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로 새로워지는 성도
고후4:16-18
16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17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18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설교:
최근 대기업 경영일선에서 창조경영과 창의력의 키워드가 되고 있는 것이 <생각하기>라는 것입니다. 모든 일을 멈추고 생각을 하는 시간을 갖는 것입니다.
그 생각 속에 아이디어가 나오고, 놀라운 창의력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세계적 기업인 3M이라는 기업에서 연구원들에게 15% 규칙을 적용했답니다. 그것이 뭐냐하면 근무시간의 15%는 반드시 자기 일과 관련 없는 것에 시간을 쓰도록 하고 있다고 합니다.
최근 google에서는 이 규칙이 20%로 상향 조정했다 합니다. 자기 업무와 전혀 상관없는 일을 일정한 시간을 할애해서 "딴 생각"을 하게 했더니 창의력에 엄청난 도움을 주었다 합니다. 이유가 뭘까요? 바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지난 20세기 직장의 화두는 "일 열심히 하기"였습니다. 얼마나 열심히, 얼마나 많이 일을 하느냐가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그러다 21세기 들어와 정보통신이 발달하고 지식산업이 증가하면서 이 화두가 "영리하게 일하기"로 바뀌었습니다.
그러나 최근에 와서는 이것으로도 부족했습니다. 이제는 "열심히 생각하기"로 바뀌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생각>이 승부를 결정짓는 시대가 온 것입니다.
그래서 <생각이 일>인 시대가 온 것입니다.
그래서 빌 게이츠 회장은 1년에 두 차례 혼자 외딴 별장에 가서 생각하기 주간을 갖는 답니다. 가족도 데려가지 않고 특별한 운동도 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그냥 생각만 합니다.
그래서 나온 것이 "인터넷 익스플로러" "온라인 비디오 게임" 등 굵직굵직한 아이디어들이 바로 이 '생각 주간'에서 나왔다는 것입니다.
빌 게이츠 회장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자기 회사 임원들도 생각하기 주간을 갖게 했답니다. 그리고는 일주일 내내 생각한 결과를 공개해야 하고 다른 임원들이 평가까지 한다고 합니다.
생각의 가치를 알고 활용하는 문화가 정착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놀라운 사실은 이렇게 놀게 하고 쉬게 하면서 생각만 하는데 이런 회사가 엄청난 결과를 만들어 낸다는 것입니다.
저는 신앙도 생각이 필요하다고 믿습니다. 목회도 깊이 생각하여야 합니다.
그저 열심히 봉사만 하고 그저 죽도록 충성만 할 것이 아니라 깊이 생각해야합니다.
"내가 누구이며, 내가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 존재인가?" 돌아보아야 합니다.
"왜 하나님이 나를 이 땅에, 이 나라에, 그리고 이 가정에 보내셨는가?"
"나는 이 한정된 시간 속에서 무엇을 이루며 살아야 할 존재인가?" 이런 것을 깊이 생각해 보는 것, 그리고 지혜를 얻어 내는 것이 성도의 마땅한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세월이 빠르다고 한탄만 할 것이 아닙니다. 역사의 주관자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시간과 세월도 하나님의 주권 하에 운영됨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기에 이 빠른 세월 속에 구원받은 우리 성도는 어떤 자세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하나님은 우리 성도가 빠른 세월 속에서도 날로 날로 예수님을 닮아가길 소원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믿음의 성숙과 성장이 있기를 소원하십니다. 그렇다면 날로 새로워지는 성도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보세요.
고린도전후서는 사도 바울이 기록했습니다. 특히 고린도 후서는 고린도 전서를 받은 성도들이 바울의 책망을 듣고 회개하였다는 말을 전해 듣고 기뻐했습니다.
그렇지만 교회란 어느 시대든지 항상 문제를 갖고 있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권면하고 위로하기 위해 후서를 기록했습니다. 당시 고린도 교회에는 몰래 숨어 들어온 거짓 스승들과 이단들이 교인들을 미혹시키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어떻게 바울이 사도냐며 사도직을 의심케도 했습니다.
그런 중에 바울은 성도들을 재차 가르치고 권면하기 위해 후서를 기록했고 특별히 복음 때문에 당하는 여러 가지 고난에 대해 인내와 끈기로 잘 이겨내야 한다는 격려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날로 새로워지라고 권면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를 믿는 우리 성도가 날로 새로워지려면 어찌 해야 할까요?
몇 가지 생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1.겉사람에 매이지 말고 속사람을 생각하라 합니다.
16절을 보세요.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우리 겉사람은 날마다 낡아진다." 다른 말로 말하면 "우리 육체는 날마나 썩어지고 늙어간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 나이가 30대가 넘었으면 이제 늙어져 가는 것이고 그것은 썩어져 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너무 육체에 미련두지 말아야 합니다.
인생에 평준화의 법칙이란 것이 있다고 합니다.
나이 40 넘으면 연애 잘했던 사람이나 못했던 사람이나 똑같고,
나이 50 넘으면 잘생긴 여자나 못생긴 여자나 똑같고,
나이 60 넘으면 배운 사람이나 못 배운 사람이나 똑같고,
나이 70 넘으면 돈 많은 노인이나 돈 없는 노인이나 똑같고,
나이 80 넘으면 살아있는 것이나 죽은 것이나 똑같다 합니다.
그러기에 좀 가졌다고 교만하거나 자랑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좀 배웠다고 큰소리 칠 것도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세월 앞에 겸손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인간은 예외 없이 겉사람은 늙고 병들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기에 조금 일찍 가나 조금 더 살다가 가나 하나님 앞에서는 별반 다를 것이 없습니다.
많은 사람이 건강이 최고라 합니다. 그래서 건강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지 다 하는 세상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아셔야 합니다. 아무리 건강, 건강해도 그 몸도 역시 낡아져 가게 됩니다. 그러기에 내게 부여된 미션이 끝나는 날, 나는 하나님 앞에 선다는 믿음 갖고 살아야 합니다.
건강이 우상이 되지 않게 살라는 말입니다. 아무리 건강을 위해 발버둥 쳐도 하나님의 허락한 세월을 이길 수 없고 결국은 때가 되면 다 떠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안 죽으려고 난리를 쳤던 진시황제도 50에 죽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어찌해야 할까요? 우리 속사람을 날마다 새롭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당신 백성들에게 영혼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를 영접하면 이 속사람이 살아납니다. 그래서 거듭난다고 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 속사람을 강건하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속에 만들어 주신 새 사람, 즉, 성령으로 거듭난 속사람은 세월이 흐르면 흐를수록 강해지고 건강해 질 수 있습니다.
어떻게요? 속사람의 존재를 믿는 성도는 낡아지는 겉사람을 바라보면서,
1)창조주 하나님을 믿고 더욱 겸손하고, 2)더욱 더 기도해야 하며, 3)예수 그리스도를 닮아 죽음 너머에 있는 내세를 준비하는 지혜로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
천국에서는 낡아지거나 죽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기에 우리 성도는 영생을 한다고 믿는다면 우리 속사람은 환난과 역경 속에서 낙망치 말고 날마다 천국을 바라보고 믿는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그러기에 환난이나 고난이 도리어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전설에 나오는 이야깁니다. 성경에는 없습니다. 어느 날 다윗 왕이 궁중의 보석 세공업자를 불러 이렇게 지시했습니다.
“나를 위해 반지를 하나 만들어라. 그 반지에는 내가 큰 승리를 거둬 그 기쁨을 억제하지 못할 때, 그 마음을 조절할 수 있는 글귀를 새겨 넣어라. 또한 그 글귀는 내가 절망에 빠져 있을 때도 나를 구해낼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왕의 명령을 받은 보석 세공인은 곧 아름다운 반지 하나를 만들었지만, 왕이 지시한 적당한 글귀가 생각나지 않아 곤욕을 치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보석 세공인은 솔로몬 왕자를 찾아가 도움을 구했습니다. 이에 왕자는 다음과 같은 글귀를 새겨 넣으라고 조언하였습니다.
‘이것 역시 곧 지나가리라!’라고 써라 그러면 왕께서 승리의 순간에 이 글귀를 보면 곧 자만심이 가라앉을 것이고, 절망에 빠져 있을 때 이 글귀를 보면 이내 표정이 밝아질 것이다 라고 했답니다.
과연 그대로 했더니 그 세공업자가 왕께 상을 받았다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누리는 각종의 부귀영화, 이것 역시 곧 지나갑니다. 그리고 각종의 환난과 고통, 이것 역시 지나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결코 지나가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그래서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그게 무엇일까요? 우리 속사람입니다.
우리 속사람은 부귀영화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속사람은 진리로 만들어지고, 성령의 거룩함 속에서 예수를 바라볼 때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때로 환난도 필요합니다. 때로 고난과 핍박도 필요합니다. 그런 환난과 핍박이 우리 속사람을 새롭게 함을 잊지 마셔야 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 앞 구절을 보세요.
고후4:7~10절입니다.
7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8 우리가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9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10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사도 바울은 우리 성도가 믿음을 지키며 세상에서 올바로 살아가려면 많은 환난을 당하게 되는데 그때 그 환난 때문에 쓰러지고 넘어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왜죠? 우리 속에 보배이신 예수님이 계시고, 예수의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멘?
그러기에 믿음 생활하기가 점점 어려워져가는 이 마지막 시대에 우리도 옛 사람인 겉사람에 붙들려 있지 말고 속사람을 날마다 새롭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을 닮아가는 것이 최고의 가치로 여겨지고, 믿음으로 주님을 기쁘게 해드리어 하나님께 영광 돌리시기를 축원합니다.
2.잠시를 생각하지 말고 영원을 생각해야 합니다.
본문 17절을 보세요.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아멘?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반드시 환난이 있습니다. 그러나 "환난"은 잠시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신앙과 사명에 따라서 어떤 이는 환난이 작기도 하고 어떤 이는 이루 감당 할 수 없을 정도로 클 수도 있습니다. 또 어떤 이는 잘 극복하지만 어떤 이는 쓰러지고 넘어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실망하고 낙심합니다. 시험에 들고 상처를 입습니다.
그러나 명심하세요. 오늘 성경에 보세요. 우리가 받는 환난은 ‘잠시’라고 하였습니다. 참으면 반드시 지나갑니다.
하나님의 영원에 비하면 지극히 짧은 ‘잠시’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환난을 이길 수 있도록 우리에게 지혜, 믿음, 능력, 피할 길을 주십니다. 아멘.
고전 10:13을 아시지요?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성도 여러분!
성경을 보세요. 위대한 믿음의 선배들을 보세요. 그들 모두가 환난을 받고 멋지게 통과하였습니다. 환난 때문에 잃어버린 것보다는 언제나 얻는 것이 더욱 많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누리는 영광은 영원함을 알아야 합니다. 환난은 잠시 받으나 영광은 영원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17절을 다시 보세요.
"17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영원한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받는 잠시 받는 환난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얻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복음 때문에 잠시 받는 환난, 주님이 주신 십자가를 져야하기에 당하는 환난은 잠시이지만, 그것 때문에 누려지는 영광은 영원하고 중하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단 말입니다.
전도하다 먹는 욕은 잠시입니다. 복음을 위해 핍박을 당하는 것은 일시적입니다. 그런데 하늘에서 누려지는 상은 영원한줄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성경은 하늘에 상에 대해 수많은 곳에서 약속합니다.
마5:11~12절을 보세요.
11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했습니다.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라고 분명히 약속하셨습니다.
또 마태25:21절을 보세요.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많은 것을 맡긴다 했습니다.
히11:7절에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상주시는 분이십니다.
계2:10절에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 하셨습니다.
시간이 없어 더 이상 살피지 못하나 하나님은 수없이 많은 곳에서 충성된 자에게 상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상의 효력은 영원하다는 것입니다.
대한민국헌법 11조 3항에는 "훈장 등의 영전은 이를 받은 자에게만 효력이 있고, 어떠한 특권도 이에 따르지 아니한다."고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나라에서 주는 훈장이나 상은 받았다고 해서 어떤 특권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늘의 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 상의 효력은 영원하고 그 상의 특권도 영원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상을 받도록 힘쓰고 노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많은 사람이 열심히 충성하면 구원을 받는줄 알고 있습니다. 아닙니다.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입니다.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받습니다. 천국 들어가게 됩니다. 그런데 왜 그토록 충성하고 봉사해야 하나요?
먼저는 구원의 은혜 감사해서입니다. 그리고 상을 받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상을 받으려면 목적이 순수해야 합니다.
충성을 하되 나도 영광 좀 받고 하나님도 영광 받고……. 꿩먹고 알먹고... 누이 좋고 매부 좋고하는 충성은 충성이 아닙니다.
봉사도 헌금도 다 그렇습니다.
오로지 하나님만이 영광을 받으시도록 해야 하는데 그 헌신 봉사를 통해 내가 높아지고 남들이 알아 주길 기대하며 한다면 그것은 상을 얻지 못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잘 구별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정확하게 그리고 분명하게 구별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산상수훈에서 기도와 금식, 구제를 말씀하시면서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마6장 1절을 보세요. 1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받지 못하느니라
그리고 3~4절도 보세요.
3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4 네 구제함을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5 또 너희는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하지 말라 그들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6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세상 사람들은 오해를 합니다.
우리 개신교는 구제를 별로 안하고 천주교가 대단한 일을 하는 것처럼 오해를 합니다. 그러나 정반대입니다. 한국의 구제 사업이나 자선단체의 약 70%는 개신교 교회나 교회와 관련된 분들이 합니다. 천주교는 10%밖에 안 됩니다.
그런데 세상이 모릅니다.
엊그제 방송된 천주교 이태석 신부의 사역 영화도 천주교에서 홍보 전략으로 만들어졌다고 보여 집니다. 우리 개신교 선교사들은 그보다 더 크고 많은 일을 해왔습니다. 더 많은 순교자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왜 보도가 안 되나요? 성경 말씀처럼 들어내질 않는 것입니다.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 하셨습니다. 그래서 엄청나고 대단한 일을 하고도 들어내질 않는 것입니다.
세상이 알아주던 안 알아주던 상관없습니다.
다만 주님 한분만 아시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가치 분별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무엇이 더 경한 것인지 무엇이 더 중한 것인지를 분별해야 합니다.
가벼운 세상의 칭찬과 영광을 위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을 포기할 순 없는 것입니다.
3.보이는 것을 생각지 말고 보이지 않는 것을 생각하라 합니다.
18절을 보세요.
18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사도 바울은 우리가 무엇을 주목해야 하는지를 가르칩니다.
우리 성도가 바라보아야 할 것은 잠시 잠간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라 했습니다. 보이는 것은 잠깐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합니다. 그러기에 여기 보이는 것은 뭐고 보이지 않는 것은 뭔지를 알아야 합니다.
보이는 것은 이 땅에 것입니다. 부귀영화, 그리고 명예와 권세입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것은 하늘에서 받을 영원한 영광의 축복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 것을 더 바라봅니까?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것을 더 중하게 여기지 않는가요? 결국 없어질 것이고 사라질 것인데 우리는 눈에 보이는 부귀영화에 인생을 걸고 전력질주하고 있단 말입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허망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에 주목해야 하나요?
그것은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은 주님 다시 오시는 그날에 우리에게 주어질 그날을 보아야 하고 그날에 우리에게 주어질 상급을 바라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누가 볼 수 있나요? 인간적인 눈으로는 절대로 볼 수 없습니다.
오직 믿음오로만이 볼 수 있는 것입니다.
히11:3절을 보세요.
3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이 지은 세계인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기에 믿음으로 육체의 세계만이 아닌 영의 세계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는 자 만이 육체를 입고 내세를 볼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날로 새로워지길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겉사람에 매이지 말고 속사람을 생각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잠시를 생각하지 말고 영원을 생각해야 합니다.
더 나아가서 보이는 것을 생각지 말고 보이지 않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이것이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요구입니다.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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