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1일 주일 낮
고전3:16~17
내 몸을 통해 하나님을 알자
세상에 자기 몸의 구조와 역할, 그리고 사용에 있어 완전한 사람이 어디 한 사람인들 있겠습니까?
달인, 이라는 TV 프로그램을 통해 사람들은 놀라 입을 떡 벌립니다.
자동차 주차하기, 타이어 굴리기, 부메랑 던지기, 우편물 찾기, 신문 배달의 달인, 음식배달의 달인, 무한이 셀 수 없을 정도의 달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때마다 달인들을 보는 사람은 모두 입을 벌리고 탄성을 자아냅니다.
어떻게 사람이 저럴 수가 있는가?
이 뿐만이 아니라 곡예사들의 곡예는 더욱 그렇습니다.
보는 관중들로 하여금 손에 땀을 쥐에 합니다.
그리고 하는 말이 사람이 어떻게 저럴 수 있느냐고 일구동성 말합니다.
한계를 뛰어 넘어 상상을 초월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각 나라마다 많습니다.
어린아이에서부터 노인까지, 남녀노소, 연상연하, 국경을 초월하여 아무나 할 수 없는 특별한 행동으로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하는 일들은 동서고금을 말론하고 시대마다 있어 왔습니다. 사람의 행동 곳 몸으로 하는 일에도 우리가 가까이서 두 눈을 뜨고 보고 있으면서도 정말 저럴 수 있을까? 할 정도의 한계를 뛰어 넘는 일들이 많이 있는데, 보이지 않는 무형의 세계, 곳 보이지 않지만 실제로는 존재하는 영적 세계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일들은 얼마나 많을까?
무형의 세계를 통해 역사는 이루어졌고, 이루어지고 있고, 이루어질 것인데, 이 사실에 있어서는 민감하지 못하고 둔하게 살고 있는 것이 우리들의 실제 모습이며 삶입니다.
하나님의 세계는 영적 세계이므로 무형의 세계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무형의 하늘나라 비밀을 알게 하시기 위해 땅에 존재하는 유형들을 들어 하늘나라 곳 영적세계를 설명하는 것이 곳 성경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롬1:20절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라고 말입니다.
오늘 우리는 만물을 보기보다. 먼저 나 자신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실재하심과, 섭리하심과, 능력되심을 깨닫게 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실재하심을 깨닫기 위해서
첫째: 나 자신은 철저한 선물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이 땅에 존재하는 인간은 누구를 막론하고 자신이 선택한 자신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사람들은 오늘날 까지 나는 누구인가를 묻고 있습니다. who I am? 나는 누구인가?
시인이자 철학자였던 니체는 “자신을 아는 자는 세상에서 못해낼 일이 없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만큼 자기를 알기가 어렵다는 말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무지를 경멸할 필요는 없습니다.
무지로부터의 탈출을 시도하고 노력하는 사람이 현명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자동차, 잠수함, 비행기, 로켓 등 첨단 과학의 산물들인 것들에 대한 구조는 그것을 만든 과학자, 또는 기술자들이 가장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것들이 고장을 일으키면 가장 뛰어난 기술자를 찾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의뢰합니다. 첨단 기계들의 구조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 가장 쉽게 고쳐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간도 그렇습니다.
인생이라는 항로를 가다보면 고장 나는 부위가 대단히 많이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그 부위의 일인자를 찾습니다. 그리고 그를 찾아가 자신을 맞깁니다.
그리고 고침을 받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기계도 사람도 한계를 벗어 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공을 들이고 엄청난 인력과 물질을 들여 만든 첨단의 기계라 할 찌라도 그 수명이 다 되면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 기계는 사람에 의해 결국 해체되고 다시 재상 됩니다.
사람을 위해 사람이 만든 모든 것에 대한 결정적 심판은 사람에 의해 결판납니다.
우리 사람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우리가 만들어낸 기계처럼 우리 인간들도 모든 기능이 정지된 후에 다시 재생이 가능한 것일까? 이런 질문과 해답을 얻기에는 모든 인간은 한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나는 무엇이고 또 누구이며 어떻게 만들어 졌는가?
간단하게 생각되지만 조금만 더 생각하다보면 더 이상 생각 할 수 없는 한계에 부디 치게 됩니다.
사람들은 흔히 말합니다.
당신에 대해서는 내가 참으로 잘 알지! 또는 나 자신은 내가 잘 알지!
얼마나 잘 안다는 말인지, 그 정도는 알 수 없지만, 아마도 몇 가지 말하다가 그건 모르겠는데 라는 말이 연발하여 나오게 될것입니다.
또는 어느 면접시험 장소에서 당신에 대한 소개를 대충 해 보십시오? 라고 물으면 얼마나 확실하게 자신을 피알 할 수 있을까?
사람은 자기 자신에 대하여도 그리 많이 알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고백하기 실어합니다.
내가 나를 왜 확실히 알지 못하고 살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나의 구조와 사용에 따라 오래 갈 수도, 아니면 쉽게 파손될 수도 있는 것으로 프로그래밍 하고 또 인간이라는 도구를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사용 설명서를 우리에게 붙여 준 주인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주인은 철저히 하나님 이신 줄 믿습니다.
나에 어머니 아버지가 나에 올바른 주인이라면 나를 이렇게 만들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그리고 우리 조상들 모두는 보이는 현상 세계에 살았던 나와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욕심이 있었습니다. 남보다 나은 것을 같고 싶었고, 남보다 높은 곳에 있고 싶었고, 지시받고 살기보다는 지시하고 살고 싶었던 이기주의적인 완전한 사람 그 이상을 보지 못했던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우리의 올바른 주인이 이런 욕심으로 가득한 조상들 이라면 우리의 결국은 불 보듯 뻔합니다. 그러므로 성경 약1:15절에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인간을 가장 잘 사용할 수 있는 사용 설명서는 성경입니다.
성경은 모든 것을 하나님이 창조하셨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창1: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을 지으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신 줄 믿는 것이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고 자기 자신을 가장 잘 알 수 있는 사람입니다. who am I?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을 속 시원하게 대답해주는 모든 인간의 답안지 인 것입니다.
그럼 나는 어떻게 만들어 졌는가?
창2:7절에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라고 설명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흙입니다. 흙을 떠나 살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사람들이 어떤 상황과 어떤 모습으로 어느 곳에서 살든 그 사람들은 모두 흙을 먹고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먹고사는 것들 중에 흙에서 나지 않는 것들이 있다면 그것을 따라 우리의 근원을 찾아 봐야 할 것입니다.
우리 인간들은 흙에서 나지 않는 것을 먹는 것이 단 한 가지도 없습니다.
우리 인간들의 육신의 본질은 바로 흙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우리의 육신이 흙으로 빚어 졌기 때문에 결국은 흙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들에게 성경은 말씀해 주셨습니다.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창3:19 말씀입니다.
NIV 성경에 흙이라는 단어를 dust 라고 기록합니다. 이는 “먼지” 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흙먼지입니다. 여러분과 저 그리고 이 땅에 살고 있는 모든 인간들은 흙먼지입니다.
겸손 합시다. 흙먼지 같은 존재가 천하를 다스릴 수 있는 권세를 받았으니 이보다 더 크고 값진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창1:28절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우리에겐 하늘의 새 까지도 다스릴 수 있는 권한을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으로부터 받았습니다. 땅에 있는 것들은 물론 하늘에 있는 것 까지도 다스릴 권한을 부여 받은 우리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나는 흙먼지라는 겸손함입니다. 결국 흙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인식하며 겸손하게 모든 것을 다스릴 때 나를 통한 하나님의 실제 하심과 섭리와 능력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나의 본질은 흙이었는데 하나님께서 직접 손으로 빚어 이 시대 이곳에서 이런 일을 하며 살도록 이 모습으로 지으셨다는 사실 앞에 겸손히 무릎을 꿇고 감사하는 사람이 가장 지혜롭고 현명하며 자기 자신을 확실히 발견하고 하나님을 발견하는 아름다운 신앙인의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아멘-
두 번째로: 하나님께서 흙으로 사람을 빚은 이유는 우리 육신을 하나님의 성전으로 삼기 위함이란 사실을 알 때 내 몸을 통해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사람의 육신이 아무리 건강하고 건장 할 찌라도 그의 정신이 잘못 되면 그 육신은 언제 허물어질지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의학계에서도 인간의 건강에 대한 본질은 정신으로부터 시작한다. 라고 말합니다.
물론 육체가 피곤하고 힘들면 정신에도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오체 불만족의 작가로 세상을 뜨겁게 달군 일본의 오토다케히로타나 와 미국의 닉 부이치치에 대하여 아시는 분은 잘 아실 것입니다.
태어 날 때부터 사지 없이 태어난 두 사람이 사지가 멀쩡한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도전적이기 보다는 오히려 그들 앞에서 나 자신의 부끄러움을 깨닫게 합니다.
오토다케는 긍정적인 부모를 통해 자신을 바라보고 생각하는 내면의 자신을 발견하여 외적 자신의모습보다 내면의 자신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한다면, 닉 부이치치는 몇 번의 자살시도와 자신의 처지를 학대하다가 하나님을 만나 변화됨으로 자신의 처지와 형편 모습보다는 내면에 계신 하나님의 은혜를 강조합니다.
하나님을 만나거나 아니면 긍정적 자신을 발견한 사람들을 통해 많은 강의를 듣고 간증을 듣습니다. 우리나라에도 2천년 7월 30일 대학4학년이던 예쁜 여학생이 오빠차를 타고 집으로 가던 중 술에 만취한 운전자가 들이 받는 바람에 차에 불이나 온몸에 3도 화상을 입고 살 가망성이 없다는 많은 사람들의 말에도 병상 중에 하나님을 만나 화상으로 썩어가는 손가락을 8개나 잘라내도 남은 두 손가락에 감사 하며, 일그러진 자신의 모습보다는 내면의 자신의 아름다움을 더 강조하며 병원 생활을 잘 견디고 이겨낸 이지선이라는 이름을 들어 보셨을 것입니다.
지금은 많은 교회와 학교, 세계를 다니며 하나님을 전하는 메신저가 됬습니다.
이런 현제의 살아 있는 증인들의 삶은 하나같이 자신의 외적 모습보다는 내면의 자신을 더욱 소중히 생각하고 내면의 자신을 향해 끊임없이 감사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 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사람들은 흙으로 빚은 육신이 있다면 하나님의 본질이신 하나님의 영을 우리에게 주셨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영혼이 떠난 자를 불에 넣어 자신을 불에 태워도 아무 말이 없습니다.
그래서 영혼이 없는 육신은 죽은 것입니다. 그러나 다 죽게 생겼어도 영혼이 그 사람을 떠나지 않고 있는 순간까지는 그는 손가락을 움직이고 입을 달싹거립니다. 의식이 있습니다.
사람에게 본질은 육신이 아니라 영혼입니다.
그러므로 육신도 중요하지만 영혼은 육신보다 더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영혼이 있다고 해서 그 영혼이 다 똑같지 않다는 것입니다.
어둠이 있고 낮이 있듯이 영혼에도 어둠의 영혼이 있고 빛의 영혼이 있다는 것입니다.
어둠의 영혼을 가진 사람은 어두운 일을 좋아하고, 빛의 영혼을 가진 사람은 빛의 일을 기뻐하는 것입니다.
빛의 영혼으로 살 수 있도록 하시는 분이 바로 성령 이십니다.
성령이 우리가운데 오셔야 우리 영혼이 빛으로 바뀝니다. 우리 영혼이 빛으로 바뀌어야 우리 육신이 건강합니다. 우리 육신이 바라는 만족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요한3서1:2절에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영혼이 잘될 수 있는 길은 우리 몸이 성전이 되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 몸을 성전 삼으시기를 기뻐하십니다.
고전3:16절에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여러분은 여러분의 몸이 하나님의 성전인 것을 믿습니까?
성령님이 여러분의 몸을 입고 계심을 믿습니까?
저와 여러분의 몸은 성전입니다. 곳 작은 교회들입니다. 움직이는 성전입니다.
성전이 된 사람은 아무리 환경이 어렵고 나를 둘러싸고 있는 허다한 문제들이 많아도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으로 능히 이길 수 있게 되는 줄 믿습니다.
성전은 이런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마16:18절에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베드로라는 이름에 각자 자기 이름을 넣고 반복해서 읽어 보십시오,
그리고 반석이라는 말 대신에 “이름” 이라고 넣어 읽으시기 바랍니다.
그렇습니다. 저와 여러분 그리고 성도 모두에게는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이 와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육체는 성전이며 교회이며 거룩한 하나님의 나라인 것입니다.
우리의 몸이 성전인 것을 알게 되면 하나님의 실제 하심과 섭리와 능력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전주성령교회 사랑하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지막으로: 내 몸을 관리 하면서 하나님을 알 수 있게 됩니다.
내 몸은 철저한 하나님의 선물인줄 깨달으신 줄 믿습니다.
그럼 받은 선물을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가?
성경은 천하보다 귀한 것이 생명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16:26절에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
이렇게 가장 귀한 생명을 선물로 받았으니 이제 이 생명을 잘 관리하는 것은 우리의 목입니다. 선물은 온전한 내 것 이라고 하기에는 부족합니다.
왜냐하면 선물을 준 사람이 내 집에 왔을 때 그 선물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송 기정 집사님으로부터 귀한 진돗개 한 마리를 진순이 라는 이름까지 지어서 선물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만 불행 하게도 더위가 37도 8부까지 올라간 가장 더운 날 세탁기 틈바구니에 끼어 질식사 하고 말았습니다.
저는 솔직히 개가 불쌍하기보다 송 기정 집사님을 어떻게 대할 까가 먼저 머리에 떠올랐습니다. 누구보다 개를 좋아하고 잘 키우는 송 기정 집사님이 왔을 때 강아지가 잘 자라고 있는 것을 보면 선물한 보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마음은 와서 볼 때 마다 진순 이를 어루만지고 기뻐 할 것입니다. 그런대 불행 하게도 잘 키우지 못하고 죽이고 말았으니 이유야 어떠하든 마음이 얼마나 아플까 생각하면 나로서 얼굴 볼 면이 서질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다소 죄책감을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렇듯 강아지 한 마리의 선물도 잘 관리 못하면 죄 성이 자리하는데, 천하보다 귀한 사람의 생명을 선물로 받아 귀하게 여기지 못하고 생명을 소홀이 한다면 그 죄의 대가는 참으로 클 것입니다.
사람의 생명 관리 곳 우리의 몸과 마음의 관리는 하나님의 지침서대로 관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지침서는 성경의 말씀입니다. 성경의 말씀대로 우리 몸과 마음을 관리하지 않을 때 하나님은 섭섭해 하시고, 우리는 죄성에 빠져 자유를 잃고 말 것입니다.
하나님의 지침서 곳 성경의 말씀대로 살지 않음으로 인생을 실패하고 죄악에 빠져 허우적 거리는 사람들이 세상 속에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그러나 닉 부이치치처럼 이 지선자매처럼 죽음과 같은 자신들의 처지와 형편에도 하나님의 영 성령께서 성전 삼으심으로 거룩하게 관리되고 있고 아름답게 사용되고 있지 않습니까?
내가 나를 관리하기에는 내가 적은 것 같지만, 하늘과 땅처럼 높고 넓어, 알 수 없는 영역으로 가득한 인생을 하나님의 지침서대로 관리하게 된다면 분명 주인이 찾아 왔을 때 기쁨으로 맏이 해 줄 것이 분명합니다.
이 비유에 대하여 성경에서 잘 말씀해 주시고 계십니다.
마24:45~47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뇨 주인이 올 때에 그 종의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그 모든 소유를 저에게 맡기리라”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란 하나님의 지침서에 충실한 자를 말합니다.
곳 성경의 말씀을 잘 깨달아 말씀대로 나를 잘 관리할 줄 아는 사람을 충성 되고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내 몸을 통해 하나님을 알게 되는 지혜로움은?
첫째: 나는 철저한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둘째는: 우리 몸은 하나님의 성전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입니다.
마지막: 우리 몸과 영혼을 하나님의 지침서 곳 성경의 말씀대로 잘 관리하는 것입니다.
이런 철저한 자기 관리를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행함으로 이43:21절의 말씀대로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지으신 그분의 목적대로 하나님을 찬송하며 항상 기쁨과 만족한 인생을 사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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