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의 종교개혁가 |
이름 |
연도 |
출신 학교 |
주요 사실 |
요한 오에콜람파디우스 |
- 1482
-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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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볼로냐
- 하이델베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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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률과 신학을 공부한 후 유명한 문헌학자가 되었으며 에라스무스, 루터, 멜랑흐톤의 영향 아래 바젤에서 종교새혁을 일으켰다.
- 마르부르크회담에 참여하였고 쯔빙글리와 깊은 유대를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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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욤 파렐 |
- 1489
- -15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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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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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크 르페브르에게 공부한 후 프랑스에서 추방당하였으며 이후 그는 스위스에서 순회 선교사로 활동하였다.
- 베른과 제네바를 종교개혁의 도시로 만드는 데에 기여했으며 제네바 개혁교회에서 칼빈이 활약하도록 주선하였고 말년에 뉴샤텔에서 생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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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틴 부처 |
- 1491
-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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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이델베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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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교개혁의 교회화해론자로 불리며 도미니코 수도사로서 에라스무스에게 인문주의를 체득했으며 루터의 종교개혁 이후 루터주의자였으나 칼빈의 영향도 받아서 스트라스부르크개혁을 주도하였다.
- 기회가 닿는대로 루터파, 개혁파, 그리고 가톨릭과의 화해를 시도하였으며 토마스 크랜머의 초청으로 캠브리지대학에서 가르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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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인리히 불링거 |
- 1504
- -15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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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꼴로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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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라스무스, 루터, 멜랑흐톤에게 영향을 받았으며 쮜리히의 쯔빙글리의 후계자로 제 1,2차 쯔빙글리파 신앙고백문 작성에 많은 도움을 주었고 장교파는 반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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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오도르 베자 |
- 1519
-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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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를레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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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률학도로서 1548년 심한 질병 후 프로테스탄트로 개종하였으며 제네바와 로잔에서 그리스어를 강의하였고 제네바 아카데미의 원장이 되었다.
- 포이시회담에서 프로테스탄트 개혁파를 옹호하였으며 제네바 종교지도자인 칼빈의 후계자로서 베자 사본을 발견하였으며 프랑스 위그노들의 자문역할을 담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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