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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하나님아들 2013. 11. 20. 15:27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25)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26)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27)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28-30)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31-32)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33-34)


의식주의 문제

오늘 말씀의 주제는 의식주 문제입니다. 먹고 마시고 입고 거하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될까? 유태인의 상술에 보면 몇 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그 중의 하나가 바로 입을 상대로 하는 장사와 여자를 상대로 하는 장사를 하라는 겁니다. 입을 상대로 하는 장사란 바로 먹는 장사요, 여자를 상대로 하는 장사란 바로 의류, 화장품 같은 fashion 산업입니다. 역사가 바뀌고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것이 바로 이 원칙입니다. 요즘도 보세요. 변함없이 잘 되는 장사가 뭡니까? 음식 장사, 옷 장사, 집 장사 아닙니까? 여자들 모여서 얘기하는 것을 가만히 들어 보세요. 대부분이 쇼핑 얘깁니다. 무슨 옷을 샀는데, 디자인이 어떻고, 색상이 어떻고, 값은 얼마고... 아니면 누가 이사를 했는데 집이 몇 평이고 구조가 어떻고... 아니면 어디 가서 뭘 먹었는데 맛이 어쩌고저쩌고... 어른들만 그런게 아닙니다. 애들도 그래요. 요즘 애들은 옷 입고, 치장하는 것에 너무나 민감합니다. 예전에는 공부 잘하는 모법 학생이 존경의 대상이었지만 요즘은 다릅니다. 요즘은 브랜드 제품 입고, 치장을 잘 한 아이가 대접을 받습니다. 어떤 여중생 아이가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길 가다가 서로 부딪쳐서 넘어졌는데, 일어나서 따지려고 하다가 상대편 아이가 너무 잘 생기고 치장을 잘한 아이라서 그만 따지지도 못하고 기가 죽어서 무조건 사과했다는 겁니다. 의식주는 인간 생활의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의식주 문제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잘못일까요? 결코 그렇지는 않습니다. 의식주가 중요한 만큼 관심을 가지는 것이 마땅합니다. 누가 고상한 생활만 외치면서 돈 은 벌지 않고 의식주 문제에 무관심하다면 분명히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는 먹고 입고 거하는 것들을 위해서 힘쓰고 노력해야 합니다. 무관심해도 안 되고, 무시해도 안 되고, 게을러도 안 됩니다. 광야 시절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장 중요했던 관심사가 뭡니까? 먹고 사는 문제였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요구대로 40년 간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려 주셨습니다. 신명기 28장에 보세요.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주신 축복의 핵심은 역시 의식주의 약속입니다. 땅, 양식, 의복, 자녀, 건강... 이런 것들이 축복의 내용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의식주 문제에 관심이 많으십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 보면 주님은 먹고 입는 문제를 대수롭지 않은 문제로 말씀하신 듯합니다. 과연 주님은 의식주를 무가치한 것으로 생각하셨을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주님은 먹지 않아도 된다든지, 입지 않아도 된다든지, 혹은 집이 없어도 된다는 말씀을 하시지는 않으셨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의도는 다른 곳에 있습니다. 바로 그 점이 오늘 우리에게 중요합니다. 즉, 물질 자체가 아니라 물질을 대하는 우리의 마음입니다. 지난 시간에도 말씀드렸지만,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어떤 물질관을 가지고 살 것인가? 어떤 태도로 돈을 대할 것인가? 바로 그점이 중요합니다. 물질을 대하는 자세에 따라서 매일매일 행복한 생활을 할 수도 있고 불행하게 살 수도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주님은 두 가지 중요한 교훈을 하십니다.


염려와 근심이 문제입니다

현재의 형편이 어떠하든지 그 자체가 문제는 아닙니다. 오히려 의식주에 대한 마음의 염려와 근심이 문제입니다. 본문에 보면 “염려”라는 말이 다섯 차례나 사용되고 있습니다. 남들이 보기에는 꽤 먹고 살 만 한 데도 근심합니다. 중국 고사에 보면 “杞憂”라는 말이 있습니다. 옛날 기나라에 어떤 사나이가 살고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항상 하늘이 무너지면 어떻게 하나, 땅이 갈라지면 어떻게 하나, 어디에 몸을 숨겨야 할까 걱정했습니다. 어떤 때는 그런 걱정 때문에 밥맛이 떨어지고 몸이 수척해졌습니다. 곁에서 보다 못해 어떤 사람이 쫓아가 설명을 해줬습니다. “이보게, 하늘은 공기가 쌓인 것 뿐이야. 하늘은 공기로 가득 차있어. 우리는 공기 속에서 구부리고, 엎드리고, 걸어다니는 것이야. 그러니 하늘이 무너진다 해도 걱정할 것 없네!” 그랬더니 또 걱정을 합니다. “하늘이 만일 공기만 차 있다면, 해나 달이나 별들이 머리 위로 떨어져서 머리가 깨지지나 않을까?” “일월성신도 역시 공기 중에 이미 있는 것이니 떨어진다 해도 피해는 없을 걸세” “하늘은 그렇다 치고 땅이 꺼져서 빠져 죽으면 어떻게 하지?” “땅은 어디나 흙으로 가득 차서 넘쳐나고 있네. 우리가 뛰거나 달린다고 해도 우리는 언제나 땅 위에 있어. 그러니 염려하지 말게.” 이 설명을 들은 사나이는 기뻐하면서 안심하고 밥을 먹었다는 얘깁니다. 이 웃기는 얘기를 들은 열자란 사람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천지가 파괴되지 않는다고 말한 사람도 역시 잘못이다. 파괴되느니 안되느니 하는 것은 우리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생은 사를 모르고, 사는 생을 모른다. 장래는 과거를 모르고 과거는 장래를 모른다. 천지가 파괴되느니 안 되느니 하는 문제를 우리가 어찌 마음에 넣을 필요가 있겠는가?”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 하는 삶의 문제가 더 중요합니다. 즉, 삶의 수단이 문제가 아니라, 삶의 목적이 문제입니다. 승용차를 사는 사람이 이런 걱정을 한다면 얼마나 우스운 일입니까? “내 차를 사면 무슨 기름을 넣을까? 기름을 얼마나 넣을까? 무슨 윤활유를 넣어야 될까? 냉각수는 어떤 걸로 사용할까?” 차를 어디에 사용할 것인지 그게 중요하지, 차에 무슨 기름을 사용할 것인지 그것은 부차적인 일입니다. 우리는 살아 있기 때문에 먹고 마십니다. 살아 있기 때문에 의복도 집도 필요합니다. 죽은 자는 먹는 것도 필요 없고, 거처도 필요 없습니다. 우리가 정말 염려해야 될 것은 생명이요 생존입니다. 어떻게 살 것인가, 혹은 무슨 일을 할 것인가를 염려한다면 몰라도, 먹고 입는 것부터 염려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입니다.
염려 중에 가장 나쁜 염려는 내일 일에 대한 염려입니다. 인간은 참으로 묘한 존재입니다. 긍정적이고 바람직한 것을 앞당겨 행하지는 않습니다. 예를 들어, 노력을 앞당기는 법은 없습니다. 내일 공부를 오늘 앞당겨 한다든지, 내일 회사 일을 오늘 앞당겨 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내일 사랑할 것을 앞당겨 한다든지, 내일 기뻐할 것을 미리 앞당겨 기뻐하지는 않습니다. 내일 만족할 것을 미리 앞당겨 만족하거나, 내일 감사할 일을 오늘 앞당겨 감사하는 법은 없습니다. 그런데도 유독 염려 근심은 앞당깁니다. 내일의 자녀 문제를 오늘 미리 걱정합니다. 내일의 사업 문제를 오늘 미리 걱정하고, 내일의 가정 일을 오늘로 당겨서 걱정하고, 내일의 건강 문제를 오늘 앞당겨서 걱정합니다. 내일 내가 살아 있을는지 주님의 품에 있을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내일 일을 미리 걱정해요. 제발 내일 일을 앞당겨 걱정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만일 내일 일을 앞당겨 걱정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가진 모든 걱정은 대부분 사라질 겁니다.
염려와 근심은 백해무익할 뿐 아무 생산성이 없습니다. 하면 할수록 손해만 봅니다.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27) “키”라고 번역된 단어는 “수명”이라고 번역할 수도 있습니다. 공동번역 성경에는 “제 수명을 한 순간인들 늘일 수 있느냐?”고 번역했습니다. 염려한다고 무슨 소득이 있습니까? 밤낮 걱정했더니 수명이 1년 연장되었습니까? 한 달간 계속 염려 근심 했더니 키가 1cm 자랐습니까? 일 년 동안 걱정 근심 했더니 사업이 갑절이나 잘 되더라! 한숨 쉬고 탄식 했더니 가정이 잘 되니라! 그런 일이 있습니까? 결코 그런 일은 없습니다. 염려한다고 머리터럭 하나도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오히려 우리를 해롭게 만듭니다. 염려는 우리의 평안을 빼앗아 갑니다. 불안하게 합니다. 일손을 놓게 만듭니다. 남에게 나쁜 인상을 줍니다. 대인관계를 망칩니다. 소화불량, 두통, 노이로제, 우울증, 각종 암의 원인이 됩니다. 염려해서 좋은 것은 단 한 가지도 없습니다.
여러분, 오늘 이 시간이 인생의 모든 염려에서 벗어나는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이런 염려와 근심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요? 잊으려고 노력하면 될까요? 혹시 일에 몰두하면 될까요? 정신수양을 하면 될까요? 그 어떤 것도 아닙니다. 오늘 말씀에 그 해답이 있습니다.


염려는 믿음으로 극복합니다

주님은 염려하는 사람들을 향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 믿음이 적은 자들아!” “믿음이 적은”이란 말은 헬라어로 한 단어입니다. ojligovpisto" 즉, pisto"라는 말과, ojligov라는 말이 합쳐져서 된 말입니다. pisto" 는 믿음이란 뜻이고, ojligo 라는 말은 무시할 정도로 아주 적다는 뜻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믿음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실로 내가 내 심령으로 고요하고 평온케 하기를 젖 뗀 아이가 그 어미 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 내 중심이 젖 뗀 아이와 같도다”(시131:2) 갓난아기는 엄마 품에 있는 것만으로 가장 평안하고 만족합니다. 전쟁이 나든지, 폭풍이 불든지, 병이 나든지 걱정하지 않습니다. 모든 생존을 오직 엄마 품에 의지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그래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되 다른 생각 않고 오직 어린아이처럼 단순하게 하나님께 맡겨야 됩니다. 먹는 문제, 입는 문제, 집 문제, 사업 문제, 건강 문제, 자식 문제, 노후 문제...생사 문제까지 다 맡기세요. 주님도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18:3) 엄마아 아빠는 전능한 존재가 아닙니다. 그래도 아이들은 부모에게 모든 생존을 맡기고 편안하게 지냅니다. 하물며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염려에 빠져서야 되겠습니까?
주님은 오늘 두 가지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첫째 비유는 공중의 새들입니다. 여러분 의식주 걱정되시거든 새를 바라보세요. 저는 매일 교회를 오가면서 까치들을 봅니다. 저놈의 까치들은 다 어디서 뭘 먹고 지낼까? 새끼는 어디서 낳고, 어디서 기를까? 겨울이 다가오면 기러기 떼가 열을 지어 날아옵니다. 작년에 왔던 철새들이 죽지도 않고 또 왔네! 지구상에는 8600종의 새가 있습니다. 타조처럼 사막에 사는 새도 있고, 갈매기나 오리처럼 물에서 사는 새도 있고, 꿩처럼 산에 사는 새도 있고, 닭처럼 집에 사는 새도 있습니다. 날아다니기도 하고, 걸어 다니기도 하고, 헤엄을 치기도 합니다. 까치는 낮에 활동하지만 올빼미는 밤에 활동합니다. 제비는 더운 나라에 살고, 기러기는 추운 나라에 삽니다. 콘돌은 몸집이 크지만 벌새는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작습니다. 한 곳에 눌러 앉아 사는 텃새도 있고, 철을 따라 이동하는 철새도 있습니다. 이렇게 많은 새들이 있지만 저는 지금까지 농사 짓는 새는 본 적이 없습니다. 여러분, 혹시 까치가 농사 짓는 것을 보셨어요? 혹시 먹을 것을 창고에 저장하는 것을 보셨습니다. 씨를 뿌리지도 않고, 거두어들이지도 않고, 창고에 저장하지도 않습니다. 그래도 다 먹고 잘 살아요. 사람은 걱정 때문에 머리털이 빠지고 희어지지만 새들은 머리털 빠지는 일도 없고 체중이 줄어드는 일도 없어요. 왜 그렇습니까? 이유는 오직 하나, 하나님이 돌아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먹이를 풍성히 주시고, 먹이를 찾는 방법을 알려주십니다. 그래서 새들이 늙어 죽는 일은 있어도 굶어 죽는 일은 별로 없습니다. 지금 새 얘기 하는 겁니까?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26) 큰 가치가 없는 새들도 먹이시는 하나님이 하나님의 자녀들을 굶게 하시겠습니까? 매일매일 공중의 새들을 볼 때마다 이 말씀을 좀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저 새들도 먹이시는데 하물며 나를 굶게 하실까?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 비유는 들의 백합꽃입니다. 이 세상에는 4000종 이상의 백합꽃이 있습니다. 나팔 백합, 산 백합, 하늘나리 백합, 섬말나리 백합... 등등. 사람이 기르는 백합이 아니라 들과 산에 있는 야생 백합을 보라고 하십니다. 누기 심기를 했습니까? 누가 물을 주었습니까? 누가 김을 맸습니까? 거름을 주었습니까? 그래도 이 세상 어떤 보석보다도 더 아름답습니다. 솔로몬의 영광도 야생 백합 하나만 못하다고 하셨습니다. 솔로몬은 돈이 많았습니다. 인도의 공작, 아프리카의 상아를 수입해서 장식했습니다. 아라비아의 향료를 수입하고, 스페인의 명품을 들여오고, 오빌의 금을 수입했습니다. 솔로몬 왕실에는 금이 너무 많았어요. 밥그릇도 금이요, 술잔도 금이요, 숟가락도 금이요. 요강도 금이요, 쓰레기통도 금입니다. 성경에 요강이나 쓰레기 통 얘기는 없습니다. 아무튼지 금이 너무 많아서 은은 귀중품으로 여기지도 않았습니다.(왕상10:21-22) 그러나 이러한 솔로몬의 사치품을 다 모아 놓는다 해도 하나님이 가꾸신 백합 한 송이만 못합니다. 그 향기, 그 아름다운 모양, 그 생명력! 지금 야생화 얘기 하는 겁니까?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30-32) 들풀은 피었다가 시들면 베어다가 땔감으로 씁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 이렇게 입히시는데 하물며 하나님을 닮은 우리를 헐벗게 하시겠습니까? 천하보다 귀한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믿음이 중요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히11:1) 공짜를 바라는 게 아닙니다. 허황된 것을 보는 게 아닙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 믿음입니다. 건강도 하나님께 맡기고, 생사문제도 맡기고, 자식 문제도 맡기고 다 맡기세요. 염려나 근심이 떠오를 때마다 결단하고 하나님께 맡기시기 바랍니다. “염려”(메리스)란 단어는 본래 나눔과 분열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마음이 돈에 가 있고, 집에 가 있고, 의복에 가 있고, 여기 저기 나뉘는 것이 염려입니다. 믿음은 반대입니다. 믿음은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의지하는 겁니다. 마음이 오직 한 곳으로 모아집니다. 주님을 바라보면서 물 위로 걸어가던 베드로는 발 밑의 풍랑을 바라보면서 물에 빠졌습니다. 세상을 바라보면 염려 근심에 빠집니다. 그러나 눈을 들어 주님을 바라보면 염려 근심에서 해방됩니다. 믿음으로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삶의 우선순위를 바로 정해야합니다

물질 생활의 두 번째 문제는 우선 순위의 문제입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33절) 모든 일에는 순서가 중요합니다. 어떤 교회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목사님이 주일예배를 인도하시려고 강대상에 올라가셨습니다. 순서대로 묵도, 찬송, 기도의 순서로 이어지는데, 목사님께서 찬송 후에 갑자기 축도를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문 앞에 나와 성도들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데 아무도 안 나오는 겁니다. 이상하다 싶어서 성도들을 보니 얼마나 기가 막힙니까? 설교도 하지 않고 축도부터 하시고 문 앞에서 인사하려고 기다리고 계시니.... 세상 만물을 보면 다 순서가 있습니다. 집을 지을 때도 순서가 있습니다. 먼저 터를 파고 기초 공사를 합니다. 그 위에 골조를 세우고, 벽을 세우고, 지불을 씌웁니다. 집을 다 지어 놓고 기초 공사를 하는 집은 전혀 없습니다. 인테리어를 먼저 하고 나중에 지붕을 씌운다면 그 집은 집이 아닙니다. 인생에도 정해진 순서가 있습니다. 이 순서를 바꾸면 인생이 아주 이상하게 돌아갑니다. 오늘 말씀에서 아주 중요한 단어가 뭐냐 하면 “먼저”라는 단어입니다. 먼저! prw'ton ! 첫째(first), 혹은 으뜸이라는 뜻입니다. 시간적으로 첫 시간을 의미하고, 공간적으로 첫 번째 자리를 의미합니다. 인생에서 반드시 첫째로 해야 될 일이 있습니다. 둘째, 셋째가 뭐가 됐든지, 첫째만은 바꿀 수 없습니다.
그게 뭘까요?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33절)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찾고, 하나님의 의를 찾는(seek) 일이 인생의 첫 번째로 해야 될 일입니다. 인생의 우선순위가 있지요? 목숨이 음식보다 앞서야 합니다. 몸이 의복보다 앞서야 합니다. 영혼이 육체보다 앞서야 합니다. 한 마디로 한다면 영혼 우선, 하나님과의 관계 우선의 삶입니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라(seek)고 했습니다. 하나님 없는 세상 나라를 목표삼지 말고, 하나님 나라를 목표 삼아야 합니다. 세상 나라가 제아무리 화려해도 잠깐 스쳐가는 나라일 뿐입니다. 내가 영원히 살아야 될 나라는 하나님 나라입니다. 내세만이 아닙니다. 현세에서 살아가는 동안에도 하나님과 함께 살아야 됩니다. 하나님을 중심에 모셔야 합니다. 날마다 하나님과 교통하면서,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가만히 앉아서 천국이 오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천국이 내 심령에 이루어지도록 열심 내야 합니다. 천국이 가정을 통해서, 혹은 교회를 통해서 다가오도록 힘써야 합니다.

출처 : 원주사랑의교회
글쓴이 : onsegye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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