 합니다. 신앙생활은 이 솔트라인과 같습니다. 우리가 육신의 생각과 세상의 욕심에서 떠나지 않으면 악한 것들이 우리의 영혼을 위협하고 결국은 죽이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가 영의 생각과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살아가면 우리의 영혼은 살아나게 될 뿐만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신령한 은혜와 복을 받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주제 : 우리는 율법이 아니라 믿음으로 말미암아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는 자가 됩니다.
질문 : 우리가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복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1. 우리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믿을 때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복을 받게 됩니다.
오늘날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복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얻게 됩니다. 예수님이 바로 약속의 자녀이며, 복의 근원이십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세상이 줄 수 없는 놀라운 복을 주시기 위하여 오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자세히 보시면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 성도들에게 계속해서 질문합니다. 누가 너희를 꾀더냐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육체로 마치겠느냐? 이런 질문을 계속 반복합니다. 이런 질문들을 간단하게 요약하면 너희가 왜 이렇게 어리석느냐? 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왜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에게 이렇게 야단을 치고 있습니까? 1절에 보면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힌 것이 너희 눈 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달려 돌아가신 것이 너희 눈에 환하게 보이는데 어떻게 해서 그것을 부정할 수 있느냐는 말입니다. 학교를 졸업한 사람이 계속 학교의 교칙과 학칙에 따라 살려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입니다. 군대를 전역한 사람이 사회에서도 계속해서 군대에서의 생활 규칙, 명령, 군법에 따라 사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아침마다 일어나 군가를 부르고, 군복을 입고 직장으로 나간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바보 소리 듣는 것이 당연합니다. 가끔 직업군인이나 장기 복무한 군인들이 자기집 아이들에게나 아내에게 군인같이 행동하도록 강요하여 괴로움을 호소하는 사람들을 더러 봅니다. 직장에서 은퇴한 사람이 집에서 여전히 회사의 규례에 따라 산다면 그런 사람을 우리는 바보라 부를 수밖에 없습니다. 사면 받아 풀려난 죄수가 일상생활에서 교도소의 규례나 교도관에게 받은 명령대로 산다면 그는 어리석은 사람이 틀림없습니다. 죄의 종에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아들로 입양된 사람이 크리스천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된 크리스천이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어진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을 얻고자 하는 것은 십자가의 사건을 무효화시키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우리 인생은 혼미함에 빠져 있으면 두 눈을 뻔히 뜨고도 볼 것을 못보는 경우가 흔히 있는 것 같습니다. 눈을 뻔히 뜨고도 바보짓하는 것이 우리 인생인 것 같습니다.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은 바울을 통하여 영광스러운 복음을 이미 받았는데 어리석게도 예루살렘에서 온 유대인들의 꾀임을 받아 은혜의 복음을 버리고 율법을 행함으로 의롭다하심을 얻으려고 하였습니다. 이 광경을 보고 바울은 너무 가슴이 아프고 안타까와서 그들에게 호소하고 있는 것입니다. “도대체 누가 너희를 꾀더냐” 사도 바울이 화가 났습니다. 갈라디아교회 성도들이 자신이 가르쳤던 복음에서 떠나 잘못된 가르침을 따라가는 것을 보고 분개했던 것입니다. 왜 이렇게 갈라디아 성도들을 보면서 바울이 분노하며, 강력하게 책망합니까? 갈라디아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복음, 십자가의 복음이 무시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구원의 길을 거부하며, 다시 인간의 구원의 방법으로 되돌아갔기 때문입니다. 즉 갈라디아 성도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버리고 다시 율법으로 돌아가자, 율법의 행위로 하나님께 도달하려고 하자 바울이 너무나 화가 난 것입니다. “오 어리석은 갈라디아인들아, 지금 제 정신이야? 너희가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줄 아느냐?”라고 한탄하면서 말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이 여러분에게 그대로 상속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갈라디아 성도들이 이 복음을 떠나서 다시 율법을 따라 살았습니다. 자신의 행위로 하나님께 도달하려고 한 것입니다. 자신의 행위로 아브라함의 복을 받으려고 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하트 모양의 열쇠이고, 자신의 행위로 하나님께 도달하려고 하는 것은 네모 모양의 열쇠입니다. 여러분이 아브라함의 복을 받기 위해서는, 네모 모양의 열쇠로는 아무리 열려고 해도 열 수가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을 믿는 것으로만 열 수 있습니다. 이 문은 하트 모양의 열쇠로만 열리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이것에 대해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자신의 행위로 율법을 지킴으로 하나님께 도달하려고 하는 자들은 바리새인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인이 된 자들은 제자들입니다. 행위로는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행위로는 바리새인밖에 될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게 된 자들이, 그들만이 제자가 될 수 있습니다.
2. 아브라함의 복을 받으려면 우리가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어야 합니다.
구약에서 존경하는 믿음의 사람을 말하라 하면 누구든지 아브라함을 빼놓을 수가 없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의 조상입니다. 복의 근원이 되며, 열방이 아브라함을 통하여 복을 받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잘 경외하고 저와 여러분들에게 있어서 믿음의 표본이 되는 귀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네 이름이 창대하게 되리라, 네가 큰 민족을 이루게 되리라, 네가 모든 족속의 복의 근원이 되리라”는 온갖 아름다운 복을 많이 받은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아브라함이 받은 복을 전수받으려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첫째 우리가 아브라함이 받은 복을 받으려면 아브라함의 언약에 동참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의 언약에 동참할 때에 우리는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의 조상이 누구입니까? 아브라함입니다. 아브라함은 우리와 혈통이 다르고, 문화도 다르고, 역사적 배경도 다른데 우리의 조상이 될 수 있습니까? 우리의 조상이 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언약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그 언약에 의하여 아브라함의 자손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 때,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언약하실 때, 많은 자에 대한 말처럼 ‘자손들’이라고 하시지 않고 한 사람에 대한 말로 ‘내 자손’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자손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 언약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한 사람을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갈3:16)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자손에게 언약하실 때, 한 사람을 지칭하는 ‘네 자손’이라는 말을 쓰셨습니다. 아브라함의 언약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하신 언약이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아브라함의 복을 받기 위해서는 그 언약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어지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어야만 합니다. 아브라함에게 하신 언약은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여러분에게 흘러 올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으면 아브라함의 복이 여러분의 것이 될 수 없습니다.
둘째, 우리는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의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율법의 행위를 지킴으로 아브라함의 복을 받을 수 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약속을 받을 그 때는 율법이 없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약속을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이 약속을 받기 위해서는 우리들도 아브라함과 동일한 절차를 밟으면 됩니다. 이 약속이 율법이 없을 때 받은 약속인데, 율법을 통해 이 약속을 받으려는 것은 어리석은 행위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아브라함의 자손이 됩니까? 7절을 보면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이 줄을 알지어다” 이제 바울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이 약속을 그 이전에 주신 또 하나의 약속과 연관시키고 있습니다. 8절에 보면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이 너를 인하여 복을 받으리라 하였으니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이 말씀의 중점은 이방인도 아브라함으로 인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복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오로지 믿음으로 받는 것입니다. “모든 이방인들이 너를 인하여 복을 받으리라”는 약속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취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미 갈라디아인들은 그 믿음에 의해 이미 아브라함의 자손이 된 것입니다. 유대주의자들의 주장과 같이 할례를 받아야만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만을 믿기만 하면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브라함의 복을 동일하게 받기 위해서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었던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네 자손’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셨기 때문에 우리는 이제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그 사람도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율법을 다 지키지 않아도 의인이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신 그분이 ‘의’이시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자녀가 되면 저절로 의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음으로 약속을 받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브라함의 자손은 율법을 지켜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자라는 것을 미리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9절에 보면 “하나님을 믿고 의롭게 된 모든 자는 아브라함의 자손이고 아브라함처럼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율법을 행위로 지키는 사람이 아브라함처럼 복을 받는 것이 아니라 누구든지 믿는 사람이 아브라함처럼 복은 받는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모든 율법을 지켰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 약속을 해 주신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에 그를 의롭게 여기시고 아브라함에게 이 약속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음으로 약속을 받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브라함의 자손은 율법을 지켜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자라는 것을 미리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의롭게 된 모든 자는 아브라함의 자손이고 아브라함처럼 복을 받을 수 있다. 율법을 행위로 지키는 사람이 아브라함처럼 복을 받는 것이 아니라 누구든지 믿는 사람이 아브라함처럼 복은 받는 것입니다.
3. 아브라함의 복은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은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이 율법의 지배아래 있기 때문입니다. 율법을 지키는 것으로 의로운 자가 될 수 있는 자가 있겠습니까? 아무도 없습니다. 이 세상에 하나님이 주신 율법을 100% 완전히 지키는 사람이 있습니까?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이 세상에 죄를 짓지 아니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아담의 피를 받고 태어난 자는 모두 다 죄인입니다. 한명도 의인이 없습니다. 우리는 이미 율법을 따라 모두가 죽은 자들입니다. 더 이상 소망이 없는 자들입니다. 이것이 성경이 강조하는 내용입니다. 율법에 따라 죽어야 다시 예수 그리스도에 의하여 살아날 수가 있습니다. 율법에 대하여 살려고 하면 예수님이 나에게 더 이상 필요가 없고, 하나님의 구원의 길을 거역하는 무서운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브라함이 무엇으로 말미암아 의롭다하심을 받았습니까? 창15:6절에 보면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지금 아브람에게 대를 이를 자식 한명이 없는데 하나님이 그를 밖으로 데리고 나가 하늘을 보시며, 앞으로 네 자손이 하늘의 별처럼 많이 얻게 될 것이다는 이상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현실적으로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상황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설득되어 여호와의 말씀을 믿을 때 하나님은 그것을 보시고 의롭다 여겨주셨습니다. 즉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를 의롭다고 여기셨습니다. 갈3:8절에 보면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인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습니다. “너로 인하여 그 땅의 모든 족속이 복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 축복의 메시지는 이미 약속으로 주어진 것입니다. 그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면 우리는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의 복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이 여호와의 말씀을 믿으매 그를 의로 여기신 것은 미래에 의롭다 여기심을 받는 길을 분명히 제시하신 것입니다. 즉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는 방식은 율법을 지키는 것이나 인간의 선행이나 노력으로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는 자를 의롭다 여기시는 법칙을 미리 아브라함을 통하여 보여주신 것입니다. 롬4:3절에 보면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가 되었느니라”
오늘날 우리가 아브라함의 복을 받는 비결이 무엇입니까? 그 길은 너무도 쉽고 간단합니다. 우리가 단순히 어린아이처럼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기만 하면 아브라함의 복은 저절로 임하게 되어 있습니다. 9절을 보면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그 아브라함의 믿음이 오늘날 우리에게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자연스럽게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고 아브라함이 받은 복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자손답게 믿음으로 살때에 아브라함이 받은 복을 받게 될 줄 믿습니다. 충남 부여에 사는 어느 장로님 간증입니다. 그 장로님은 수박농사를 짓고 계시는데, 어느 주일 날 교회 가기 전에 수박밭을 돌아보니, 수박 꽃이 만발해 있더랍니다. 저는 수박농사를 어떻게 짓는지 잘 모르지만, 수박은 수박 꽃이 만발 해 있을 때 인공수정을 시켜야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날이 주일이니 교회는 가야되겠고 하여 어찌할 바를 몰랐답니다. 그렇지만 그 장로님은 집사 시절에 ‘나는 죽을 때까지 꼭 주일을 잘 지키겠다.’고 다짐했던 것이 기억이 나더랍니다. 뿐만 아니라, 교회의 장로가 되어서 교인들에게 본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주일학교에서 학생들을 맡아 가르치면서 주일을 어기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다음과 같이 기도했다고 합니다. “하나님, 수박 농사를 망친다 하더라도 먼저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내 사명을 감당하겠습니다.”라고 말입니다. 그렇게 주일 예배를 마치고, 학생들을 가르치고는 부랴부랴 수박밭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런데 그 밭에서 깜짝 놀랄 일이 벌어지고 있더랍니다. 수박밭에 웬 개미떼가 그렇게 많은지 사방이 온통 개미떼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장로님이 그 개미들의 동태를 가만히 살펴보니, 개미가 수박 꽃에 붙어서 자연 수정을 시켜주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그 장로님의 온전한 믿음을 보시고, 개미를 통해서 꽃을 수정시켜주시고 풍성한 열매를 거둘 수 있게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날도 우리가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삶의 기준으로 삼고 오직 믿음으로 살면 아브라함이 받은 것처럼 아브라함이 받은 영적인 복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의 복을 받을 뿐만 아니라 열방에게 축복의 통로가 될 수 있는 자의 반열을 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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