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기도문 !!

[스크랩] 하나님은 모든 기도에 응답하시는가?

하나님아들 2013. 7. 13. 23:08

하나님은 모든 기도에 응답하시는가?

 

 

 

이제 누구나가 질문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문제 중의 하나를 살펴보기로 하자. 이 문제에 대한 대답에 따라서 많은 것이 좌우된다. 조금도 주저하지 말고 이 질문을 공정하고 정직하게 살펴보자.

하나님은 언제나 응답하시는가? 물론 하나님께서 기도에-일부 기도에 대해-응답하신다는 것을 우리는 인정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진실한 기도라면 무엇이든지 들어주신다. 소위 어떤 기도는 응답받지 못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것들을 듣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자기 백성들이 반역하였을 때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1:15)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는 기도의 응답을 기대해야 한다. 하나님은 모든 기도에 응답하시기 원하신다. 진실한 기도는 단 하나도 하늘에서 무위로 돌아가지 않는다.

그런데 사도 바울이 선언한 바 “......만물이......다 너희의 것임이라......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고전 3:21-22)라고 한 말이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너무나도 분명하게 또 너무나도 비참하게 거짓말 같아 보인다. 그러나 거짓말이 아니다. 모든 것은 우리들의 것이다. 그러나 나무나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것을 소유하지 못하고 있다.

퀸즈랜드의 모건(Morgon) 산의 소유주들은 지금가지 세상에 알려진 것 중에 가장 풍부한 금맥이 그들의 발 밑에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 채 산비탈의 메마른 땅을 일구어 가며 비참한 생활을 이어갔다. 거기에는 막대한 부가 묻혀있었다. 꿈에도 상상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양의 금이 묻혀 있었다. 그것은 그들의 것이었지만 그들의 것이 아니었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풍성함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것들을 획득하는 방법을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우리 주님이 기도 문제에 바른 판단력을 주시기 원한다.

참된 기도는 응답되지 않는 것이 없다고 말할 때, 하나님은 우리가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그대로주신다고 하는 말은 아니다. 자녀를 그처럼 어리석게 다루는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우리는 어린 아이가 벌겋게 달아 오른 부지깽이를 아무리 극성스레 달라 해도 주지 않는다. 부요한 사람일수록 자식들에게 용돈을 많이 주지 않으려고 더욱 주의한다.

만약 우리가 간구한 대로 하나님께서 다 응답하신다면 이 세상을 다스리는 것은 우리지 하나님이 아니다. 우리는 결코 세상을 다스릴 능력이 없다고 고백할 것이다. 더욱이 이 세상에는 통치자가 둘이 있을 수가 없다.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기도 응답은 아마 된다또는 안 된다일 것이다. 때로는 하나님이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큰 축복, 그리고 우리 자신과 함께 다른 사람들이 관련된 복을 계획하고 계시면서 기다리라하실 수도 있다.

하나님의 응답은 간혹 아니다이다. 그러나 이것이 반드시 알고 있는 죄나 고의적 죄 때문인 것만은 아니다. 물론 무지의 죄도 있을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때로 사도 바울에게 아니요라고 하셨다.(고후 12:8-9)

때로는 하나님의 거절이 우리들의 기도의 무지나 이기심 때문일 수도 있다. 이는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기때문이다.(8:26) 세베대 아들의 어머니가 범한 잘못이 그런 것이다. 그녀는 와서 주님께 절하며 간절히 구했다. 그때 주님은 즉시 대답하시기를 너희 구하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20:22) 하셨다.

위대한 기도의 사람 엘리야도 때로는 기도의 응답으로 아니요를 얻었다. 그러나 엘리야가 불수레를 타고 하늘 영광 가운데로 승천하면서 그는 오 여호와여 지금 내 생명을 취하시옵소서라고 기도하였을 때, 하나님께서 아니요라고 하신 것을 원망했겠는가?

하나님의 응답은 때로 기다리라이다. 탄원한 선물을 받기에 합당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지연시키시는 것이다. 어거스틴의 유명한 기도-“오 하나님, 나를 정결하게 하소서. 그러나 지금은 그리 마옵소서”-를 기억하고 있는가? 종종 우리들의 기도도 그렇지 않은가? 우리는 응답된 기도의 대가를 치르는 잔을 마시려하고 있는가? 하나님께서 가끔 응답을 지연시키심으로 그분 자신에게 더 큰 영광이 돌아가게 하신다.

하나님의 지연은 거절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가끔 응답을 지연시키시는지 또 어떤 때는 왜 우리가 부르기 전에 응답해 주시는지 알 수 없다.

역사 이래로 가장 위대한 기도의 사람 중 하나인 조지 뮬러는 친구한 사람을 회심시키기까지 63년 이상 기도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누가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있겠는가? “가장 중요한 점은 응답이 올 때까지 결코 포기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라고 뮬러는 말한다. 또한 그는 나는 한 사람의 회심을 위해 638개월간을 기도해 왔다. 아직 그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나 돌아올 것이다. 어찌 그렇지 않을 수 있으랴? 변함없는 여호와의 약속이 있으니 나는 그것을 의지한다.”라고 말한다.

이것이 사탄의 끊임없는 방해 때문이라고 함이 옳을는지.(10:13) 그것은 사탄이 뮬러의 신앙을 뒤흔들어 무너뜨리려는 강렬하고도 지속적인 노력이었을까? 뮬러가 죽자마자 그의 친구가 회심했다. 그는 뮬러의 장례식 전에 회심하였다.

그렇다. 비록 응답이 지체하였지만, 그의 기도는 상달되었다. 조지 뮬러는 많은 간구의 응답을 받았다. 그가 한때 부르짖은 말이 자못 자연스럽게 들린다.

 

! 우리가 상대해야 하는 그분은 얼마나 선하고 친절하시고 은혜로우시며 겸손하신지! 나는 다만 가난하고 연약하며 죄 많은 인간이오나 그는 나의 기도를 일만 번이나 들어주셨도다.”

 

어떤 이들은 하나님께서 나의 기도에 대하여 안된다고 하시는지 아니면 기다리라고 하시는지 어떻게 확인할 수 있느냐고 물을지도모른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안된다라는 응답을 주시고자 63년간 기도하도록 내버려 두시지는 않는다는 점은 보장할 수가 있다. 그토록 오랫동안 계속된 뮬러의 기도는 하나님께서 죄인의 죽음을 원치 않으시고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신다는 인식에 기초를 두고 있었다.(딤전 2:4)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동안 집배원이 이런 내용의 편지를 전해 주었다. 내게 좀처럼 편지하지 않던 사람으로부터 온 것이었다. 나의 주소도 모르는 사람이었다. 영국 그리스도인들에게 널리 알려진 사람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병으로 괴로워한다는 것이었다. 그녀의 회복을 위해 그는 계속 기도해야 할 것인가? 하나님의 응답은 안된다일까 아니면 계속 기도하라-기다리라일까? 그 친구의 편지는 다음과 같았다.

 

나는 나의 사랑하는 자에 관해 하나님의 명확한 안내를 얻었네..... 그녀를 취해 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다는 말일세......나는 하나님의 뜻에 맡기고 굴복하여 손을 떼고 말았어. 오히려 하나님께 더 찬양하게 되었네.”

 

수 시간 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그녀를 영광 중에 불러가셨다.

다시금 독자 여러분에게 진실한 기도는 결코 불응이 없다는 이 한 가지 진리를 붙들기를 촉구한다.

만일 우리들의 기도에 대해 좀더 생각을 한다면 보다 현명한 기도를 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자명한 일이다. 그러나 일부 그리스도인들은 기도하기 전에 자신의 상식과 이성을 제쳐놓고 있는 것 같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하는 것이다. 조금만 숙고하면 하나님이 어떤 기도들은 응답해 주실 수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전시에 나라마다 승전을 위해 기도하였다. 그러나 모든 나라가 승리할 수는 없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두 사람이 함게 살면서 한 사람은 비가 오기를 기도하고 다른 한 사람은 쾌청하기를 기도했다고 하자. 이런 경우 하나님께서는 두 사람의 기도를 같은 장소에서 동시에 응답해 주실 수가 없으시다.

그러나 하나님의 진실성이 그런 기도의 문제에 걸리게 된다. 우리는 주님의 그 놀라운 기도 약속들을 일고 무엇인든지라는 말의 광범위한 영역과 충분한 의도와 거대한 규모에 거의 실신할 지경이다.

 

하나님은 참되시다 할지어다”(3:4)

 

그는 분명히 항상 참되시다 할지로다.

하나님께서 필자의 모든 기도를 응답해 주셨는지 물어본다면 나는 그러지 않으셨다고 할 것이다. 만일 일부기도에 응답해 주셨다면 축복 대신에 저주가 되었을 것이다. 또 다른 기도에 대해서 응답하기에는 영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즉 필자가 구한 은혜를 받을 자격이 없었다. 어떤 기도는 응답되면 영적 교만과 자만만 자랄 뿐이다. 하나님의 성령의 충만한 빛 가운데서 보니 이 모든 사실이 얼마나 명백하게 보이는지 모르겠다.

과거를 돌이켜 보면서 자신의 열정적이고 진지한 기도를 자신의 빈약하고 무가치한 섬김, 진정한 영성의 결핍과 비교해 볼 때, 하나님께서 주시고자 원하신 그 은사를 도저히 받을 수 없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마치 바다 같은 하나님의 사랑을 골무만한 자기 가슴에다 부어 달라는 요구와도 같은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모든 영적인 축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시는지 모른다. 사랑하는 구주께서 얼마나 부르짖으시는가?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23:37)

 

그 모든 슬픈 사실을 우리가 간구하고도 우리들의 무자격 때문에 응답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고도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는다고 불평한다.

주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성령을 주신다고 선언하신다. 그 성령은 우리에게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주신다. 마치 아버지께서 기꺼이 좋은 선물을 그 아들에게 주시는 것과 같이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다. 그러나 아들이 그 선물을 쓰기에 합당치 않다면 그 선물은 더 이상 좋은 선물이 될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의 영광을 위해 쓸 수 없는 것이나 쓰지 않을 것을 주시지 않으신다.(나는 재능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 은사를 말한다. 왜냐하면 재능을 남용하거나 묻어둘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어린 아들이 원한다고 해서, 면도칼을 주는 사람을 본 일이 있는가? 아버지는 분명히 애야, 좀더 있다가 크고 지혜가 생길 때까지 기다려라하지 않겠는가? 사랑하는 천부께서도 우리들에게 동일한 말씀으로 기다리라하시지 않겠는가? 우리는 무지하고 어두워 종종 다음과 같이 말하지 않으면 안된다.

 

하나님께서는 주시고 싶어도

우리의 연약성이 그것을 오용할까봐

지극한 사랑으로 거절하신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내일의 은사를 오늘 주시지 않는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하나님께서 쥣의향이 없어서 그러시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 자신이 편협해서도 아니다. 그의 자원은 무한정하고, 하나님의 길은 우리가 헤아릴 수 있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구하라는 명령을 내리신 다음 하나님의 섭리와 자원을 말씀하셨다.

 

공중의 새를 보라......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6:26)

 

얼마나 단순한 말씀인가? 그러나 당신은 전세계 어느 백만 장자가 공중의 새들을 단 하루만이라도 먹일 수 있는지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천부께서는 매일 그들을 먹이시고 계시며 조금도 모자람이 없다. 하물며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먹이시고 입히시고 돌보시지 않겠는가?

기도를 좀더 신뢰하자. “하나님께서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자이심을”(11:6) 모르고 있는가? 성령의 기름은 그것을 받을 수 있는 그릇이 비어 있는 한 결코 그치지 않는다.(왕하 4:6) 성령의 사역이 멈추게 될 대 잘못은 항상 우리들에게 있다. 하나님은 일부 그리스도인들에게만 성령 충만을 주실 수 없다. 하나님은 일부 일꾼들에게만 그들의 수고의 결과를 주실 수없다. 그러면 그들은 교만과 허영의 병에 걸릴 수 있다. 우리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간구하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다 허락하셔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앞장에서 고찰했듯이, 만일 우리가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려면 순수한 마음, 순수한 동기 그리고 순수한 욕구가 있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약속보다 크신 분이며, 때로는 우리가 받을 자격이 있을 때, 원한 것 이상의 것도 주신다.

그러나 항상 그렇게 해 주시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어떤 기도가 응답되지 않는다면 하나님이 분명히 우리의 마음을 살펴보라고 요구하신다고 생각해도 좋을 것이다. 그 이유는 그가 그의 이름으로 진실하게 기도하면 모든 기도를 들어주겠다고 약속해 주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축복의 말씀을 다시 한번 되새겨보자. 아무리 되새겨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14:13-14)

 

그리스도께서 드리신 기도가 응답되지 않을 수 없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그는 하나님이셨고-하나님의 마음을 아셨고-성령의 마음을 가지셨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고민하사 무릎을 꿇고 피땀을 흘려 기도하시면서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하옵소서”(26:39)라고 기도하시지 않으셨는가? 그러셨다, 그리고 그는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다.(5:7) 실로 고민이 아니라 아들의 두려움으로써 응답을 받지 않으셨는가? 우리들의 기도가 중요하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식이 드리는 것이므로 응답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 형제들이여, 우리는 두려움과 경외가 가득한 그 신성한 장면들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주님께서는 순수할 수 없는 것이다. 지키실 의도가 없는 약속은 하시지 않는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성령께서 우리를 위해 중보의 기도를 드리시며(8:26), 하나님께서는 성령께 안된다라고 말씀하실 수 없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중보의 기도를 드리시며(7:25), 하나님께서는 예수님께 안된다라고 말씀하실 수 없다. 그분의 기도는 우리들의 기도를 순천 배 능가한다. 그런데 그런 분이 우리에게 기도하라고 명령하신다.

그러면 사도 바울은 성령에 충만하여 우리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노라고 까지 아니하였는가?” 그러나 그는 하나님께서 세 번이나 그의 육체의 가시를 제거해 달라고 간구했으나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들어주시지 않겠다고 말씀하시지 않았는가?

이것 역시 매우 단순한 것이다. 사도 바울이 자기의 사적인 필요를 요구한 기록으로 이 간구만이 거절된 것이다. 그러나 난처한 것은 왜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진 사도 바울이 하나님의 바라는바에 상반되는 줄 알텐데 간구했느냐?”는 점이다. 물론 이 글을 읽는 헌신된 그리스도인들 중에도 자신의 기도가 응답되지 않아서 당황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을 줄 안다.

우리는 성령으로 충만해 있을지라도 아직 판단이나 요구에 오류를 범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우리는 한꺼번에 영원히 성령 충만을 받을 수 없다는 사실도 기억해야 한다.

마귀는 항상 그의 마음을 우리 속에 침투 시키려고 노리고 있으며 우리를 통해 하나님과 충돌하고자 한다. 어느 순간이든 우리는 불순종하게 되거나, 불신앙하게 될 수 있으며, 또 사랑의 성령에 상충되는 생각이나 행동에 빠질 수 있다.

사도 베드로의 생애에서 이에 대한 무서운 예를 볼 수 있다. 하나님의 성령의 강력한 영향 아래서 한때 그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16:16)라고 외쳤다. 주님께서 돌아보시면서 크게 칭찬하시기를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1617) 하셨다.

그러나 잠시 후에 사탄이 그의 마음에 들어갔고 주님께서는 그에게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16:23)고 말씀하셨다. 그때 사도 베드로는 사탄의 이름으로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탄은 지금도 여전히 우리를 장악하려고하고 있다.

우리에게 방해와 핸디캡이 되는 것이 제거되기 보다는 그대로 있는 것이 오히려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는 것을 알면 더 위로가 되지 않는가?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고후 12:9)

 

다음 글귀를 기억하라.

 

하나님은 무엇을 행하시지도 방치하시지도 않는다.

그러나 그대 스스로가 할 일을

그대가 하고 나면

하나님께서 하신 모든 결과를 보리라.

 

바울도 완벽하지는 못했다. 베드로도 그랬고, 요한도 그랬고, 교황도 기타 여한한 사람도 마찬가지다. 우리고 잘못된 기도를 드리고 있을 수도 있다. 최상의 기도 형태는 오 하나님, 나의 길이 아니라 주의 길을아니고 오 하나님 나의 길이 당신의 길이니이다이다. 우리는 주의 뜻을 고치소서가 아니라 주 뜻이 이루어지이다라고 기도하라고 배운다.

결론으로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준 두 사람의 간증을 제시하고자 한다.

위대한 탐험가 스탠리 경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나 자신은 기도가 효험이 없는 것이라고 감히 말할 수 없다. 진지하게 기도했을 때는 응답을 받았다. 나의 수행자들을 에워싸고 있던 위험을 지혜롭게 빠져 나갈 수 있도록 안내의 빛을 간구하였을 때 한 줄기 광선이 당혹한 마음에 비쳐 왔으며, 분명한 구원의 대로가 제시되었다. 기도의 응답이 온다는 것은 누구든지 하나님 앞에 소원을 아뢰고 자리에서 일어설 때에 그의 마음 속에 만족이 오는 것으로 알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기도가 응답된다는 나 자신의 확실한 증거가 있다.”

 

서부 아프리카에서의 삶으로 모든 이들에게 감동을 던져준 마리 슬레소는 한때 기도가 그녀에게 무슨 의미가 있었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녀의 대답은 이러했다.

 

나의 생애는 매일 매시 육체적 건강과 정신적 긴장의 해소, 기적적 안내, 오류와 위험으로부터의 도피, 복음에 대한 증오심의 극복, 필요한 양식의 적시 공급, 그밖에 나의 삶과 봉사에 필요한 모든 것에 대한 기도 응답으로 점철된 하나의 장대한 기록이다. 나는 하나님께서 기도를 응답하신다는 믿음을 얼마든지 증명할 수 있다. 나는 하나님께서 기도를 응답하심을 안다.”

 

 

 

하나님의 응답은 간혹 아니오이다. 그러나 이것이 반드시 알고 있는 죄나 고의적 죄 때문인 것만은 아니다. 물론 무지의 죄가 있을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때로 사도 바울에게 아니오라고 하셨다(고후 12:89).

 

 

출처 : 창골산 봉서방
글쓴이 : 봉서방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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