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1-7(사모할 만한 직무)
성경본문 디모데전서 3:1-7
1. 미쁘다 이 말이여, 사람이 감독의 직분을 얻으려하면 선한 일을 사모한다 함이로다
2. 그러므로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절제하며 근신하며 아담하며 나그네를 대접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3.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오직 관용하며 다투지 아니하며 돈을 사랑치 아니하며
4. 자기 집을 잘 다스려 자녀들로 모든 단정함으로 복종케 하는 자라야 할찌며 5. (사람이 자기 집을 다스릴줄 알지 못하면 어찌 하나님의 교회를 돌아 보리요) 6. 새로 입교한 자도 말찌니 교만하여져서 마귀를 정죄하는 그 정죄에 빠질까 함이요
7. 또한 외인에게서도 선한 증거를 얻은 자라야 할찌니 비방과 마귀의 올무에 빠질까 염려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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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 처| 정근두목사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동안 살펴오던 누가복음 본문에서 잠시 떠나 디모데 전서 3장에서 하나님께서는 어떤 직분자를 교회에 세우시기를 원하시는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오늘 5월 첫 주일까지 장로, 집사, 권사 선출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울산교회는 대개 3년을 주기로 항존직 직분자들을 세워왔습니다. 이번에는 장로 15인, 집사 40인, 그리고 권사 50인을 세우길 원합니다. 그래서 이번 주일은 장로의 직무, 그 자격을 살피고 다음 주일에는 집사, 그리고 그 다음 주일에는 권사의 자격을 각각 살펴보려고 합니다.
그리하여 4월 마지막 주일에 있을 후보자 선정투표와 5월 첫 주에 있을 직분자 선출투표를 위한 성경이 말하는 지침을 드리려고 합니다. 5월 달에 세울 직분자들 문제를 왜 지금부터 다루냐고요?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4월에는 종려주일, 부활주일 등 절기가 있기에 미리부터 다룰 필요가 있습니다.
이는 3년마다, 교회에 반드시 있어야 하는 직분자들을 세우는 관습뿐 아니라 요즈음 우리 울산교회의 형편상 새로운 직분자들이 더욱 필요합니다. 3년째 출석교인들이 매년 100 여 명씩 늘어나는 상황이 또한 그들을 섬길 새로운 직분자들을 세울 필요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2009년도 우리 교회 주일 오전 평균 출석이 2289명이었습니다. 작년에는 전년도보다 평균 111명 늘어난 2400명이었습니다. 올 들어서도 작년에 이어 주일 출석수가 꾸준히 늘고 있어 감사합니다. 올 들어서는 울산교회 역사상 월평균 2500명을 처음으로 넘어섰습니다.
지난 1월 한 달 평균이 2497명이었고, 2월 달에는 설날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2501명으로 울산교회 역사상 월평균 2500명을 처음으로 넘어섰다. 3월에도 이런 현상이 지속되어서 첫 주에 2554명 지난주에는 2549명이 와서, 올 해 전체 평균 출석이 2510명에 이르게 되어, 현재까지는 작년보다 평균 110명이 더 나오고 있습니다. 물론 지난 해 초에도 두 주일 2600명을 넘은 적이 있습니다만 평균 출석이 이렇게 많아진 적은 없기 때문입니다.
올해 직분자 선출 숫자에 있어서 특기할만한 점은 장립집사 수효보다 권사 수효를 더 많이 책정한 것입니다. 물론 남자 성도와 여자 성도 비율을 생각하면 권사님들을 더 많이 뽑아야 맞을 것도 같지만, 그래도 장립집사보다 권사를 더 많이 뽑자고 결정을 한 것만으로도 여성도들의 역할의 중요성을 교회가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라 여겨집니다.
이번 직분자 선출 준비에서 크게 두 가지 점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는 신앙과 인격 면에서 잘 훈련되고 헌신된 일군들을 세우자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적 기준을 우리가 다시 살펴야 할 것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교회이기에 하나님의 기준을 꼭 살필 의무가 있습니다. 그러면 오늘부터 차례로 직분에 따라서 살펴보겠습니다.
오늘 읽은 본문은 감독의 직분에 대해서 말합니다. 감독이란 오늘 우리가 쓰는 용어를 따라 정의하면 목사와 장로에 해당하는 직분입니다. 본문 디모데 전서 3장의 감독은 오늘 우리의 용어로 이해하면 목사직, 그리고 장로직에 해당합니다. 사실 목사도 장로입니다.
감독 즉 장로는 두 부류가 있습니다.
가르치는 일과 다스리는 일을 둘 다 하는 장로와 다스리는 일을 하는 장로가 있습니다. 가르치는 일과 다스리는 일을 둘 다 하는 장로를 오늘날 우리는 목사라고 부르고 다스리는 일을 하는 장로를 우리는 우리 장로교에서는 그냥 장로라고 부릅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에 나오는 감독의 자격을 살필 때 우리는 이 사실을 마음에 두고 살필 필요가 있습니다. 어떤 자격은 목사와 장로 둘 다 해당하고 어떤 자격은 목사에게 더 해당하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배경을 같고 본문을 살피도록 합시다.
오늘 본문에는 사도 바울의 감탄사가 맨 처음 등장합니다.
“미쁘다 이 말이여!”
바울은 목회 서신에서 다섯 번 이와 같은 감탄을 발하고 있습니다. 감격적인 진리에 접할 때마다 그는 흥분하고 있습니다. 다른 네 번은 읽은 사람들이 쉽게 공감할 수 있는데 비해 오늘 본문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갸우뚱합니다.
왜 그처럼 흥분하고 감격하는지 바로 이해가 되지 않는 표정을 짓곤 합니다. “미쁘다 이 말이여, 곧 사람이 감독의 직분을 얻으려함은 선한 일을 사모하는 것이라 함이로다” “사람이 감독의 직분을 얻으려 하면 선한 일을 사모한다고 한 그 말이 참되도다!”라고 바울은 감탄하는데 오늘 우리는 왜 바울이 그처럼 감격하는지 이해를 못합니다. 그 이유는 사도 바울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누구입니까?
그는 무엇보다도 전도자요 선교사입니다. 그가 전한 복음을 믿고 믿음 안에 성숙한 자들을 선택해서 교회의 일꾼으로 세우게 되는 것은 그를 흥분시킬만 했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려본 농부는 기쁨으로 수확하는 감격을 남달리 갖는 것은 너무 당연합니다.
우상을 버리고 사시고 참되신 하나님께로 돌아온 신자를 얻는 것도 기쁜 일이지만 이제 그들이 믿음 안에 성숙되어서 다른 신자를 섬길 수 있는 직분자가 된다는 것은 복음을 전하는 사도 바울에게는 특별한 감격의 순간이었을 것입니다. 아들딸을 처음 낳는 일도 기쁜 일이지만 자라서 결혼을 하는 것을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에는 각별한 감격이 있는 것과 같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디모데전서 3장은 그런 면에서 바울에게는 각별한 기쁨의 장임에 틀림없습니다. 장로를 세우고 집사를 세우는 지침을 제시하는 것은 그에게는 딱딱한 행정적인 절차가 아닙니다. 그는 오히려 장성한 자녀를 위한 결혼 물품 목록을 들고 준비시키는 부모와 같은 보람을 느낄 것입니다. 도덕적으로 영적으로 구비된 자들을 세워서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의 임무를 맡긴다는 생각은 그를 감격시키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그 교회가 어떤 교회입니까?
오늘 본문 5절은 “하나님의 교회”라고 밝힙니다. 바울은 한 지역 교회를 일컬어 “하나님의 교회”라고 부르기를 서슴치 않습니다. 행전의 기록을 보면 이 에베소 교회를 가리켜서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라고 합니다.
디모데전서 3장의 끝에 나오는 찬송의 표현을 빌리면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시고. . . 영광 가운데서 올리우신” 예수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사역자를 선출하는 일은 복음을 위해서 생애를 드리고 있는 사도의 입장에서 감격하고도 남을 일임에 틀림없습니다.
사도 바울 뿐 아니라 “육신으로 나타나신 바 되시고 . . . 영광 가운데 올리우신” 그 분을 구주와 주로 고백하는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동일한 감격의 기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 감격을 가지고 여러분은 5월 첫 주일 공동의회를 기다리십시오. 어떤 분이 주의 뜻에 합한 - 달리 말해 성경적 기준에 부합한 자인지 살펴보면서 누구를 선택할 것인지 기도하는 마음으로 결정하시기를 바랍니다.
“사람이 감독의 직분을 얻으려함은 선한 일을 사모하는 것이라 함이로다” 본문의 감독이란 말은 오늘 우리가 부르는 대로 하면 목사와 장로를 모두 가리키는 말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감독이라는 말을 우리 장로교에서는 거의 사용하지 않지만 장로교에서 사용하는 장로라는 말은 서로 같은 말입니다.
다만 장로라고 할 때는 어른이란 뜻이고 단순히 나이든 어른이란 의미보다는 성숙한 영적 경험과 지혜를 강조하는 말입니다. 그러나 감독이나 목사라고 할 때는 그가 하게 될 일의 성격을 보여주는 말입니다. 감독과 목사가 양떼들을 보살피고 가르치는 일을 강조합니다.
하여간 “사람이 장로의 직분을 원한다면 선한 일을 사모해야 한다!”고 합니다. 목사나 장로의 직분을 원하는 자는 왜 선한 일을 사모하는 자라는 말을 감격적으로 수용할까요? 직분 자체가 사모할만한 것임에 틀림이 없습니다만 당시 상황에 비춰보면 더욱 그 의미를 알 수 있습니다.
당시와는 달리 요즈음은 서로 장로가 되고 싶은 분위기가 교회 안에 번져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당시는 교회의 지도자가 되는 것은 문자적으로 희생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었던 것을 잊지 마십시오. 핍박과 어려움이 유대인과 이방인 가리지 않고 그들에게 있었습니다. 거짓 교사들이 어린 성도들을 위협한 불안정한 형편입니다.
하긴 요즈음이라고 장로 된다고 월급 받는 것은 아닙니다만 당시는 받기는커녕 가진 모든 것을 포기할 각오를 해야만 이 직분을 맡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장로의 직분을 맡으려는 사람들을 감탄사로서 격려합니다.
그들은 “선한 일을 사모하는 사람에 틀림없다”고 말합니다. 돈벌이가 되는 것도 아니고 생명이 보장되는 것도 아닌 일에 자신을 드리는 것은 그 직무의 고상함을 알기 때문입니다. 장로는 선한 일에 마음이 있는 선한 사람이요, 동시에 선한 행동을 사랑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누구나 장로의 직분이 사모할만한 직분임을 알아야 합니다. 불멸의 영혼을 건지고 그 영혼을 돌보는 일은 천사가 흠모하는 직분입니다. 동시에 선한 성품의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선한 사역임에 틀림없습니다.
사람의 아들들을 하나님의 아들들로 변화시키는 영광스런 일을 시중을 드는 직무입니다. 사람들의 눈을 열어 어두움에서 빛의 나라로, 사탄의 권세에서 아들의 통치 아래로 이끄는 일에 시중을 드는 것은 사모할만한 직무, 칭찬받을 만한 직무입니다.
그러므로 이 직무를 맡을 자들은 합당한 자격을 갖추어야 합니다. 장로의 자격 기준을 떨어뜨리는 것은 공동체의 영적 위기를 가져오게 합니다. 뿐만 아니라 세상에서 진리를 전하는 일에 제 구실을 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에 나타난 자격 기준을 바로 이해하고 그 수준에 합당한 사람을 선택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잘 살펴보면 장로의 직무보다는 장로의 자격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물론 직무와 관련한 자격도 논해집니다만 강조점은 사람됨에 있습니다. 어떤 성품의 사람이냐 하는 것은 어떤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냐 보다 중요합니다. 학위나 행정수완보다 인격과 성품이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합니다. 왜냐면 감독의 직무, 장로의 직무는 ‘선한’ 것을 사모하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성격의 일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또 오늘 본문을 살펴보면 특별히 높은 자격을 요하는 기준이라기보다는 기본적인, 필수적인 자격 기준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최고의 이상에 가까운 수준을 요구하기보다는 평범한 현실에 가까운 필수 자격을 말하고 있습니다.
“한 아내의 남편이어야 한다”든지 “술 취하지 말라”, “구타하지 말라”는 기준을 보면 당시 장로로 선택을 받는 사람들의 수준을 보여주는 것으로, 개종자들의 일반적인 상태가 반영되고 있습니다.
<전체적인 구조>
우선 전체구조를 살펴봅시다. 모두 몇 개의 자격 요건을 열거합니까? 15가지의 기준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러면 어떻게 그것들을 구분할 수 있습니까? 크게 나누면
1) 갖추어야 할 일곱 가지 덕목이 먼저 나오고
2) 이어서 피해야 할 일곱 가지 잘못이 열거되고
3) 끝으로 한 가지 불가결한 요소를 제시합니다.
그러면 먼저 갖추어야 하는 일곱 가지 덕목을 살펴봅시다.
“그러므로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절제하며 근신하며 아담하며 나그네를 대접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2절) 2절에 열거된 덕목은 개인적인 덕목 다섯과 직무와 관련한 덕목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 시작하는 덕목 말고는 모두 긍정적인 기준을 제시합니다.
“그러므로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
그의 삶을 통틀어 볼 때나 하나씩 따져보아서 객관적으로 비난받을 여지가 없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 보면 무조건 시비를 거는 사람도 있고, 자기보다 잘 믿는 사람 보면 가만 두고는 못 배기는 교인은 누구라도 붙들고 시비할 수 있습니다만 공정하게 객관적으로 살펴보아 전혀 근거가 없는 비난은 무시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아무라도 시비해서 장로 못되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본문이 뜻하는 바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객관적으로 비난받을 여지가 없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비의도적인 실수나 어쩔 수 없는 연약함은 용서될 수 있으나 결정적인 허물이 없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어떤 면에서 비난할 여지가 없어야 합니까?
1) 개인적인 자기 훈련과 성숙의 영역에 있어서 비난받을 여지가 없어야 합니다. 2) 또한 맡게 될 직무와 관련해서 비난의 여지가 없는 자이어야 합니다.
장로가 될 만한 사람은 개인적으로 어떤 훈련과 성숙한 모습을 보여야 합니까?
1)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결혼 생활에 아무런 하자가 없을 것을 맨 먼저 요구합니다.
① 회심한 이후 결혼생활에 있어서 부부의 신의와 정조를 지켰는지를 묻는 것입니다.
② 한 아내의 남편이 되어야 한다는 말은 결혼을 하지 않는 사람이나 재혼을 한 사람은 장로 직무를 수행할 수 없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다만
③다른 여자와 관계를 갖고 있지 않는 ‘한’ 아내의 남편일 것을 요구합니다. 성적인 생활에서 비난받을 여지가 있는 자는 장로로서 적합하지 못합니다. 한 마디로 여자관계가 깨끗하지 못한 자는 부적격자입니다. 장로로 선택받은 사람은 부부관계에 있어서 신실하고 공동체에 본이 될 만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 다음 세 가지 덕목은 개인적인 성숙도를 묻고 있습니다.
▶ “절제하며” - 자기 통제를 하고 있는 사람인지 묻습니다. 남을 섬길 자격이 있는 사람은 먼저 자기를 다스리는 사람입니다. 감정이나 식욕이나 취미생활이나 모든 영역에서 자신을 통제하고 있는 사람인지 묻습니다.
취미생활을 금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나 정력이나 능력을 소모하는, 소모적인 취미생활은 옳지 않다는 의미입니다. 시간만 나면 TV나 보는 사람보다는 매일매일 QT를 하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자기 통제가 되는 사람은 건강관리나 시간 관리나 물질관리, 영적관리가 남들과 달라야 합니다.
자기 통제는 단순한 자기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내주하시는 성령님의 도움으로 현명한 결단을 내릴 때 가능합니다. 자기 통제가 되는 사람은 자기 욕망을 따라 사는 대신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기 위해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죄악된 욕망의 노예로서가 아니라 거룩한 소원을 가진 자입니다.
▶자기관리의 두 번째 영역은 “신중하며” 개역성경에는 “근신하며”라고 부릅니다. 우리는 근신하면 교무실에서 벌 받던 생각을 먼저 떠올립니다만 본래는 사려 깊은 사람을 의미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개역개정판 성경은 “신중하며”라고 합니다. 본래의 의미는 건전한 생각을 가진 사람이요 다른 사람의 생각을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자기 생각으로 꽉 막힌 사람이 아니라 마음이 열려있는, 즉 생각이 트인 사람을 의미합니다.
▶자기관리의 마지막 영역은 개역개정성경은 “단정하며”, 이전 개역성경에는 “아담하며”라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아담하다 - 아담한 집, 아담 사이즈 등이 떠오릅니다만 생각이 열려있을 뿐 아니라 행동이 규범 있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앞의 “신중하며”라는 말이 생각이 훈련된 사람을 의미한다면 뒤의 말 “단정하며”는 생활이 질서 있는 것을 뜻합니다. 삶 속에 질서의 아름다움이 엿보이는 사람은 자연히 존경을 받습니다.
이제 직무와 관련한 두 가지 덕목을 살펴봅시다.
▶“나그네를 대접하며” - 당시는 신앙인 여행자 뿐 아니라 핍박으로 유리하는 자가 많던 상황이고 여관은 온갖 바가지요금과 범죄의 소굴이었습니다. 고대 여관은 비싸고 더럽고 부도덕한 장소로 악명이 나있습니다. 그러므로 사실 성도라면 누구나 나그네를 대접하도록 권면 받았던 만큼 장로들은 이 면에서도 본이 되어야 했습니다.
또한 직무와 관련해서 장로는 “가르치기를 잘하는” 자로 규정합니다. 장로라면 건전한 신앙 지식을 본인이 소유해야 하는 것은 기본입니다. 그리고 목사라면 더욱 다른 사람에게 그것을 알아듣도록 말해줄 능력도 구비해야 합니다. 복음에 대한 명쾌한 이해를 할 뿐 아니라 그 진리를 알아듣도록 설명할 능력과 소원이 있는 자이어야 합니다.
하긴 모든 장로는 바른 도리를 권면하고 잘못된 것을 반박할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자신의 잘못을 보고 시인토록 권면할 수 있어야 합니다. 반대자를 부드럽게 바로 잡아주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화내어 정죄하는 말을 내뱉기만 하는 대신 자기 잘못을 보고 진리를 받아들이도록 온유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 직무상 다른 사람을 가르치고 돌보고 감독해야 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 열려 있어야 하고 사람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넘쳐나야 합니다.
이제 기피해야할 두 번째 목록을 살펴봅시다.
▶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오직 관용하며 다투지 아니하며 돈을 사랑치 아니하며”(3절). 여기는 주로 피해야 할 잘못들을 열거합니다.
우선 처음 네 가지는 공동체의 다른 이와 관련한 일상생활이 어떠해야 할지를 규정합니다.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오직 관용하며 다투지 아니하며” 술을 즐기는 사람을 배제하도록 먼저 요구합니다. 술을 즐기는 사람이란 술판에 늘 앉아있는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술에 잠겨 사는 사람은 자격이 박탈되어야 합니다.
런 규정이 필요했던 선교 초기의 형편, 초대교회의 형편을 생각해보면 여러분과 제가 선택할 우리 교회 안수집사님들은 이런 면에서는 모두 양호한 셈입니다. 알코올 뿐 아니라 니코틴 중독, 코카인이나 히로뽕 뿐 아니라 중독성이 있는 취미생활도 살펴보아야 합니다.
술에 잠기는 삶과 주먹다짐 사이는 한 걸음 차이입니다. “구타하지 아니하며”가 잇따라 나오는 것은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여차하면 주먹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람들은 자격이 없습니다. 하긴 주먹으로 치는 것보다 혀로, 말로 상하게 하는 것도 용납될 수 없습니다.
입이 더럽고 난폭한 사람은 안 됩니다. “다투지 아니하며”가 곧 잇따라 나옵니다. 사모할 만한 직분자들은 그 입으로 남을 세워주고 격려하고 감사와 찬양이 나와야 합니다. 은혜의 복음으로 사람을 구원하는 일을 해야 할 사람이 다투는 일을 해서는 안 됩니다.
법적인 권리를 주장하는 대신 정당한 것 - 그 이상을 추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의는 화를 내거나 다투는 말로 세워지지 않습니다. 성숙한 사람은 비본질적인 문제에 타협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교부들의 격언을 기억하십시오. 중요한 문제는 일치점을 찾고 사소한 문제는 자유함을 찾고 모든 문제는 사랑을 가지고 해결하도록 충고합니다!
자기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대화하기 힘든 자는 자격이 없습니다. 본래 자기 의견과는 달라도 합리적인 의견을 수용할 줄 아는 자가 자격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을 우리는 ‘관용성’이 있다고 말합니다. “저 사람은 참 어려워”라는 말을 듣는 대신 “그 사람은 말이 통해”라는 평가를 받는 사람이 지도자의 자격이 있습니다. 복음적인 진리에 대해서는 타협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개인적인 권리, 이해타산, 견해와 주장은 양보할 줄 알아야 합니다.
▶다섯 번째 피해야 할 악은 공동체의 경제적 직무와 관련해서 규정하고 있습니다. “돈을 사랑치 아니하며” 돈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겠습니다만 돈을 사랑하는 것은 문제입니다. 사람을 하늘로 인도하는 일에 관심하는 자는 돈을 사랑하는 자이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으로 만족하는 자는 하나님이 주시는 것으로 감사하는 자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것으로 만족하는 자는 돈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부하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혀 있지 않습니다.
이 편지 끝 부분에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다음과 같은 권면을 하고 있습니다. “네가 이 세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 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
▶두 번째 목록 가운데 여섯 번째 것은 4절과 5절에 걸쳐 길게 서술되고 있습니다. “자기 집을 잘 다스려 자녀들로 모든 단정함으로 복종케 하는 자라야 할지며 (사람이 자기 집을 다스릴 줄 알지 못하면 어찌 하나님의 교회를 돌아보리요)”
아무나 장로로 세워서 온 공동체가 시행착오를 겪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장로로서 그의 지도력과 돌보는 능력은 가정을 어떻게 다루는지를 보면 됩니다. 가장으로서 가정의 식솔들을 어떻게 다스리는지 보면 자격이 드러납니다. 가장 노릇을 잘못하는 사람은 교회의 지도자가 될 자격이 없다고 규정합니다.
가장으로서의 능력은 자녀들을 어떻게 통제하는지에 따라 드러납니다. 훌륭한 가장은 강압 대신 존경으로 자녀들을 복종케 하는 자입니다. 은근한 위엄과 존경이 유감없이 나타나는 가장이라야 자격이 있습니다. 식솔들이나 자녀들은 그만두고 아내 하나도 통제할 줄 모르는 자는 장로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지혜와 사랑과 단호함으로 가정을 통솔하는 능력을 보여주는 자로 장로를 삼아야 합니다. 자기 가족을 다스리기에 유능한 사람이 하나님의 식구들을 다스려야 합니다. 교회는 하나님께 속한 공동체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반드시 이런 자격을 구비한 자들이 돌볼 때 제 구실을 감당합니다.
▶둘째 목록에서 마지막 주의할 점은 신앙경력과 관련해서 언급합니다.
“새로 입교한 자도 말찌니 교만하여져서 마귀를 정죄하는 그 정죄에 빠질까 함이요”
세례는 받았으나, 술 담배는 끊었으나 믿은 지 얼마 되지 않는 자는 세워서 안 된다는 것입니다. 초신자를 세우면 그 자신을 위해서도 하나도 덕 될게 없다는 설명입니다. 한마디로 신출내기는 장로로 세워서 안 된다는 것입니다.
세례 받고 바로 집사 되고 얼마 안 되어 장로 되고 이렇게 되면 교만해지기 쉽다는 이야기입니다. 교만은 바로 천사가 사탄이 된 원인입니다. 그러므로 영적 책임 있는 위치에 있는 분들은 언제나 자신을 하나님 앞에 낮추는 훈련을 계속하셔야 합니다. 수건으로 허리를 동이고 형제의 발을 씻는 일에 자신을 드려야 합니다. 장로가 되고 나서 뿐 아니라 되기 전부터 섬기는 훈련이 잘된 사람이어야 적격자입니다.
이제 큰 세 번 째 범주로 불가결한 마지막 요소를 살펴봅시다. 그것은 바깥세상과 관계해서 좋은 평판을 듣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물론 외부인이 교회 내의 인사를 좌지우지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 마음속에 하나님께서 양심을 두셨으므로 도덕적 판단을 할 수 있습니다. 때로는 같은 교회 다니는 성도들에 의한 평판보다 사업상 친구들이 더 정확히 판단할 수 있습니다. 외부 평판이 왜 중요합니까? 교회는 복음을 세상에 전하는 일을 하기에 그렇습니다. (대전 국세청장의 부탁)
바깥사람들의 일반적 지지를 얻지 못하는 사람은 피해야 합니다. ‘의심스러운 사람’이 지도자의 자리에 오르면 사탄의 덫에 걸려들게 됩니다. 사탄은 그를 유혹할뿐더러 복음 진리에서 떠나게 만듭니다. 배도하는 끔찍한 죄를 지을 수도 잇기 때문입니다. 안팎의 확실한 존경을 얻는 사람을 장로로 세울 수 있는 교회는 복이 있습니다.
주안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말씀을 정리합니다.
살펴본 바대로 자명한 자격 기준들입니다. 어떤 경우는 바울 자신이 설명을 덧붙이고 있습니다. 누구나 살펴보면 알 수 있는 시금석들입니다. 거룩하게 되는 되도 시간이 필요하듯이 장로가 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장립집사 가운데서 후보를 선택하도록 하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성숙한 성도라야 교만에 빠지지 않습니다. 절대로 장로가 되기 전에 교만한 사람이 장로가 된 후에 겸손한 자로 돌변하지는 않습니다. 그런 분들은 후보로도 선택해서는 안 됩니다. 절대로 뽑아서는 안 됩니다. 자아의 욕망보다 주님의 분부를 중시하는 자를 선택하십시오. 자기가 가진 것을 나눌 줄 알고 진리를 가르칠 만한 자라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수용하고 평화롭게 살아가는 능력이 있어야 지도자가 됩니다. 가정에서 식구들 다루는 것을 보면, 직장에서 직원들 대하는 것 보면 그의 지도력이 드러납니다. 불순종하는 자녀나 내주장하는 아내는 장로로서 직무수행의 암초들입니다. 바깥사람 -동네 사람 뿐 아니라 직장 동료들의 평가도 매우 중요합니다. 거기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삶의 성실함과 진실함과 안정함이 드러나는 현장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자격을 갖추면 비난할 여지가 없는 사람입니다. 한 마디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입니다. 이런 자격을 갖추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역사한 결과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도 가운데 우리 중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준에 부합한 좋은 분들이 선출되는 이번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런 자격을 갖춘 분들을 장로로 선택하고 그들을 안수해서 세우게 될 때 온 교회가 새롭게 힘을 얻고 기쁨을 얻게 될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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