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설교 모음

[스크랩] 골3:1-3 위의 것을 찾으라

하나님아들 2013. 11. 20. 15:32

골3:1-3 위의 것을 찾으라
◉일시 : 2008년 6월 15일(주일) 1,2부예배
◉본문 : 골 3:1-3
◉제목 : 위의 것을 찾으라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 (골3:1-3)

공수부대에서 낙하산을 타려면 인간이 가장 공포를 느끼는 높이인 11m에서
많이 뛰어내리게 한다고 합니다. 지금 제가 여기 처음 섰는데요.
아래 강단보다 1m 높은데, 저는 100m 위에 선 것 같습니다.

참새와 독수리가 날아가다가 서로 정면 충돌했답니다. 이걸 무슨 현상이라 할까요?
보기 드문 현상...성지교회 온지 3년반만에 처음 여기 섰으니 보기 드문 현상이죠.
하나님께서 부족한 종을 통해 예비하신 은혜주실 줄 믿습니다.

요즘 제가 감동적으로 본 영화를 소개하고 싶습니다.
버킷 리스트(Bucket List)라는 영화입니다.
 
부제가 있는데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일들”입니다.
바시 말하면 버킷 리스트란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일들을 적은 목록을 말합니다.
안 보신 분들을 위해 간단히 줄거리를 말씀드리지요.
자동차 수리공으로 일하던 카터(모건 프리먼)는 암 진단을 받고 병원에 입원합니다. 같은 병실을 쓰게 된 이는 재벌 사업가인 에드워드 콜(잭 니콜슨). 전혀 다른 두 사람은 동시에 시한부 선고를 받게 되고, 동병상련의 처지에 놓이면서 서로 마음을 열어갑니다. 어느 날 카터는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을 목록으로 만들어 보라던 옛 교수의 조언을 떠올리고 ‘버킷 리스트’를 작성합니다. 이를 본 에드워드는 카터에게 ‘버킷 리스트’에 적힌 일들을 함께 해보자고 제안합니다. 그렇게 두 사람은 병원을 뛰쳐나가 목록에 적힌 일들을 하나씩 해나가기 시작합니다.
죽음이 선고된 두 노인이 버킷리스트를 작성하고, 그동안 앞만 보고 달리는 것에 급급했던 지난날을 돌아보게 됩니다. 카터는 ‘(가장, 남편으로서의) 의무’에 짓눌려 젊은 날의 꿈들을 외면했던 것에 아쉬움을 느낀다. 한편 에드워드는 하나뿐인 딸과 인연을 끊고 사는 자신을 돌아보게 되고, ‘버킷 리스트’를 실행하며 마침내 담 쌓고 지내던 딸에게도 화해를 청하게 됩니다.
카터와 에드워드가 함께 만든 버킷리스트는 이런 것들입니다. 스카이 다이빙 해보기, 카레이싱하기, 문신 새기기, 고급 레스토랑에서의 식사, 세렝게티에서 사냥하기, 만리장성에서 오토바이타기, 눈물나도록 웃어보기, 피라미드꼭대기 올라가기...
제가 이 영화에서 보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피라미드 꼭대기에 올라갔을 때 카터가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집트인들에게는 죽음에 대한 멋진 믿음이 있었다고 합니다.
영혼이 하늘에 가면(죽으면) 신은 두가지 질문을 했는데, 대답에 따라 천국에 갈지 말지가 결정되었다고 합니다. 첫 번째 질문은 “인생의 기쁨을 찾았는가?”입니다.
카터가 에드워드에게 ‘당신은 인생의 기쁨을 찾았냐’ 물었을때 자신있게 "Yes"라고 대답합니다. 두 번째 질문은 “당신의 인생이 다른 사람들을 기쁘게 했냐?”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질문에 에드워드는 어려운 질문이라며 자신이 딸과 담을 쌓고, 남남처럼 살게 되었는지를 이야기 하게 됩니다.

오늘 우리도 이 질문 앞에 우리 자신을 돌아보기 원합니다.
"인생에서 기쁨을 찾았는가?"
"당신의 인생이 다른 사람들을 기쁘게 해주었는가?"
우리도 언젠가 오늘, 이런 질문을 받을 때 부끄러움이 없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종말) 날, 하나님 앞에 서는 그 날을 바라보고 사는 인생되길 바랍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말씀의 제목을 “위의 것을 생각하라”로 정했습니다.

“위의 것을 생각하라”는 말을 듣는 순간, 어떤 분은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분이 있을 것 같습니다. 오늘 말씀에 보면 누가 위에 것을 찾아야 하는지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1절을 보면,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라고 말합니다. 위의 것을 찾아야 하는 사람은 누구인가요?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심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심을 받았으면 누구나 위의 것을 찾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솔직히 스스로에게 대답해 보십시오.
“나는 구원받는 하나님의 자녀입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십자가의 형벌을 받으셨고, 보혈의 피를 흘려 내 죄값을 담당해 주심으로 내가 거듭났고, 영생을 얻었고, 천국백성 되었음을 확신합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심을 받은 사람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위의 것을 찾고, 위의 것을 생각해야 하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요즘 인기있는 광고가 있는데 00텔레콤의 ‘되고송(song)’입니다. 그동안 기술 중심적이고, 차가운 이미지였는데 ‘되고송’을 통해 일상생활에서의 긍정적 의미를 강조함으로 새로운 브랜드 가치를 만들려는 시도입니다.
장동건이 욕조에 들어 누워 이런 노래를 부르죠.
“결혼 말 나오면 웃으면 되고/잔주름 늘면 작게 웃으면 되고/
꽃미남 후배 점점 늘어나면 연기로 승부하면 되고/
스타라는 게 외로워질때면 친구 얼굴 한번 보면 되고/생각대로 하면 되고.”
저는 이 광고에서 가장 좋은 말이 “생각대로 하면 되고”입니다.
생각대로 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생각하느냐는 무척 중요합니다.
생각의 힘은 엄청납니다. 제가 KBS에서 방영한 다큐멘터리 “마음”이 책으로 출판되어 구입해 읽어 보았는데요. 마음의 세계에 대해 무척 놀랐습니다. 워너비(BIID환자, 신체통합정체성장애)라고 들어보셨나요? 3인조 남성그룹인 SG워너비를 말하는 게 아니라 ‘want to be amputated’(팔다리를 자르고 싶어요)를 미국 발음으로 wannabe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Pd가 취재한 사람은 매우 평범한 50대 가장인데 그는 왼쪽다리를 자르고 싶어했습니다. 왼쪽다리가 자기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가 어릴때 바닷가에서 오른쪽 다리가 절단된 아이가 펄쩍펄쩍 뛰어다니는 것을 본 후 그는 그 아이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는 다리가 두 개인 것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말했습니다. 앞으로 20년을 더 산다면 워너비로 살고 싶다고 했습니다. 워너비들은 미국에서 수술받을 수 없어서, 멕세코나 태국에 가서 수술을 받는데 평균 1만달러의 정도를 지불하면서까지 수술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스스로 다리를 절단하고 장애인으로 사는 삶을 행복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을 하며 사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습니까?
플라시보(Placebo) 효과는 우리가 익히 많이 들었을 것입니다. 실제로는 치료에 도움이 되는 약이 아닌데도 단지 환자가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고 복용함으로써 실제로 병세가 호전되는 형상을 말합니다. 반면에 플라시보의 반대개념인 노시보(Nocebo)가 있습니다. 노시보는 나빠질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에 몸이 나빠지는 것입니다. 이 책은 운명에 영향을 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조심해야 함을 지적합니다. 의사가 건강한 할머니에게 “할머니 죄송한 말씀인데요. 할머니는 이 달을 넘기시기 힘들겠는데요.”하면 정말 할머니는 한 달 내에 돌아가실 가능성이 높습니다. 점쟁이가 “당신 이름으로는 서른 살을 넘기기 힘들다”고 말하면 그 소리를 듣고 이름을 안 바꿀 강심장이 몇 명이나 되겠습니까? 그래서 점집에는 가면 안됩니다. 점쟁이들은 인간의 심리적 약점인 노시보를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큐멘터리에서 실제로 노시보 실험을 했습니다. 다이어트 우유를 개발해 시음테스트를 한다고 인터넷에 광고를 내 사람을 모집했습니다. 총 일곱명 중 다섯명을 모집했고, 두 명은 실험하는 측에서 따로 불러 적당한 시기에 요구한 반응을 보이라고 했습니다.
아주 싱싱한 우유를 진행자들이 먼저 마시면서 다이어트에 아주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효능 설명도 했습니다. 차례로 한 잔씩 마시면서 소감을 물었습니다. ‘연하다’, ‘부드럽다’, ‘다이어트용이라서 그런지 가볍다’, ‘좀 가벼운 느낌이다’, ‘고소하다’는 긍정적인 반응이 나왔습니다. 그때 미리 부탁받은 한 사람이 갑자기 배가 아프다며 배를 잡고 고개를 숙였습니다. 왜 그러냐 묻자 갑자기 속이 안 좋다고 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표정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돌발상황이 생겨서 그렇다고 다시 맛에 대한 느낌을 물었습니다. 처음과는 사뭇 다른 느낌을 말했습니다. 이게 전형적인 노시보 반응입니다. 실험에 참가한 사람들을 돌려보내며, 혹시 몸에 이상이 생기면 치료해줄테니 연락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정말 한 명의 시음자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이 시음자는 온 몸에 두드러기처럼 발진이 생겼고 가려워 잠을 못 잤다는 것입니다. 아토피보다 더 심한 증세가 나타났습니다. 좋은 우유를 먹고 식중독이 생긴 것입니다.
왜 이런 노시보 현상이 일어났을까요? 그럼 플라시보 효과는 왜 일어나는 것일까요? 내가 무엇을 생각하고 사느냐가 무척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잘 될 것을 생각합니까? 나빠지고 어렵겠다고 생각합니까? 무엇을 생각하느냐에 따라 여러분의 삶의 질이 달라집니다. 하물며 땅의 것을 생각하는 사람과 하늘의 것을 생각하는 사람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생길까요?

오늘 본문, 골로새서 3장 2절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골로새서 말씀은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에게 주신 말씀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된 골로새 교회에 바울이 보낸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땅의 것을 버리고 영적인 것 곧, 하늘에 속한 것을 구할 자격이 있고, 하늘의 것을 구하는 것은 결코 무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위의 것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마6:33)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리스도인은 먼저, 다시 말하면 우선순위가 그의 나라와 영광이라는 것입니다.
(빌 3:19-20)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그들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멸망하는 자들은 땅의 일을 생각하지만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 땅에 살고 있지만 땅의 일을 생각하는 사람으로 살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하늘의 시민권자답게, 하나님나라의 통치를 받으며, 하나님의 법 질서 아래에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렇게 기도하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하늘의 시민권을 가진 사람, 그리스도와 살리심을 받은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하늘에서 이루어진 아버지의 뜻을 이 땅에 이루어지도록 실현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하늘에서 이루어진 하나님의 뜻을 알고 계십니까? 알아야 이 땅에서 아버지의 뜻을 실현할 것이 아닙니까?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 우리가 할 일이 있습니다.

1절에는 “위의 것을 찾으라”고 합니다. "찾으라"는 말은 '계속 힘들여 찾는 것'을 의미합니다. 구원의 은혜는 하나님께서 거저 주시는 것이지만 위의 것을 찾고 누리려면 우리의 노력이 요구되는 것입니다. 위의 것은 힘들여 찾는 자에게 보여집니다.
(마11:12)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히12:4 참조) 쉬운성경은 ‘세례자 요한 때로부터 지금까지 하늘 나라는 힘있게 성장하고 있다. 힘있는 사람들이 하늘 나라를 차지할 것이다. ’라고 번역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성장하고 있는데, 힘 있는 사람들, 침노하는 사람들, 위의 것을 찾는 사람에 의해 확장되고 있습니다. 위의 것을 찾는 사람을 통해 이 땅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집니다.
2절에서는 “위엣 것을 생각하라”고 합니다. "생각하라"란 말은 애착심을 가지라(Abbott), 즐기는 마음을 가지라(Bengel)는 의미입니다.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는 말은 염세주의(厭世主義)가 아니라 땅의 것에 지나친 애착을 가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땅 위의 것들 자체가 악한 것은 아니고, 그것들을 오용(誤用)함이 악한 것입니다(고전 6:12,10:23). 우리 본성은 땅의 것에 애착을 갖기 쉬우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려면 위의 것을 힘들여 찾고, 위의 것을 생각하고, 위에 것에 애착을 갖을 때 가능합니다.

저는 말씀을 준비하면서 “위의 것”이 무엇인지 하나님께 질문을 많이 했습니다. 그러면서 말씀을 계속 묵상하는 중 깨달은 것은 ‘위의 것이 무엇이냐’ 보다 ‘우리의 생각, 관점, 방향이 위의 것으로 바뀌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땅에 살고 있지만 위에 것에 애착을 갖고, 위에 것이 무엇일까 찾는 삶의 자세가 우리의 인생을 바꾼다는 것입니다.
약의 효능을 따지기 전에 긍정적 효과를 믿고 복용하면 질병이 호전되는 플라시보 현상이 나타나지 않습니까? 반대로 나빠질 것이라 생각하면 정말 나빠지는 노시보 현상이 생깁니다. 생각을 전환하면 우리의 인생은 무척 달라질 수 있다는 증거입니다.

무엇을 하든지 위의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위의 것을 찾아보십시오.
위의 것이라 하니 좀 망막할 것 같습니다.
직장 다니는 분들은 승진하고 인정받는 법을 아실 것입니다.
윗 분의 마음을 알아차리고 일하는 것입니다. 아부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윗분의 의도, 마음, 계획, 꿈을 알고 움직이는 사람은 잘 나갈 수 밖에 없습니다.
믿음생활을 잘 하는 비결도 같습니다. “윗 분의 눈치를 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 속에서 일어나는 작고, 큰 일들 속에서 윗분의 뜻을 생각해 보세요.
하나님의 눈치를 보면 하나님이 밀어주십니다.

작가 찰스 쉘던의 고전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책에서 도전하듯이 우리는 질문해 봐야 합니다. 레이몬드시 제일교회의 맥스웰목사님은 성도들에게 이렇게 제안했습니다. “교우 여러분, 예수님을 따르도록 합시다. 지금보다 더 큰 희생과 고통을 당할지라도 예수님의 발자취를 충실히 따릅시다. 이제부터 무슨 일을 행하든지, 우선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하고 정직하게 자문자답을 한 이후에 실천에 옮길 것을 서약합시다!” 그리고 성도들은 이 질문을 하며 순종할 때 놀라운 변화와 기적이 나타났습니다. 위의 것을 생각하는 사람, 예수님을 생각하는 사람은 이런 질문을 해야 합니다.
-예수님이라면 이 일을 하실 것인가?
-예수님이라면 이 말을 하실 것인가?
-예수님이라면 거기를 가실 것인가?
-예수님이라면 그 사람을 만나실 것인가? 예수님이라면?
이렇게 질문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위의 것을 찾고 생각나게 해 주십니다.
하지만 기억하십시오. 예수님이 원하는대로 순종하는 길은 우리에게 인생의 참된 행복과 기쁨도 주지만, 희생과 고통도 있습니다.
위의 것을 생각하고 위의 것을 찾는 삶을 사는 것도 축복 이상의 고난과 십자가의 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그 길을 가야 합니다. 그 날에 부끄러움 없도록!
오늘 우리는 너무 쉬운 길만 가려 합니다. 만사형통의 삶만 추구합니다.
야성을 잃어버린 동물원의 맹수처럼 살려합니다. 그게 믿음의 삶일까요?

박이화 시인의 <정글의 법칙>이란 시에 큰 도전을 받았는데 이런 내용입니다.
사자는 토끼 한 마리 잡기 위해 혼신을 다하고
거미는 나방 한 마리 잡기 위해 온 생을 짜낸다.
살아가는 일이 이렇듯 정글 아닌 곳이 없는데
어째서 너의 생엔 손톱도 발톱도 없는가?

“어째서 너의 생엔 손톱도 발톱도 없는가?” 혹시 우리의 모습 아닌가요?
손톱도, 발톱도 없는 사자로, 동물원에 갇혀 있는 사자처럼 살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뜻, 위의 것은 생각하지 않고 땅만 바라보고 살려 하지 않습니까?
이젠 그 유혹을 물리치고 좀 윗분의 눈치를 봅시다.
아버지의 뜻이 무엇일까?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은 뭘 원하실까?
내가 이렇게 살아도 되는 것인가? 어떻게 하면 야성있게, 정열적으로 살 수 있을까?

미국 펜실베니아 주립대학심리학 교수인 길슨박사는 다음과 같은 실험을 했습니다. 그것은 상자속에 두 장의 그림을 넣고 들여다보게 하는 것입니다. 상자속에 들어있는 그림 중 한 장의 그림은 웃는 얼굴이고, 다른 한 장은 슬픈 얼굴입니다. 두 개의 구멍에 눈을 대고 상자 안을 들여다 본 사람들의 반응은 각각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웃는 얼굴이 보인다고 말하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슬픈 얼굴이 보인다고 합니다. 그것은 어느 쪽 눈으로 어떤 그림을 보느냐에 따라 다른 반응이 나타나는 것을 측정하는 실험인 것입니다. 길슨박사는 이 것을 인식의 차단이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을 보는 태도가 어느 쪽 그림을 보는가를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슬픈 마음이나 부정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으면 상자속의 슬픈 얼굴을 보게 되고, 기쁘고 긍정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으면 상자속에 들어있는 웃는 얼굴을 본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상자 속에 땅의 것과 하늘의 것이란 사진이 들어있다면 어느 것이 보일 것 같습니까? 세상에, 땅의 것에 애착을 갖고 있으면 믿음으로 사는 것 같아도 땅의 것이 선명하게 보일 것입니다. 하늘의 것을 찾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일까,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 생각한다면 하늘의 것이 보일 것입니다. 날카롭게 손톱, 발톱을 세웁시다. 그리고 위의 것을 생각하며 하늘의 뜻을 이 땅에 이루는 삶 되길 축복합니다.

출처 : 양로원 갑천뉴스타트
글쓴이 : 엘리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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