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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9:6-19
'내가 택한 나의 그릇이라'
사울은 종교적인 우월감과 특권의식에 사로잡혀 자기가 최고라는 자부심으로 산 사람입니다. 본인이 옳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누가 뭐래도 관철시키는 사람이었습니다. 사울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자신 만만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사람이 지금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성령의 강력한 빛을 받고 그만 실명이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때 땅에 꼬꾸라져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신세가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현재 사울은 죽은 목숨이나 다를 바 없었습니다. 주님께서 눈을 고쳐 주시지 아니하시면 바디매오의 신세가 아니 된다고 누가 보장 하겠습니까.
첫째 '일어나라 말씀 하신 예수님'
사도행전 9:6 '네가 일어나 성으로 들어가라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 하시니' 땅에 엎드러져 있는 사울에게 주님의 음성이 들려 오고 있습니다. 무슨 음성입니까. '네가 일어나 성으로 들어가라 너에게 어떻게 행할 것을 가르쳐 줄 사람이 있다'라며 말씀 하시고 있습니다. 생명의 예수님은 깨어지고 부숴진 사울을 일으켜 세워 주습니다. 주님은 잘 났다고 봄내는 자를 일으켜 주시는 것이 아니라 땅에 엎드려져 있는 자를 일으켜서 새로운 인생을 살게 하십니다. 주님은 일어나 있는 자를 쓰시는 것이 아니라 땅에 겸손히 엎드러져 있는 자를 쓰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자기 힘으로 일어 설 수 있는 자를 쓰시는 것이 아니라 자기 힘으로 일어설 수 없는 자를 들어 쓰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현재 우리가 무슨 일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땅에 겸손히 엎드러져 있어야 합니다. 사울은 전에 자기 힘을 의지하여 산 사람이지만 그러나 지금은 자기 힘으로 일어설 수 없고 남의 도움을 필요로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좀 역설적이지만 주님은 자기 힘으로 일어설 수 없는 사람을 붙잡아 주시지자기 힘으로 일어설 수 있는 사람을 붙잡아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9;7 '같이 가던 사람들은 소리만 듣고 아무도 보지 못하여 말을 못하고 섰더라' 햇빛보다 더 광명한 빛이 비취고 큰 소리가 들리는데도 하나님의 선택을 받지 아니한 사람들은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는 기이한 현상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 가려주시고 덮어 주시니 아무도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무슨 소리가 들리기는 했는데 소리만 듣고 내용에 대해서는 알 수 없었습니다. 하늘에서 빛을 비추이지만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보아도 믿지 않고 불신하고 거부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안 보여 주시고 못보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그 소리를 누구만 듣게 합니까. 같은 장소에 있었지만 오직 사울만 그 소리를 듣게 하시는 것입니다. 참으로 신기한 일 아닙니까. 아무도 주님의 음성을 분별하지 못했지만 사울만 주님의 음성을 듣고 분별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이 사울에게 하는 말을 분명히 알아 듣는 것입니다.
9:8- '사울이 땅에서 일어나 눈을 떴으나 보지 못하고 사람의 손에 끌려 다메섹으로 들어가서' 사울의 인생은 끝난 것입니다. 사울의 인생은 거덜난 것입니다. 최고의 인생을 살겠노라고 거침없이 달려 왔지만 최고의 인생은 커녕 사람의 손에 글려 다니는 비참한 신세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 없이 최고의 인생을 꿈꾸는 자들은 하나님의 이렇게 추락시켜 버리는 것입니다. 최고의 인생이 어디 있습니까. 하나님 없이 승승장구 한다고 해서 그것이 성공적인 인생입니까. 아닙니다. 어림도 없습니다. '사울이 땅에서 일어나 눈을 떳으나 보지 못하고 사람의 손에 끌려' 눈은 떳으나 아무것도 볼 수 없는 시각장애인이 되어 버린 사울은 남의 도움을 받지 아니하면 한 발자욱도 움직일 수 없는 사련한 사람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하나님의 손이 막으면 눈먼 시각장애인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손바닥으로 눈을 가리우면 아무도 볼 수 없습니다. 사울이 다메섹 성에 간 이유는 예수 믿는 사람들을 체포하여 예루살렘으로 끌고 올려고 간 곳인데 자신의 꿈은 다 깨어지고 길바닥에 주저 앉아 있었습니다. 사울은 지금까지 자기 힘을 자랑하며 다메섹 언덕까지 달려 왔지만 정작 그 성에 들어 갈 수도 없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도움을 받지 아니한 인생은 하나님의 성에 들어갈 수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사흘 동안을 보지 못하고 식음을 전폐하니라' 사울은 사흘 동안 꼼짜고 하지 못하고 금식기도 아닌 금식기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3일 동안 십자가 사건을 보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9절) 말씀은 우리 기독교 역사에 없어서는 안 될 말씀입니다. 이 9절 말씀이 우리 기독교 역사를 뒤 바꾸어 놓은 위대한 말씀입니다. 사울은 이 기간 동안 인생의 가장 어두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가장 고통스러운 시간이었습니다. 그후에도 많은 고난이 있었지만 그가 살아온 이래 처음 겪은 인생의 겨울이었습니다. 우리는 9절 말씀애 대해서 큰 비중을 두고 있지 않지만 사울이 이 사흘동안 보지 못하고 식음을 전페한 사건이 없었다면 우리는 지금 눈먼 시각장애인이요. 귀먹은 자들이었을 것입니다. 신기한 일은 사울이라는 한 사람이 사흘을 보지 못하고 식음을 전폐한 금식기도 아닌 금식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역사가 새롭게 꽃필 수 있었겠습니까. 보기만 해도 흥분이 되는 말씀입니다. 이 사흘이 없었다면 보지 못하는 사흘이 없었다면 우리는 과연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끔찍하지 않습니까.
둘째 '사울을 위해 준비한 사람 아나니아'
9:10 '그 때에 다메섹에 아나니아라 하는 제자가 있더니 주께서 환상중에 불러 가라사대 아나니아야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주님께서 환상중에 아나니아를 불러 준비하시는 자상한 예수님을 봅니다. 누구를 위해서 친히 이렇게 준비하고 있습니까. 사울을 위하여 준비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부르실 때 알아 차리는 영감의 센스가 아나니아 처럼 있어야 합니다. 아! 지금 주님이 무슨 일을 하실려고 나를 부르시고 있구나 하는 영적인 센스가 번뜩여야 합니다. 대답하되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이렇게 대답하는 자가 복받은 자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부리실 때 뭔가 하시고자 하는 일 때문에 부르시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영이 둔해서 주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지 못하고 엉뚱하게 처신할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이것은 우리의 영이 둔해서 그러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나니아는 영이 깨어 있어서 즉시 반응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주님 무슨 일입니까. 주님무슨 일이든지 명령하시면 순종하겠습니다.
9:11 '주께서 가라사대 일어나 직가라 하는 거리로 가서 유다 집에서 다소 사람 사울이라 하는 자를 찾으라 저가 기도하는 중이라' 사울은 사흘 동안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사울은 절망속에 있었지만 기도했던 것입니다. 하나님 저를 용서하세요. 제가 다 잘못했습니다. 저에게 한번만 기회를 주신다면 주를 위하여 충성하겠습니다. 제가 몰라서 주님을 핍박했습니다. 주님 저를 용서해 주시고 이제는 주님을 위하여 살 수 있도록 기회를 주세요 하면서 기도한 것입니다. 환난 중에 기도할 때 새로운 사명을 주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중에도 기도의 줄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9:12- '저가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들어와서 자기에게 안수하여 다시 보게 하는 것을 보았느니라' 기도하는 사울에게 무슨 환상을 보여 주었습니까. 아나니아라는 하는 사람이 자기에게 들어와서 안수하여 눈을 다시 보게 하는 기적의 장면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주님은 먼저 환상으로 아나니아에게 보여 주셨고 또 사울에게도 똑같이 보여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무슨 일이든지 일방적으로 하시지 않고 쌍방이 서로 잘 알 수 있도록 알려 주셔서 서로에게 부딪칠 충격을 최소화시켜 주시면서 주님의 뜻을 이루어 가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나니아에게는 왜 그 일을 해야만 하는지 자세히 설명해 주시고 실수하지 않고 잘 할 수 있도록 하십니다. 사울에게도 현재 벌어지고 있는 모든 일을 거부하지 말고 잘 받아들여서 주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순종하게 끔 하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각본을 계획하시고 출연자에게 자신의 각본대로 연기할 수 있도록 설명해 주시며 진행해 가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그 계획대로 진행해 가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기도하다가 떠오르는 영감이 있으면 그 영감대로 순종하면 복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영감은 내 마음에 꼭 듣다느니 좋게 보이기 때문에 순종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 마음이나 뜻과는 전혀 맞지 않지만 순종하는 것입니다. 내 마음에 안 들어도 주님께서 원하시는 일이면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 사실을 어떻게 할 수 있습니까. 9:13 '아나니아가 대답하되 주여 이 사람에 대하여 내가 여기에서 듣사온즉 예루살렘에 주의 성도들 에게 적잖은 해를 끼쳤다 하더니' 9:14 '여기서도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를 결박할 권세를 대제사장들에게 받았나이다; 아나니아가 뮈라고 대답을 합니까. 주의 성도에게 적지 않은 해를 끼쳤다는 소식을 들었다는 것입니다. 아나니아로서는 순종할 수 없는 조건들입니다. 주의 성도에게 적지 안은 해를 준다는데 제가 어떻게 그러한 사람에게 가서 안수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반문할 수 있었습니다. 세째 '택한 나의 그릇이라'
9:15- '주께서 가라사대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위하여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아나니아의 생각과는 달리 주님께서 사울을 택한 나의 그릇이라는 것입니다, 1. 인간적으로 보면 아나니아는 착한 사람이요 존경받는 사람입니다.
아나니아는 자신의 생각보다는 주님께서 원하시는 일에 순종을 했습니다. 이것을 보면 하나님은 자신이 직접 일하실 수 있지만 그렇게 하시지 않으시고 택한 종을 통해서 일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오날날도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서 일하십니다. 졸지에 비참한 신세가 되어 버린 사울은 누구의 도움으로 살아 났습니까.
9:18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라 일어나 세례를 받고' 아나니아가 안수해 주자 눈은 떳지만 앞을 못보던 사울은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겨져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일어나 세례를 받았습니다. 이제 사울은 정식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주님의 제자들은 이 역할을 잘 감당해야 합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눈은 떳으나 보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절대로 눈을 덮고 있는 비늘을 벗기지 못합니다. 우리의 손길이 있어야 눈을 덮고 있는 비늘이 벗겨지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눈에서 비늘을 벗겨주는 직분을 잘 감당해야 합니다. 사람들의 눈에 낀 비늘을 벗겨주는 일은 우리의 몫입니다. 우리의 사명입니다. 우리의 일감입니다. 사람들의 눈에 있는 비늘은 우리의 손이 닿아야 벗겨지도록 하나님이 작정하셨습니다. 우리의 손길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눈의 비늘이 벗겨 지기도 하고 안 벗겨지기도 하는 것입니다.
9:19 '음식을 먹으매 강건하여지니라' 우리 기독교는 의식주 문제를 외면하는 종교가 아닙니다. 배고프게 하는 종교가 아닙니다. 의식주를 해결해 주는 종교입니다. 배불리 먹여 주는 축복의 기독교입니다. 삶의 복지를 향상시켜 주는 기독교입니다. 보세요. 눈을 치료받은 사울에게 주님은 무엇부터 해 줍니까. 음식부터 먹여 주지 않습니까. 육의 양식을 먹여 주는 것입니다. 이뿐 아니라 우리 기독교는 영의 양식도 먹여 줍니다. 육의 양식을 먹어도 이렇게 강건한대 영의 양식을 먹으면 얼마나 더 강건하겠습니까. 사울은 육의 양식을 먹고 참으로 강건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육의 양식 뿐 아니라 영의 양식까지 먹여 주셔서 주님께 합당한 그릇으로 쓰임받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사울은 더욱 강건하여 복음을 땅끝까지 전하게 돠었던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육의 양식도 필요하지만 영의 양식이 더 필요함을 알 수 있습니다. 육의 양식을 먹어도 이렇게 강건할진대 주님의 일을 하는데 영의 양식을 먹으면 얼마나 더 강건하여 주님의 일을 하겠습니까. 이것이 바로 아나니아가 할 일이었습니다. 이 일은 이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해야 할 영적인 사명이요 영적인 일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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