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설교 모음

[스크랩] 네종류의 구원

하나님아들 2012. 8. 13. 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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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는자들이 가장 흔하게 사용하는 용어중의 하나가 구원이다.  대개는 영원지옥에서 구원받는 것을 가리켜 말할 때가 많은 것 같다.  그러나 성경에서의 구원의 개념은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다.  성경에서 나타난 구원의 개념은 네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회개를 통한 지옥에서의 구원이다.  사도행전 16장 31절에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고 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이 말씀을 가지고 예수를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는다라고 말한다.  그런데 예수의 무엇을 믿어야 할지 알지 못한채 예수의 존재를 그냥 시인하기만 하면 구원받는 것으로 생각한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자신이 진정 죄인임을 깨닫고, 죄인으로 지옥형벌을 당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인식하며 자신이 해결할 수 없는 죄의 문제를 예수 그리스도가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희생양이 되셨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  이것이 칭의이다.  로마서 3장 23절로 24절에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고 하였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이 진정 자신을 위한 것이었음을 깨닫고 애통하게 될 때 감히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는 죄인이지만 아들의 피를 보시고 의롭다라고 칭하시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놓으신 것이다.  이것은 실제적인 의를 이루어야 할 것과 구분되어야 한다.

 

그러나 성경은 칭의를 구원이라 말하지  않는다.  세례요한도 요단강에서 세례를 주면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을 것을 말하였고(마 3:8),  예수님께서도 복음을 전하실 때 회개하라 하셨다.(마 4:17)    하나님의 공의에 의해서 죄의 삯은 사망이라 하였기 때문에(롬 6:23), 죄사함이 없이는 구원도 없는 것이다.  자신이 진정 죄인임을 깨닫고 그 죄를 어찌 할 수 없는 것을 깊이 인식할 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복음이 되고 십자가에서 흘리신 주님의 보혈을 의지하여 참된 회개가운데 과거의 마음과 행동으로 지은 모든 자범죄가 사함을 받을 때 지옥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이다.  칭의는 구원의 필요성을 깨닫고 신앙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출발점이지 이렇다할 구원의 상태는 아닌 것이다.  칭의를 거치지 못한 모든 사람들은 그들이 교회를 얼마나 열심히 출석하든지 어떤 대단한 일을 한다 하여도 종교인에 불과하다. 

 

누가복음 7장 36절로 47절에 죄인인 여자와 바리새인 시몬이 대조되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47절에 '그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그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고 하셨다.  죄사함도 과정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처음에는 자신의 행위로 지은 죄를 회개하고 사함받는데 이것이 적은 죄사함이다.  행위로 지은 죄가 회개되고 나면, 이제 자신의 마음에 있는 죄들을 토설하며 회개하게 되는 데 마음의 죄까지도 다 사함받는 것이 많은 죄사함이다.  이렇게 행위와 마음으로 지은 모든 죄를 사함받게 될때 지옥에서 구원받는 것이다.  베드로후서 3장 9절에서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고 하였다.  60억 인구중 한 명도 지옥가는 것을 원치 않는 것이 아버지의 뜻이다.  참된 회개를 통하여 과거의 모든 자범죄를 사함받고 지옥에서 구원받기를 원하신다. 

 

둘째는 양심의 악에서 구원을 받는 것이다.  과거의 모든 자범죄를 사함받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 양심은 여전히 악하고 더러워서 악을 많이 행하게 된다.  에베소서 2장 1절에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라고 하였는데 바로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의 영이 살아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으로 원죄가 해결되어 신생아는 죄가 없다.  그래서 그 영이 살아 있는 상태이다.  그러나 성장하면서 자의식이 형성되고 몸에 심겨져 있는 죄성의 충동을 받아 죄의 소욕을 가지게 될 때 다시 그 영이 죽게 된다.  영이 죽게 되므로 영의 중심적인 기능을 담당하는 양심도 약화되고 악하게 되며 더럽혀 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 살아나겠다고 하셨는데(요 5:25) 이 때 살아나는 것이 바로 영이다.  영이 살아날 때 우리의 양심가운데 악이 일거에 씻김을 받게 되는데 이것을 중생이라 한다. 

 

히브리서 9장 14절에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라고 하였고 히브리서 10장 22절에는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라고 하였다.  우리의 마음에 예수 그리스도의 피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되는 것이 바로 중생인 것이다.  중생하지 못한 사람은 행위나 마음으로 계명에 어긋나는 구체적인 죄를 짓지 않는다 하여도 그 양심이 악하므로 끊임없이 그 악을 발산하게 되어 있다.  가령, 상대방이 자신의 마음에 맞지 않는 말을 하였을 때 거기에 대해 짜증섞인 반응을 보인다면 그것은 구체적인 죄라고는 할 수 없어도 그 속에 있는 악이 나온것이라 할 수 있다.   디도서 3장 5절에는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라고 하였다.   우리의 행위의 의가 아닌 자신의 깊숙이 감추어져 있는 악을 깨닫고 통회하며 십자가의 대속을 의지하는 믿음으로 회개에 합당한 삶을 살아나갈 때  양심의  악을 일시에 씻어주심으로  구원을 향한 여정이 한층 더 용이하게 되는 것이다. 

 

베드로전서 3장 21절에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고 하였다.  하나님과 교통하도록 주신 영이 죽어 그 기능을 하지 못하므로 하나님과 온전히 교통할 수 없었지만 영이 살아나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우리의 양심의 악을 씻기실 때 선해진 양심은 영의 본연의 기능을 하고자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다. 

 

셋째로 율법에서의 구원이 있다.   시내산에서 모세를 통하여 율법을 받은 이후 모든 자들이 율법의 저주가운데 갇히게 되었다.  갈라디아 3장 10절에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에 있나니 기록된 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모든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에 있는자라 하였음이라'고 하였고 로마서 3장 19절에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게 하려  함이라'고 하였다.  율법은 지켜야 구원을 받는데 율법의 요구를 이룰 사람이 없으므로 모든 사람이 율법의 정죄를 받을 수 밖에 없고 이것이 곧 율법의 저주가운데 갇히게 된것이다.  율법으로는 죄를 깨닫는 것이지  하나님 앞에서 율법의 행위로 의롭다 하심을 얻을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롬 3:20)  의로운 삶을 위해 율법을 주셨지만 로마서 4장 15절에 '율법은 진노를 이루게 하나니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법도 없느니라'고 하신 것처럼 율법을 통하여 죄가 드러나게 되고 율법의 정죄가운데 우리를 사망으로 이끌게 된 것이다.(롬 7:9~10) 

 

그러나 로마서 8장 2절에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고 하셨듯이 거듭나면서 영혼가운데 생명의 성령의 법이 형성되면서 의로운 생명이 시작된다.  그러므로 의를 규칙적으로 행할 수 있는 생명이 되는 것이다.  영가운데 하나님의 의가 입혀지므로 율법의 요구를 완전히는 아니더라도 의로운 삶을 어느 정도 일정하게 살 수 있음으로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 율법의 정죄에서 해방될 수 있는 것이다.  로마서 7장 4절로 6절에서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는 다른 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에는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 중에 역사하여 우리로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였더니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율법 조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고 하였다.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한 주체는 우리의 죄이다.  우리 속에 있는 죄와 사망의 법이 완전히 뿌리 뽑힌 것은 아니지만 거듭나서 하나님의 의가 영가운데 새겨짐으로 몸가운데 있는 정과 욕심으로 역사하는 죄성의 세력에 큰 제재가 된다 할 수 있다.   율법이 선한 것이지만 그로 인하여 우리 속에 있는 죄가 밝히 드러나므로 율법의 정죄를 받아 우리를 옭아매었던 것이 죄의 권능이었다. 그리하여 고린도 전서 15장 56절에 '사망이 쏘는 것이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고 하였다.  즉 죄로 인하여 사망의 찌르는 것이 합법적으로 역사하며 죄는 율법을 통하여 율법의 요구를 이룰 수 없는 인간속에 왕노릇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죄의 세력이 의의 형상으로 인하여 죽임당함과 같이 그 세력을 잃게 되는 것이다.  장차 이 죄성이 완전히 뿌리 뽑혀 성결을 이루기 까지 나아가야 한다.

 

로마서 6장 2절에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라고 하였고 6절로 7절에서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고 하였다. 죄에 대해 죽어 더이상 율법의 정죄에서 해방되며, 율법의 영원한 저주에서 구원받고 죄성에서 구원받으며 죄가 주관치 못하는 구원이 바로 거듭난자의 특권이다.  죄성이 완전히 뽑히지 않으므로 쓴뿌리로 통하여 로마서 7장 21절로 25절 말씀과 같이 거듭난자에게도 때때로 죄로 인한 고통의 순간이 있기는 하지만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 결코 정죄함이 없게 되는 것이다.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을 통하여 거듭난자를 속여 정죄감을 주어 그 영혼을 죽음의 고통가운데 넣을 수 있으나(롬 7:11) 율법의 정죄에서 벗어난 자신의 정체성을 믿음으로 바라볼때 육신을 따르지 않고 영의 요구를 따라 사는 삶을 살 수 있게 된다. (롬 8:4)

 

넷째로 영혼 구원이 있다.  베드로 전서 1장 9절에 '믿음의 결국'을 영혼의 구원이라 하였는데 이것은 죄성이 뿌리 뽑히면서 혼의 불의함에서 해방되는 구원으로 영혼이 죄짓는데서 구원받은 것이다.  그리하여 영혼은 다시는 죄짓지 않게 된다.  그리하여 천년왕국때 어떤 형벌도 없는 구원을 받게 된 것이다.  요한복음 5장 29절에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고 하였고, 고린도 후서 5장 10절에는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 하였다.  믿는자가 지옥에서 구원을 받았으나 그것으로 형벌이 끝난 것이 아니라 선악간에 그리스도 심판대 앞에서 행한대로 받는 심판이 있다.  부활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믿는자의 특권과 같은 것이다.  불신자들은 부활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음부에서 꺼내지는 것이다.(계20:13)  그런데 생명의 부활이 있고 심판의 부활이 있다는 것이다.  지옥은 가지 않았으나 성결을 이루지 못한 자들은 천년왕국때 불가운데 지옥과 같은 형벌을 당하게 된다.  그래서 고린도 전서 3장 12절로 17절에서 잘 설명된 것처럼 불가운데 받은 것과 같은 구원을 받을 자도 있고(고후 3:15),  또한 하나님의 성전이 되었으나 성전을 더럽힌 자는 멸망당할 자도 있게 되는 것이다.(고후 3:17)  그러나 뽕나무 뿌리와 같이 우리 속에 깊숙이 박혀 있던 죄성이 뿌리 뽑히고 영혼이 성결해지면 영혼은 다시는 죄짓지 않음으로 모든 형벌에서 구원받게 되는 것이다.  물론 자신의 생각이 끝나는 십자가를 거치지 않았으므로 생각으로는 불의가운데 떨어질 때도 있겠지만 그 영혼이 의지적으로 죄를 지을 소욕을 더이상 가질 수 없게 된 것이다.  할렐루야! 

 

우리를 향하신 구원의 경륜은 마태복음 5장 48절에이름과 같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는 것이고 누가복음 6장 36절과 같이 '너희 아버지의 자비로우심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자가 되라'는 것이다.  그분의 거룩한 속성을 지녀 죄와 멀리 떠난 삶이 바로 아버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삶임을 다시 기억하며 그러한 구원을 향하여 달려가는 형제와 자매들 되기를 간절히 원한다.

출처 : 빌라델비아교회연합
글쓴이 : 레베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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