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가야할 가장 좋은 길
출애굽기13:17~22
17 바로가 백성을 보낸 후에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은 가까울지라도 하나님이 그들을 그 길로 인도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백성이 전쟁을 하게 되면 마음을 돌이켜 애굽으로 돌아갈까 하셨음이라
18 그러므로 하나님이 홍해의 광야 길로 돌려 백성을 인도하시매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대열을 지어 나올 때에
19 모세가 요셉의 유골을 가졌으니 이는 요셉이 이스라엘 자손으로 단단히 맹세하게 하여 이르기를 하나님이 반드시 너희를 찾아오시리니 너희는 내 유골을 여기서 가지고 나가라 하였음이더라
20 그들이 숙곳을 떠나서 광야 끝 에담에 장막을 치니
21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서 가시며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 기둥을 그들에게 비추사 낮이나 밤이나 진행하게 하시니
22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 기둥이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아니하니라
인사(연결)와 서론
지난 시간에는 "마음으로 변화를 받자"라는 주제로 말씀드렸습니다 (생각-마음이 변해야(말씀과 성령) 사람이 변한다)
오늘은 "우리가 가야할 가장 좋은 길"주제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은혜를 나누고저 합니다.
구호 : 주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제가 95년도에 이스라엘 성지여행을 다녀왔습니다. 벌써 15년 전입니다.
그때 여행을 하면서 아직도 잊을 수 없었던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이집트에서 나와 모세가 출애굽해서 홍해 바다 건너 광야를 지나간 그 경로를 따라 가 보았던 것입니다.
지금도 그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때 저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이 광야를 200만 명을 이끌고 지났던 모세의 리더십을 내게도 주옵소서.”
또 하나 기도한 것은
“하나님, 지금은 내가 버스를 타고 가이드를 따라 이 길을 가고 있지만 다음에 우리 교회 성도들과 함께 꼭 다시 한 번 더 이 길을 걸어보게 해 주옵소서.”
이런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15년이 지났는데 아직 그 기도가 안 이루어 졌습니다.
언젠가는 이루어지겠지요? 우리 속에 소원이 있으면 이루어주시는 분이시기에……. 아멘?
그때 느낀 것 중에 또 하나가 애굽에서 가나안 땅으로 가는 최단 거리는 블레셋 땅을 통과하여 브엘세바와 에게브로 들어가는 길이었습니다.
지금 이 길은 지중해를 따라 난 길로 군사도로입니다.
잘 포장되어 있기에 그 길로 가면 평안하고 즐거운 여행길입니다.
과거 출애굽시절 포장이 안 된 도로라도 이 길로 열심히 걸으면 지름길이기에 많이 잡아도 한 두주 정도면 도착할 수 있는
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그 길로 인도하시지 아니하시고 홍해를 지나 광야 길로 인도하신 것입니다.
자그마치 40년이나 걸리게 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광야 길을 걸으면서 원망하고, 그 원망은 분노로 그 분노가 좌절과 낙심으로
자기자포로 빠지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쉬운 길, 지름길 다 두시고 멀고 먼 길 돌아서 힘들게 가나안에 들어가게 하시는 이유가 뭐냐?”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도 생각해 볼 것이 있습니다.
왜 남들은 태어날 때부터 좋은 부모 밑에서 부잣집 자식으로 태어나 호의호식하는데 왜 나는 이렇게 물질적으로 힘들게 살아야
하나?
또 왜 남들은 IQ가 기가 막혀서 머리를 잘 굴리는데 나는 이렇게 石頭(석두)라 해도 해도 안 되느냔 말인가?
왜 남들은 사업을 했다하면 금방 일으켜 세우는데 나는 아직까지 인생 밑바닥을 헤매고 다니며 겨우 4식구 먹여 살리기도
힘들게 살아야 하나?
혹시 이런 생각 안 해 보셨나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겪었던 그 길처럼 바람 불어 걷기 힘든 길, 물 없어 목마른 길, 사람 없어 외로운 길을 걸아야 하나?
생각해 보셨나요?
여러분 중에 내 인생길은 광야 길이 아니고, 나는 아스팔트 위에 카펫 깔고 푹신푹신한 길을 걷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 있습니까? 있으면 손들어 보세요. 없잖아요. 아마도 그런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왜냐면 그런 사람은 예수님을 믿을 생각도 못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볼 때 어떤 사람은 당당하게 보이고, 어떤 사람은 행복하게 보여도 사실은 겉으로 그렇게 보일 뿐이지,
실은 그도 인생 광야 길을 걷고 있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그러니 남 부러워할 것 없습니다.
그저 내 인생의 광야 길 당당하게 걸어가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나는 인생 광야 길 힘든 길을 걷게 하시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오늘 본문에 분명히 나와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우리가 가나안 땅까지 가는데 있어서 세 가지의 길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1. 지름길로 가는 길입니다.
2. 홍해를 건너 광야를 통과해야 하는 길입니다.
3. 애굽으로 되돌아가는 길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느 길로 가고 계십니까?
이 세 가지를 하나씩 살펴보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는 여러분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1. 지름길로 가는 길이 있습니다.
17절을 보세요.
17 바로가 백성을 보낸 후에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은 가까울지라도 하나님이 그들을 그 길로 인도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백성이 전쟁을 하게 되면 마음을 돌이켜 애굽으로 돌아갈까 하셨음이라
그 길은 <블레셋 땅>을 통과하는 길입니다.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은 가까울지라도 하나님이 그들을 그 길로 인도하지 아니하셨으니”라고 했습니다.
그 길은 분명 지름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길은 아마도 길도 평평하고 곳곳에 쉬어 갈수 있는 좋은 길일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길 도중에 블레셋 사람들이 사는 곳이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 길로 인도하지 않으셨습니다.
왜죠? 그길로 가게 되면 전쟁을 치러야 합니다.
그러면 백성들이 마음을 돌이켜 애굽으로 돌아갈 것이란 말입니다.
그러기에 그들을 그 길로 인도하지 아니하셨다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그 당시 블레셋 사람들은 매우 호전적인 족속이었습니다.
때문에 만약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들과 전쟁을 하게 되면 이스라엘은 분명히 출애굽을 후회하고 서둘러 애굽으로 돌아갈 것이 확실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길로 인도하시지 않으신 것입니다.
그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은 사람이 보기에는 가장 적합하고, 가장 쉬워 보이지만 하나님은 선택지 않으신 길입니다.
오늘 우리 인생길도 이런 길이 있습니다.
불행하게도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그길, 편하고 쉬운 지름길을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길에 블레셋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모릅니다.
설사 있다 해도 능히 물리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 악한 세력을 이길 자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천국에 도달되지 못하고 마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사단은 여러분을 유혹합니다.
“왜 그렇게 힘들게 사냐?”
“간단하고 시운 길이 있는데, 대박을 터트릴 길이 있는데 왜 어려운 길을 가냐”고 속삭입니다.
남들은 다들 넓고 큰길을 가는데 왜 너만 유독 좁은 길을 가려느냐는 것이지요?
그러나 성경 속에서 하나님은 뭐라 하십니까?
마7장 13~14절을 보세요.
13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14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그 길은 지름길처럼 보이나 명망으로 인도하는 길이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은 문도 좁고 길도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다고 했습니다. 아멘?
겉으로 보면 지름길이지만 실제로 지름길이 아닌 멸망길이기에 하나님은 우리를 그리로 인도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많은 사람이 가는 길이라고, 쉽고 편한 길이라고 그길로 가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직 우리의 목자이신 하나님을 따라가시기를 바람니다.
두 번째 길은
2. 홍해를 건너 광야를 통과해야 하는 길이 있습니다.
18절을 보세요.
“그러므로 하나님이 홍해의 광야 길로 돌려 백성을 인도하시매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대열을 지어 나올 때에”
하나님이 인도하신 길은 홍해를 건너 광야 길이었습니다.
그 길은 험하고 힘든 돌아가는 길이요 굉장히 먼 길이었습니다.
게다가 조금 가다가 홍해 바다가 가로 놓여 있는 막다른 길이었습니다.
왜 이러한 어려운길로 그 백성들을 인도하셨습니까?
신명기 8장14절 이하에 그 해답이 나와 있습니다.
광야로 인도하신 이유는 첫째, 낮추시기 위함(겸손)이고,
둘째는 믿음과 순종의 훈련을 위해서이며,
셋째는 복을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광야를 인생의 끝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실상은 끝이 아니고 시작입니다.
광야는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저주가 아니라 축복이며 손해가 아닌 거룩한 투자입니다.
이 광야에서 모세가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 광야에서 침례요한이 만들어 졌습니다.
예수님도 이 광야에서 금식기도하시면서 사역을 준비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삶을 살면서 광야 길을 만난다면 낙담하고 절망할 것이 아닙니다.
그때가 하나님이 나를 만드실 기회라고 보고 믿음으로 대해야 합니다. (질병0
그러면 하나님은 그 광야에서 우리를 만들어 가십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으로 만드실까요?
그 광야에서
1)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2)겸손해지게 하고
3)훈련받아 하나님의 복을 받게 하십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홍해를 건너 광야로 가는 이 길은 복된 길이요.
하나님이 예비한 복된 길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어떤 분이 그런 질문을 했습니다.
자기는 모태신앙이라 어릴 때부터 믿었기에 회심의 경험이 분명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중도신앙인들을 보면 너무 부럽답니다. 일리는 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하나님이 제게 지혜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답변을 했습니다.
“당신은 그게 복인 줄 알라, 왜냐하면 당신이 믿지 않는 집에서 태어났으면 아예 믿지를 않았을 것이기에 하나님이 그것을 아시고 빼도 밖도 못하는 집에 태어나게 하신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저도 그렇습니다.
모태신앙은 아니지만 하나님이 목사로 삼으신 것은 목사로 만들어놔야 새벽기도도 빠지지 않고
목사 만들어 놔야 제대로 믿을 수 있기 때문이셨습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오묘하십니다.
그리고 세밀하십니다.
그러기에 우리 신앙에 그냥 당하는 고난은 없습니다.
이유 없는 고난, 이유 없는 아픔이 없습니다.
그 모든 것은 우리를 겸손하게 만들고 믿음을 든든히 한 후에 마침내 복을 주려 하심입니다. 아멘?
우리 성도들도 천국의 약속을 믿고 출애굽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예수 믿으면 모든 것이 다 잘된 줄로만 알았는데 실상은 어떻습니까?
여전히 우리의 삶 가운데 어려움이 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 길을 가는 동안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연단시키십니다. 그리고 교육시키십니다.
그래서 우리 믿음을 세워 가십니다. 할렐루야!
신앙의 길을 가려는데 눈앞에‘홍해 바다’를 만납니까? 길이 막혔습니까?
인간의 방법으로 해결이 안 되는 어려움이 찾아왔습니까?
그럴 때 정신 바짝 차리셔야 합니다.
그때 사단이 우리에게 절망적인 생각을 불어넣어 줍니다. “이제 망했다. 이제 소망이 없다.”
그러나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망하게 하실 분이 아닙니다.
앞에는 홍해 뒤에는 애굽 군대,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속에 하나님은 뭘 보여 주시려고 하나요?
따라서 합시다. /나를 /여호와인 줄 /알게 하리라/ (출14:4) 할렐루야!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홍해 건너게 하시고 광야 길로 인도하신 것은 세 가지 목적이 있습니다.
1)하나님이 만나주시기 위해서 입니다.
신앙생활은 하나님과의 만남으로 시작되고 하나님과의 만남으로 지속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만남이 없다면 신앙생활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광야를 고난의 장소로 이해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광야는 고난의 장소 이전에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만날 때 진정한 변화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교회생활을 오래했어도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그 사람은 아직 진정한 변화를 경험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 안에 보게 되면 과거의 그가 아닌 완전히 변화되어 새롭게 된 사람들이 있습니다.
전에도 교회를 다녔는데 어느 순간부터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 사람들을 찾을 수 있습니다.
왜 그 사람들에게 그렇게 확연하게 눈에 띄는 변화가 일어났을까요?
다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전에도 교회를 다녔지만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 사람들이 하나님을 만나기 시작했고 하나님을 만나고 나니 그들에게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2) 애굽의 속성을 제거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출애굽에 성공했으나 그들 안에는 애굽의 속성이 살아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미 430년간 애굽에서 살았기 때문에 애굽의 것들이 그들 안에 자리 잡고 있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애굽의 속성을 제거하는 과정을 거쳤던 것처럼 광야 연단은 믿는 자 속에 남아있는 세상의 속성을 제거하는 과정입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었다고 세상의 속성이 내 속에서 다 빠져나가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를 믿기에 십자가의 공로로 구원은 받았고 천국시민권을 얻었지만 여전히 세상적인 것들이 남아있는 것입니다.
군대에 들어가면 입대하는 순간부터 민간인이 아닌 군인입니다.
하지만 이제 막 입대한 이등병이 군인다운 군인은 아닙니다.
그는 분명히 군인이지만 여전히 사회생활의 찌꺼기가 묻어있는 것입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순간 그는 완전한 신자, 구원 받은 하나님의 백성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그에게는 세상의 요소들이 많이 남아있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그것을 없애기 위하여 광야와 같은 과정을 통과해야 하는 것입니다.
3) 가나안땅에 들어갈 믿음을 준비를 시키시기 위해서입니다.
가나안은 믿음으로 누리는 땅이었습니다.
모세가 가데스바네아에서 가나안 땅을 정탐하도록 열두 명을 보냈습니다.
그 가운데 믿음으로 보고를 한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가나안을 누렸습니다.
불신앙적인 보고를 한 10명의 사람들은 가나안에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을 누릴 수 있는 믿음이 준비되어지도록 훈련의 장소로 광야를 사용하신 것입니다.
세 번째 길은
3. 애굽으로 되돌아가는 길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갈 수 있는 마지막 길은 애굽으로 다시 돌아가는 길입니다.
이 길은 가나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다시 애굽 땅으로 돌아가 영원토록 종노릇하며 사는 길입니다.
하나님의 인도를 믿지 못하는 백성들입니다.
자기들은 비록 종노릇이지만 애굽에서 고기 먹으며 평생 배불리 먹고 살겠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 몸은 홍해를 건넜고 광야를 갔으나 실상 마음은 애굽에 남았던 자들이 참으로 많았습니다.
그들은 도중에 작은 어려움만 닥쳐도 애굽을 생각했습니다.
조금만 목이 말라도 그랬고 먹을 것이 없다고 불평할 때, 고기 먹고 싶다고 불평할 때도 애굽 생각을 했습니다.
결과는 뭘까요? 그들의 결과는 다 죽고 마는 무서운 심판이 있었습니다.
왜 그들은 그런 길을 걸어갔을까요?
가장 큰 문제는 불신앙이고 두 번째 문제는 욕심 때문입니다.
그러다보니 그들은 사사건건 원망불평을 했습니다.
이들은 엄청난 기적을 맛보고도 변화되지 않았습니다. 기적으로 홍해를 건넜습니다. 기적으로 40년간 만나를 먹었습니다.
기적으로 반석의 물을 마셨습니다.
그런데도 항상 애굽 생각하며 원망 불평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오늘날도 이런 사람들은 많습니다.
우리 교회는 없을 거라고 굳게 믿으나……. 혹시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혹 있다면 이 시간 이 설교를 듣고 돌이키시기를 바람니다.
그들이 누굽니까?
1)나는 예수 믿어봐야 소용없다고 포기해 버린 사람들,
2)세상 사람들은 예수를 안 믿어도 잘사는데 왜 나는 이렇게 안 될까 갈등하는 사람들
3)예수 안 믿는 사람들이 너무 멋져 보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이런 사람은 위험한 사람들입니다.
몸은 홍해를 건넜습니다. 몸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고 있습니다. 그런데 마음은 아직 애굽 땅에 있다면 정말 위험한 사람들입니다.
왜요?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진노하시고 심판하셔서 광야에서 죽게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애굽에서 몸은 나왔으나 마음은 애굽을 행해 가고 있는 사람들은 다 죽었다는 기록만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이제 홍해를 건넜으면 가나안땅을 바라보고 광야 길을 묵묵히 걸어가시기를 바람니다.
그 길은 고난의 길도 있으며 아말렉도 기다리고 있으나 우리 대장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미 승리하게 하신 길이기에 그분만
따라가시기를 바람니다.
그 길에 하늘의 양식 만나가 준비 되어 있고 반석이신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생수도 있습니다. 할렐루야!
광야 길은 우리 홀로 가는 길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불기둥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시는 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구름기둥 불기둥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21~22절을 보세요.
21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서 가시며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기둥을 그들에게 비추사 낮이나
밤이나 진행하게 하시니
22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기둥이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아니하니라.
구름기둥 불기둥은
1)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믿음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낮에 구름기둥으로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하신 것처럼 밤에는 불기둥으로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2) 하나님이 보호하신다는 약속입니다.
낮에 뜨거운 태양을 막아주시고, 밤에는 불을 밝히셔서 추위를 막아주시고 어둠을 밝혀주셨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생활 4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호하셨습니다.
낮의 해로부터 보호하셨고, 밤의 추위로부터 보호하셨습니다.
광야의 들짐승들로부터 보호하셨고 주변의 적들로부터 보호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보호자임을 확신합시다.
3) 하나님이 인도하신다는 확신을 가집시다.
하나님은 그들 앞에서 가시며 인도하셨습니다.
그들에게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들에게 비추게 하셔서 밤이나 낮이나 진행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분명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셨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것은 어려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으려면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움직임만 주목하면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이 시대를 사는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으려면 자신의 내면에서 역사하시는
성령께 주목해야 하는 것입니다.
성령께 주목하면 성령께서 가장 합당한 길로 인도하실 것입니다.(성경과 예언)
결론 적용 호소 결심-마치면서
말씀을 맺습니다.
여러분은 어느 길로 가고 계십니까?
바라기는 지름길로 가려하지 마시고 애굽으로 되돌아가려 하지도 마세요.
홍해를 건너시고 광야 길로 들어 온 우리입니다.
하나님은 구름 기둥과 불기둥으로 우리에게 가장 좋은 길을 인도하십니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보면서 세 가지 확신을 가집시다.
따라합시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보호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가장 좋은 길을 인도하십니다.
기도합시다(통성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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