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률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마 7:12)
기도자는 타인의 형편도 살펴야 합니다
본문을 흔히 黃金律이라고 합니다. 황금과 같이 가치 있고 소중한 율법입니다. 이 말씀이 곧 율법과 선지자라고 하셨습니다. 율법과 선지자란 구약의 율법서와 선지서, 즉 구약 전체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구약 전체의 율법을 한 마디로 요약한 것이 바로 오늘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구약 율법을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하셨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이요, 둘째는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입니다. 12절의 황금률은 대인관계의 요약입니다. 즉,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과 같은 의미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이런 황금률을 기도의 교훈에 덧붙여 말씀하신 것을 주목해야 합니다. 앞선 말씀에서 주님은 기도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하면 좋은 것으로 주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도자는 이기적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기도자는 항상 남을 생각하면서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에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내가 바라고 원하는 그것을 남들도 다 원한다는 사실입니다. 사람의 심정은 다 마찬가집니다. 내가 싫은 것은 남들도 실어요. 내가 좋은 것은 남들도 좋아합니다. 내가 화내는 것이 싫으면 남들도 화내는 것이 싫습니다. 내가 무시당하는 것이 싫은 것처럼 남들도 무시당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내가 힘든 일 싫으면 남도 싫고, 내가 구박받는 것 싫으면 남들도 구박받는 것 싫어합니다. 반대의 경우도 그렇습니다. 내가 존경받기 좋아하면 남들도 존경받는 것 좋아합니다. 내가 사랑받는 것 좋아하듯이 남들도 사랑받고 싶어 합니다. 내 자식을 아끼는 것만큼 남들도 아낍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서 바라고 기도하는 것처럼 남들도 바라고 기도합니다. 내가 사업이 잘 되기를 바라는 것처럼 남들도 사업이 잘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내가 성공하고 싶은 만큼 남들도 성공하고 싶어 합니다. 내가 건강을 위해서 기도하듯이 남들도 건강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내가 원하는 것들을 남들도 원합니다.
이 사실을 안다면 내 요구사항만 주장할 수는 없겠지요? 타락한 인간의 본성은 매우 탐욕적이며 이기적입니다. 개인만이 아니라 집단도 그렇습니다. 초록은 동색입니다. 사람들은 이해상관에 따라서 끼리끼리 모입니다. 경영자끼리, 노동자끼리, 시어머니끼리, 며느리끼리, 정치인끼리, 관료들끼리, 도적놈끼리, 주정뱅이끼리... 끼리끼리 모여서 자기주장을 하다보면 다른 사람들에게는 피해를 줍니다. 경영자의 주장만 듣다 보면 노동자가 불이익을 당합니다. 노동자 말만 듣다보면 경영자들이 어려워집니다. 지역 이기주의, 계층 간 이기주의, 다 마찬가집니다. 나의 이익이 타인의 손실이 될 수도 있습니다. 나의 성공이 타인의 실패와 맞물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 자신이나, 혹은 내가 속한 집단의 이익만을 추구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공동체에 속해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도할 때마다 공동체의 유익을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시각으로 모든 일을 판단해야 합니다. 내가 만일 하나님의 입장에 있다면, 어떤 사람들의 요구를 먼저 들어줄 것 같습니까? 하나님은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다 품에 안고 계십니다. 남녀노소, 빈부귀천, 지배자와 피지배자, 인종, 지역을 초월하여 모든 사람을 다스리고 계십니다. 오늘 내가 간절히 원하는 것이, 타인에게는 더 절박할 수도 있습니다. 내게 시급한 것 같은데 나보다 더 시급한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최소한 타인의 처지를 살피면서 내 요구 사항을 아뢰어야 합니다.
내가 받고 싶은 만큼 남에게 주면 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얼마나 잘 대접하면 될까요? 얼마나 친절하면 됩니까? 얼마나 정성껏, 얼마만큼의 분량으로 대접해야 할까요? 대답은 간단합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내가 받고 싶은 만큼만 대접해주세요. 그러면 최선의 대접자가 될 겁니다. 다른 사람들을 어떤 식으로 대해야 할까? 그 가장 좋은 모델은 바로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어떤 식으로 대접했을까요? 두 가지만 말씀드리지요.
첫째로, 다른 사람들의 짐을 대신 져 주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11:28) 우리는 힘든 일에 부딪칠 때마다 이런 생각을 합니다. 누군가 내 짐을 대신 져 줄 사람은 없을까? 공부 대신 해 줄 사람, 입학시험 대신해 줄 사람, 힘든 노동 대신해 줄 사람, 곤란한 처지에 대신 빠져 줄 사람, 하기 싫은 말 대신 해 줄 사람...등등. 그러나 우리 자신은 정반대의 것을 원합니다. 즉, 우리는 남의 짐을 지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합니다. 누가 힘든 부탁을 하면 어떻게 하든지 거절하려고 애를 씁니다. 모순입니다. 내 짐은 남이 져 주기를 바라면서, 남의 짐은 절대로 지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짐을 맡기고자 하는 사람은 남의 짐을 지려는 마음부터 가져야 합니다. 이것이 황금률입니다. 예수님은 세상 사람들이 가장 싫어하는 짐을 대신 지셨습니다. 대신 모욕당하는 일입니다. 대신 처벌받는 일입니다. 죄 값을 대신 치루는 일입니다. 아무 죄도 없는 분이, 심문을 받으셨습니다. 고문을 당하셨습니다. 침 뱉음 당하고, 채찍에 맞으셨습니다.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 언덕을 올라가셨습니다. 양 손 양 발에 못이 박히셨습니다. 옆구리를 창에 찔리시고 물과 피를 쏟으셨습니다. 이렇게 대신 짐을 져 주신 덕분에 오늘 우리는 모든 죄를 다 용서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오늘 내 짐이 무겁습니까? 남들도 무거운 짐을 지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내 짐을 남에게 부탁하기 전에, 남의 짐을 먼저 져 주려고 노력해 보세요. 그러면 분명히 누군가 내 짐을 져 줄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법칙입니다.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갈6:2)
둘째로, 주님은 무엇이든지 먼저 주셨습니다. “범사에 너희에게 모본을 보였노니 곧 이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의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행20:35) 옛날 그리스에 한 왕이 있었습니다. 그는 하루 종일 술과 여색으로 시간을 보냈습니다. 어떻게 하면 더 즐겁고 더 행복할 수 있을까? 그는 늘 이런 생각만 했습니다. 그는 전국에 방을 내 걸었습니다. 누구든지 나에게 즐거움을 더해주는 자에게는 큰 상급을 주리라! 별의 별 아이디어가 다 동원되었습니다. 그래도 결국은 흥미가 없어지고, 즐거움은 점점 줄어들고, 마음에는 불행만이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왕에게 즐거움을 주려고 기발한 생각을 가지고 왔던 사람들은 왕을 즐겁게 해 주지 못한 벌로써 모두가 사형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 때에 한 어여쁜 소녀가 왕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겠다고 자원해서 나타났습니다. 그는 왕에게 당돌하게 행복을 비결을 말해줬습니다. “임금님, 임금님은 절대로 행복하실 수 없습니다. 기쁨을 단념하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임금님은 한 번도 남을 기쁘게 하거나 행복하게 하신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만일 임금님께서 진정 행복과 기쁨을 원하신다면 남을 기쁘게 하시고 행복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그렇습니다. 남을 기쁘게 하고, 남에게 주는 삶이 오히려 우리를 행복하게 합니다. 이 법칙을 알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계시는 33년 6개월 동안 세상적으로는 가난하게 사셨습니다. 가난한 목수의 집에 태어나셔서 물려받은 재산도 없으셨습니다. 그렇다고 주님께서 주실 것을 못 주신 적은 없습니다. 양식이 필요할 때에 양식을 주셨습니다. 치료가 필요한 자에게 치료의 선물을 주셨습니다. 생명이 필요한 자에게 생명을 주셨습니다. 가장 중요한 영생을 주셨습니다. 천국을 주셨습니다. 기쁨을 주시고, 소망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외치셨습니다. “다 이루었다!”(요19:30) 주님은 제자들에게 이런 명령을 하셨습니다.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왔다 하고,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문둥이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마10:7-8)
오늘 기도 응답을 바라는 성도여러분, 내가 간절히 바라고 원하는 그것을 남들도 받도록 먼저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벗어던지려고 하는 삶의 짐을 남들도 벗어 던질 수 있도록 기도하십시오. 남의 짐을 대신 져 주면서 기도하세요. 내가 가진 것을 열어 주면서 아버지께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런 사람은 하늘 아버지의 마음을 제대로 아는 자요, 하나님이 기뻐하시며 갑절의 응답을 허락하실 줄 믿습니다.
黃金律은 응답과 축복의 계명입니다
황금률이 모든 율법의 요약이라면, 이 황금률대로 살면 복을 받는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어떻게 인생을 살아야 될까,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남에게 어떻게 대해야 될까, 복잡한 처세술이 필요 없습니다. 한 가지 원칙만 지키세요. 내가 받고 싶은 만큼 남에게 행하세요. 하나님은 이 황금률을 지키는 사람에게 풍성한 복을 주십니다. 가끔 대표기도 하시는 분들이 이런 기도를 하십니다. “하나님 미처 기도하지 못한 것까지도 응답해 주옵소서!” 정말 그렇습니다. 미처 구하지 못했어도, 주시는 응답이 있습니다. 바로 황금률을 지키는 자에게는 내리시는 축복입니다.
톨스토이의 단편 중에 “두 노인”이란 얘기가 있습니다. 러시아에 사는 두 노인이 성지순례를 떠났습니다. 한 사람은 예핌 타라스이치 쉐베료프라는 노인이고, 또 한 사람은 예리세이 보드료프라는 노인입니다. 예핌은 고지식하고 야무지며 완벽하게 일을 처리하는 부유한 농부입니다. 그는 자식들을 못미더워 하면서 항상 모든 것을 직접 처리하는 스타일의 사람입이다. 예리세이는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부지런하고, 화목한 가정을 이루고 있는 농부였습니다. 예리세이는 좀 허술한 데가 있지만, 아내나 자식들을 신뢰하였고 모든 일을 맡기는 스타일의 사람입니다. 두 사람은 각각 100루불의 돈을 장만해서 순례의 길을 떠났습니다. 갈아 신을 신발과 여행에 필요한 음식이나 의복을 챙겨서 등에 졌습니다. 예루살렘까지 도보로 왕복하려면 일 년은 족히 걸려야 했습니다. 때로는 여관에서, 때로는 민가에서 숙식을 하면서 계속 걸었습니다. 한 달 이상 걸은 후에 소러시아의 어느 마을에 당도했는데 그 마을은 큰 흉년이 든 마을이었습니다. 계속 길을 걷다 보니 목이 말랐습니다. 예핌은 체력이 좋았기 때문에 괜찮았지만 예리세이는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핌이 천천히 가는 동안 예리세이는 잠시 농가에 들려서 물을 마시고 가기로 하고 헤어졌습니다. 예리세이가 찾아간 농가는 이상하게 적막했습니다. 사람을 불러도 대답이 없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농부와 그의 아내 자식들이 모두 기력을 잃고 누워 있었습니다. 흉년이 든 데다 전염병까지 돌아 온 가족이 기근과 질병으로 쓰러져 있었던 것입니다. 예리세이는 가지고 있던 짐을 풀어 음식을 나눠 줬습니다. 물을 길어다 마시게 하고, 땔감을 가져다가 불을 피워 줬습니다. 가족들이 차차 기운을 차렸습니다. 알고 보니 그들은 양식이 떨어져서 종자로 가지고 있던 씨앗을 다 먹어버렸고, 가재도구들까지 다 내다 팔아 농사도 지을 수 없는 형편이었습니다. 딱한 사정을 보면서 그냥 버리고 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음해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말을 사 주고, 양식을 장만해 주었습니다. 이렇게 그 사람들을 도와주면서 하루하루 지내다 보니 여러 날이 훌쩍 지나버렸습니다. 여비도 17루블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예리세이는 성지순례를 포기하고,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고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습니다. 집에 도착하니 온 가족들이 환영해 주었습니다. 농사 일이 잘 되어 수확도 늘고, 집안이 전보다 더 풍성해지고 모두가 건강했습니다. 예리세이는 사람들이 왜 도중에 돌아왔느냐고 물을 때마다, 그냥 돈을 다 잃어버리고 예핌 노인을 놓쳐버려서 그냥 돌아왔다고 했습니다.
한 편으로 예핌 노인은 어떻게 됐을까요? 그는 예리세이를 기다리다가 길에서 잠깐 잠이 들었습니다. 깨어보니 예리세이가 아직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는 혹시 예리세이가 그냥 지나쳐 버렸을까 생각하고 계속 길을 갔습니다. 마침내 예루살렘에 도착하여 순례를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이 채찍에 맞으신 장소, 못 박히신 곳, 피를 흘리신 곳,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나신 곳, 등등을 돌아보았습니다. 그 중에서도 하이라이트는 예수님의 관이 있는 곳에서 드리는 예배였습니다. 많은 군중들이 모여서 가까이 접근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맨 앞자리에 무릎 꿇고 기도하고 있는 낮 익은 얼굴이 보였습니다. 바로 예리세이 노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예배가 끝나고 아무리 찾아도 그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사흘 동안을 계속 예수님의 관 있는 곳을 참배했는데 계속 예리세이가 가장 높은 자리에 앉아서 기도하고 있는 모습을 봤습니다. 예핌은 예루살렘에 한 달 반을 머물렀습니다. 예핌이 집으로 돌아 온 것은 집을 떠난 지 거의 일 년이 될 무렵이었습니다. 집에 도착해서 보니 집이 엉망이 되어 있었습니다. 자식은 돈을 헤프게 써 버리고, 술에 잠겨 있었고 아버지께 대한 불만이 가득했습니다. 예핌은 예리세이 노인을 만나서 그가 도중에 돌아와 버린 것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 때에 예핌은 생각했습니다. 자신은 육체로 성지순례를 다녀왔지만 예리세이는 영혼으로 성지순례를 다녀 온 것은 아닐까? 예핌이 예루살렘에서 보았던 예리세이는 누구란 말인가? 자신은 돌아와 보니 집안이 엉망이 되어 있었는데, 예리세이의 집안은 더욱 풍성해졌습니다. 이것이 무슨 조화일까?
이 이야기가 주는 교훈은 명백합니다. 황금률입니다. 성지순례 백 번 다녀 온 것보다, 눈에 보이는 사람들을 잘 대접하는 것이 백 배 낫다는 교훈입니다. 하나님은 종교의 형식을 가진 사람들보다, 평소 살아가는 모습을 보시고 복을 주십니다. 기도의 교칙도 마찬가집니다. 많은 분량의 기도, 부르짖는 기도, 끈질긴 기도, 정기적인 기도, 다 중요하긴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삶의 뒷받침입니다. 기도하는 자는 황금률을 삶의 원리로 삼아야 합니다. 그렇게 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구하기 전에 먼저 주실 것입니다. “나의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당하는 자를 자유케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또 주린 자에게 네 식물을 나눠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네 집에 들이며 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그리하면 네 빛이 아침같이 비췰 것이며 네 치료가 급속할 것이며 네 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말하기를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 만일 네가 너희 중에서 멍에와 손가락질과 허망한 말을 제하여 버리고, 주린 자에게 네 심정을 동하며 괴로와하는 자의 마음을 만족케 하면 네 빛이 흑암 중에서 발하여 네 어두움이 낮과 같이 될 것이며, 나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케 하며 네 뼈를 견고케 하리니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사58:6-11) 아버지의 뜻은 모든 사람이 서로를 생각하며 구할 바를 구하는 일입니다. 나만을 알고 나만을 위해 구하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답지 못한 일입니다. 내가 원하는 그만큼 남들도 원합니다. 그러므로 먼저 남들이 원하는 것을 생각하면서 아버지께 구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진정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길입니다. 오늘 우리 모두가 이 황금률을 중심으로 기도생활을 함으로써 하나님의 은혜가 떠나지 않는 풍성한 가정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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