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이 이끄는 삶(14)
Day-14. 하나님이 멀게 느껴질 때
☞ 오늘의 성경말씀: 사8:17
“ 이제 야곱 집에 대하여 낯을 가리 우시는 여호와를 나는 기다리며 그를 바라보리라.”
모든 일이 잘 풀리고 행복한 상황이 펼쳐질 때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은 쉽다. 그러나 가장 깊은 경지의 예배는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을 예배하고 시련 속에서도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이다. 모든 관계가 그렇듯이 하나님과의 관계도 가까워지는 시기와 멀어지는 시기가 있으나 그것은 우리의 느낌이지 하나님은 실제로 언제나 우리 곁에 존재하신다. 관계가 성숙하게 하기위해 하나님은 멀어진 것 같은 시기, 즉 하나님이 우리를 떠나시거나 잊으셨다고 생각되는 때를 통해 우리를 시험하신다. 다윗은 종종 하나님의 부재에 불만을 표시하곤 했다. “여호와여 어찌하여 멀리 서시며 어찌하여 환난 때에 숨으시나이까”(시10:1). 물론 하나님은 다윗을 떠난 적이 없다. 결코 떠나거나 버리지 않겠다고 약속하셨지만 “네가 항상 나의 임재를 느낄 것이다”라고 약속한 적은 없다. 하나님이 멀리계신 느낌 때문에 고민하지 말라. 그것은 하나님과 정상적인 관계의 일부일 뿐이다.
그리스도인들이 예배에서 저지르는 가장 흔한 실수는 하나님보다 경험을 더 추구하는 것이다. 예배드리면서 어떠한 느낌을 추구하고 예배를 평가한다. 그러나 예배에서 감정을 추구하는 것은, 그것이 하나님과의 친밀함에 대한 감정일지라도 그것은 예배가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당신의 존재를 느끼기를 원하시지만 그보다는 신뢰하는 것을 더 중히 여기신다. 우리의 상황이 하나님을 느끼지 못할 지경이라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을 원하신다. 우리는 하나님께 우리의 감정을 솔직하게 털어놓고, 상황에 관계없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그분의 성품에 초점을 맞추고, 영적으로 메마른 시기에는 더욱 우리의 감정이 아닌 하나님의 약속을 인내함으로 의지해야하며, 앞으로 아무것도 해 주시지 않는다 하더라도 아들을 주셔서 구원하신 것만이라도 기억하여 감사하고 찬양해야한다. 그 사실 하나만이라도 우리에게는 충분하다. 다시는 무엇에 대해 감사할지 고민하지 말라. |
☞ 생각할 점(오늘 하루 반복해서 생각하고 묵상해보세요)
“내가 어떻게 느끼든 하나님은 실제로 존재하신다.”
☞ 삶으로 떠나는 질문:
1. 처음 믿을 때와 지금, 어느 때가 하나님과 더 친밀했던 것 같습니까? 그것은 정상적일까요?
2. 감동이 없는 예배를 지속해야할까요? 당신은 혹시 느낌을 추구하며 예배하진 않나요?
3. 하나님이 멀리 계신 것처럼 느껴질 때 어떻게 하면 그 분이 계시다는 사실에 초점을 맞출 수 있을까요?
☞ 외울 말씀: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히13:5
“ 하나님이 나를 죽이실 지라도 나는 계속 그를 신뢰할 것이다. ” - 욥 (욥기13:15,CEV)-
하나님이 멀게 느껴질 때 day-14
“ 이제 야곱 집에 대하여 낯을 가리우시는 여호와를
나는 기다리며 그를 바라보리라 ” (사8:17)
우리가 어떻게 느끼던 상관없이 하나님은 실제로 존재하신다. 나의 긍정이나 동의를 요구하지 않는 가장 정확한 진리이다.
그러나 그런 하나님은 느끼는 우리에게는 원근감이 존재한다. 가장 가깝게 나의 삶에서 느끼는 경우도 있지만, 몇 백만 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가까울 때에 그를 예배한다는 것은 쉽다. 그렇지만, 하나님이 멀게만 느껴질 때에 당신은 어떻게 예배하는가?
우리는 가장 수준 높은 예배의 모습을 살피려 한다. 가장 깊은 경지의 예배는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을 예배하고, 시련 속에서도 하나님께 감사하며, 시험을 당할 때에도 하나님을 신뢰하며, 느낌과는 상관없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친구 관계를 시험하는 것은 주로 이별과 침묵이다. 멀어졌을 때에 그들의 우정은 시험을 받는다. 하나님과의 관계성도 마찬가지이다. 멀어졌을 때에 그때가 나의 믿음의 시험이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이러한 시험은 모든 그리스도인이 겪는 시험이라는 것이다.
성요한은 ‘영혼의 어두운 밤’ , 헨리 나우웬은 ‘부재의 사역’, 토저는 ‘밤의 사역’ 등으로 이런 시험을 표현했다. 심지어 성경 속에는 하나님과 가장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였던 다윗에게도 이러한 하나님의 부재를 경험했노라 고백하고 있다.
“ 여호와여 어찌하여 멀리 서시며 어찌하여 환난 때에 숨으시나이까? ” ( 시10:1)
“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니아까 어찌 나를 멀리하여 돕지 아니하옵시며 내 신음하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니이까? ”( 시22:1)
물론 하나님은 다윗을 떠나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그의 신실함을 걸고 약속하셨다.
“ 나는 너를 떠나거나 버리지 않을 것이다. ” ( 신31:8, 시37:28, 요14:16-18, 히13:5)
떠나지 않으시지만, 그에게 하나님을 느끼지 못하게 하실 때는 있다는 것을 우리는 놓치고 있다. 하나님은 결코 “ 네가 나의 임재를 항상 느낄 것이다. ” 라는 약속을 주신 일은 없다.
하나님은 때로는 우리에게서 얼굴을 숨기신다는 (욥23:8-10) 사실을 인정하신다.
이런 일이 나의 문제로 인한 것일 수 있다. 그러나 혹은 나의 어떤 문제로 인한 것이 아닐 수 있다. 오히려 아무 문제도 없는 온전함 가운데 있는 사람에게도 하나님은 시험과 성숙을 위해서 그런 과정을 허락하신다.
고통스럽고 당황스럽지만, 우리의 믿음이 발전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과정이다.
욥을 보라. 그는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순전한고 정직한 정말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하나님의 모습을 감추시고, 오히려 환란을 허락하셨다.
“ 그런데 내가 앞으로 가도 그가 아니 계시고 뒤로 가도 보이지 아니하며 그가 왼편에서 일하시나 내가 만날 수 없고 그가 오른편으로 돌이키시나 뵈올 수 없구나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욥23:8-10)
욥은 그런 시험의 이유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
그를 만드시는 하나님의 시험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그에게서 이루어진 시험은 욥의 성숙과 성장으로 결론 맺어졌다. 그가 아까와 같은 믿음으로 시험을 이겨냈기 때문이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욥42:5)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이것은 필수코스이다. ‘믿음에 대한 시험’ 우리 모두가 겪어야 하는 시험이다. 즉 “ 내가 그분의 임재를 느끼지 못하거나, 내 삶에 그분의 역사하심의 가시적인 증거가 없을 때에도 나는 계속 하나님을 사랑하고 신뢰하며, 하나님께 순종하고, 예배드릴 수 있을까? ” 와 같은 시험인 것이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저지르는 가장 흔한 실수는 하나님보다 경험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 초점되어지지 않고, 내가 느끼는 경험과 감정에 치우친다고 한다면 그것은 올바른 예배의 모습이 될 수 없다.
초신자 때에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보듬어 주시기 위해서 많은 감정의 확신을 주시고, 미성숙하고 자기 중심적인 기도에도 응답해 주신다. 그분의 존재를 알려주시기 위해서 말이다. 그렇지만, 우리의 믿음이 자라면서는 이러한 ‘의존물’로부터 우리를 떼어놓으실 것이다.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는 모습은 감정이 아닌 믿음이다. 그분을 느끼는가? 하는 것보다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모습을 하나님께선 더 중요하게 생각하신다.
이런 시험이 그렇게 쉽지 많은 않을 것이다. 캄캄한 밤에 홀로 들판을 헤메는 것 같은 참담함을 어떻게 쉽게 받아들이겠는가? 삶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이해하지 못하는데 또한 하나님은 침묵하고 계신데 어떻게 예배해야 하는가? 아무런 의사소통이 없는 위기의 때에 어떻게 계속적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가? 눈에 눈물이 가득고여서 어떻게 예수님만 바라볼 수 있는가?
아주 어려운 싸움이다. 그렇지만 우리의 신앙의 선배들은 이런 싸움을 이겨냈다.
욥을 보라. 그는 바닥에 엎드려서 이렇게 말했다.
“ 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며 가로되 내가 모태에서 적신(赤身)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 (욥1:2021)
■ 승리의 요건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1) 나는 그래도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욥은 답답함의 모든 감정을 다 털어놓았다. 의심과 분노, 두려움, 슬픔, 혼란... 그는 하나님께 다 쏱아놓았다. 하나님께선 침묵하셨지만, 욥은 침묵하지 않았다.
관계를 끊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욥의 일방통행이라도 그는 손을 놓지 않고 있다.
그 표현이 분노, 두려움, 슬픔, 의심일지라도 그는 결코 하나님을 놓아버리지 않았다.
이런 이야기가 있다. “ 교회 안에서 고민하라. 그럼 이긴다. 교회 밖에서 고민하면 진다.”
2) 내가 알고 있는 하나님을 기억하라.
욥은 말씀의 사람이었다. 그는 그에게 전해진 진리의 말씀을 가슴에 품고 있는 사람이었다.
“내가 그의 입술의 명령을 어기지 아니하고 일정한 음식보다 그 입의 말씀을 귀히 여겼구나”(욥23:12)
그는 감정으로 하나님을 사귀지 않고, 성경의 진리로서 하나님과 교제했다. 하나님은 불변의 하나님이시다. 감정이 아니라 말씀이 진술하는 것이 진정한 하나님이시다.
그가 말씀의 토대위에 고백하는 것이 무엇인가?
․ 그분은 선하시며 사랑이 많은 하나님이시다. (욥10:12)
․ 그분은 전능하시다. (욥37:5)
․ 그분은 내 삶에 대한 계획을 가지고 계시다. (욥23:14)
․ 그분은 나를 구원하실 것이다. (욥19:25)
그는 말씀위해서 고백한다.
“ 하나님이 나를 죽이실 지라도 나는 계속 그를 신뢰할 것이다. ” (욥13:15,CEV)
3) 이미 나에게 하신 일을 기억하라
오늘의 고통이 나의 과거의 은혜까지 바꿀 수 없다. 하나님께서 이미 베푸신 것 까지 오늘의 고통이 바꿔버릴 수는 없다. 솔직히 우리의 예배의 가장 큰 이유가 무엇인가?
나의 예배의 가장 큰 이유는 오늘의 삶의 친밀함이 이유가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보여주신 놀라운 사랑이 예배의 가장 큰 이유이다.
예수님의 ‘아직 죄인 되었을 때’의 우리를 위해 보여주신 큰 사랑이 예배의 이유이다.
그분의 고통의 흔적... 엄청난 희생 우리는 가끔 너무 익숙하다는 이유로 내 삶의 예배의 가장 근본적인 이유를 잊고 있다.
오늘의 은혜는 옵션이다. 이런 것에 나의 원래의 마음이 흔들려서는 안된다.
“ 그리스도는 죄가 없으셨지만 우리가 하나님과 연합하여 그의 의로움을 함께 나눌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예수님에게 그 죄값을 대신 치르게 하셨다. ” (고후5:21 TE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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