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마7:13-14)
좁은 문
오늘은 마침 2004년의 마지막 주일입니다. 그동안 산상수훈을 강해하여 왔는데, 일 년의 마지막 주일에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는 말씀을 강해할 차례가 된 것도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란 생각이 듭니다. 지난 일 년을 돌이켜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을 겁니다. “왜 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쉽게 살지 못하고 힘든 삶을 살았을까?” “다른 사람들은 다 쉽게 사는 것 같은데, 나는 왜 힘들게 느껴질까?” 오늘 말씀을 들으신다면 큰 은혜가 되실 줄 믿습니다.
예수님의 많은 비유가 다 그렇듯이 본문의 배경은 팔레스틴의 지리적 환경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외적이 쳐들어오거나 재앙이 닥칠 때에 바위틈이나 동굴에 숨었습니다. 좁은 틈으로 기어들어가서 깊숙히 숨을수록 안전했고, 접근하기 쉬운 곳에 숨으면 목숨을 잃는 경우가 많았습니다.(삿15:8,삼상13:6,사2:21) 예수님은 이런 상황을 신앙 행로, 인생 행로에 비유하고 계십니다. 오늘 말씀에 보면 인생길에 중요한 삼단계가 있습니다. 첫 단계는 문이요, 두 번째 단계는 길이요, 세 번째 단계는 목적지입니다. 그런데 이런 삼 단계에 이르는 과정은 단 두 가지의 경로 밖에 없습니다. 첫 번째 경로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서 협착한 길을 통과하여 생명에 이르는 방식입니다. 두 번째 경로는 넓은 문으로 들어가서 쉬운 길을 통과하여 멸망에 이르는 방식입니다. 이 두 가지 삶의 방식 외에는 다른 방식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두 가지 삶의 길 중에서 한 가지 길 만을 선택해야 합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서 협착한 길을 가든지, 아니면 넓은 문으로 들어가서 쉬운 길로 가든지 결정해야 합니다. 어물어물 하다가 적당히 생명에 이르는 길이 어디 없을까? 기대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늘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오직 하나 뿐입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협착한 길을 가야 합니다. 쉬운 길로 가는 것이 축복이 아닙니다. 쉽게 사는 것이 축복이 아닙니다. 좁고 협착한 길을 가는 것이 축복된 삶의 본래 길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크게 두 가지 주제를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첫째는, 인생 경로의 중요성이고, 둘째는, 생명 길로 가는 사람들의 稀少性입니다.
인생길은 경로가 중요합니다
첫 번째 주제는 인생 경로의 중요성입니다. 인생길은 결과도 중요하지만 과정도 중요합니다. 신앙의 길은 목적만을 이루는 길이 아니라, 목표에 이르는 과정이 평가되는 과정의 길이기도 합니다. 경로의 중요성에 대해서 몇 가지로 나누어 적용해 봅시다.
첫째로, 세상살이에 있어서의 과정의 중요성입니다. 요즘 세상을 보면 과정을 보지 않고 결과만 봅니다. 공부하는 학생들을 보세요. 열심히 공부는 하지 않고 점수만 잘 받으려고 합니다. 언젠가 서점에 들러서 책 구경을 하는데, 책 제목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아요. “너, 나직도 영어공부하니?” “그래, 나 아직도 영어공부 한다. 어쩔래!” 또 다른 책을 보니, “영어 공부 절대로 하지마라!”고 합니다. 책 내용들은 대충 이런 거예요. 영어를 쉽게 공부할 수 있는데 왜 어렵게 하느냐? 말은 그런데 실제로 쉬운 게 아니예요. 힘들기는 마찬가집니다. 이 세상에 공부에 무슨 왕도가 있습니까? 호기심 가지고 열심히 공부하는 것 외에 뾰죽한 수가 있겠습니까? 있기는 있지요. 부정행위 하는 것! 남의 것 베끼는 것! 돈 버는 것도 그래요. 우리 사회에 널리 퍼진 나쁜 습성이 바로 일확천금입니다. 요즘 “대박”이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저는 “대박”은 “쪽박”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꺼번에 떼돈을 번 사람치고 건전하게 사는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왜 그런지 아세요? 목적 없이 번 돈은 탕진하거나, 타락하는 지름길입니다. 땀과 수고가 없는 돈은 가치 있는 곳에 사용되지 못합니다. 허랑방탕한 곳에 쓰여질 뿐입니다. 돈이라고 다 같은 돈이 아닙니다. 과정이 있는 돈은 가치가 있습니다. 그러나 과정이 없는 돈은 휴지조각에 불과합니다. 대인관계도 마찬가집니다. 누구나 존경받고 싶어 합니다. 대접받고 싶어 합니다. 남들에게 인정받고 싶어 합니다. 사회생활에 성공하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그게 저절로 됩니까? 내가 먼저 남을 대접하고, 내가 먼저 남을 인정하고, 내가 먼저 남을 열심히 섬길 때에 나도 대접받을 수 있습니다. 과정이 없는 성공은 낭패를 가져옵니다. 과정이 없는 결과를 추구하면 범죄를 저지를 수 밖에 없습니다. 부정 시험, 강도, 사기, 이 모든 것이 다 결과지상주의가 가져온 폐해입니다. 과정 없는 출세를 추구한 결과가 뭡니까? 끝 없는 타락입니다. 도덕과 윤리가 없어졌습니다. 누가 도덕과 윤리를 말하면 지나가는 개가 짖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도덕률이 없는 인간 사회는 동물세계나 다름이 없습니다. 弱肉强食, 適者生存의 논리 밖에 없습니다. 인간 스스로 인간 되기를 포기하고 동물로 전락해버립니다.
둘째는, 신앙 생활에 있어서의 과정의 중요성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축복을 원합니다. 그러나 축복은 거저 열리는 열매가 아닙니다. 축복에 이르는 과정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 경로를 세세히 평가하십니다. 성경이 뭐라고 말씀합니까? 누구든지 하나님 앞에 서서 심판 받을 날이 있습니다. 그 때에 하나님은 뭐라고 말씀하실까요? 어떤 사람들은 자신들의 생애 업적을 내세울 겁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7:22-23)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7:21) 주님이 보시는 것은 결과만이 아닙니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 왔는가 하는 삶의 경로입니다. 좋은 설교를 듣는 것이 신앙이 아닙니다. 들은 말씀을 실행하는 것이 신앙입니다. 어느 교회에 속하는 것이 신앙이 아닙니다. 어떻게 주님을 따를까 하는 것이 신앙입니다. 하나님께 무엇을 얻었는가 하는 것이 신앙이 아닙니다. 내가 하나님의 뜻을 얼마나 따랐는가 하는 것이 신앙입니다.
셋째는, 구원문제에 있어서의 과정의 중요성입니다. 누가 천국에 이를 수 있을까요? 나름대로 열심만 내면 될까요? 선행의 열심, 고행의 열심, 극기의 열심, 종교의 열심, 이런 열심히 인간을 구원할 수 있을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마다 제멋대로 천국에 이르는 길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모로 가도 천국만 가면 되지!” “다원주의 세상에서 구원의 길이 하나 뿐일까?” 요즘 사람들은 “절대”라는 말을 아주 싫어합니다. 절대 진리가 없습니다. 절대자도 없습니다. 모든 것은 변하고 상대적인 것 뿐입니다. 도덕도 변하고, 가치관도 변하고, 사상도 변합니다. 각자 나름대로 살고 싶어 합니다. 어떤 길로 가든지 자유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절대자십니다. 인생에는 하나님이 주신 절대 윤리가 있습니다. 절대 구원이 있고, 절대 진리가 있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행4:12)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니 양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요10:7-8) 우리는 각자가 자기의 능력이나 지혜로 하나님을 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각자 자기의 인격이나 자신의 의로운 행위를 통하여 하나님께로 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 인정받을 자신이 있으십니까? “기록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롬3:10-12)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 살피사 지각이 있어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다 치우쳤으며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시14:2-3) 우리의 양심은 기준이 없습니다. 환경에 따라 이리저리 변합니다. 양심선언 백 번 해도 소용 없어요. 우리의 선행은 헌 누더기 같습니다. 우리의 지혜는 젖 먹는 아이처럼 어리석기 짝이 없습니다. 누가 감히 자기 힘으로 천국에 갈 수 있다고 자신하겠습니까?
정말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싶다면 하나님 앞에서 겸손해져야만 합니다. 스스로의 힘으로 하나님께 인정받겠다는 생각은 거두어야 합니다. 모든 자만을 버리고 하나님이 정해주신 길로 나와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믿지 않고 거부했던 죄 때문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한 죄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안중에도 없이 교만과 아집으로 살았던 죄 때문입니다. 이제라도 우리는 다만 하나님의 자비하심 앞에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어야 합니다.
신앙은 과정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떤 길로 걸어 오는지를 보고 계십니다. 제멋대로 천국 갈 자신이 있다고 큰소리치다가 지옥에 떨어지면 안 됩니다. 나 편한대로 살다가 내 방식대로 하나님 나라에 가려는 생각을 버리세요. 신앙의 길은 하나님이 정하신 문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길이 있습니다. 그 길은 바로 십자가의 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습니다. 십자가의 길로 나아오시기 바랍니다. 좁은 문, 협착한 길, 다른 길보다는 힘든 길입니다. 가기 싫은 길입니다. 인생에는 쉬운 길이 많아 보입니다. 그래도 우리는 좁고 험한 길로 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삶의 결과만 보시지 않으시고 삶의 과정을 보시기 때문입니다.
생명의 길은 소수만이 찾습니다
두 번째 주제는 생명길로 가는 사람들의 稀少性입니다. 멸망의 길에는 친구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생명의 길에는 친구가 없습니다. 가만히 보세요. 죄가 있는 곳에 친구들이 많아요. 술친구, 놀자 친구, 주먹 친구, 虛勢 친구, 도박 친구, 한 탕 친구.... 그렇지만 생명의 길에는 동지가 별로 없습니다. 의로운 친구, 진실한 친구, 사랑의 친구, 경건한 친구, 과연 몇 명이나 됩니까?
우리가 사는 세상은 여론이 지배합니다. 대중들의 인기에 따라 세상이 오락가락 합니다. 인기 있는 사람은 뜨고, 인기 없는 사람은 집니다. 다수가 원하면 따라 해야 하고, 다수가 거부하면 할 수 없습니다. 요즘 세상에서 인기 없으면 끝장입니다. 연예인만 인기를 먹고 사는 게 아닙니다. 소설가도, 시인도 인기가 있어야 됩니다. 정치인도 인기가 있어야 됩니다. 여론조사 해서 인기 없으면 대통령 후보도 못 나옵니다. 심지어는 학교 선생님도, 인기 없으면 안 됩니다. 소비자 중심 교육이라는 이상한 교육이 생겨나서 선생님 실력을 학생들이 평가합니다. 아무리 실력이 있어도 인기 없는 교수는 대학에서 퇴출됩니다. 교회도 인기가 있어야 됩니다. 매스컴에 뜨는 교회가 부흥합니다. 목사도 그래요. 인기 없으면 교회 문을 닫아야 합니다.
다수결로 결정한다면 천국은 망할 겁니다. 길에 나가서 외쳐 보세요. 천국 가자고하면 들은 척이나 합니까? 웬 미친 사람이 또 나타났구나! 이런 소리를 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남들이 다 천국 간다면 나는 지옥에 가겠다” 청개구리, 놀부, 팥쥐, 신데렐라 계모, 다 합쳐 놓은 사람입니다. 농담이라도 그런 말은 하지 마세요. 지옥이 어떤 곳인지 안다면 그런 농담은 꿈에라도 하지 않을 겁니다. 어찌됐든지, 천국은 별로 인기가 없습니다. 만화, 애니메이션, 환타지 소설, 괴기 영화, 다 보아도 악마나 귀신 얘기는 많아도 천사 얘기는 거의 없습니다. 지옥 얘기는 많아도 천국 얘기는 거의 없어요. 천국은 인기가 없습니다. 심지어 예수 믿는 사람들도 천국 얘기하면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천국 얘기 하면 죽으라고 욕하는 줄 알아요. 며칠 후 며칠 후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 죽는 얘기로만 알아 듭습니다. 오늘 말씀에 보니까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은 찾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합니다. 천국으로 가는 길에 사람이 없어요! 우리나라에 교인이 천만 명이 넘는데 그게 무슨 소립니까? 우리가 볼 때 교인은 많은데, 하나님이 보실 때 진짜 천국으로 가고 있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말씀입니다. 천국은 혹시 좋아 할지 몰라도, 천국 가는 길은 인기가 없습니다. 주님은 인기가 좋은데 주님을 따라 사는 것은 인기가 없습니다. 좋은 설교는 인기가 있는데, 설교대로 사는 것은 인기가 없습니다. 축복은 좋아하면서도 축복 받는 삶을 사는 것은 싫어합니다. 그러니 주님이 보실 때는 천국으로 가려는 사람은 많은데, 실제로 천국 가는 길로 바르게 가고 있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생명에 이르는 길, 참신앙의 길은 좁고 협착한 길입니다. 생명에 이르는 길이 왜 협착할까요?
첫째로, 죄를 멀리하고 의만 따라 가는 길이므로 험한 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시고 보호해 주시기를 바라면서도 하나님이 명하신 의의 길은 싫어합니다. 톨스토이의 인생독본에 보면 이런 얘기가 나옵니다. 어떤 노인이 있었습니다. 이 노인은 여러 가지 악의 유혹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은 왜 이 세상에 악이 존재하도록 놔두시는지 고민했습니다. 어느 날 꿈을 꾸었습니다. 하늘에서 천사 한 사람이 꽃다발을 가지고 내려옵니다. 그리고 그 꽃다발을 줄 사람을 찾고 있었습니다. 노인은 천사에게 물었습니다. “나는 꽃다발을 받을 만큼 많은 일을 했다고 생각하는데 그 꽃다발을 누구에게 주시렵니까?” 그랬더니 천사가 말합니다. “저기 북쪽 하늘을 보아라!” 북쪽 하늘에는 검은 구름이 온 세상을 덮으면서 다가옵니다. 그 구름이 점점 다가오는데 자세히 보니 그것은 검은 사람들의 무리였습니다. 그 검은 사람들 가운데는 엄청나게 큰 검은 거인이 서 있었습니다. 발은 온 땅을 밟고 있으며, 머리는 하늘에 닿았습니다. 눈은 무섭고 입술은 빨갛고 온 몸에 털이 나 있어서 가까이 가기조차 두려웠습니다. 천사가 다시 말했습니다. “너는 저 흑인과 싸워야 한다! 네가 만일 싸워서 이긴다면 이 꽃다발을 주겠다.” 노인은 두려워 하면서 거절했습니다. “나는 이 세상 무엇과도 싸울 수 있지만 저 검은 흑인과 만은 싸우기 싫습니다.” 그 때에 천사가 말을 했습니다. “어리석도다. 너는 저 큰 흑인 하나 때문에 저 많은 작은 흑인들과도 싸우기 싫어하느냐? 저 작은 흑인의 무리는 실상 사람들 속에 있는 정욕이다. 너는 저들과만 싸우면 된다. 저 큰 흑인은 이 세상 모든 악을 뭉쳐놓은 덩어리다. 너는 저 큰 흑인 때문에 악과 싸우기를 싫어하고 하나님을 원망하지만 실상은 저 큰 흑인은 두려워 할 것도 없고 싸울 필요도 없다. 저것은 텅 빈 허상에 불과하다. 너 자신의 정욕과 싸우라. 그리하면 이 세상 모든 죄악을 이길 것이며, 세상의 죄는 없어질 것이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는 죄와 싸우기 싫어합니다. 오히려 적당히 타협합니다. 그것이 넓은 길이요 세상 모든 사람들이 가는 쉬운 길입니다.
둘째로, 참 신앙의 길은 이 세상을 목적하지 않고 세상을 버려야 하기 때문에 좁은 길입니다. 만일 오늘 당장 이 세상 삶을 마감하고 떠나라고 명하신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모르기는 해도 미련이 많아 무조건 거절하실 겁니다. 자식의 미련, 벌어놓은 돈에 대한 미련, 이름과 명성에 대한 미련, 이 세상의 즐거움을 버리지 못하는 미련 등등. 이 세상의 것들을 버리는 것이 죽음보다도 힘듭니다. 영의 눈이 조금이라도 열려 있다면 세상 영광만 보지 않고, 하나님 나라도 볼 겁니다. 사도 바울은 천국의 환상을 바라본 후에 대단한 결심을 했습니다. 자신이 현재 가지고 있는 모든 혜택과 축복을 기꺼이 포기했습니다. 순수한 유대인의 혈통, 바래새인의 가문과 학식, 로마 시민권, 상속 재산, 사회적 신분, 모든 것을 포기했습니다. 포기하는 정도가 아니라 배설물로 여겼습니다. 왜냐하면 영생과 천국이 너무나 소중하고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아무튼지 하늘나라를 목적 삼고 사는 사람은 세상의 영화를 포기해야 되기 때문에 좁은 길입니다.
셋째로, 내 뜻은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야 하기 때문에 좁고 험한 길입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눅9:23) 자기의 뜻을 버리기가 얼마나 힘듭니까? 어느 대학에서 교수와 학생들이 마주 않아 토론을 벌였습니다. 그런데 결론이 어떻게 난 줄 아세요? 학생들은 교수들에게 마음에 맞지 않는 답변을 했다고 야유를 하고 드디어는 교수들의 말을 가로막고 구호를 외치는 것으로 끝이 났어요. 자기들의 주장만이 옳다는 거예요. 자기들이 옳으니까 총장이든 교수든 배척하겠다는 겁니다. 특히 요즘 젊은이들은 자기 뜻을 꺾는 것을 패배라고 생각합니다. 자기주장을 잘 해야만 성공적인 인생이 된다고 믿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자기 뜻을 꺾는 것을 죽음보다 싫어합니다. 이것이 인간들의 실상입니다. 사람마다 사상에 미쳐 있거나, 자기 아집에 미쳐 있습니다. 자기를 부인하기는커녕 자기 때문에 진리를 부인합니다. 자기를 버리지 못하니 주님이 맡겨주신 십자가를 질 수는 더욱 없습니다. 그래서 신앙의 길은 좁고 험한 길입니다.
생명에 이르는 길은 힘든 길이요, 좁은 문이요, 인기가 없는 길입니다. 그래서 다수의 사람들은 쉽고 넓고 편한 길로 갑니다. 좁은 길로 가는 사람은 극소수뿐입니다. 그러나 다수가 원한다고 진리는 아닙니다. 다수가 찾는 길이라고 다 생명의 길은 아닙니다. 요즘은 대중의 시대입니다. 대중이 원한다면 무엇이든지 합니다. 잘 된 일이든 그릇된 일이든 다수가 몰려다니면 무언가 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특히 매스컴에 의해서 사람들의 관심과 생각을 획일적으로 물량적으로 몰아가기도 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언제나 혼자였습니다. 주님은 대중들을 사랑했지만 대중을 따라가지는 않으셨습니다. 광야시절 모세를 따르던 여호수아와 갈렙은 60만 명이 다 가는 길을 버리고 단 둘이서 진리의 길을 지켰습니다. 엘리야는 850 명이 따르는 길을 홀로 버리고 참 신앙의 길을 지켰습니다.
다수가 믿는 길이라고 다 옳은 신앙은 아닙니다. 다수가 진리라 말한다고 넋 놓고 따라가지 마시기 바랍니다. 잘못하면 단체로 지옥에 떨어집니다. 공산당은 50년 이상 만장일치만 해 왔지만 결국은 망했습니다. 비록 극소수의 사람들이 가는 길이라 해도 옳은 길을 찾아 가시기 바랍니다.
인생에는 문이 있고, 길이 있고, 도착하는 종점이 있습니다. 또한 인생이 갈 길도 오직 두 가지 길 뿐입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 험난한 길을 통과하여 생명에 이르는 길이 있습니다. 넓은 문 쉬운 길을 통과하여 멸망에 이르는 길이 있습니다. 생명으로 가는 길은 두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는 과정과 경로가 중요합니다. 둘째로 좁고 험하여 인기가 없습니다. 죄를 버리고 의를 따르는 길이요, 이 세상을 버리고 하늘을 목적 삼는 길이요, 내 뜻을 버리고 주님의 뜻을 따르는 길입니다. 극소수만이 이 길을 갑니다. 부디 생명 길을 찾아 나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은혜 설교 모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스크랩] 골3:1-3 위의 것을 찾으라 (0) | 2013.11.20 |
|---|---|
| [스크랩] 반석 위에 짓는 집 (0) | 2013.11.20 |
| [스크랩] 황금률 (0) | 2013.11.20 |
| [스크랩]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0) | 2013.11.20 |
| [스크랩]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0) | 2013.11.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