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석 위에 짓는 집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21)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22-23)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24-27)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목표는 천국
본문은 산상수훈의 결론부에 해당합니다. 모든 교훈의 결말이 뭘까요? 21절 말씀에 나타나 있습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21절) 누가 천국에 들어가는가? 천국이 핵심입니다. 우리말 성경은 “천국”이란 한 단어로 되어 있지만 헬라어 성경에는 두 단어로 되어 있습니다. basileiva (왕국, kingdom)란 말과, oujranov"(하늘)이란 말이 합쳐져서 된 말입니다. 때로는 “하나님 나라”(막4:11)라는 말로도 사용합니다. 천국은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목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실 가장 소중한 선물도 바로 천국입니다. 성경창세기는 에덴동산으로 시작됩니다. 성경 마지막 부분인 요한계시록은 새하늘과 새땅으로 마감됩니다. 즉, 천국으로 시작하여 천국으로 마무리 됩니다. 성경 전체의 목표물이 바로 천국입니다. 예수님의 목표도 천국을 인간에게 주시는 것이요, 우리가 사는 목적도 천국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천국에 가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니고, 세상에서 사는 것을 더 중요한 것으로 여깁니다. 그러나 우리가 세상에 살면 얼마나 살겠습니까? 더 중요한 것은 천국을 준비하는 일입니다. 세례 요한이 첫 번째로 가르친 내용은 천국입니다. 예수님께서 공식적으로 가르치신 첫 번째 내용도 똑 같은 천국입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마4:17) 산상수훈의 첫 번째 교훈인 팔복도 천국으로 시작해서 천국으로 끝납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마5:3,10) 마태복음의 중요한 주제는 모두가 천국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13장의 천국 비유, 교회가 받은 천국 열쇠(마16:18), 24장 이후의 종말적 천국 등등. 우리는 싫든 좋든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할 수 밖에 없습니다. 지옥 아니면 천국입니다. 오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두 가지 천국을 얻기 위함입니다. 첫째는 내세 천국이요, 둘째는 현세 천국입니다.
첫 번째 받을 복은, 내세 천국입니다. 내세 천국은 무슨 공로로 들어가는 곳이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들어가는 곳입니다. 천국은 업적으로 가는 곳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로 가는 곳입니다. 어떤 사람이라도 자기 공로가 출중하여 천국 시민 자격을 얻지는 못합니다. 행위로써 하나님께 인정받을 만 한 사람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근본적으로 하나님 앞에 죄인들이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을 보세요.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조차 하지 않습니다. 만일 누가 나를 무시하고 존재조차 인정하지 않는다면 어떻겠습니까? 가장 큰 모욕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은 것은 하나님을 향한 최대의 모독이요, 반역적 죄악입니다. 하나님은 내 몸과 영혼을 창조하신 분입니다. 지금도 내 생명과 호흡을 주관하시고, 내가 생존할 수 있도록 공급하시는 분입니다. 그런 하나님을 인정하지도 않고, 섬기지 않았다면 그보다 더 큰 죄악은 없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씀합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3:23) “기록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롬3:10-12) 모든 사람은 하나님과 원수 된 상태에 있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다 지옥에 가야 합니다. 우리가 어떤 선한 일을 한다고 해도 이 원천적인 죄악은 씻을 수 없습니다. 즉, 자신의 공로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사람은 없다는 뜻입니다. 오늘 말씀에 보세요. 주님의 이름을 빙자하여 어떤 일을 한 것이 천국에 들어가는 조건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만이 유일한 길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뭡니까?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요6:40)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위하여 자기 몸을 드리셨으니”(갈1:4) 하나님은 우리에게 죄 값을 갚으라고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누구도 갚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을 믿는 자만이 하나님의 자녀로 받아주십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1:12) 천국은 자신의 공로나 업적을 내세우는 자들의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 앞에 죄인임을 인정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의 것입니다.
두 번째 복은 현세적 천국의 복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이 세상에서 사는 모습에 따라서 각종의 상을 받기도 하고, 벌을 받기도 합니다. 이 상급은 현세적인 것도 있고 내세적인 것도 있습니다. 우선 현세적인 복에 대해서 생각해 봅시다. 주님은 우리의 삶의 결과에 따라 각종 상급을 약속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막10:29-30) 현세적인 상급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누리는 상급입니다. 잘 살고 못 하는 것이 사람 마음대로 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성경의 진리가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성실히 사는 자는 반드시 복을 받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네 우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네 광주리와 떡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여호와께서 네게 주리라고 네 열조에게 맹세하신 땅에서 네게 복을 주사 네 몸의 소생과 육축의 새끼와 토지의 소산으로 많게 하시며, 여호와께서 너를 위하여 하늘의 아름다운 보고를 열으사 네 땅에 때를 따라 비를 내리시고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시리니 네가 많은 민족에게 꾸어 줄지라도 너는 꾸지 아니할 것이요, 여호와께서 너로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게 하시며 위에만 있고 아래에 있지 않게 하시리니...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명하는 그 말씀을 떠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고 다른 신을 따라 섬기지 아니하면 이와 같으리라.”(신28:1-6,11-14) 건강의 상급, 부요함의 상급, 명예와 권세의 상급, 가문과 자손의 상급, 평안과 기쁨의 상급 등등. 말로만 천국이 아닌 천국의 복을 받아 누리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상급을 받는 길은 오직 실천
산상수훈 결론부의 또 한 가지 중요한 주제는 실천입니다. 천국의 축복은 실천 여부가 관건입니다. 마태는 하나님께 받는 상급을 매우 강조합니다. 그 모든 상급은 오직 실천하는 자에게 주어집니다. 산상수훈은 인간에게 주어진 최상의 교훈입니다. 이 교훈대로만 산다면 지상천국, 가정천국, 교회천국이 이루어집니다. 현세에서 복을 누리는 것은 내세 천국에 들어가는 것과는 별개의 것입니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전적으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는 믿음에 의해서 뿐입니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누구나 동일합니다. 일찍 믿었든지, 늦게 믿었든지, 열심히 믿었든지 부족하게 믿었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믿음 하나로 들어갑니다.(마20:1-16) 그러나 각자가 현세에서 누리는 복은 다릅니다. 그것은 오직 말씀을 실천하는 정도에 따라 달라집니다.
오늘 우리 사회가 혼란스러운 것은 무지하고 무식해서가 아닙니다. 정의는 있는데 실천이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이 땅의 교회와 성도들이 무기력 한 것은 말씀을 몰라서가 아니라, 말씀의 실천이 없기 때문입니다. 실천 없는 사랑, 실천 없는 전도, 실천 없는 예배, 실천 없는 정의 때문에 힘이 없습니다. 실천이 없는 곳에 아무 역사도 없습니다. 마귀는 실천하지 않는 신자를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말씀을 실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큰일이든 작은 일이든 실천에 옮기는 순간, 큰 역사가 나타나고 큰 기적이 나타납니다. 요즘 “나비효과”라는 재미난 이론이 알려지고 있습니다. 미국의 기상학자인 Edward Lorentz가 처음으로 주장한 학설인데, 베이징에서 작은 나비의 날개 짓을 하면 다음 달 뉴욕에서 커다란 폭풍이 될 수도 있다는 이론입니다. 지구상의 변화무쌍한 기상을 예측하기 힘든 이유는, 지구 한 편에서 일어난 작은 징조가 다른 곳에서 큰 반향으로 나타날 수도 있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실제로 디지털 시대에 사회적으로 이런 효과들이 많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지구상의 어느 한 구석에서 일어난 작은 변화가 전 세계로 확산됩니다. 성경에도 이러한 나비 효과가 많이 있습니다. 모세가 지팡이를 물에 대는 작은 동작으로 커다란 홍해 바다가 갈라졌습니다. 모세가 홍해 앞에서 당황하고 있을 때에 하나님은 모세에게 명령하셨습니다. “너는 어찌하여 내게 부르짖느뇨? 이스라엘 자손을 명하여 앞으로 나가게 하고,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으로 갈라지게 하라.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 육지로 행하리라.”(출14:15-16) 지팡이를 들어 바다 위로 내미는 동작! 그 하나로 홍해는 갈라졌습니다. 요단강에 홍수가 나서 물이 넘쳐 흘렀습니다. 그런 강을 어떻게 백 만 인파가 건널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명령하셨습니다. 제사장들로 법궤를 메고 강물로 들어가게 하라! 제사장들이 법궤를 들고 강물에 발을 담그는 순간 강물은 멈춰졌습니다. 5000 명의 군중들이 굶주리고 있는 들판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먹을 것을 가져오라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난감했어요. 그 때에 안드레가 예수님께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를 가지고 왔습니다. 그 작은 것으로 무엇을 한다는 말인가? 그러나 기적은 그 작은 실천에서 일어났습니다. 그 작은 음식이 예수님 손에 올려졌을 때에 5000 명이 먹고 열 두 광주리 가득히 남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오늘 우리가 실천하는 하나하나는 기적의 나비 효과를 낼 것입니다. 작은 사랑이 많은 생명을 살립니다. 작은 정의가 사회 질서를 세웁니다. 작은 기도가 영혼을 부요하게 합니다. 작은 땀방울이 가문을 부흥시킵니다. 작은 말 한 마디가 교회를 부흥시켜요. 중요한 것은 실천입니다. 천국의 축복은 실천하는 만큼 실현됩니다.
금년에 우리 교회 표어는 “자라나는 교회”(고전3:6-9)입니다. 신앙도 자라고, 인격도 자라고, 삶도 풍요로워지고, 양적으로도 부흥하는 한 해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이렇게 자라나는 것은 그냥 되는 게 아닙니다. 부지런히 심고 물을 주어야 합니다. 즉, 하나님 말씀대로 살기를 힘써야 된다는 뜻입니다. 마치 농부가 씨를 뿌리고, 거름을 주고, 김을 매듯이 열심히 노력해야 합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시126:6)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갈6:7)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마25:26)
하나님 뜻을 따라야 합니다
오늘 말씀의 또 한 가지 중요한 주제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항상 하나님의 뜻이 존중되어야 합니다. 무조건 실천한다고 좋은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 뜻대로 실천할 때에만 효과가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실천하고도 망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예배를 드리고도 벌 받은 사람이 한 둘이 아닙니다. 가인은 예배 드렸으나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셨습니다. 나답과 아비후는 예배 드리다가 불에 타 죽었습니다. 홉니와 비느하스는 예배를 만홀히 여긴 죄로 전쟁에 나가 죽었습니다. 웃시야는 예배를 잘 못 드려서 평생 문둥병으로 격리된 생활을 했습니다. 사울은 예배를 만홀히 여긴 죄로 왕위를 아들에게 물려주지 못했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밭을 팔아 바쳤으나 그 자리에서 죽임을 당했습니다. 정성만 드리면 다 되는 게 아닙니다. 열심만 낸다고 다 좋은 것은 아닙니다. 이단자들도, 사이비 교인들도 다 열심이 있습니다. 문제는 하나님 뜻에 순종하고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교인들 가운데는 “나름대로” 신앙인들이 많습니다. 제멋대로 믿어요. 제멋대로 봉사하고, 제멋대로 열심 냅니다. 제멋대로 교회 비판하고, 제멋대로 정의를 주장합니다. 무엇이 교회인지, 무엇이 참 신앙인지 모르면서 무조건 열심만 내는 것은 소용이 없습니다.
사도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이런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같이 아니하여,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고전9:26-27) 바울 시대에도 올림픽 경기가 있었습니다. 바울은 경기장에서 경기하는 선수들을 유심히 지켜봤습니다. 열심히 했는데 실격하는 선수들이 많았습니다. 벤 존슨이 100미터를 세계신기록으로 달렸지만 실격 당했습니다. 규정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수영 선수가 아무리 빨리 헤엄을 쳤어도 자기 코스를 이탈하면 실격됩니다. 죠지 포맨은 모하마드 알리 보다 주먹이 훨씬 강했습니다. 그러나 허공을 치다 보니 알리에게 지고 말았습니다. 우리 인생에도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삶의 규칙이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 계명입니다. 산상수훈도 그렇습니다. 산상수훈은 철학 강의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이 담겨 있는 삶의 규범입니다. 그 뜻대로 살면 복을 받고, 그대로 살지 않으면 벌을 받습니다.
제가 보기에 집이 무너지는 이유가 두 가지 있습니다. 첫째는 집이 약하면 무너집니다. 불량 재료, 불량 시공하면 와우아파트처럼 무너집니다. 둘째로, 그보다 더 잘 무너지는 집, 확실히 무너지는 집이 있습니다. 뭔지 아세요? 불법 건축물입니다. 아무리 잘 지어 놨어도 구청 철거반이 와서 확실히 무너뜨립니다. 인생은 건축물과 같습니다. 튼튼한 인생의 집은 하나님 뜻에 순종할 때에 지어집니다. 가문이 튼튼하고, 가족 관계가 튼튼하고, 신체적으로 튼튼하고, 물질생활, 직장 사업이 튼튼한 인생이 되려면 하나님의 뜻을 존중해야 합니다.
오늘 말씀에 보면 어리석은 선지자들이 나옵니다. 그들은 선지자 노릇 하는데 열심을 냈습니다. 병도 고치고, 귀신도 쫓아내고, 기적적인 능력도 나타냈습니다. 그러나 주님 앞에 설 때에는 단 한 가지도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7:23) 문제의 핵심은 “불법”입니다. ajnomiva ! 법이 없다는 뜻이요, 법을 무시했다는 뜻입니다. 주님의 일을 많이 한 것 같은데, 다 불법입니다. 주님의 뜻과는 상관 없이 일을 했어요. 사도 바울이 뭐라고 했습니까? 향방 없이 달음질 하고, 허공을 치는 엉뚱한 열심만 내다가 하나님께 버림이 될까 두렵다고 했습니다.(고전9:27) 사람들을 끌어다가 교회를 채우는 열심도 좋고, 큰 교회 만드는 열심도 좋지만, 그 이전에 하나님의 뜻에 맞는 교회를 세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은 때가 되면 졸지에 무너집니다.(시73:19) 사울의 인생이 그랬습니다. 사울은 전쟁에 이기고 많은 전리품을 가져 왔습니다. 살지고 기름진 제물을 가져다가 거창한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사무엘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삼상15:22-23) 이사야 시대의 사람들도 그랬습니다. 하나님께 제사는 거창하게 드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전혀 받지 않으셨습니다.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너희 소돔의 관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너희 고모라의 백성아 우리 하나님의 법에 귀를 기울일지어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그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뇨?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나의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사1:2-3,10-13)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자를 받으십니다. 야곱은 받으시고 에서는 버리셨습니다. 아벨은 받으시고 가인은 버리셨습니다. 이삭은 받으시고 이스마엘은 버리셨습니다. 브리스가와 아굴라는 받으시고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버리셨습니다. 종교심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그러나 종교적 열심이 있다고 다 복 받는 것은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자만이 든든한 기초 위에 세워진 인생이 됩니다. 진정한 하나님의 복을 받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자신의 삶을 돌이켜 보시기 바랍니다. 과연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고 있습니까? 가정 생활 하나님 뜻대로 하십니까? 사회 생활은 하나님 뜻대로 하고 계십니까? 물질 생활, 육신 생활...무엇보다도 영적 생활은 하나님의 뜻대로 하고 계십니까? 만일 내일 당장 인생의 종말이 온다면 천국에서 하나님을 만나 뵐 확신이 있습니까? 만일 확신이 있다면 무슨 근거가 있습니까?
허물어지지 않는 집이어야 합니다
인생은 건축물과 같습니다. 신앙의 건축물, 인격의 건축물, 가정의 건축물, 가문의 건축물, 직업적인 일, 사업의 건축물, 사회적 명성의 건축물, 권세의 건축물... 이러한 건축물은 일시에 무너질 수도 있고, 튼튼해서 오래 갈 수도 있습니다. 누가 오래 가는 집을 지을까요? 오늘 주님은 단 한 가지를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하나님 말씀을 실천에 옮겨라! 하나님 뜻대로 사는 사람은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사람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인생을 지켜주십니다. 가문을 지켜주십니다. 명예를 지켜주십니다. 권세를 지켜주십니다. 재물을 주시고 부요하게 지켜주십니다. 건강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쉽게 무너지지 않습니다.
겉으로 보면 모든 사람들의 삶이 비슷해 보입니다. 그러나 시편 73편에 보세요. 푸른 나무처럼 든든해 보이던 인생도 한 순간에 몰락해버립니다. 오늘 말씀을 보세요. 갑자기 비가 내려 홍수가 납니다. 팔레스틴 지역에는 건기에 물이 흐르지 않는 와디가 많이 있습니다. 이 와디에 집을 짓고 사는 유목민들이 더러 있습니다. 갑자기 비가 오면 이들의 집은 흔적도 없이 떠내려 갑니다. 홍수는 곧 인생의 고난과 시련을 의미합니다. 요즘 대한민국에서는 매일 500쌍 정도가 이혼을 합니다. 이혼 사유를 보면 경제적 이유가 많습니다. 돈 없으면 무너지는 가정, 건강 잃으면 무너지는 가정, 한심한 가정입니다. 오늘 여러분은 어떤 인생의 집을 짓고 계십니까? 하나님 말씀을 토대로 짓고 있습니까? 말씀을 날마다 실천에 옮기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말씀의 토대에 짓는 삶의 집은 튼튼합니다. 세상 풍파가 아무리 심해도 절대로 무너지지 않습니다. 이런 집을 다 짓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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