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동무님
장마와 함께 무더운 날씨에 잘 지내시는지요.
님께서 본 개혁주의신앙공동체에 호의적인 마음을 가지심에 기쁨을 표하며 감사의 마음을 갖습니다. 님이 갖고 있는 마음은 모든 그리스도인의 공통일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 누구도자기를 자랑하지 못합니다. 자랑할 그 어떤 상태에 있는 자신이 아님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우리를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복음의 진리 안에 두시고서 끊임없이 갈망하며 그 본의를 추구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구함에 있게 해 주시니 얼마나 감사한지요!.
그러한 님께서는 한 가지 궁금증을 가지시고 질문해 주셨습니다. 그것은 가끔 세대주의를 비롯해서 무천년설, 전천년설, 후천년설 이란 단어들을 들음으로 인해서 도대체 그게 무슨 뜻으로 말해지고 있는 것인지, 그리고 그렇게 저마다 각각 말해지고 있는 것에는 성경적 근거에 의한 것일텐데, 그렇다면 그것들을 밑받침해 주는 성경 말씀(성경 구절)은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이에 세대주의, 전천년설, 후천년설, 무천년설을 이것이 무슨 뜻인지, 그리고 이것들을 밑받침해 주는 성경 말씀 (성경 구절)으로 제시되고 있는 근거 구절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님이 가끔 들은 세대주의, 전천년설, 후천년설, 무천년설이란 말은 ‘천년왕국’에 대한 견해가 다양하게 말해지는 데 따른 까닭입니다. 그러니까 말이죠. ‘천년왕국’에 대한 이해와 그 주장을 세대주의, 전천년설, 후천년설, 그리고 무천년설로 각각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세대주의는 ‘세대주의 전천년설(전천년왕국)’를 이르는 것이며, ‘전천년설'은 세대주의 전천년설과 구분하는 ’역사적 전천년설‘(전천년왕국)를 이르는 말입니다.
그래서 세대주의 전천년(왕국)설, 역사적 전천년(왕국)설, 후천년(왕국)설, 무천년(왕국)설이란 네 가지의 천년왕국 견해가 있어 왔습니다(이후의 글에서는 ‘천년설’을 ‘천년왕국(설)’로 사용합니다). 이는 말이죠. 천년왕국이 이 네 가지로 있어서 말해지는데 따라서 이렇게 네 가지의 천년왕국 견해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나타내 주시고 있는 천년왕국에 대한 가르침은 한 가지인데, 이 천년왕국을 이해하고 있는 분들의 견해가 각각 다르게 네 가지로 주장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 보니 말이죠. 교회는 이 네 가지의 각각 다른 천년왕국 견해에 의해서 천년왕국을 바르게 이해하고 있지를 못하고 혼돈 속에서 불행하게도 대다수의 교회가 그릇된 천년왕국을 말하며 이 사상을 따르고 있는 형편입니다.
그러기에 천년왕국에 대한 이해를 바르게 가져야 할 필요성을 더욱 갖습니다.
이에 님께서는 가끔이지만 그동안 들어왔던 천년왕국에 대한 이해를 이번의 질문을통해서 바르게 가져나가는 기회가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갖습니다. 그리고 이러함은 본 개혁주의신앙공동체를 찾아주시는 모든 회원과 방문하시는 분들에게도 동일한 유익이 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이를 위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여 답변을 드립니다.
그런데 답변의 글이 꽤나 길어질 것입니다. 그것은 님이 질문한 것이 교회사에서 내내 그 발생을 과정을 가지며 여러 견해로 주장되고 또한 논쟁되어온 신학적인 이슈를 띠고 있는 것인데다가, 신학적인 작업에 의한 규명과 그 규정으로는 결코 어느 하나의 견해로는 해결을 볼 수 없는 것으로서 그만큼 적지 않은 주장과 그에 대한 설명이 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그 각각의 견해를 성경의 본의에 의한 해석에서 보게 되면 답이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이러한 작업에 까지 나아가지는 않겠습니다. 이는 질문의 범위를 벗어나는 것인데다가, 설사 그러한 언급을 본 답글에서 한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성경에서 제가 갖는 관점으로 한정될 것이기에 이는 님이 본 답글을 통해서 도움을 받고자 하는 것과는 또 다른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에 님이 질문한 내용에 한하여서 답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Ⅰ. 천년왕국에 대한 견해가 여러 가지가 있는 이유.
성경에서 말씀되고 있는 천년왕국이 한 견해로 일치되게 말해지지 않고 ‘세대주의 전천년왕국’, ’역사적 전천년왕국‘, ’후천년왕국‘, 그리고 ’무천년왕국‘이란 네 가지로 서로 다른 천년왕국설을 각각 말하게 된 것은 이것의 중요한 근거가 되는 요한계시록 20장 1-6절에 나와 있는 ’일천 년 동안‘이란 말에 대한 이해를 각각 다르게 갖는 때문입니다. 이 ’일천 년 동안‘이란 말은 신약성경에 모두 여섯 번 나오는데, 모두 요한계시록 20장에만 등장하는 한정된 독특한 단어입니다.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단이라 잡아 일천 년 동안 결박하여”(계 20:2) “무저갱에 던져 잠그고 그 위에 인봉하여 천 년이 차도록 다시는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였다가 그 후에는 반드시 잠간 놓이리라”(계 20:3)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 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 하니”(계 20:4)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 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 이는 첫째 부활이라”(계 20:5)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 노릇 하리라”(계 20:6)
“천 년이 차매 사단이 그 옥에서 놓여”(계 20:7)
천년왕국설에서 세대주의 전천년왕국주의자와 역사적 전천년왕국주의자와 후천년왕국주의자들은 ‘일천 년 동안’이란 말에서의 숫자를 문자적으로 보아서 ‘천 년 간’의 기간을 말하는 의미로 봅니다. 반면에 ‘무천년왕국주의자’들은 ‘일천 년 동안’이란 말에서의 숫자를 문자적으로 보지를 않습니다. 이들은 상징적 숫자의 개념으로 보고서 ‘천 년 간’으로서의 기간의 의미로가 아닌 이 숫자란 표현을 통해서 나타내 주고자 하는 ‘의도적 기간’으로서의 의미에서 봅니다.
그런데 천년왕국에서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이 말 앞에 붙고 있는 ‘전’과 ‘후’와 ‘무’가 말해주는 것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천년왕국의 주인(왕)이신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준해 주고 있는 말입니다. 그래서 ‘전천년왕국’은 그리스도의 재림이 천년왕국 이전에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천년왕국 전 그리스도의 재림’인 것입니다. 그리고 ‘후천년왕국’은 그리스도의 재림이 천년왕국 이후에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천년왕국 후 그리스도의 재림’인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무천년왕국’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준으로 해 있게 되는 ‘천년왕국’을 문자적인 숫자의 기간으로 보지 않는 데 따른 용어입니다. 그러니까 말이죠. 문자적인 숫자의 기간으로서의 천년왕국은 없다고 보고 단지 상징적인 개념의 의미로서 천년왕국을 보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초림이후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그리스도께서 자신에게 연합되어 있는 모든 믿는 자들에게 생명의 왕 노릇을 하는 통치하시는 기간에서 봅니다. 그래서 ‘무천년왕국’은 전천년왕국에서 말하는 것이든 후천년왕국에서 말하는 것이든 이것들에서 말하는 앞으로 있게 될 천년왕국에서 천년왕국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성육신하시고 지금은 하나님의 보좌에 계심으로써 이미 ‘실현된 천년왕국(하나님의 나라)’에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이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따르는 자들과 함께 하셔서 그들에게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왕적 권능을 수행하고 계신 것이며, 또한 동시에 세상을 심판하는 일을 해 나가시는 왕적 권능을 수행하고 계신 것입니다.
Ⅱ. 천년왕국에 대한 제설(諸說)
앞에서의 답변에서 천년왕국에 대한 여러 가지 견해가 있다는 것을 말했습니다. 이제 이들 하나하나를 설명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천년왕국에 대한 견해로는 세대주의 전천년왕국, 역사적 전천년왕국, 후천년왕국, 무천년왕국, 이 네 가지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이 천년왕국설이 말해져 온 시기는 꼭 이 순서가 아닙니다. 사실 가장 먼저 주장되어온 천년왕국설은 역사적 전천년왕국으로 말해지고 있는 것이며, 그 다음이 무천년왕국이고, 그 다음은 후천년왕국, 그리고 가장 마지막이 세대주의 전천년왕국입니다.
이러하지만 편의상 천년왕국의 개념과 그 성격에서 전천년왕국과 후천년왕국, 그리고 무천년왕국의 순서로 다루겠습니다. 이때 전천년왕국은 역사적 전천년왕국과 세대주의 천년왕국으로 나누어지는 데다가 역사적 전천년왕국은 사실상 천년왕국설에서 가장 먼저 주장되어온 견해로 후에 등장한 전천년왕국설인 세대주의 전천년왕국과 구분을 하는 것으로 ‘과거의 전천년왕국’으로 불려지고, 세대주의 천년왕국은 ‘현재의 세대주의적 전천년왕국’으로 불려지고 있는 것이므로 순서에 있어서 ‘역사적 전천년왕국’을 다룬 후에, ‘세대주의 전천년왕국’을, 그리고 후천년왕국, 무천년왕국을 각각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1. 역사적 전천년왕국(과거의 전천년왕국)
천년왕국설에 대한 견해는 언제나 동일한 견해 속에 있어 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역사적 전천년왕국을 비롯하여서 세대주의 전천년왕국, 후천년왕국, 무천년왕국에서 각각 보는 대로 여러 견해 속에 있어 왔습니다. 여기서는 이 중에서 가장 먼저 주장되어 온 견해인 역사적 전천년왕국에 대해 설명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1-1. 역사적 전천년왕국 용어 이해
역사적 전천년왕국은 또 다른 전천년왕국설인 세대주의 전천년왕국과의 구별을 위해 ‘과거의 전천년왕국’이라고도 말해집니다. 그것은 새로운 전천년왕국을 말하는 자들이 생겼으며 현재 이 견해의 영향이 있는 가운데서 이전에 있어온 전천년왕국을 규정하는 용어이기 때문입니다.
1-2. 역사적 전천년왕국을 말한 사람들
현대에 이르러서 역사적 전천년왕국을 주장하는 학자로서 가장 알려져 있는 대표적인 인물은 래드(George Eldon Ladd)입니다. 그런데 역사적 전천년왕국이 말해져 오고 또한 이것이 지배적인 사상이었던 때는 교회사적으로는 기독교의 초창기 3세기 동안입니다. 그리고 이후로도 이 견해는 기독교의 종말론 사상에서 언제나 영향력을 갖고 중요하게 말해져 왔습니다. 역사적 전천년왕국을 말해 온 사람으로는 파피아스(Papias)를 비롯하여서 이레네우스(Irenaeus), 저스틴(Justin Martyr), 터툴리안(Tertullian), 히폴리투스(Hippolytus), 메토디우스(Methodius), 코모디아누스(Commodianus), 락탄티우스(Lactantius) 등이 있으며, 16세기 이후 18세기에 이르러서는 요한 하인리히 알스테드(Johann Heinrich Alsted), 죠셉 메데(Joseph Mede), 제이, 에이치 벵겔(J. H. Bangel), 아이작 뉴튼(Issac Newton), 죠셉 프리이스트리(Joseph Priestley) 등이 있습니다.
1-3. 이레네우스의 역사적 전천년왕국설
이 중에서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져 있으며 익숙한 이름은 이레네우스입니다. 그의 견해는 초기 기독교 시대의 견해를 가장 잘 반영하는 것으로 제시되고 있습니다. 현 세계는 창조의 6일에 상응하는 6천년간 지속될 것입니다. 이 시기의 종말이 가까울 때에 적그리스도의 출현으로 경건한 사람들의 수난과 핍박은 크게 증가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하늘의 영광과 그의 모든 원수들 위에 승리로 나타나실 것입니다. 이 일에 수반하여 성도들의 육신적 부활과 지상에 왕국의 설립이 있을 것입니다. 이 왕국은 천년동안 지속될 것인데 이 천년기적인 시기는 창조의 제7일 즉, 안식일에 상응할 것입니다. 이 시기에 이스라엘이 회심하여 예루살렘은 다시 세워질 것이며, 화평과 의가 전 세계에 충만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천년왕국의 끝에 최종적인 심판이 올 것이며, 새 피조물이 나타날 것인데, 그 때에 구속받은 자는 하나님 앞에 영원히 살 것입니다.
1-4. 발전되어온 역사적 전천년왕국설
이 견해는 일반적인 개괄로서 초기 기독교 기간들의 전형적인 종말론입니다. 그 후 여러 세기 동안, 또는 19세기에 이르기까지 약간의 견해를 달리 하는 전천년기설이 있어 왔습니다. 그러나 본질적으로는 동일하며, 오히려 계속적인 연구를 통해서 천년설의 견해를 보다 상세하게 표현하는데 있어서 더 낫게, 또한 보다 더 명백하게 해주었습니다. 이를 열거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강림하는 것이 가까이 이르렀으며, 또한 그것은 유형적(가견적), 개인적(인격적), 영광적인 것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보다 앞서 모든 민족의 복음화, 적그리스도의 출현, 큰 환난과 큰 배교, 이스라엘의 회개가 발생하는 시대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둡고 시험하는 시간들이 교회를 위해 예비되어 있습니다. 이는 교회가 큰 환난을 통과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재림은 위대하고, 뛰어나며, 영광스러운 단회적 사건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와 이스라엘과 세계와 관계되는 몇 가지 다른 사건들을 수반할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재림하실 때 죽은 성도들은 일으킴을 받고 살아있는 자는 변형될 것이며, 그들은 함께 주님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적그리스도와 그의 악한 동맹자들은 죽임을 당하게 될 것이며, 하나님의 옛 백성인 이스라엘은 회개하고, 구원받고, 거룩한 땅에로 회복될 것입니다. 그 때에 선지자들에 의해서 예언된 하나님의 나라는 변형된 세계에서 설립될 것이고, 많은 이방인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와 그 나라에서 동참할 것입니다. 평화와 의(義)의 상태가 모든 지상에 편만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지상 통치가 다 끝난 후에 죽은 자의 나머지가 일으킴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 부활이 있은 후 최후의 상태인 마지막 심판과 함께 신천신지가 도래하게 됩니다.
1-5. 역사적 전천년왕국의 주요 내용과 성경적 근거
역사적 전천년왕국이 갖는 이러한 견해는 다른 천년기의 왕국설 말하는 자들과 같이 요한계시록 20:1-6에서 여러 차례 언급되고 있는 ‘(일)천 년’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주장하는 천년기의 왕국은 ‘전천년왕국’으로, 천년왕국 직전에 있을 것이라고 보는 그리스도의 재림과 연관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이 재림으로 - 그리스도의 재림 직전에 적그리스도의 활동과 대배교가 있음 - 죽은 신자들은 부활하게 될 것이고, 그때까지 살아 있는 신자들은 변화 받아 영화롭게 될 것인데, 그 때에 신자들은 이를 통해서 영광된 몸으로 하늘에 들어 올려 그리스도를 공중에서 맞이한 후에(살전 4:16-17), 그리스도는 자신의 신부된 그들과 함께 지상재림하여 이 땅 위에서 천년간 지배하는 통치의 기간에 들어간다고 봅니다.
그래서 천년왕국이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기 전에 세워질 그리스도의 왕국으로서 그리스도가 재림하여 예루살렘에서 천년동안 성도들과 함께 왕 노릇한다는 것으로서 요한계시록 20:1-6의 ‘(일) 천년’을 문자적으로 보아 실제적 기간인 ‘천년기’로 보고서 19:11-20절과의 연속성에 의해서 여기에 따른 연대 순서를 따라서 해석하여 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요한계시록 19:11-20을 그리스도의 재림을 묘사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 20장은 그 재림 후에 일어나는 사건들을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그리스도의 재림 후의 천년기 동안에 있게 될 사단의 결박과 천년기 동안 이 땅 위에서 부활한 신자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왕 노릇하는 것으로 천년기가 시작될 무렵에 있을 신자들의 육체 부활과 천년기가 끝날 무렵에 있을 불신자들의 육체 부활을 묘사하고 있는 것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래드(Ladd)는 이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고린도전서 15:23-26을 인용하는데 23절과 24절의 순서인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요, 그 후에는 나중이니 저가 모든 정사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천년왕국 직전에 일어나는 그리스도의 재림은 공중재림과 지상재림으로 있게 되는데 이는 두 단계에 걸쳐서 실현되는 것이 아니라 단일한 사건으로 봅니다.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죽은 신자들이 부활하게 되고 그때까지 살아있는 신자들은 변화 받아 영화롭게 되어서 다같이 함께 휴거[하늘에 들어올림]되어 주님을 공중에서 맞이한 후[혼인잔치에 참여함]에 그 신자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지상으로 내려와 왕국에 참여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천년 동안 세상을 통치하고 제사장으로서 하나님께 봉사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는 지상에서 천년간 통치하는 이 천년왕국의 통치 기간에 다음과 같은 일을 하신다고 봅니다. 그것은 먼저 사단을 결박하여 무저갱 속에 가두는 것입니다. 이에 따라서 사단은 결박당하여 무저갱 속에 갇혀 있게 되지만, 이사야 65:17-25에 예언된 것처럼 자연은 그 본성이 회복된 상태에서 평화와 의가 충만한 세계를 이루낟고 봅니다. 이때 대다수의 유대인들이 자신들의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 메시야로 믿어 구원을 얻는 개종이 있게 되는 이스라엘의 회복이 실질적으로 이루어져서 이들에 의해서 예루살렘이 중건되나, 제사 제도의 회복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봅니다. 그것은 제사 제도는 그리스도에 의해서 성취되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유대인의 복음 전파로 많은 이방인들이 구원을 받아 왕국으로 들어온다고 봅니다. 그러다가 천년왕국이 끝날 무렵 사단은 잠시 동안 놓이게 되어 신자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다스려 나가는 통치를 거스르기 위하여 민족을 선동하고 모반을 일삼고 돌아다니는데 여기에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사람들이 미혹 받아 추종의 세력을 이루어 반역의 무리를 형성하게 되지만 결국은 하늘로부터 떨어진 불로 멸망하게 되어 마침내 사단은 불못에서 최후의 운명을 맞게되고 그 뒤를 이어 악인이 최후 심판을 받아 영원히 멸망에 처해짐으로써 사단과 운명을 같이 하게 된다고 봅니다. 그러나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된 신자 - 유대인과 이방인 신자 - 는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새하늘과 새땅의 세계에 들어감으로써 실질적인 영원한 하나님의 왕국을 이룬다는 생각을 갖습니다.
1-6. 역사적 전천년왕국에 대한 반론
역사적 전천년왕국설은 개혁주의 신학의 입장을 가진 많은 이들이 수용하고 있는 견해입니다. 그럼에도 이에 대한 반론은 이것이 지닌 견해를 더욱 성경의 관점에서 연구하여 살펴야 할 필요성이 있음을 말해줍니다. 역사적 전천년왕국은 요한계시록 20:1-6에서의 ‘천년기’를 유대인에 속한 지상적이며 민족적인 왕국 또는 팔레스타인 땅에 속한 그 어떤 것들에서 말하려고 하고 있으나, 이를 천상의 상징적인 의미에서 보는 무천년왕국의 견해에 있는 이들에 대한 적절한 대응이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에는 상징적인 숫자와 용어들이 자주 등장하므로 이것이 지닌 의미에서 해석하게 되는데, ‘천년기’ 말해지는 ‘(일) 천년’만을 문자적인 숫자의 기간으로 보는 것은 일관성에서 벗어난 적절하지 못한 것입니다. 이는 역사적 전천년왕국주의자들은 문자적인 해석을 중요시하는 까닭에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 것에서도 문자적인 해석을 해 나가는데 따른 것입니다.
더욱이 지상적 천년왕국을 말하는 것에서의 ‘천년기’는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이미 오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그리고 승천하셔서 하나님의 보좌에 앉아 계시며 성령을 보내셔서 교회에 임재하시고 온 세상을 세상 끝날까지 통치하시는 그리스도의 왕적 권능의 행사하심과 모순되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오심과 죽으심과 부활은 세상 역사의 종말에 약속되었던 종말론적 사건의 성취였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재림은 이 종말론적인 사건이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완성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하기 때문에 반론을 받습니다.
또한 역사적 전천년왕국은 요한계시록 20:1-6을 앞서의 19:11-20과의 연결에 의해서 천년왕국 직전에 그리스도의 재림이 있을 것을 말함으로써 그리스도의 재림 후에 지상적 천년기 통치가 있게 될 것을 말하며, 이것을 천년기 이후에 있을 신천신지와 구분하고 있으나, 이 구절의 해석에서는 전천년왕국에 대한 결정적 근거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역사적 전천년왕국이 반론을 받는 요인이 됩니다.
그리고 역사적 전천년왕국은 고린도전서 15장 23-24을 천년왕국을 놓고서 이것의 시작과 끝에 각각 신자들의 부활과 불신자들의 부활로 구분하여 시간적 간격을 갖고서 나누는 것은 지상적 천년기 통치에 대한 분명한 증명 자료가 되지 못하는데다가, 부활하여 영화롭게 된 그리스도의 신자들이 아직 죄와 사망이 존재하는 땅으로 와서 완전한 육신을 가진 성도가 불완전한 곳에 존재한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통치하시는 천년왕국이 지속되는 동안에도 영화로운 상태에 있는 그리스도인이 죄의 문제로 인한 육체적 죽음과 불신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는 관점은 수용하기 어려운 부분입니다. 왜냐하면 이는 성도들의 영화가 완성되었다는 사실과 충돌하는 것이고, 지상적 천년기 통치는 신약의 종말론과도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반박되어지는 요인을 안고 있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역사적 전천년왕국에서 말하는 ‘첫째 부활’이라는 용어가 ‘둘째 부활’이나 ‘마지막 부활’을 연상하도록 여운을 남기지만 ‘첫째 부활’에 이어지는 ‘둘째 부활’이니, ‘마지막 부활’이니 하는 용어는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습니다. 역사적 전천년왕국주의자들은 ‘첫째 부활’과 함께 언급하고 있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않음)’을 불신자들이 천년 동안 죽음에서 갇혀 있다가 이후에 살아나서 최후의 심판을 받을 것에서 ‘둘째 부활’로 해석하려 하지만 이는 그 구절을 말해주고 있는 본문의 내용에서 벗어난 무리한 해석으로 문제가 됩니다. 후천년왕국을 주장하는 뵈트너(Boettner)는 불멸의 사람과 죽을 운명에 놓여 있는 사람, 그리고 지상적인 사람과 천상적인 것, 이 두 부류가 혼합된 상태는 확실히 기괴한 것이고, 거룩한 천사가 현재의 지상 사람들과 더불어 기쁨으로 예배드리면서 자신들이 맡은 일을 한다는 것은 매우 불합리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합니다. 이에 더하여 이러한 천년왕국의 환경조건을 발전시키는 것은 부활하시고 영화스럽게 된 그리스도의 위엄을 고려하지 못한 것이라고 비평을 가합니다. 후천년왕국설은 성경적인 지지를 가장 받지 못하는 것이지만, 역사적 전천년왕국설이 가진 문제에 대한 지적은 예리한 면을 보여줍니다.
그런가 하면 역사적 전천년왕국은 같은 전천년왕국에 있는 세대주의 전천년왕국에서 말하는 천년왕국 기간에 있는 내용과도, 그리고 이것 전에 있게 되는 것으로 말해지고 있는 그리스도의 재림 때와 이것과 관련하여 있을 일에서도 다른 차이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그만큼 전천년왕국의 입장에서 이것의 견해를 가져나가는 것에는 서로 다른 주장을 할 수 있는 상이한 해석적 문제점을 안고 있다는 것이 됩니다.
2. 세대주의 전천년왕국(현재의 세대주의적 전천년왕국)
천년왕국에 대한 견해로는 여러 가지 견해가 있는데, 그 중 하나로 ‘세대주의 전천년왕국설’이 있다는 것을 언급했습니다. 이렇게 ‘세대주의 전천년왕국설’이란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같은 전천년왕국설을 말하면서도 ‘역사적 전천년왕국설’과는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에 ‘역사적 전천년왕국설’과는 구분이 되는 ‘세대주의 전천년왕국설’에 있어서 다음의 순서에 의하여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2-1. 세대주의 용어와 기원
세대주의는 한문으로는 ‘世代主義’이며, 영어로는 dispensationalism'입니다. 세대주의는 말이죠 '시대주의'라고도 말합니다. 세대주의자들은 자신들이 세대주의를 말하게 된 기원을 교회사적으로는 교부 시대에서 봅니다. 그것은 어거스틴을 비롯한 교부들이 ‘세대들’(dispensations)에 대해서 말했었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대주의의 실제적 기원은 스코틀랜드 목사 에드워드 어빙(Edward Irning, 1792-1834)의 예언대회 개최의 영향을 받은 플리머드 형제단(또는 플리머드 형제 운동, Plymouth Brethern Movement)이 일어난 19세기에서 말하게 됩니다. 이 운동을 일으킨 이는 넬슨 다비(John Nelson Darby, 1800-1882)입니다. 그는 대환난전에 비밀휴거가 있을 것을 가르쳤고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역사적 경륜은 세대라고 하는 시기들의 연속을 통하여 나타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2-2. 세대주의 이해
세대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세대주의 천년왕국‘에서 ’세대주의‘란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하나님의 구속사(救贖史)에 대한 이해를 시대에 있어서 넬슨 다비의 주장에서 보게 되듯이 세대적으로 구분하고 또한 나누어서 연속적으로 가져나가는 까닭입니다. 그들은 말입니다. 하나님이 인류에 대한 구원 계획을 갖고 오신 방법이 시대마다 각각 달랐다고 말합니다.
세대주의에 의한 천년왕국 이해는 교회가 갖는 종말관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개신교 - 개혁교회 또는 개혁주의 교회 - 초기에는 ‘역사적 전천년왕국’에 대한 견해를 말하면서 그에 대한 신학적 입장에 서왔었습니다만, 지금은 ‘무천년왕국’의 견해에 더욱 무게를 두고 지지하고 있는 입장의 추세입니다. 그에 따라서 신학대학교(신학대학원)에서는 개혁주의 신학에서 종말론을 가르칠 때 천년왕국에 대한 각 견해가 어떤 것인지를 말하면서 학교가 이에 대해 갖는 신학적 입장을 두 신학적 입장 중 하나에서 가르쳐오고 있습니다. 또는 두 신학적 입장 중에서 어느 하나의 선택적 입장에서 표명하지를 않고 두 신학적 입장이 갖는 성경적 근거와 이에 대한 문제점을 대조하며 비교하여 가르치는 것에서 천년왕국설에 대한 학문의 폭의 이해를 수용하게 하고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말입니다. 개신교 - 개혁교회 또는 개혁주의 교회 - 의 신학대학교(신학대학원) 중에서 그 어느 학교도 ‘세대주의 전천년왕국’이 갖는 신학적 입장을 옹호하며 지지하거나 교회가 가질 수 있는 종말의 관점으로 가르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그런 학교는 없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교회가 갖는 종말관(내세관)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학교에서는 분명히 개혁주의 신학의 입장에 선 천년왕국설로 역사적 전천년왕국 또는 무천년왕국을 가르치며 세대주의 전천년왕국은 비성경적으로서 주의하고 경계해야 할 것으로 가르치며 신학을 하는 분들은 이러한 신학적 입장을 연구하고 충실하게 배웁니다만, 졸업 후에 그리고 목회를 하면서는 이 신학적 입장에서 떠나 그렇게 주의하며 경계해 온 세대주의 천년왕국설의 입장에서 성도들에게 종말적 신앙에 있을 것을 말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그래서 말입니다. 교회의 부흥집회나 또는 사경회를 지칭하는 일부 집회에서 강론하는 종말론의 경우는 대체적으로 이 세대주의 입장에서 말해온 천년왕국을 말하고 있다고 해도 결코 지나치지 않습니다. 그러니 만큼 우리나라 교회에서 대다수의 많은 교회가 이 세대주의에 의한 천년왕국을 종말론 사상으로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세대주의는 불건전하며 비성경적인 신학 사상입니다. 이러한 세대주의는 주로 그리스도의 재림에 의한 천년왕국과 관련하여서 말해지고 있습니다만 실은 두 가지와 관련하여서 말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는 역사관(시대관)에서입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가 그리스도의 재림에 의한 천년왕국에서입니다.
2-2-1. 세대주의의 역사관(시대관) 이해
세대주의는 구약과 신약의 전 시대를 6천년으로 봅니다. 구약 4천년, 신약 2천년의 기간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1천년의 기간이 진행될 것으로 봅니다. 그래서 모두 7천년의 기간으로 역사(시대)를 이해합니다. 이러한 세대주의적 견해를 갖는 것은 인류의 역사를 하나님의 창조로부터 시작해서 장차 앞으로 다가올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진행될 천년왕국의 시기로 보는데 따른 것으로 그 기간을 문자적으로 계산하여서 구약 4천년, 신약 2천년, 천년왕국 1천년으로 구분하고 이를 전시대로 규정하기 때문입니다.
세대주의(Dispensationalism)는 이 역사관에 의해서 인류 역사를 구분하는데 하나님께서 시대에 따라 다른 구원 계획을 세우시고 시행하셨다는 견해를 갖습니다. 그러니까 세대주의자들이 말하는 '세대'[시대] 라고 하는 것은 구분되는 각 시대에 특정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있음을 암시합니다.
이들이 성경을 가지고 나누는 시대의 구분은 다시 모두 일곱 세대로 되어 있습니다.
1. 무죄(無罪) 세대 : 죄가 없던 때의 세대 - 에덴(창 1-2) 2. 양심(良心) 세대 : 양심을 발견한 때의 세대 - 아담의 타락에서 홍수까지(창 3-7) 3. 인간정부(人間政府) 세대 : 인간 스스로 통치하던 세대 - 노아에서 바벨까지(창8-11) 4. 약속(約束) 세대 : 약속이 주어진 세대 - 아브라함에서 애굽까지(창 12장-출 18장) 5. 율법(律法) 세대 : 율법이 주어진 세대 - 모세에서 세례요한까지(출 19장-말 4장) 6. 은혜(恩惠) 세대 : 교회가 세워진 세대 - 교회 시대(마 1장- 계 19장) 7. 왕국(王國) 세대 : 그리스도의 인격적 통치 시대인 천년왕국 세대 - 천년왕국(계 20-22장)
세대주의가 세대(시대)를 7천년이란 기간의 역사관에 의해서 이를 다시 일곱 세대로 특정하게 구분하여서 나누는 견해를 갖게 된 것은 스코필드 성경(New Scofield Bible, 1967; 1909년도 판의 개정판인 이 책은 9명의 지도적 세대주의 신학자들의 위원회에 의해서 편집된 것으로 현시대의 세대주의를 대변한다)의 영향에 따른 것입니다. 스코필드는 소책자인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구분함'(Rigbtly Dividing tbe Word of Trutb)에서 "성경은 시간(time)을 보통 '시대'<한글 개역성경에는 '경륜'으로 표기되고 있음. 엡 3:2>라고 불리우는 각기 다른 일곱 시대로 구분한다<여기서 시간이란 말은 아담 창조로부터 요한계시록 21장 2절의 '새하늘과 새땅'에 이르는 전 기간을 의미한다)고 하였으며, 그의 이러한 기본 사상은 스코필드 성경에 그대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스코필드 성경은 세대[시대]를 정의하기를, "인간이 하나님의 뜻의 어떠한 구체적 계시에 대해 그들의 순종을 시험받는 일정한 시기"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비록 각 세대 안에서 하나님이 자기의 뜻을 다른 방법으로 나타내곤 하시지만 이 시대들은 결코 구원을 위한 별도의 방법들은 아니다. '각각의 세대 동안에 인간은 오직 한 방법으로만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다. 즉 십자가에서 성취되고, 부활 사건을 통해 증명된 그리스도의 사역을 통한 하나님의 은혜만이 유일한 구원의 방법이다.' "라고 말합니다.
세대주의가 구약 4천년, 신약 2천년, 천년왕국 1천년이라는 시대 구분에 의한 역사관을 가지고서 이를 다시 일곱 세대[시대]에 의한 구분을 갖는 것은 타락한 인간의 죄와 그 책임 문제를 다루어 가심에 있어서 하나님께서 시대에 따라 그 세대에 살던 인간들에게 각각 다른 계획과 다른 역사(役事)를 하신 것을 발견한다는데 따른 것입니다.
세대주의의 이러한 견해는 하나님께서 필연적으로 사람에 관한 자기의 의지를 변개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각 세대의 구분에서 보기 때문입니다. 세대주의는 하나님께서는 각 세대에서 언약을 주심을 통해서 각각 다른 계획과 다른 역사를 펼쳐나가시지만 결국은 실패한 것으로 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각 세대를 심판하시며 이에 따라서 각 세대는 심판으로 끝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다시 다른 세대에게 다른 방법으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알려 나가실 필요를 갖고서 이를 새로운 언약을 주시는 것을 통해서 알려 나가신 것이며 이것에 의해서 일하여 나가신 것이라고 여깁니다.
그럼에도 각 세대에 주어진 언약들 중에서 어느 것도 성취된 것이 없다고 말하는데 그것은 언약은 이스라엘을 위한 언약으로서 장차 올 천년왕국 시대가 도래하기 전에는 완전히 성취될 것이 아닌 언약으로 다루기 때문입니다. 가령 구약 성경의 많은 곳에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장차 다가올 세계인 미래의 어느 때에 다시 한번 가나안 땅에 모여들게 될 것이고, 다윗 왕국에서 보는 번영과 축복의 시대가 찾아오며, 그 나라는 열방 위에 있어서 특별한 권한을 갖는 지위를 얻을 것이며,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메시야의 자비로운 완전한 통치를 받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는 이 약속들 중 어느 것도 아직 성취된 일이 없기 때문에 이 약속들이 그리스도의 천년왕국 통치 기간 중에 성취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는 그리스도이신 예수님께서 성육신하시고 공생애를 통해서 구속 사역을 해 나가신데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는 이 땅에 계실 때 유대인들에게 하늘의 왕국을 제시하였는데 이 왕국은 구약 예언들의 성취 속에서 이스라엘에 대한 지상적 통치이어야만 했기 때문에 이 왕국에 들어간다는 것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받아들이는 신앙을 가져야 하는 것이고 산상보훈에서 제시된 것과 같은 높은 도덕적 기준들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자세가 요구되는 것인데 유대인들은 이 왕국을 거절했고 배척했으므로 이 왕국의 최종적 건립은 천년왕국 시기 때까지 연기되고 있는 상태 속에서 그동안 신비 속의 왕국을 형성하는 가현적 교회의 시대가 펼쳐져 나간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때 여기서 말하는 신비 속의 왕국을 형성하는 가현적 교회는 알곡과 가라지가 함께 하는 것으로서의 교회 세계를 말하는 것인데 그리스도가 왕으로 통치하기 위하여 돌아오는 때인 세상 끝날까지 계속될 것이라고 봅니다. 이 교회는 유대인들이 실질적 형태로서의 왕국을 거부하고 배척했기 때문에 이를 그리스도께서 다시 세우시기 시작한 것으로 교회가 존재하는 목적은 유대인들을 회복하는, 그러나 특별히 이방인 신자들을 모으는 기간으로 있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에 의하면 유대인과 이방인들이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게 되는데 이러한 '모음'은 그리스도가 그들의 휴거를 위해서 다시 오실 때까지는 결코 완성되지 않는 상태로 있다가 천년왕국 시기를 맞이하는 것에서 비로소 완성된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천년왕국 기간을 통해서 최종 상태인 새하늘과 새땅이 도래하여서 이곳에 그리스도 안에 있는 유대인과 이방인 모든 신자들이 들어갈 것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2-2-2. 세대주의의 천년왕국과 그리스도의 재림 이해
세대주의의 역사관은 시대를 구약 4천년, 신약 2천년, 천년왕국 1천년에 의한 7천년 기간으로 보면서 각 세대에서 실패해 온 하나님의 언약의 성취를 천년왕국 기간에서 맞이할 것으로 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그리스도의 재림에 의해서 시작되는 천년왕국에 이들이 가진 신학 사상의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그래서 세대주의가 갖는 그리스도의 재림 방식과 천년왕국 기간에 어떤 일이 있게 되는지에 대한 견해가 독특합니다.
세대주의는 '전천년기'(Premillennialism)를 말합니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통치하시는 천년왕국이 언제부터 시작되는 것인가를 놓고서 그리스도의 재림을 말하는데 따른 구분입니다. 그러니까 전천년기는 천년왕국 전에 그리스도의 재림을 말하는 견해입니다. 천년왕국은 거듭 언급되는 것입니다만, 무천년기(Amillennialism), 전천년기(Premillennialism), 후천년기(Postmillennialism)의 세 가지 학설이 있으며, 세대주의는 이 중에서 전천년기를 택하고 있습니다.
천년왕국에 대한 학설이 이렇게 세 가지로 구분되는 것은 요한계시록 20장 1-6절에 기록된 천년왕국에 대한 해석을 각기 달리하기 때문입니다. 천년기에서 Millennium은 ‘천년동안의’이라는 기간적 의미를 갖는 신학 용어인데 여기에 왕국이라는 독특한 특정 사상의 견해를 갖게 되면 'millennialism'(천년왕국주의, 천년왕국설)이 됩니다. 이때 '천년동안의’기간에 아무런 의미를 두지 않으면, 그래서 숫자적 기간의 의미를 갖지 않는 것으로서의 그리스도의 통치와 재림을 말하면 '무천년기'(Amillennialism ; 제이 아담스는 'The Time is at Hand'에서 무천년기라는 용어는 '실현된 천년기론<realized millemmialism>이라는 표현으로 대치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으며 필자도 동의합니다. 그것은 무천년기라는 용어보다는 실현된 천년기란 용어가 사실은 무천년기의 의미를 보다 더 정확히 말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무천년기라는 용어가 천년왕국에 대한 일반적인 신학적인 용어로 널리 사용되고 있는 만큼 일부러 무천년기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실현된 천년기라는 용어를 사용하기 보다는 무천년기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이것이 의미하고 있는 바가 실현된 천년기라는 설명을 하는 것이 좋을 듯 여깁니다. 그리스도의 재림이 그리스도의 통치가 실현되는 천년왕국 전기에 출현하는 설이면 '전천년기'(Premillennialism), 후기에 출현하는 설이면 '후천년기'(Postmillennialism)가 됩니다. 이렇게 그리스도의 왕국이 '천년’이라는 시간과 그 시간 동안의 통치를 그리스도의 재림을 놓고 어떻게 해석하는가에 따라서 천년기설은 서로 다르게 나뉘어집니다.
이 중에서 세대주의는 '전천년기'에 의한 왕국, 그러니까 전천년왕국을 주장합니다. 그런데 전천년왕국은 세대주의에서만 주장하는 신학 사상은 아닙니다. 전천년기에는 대개 '역사적 전천년기'(Historic Premillennialism)로 알고 있는 ‘과거의 전천년왕국’이 있습니다. 이 둘은 다같이 전천년기를 말하면서도 또한 명확히 서로 구별이 되는 차이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역사적 전천년기는 개혁교회가 지녀온 천년왕국에 대한 신학 사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며(*필자는 개혁교회가 지녀온 천년왕국에 대한 신학 사상으로 역사적 전천년왕국과 함께 다루어지고 있는 천년기설에서 '무천년기'<무천년왕국>를 지지합니다. 그것은 '무천년왕국'이 다른 천년기에 대한 견해보다 보다 더 근접된 성경적인 관점에서 해석되어지고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다른 천년기설(특히 무천년기설)과 함께 끊임없이 비교 연구하면서 어느 것이 보다 더 성경적 관점에서 말해지고 있는 견해인지를 알려고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세대주의 전천년왕국은 개혁교회가 지녀온 천년왕국에 대한 신학 사상이 아니며, 우리나라의 경우 과거 이장림의 다미선교회에서 보듯이 그리스도의 재림일을 말하며 휴거를 준비한다는 등 교회에 큰 해악을 끼쳐온 것으로 참으로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2-2-2-1. 세대주의에서 말하는 천년왕국의 ‘천년기’ 이해
세대주의는 요한계시록 20장 1-6절에서 언급하고 있는 '천년'을 문자적 숫자로 이해하고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실질적인 '천년 기간'으로 봅니다. 그리고 천년 기간을 '왕국' 기간으로서의 개념으로 봅니다. 그렇게 보는 것은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년 동안 왕노릇하니"(4절),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년 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노릇하리라"(6절)고 부활한 신자들이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년동안 왕노릇'할 것이라는 표현이 있기 때문이며 여기서 '천년'으로 사용되고 있는 단어인 라틴어 'millennium'는 1천을 의미하는 헬라어 단어를 번역한 것으로 그 단어가 왕국을 위해 사용된 것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왕국은 출애굽 이후 등장하는 이스라엘 왕국이 보여주고 있는 '중보적 왕국'(中保的王國)이, 그러나 유대인이 그리스도를 배척함으로써 중지 혹은 정지 상태에 놓여 있어 연기되고 있는 이 중보적 왕국이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재림하심으로 비로소 시작되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2-2-2-2. 세대주의에서 말하는 그리스도의 재림 방식
세대주의는 '역사적 전천년왕국‘과와 마찬가지로 '전천년왕국'의 견해를 갖고 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천년왕국을 그리스도의 재림과 연계해서 연대기적 개념으로 생각합니다. '역사적 전천년왕국'을 말하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재림 사건이 천년왕국 직전에 일어나며, 그리스도의 재림 후 1천년 동안 그리스도께서 지상에서 왕노릇하실 것이며, 그 후에 최종의 상태인 새하늘과 새땅이 도래한다고 주장합니다. 이렇게 천년왕국 직전에 일어나는 그리스도의 재림은 공중재림과 지상재림으로 있게 되는데 이는 두 단계에 걸쳐서 실현되는 것이 아니라 단일한 사건으로 봅니다.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죽은 신자들이 부활하게 되고 그때까지 살아있는 신자들은 변화 받아 영화롭게 되어서 다같이 함께 휴거[하늘에 들어올림]되어 주님을 공중에서 맞이한 후[혼인잔치에 참여함]에 그 신자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지상으로 내려와 왕국에 참여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천년 동안 세상을 통치하고 제사장으로서 하나님께 봉사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대주의자들이 말하는 전천년왕국설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재림 방식은 역사적 전천년왕국설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이들이 말하는 그리스도의 재림은 지금 임박해 있다고 봅니다. 그리스도는 어느 때든지 오실 수 있는데, 이는 이것보다 앞에 일어날 사건들이 예언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재림은 7년의 기간에 의해 각기 분리되는 두 개의 구별된 사건으로 시간적 간격을 가지고 두 단계에 의해서 구성되어 있습니다. 맨 처음은 그리스도는 그의 성도들을 만나기 위하여 공중에 나타나실 것입니다. 그때에 죽은 의인들은 모든 일으킴을 받게 될 것이며, 살아있는 성도들은 변형되어 함께 공중으로 끌어 올려져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참여할 것입니다.
이렇게 그리스도의 공중재림이 있는데 다시 지상재림이 있기 까지 두 단계에 의한 과정의 재림론을 말하는 것은 이 사이에 다음의 일들이 일어날 것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공중재림 때부터 그리스도와 그의 교회가 지상으로부터 떠나고, 심지어 내주적인 성령도 교회와 더불어 떠나 있는 동안 몇 가지 일이 일어나게 될 7년이나 그 이상의 햇수가 있게 될 것이라고 봅니다.
이때에 왕국의 복음은 유대인들에게 다시 전파될 것이며, 이때 비록 많은 사람이 계속하여 하나님을 모독할지라도 큰 규모의 회심이 있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7년 기간의 후반에는 큰 환난의 때가 있을 것인데, 적그리스도가 나타나게 될 것이며, 하나님의 진노의 대접들이 인류에게 쏟아질 것입니다.
그런 후 7년 기간의 끝에 주님께서 지상 재림하실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천년왕국’ 시대가 펼쳐질 것입니다.
2-2-2-3. 세대주의에서 말하는 그리스도의 지상재림으로 시작 되는 천년왕국 시대 특징
세대주의에서 말하는 전천년왕국, 그러니까 공중재림과 지상재림 두 단계의 과정에 의한 그리스도의 재림이 있음으로 마침내 이들이 말하는 천년왕국 시대가 펼쳐지는 기간이 시작됩니다. 이 천년왕국이 시작되는 그리스도의 공중재림에 이어서 있게 되는 그리스도의 지상재림은 이때는 그의 성도들을 “위하여”가 아니라, “함께” 있기 위해서 강림하실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지상재림에 의한 천년왕국 시대의 기간에는 다음의 두 특징 있는 일들이 있게 됩니다. 하나는, 생존하는 민족들은 심판을 받게 되고, 양은 염소와 구별되며, 큰 환난 기간에 죽은 성도들은 일으킴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적그리스도는 멸망되고, 사단은 결박당하여 천년 동안 구금됩니다.
다른 하나는, 천년 동안 그리스도가 왕이 되어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왕국을 다스립니다. 그 왕국은 유대인의 가견적이고, 지상적이고, 물질적인 왕국으로, 다윗의 왕권을 재건하는 일을 포함하는 신정적인 왕국의 회복이 될 것입니다. 거기에서 성도들은 그리스도와 왕노릇 할 것이며, 유대인들은 본연적 시민이 될 것이며, 많은 이방인들이 이 시민이 되는 것에 편입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보좌는 또다시 예배의 중심지가 될 예루살렘에 설립될 것입니다. 성전은 시온산에 다시 세워질 것이며, 희생제사의 회복이 있게 될 것이다. 죄와 죽음이 아직도 희생제물을 요구할지라도 그때는 큰 결실과 번성의 때가 될 것이며, 사람들의 생명이 연장되고, 광야는 장미처럼 꽃을 피우게 될 것입니다. 이때에 세계는 급속도로 개종될 것인데, 크고 무서운 심판들에 의해서 되어질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지상 통치가 다 끝나는 천년 기간의 끝인 말기에는 사단은 잠시동안 석방될 것인데, 거룩한 성에 대항하는 곡과 마곡의 전쟁을 일으킬 것입니다. 그러나 원수들은 하늘로부터 오는 불에 삼킨 바 되고, 사단은 무저갱에 던지움을 받게 됩니다. 그곳은 짐승과 선지자가 이미 사단보다 먼저 던지움을 받은 곳입니다. 그 후에 죽은 악인들이 부활되어 크고 흰 보좌 앞에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며, 그 다음에 새하늘과 새땅, 곧 신천신지의 세계가 있게 될 것입니다. 이곳에는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된 신자만이 들어가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실질적인 영원한 하나님의 왕국을 이룰 것입니다.
이렇게 '세대주의 전천년왕국'는 천년왕국 전에 있게 되는 그리스도의 재림 방식과 이때에 있는 일들, 그리고 천년왕국과 이때의 기간에 있는 일들에 대한 이해로 복잡한 양상의 구조를 띠고 있습니다.
2-2-2-4. 세대주의 천년왕국이 역사적 전천년왕국과 다른 차이를 갖는 점
세대주의 전천년왕국은 역사적 전천년왕국과 같은 전천년기를 주장하는 견해를 갖고 있습니다만, 그럼에도 세대주의 전천년왕국과 역사적 전천년왕국 사이에는 다음과 같은 구별되는 차이점이 있습니다. 차이점이 되는 몇 가지 큰 특징만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우선 천년왕국이 시작되는 그리스도의 재림의 시기와 방식에 있어서 차이가 있습니다. 역사적 전천년왕국의 그리스도의 재림은 공중재림과 지상재림이 두 단계에 걸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닌 단일한 사건으로 다루고 있는 반면에, 세대주의 전천년왕국은 그리스도의 공중재림과 지상재림을 각각 다른 시간적 차이를 갖고 두 단계에 걸쳐서 일어나는 것으로 봅니다. 이러한 세대주의 전천년왕국은 요한계시록 4장에서 이미 교회가 휴거한 것으로 보고, 4장 이후 20장까지는 유대인에 관한 것이기 때문에 신약 교회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으로 봅니다.
둘째, 역사적 전천년왕국은 천년왕국이 시작되는 그리스도의 재림이 있기 직전에 배교와 함께 큰 환란이 있을 것을 말하나, 세대주의 전천년왕국은 이와는 다른 견해를 갖습니다. 곧 역사적 전천년왕국과는 달리 그리스도의 공중재림과 지상재림의 두 단계를 주장하면서 이때에 있게 되는 7년 대환란설을 이야기 합니다. 세대주의 전천년왕국이 이처럼 그리스도의 재림을 두 단계에 의한 과정으로 보는 것은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천년왕국이 바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먼저 7년 대환란을 거치는 과정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때문입니다. 역사적 전천년왕국은 7년 대환란을 그리스도의 재림이 있기 전에 있는 적그리스도의 활동과 이로 인한 대배교에 의해 교회가 놓인 상태인 상징적으로 이해를 합니다만, 세대주의 전천년왕국은 그리스도의 공중재림으로 7년 대환란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래서 이들은 그리스도가 공중재림하고 죽은 성도들이 휴거된 후 7년 대환난기가 시작되는데 7년 중 절반인 3년 반(1,260일)동안 유대인에게 다시 복음이 전파된다고 봅니다. 그리고 3년 반이 끝나면 다시 환난이 오고 적그리스도가 나타나며, 일곱 대접 재앙이 쏟아지는데, 이때 유대인들은 특별보호를 받는 3년 반이 있다고 봅니다. 그런 후 이 3년 반이 끝나면 그리스도가 지상재림 하여 생존해 있는 민족들을 심판하여 양과 염소를 구분하며, 그리스도가 지상재림하는 이때 3년 반의 대환난 기간에 죽은 성도가 부활한다고 봅니다.
세대주의의 전천년왕국에 대한 이러한 이해는 다니엘서에 나오는 70이레를 천년기설과 연계해서 보면서 아닥사스다왕이 예루살렘성의 재건령을 내린 때부터 기름부음 받은 왕 그리스도가 끊어지는 때인 신약 시대의 시작 전까지를 69주(483년)가 지난 것으로 보며, 이제 남은 1주를 신약 시대로부터 시작해서 세상 끝나는 때까지로 해석하여서 남은 1주를 그리스도가 끊어진 시간부터 세상 끝까지 즉 신약 시대 전체를 7년으로 보고 이를 환란 기간으로 다루면서 이때 세상 끝날 직전에 전무후무한 대환란이 있을 것이라는 해석에 따른 것입니다. 그러니까 신약 시대 전체를 7년 대환란의 기간에 들어있는 것으로 보고 여기에 교회가 놓여져 있으며 이 교회가 그리스도께서 공중재림하실 때 휴거되어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이들을 데리고 함께 지상재림 하여 천년왕국에 참여시킨다는 해석인 것입니다.
셋째, 세대주의 전천년왕국은 7년 대환란 후에 그리스도의 지상 재림으로 천년왕국이 시작되며, 이때 예루살렘이 중건되고, 구약의 제사제도, 절기, 금식일이 다시 제정되어 회복되는데 기독교인 예배자들에 의해 기독교 정신으로 시행된다고 봅니다. 이는 역사적 전천년설에서는 구약의 제사제도와 그와 관련한 모든 것은 성취되었기 때문에 천년왕국에는 구약의 의식은 필요 없다고 믿는 것과는 다른 견해입니다.
2-3. 세대주의 천년왕국에 대한 반론
지금까지 세대주의가 가진 '천년기'에 대한 신학 사상을 세대주의에서 말하는 천년왕국과 그리스도의 공중재림과 지상재림이라는 두 단계에 의한 재림 방식에 의하여 펼쳐지는 내용에 의해서 다루었습니다만 실은 세대주의에서 말하는 휴거, 7년 대환란, 그리스도의 공중재림과 지상재림, 어린양의 혼인잔치, 곡과 마곡의 전쟁(1, 2차 전쟁), 적 그리스도의 통치, 아마겟돈 전쟁, 이스라엘의 회복, 하나님의 백보좌 심판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 모두를 다루고자 한다면 본 글이 방대한 성격이 되고 말 것입니다. 무엇보다 세대주의가 무엇인지를 대략적으로 말하여 이해를 돕는 본 글의 성격이 있기 때문에 세대주의의 자세한 이해는 이에 관하여 기술한 전문적인 서적에서 도움을 받도록 하시기를 바라고, 위에 답변 드린 글에서 보는 세대주의 천년왕국에 대한 비평적 반론을 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2-3-1. 세대주의 역사관에 대한 반론
세대주의는 구약 4천년, 신약 2천년, 천년왕국 1천년에 의한 7천년의 시대로 전시대에 대한 역사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신 후의 세계가 역사 속에서 가져온 시대는 7천년 이상입니다. 세대주의가 말하는 7천년은 성경에서 계산하게 되는 연대의 수치를 천년기를 포함한 인류의 역사 또는 지구의 나이로 뜻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까 세계의 역사를 7천년의 시대로 계산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사실 현재에 이르는 세계의 역사는 그 연대가 6천년에 불과할 만큼 짧은 것이 아닙니다. 세대주의에서 말하는 구약 4천년과 신약 2천년은 지금 인류의 역사를 6천년으로 규정하는 것인데 이를 성경의 연대기에 따른 것일지라도 이는 단지 구원의 역사를 원리적으로 계시하는데 있어서 필요한 연대기만 말해지고 있는데 따른 것이지 실은 그 이상의 참으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세대주의는 구약 4천년, 신약 2천년, 천년왕국 1천년의 시대 구분에 의해서 이를 다시 일곱 세대로 구분하고 있는데, 이렇게 시대를 일곱 세대로 구분하여 왕국 세대로 집중되는 세대주의의 이 역사관은 하나님의 언약적 구속사관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구속사를 언약적 관점에서 계시해 주고 있습니다. 이때 하나님의 언약은 그 내용에 있어서 점진적 발전성을 띠고 있습니다. 역사 속에서 주어지고 있는 하나님의 언약은 세대주의에서는 실패한 언약사가 되지만 실은 보다 더 풍성한 계시를 담고서 일관성 있고 통일성 있는 언약으로 주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언약은 약속의 자손으로 오시는 그리스도에 이르는 역사의 진행 속에서 점진적으로 보다 더 구체적으로 계시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일곱으로 구분되는 각 세대 속에서 실패한 언약사가 최종적으로는 천년왕국 시기를 통해서 성취되어 가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한 구속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언약이 펼쳐지는 역사 속에서 예언에서 주어지고 있는 하나님의 약속이 통일성 있게 성취된 언약사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사는 일곱 세대로 단절된 적이 없이 예언을 통해서 점진적 발전성을 띠고 통일성 있게 진행되어 와 성취된 것입니다. 이를 계단적 점진행정(漸進行程)으로 이해하기도 합니다. 아담과 노아와 아브라함과 다윗과 모세와 그리스도에 이르는 역사를 언약집행의 계단적 점진행정의 관점에서 이해를 하는 것입니다.
2-3-2. 세대주의의 천년왕국과 그리스도의 재림 방식에 대한 반론
요한계시록 20장 1-6절에서 여러 차례 언급되고 있는 '천년'은 그리스도의 통치 개념에서 말해지는 것으로 '천년왕국'으로 다루어질 수 있을지라도 이것이 지상에서 갖게되는 왕국으로서의 '천년왕국'을 뜻할 수는 없습니다. 그 까닭은 이곳에서 언급되는 천년이란 용어는 독자적으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앞서의 내용인 17-19장과 연계해서 나오는 것으로 하나님의 심판에 의해서 있게 되는 음녀로 묘사되고 있는 바벨론(요한계시록이 묵시 계시로 주어질 때는 바벨론이란 이름이 로마를 상징하지만 다니엘이 느부갓네살왕이 꾼 꿈의 해석에서 알게 해 주시고 있는 세상 나라를 의미합니다. 세상 나라는 절대적 강국과 영원한 나라가 없으니 한 나라의 등장과 흥함 속에서 한 나라는 쇠해지고 망합니다. 이것이 세상 나라의 성격입니다. 그리고 최후에 등장하는 하나님의 나라에 의해서 세상 나라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의 멸망은 짐승과 거짓 선지자와 그리고 20장에서 용으로 나오는 사단의 결박의 관계에서 다루어지며 그리고 교회가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참여한 기쁨에 있는 것과 함께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년 동안 왕노릇 한 후 천년이 찰 때 있게 될 최후의 심판에 의한 멸망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천년왕국의 견해로 이해되어지고 있는 천년기는 세상 나라가 멸망해 나가는 과정과 무관하지 않으며 또한 사단의 결박과도 무관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말입니다. 천년기의 '천년'은 세상 역사 속에서 존재하고 있는 기간이며 이는 지상 왕국의 기간이 아닌 상징적이요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에 의해 실현된 영적인 왕국의 기간을 의미하는 것에서 사용되고 있는 용어입니다. 따라서 요한계시록 20장에서 다루어지고 있는 천년기는 지상 왕국의 개념을 띠지 않으며 문자적 수치에 의한 기간의 개념을 띠지 않습니다.
더욱이 세대주의가 말하는 천년왕국이 문제 있는 것은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의 재림이 공중재림의 방식과 지상재림의 방식에 의해서 있은 후의 천년왕국은 그리스도께서 자신에게 붙어있는 자와 함께 임하여 통치하시는 세계이면서 또한 땅에 육체로 있는 자들 중에서 회심한 이스라엘이 예루살렘 성전을 중건하고 절기를 지키며 금식일을 갖는 등 종교생활을 하고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여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에 있게 하는가 하면 여전히 배교하는 자들이 있는 세계의 모습인 세상 나라의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재림과 천년왕국의 시작으로 사실상 달라진 것은 재림하시는 예수님을 목격한데 따른 유대인의 개종에 의한 이스라엘의 회복이라는 것 외에는 다른 것은 재림 전의 세계와 별반 달라지는 것이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재림은 세상 나라의 멸망을 가져오는 것이며 그리스도 안에 '이미' 실현되어 있으나 '아직' 미래적인 성격을 가진 하나님 나라가 '이제' 완성된 것임에도 말입니다. 뿐만 아니라 온 세상에 천국 복음이 전파되어 비로소 세상 끝날이 됨으로 그리스도의 재림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이와 상관없이 그리스도의 재림이 일어나고 그 후에도 복음이 전파되는 세상인 천년왕국이라는 괴이한 논리를 갖습니다.
다음으로 세대주의 전천년기에서 다루어지고 있는 그리스도의 재림 방식을 보겠습니다. 세대주의는 그리스도의 재림이 공중재림과 지상재림의 두 단계로 있게 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 두 단계는 역사적 전천년기에서 말하는 단일적 사건이 아니라 공중재림으로부터 지상재림까지는 7년 대환란이라는 기간의 간격이 있으며 지상재림으로부터 새하늘과 새땅이 이루어지는 때까지는 1천년이라는 기간의 간격이 있습니다. 여기서는 그리스도의 재림 방식에 관한 문제이므로 공중재림과 지상재림이 갖는 두 단계에 의한 재림이 갖는 문제에 대해서 보도록 하겠습니다. 세대주의에서 말하는 그리스도의 재림은 크게는 두 번 있게 됩니다. 첫 번째는 성도들을 위해서 있는 공중재림입니다. 공중재림을 성도들을 위해서 있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공중재림하시는 그리스도께서 신자[교회]를 휴거시켜 공중으로 들림 받게 하여 공중 혼인잔치에 참여시키는 것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성도들과 함께 오시는 지상재림입니다. 이 재림에서는 그리스도께서 휴거하여 공중 혼인잔치에 참여한 성도들과 7년 대환란에서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지킨 땅위의 변화 받은 성도들과 함께 지상으로 오시는 것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천년이 찰 때 다시 한번 그리스도께로 돌아온 자들의 부활과 악인의 부활이 다루어지면서 새하늘과 새땅의 세계가 주어집니다만 그리스도의 재림과 관련해서는 두 단계에 의한 재림 방식으로 이해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재림과 관련해서 예수님 자신은 두 단계에 의한 재림을 가르친 적이 없습니다. 그런가 하면 승천하시는 예수님이 다시 재림하실 것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는 사도행전 1장 11절은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고 말씀하여 오직 한번 하늘로 가신 예수님께서는 또한 단 한번 다시 오실 것임을 알게 해 주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재림에 있어서 공중재림의 근거로 제시되고 있는 성경 구절은 데살로니가전서 4장 13-18절입니다.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예수의 죽었다가 다시 사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저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단코 앞서지 못 하리라.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그러므로 이 여러 말로 서로 위로하라." 이 말씀은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재림 방식에 있어서 공중재림을 할 것을 해 주는 것으로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본 내용을 보면 아는 것이지만, 바울은 성도가 죽으면 어떻게 되는 것인지를 알게 해 주는 것으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그는 사람이 죽었을 때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모든 희망을 다 잃어버린 듯한 행동을 하지 말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성도는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것을 믿기에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이미 죽어서 세상을 떠난 모든 성도도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의 나라로 데려갈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혹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살아있다고 해서 큰 소리 칠 것이 하나도 없는 것이 살아있다고 해서 죽어 무덤 속에 있는 사람들보다 먼저 그리스도를 만나지는 못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시면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죽은 사람들이 먼저 일어나서 그리스도를 만나게 될 것이며 그 다음에 땅위에 아직 살아 있는 자들도 다 함께 구름에 싸여 공중에서 주님을 만나 영원토록 주님과 함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살아있다고 해서 죽은 자들보다 먼저 주님을 만나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은 부활을 함으로써 그리고 아직 살아 있는 자들은 그 몸이 변화를 입고 재림하시는 주님께로 가 그와 함께 연합할 것이라는 의미에서 하고 있는 설명입니다. 그러기에 부활은 동시적인 사건이요 단일적인 사건입니다. 그리고 재림은 주님께서 자기 백성들에게 다시 오신다는 것을 표현하는 묘사이며, 공중에서 주님을 만난다는 것은 땅에 있는 성도가 주이신 그리스도께서 계신 곳으로 간다는 것에 대한 표현의 묘사입니다. 그런 것이지 공중이라는 하늘적 공간의 세계에서 주님과 함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더욱이 공중재림의 언급과 함께 지상재림의 언급이 없습니다. 성경 어느 곳에서 공중재림을 언급하였는데 여기서 뚝 떨어진 다른 곳에서는 또 지상재림을 언급하여 재림의 방식이 두 단계라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 아닙니다. 만일 그리스도의 재림이 공중재림과 지상재림에 의한 두 단계에 의한 것일 경우는 공중재림이 언급되고 있는 곳에서 지상재림도 언급이 되었어야 합니다. 바울은 같은 곳인 데살로니가전서 5장 10절에서는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사 우리로 하여금 깨든지 자든지 자기와 함께 살게 하려 하셨느니라"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다시 오실 때 성도가 죽어 있든지 아니면 살아있든지 간에 영원히 함께 살 수 있게 하려고 죽으셨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는 죽은 자로 있거나 아니면 살아 있거나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성도는 그리스도의 죽으심에 의해서 영원히 살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얻고자 하는 생명을 이미 얻음으로써 더 바라고 얻고자 하는 것이 없는데 살아 있거나 죽어 있거나가 아무런 차이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를 말해주고자 하는 것으로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것을 언급하시며 또한 그 주님께서는 자신이 있는 곳으로 성도를 이끌어 함께 있게 하신다는 것으로 성도가 공중에서 주님을 만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언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성경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공중재림과 지상재림에 의한 두 단계의 방식으로 임한다는 것을 말하기보다는 오히려 신자들과 불신자들의 부활이 동시에 일어나는 것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이를 기이히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요 5:28-29)
3. 후천년왕국
후천년왕국설은 그리스도의 재림이 천년왕국 뒤에 온다는 견해입니다. 천년왕국은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복음시대에 나타나며, 그리스도는 그 종말에 오실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후천년왕국설을 주장하는 자들은 성경의 여러 본문에 그들의 주장에 대한 근거를 두고 있는데(시 47, 72, 100; 사 45:22-25; 호 2:23), 그 근거 본문들은 모든 나라들이 하나님을 알게 될 것이라고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예수께서도 그의 재림 이전에 복음이 전 세계에 널리 전파될 것이라고 여러 번 말씀하신 것(마 24:14; 28:18-20)도 후천년왕국설의 근거로 삼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그들이 의존하는 성경적인 근거는 교회의 승리에 대한 그리스도의 선언(마 16:18), 메시아의 우주적인 통치에 대한 예언들(민 14:21; 시 2:8; 사 11:9; 슥 9:10)과 함께 다양한 본문(마 13:31-35; 24:14; 롬11:11-16; 고전15:25)에 있다고 말합니다.
3-1. 두 종류의 후천년왕국설(후천년왕국설의 상이한 두 형태)
3-1-1. 초기 형태
후천년왕국을 주장하는 대표적인 학자로는 뵈트너(Loraine Boettner)를 떠올리게 됩니다만, 12세기에 수도원장이었던 요아킴(Joachim)에 의해서 주장되었던 것으로 보며, 후기 중세 이후에 활발하였습니다. 브라이트만(Thomas Brightman)은 개신교에 영향을 미친 인물입니다. 그리고 16, 17세기에 화란의 몇몇 개혁파 신학자들(Coccejus, Alting, Vitringas, d'Outrein, Witsius, Hoornbeek, Koelman, Brakel)도 후천년왕국설을 주장하였습니다. 19세기에는 여러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 후천년왕국설을 말하였는데, 유명한 조직신학자인 찰스 하지(Charles Hodge)를 비롯하여서 스트롱(A. H. Strong), 브라운(David Brown), 브리그스(C. A. Briggs) 등이 있습니다. 이 사람들 중 어떤 사람은 천년기를 과거에 속한 것으로, 또는 현재로, 또는 미래에 있다고 생각하였으나, 대다수는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기 직전 세상 종말에 있을 것으로 기대하였습니다.
이들은 전천년왕국설의 두 가지 주요한 개념들을 배척하였습니다. 즉, 그리스도께서 천년동안 지상에서 왕 노릇 하시기 위하여 육신적으로 돌아오실 것과 성도들은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 부활되어 천년왕국에서 그와 함께 왕 노릇 할 것을 배척하였습니다.
이들이 주장하는 후천년왕국설의 견해는 다음과 같습니다. 복음이 점차적으로 전세계에 퍼져나가다가, 마지막 날에는 지금보다 더 효과적인 것으로 되어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의 풍성한 영적 축복의 시기로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황금 시기에 유대인들은 전에 없던 방식으로 복음의 축복에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의 황금시대는 짧은 기간에 배교가 일어나며, 악의 세력과의 최종적인 투쟁이 있을 것입니다. 이 일들이 있은 후에는 그리스도의 재림과 동시에 일반적 부활과 마지막 심판 등의 여러 사건들이 발생하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주장을 통해 후천년왕국설을 주장하는 이들이 기대하는 천년왕국은 현세대, 즉 교회 시대 동안 누릴 번영된 황금시대입니다. 이들은 천년왕국을 천년 동안의 지상통치로 간주하며, 또한 파루시아가 천년왕국 이후에 있을 것이며, 교회는 영혼을 구하는 일에만 관여할 것이 아니라, 기독교적인 영향력을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 삶의 영역에 행사함으로 총체적인 영역을 복음으로 변혁시키는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3-1-2. 후기 형태
현대에 이르러서 후천년왕국설은 초기 형태와는 전혀 다른 형태를 가지고 있으며, 천년왕국이 복음의 전파와 이에 따르는 성령의 역사에 의하여 도래한다고 믿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한번 믿었던 바의 역사적 암시를 제하고는 성경 교훈에 대하여 거의 관심이 없습니다. 이들은 천년왕국은 진보에 의해서 점차적으로 생겨나게 될 것이라고 하면서, 한편으로 사람은 세계 개혁의 정책, 곧 구조적인 정책을 받아들임으로써 새로운 시대에 참여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3-2. 후천년왕국설에 대한 반론
후천년왕국설의 근본적 개념인 전세계가 점진적으로 그리스도에게 돌아오게 된다는 것, 또는 그리스도의 재림 때에는 대부분의 사람이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재림기에 관한 성경의 가르침과는 조화되지 않습니다. 후천년왕국주의자들 중에는 이것을 의식하고 그리스도의 재림 직전에 배교와 환난이 있을 것을 소개합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이것을 경시하고 종교생활의 주요 과정에 거의 영향을 주지 못하는 사건들로 다루었습니다. 더욱이 현시대가 대격변으로 종결하지 않고, 거의 알아차릴 수 없을 만큼 미래의 시대로 넘어가게 된다는 관념도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장차 일대 위기가 있을 것이니, 그것은 “세상이 새롭게 되는 것”이라고 칭할 수 있을 만큼 큰 것입니다(마 19:28).
마지막으로, 인간이 교육, 법률, 사회개선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완전한 통치를 받게 될 것이라는 현대적 관념도 성경의 가르침과는 전적으로 모순됩니다. 미래의 왕국은 자연적인 방법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권능에 의해서 완성되는 것입니다.
4. 무천년왕국(실현된 천년왕국)
한국교회는 초기에는 개혁주의를 표방하는 학자들 사이에서 역사적 전천년왕국설이 주류를 이루던 흐름을 따랐습니다만, 이 후 그 흐름은 무천년왕국설이 주축을 이루는 시대적 분위기로 전환된 것이 근래의 상황입니다. 그러나 이는 단지 한 시대의 신학적 입장의 분위기 전환에 의한 것이 아니라, 천년왕국설에 대한 신학적 견해를 그 근거가 되는 성경 구절과 그에 따른 성경 본문의 해석에 의해서 보다 올바른 이해를 가져온 데 따른 것에 의해서 라고 하는 것이 보다 정확한 이해일 것입니다. 여기서는 그동안 말해져 온 무천년왕국에 대한 이해를 갖도록 합니다.
4-1. 무천년왕국의 용어 이해
천년기설, 또는 천년왕국설에 있어서는 앞에서 설명드린 역사적 전천년왕국도 있고, 세대주의 전천년왕국도 있고, 후천년왕국도 있으며, 또한 무천년왕국을 주장하는 견해에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무천년왕국을 말하는 사람들은 이 용어로 인해서 가질 수 있는 오해, 곧 ‘천년왕국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란 오해를 가질 수 있는 것에 민감한 반응을 가지며, 이를 대체하는 용어인 ‘(이미) 실현된 천년왕국’ - 또는 ‘이미 시작된 천년왕국’ - 이으로 말하고자 합니다.
그럼에도 ‘무천년왕국’이란 용어가 ‘(이미) 실현된 천년왕국’이란 이해에 의해서 갖는 신학적인 용어이므로, 여기서는 그대로 무천년왕국이란 용어로 언급하도록 합니다.
4-2. 무천년왕국설의 역사성과 영향력
무천년기에 의한 그리스도의 왕국을 말해 온, 곧 ‘무천년왕국설’을 말해 온 시기는 오래되었습니다. 이는 역사적 전천년왕국이 기독교 초창기 3세기 동안에 기독교의 지배적인 종말론이었던 때에 콘스탄틴(Constantine) 황제가 통치하던 시대인 4세기에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이 시기에 천년왕국에 대한 재해석을 갖는 작업이 있었는데, 천년왕국이 그리스도의 재림으로나 또는 그 이전에 문자적인 의미에서의 기간으로 지상에서 있게 되는 것이 아니라, 교회 시대를 의미하는 것으로 그리스도와 그의 성도들이 천년 동안 통치한다는 시대는 지상 교회의 전체 역사인 신약 시대와 동일시하는 재해석이 있었습니다. 따라서 미래에 천년왕국이 있다는 견해를 따르지 않고 부인했습니다. 어거스틴(Augustinus)은 이런 의미에서 무천년왕국을 주장하는 견해에 있은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그에 의한 이러한 무천년왕국설은 중세 시대의 지배적인 기독교 종말론이 되었고, A.D. 431에 있은 에베소(Ephesus) 교회회의에서는 천년왕국이 있다는 신앙은 미신으로 정죄(定罪)되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리고 심지어 천년왕국에 대한 교회의 공식적인 교리도 무천년기설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함으로 중세 기간 동안에 역사적 전천년왕국설이 없어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여전히 이 설을 따르는 신자들은 있어 왔고, 가시적이든 은밀적이든지 간에 역사적 전천년왕국설을 따르는 자들과 무천년왕국설을 따르는 사람들로 분류되어 내려왔습니다. 이러한 가운데서 종교개혁운동으로 선 개혁교회는 무천년왕국의 입장에 서 있었습니다. 칼빈은 천년왕국에 흥미를 느끼는 사람을 ‘무지하고 사악한 사람들’이라고 과격하게 표현하기까지 하며 주의하게 - 그럼에도 역사적 전천년왕국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 하였습니다. 그리고 제이 이 아담스(Jay. E. Adams), 후크마(Anthony A. Hoekema), 윌리암 헨드릭슨(William Hendriksen), 거쓰리(Donald Guthrie) 등이 무천년왕국의 견해를 말해 왔습니다.
4-3. 무천년왕국설의 개념과 특성
무천년왕국의 견해에 있는 사람은 문자적인 숫자의 천년기에 의한 왕국을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이러한 것에서의 천년왕국에는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무천년왕국을 주장하는 견해에 있는 사람들은 천년왕국이 없다는 것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문자적인 천년왕국이 아닌 영적인 차원에서의 천년왕국을 주장하는 상징적인 것이라고 보며, 이것을 교회시대로 해석합니다. 그래서 천년 동안의 통치는 지상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께서 성육신 하여 예수로 온 세상을 구원할 구주로 오시고 십자가의 구속 사역을 완성하시고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여 하나님의 보좌에 앉으셔서 하늘에 있는 자나 땅에 있는 자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들로 통일을 이룸으로 자신과 함께 한 성도들과 더불어 천상에서 이루어진다고 봅니다. 그런 까닭에 그리스도께서 성육신 하신 초림 때부터 그리스도께서 다시 세상에 강림하실 때까지인 재림까지에 놓인 기간이 천년기라고 말합니다. 또는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천에서 시작하여 재림에서 끝나는 시대의 기간에 놓인 때를 천년기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무천년왕국은 대환란에서도 전천년왕국이나 후천년왕국에서 말하는 것과 차이가 있습니다. 무천년왕국에서는 적그리스도의 활동과 이로 인한 대배교를 어느 한 시점에 있는 특이한 것으로 결코 말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현 시대가 점점 악화되어가면서 그리스도의 재림 때에 이르러서는 더욱더 극도로 악화되는 것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재림 직전에는 적그리스도의 나타남과 배교가 이전보다 더욱 팽배하여 이로 인한 환란이 대환란으로 종말점에 도착하게 되지만,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즉시 의인들은 생명의 부활로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만, 이때 악인들인 적그리스도와 그 추종자들, 곧 그리스도인의 원수들은 사망의 부활로 그리스도의 심판대에 서서 완전히 그리스도께 굴복하게 되고, 그리스도께서 행사하시는 최후의 심판으로 그들의 최후의 상태인 영멸하는 지옥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라고 봅니다. 그럼으로써 그리스도의 재림에 의한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동시적으로 있을 것과 이로 인한 천국과 지옥을 말합니다.
이때까지 비록 적그리스도와 그 추종자들인 그리스도인의 원수들이 활발히 활동하지만 그럼에도 결코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을 단 한 사람도 멸망케 하지 못하고 그들을 위해 준비된 영영한 불못에 들어가게 되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구속 사역을 통해서 사단을 완전히 이긴 자로 계심으로 사단의 패배는 요한계시록 12:7-9절에 제시된 바와 같이 그리스도의 초림으로 이미 시작되었으며 십자가 위에서 완성되었으며, 이제는 하나님의 보좌에서 ‘이긴 자’로서 자신의 몸된 교회의 주가 되셔서 생명의 왕 노릇을 하며 교회의 승리를 주관해 가십니다. 이런 까닭에 천년왕국설을 말하는 자들이 주장하는 천년간 있게 될 것이라고 하는 그리스도의 지상 통치를 말하지 않습니다. 무천년왕국을 말하는 사람들은 요한계시록 20:1-6에서의 천년기가 미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실현기로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이것의 온전함으로 마침내 완성(성취)된 나라가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 곧 새하늘과 새땅의 세계, 곧 신천신지인 새예루살렘인 것임을 말합니다.
4-4. 무천년왕국설에 대한 반론
무천년왕국을 주장하는 견해에 대한 비판과 그 반론은 천년기의 특성상 주로 전천년왕국주의자들에 의해서 있습니다. 이것으로서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만, 여기서는 세 가지의 경우에서 어떤 것이었는지를 보도록 합니다.
먼저, 전천년왕국에서는 ‘천년’의 기간이 상징적인 것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그러한 까닭으로는 요한계시록 20:1-6의 내용 가운데 천년이라는 말이 6회나 등장하면서 강조하고 있는 것이 실제적인 기간임을 증거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또한 무천년왕국은 요한계시록 20:4-6에서의 ‘첫째 부활’과 ‘둘째 사망’에서 ‘첫째 부활’을 중생의 의미로 이해하는 것에 강한 부정을 갖습니다. 그것은 전천년왕국에서는 첫째 부활을 신자의 부활로 보며 ‘둘째 사망’을 불신자들의 부활 - 바다와 사망과 음부가 죽은 자들을 내어주어 살아난 그들을 불못에 던지기 때문이라고 해석 - 로 보는 까닭입니다. 전천년왕국에서는 첫째 부활을 예수의 증거를 인하여 죽었던 자가 육체적으로 살아나서 천년왕국에 참여하나, 죽은 자(불신자)들은 천년 동안 살아나지 못하다가 천년 이후 살아나서 최후의 심판을 받을 것으로 해석합니다. 이러한 까닭에 전천년왕국주의자들은 고린도전서 15:23-24을 근거로 성도의 부활과 불신자의 부활에는 시간적 간격의 차이가 있다고 보면서 무천년왕국에서 말하는 성도의 부활과 불신자의 부활이 동시적이라는 견해에 대하여 강하게 부정합니다.
그리고 무천년왕국에서 반론을 받는 가장 큰 약점은 사단이 결박되어 무저갱에 던져져 천년 동안 갇히게 될 것과 천년 끝에는 사단이 무저갱으로부터 잠시 풀려날 것에 대한 해석이 약하다는 문제점을 들고 있습니다. 신약성경은 사단이라고도 불리우는 마귀의 활동을 강조하면서 우리가 그 마귀와 더불어 싸울 것을 말해주고 있는데, 무천년왕국을 말하는 자들은 예수님의 초림에서, 또는 예수께서 부활하심으로 사단의 권세를 깨뜨렸다고 하며 이것을 사단이 결박된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근거가 되지 못한다고 합니다.
Ⅲ. 글을 맺으며 남기는 말
답변을 하기에 앞서서 서두에서 본 글이 꽤나 길어질 것임을 언급했는데, 과연 장문의 답글이 되었습니다. 글의 성격상 님이 질문한 내용인 천년왕국설이 간단히 답변하는 것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닌데다가, 각각의 신학적 입장이 표명되는데 따른 설명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것을 이러한 질문과 답변을 통해서 천년왕국에 대한 여러 견해와 그것들에게 지적되고 있는 문제점이 무엇인지를 배우고, 그래서 알아가는 기회로 가져간다면 성경에서 우리가 대한 종말론을 올바르게 이해하여 가는데 적지 않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본 답글에서는 천년왕국설에 대한 반론에 있어서 이것이 얼마나 합당한지, 또는 이 반론에 대하여 어떤 대응을 하게 되는지는 다루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여기에는 각 견해에 있어서 공통적으로 다루어지지 않으면 안 될 성경의 해석적 작업이 행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면 답글은 더욱 많은 내용을 가지고서 길어지게 될 것인데다가 여기서는 그렇게 해야 할 필요성을 가지고 있지 않으므로 이 정도에서 마치고자 합니다.
비록 본 답글이 그 내용이 장문의 긴 글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이것으로 천년왕국에 대한 여러 견해를 충분한 설명으로 답변을 드렸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기에 본 답글로서는 여전히 미진한 부분이 있으며 어떤 내용의 부분에서는 님의 궁금증을 풀어드리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한 점이 있으시면 또 다른 분을 통해서 도움을 받으시거나 천년왕국에 대하여 말해주고 있는 좋은 서적을 구입하시거나 도서관을 이용하셔서 도움을 받으실 수 있기를 바라면서, 졸문의 본 답글이 기다림 속에 있었던 님에게 도움이 될 수 있기를, 그리고 이 글을 읽은 개혁주의신앙공동체 회원들께도, 그리고 본 까페를 방문해 주심에서 이 글을 읽은 분들께도 같은 유익이 있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갖습니다.
주 안에서 평안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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