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는 말
중세 교회란 그레고리 1세 교황이 즉위한 590년부터 마르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일으킨
1517년까지 약 1,000년 간을 일컫는다. 종세 교회의 시대는 어거스틴의 [신의 도성]의 이
상이 실현되어가는 듯한 역사이기도 하다. 어거스틴이 신의 도성과 현실적인 교회를 동일시
함은 지상을 천국화해야 할 소임을 암시해 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교회는 지상의 도성을
정복하고 신의 도성 즉,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해야 한다. 이것이 중세시대 교황권과 황제의
권력간의 분쟁의 요인이기도 하다.
중세시대의 동방교회는 이슬람교도의 침입으로 인하여 큰 타격을 입고 기독교의 중심은
서방교회로 쏠리게 되었다.
중세 기독교인들의 종교적 특징은 대개 다음과 같다. 게르만 민족의 우수한 국민성은 중
세 기독교의 장엄한 기풍과 신비를 산출케 하였다. 수많은 성자와 위인들이 나타나서 신앙
의 감화를 끼쳤다. 하지만 교리적으로는 고대개회의 주요한 논의들을 거의 답습하였으므로
큰 발전은 11~13세기까지의 스콜라 철학의 부흥을 제외한다면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중세교회의 심각한 타락에 대한 반동작용으로 수 차례의 부흥운동이 일어났고, 그 중심
은 거의 언제나 수도원에서 일어났다. 당시의 수도원은 학문과 지성의 요람이요, 신학과 교
회제도가 만들어지는 중세 문명의 중심지였다.
16세기 종교개혁은 신학, 특히 성령론에 있어서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이제까지 중세
의 정태적이고 실체롬적인 관심과 제도화된 성령의 역사에 대한 이해는 보다 역동적인 성령
의 역사에 대한 관심으로 변화되었다. 물론 대부분의 종교개혁자들은 고대의 성령론 교리들
을 서방교회의 전통에 따르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관심은 형이상학적인 교리가 아니라 신
자의 삶에서 성령의 역사, 즉 성령의 내적 증거, 성령의 조명, 그리고 칭의, 중생, 회심, 성
화 등에서 성령의 역할에 관한 것이었다.
대개 주류 종교개혁에서 강조된 점은 ‘오직 은혜’, ‘오직 믿음’, ‘오직 성경’, 구속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 등이었고, 따라서 ‘오직 믿음에 의한 칭의’가 강조되었다. 그런데
신앙, 성경의 권위, 칭의 등은 성령의 역사와 불가분의 것이었다. 칭의는 믿음으로 이루어진
다고 하였지만, 신앙이 성령의 선물이 아니라면 그것 역시 인간 자신의 행위와 성취에 불과
한 것이 될 것이요, 그렇게 되면 개혁자들이 그렇게도 싸웠던 것은 헛된 일이 될 것이다.
“믿음에 의한 칭의”는 결국 하나님의 절대 은총을 강조하는 것이요, 은총은 하나님 곧 성령
께서 친히 하시는 일에 달린 것이다. 종교개혁자들은 성령의 역사를 단순히 자연적 인간 이
성과 동일시하거나 성령이 인간 이성의 활동으로 해소되어진다고 보지는 않는다. 성령은 하
나님의 영으로써 지성을 가진 인간의 영을 무한히 초월한다. 그러나 성령은 여전히 인간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 즉 하나님 인식론과 관련되며, 하나님의 신비에 대한 하나의 해석학적
통로로 간주되기도 한다. 성령에 대한 이해의 이러한 경향에서 자주 강조되는 관련 주제는
말씀이다. 그리하여 성경 말씀의 영감과 주어진 외적 말씀에 대한 내적 증거 혹은 조명 ed
이 매우 강조되어졌다.
2001-10-08 2 1세기 신학연구소
중세 신학과 종교 개혁시대의 성령이해 2/8 페이지
2. 중세 신학에서의 성령
중세시대는 교회의 직제가 발달되었기에 성령론은 고대신학에 나타난 성령론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다. 오히려 교황권을 중심으로 교회가 전횡하였던 시대였다. 따라서 중세시대
의 성령이해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신학전통을 따라, 성령은 사랑의 띠로서 성부와 성자를 연
합하는 상호간의 사랑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짙었다.
5세기의 교황 레오 1세는 성령의 온전한 신성을 인정하여, 삼위간의 동등함과 동등하게
영원하심을 가르쳤다. 그는 또한 성령의 이중발원을 지지하기도 하였다.
보에티우스 역시 아우구스티누스의 전통을 따랐다. 그도 성부, 성자, 성령은 한 하나님
이시라고 하였고, 성령은 아버지와 아들로부터 나오신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것을 인간의
마음으로 이해하기는 불가능하다고 시인하였다.
제11차 톨레도회의는 성령이 삼위일체의 제3위격이시며, 한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하였
다. 성령은 또한 아버지와 아들과 함께 동등하시며, 동일본질이시라고 하였다. 성령은 성부
와 성자로부터 나오심으로서, 태어나신 것도 아니요, 창조되신 것도 아니다. 성령은 성부와
성자에게서 보내진 두 분 모두의 영이시다. 성부, 성자, 성령은 한 하나님이시며, 그 존재와
활동에 있어서 나눌 수 없는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그 위격의 특징에 있어서는 다르신 분이
시다. 성부는 태어남이 없이 영원하시고, 성자는 태어남과 함께 영원하시며, 성령은 태어남
없이 나오심을 가지신 영원이시다.
캔터베리의 대주교 안셀무스는 전형적인 서방신학자로서 역시 아우구스티누스의 전통을
따랐다. 성부와 성자는 하나님 안에 있는 두 원리가 아니라 한 원리라고 함으로써 역시 아
우구스티누스의 전통을 따른다. 그러나 그는 아우구스티누스와 달리 성령이 “주로 아버지에
게서 나오신다”는 것도 부정하였다. 그러나 그도 이것은 궁극적으로 신비임을 인정하였다.
중세에 성령론적인 이단설을 유포한 사람은 피요르의 요아킴이다. 그는 중세기 성령운
동의 주창자이며, 삼위일체를 역사의 세 시대와 결부시켜 설명하고, 자기 당대가 바로 성령
의 시대이며, 그 성령의 역사로 온 인류 구원과 교회의 갱신이 일어날 것이라고 믿었다. 그
는 삼위간의 본질적인 구분을 주장하였다. 그는 삼위일체의 모델에 근거를 둔, 강한 종말론
적 경향을 가진 역사에 대한 좀더 사변적인 이해를 발전시켰다. 요아킴은 그의 사후 제4차
라테란공의회에서 정죄되었다.
1215년 서방측에서 열린 제4차 라테란 공의회는 요아침의 삼위론을 정죄하는 한편, 성
령의 이중발원을 주장하였다. 서방측 입장에서는 이것이 필리오쿠에를 주장한 최초의 에큐
메니칼 대회라고 본다.
13세기 스콜라 신학은 프란시스파와 도미니크파의 학자들에게 의해 쌍벽을 이루었따.
프란시스 수도회의 위대한 신학자 알렉산더는 나름대로 새롭게 삼위일체론을 해석하였
다. 그는 유비들을 사용하여 성령의 이중발원을 설명하고 지지하였다. 그의 근본 원칙은
“선은 스스로 퍼진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선의 퍼짐은 두 가지로 나타나는데, 하나님 안에
서는 인격적이고, 피조물에 대한 소통에서는 본질적이라고 한다. 하나님 안에 선의 본래적
영향은 성부에서 성자로, 그리고 성부와 성자로부터 성령에로 퍼진다. 그런데 낳음은 본성
을 주는 것이며, 본성에 의한 이 선의 교통은 낳으심이다. 하나님안에서 선의 두번째 확산
은 나오심인데, 이것은 의지 혹은 사랑에 의한 것이다. 이것은 성령이 성부와 성자로부터
사랑에 의해 나오시는 것이다. 그는 이 완전한 사랑에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세 위격이 있
어야 한다고 한다. “아들의 태어나심이 본성의 양식을 따라서(per modum naturae)인 반면,
2001-10-08 2 1세기 신학연구소
중세 신학과 종교 개혁시대의 성령이해 3/8 페이지
성령의 나오심은 의지의 양식을 따라서(per modum voluntatis)이다. 자연적 질서로 본성이
의지에 앞서듯이 전자의 낳으심이 후자의 나오심에 선행한다”.
도미니크파로서 중세 스콜라 신학의 절정이라고 할 수 있는 토마스 아퀴나스는 아리스
토 텔레서 철학을 방법론적으로 이용하여 신앙을 설명하였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이 한 분
이시라는 것은 자연 이성으로도 알 수 있지만, 삼위일체이심은 이성으로 할 수 없는 문제라
고 하였다. 그는 성자의 태어나심과 성령의 나오심의 차이를 지성과 의지 작용을 유비로 설
명하였다. 그는 하나님 안에 말씀과 사랑 이외에는 다른 나오심이 없다고 한다. 태어나게
하시는 행위는 같은 존재를 생산하는 행위이며, 이것은 지성의 작용이다. 이것이 곧 말씀의
생산이다. 나오게 하는 행위는 의욕을 생산하는 행위이며, 이것은 의지의 작용이다. 이것은
곧 사랑이다. 이렇게 하여 그는 태어나심과 나오심의 성격을 규명하지 않았던 아우구스티누
스와 다마스커스의 요한을 넘어서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설명이 삼위일체 하나님의 내적인
삶의 실체를 그대로 보여 준다고 인정하기에는 근거가 빈약해 보인다.
중세 서방교회의 성령론은 대체로 아우구스티누스가 주장한 방향, 즉 성령을 성부와 성
자의 연합의 띠로 보는 방향으로 나가므로 성령의 이중발원을 지지할 수밖에 없었다.
3. Filioque 논쟁
필리오쿠에 논쟁은 스페인을 중심1으로 해서 일어났다가 서방교회가 전반적으로 받아들
인 내용이었다.
동방교회와 서방교회는 각자의 접근방식과 사고방식의 차이에 따라 삼위일체론에 대한
이해의 차이가 드러났다. 특히 이 시기 성령론의 주요 쟁점은 성령의 발원에 관한 것이었다.
필리오쿠에란 ‘아들’(Filius)와 “그리고’(que)이라는 말로서 문제는 이 한마디의 말을 교회의
에큐메니칼 신조에 첨가할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동방 측과의 격렬한 논쟁이 발발하게 된
것은 809년 아아헨회의에서 샤룰마뉴대제가 이것을 동서방이 공히 받아들이고 있던 에큐메
니칼 신조인 니케아 신조에 삽입하려고 노력함으로써 발발하게 되었다. 교황 레오 3세는 삽
입을 반대하였지만 마지못해 인정하였다.
이렇게 논쟁이 이어지다가 1014년에 이르러 서방측의 교황 베네딕트 8세는 공식적으로
필리오쿠에를 신조에 삽입할 것을 인정하였다. 이것은 동서 관계에 치명적이었고, 동서 교
회는 분열되고 말았다. 서방축에서는 안셀름이라든지 페트루스 롬바르투스 등은 계속 필리
오쿠에를 지지하는 이론들을 발전시켜 나갔다. 그러다가 제4차 라테란 공으회에서 페트루스
의 견해를 따라 삼위일체와 성령론을 확정지었으며, 드디어 필리오쿠에를 에큐메니칼 신조
에 삽입하기로 결정을 하였던 것이다.
반명 동방교회측은 삼위일체를 이해함에 있어서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였다. 그들은 일
1 스페인과 이태리의 북부를 점령하고 있었던 고트족의 신앙인 아리우스주의적인 기독교에
대응하려는 의도에서였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 즉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 되심과 성
부와의 동일 본질성을 강조하려는 데서 기인했다. 그런데 라틴교회는 이 아리우스적 기독교
에 반대하여 아타나시우스신조-아리우스주의자들은 카톨릭 사람들을 아타나시우스주의자들
이라고 부른다-를 찬성했는데, 이 신조는 필리오쿠에를 포함하고 있었다. 따라서 서방교회
는 이 신조와 니케아 신조를 일치시키려고 그것을 제3조항에 삽입시켰다. 이것이 결정된 것
은 589년 스페인의 톨레도였는데, 이는 비시고트족이 아리안주의에서 카톨릭주의로 개종한
사실을 상징한다.
2001-10-08 2 1세기 신학연구소
중세 신학과 종교 개혁시대의 성령이해 4/8 페이지
단 독자적인 세 위격의 존재를 인정하는데서 출발하였으므로, 서방처럼 성자와 성령을 구분
하기 위한 특별한 논리적 해명, ‘반대적 원천관계’ 같은 개념이 필요하지 않았다.
4. 종교개혁시대의 성령
A. 루터의 성령이해
루터에 의하면 인간은 타락한 죄인이며, 그 의지는 죄에 매인 노예의지의 상태에 있다.
따라서 인간은 결코 자기 스스로의 힘으로 의롭게 되지 못한다. 인간은 자기의 의가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의 의에 의해서만 의로워진다. 인간 외부로부터 오는 ‘그리스도의 낯선 의’가
우리에게 전가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중세교회를 가르쳤던 ‘은총의 주입’과
는 전적으로 다른 것이었다. 우리는 은혜의 주입에 따라 의화(儀化)되는 것이 아니라, 의의
전가에 따라 칭의 되는 것이다. 이것은 재판관이신 하나님의 은혜로우신 선언으로서 일종의
법정적 개념으로 이해되었다. 이 칭의는 믿음으로 받아들이며, 믿음과 함께 일어나는 사건
이다. 믿는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알고 인정하는 것이다.
루터에게 있어서 믿음은 결국 성령의 선물이므로, 칭의를 실제로 이루시는 이는 성령이시다.
그러나 성령은 홀로 역사하시지 않고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임재케 하시고 우리를 그리스도
와 연합케 하신다. 그럴 때에 그리스도의 의는 우리의 것이 된다. 또한 성자는 성부를 임재
케 하심으로써 결국 삼위일체 하나님이 우리 안에 임재하시게 된다.
그의 초기의 사상을 지배한 문제는 율법과 복음의 관계에 관한 것이었다. 옛 사람이 율
법에 의해서 죽고 복음에 의해서 살게 됨을 느꼈다. 이러한 일을 하는 이가 곧 성령이었다.
신앙생활은 그리스도의 존재가 현실화될 때에 가능하다. 그 일은 성령이 해준다. 성령은 신
앙을 창조하고 우리를 그리스도와 결합케 하며 그리스도의 의에 의해서 우리가 의롭게 되도
록 한다. 이러한 일을 하는 것이 곧 성령이라고 루터는 주장한다.
루터는 성령을 삶의 절대적 주라고도 한다. 그러나 그 성령의 사역은 반드시 두 가지
외형적인 표징을 통해서 온다. 그 두 가지 표징이란 말씀과 예전에서 사용되는 떡과 포도주
이다. 말씀은 주로 설교와 성경을 의미한다. 성령은 이 두 가지 표징을 통하지 않고 구속적
사역을 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성령은 우리를 위한 구속 사역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동반자
이다. 성령이 하는 일은 그리스도가 실제로 우리와 하나가 되게 하며, 의인이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어지도록 한다. 이와 같이 성령은 그리스도에 의해서 이룩된 의인과 성
화를 우리에게 연결시켜 주는 역할을 한다.
루터는 성령이 오직 이러한 외적인 매개체들을 통해 역사하신다고 보았다.
B. 칼빈의 성령이해
루터의 성령론이 칭의론과 거기에 결부되는 신앙에 집중되어 있다면, 칼빈의 성령론은
보다 광번위하게 성령이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해 가지는 함축적인 관계들을 다양하게 취급
하고 있다.
칼빈의 성령론은 [기독교 강요] 제1권에서 성령의 내적 증거에 대해서, 그리고 제3권
“은혜의 수단들”에서 성령의 사역의 중요성을 다루고 있지만, 그러나 그것은 하나의 독립된
주제로 다루어진 것이 아니라 [기독교 강요]의 거의 모든 주제와 연관되어 있는 포괄적인
주제이다. 그러므로 그의 성령론의 내용을 한마디로 표현하거나 특성화하기는 어렵다. 따라
서 종교개혁 당시의 로마 카톨릭과 급진 종교개혁자들 사이의 중도에서 성령론을 당시의 로
2001-10-08 2 1세기 신학연구소
중세 신학과 종교 개혁시대의 성령이해 5/8 페이지
마 카톨릭과 급진 종교개혁자들 사이의 중도에서 성령론을 정립하면서도 루터나 쯔빙글리보
다는 휠씬 더 포괄적으로 취급하였다.
칼빈은 성령이 단순한 신적 능력이 아니라 삼위일체의 제위임을 강조하고, 성령께서 창
조와 우주 질서를 유지하시며, 모든 사람에게 공통적인 일반 은총의 근원이라고 언급하고
있으나, 그의 성령에 대한 언급은 주로 교회와 관련하여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므로 칼빈은
성령의 역사의 우주적 사역, 인간 사회의 일반 은총의 사역을 언급함에도 불구하고 교회와
관련된 측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성령의 우주적 구원 사역을 주장하는 핸
드리쿠스 벌코프나 몰트만의 성령론과는 다르다.
칼빈의 성령론은 당시 새로운 교리를 정립하면서 어디에 최고의 권위를 둘 것이냐 하는
문제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로마 카톨릭은 교회가 성경을 결정했다는 입장이었고, 재
세례파는 성경과 분리된 성령의 새로운 계시를 내세우고 있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칼빈은
성령의 영감으로 기록된 성경은 객관적인 권위를 가지고 있으며, 객관적으로 기록된 성경은
셩령의 내적 증언으로 우리에게 주관적으로 인식되는데, 이 주관적 인식의 내용은 신앙 안
에서 믿게 되는 예수 그리스도이다. 여기서 로마 카톨릭의 견해와 재세례파의 견해를 극복
하고 최고의 권위로서 성령으로 영감된 성경의 권위를 확립하면서, 동시에 성령을 통한 그
리스도의 구원의 확신을 정립하게 된다.
칼빈은 성경이 객관적으로 분명한 진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명확하게 제시한다. 성경
은 성령의 내적 증언에 의해 우리에게 인식되기 전에 이미 자체적으로 진리의 분명한 증거
를 지니고 있다. 단지 우리들이 인식하지 못할 뿐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먼 눈을 열어 성경
이 이미 가지고 있는 진리의 분명한 증거를 인식하기 위해서는 성령의 내적 증거가 필요하
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확신은 논쟁을 통해서 세워질 수 없고 오직 성령의 은밀한
증거에 의해서만 세워질 수 있다. 칼빈은 성경의 객관적 권위가 성령의 내적 증언을 통하여
주관적으로 확립된다고 보았다.
재세례파의 성경과 분리된 성령의 역사의 주장에 반대하여, 칼빈은 성경과 성령의 연합
을 주장하였다. 우리에게 약속된 성령의 직분은 새로운 교리를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복
음이 명령하는 그 교리를 우리 마음에 인치는 것이다. 말씀과 성령의 통일성에 대한 이러한
가르침은 구원에 대한 성령의 증거와 연결된다. 말씀만 강조하고 성령의 역사를 무시하는
것이나, 성령만 강조하고 말씀만 무시하는 것도 위험하다고 본다.
칼빈은 성령을 통하여 우리 밖에 있는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있는 그리스도가 되며,
그 이후에 우리는 중생, 믿음, 칭의, 성화, 영화의 길을 가게 된다고 한다. 교회의 성직자들
의 사명도 성령에 의해 주어지고, 교회의 설교와 성례도 성령의 역사로 결심을 맺게 된다.
칼비은 성령의 사역을 매우 중시했으며, 그 사역은 특히 세 가지 영역에서 나타난다고
한다. 성경과 신자들의 생활과 성례전이다. 이렇게 볼 때 칼빈은 루터나 다른 어느 종교개
혁자보다 성령의 사역을 중요시하는 동시에 그 점을 강조했다고 보여진다.
1. 성령의 내적 증거
종교 개혁자 칼빈은 성령의 역사를 매우 강하게 주장하였다. 성령은 마치 그리스도가 하
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보자인 것과 같이, 그리스도와 인간 사이에 있어서 필수적인 중보자
역할을 한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가 구속을 위한 필요 수단인 것과 마찬가지로, 성령은 칭
의와 중생을 통하여 그러한 구속을 얻기 위한 필요 수단이 된다.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향
하도록 하고 그분의 은혜를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성령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며
2001-10-08 2 1세기 신학연구소
중세 신학과 종교 개혁시대의 성령이해 6/8 페이지
우리에게 믿음을 주신다.
칼빈은 성령의 내적증거에 대하여 논하는데, 기록된 말씀과 이에 기초한 설교 말씀을 외
적인 것으로 볼 때, ‘내적’이란 그와는 상대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칼빈은 ‘하나님이 친히 이
성경을 통하여 말씀하신다’고 할 때, 성령의 사역이 동반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이 성경
에서 말씀하시는 것을 전혀 이해할 수 없다고 한다.
“성령의 증거는 모든 이성보다 탁월하다. 하나님만이 그의 말씀 안에서 자기 자신에 대한
적합한 증거자이신 한, 이 말씀은 성령의 내적 증거에 의해서 각인되지 않고는 인간의 마음
속에 수용될 수 없다. 예언자들의 입을 통해서 말씀하시던 동일한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 속
까지 뚫고 들어와 이 예언자들이 과연 하나님이 말씀하시고 명하신 바를 충실하게 선포하
셨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확신시킨다”.(기독교 강요 1권 7:4)
이처럼 칼빈에게 있어서 성령의 내적 증거로는 로마카톨릭의 교황 무오설이나 교황권에
의한 교리 전승 및 그 어떤 교회의 규범이나 권위보다도 힘이 있으며 이성의 증거를 훨씬
능거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칼빈이 성령의 내적 증거를 참 신앙의 기반과 보증으로서 크게
강조한 일은 이후 청교도, 웨슬리를 포함한 전체 개신교 성령 운동사에 크게 각인되는 ‘성
령의 내적 증거’의 모티브를 유산으로 남겨 주었다.
2. 그리스도와의 연합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영적인 생활로 나아가기 위한 필연적 조건이다. 그리스도와의 연합
을 통하여 우리는 주님의 생명과 성령에의 참여자가 될 수 있으며, 이러한 연합 자체는 오
직 믿음에 의해서만 얻을 수 있다. 이 말은 인간의 본성이 이 연합을 위하여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한다는 말과도 같다.
“주 예수께서 그분의 성령을 통하여 우리에게 은사를 전하여 주심으로써 우리가 그 분,
즉 그분의 몸과 영혼과 하나가 된 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그 몸에 참여하는 것이 실제로 필
요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연합의 띠는 성령이시다. 성령이 우리를 함께 결속시켜
주면, 마치 도관과도 같이 모든 그리스도의 실재 및 그리스도가 지닌 것들을 우리에게 전하
여 준다.”(기독교강요 4권 7:12)
그러므로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일으키는 움직임이 시작될 수 있는 곳은 인간으로부터가
아니며, 성령을 통하여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는 그리스도로부터이다. 그리스도와 성만찬에
참여하는 자들 간의 연합은 우리로 하여금 오직 성령의 역사하심으로써만 그리스도와의 연
합이 무엇인지를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이와 같은 칼빈의 ‘그리스도와의 연합’ 모티브는 곧바로 청교도들에게 직결되었다. 청교도
사상에 있어서의 성령론은 전적으로 칼빈주의적 기반을 지니고 있다. 즉 성화는 신자의 그
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해서 주어지는데, 성령께서는 신자들로 하여금 성화의 길을 추구해 갈
수 있도록 힘을 주신다.
1875년에 케직에서 시작된 성결 운동도 역시 개혁주의 전통의 빛 안에서 신자의 그리스
도와의 연합을 강조하였다. 승리와 거룩한 삶의 비결은 내주하시는 그리스도께 대한 교제와
복종에 있다. 성화의 과정은 하나의 진보적 경험이라고 이해함으로써, ‘더 높은 그리스도인
의 삶’에서 강조하는 제2차적 축복을 개혁주의적인 성화론과 조화시키려 하였다. 이 같은
케직의 성결론은 피어슨, 허드슨 테일러, 마이어(F.B.Meyer) 같은 유명한 사역자들에게 영
향을 끼치면서 전 세계로 번져갔다.
A.B.Simpson도 역시 주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여 구원자, 성결케 하는 자, 치료자,
2001-10-08 2 1세기 신학연구소
중세 신학과 종교 개혁시대의 성령이해 7/8 페이지
다시 오실 왕으로 보는 사중복음을 발전시켰다. 그는 순간적 헌신 또는 철저한 복종을 통해
예수의 인격적 내주를 가져옴을 시사하는 용어들을 많이 사용하였다.
칼빈의 ‘그리스도와의 연합’ 모티브는 모든 복음적인 성령 운동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게
강조되어 온 내용이다. 이는 신앙의 근본이 그리스도에게서 말미암으며 목표가 그리스도와
하나 되는 일에 있기에 더욱 그러하다.
3. 성화시키는 능력
믿음에 의해 우리가 그리스도와 만나게 되고 그의 몸에 접붙임을 받게 되는 순간부터, 그
리스도는 우리 안에 거하시며, 또 우리는 그분의 성령에 의해 살게 된다. 이 같은 중생에는
두 가지 차원이 있는데, 그것은 옛 사람에 대한 억제와 새로운 삶에의 참예이다. 이 두 가
지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으로부터 직접 비롯되어 중생의 최후 목적인 본래의 모습대로 하나
님의 형상을 소생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가 과거에 죄인 되었던 상태에서 이제 실재로 거룩한 자로 바뀌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점차 성화되어가는 과정에 있다 할지라도 여전히 죄인다.
그러므로 성화는 우리가 아직 실제적인 의와는 사실상 상당히 먼 거리에 있다는 사실을 인
식하는데 달려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중생을 통하여 죄의 굴레로부터 해방된다. 그러므로 그들은 이미 완
전한 자유를 지녔기 때문에 육신과 투쟁할 필요가 없으며, 오히려 이러한 사실이 그들을 계
속적으로 시험받게 하는 영원한 전쟁터에 남아 있게 하여 그들을 단련시킬 뿐만 아니라, 그
들로 하여금 그들의 나약함을 깨닫게 하여 줄 수 있다.”(기독교강요 3권 3:10)
그러나 중생한 자의 삶이 반드시 금욕이라는 회개의 소극적 측면에 의해서만 얻어지는 것
은 아니다. 비록 신자가 이 땅에서 계속 죄인으로 머물러 있고 저 세상에서야 비로소 자신
의 성화를 완성한다 할지라도, 우리가 그리스도와 연합하게 될 때 결국 승리의 확신을 갖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선택하신 사람들에게 선한 삶을 살 수 있는 능력을 부여함으로
써 그들을 소생시키시고 의롭게 여기신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시는 선택
의 은사는 불가항력적인 것이며, 이 은사는 또한 그들로 하여금 죄와 효과적으로 싸우고 거
룩한 길로 나아가게 하는 견인의 은사를 수반한다.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우리의 심령을 단련하시고 설득하시고 온건하게 하시며 자
신의 기업으로 주관하신다. 또한 에스겔에 의하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자신의 가르침을 좇
아 행하도록 자신의 선택에 새로운 심령을 부여하시기로 약속하실 뿐만 아니라, 그들이 실
제로 그 가르침 안에서 행하도록 약속하신다.”(기독교강요 3권 3:10)
이처럼 칼빈의 ‘성화시키는 능력’ 모티브는 청교도들의 성령론에 의해서 구체화되었으며,
더 나아가서는 더욱 정교하게 다듬어지는 웨슬리 성령론의 기본 골격을 이루게 된다. 다만
죄와 성화의 교리에 있어서 둘 사이의 근본적인 차이점은 통시적으로 표현한 데 반해, 웨슬
리는 각각 이분법을 적용하였다는 점이다.2
2 웨슬리는 죄를 고범죄와 허물로 구분하여, 고범죄는 현세에서 성령의 능력에 의해 완전히
제거될 수 있는 것으로 가르쳤다. 또 이와 연관지어 성화에 대해서도 칼빈과는 달리 순간적
체험의 단계를 구분하였다. 만일 웨슬리에게서 이분법을 일렬 배치한다면 필경 칼빈 또는
청교도들의 성령론과 유사해질 것이다.
2001-10-08 2 1세기 신학연구소
중세 신학과 종교 개혁시대의 성령이해 8/8 페이지
5. 나가는 말
중세 기독교 영성가들이 추구했던 다양한 영성의 길은 자칫 무미 건조해지기 쉬운 현대인
들의 영성 생활에 경종을 울려주고 있다. ‘이신칭의’의 값진 은헤에 걸맞는 영성 훈련의 과
정에 참여하는 일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필수적인 영적 의무일것이다. 이런 점
에서 중세 기독교의 여러 영성 지침들은 우리에게 응용할 수 있는 많은 자료를 제공하고 있
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중세 기독교의 영성은 에로스 모티프(eros motif)의 구원관, 즉 인간
의 자력적인 공로에 의한 헛된 구원관과 이원론적 금욕주의에 기초한 영성으로, 참된 복음
적 영성과는 거리가 있다.
성경에 나타난 복음적 영성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아가페 모티프(agape motif)
의 사랑에 기초한 것으로서, 그 정의는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좇아 하나님과
의 연합을 추구하는 삶’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진정한 영성의 진보는, 하나님께 대한
전적인 헌신과 복종을 통해, 성령의 충만한 지배 속에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엡4:13)이르도록 경주하는 삶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앞서 보았듯이 루터는 은총의 수단들이 성령의 사역에 결부됨을 주장하였다. 이 점에서
루터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전통을 따랐다고 할 수 있다. 그에 의하면 “모든 사람은 그가 이
것이 복음이라고 하는 성령의 증거를 자기 인격 안에 가질 때, 복음에 대하여 확신할 수 있
다”고 하였다3.
루터에 의하면 ‘성령의 내적 증거’는 오직 성경에 주어진 말씀에 대한 증거이다.
칼빈에게 있어서 성령의 역할을 하늘과 땅, 그리고 그리스도와 교회 사이의 거리를 연
결시키는 성 삼위(聖三位)의 셋째 품격으로 보았다. 성령은 먼 거리에 떨어져 있는 것들을
연결시켜준다. 그리고 성령은 그리스도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전달시켜 주는 매개(媒介)이
다. 십자가 위에서의 그리스도의 공덕과 희생의 효과는 성령의 능력에 의해서 신자들에게
임재하며 실제적으로 전달된다고 보았다.
또한 성령은 자연히 믿는 자들 안에서만 역사하는 것이므로, 그는 그리스도의 몸이 그
것을 합당치 않게 받는 자들에게도 주어진다고 하는 루터파의 가르침을 부정하기에 이르렀
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이 세상의 썩어질 물질에 예속시켜 나타내는 것은 하늘의 영광을
손상시키는 일이다. 그리스도의 몸이 편재(偏在)한다는 개념은 단호히 거부되었다. 칼빈의
기독론에 있어서는 그리스도의 인간적 본성이 그의 신적 속성에 참여한다는 개념은 용납될
여지가 없었다
3 루터의 사상을 연구한 대다수의 교리사가들은 루터가 너무나도 성령의 사역을 경시한 것
에 놀라고 있다. 그러나 최근에 레긴 프렌터의 연구에 의하면 루터의 중심 주제인 칭의론,
신앙론 등이 철저히 성령 자신의 역사에 관련되어 있음을 밝혀 내고 있다. 프렌터는 루터가
생동적인 기독론 및 구원론과 연결될 수 있는 성령론에 적절한 주의와 무게를 두었다는 것
을 보이려고 하였다. 루터는 성령의 역사에 구원론적으로 접근하였으며, 성령의 역사의 중
심적 가치를 주장했다고 하였다. 그러나 루터가 항상 성령에 대해 명백히 말하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다른 학자들이 루터에게서 프렌터처럼 성령의 중요성을 쉽게 발견하지 못한 것도
이해가 가는 일이다. 그러나 루터가 종종 함축적으로 성령의 역사를 말하는 것도 또한 사실
이다. 특히 그의 요리문답서에서 성령이 그리스도와 동역하는 중요한 역할을 분명히 하였다
서영석목사 갓피플자료 |
'세계 교회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중세교회/이슬람의 정복과 십자군 (0) | 2013.08.21 |
---|---|
[스크랩] 중세교회사 (0) | 2013.08.21 |
[스크랩] 종교개혁 (그리스도교) [宗敎改革, Reformation] (0) | 2013.08.21 |
[스크랩] 영국의 종교개혁가 (0) | 2013.08.21 |
[스크랩] 기독교의 시작 (0) | 2013.08.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