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내게 찾아오신 방법
요한복음1:1~4
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설교:
어느 젊은 신혼 부부가 아이를 낳았는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아이가 부모를 전혀 안 닮았답니다. 그래서 남편이 아내를 의심하게 되었고 결국 부부 싸움 끝에 親子확인 유전자 검사를 받게 되었다 합니다. 그런데 검사 결과는 친자로 나왔답니다.
알고 보니 부부 둘 다 成形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서로 속아서 결혼을 했다는 것입니다.
또 이런 유머도 있답니다. 믿지 않는 사람이 만들어낸 유머이니 그냥 들어두세요.
어떤 사람이 죽어 천국에 갔답니다. 그런데 그 젊은이가 하나님께 장가도 못가보고 젊은 나이에 죽어서 억울하다고 하소연을 하였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그래 이해가 된다며 다시 살려 보냈답니다.
그래서 다시 살아난 그 사람이 너무 좋아 장가를 잘 가려고 큰돈을 들여 성형수술을 했답니다. 그런데 며칠 후 또 죽었답니다. 또 다시 하나님 앞에 간 그 사람이 살려줄 땐 언제고 왜 또 불렀냐 원망했더니 "야~ 미안하다 야~ 난 넌 줄 몰랐다 야" 했답니다. 그 정도로 성형수술이 딴 사람으로 만들어 놓는다는 이야깁니다.
사람들이 세상을 살아갈 때 가장 큰 실수를 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을 하고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에 價値를 부여하고 판단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도 평가할 때도 이력서 한 장, 사진 한 장으로 사람을 평가합니다. 外貌로 사람의 됨됨이를 평가할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일단 외모가 좋아야 기회가 생긴다고 믿는 것이 우리 사회의 현실입니다.
실제로 한국의 성형외과 기술은 세계적 수준이랍니다.
그래서 동남아나 중국에서 한국으로 성형 수술하러 오는 의료관광객들이 상당히 많다고 합니다.
이처럼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무시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실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가 더 크고 더 넓고 더 많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기에 우리 성도는 눈에 보이는 것만을 가지고 가치판단을 하면 큰 실수를 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돈, 명예, 권력, 이런 것은 대개가 눈에 보이는 것들입니다. 그러기에 세상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 좋아하고 추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 소망, 사랑, 그리고 천국, 영생, 하늘의 상급, 이런 것은 그런 것보다 더 가치 있고 소중한 것인데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기에 사람들에게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랑이 밥 먹여 주냐?" "믿음이 무슨 쓸데없는 소리냐?" 하면서 천대합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지금 무엇을 좇아가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는 세상을 보는 시각이 바뀌어야 합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사람은 외모를 보나 나 여호와는 中心을 보느니라"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중심을 보십니다. 사람을 절대로 외모로 보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중심을 보지 못하기에 외모를 중시합니다. 그러기에 많은 실수를 합니다.
사람들은 심지어 예수님조차도 외모로만 보고 그를 대우했습니다.
육신을 입고 오신 예수님, 나사렛 목수의 아들로 자라신 예수님, 그를 외모로 보았기에 유대인들과 서기관, 바리새인 제사장들, 그리고 헤롯왕과 본디오 빌라도가 그토록 기다리던 메시아를 죽였던 것입니다.
그분은 외모로 보면 초라하기 그지없는 모습이었습니다.
갈릴리 촌 동네 나사렛 출신입니다. 실상은 성령으로 잉태되어 탄생하셨으나 겉으로는 목수의 아들로 자랐습니다. 그러기에 아무도 그를 알아주지 않았습니다.
오죽하면 이사야 53장2~3절에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2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3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나 그분은 누구십니까?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분을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분은 우리 신앙의 기초이며 우리 신앙의 전부입니다. 그분을 알지 못하면 우리 신앙은 잘못된 것입니다.
아무리 열심히 교회 나와 봉사하고, 헌금하고 열심히 전도해도,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올바로 알지 못하면 그 모든 것이 헛것입니다.
그분을 올바로 알아야 그분이 주시는 복을 누립니다.
그분이 누군지 알아야 그 사랑이 얼마나 위대한 사랑인지 알게 됩니다.
그분이 누군지 알아야 우리의 섬김과 예배가 그분께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혹시 여러분의 신앙생활이 힘들고 행복하지 못합니까? 이유가 뭘까요?
그중 가장 큰 요인은 우리가 믿는 예수님이 어떤 분인가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섬기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어떤 분이고, 그분이 내게 어떻게 찾아오셨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봉독한 요한복음 1장은 그가 누구신지, 그분이 어떤 모습으로 우리를 찾아 오셨는지를 정확하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과연 어떤 분인가요?
1. 그는 말씀으로 찾아오신 하나님이십니다.
세상 사람들은 예수님을 "세계 4대 성인중의 하나"라고 알고 있습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도 아직도 이렇게 예수님을 믿고 있다면 여러분은 예수님을 올바로 믿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예수님이 누구며 언제부터 존재했습니까?
1절과 2절을 보세요.
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예수님은 태초부터 계셨던 분입니다.
그는 태초보터 말씀으로 계셨던 분이고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었습니다.
여기 “太初”란 말은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셨던 그 때, 인류의 역사가 시작되었던 그 때가 아닙니다.
창세기 1:1절에 사용된 “태초”(In the beginning)가 아니라, 그 태초 이전부터 존재하고 있었던 분입니다. 즉 영원 전부터 존재하셨던 분입니다. 그때부터 그는 “말씀”으로 계셨던 분입니다. 그분이 예수님이란 말입니다.
그러기에 1절과 2절을 직역하면 이런 뜻입니다.
“영원부터 예수님이 계셨다. 예수님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기에 예수님은 곧 하나님이시다. 예수님이 영원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 아멘?
예수님은 영원부터 존재하셨던 분입니다.
그런데 왜 사도 요한은 우리가 알기 쉽게 “예수님”이라 하지 왜 “말씀(The Word)”이라 했을까요? 여기에 역사적인 배경이 있습니다.
사도 요한 당시 헬라인들은 전능한 “신”이 있는 것으로 믿었습니다. 그들은 “신”이 자신의 대리자를 통해 이 세상을 창조했다고 믿었습니다.
그 신의 대리자를 가리켜 당시 사람들은 “Logos"라고 불렀습니다. 이 로고스는 인격체로서 전능자요. 살아있는 존재였습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예수님“이라는 표현 대신에 헬라 사람들이 이해할만한 단어인 ”Logos"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그것이 곧 말씀 The Word 입니다.
이것을 한국말로 "말씀", 또는 중국말로 "道"(도)라고 번역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으로 우리 가운데 오신 것입니다.
마치 서양 선교사들이 한국에 와서 복음을 전할 때 영어로 하나님을 GOD이라 했는데 한국에서는 "갓"이라 하면 안되니 연구를 했습니다. 그래서 한국 백성들의 의식속에 있는 하느님과 유일신의 개념을 합성한 "하나님" 이란 단어를 만들었습니다. 그처럼 예수님은 로고스로, 말씀으로 우리에게 오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여기에서 깨달을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러므로 결국 예수님은 곧 하나님이라는 사실입니다.
“이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니라” 할렐루야!
그래서 사도 바울은 빌2:6절에서 예수님을 가리켜 이렇게 증거합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성도 여러분!
우리 예수님이 어떤 분이십니까?
그분은 평범한 인간도, 세계 4대 성인도 아닙니다. 그들과는 次元이 다릅니다.
그들은 被造物이나 예수님은 創造主 하나님이십니다.
그들은 죽음을 이기지 못했으나 예수님은 죽음을 이기고 부활했습니다.
그들은 땅 속에 묻혀있으나 예수님은 하늘나라로 승천했습니다.
승천하신 후 지금도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성부 하나님과 함께 세상을 다스리십니다.
그들은 審判의 대상이나 예수님은 그들을 심판하러 오실 裁判長이십니다.
그들은 지옥으로 갈 피조물이지만 예수님은 장차 이뤄질 천국에서 하나님 나라를 영원히 다스릴 통치자이십니다.
그들은 부모의 육체적 관계를 통해 태어난 사람들이나 예수님은 성령의 권능으로 마리아의 몸만 빌려 이 세상에 오셨던 하나님의 아들이요, 죄와 흠이 없는 “참 인간”입니다. 할렐루야!
그런데 왜 그분을 말씀이라 하실까요?
그분은 예수님 당대의 사람들만을 위해 오신분이 아닙니다. 2000년이 지난 오늘의 우리들에게도 하나님이십니다.
그러기에 말씀으로 오셔서 나를 만나 주시고 나에게 하나님의 구원을 얻게 하기 위하여 말씀으로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을 만나고 있는 것입니다.
14절을 보세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말씀이신데 육신을 입고 오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그분은 외모로 보면 초라해 보이나 그는 하나님이시고 나를 구원하러 말씀으로 오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말씀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말씀을 읽고 듣고 그 말씀을 소중히 대하는 것이 곧 하나님을 대하는 것입니다. 그분은 이 시간도 말씀으로 우리를 만나고 계십니다.
2. 그는 창조주로 찾아오신 하나님이십니다.
오늘 주신 말씀을 보면 예수님은 창조주이십니다. 3절을 보세요.
"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여기 만물에 저와 여러분이 포함됩니다. 아멘?
그러기에 예수님은 나를 창조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이 나를, 여러분을 찾아오셨습니다. 결코 우리가 예수님을 찾아온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하나님과 함께 천지만물을 창조했다는 근거는 여기뿐만 아니라 창세기1:26절에도 확실하게 나타납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이 말씀에서 핵심은 “우리”입니다. “우리”란 “하나님, 예수님, 성령” 세분입니다. 삼위 하나님이 함께 의논하면서 모든 만물을 만들었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창조주이십니다.
왜죠?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했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에게는 풀리지 않는 숙제가 몇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입니까?
1)이 세상과 우주는 어떻게 생기게 되었는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2)온 우주의 기본적인 물질은 무엇인가?
3)인간이란 도대체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는가?
4)인간이란 무엇이며, 어디로부터 와서 어디로 가는 존재인가? 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것을 알 수 없으니까 無神論者들은 여러 가지로 주장합니다. 진화되었다고 하며 進化論을 주장합니다. 아무도 알 수 없다면서 不可知論을 주장하기도 합니다. 또는 우주의 대폭발이 있어서 생겼다는 빅뱅설을 주장합니다. 결론은 "偶然히 생겼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우연론과 진화론은 우리의 해답이 되질 못합니다.
여기 이 핸드폰을 옛날부터 우연히 생긴 것이라 한다면 그사람은 속히 정신 병원에 보내야 합니다. 하물며 이 우주 만물을 원래부터 있었다고 한다면 어찌 제정신이라 하겠습니까?
성도 여러분! 오묘하고 신비한 이 세상을 보십시오.
太陽系와 銀河系와 온 宇宙의 그 광대함과 오묘함을 보십시오.
그 아름다움과 秩序整然함이 어떻게 형성되었습니까?
만든 이가 없이 어찌 스스로 존재할 수 있단 말입니까?
그러기에 성경에 기록된 말씀처럼 하나님의 창조가 아니고는 그 실마리가 풀리지를 않습니다. 하나님의 창조만이 그 해답입니다.
한국이 낳은 세계적 물리학자인 정근모 박사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과학을 깊이 연구하면 할수록 하나님의 존재와 섭리를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영원불변한 진리는 무엇인가? 세월이 흘러도 문제를 제기할 수 없는 완벽한 진리는 무엇인가? 그 분이 이 세상을 창조하셨음을 믿는 것이 영원불변한 진리이다. 나는 위대한 과학자이기보다 예수님을 따르는 신실한 크리스천이 되고 싶다.”
비단 정근모 박사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아인슈타인을 능가하는 것으로 평가받는 天才 물리학자 “맥스웰”도 창조주 하나님을 인정했습니다.
아인슈타인 박사도 그의 末年에 절대자인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했고, 하나님의 창조와 섭리를 믿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여러분을 창조하신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그분의 피조물인 것을 믿으시길 축원합니다. 그렇게 되면 여러분의 인생에는 커다란 변화가 일어나게 됩니다.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요?
1)인생의 方向性이 생깁니다.
내가 어디로 와서 어디로 가는 존재인가를 알게 됩니다. 인생의 분명한 존재 의미를 갖게 됩니다.
2)自尊感이 생깁니다.
나는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자이기에 나라는 존재는 하나님 앞에 귀한 존재라는 자존감이 생깁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아무리 나를 못생겼다고 해도 개의치를 않습니다.
3)使命感이 있게 됩니다.
일생동안 추구해야 될 삶의 목표가 무엇인지 분명해집니다. 새로운 인생의 목표와 가치관이 정립됩니다.
4)사랑과 존경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기뻐하시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다보면 나도 모르게 다른 사람이 나를 존경합니다.
5)역사적 인물이 됩니다.
나를 지으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다보면 나도 모르게 역사적인 인물이 됩니다.
그러나 만약, 하나님이 나를 창조하셨다는 것을 부정하면 어떻게 됩니까?
앞에서 말한 것의 반대가 됩니다. 존재의미가 없기에 삶 자체가 무의미해집니다. 추구해야 될 진정한 삶의 목표가 없기에 짐승처럼 먹고 마시고, 장가가고 시집가서 자식이나 몇 명 낳고 죽어야 됩니다. 낙이 없고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기에 나를 찾아오신 창조주 하나님을 만나셔야 합니다.
그분은 이미 창조주로서 여러분을 찾아와 계십니다. 그를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3. 그는 생명과 빛으로 찾아오신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또 어떤 분이십니까?
4절을 보십시오.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그 안에 생명이 있었다”는 것은 예수님 안에 생명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모든 사람에게 생명을 공급하는 생명의 源泉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생명은 어떤 생명입니까? 생명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헬라어로 구별해 보면 “Bios"라는 생명과 ”Zoe"라는 생명이 있습니다.
“Bios"라는 생명은 일시적이고 유한적인 생명입니다. 우리 육체의 생명처럼 유한합니다. 그러나 “Zoe"라는 생명은 영원한 생명, 그 자체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신 성경 본문에서 가리키는 생명은 “Zoe"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가지신 생명은 ”영원한 생명“입니다.
그래서 사도요한은 요한일서1:1-2절에서 예수님이 소유한 생명을 가리켜 “영원한 생명”이라고 했습니다.
1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
2 이 생명이 나타내신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언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바 된 이시니라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공급하는 생명은 영원한 생명이고 그러기에 그를 믿는 모든 사람에게는 그 영원한 생명이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간과 공간에 제한을 받는 우리 생명은 이 영원한 생명으로 말미암아 영생을 얻게 되고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요한은 본문 4절에서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고 했습니다. 아멘?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하면 예수님으로부터 그 생명의 빛을 받을 수 있습니까?
간단합니다.
요1:9절부터 차례로 보세요. 12절을 다같이 봅시다.
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영접하면 됩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의 이름을 믿으면 됩니다.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로 이 땅에 오셨고 나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피를 흘리셔서 나를 죄에서 해방시켜 주신 분임을 믿으면 됩니다. 아멘?
그러면 믿는 것은 무엇일까요?
요한복음8:12절을 보세요.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예수님은 빛으로 오셨는데 사람들이 그를 알지도 못하고 그 빛을 따르지도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을 따르면 생명의 빛을 얻게 된다는 약속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그 비결입니다.
즉 믿는다는 것은 그저 입으로 "믿습니다" 하는 것이 아니라 그를 따르는 것이란 말입니다. 이것은 결코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漁夫인 베드로도 했고 稅吏인 마태도 했습니다.
그분의 약속만 신뢰하고 그분을 그저 받아들이고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인생이 바뀌고 그러면 하나님이 그를 위대한 일꾼으로 만들어 가십니다. 그게 누구냐고요? 여기 최목사입니다.
저만 아닙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전혀 소망이 없고 캄캄한 속에 살던 삶에서 이 예수님의 빛을 만나고 달라졌습니다. 육체적인 질고로 소망이 없던 사람도 이 빛을 만나서 위대한 일꾼이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옛날 어느 시골에 중학생이 학교에서 놀다가 눈을 다쳐 시각장애인이 되었습니다.
아들이 그렇게 되자 그의 어머님의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속병을 앓다가 죽었습니다. 누나마저도 죽었습니다. 졸지에 행복과 꿈을 모두 잃은 고아가 되었습니다.
그가 가진 재산이라고는 실의, 좌절, 한탄, 비애, 절망, 눈물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기독교 방송에서 흘러나온 말씀 한마디가 그를 사로잡았습니다.
에베소서2:10절입니다.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았나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 행하게 하려 하심이라”그 말씀에 사로 잡혔던 순간, 그는 새로운 빛을 만났습니다.
그는 그의 자서전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두 눈을 잃었기에 나는 사회에 무용지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이라니!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때 비록 두 눈은 잃었으나 내 안에 있는 생명은 아주 존귀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인생을 포기해선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는 살아야 할 자신감과 확신이 생겼습니다. 그리고는 하나님께서 실명을 통해 주실 독특한 사명이 있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것을 위해 하나님은 분명히 자신을 도우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그때부터 이상한 힘이 생겼습니다.
그 후 그는 장애인학교를 졸업했고, 연세대를 졸업했고, 미국으로 유학을 갔습니다. 그리고 숙명여대를 나온 아름다운 여자와 결혼했고, 아들 둘을 낳았습니다. 큰 아들부부는 의학박사 부부요, 둘째 아들은 법학박사 부부입니다. 그리고 자신은 대학의 교수가 되었고 클린턴 행정부와 부시행정부에서 교육정책 담당 자문위원으로서 차관급을 역임했습니다.
그는 세계 유명 인사들이 그를 압니다. 그의 가문은 이제 명문의 가문입니다. 세계인명 백과사전과 미국인명사전에는 그의 이름이 실리어 있습니다.
그가 여러분이 아는 강영우 박사입니다.
저도 어느 날 인터넷 검색창에서 "최일환 목사"를 검색해보니 "위키 백과사전"에 등재되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주님께서 유명인사로 만드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 찾아오셨습니다. 말씀으로 찾아 오셨고 창조주로 나에게 찾아 오셨습니다. 그리고 빛으로 생명으로 찾아 오셨습니다. 그분을 만났습니까? 그분은 여러분의 구주시며 여러분의 주인이시며 왕이십니다.
그분은 지금도 여러분 속에 계십니다.
그분이 여러분과 인격적인 교제를 하길 원하십니다. 그래서 온전히 만나길 원하십니다.
기도합시다.
'은혜 설교 모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스크랩]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자.(하나님의 뜻) (0) | 2013.10.06 |
|---|---|
| [스크랩] 날로 새로워지는 성도(생각) (0) | 2013.10.06 |
| [스크랩]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0) | 2013.10.06 |
| [스크랩] 레마와 로고스 (0) | 2013.10.04 |
| [스크랩] 내 몸을 통해 하나님을 알자 (0) | 2013.10.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